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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료칸추천 - 슈젠지 아라이료칸
100년의 세월을 가진 아라이료칸, 주변하천에서 흘러들어오는 샘물이 료칸 내부를 맴돌고있다.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다는 노천탕, 여긴 또 다른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있는, 실내 탕이다. 돌들을 드러내지않고, 그 모양을 그대로 살려낸 탕들이 아름다웠다. 온천욕을 하며 보는 유리밖으로는 헤엄치는 잉어와 잔잔한 물이 보인다. 잉어가 곳곳에 많다.. 이친구들도 100년은 살았겠지, 방마다 테라스에서 이어져 밖으로 나가는 작은 정원들이 있다. (다른방이 다 보이는구나... ) 아침밥, 정갈한 도시락을 먹는기분 전체 지도, 탕들은 시간대마다 남탕과 여탕을 왔다갔다하기에, 시간체크를 잘하고 들어가야한다. 저녁산책, 이렇게 문 앞에 오늘의 숙박객들의 이름이 써져있다. 온천욕하고.들어오니 준비되어있던 간식, 방을비우는 새에 알게 모르게 이부자리도.펼쳐져있고, 간식과 차가 준비된다. 정말 배부르게 먹은 저녁 가이세키, 하나하나 정성이 깃든 맛이다. 여기는 프라이빗탕, 눈치싸움만 잘한다면...무료로 이용이가능하다. 생각보다 쉽게 이용가능했다. 사진에는 담을 수 없었지만, 가장 좋았던 부분은 온천수다. 물 속에 들어가자마자 여독이 씻기고, 살이 보들보들해진다. 집 앞이라면 매주 들어가고싶었던 온천수ㅠ.ㅠ.... 일본여행중 가장 일본같았던, 아라이료칸에 빙글러분들 꼭 가보길바래요.
[홋카이도-도쿄 12] 모리오카(盛岡) 산책 – 모리오카 성, 다쿠보쿠・겐지 청춘관, 모리오카 덴만구(盛岡天満宮)
(701계 701系) 모리오카(盛岡) 역 앞에서 관광 순환버스인 덴덴무시 호(でんでんむし号. 달팽이)를 타고 모리오카 산책을 나갔습니다. 모리오카는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 1886-1912)와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 1896-1933)의 고장입니다. 먼저 모리오카 성(盛岡城)에 갔습니다. 모리오카 성은 옛 지명의 이름을 따서 고즈카타(不来方) 성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에도 시대 모리오카 번주였던 난부(南部) 가문의 성(城)이었습니다. 현재는 성벽 일부와 성터만 남아있으며, 이와테 공원(岩手公園)이라고도 합니다. 성벽은 도호쿠(東北) 지방에서는 드물게 화강암으로 지어졌고 도호쿠 3대 명성으로 꼽힙니다. 혼마루(本丸)와 니노마루(二の丸) 사이에는 가라보리(空堀. 물이 없는 해자)가 있고 주홍색 다리가 연결하고 있습니다. 혼마루 한쪽에 동상 받침대가 하나 있습니다. 이것은 난부(南部) 가문 제42대 당주(当主)인 난부 도시나가(南部利祥)의 기마상이 있던 자리입니다. 난부 도시나가는 육군 기병 중위로 러일 전쟁에 참전 중 1905년 23세 나이로 전사하였고, 이를 기리고자 1908년 기마상이 세워졌지만 태평양 전쟁 중인 1944년에 전쟁 물자 조달을 위한 금속 공출로 철거되어 받침대만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니노마루 한쪽에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비(石川啄木歌碑)가 있습니다. 不来方のお城の草に寝ころびて 空に吸はれし 十五の心 고즈카타의 성터 자리 풀밭에 누워 뒹굴며 하늘에 빨려 들던 열다섯 살의 마음 다쿠보쿠는 모리오카 중학교 시절에 창문을 넘어 도망쳐서 200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니노마루에 와서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잤다고 합니다. 모리오카 성을 빠져나오는 길의 작은 해자 옆에 미야자와 겐지의 ‘이와테 공원(岩手公園)’이란 시비가 있습니다. 모리오카 성을 나와서 나카쓰가와(中津川)를 가로지르는 나카노하시(中の橋)를 건너면 붉은 벽돌의 이와테은행 구 본점 건물(岩手銀行赤レンガ館)이 보입니다. 도쿄역과 한국은행 본점을 설계한 다쓰노 긴고(辰野金吾)가 설계한 건축물로 1911년에 준공되었습니다. 바로 근처에 있는 모리오카 다쿠보쿠・겐지 청춘관(もりおか啄木・賢治青春館)에 갔습니다. 이곳은 이와테 현(岩手県) 출신의 두 위대한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주제로 한 문학관입니다. 둘 다 모리오카 중학교를 다녔는데, 다쿠보쿠는 졸업을 못하고 중퇴하였습니다. 다쿠보쿠 자신은 소설가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불운한 자신의 처지와 어려운 생활고를 3행 단가라는 새로운 형식의 단가로 표현하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재시인, 국민시인이 되어버렸습니다. 다쿠보쿠의 대표적인 작품집으로는 처녀시집 <동경(あこがれ)>, 처녀가집 <한 줌의 모래(一握の砂)>, 유고가집 <슬픈 장난감(悲しき玩具)> 등이 있습니다. いのちなき砂のかなしさよ さらさらと 握れば指のあひだより落つ 생명이 없는 모래의 슬픔이여 사르르 사락 주먹을 쥐면 손가락 사이로 떨어지네 [‘한 줌의 모래(一握の砂)’ 제1장 ‘나를 사랑하는 노래(我を愛する歌)’ 중에서] 미야자와 겐지는 시인, 동화작가이자 농민교육자였습니다. 겐지는 생전에 주류 문단과 전혀 교류하지 않고 고향인 이와테 현에서만 창작활동과 농민계몽활동을 했습니다. 겐지의 대표작으로는 ‘주문이 많은 요리점(注文の多い料理店)’, ‘은하철도의 밤(銀河鉄道の夜)’, ‘포라노 광장(ポラーノの広場)’ 등이 있습니다. ‘은하철도의 밤(銀河鉄道の夜)’은 겐지의 미완성 유고작으로 인기 애니메이션 ‘은하철도999(銀河鉄道999)’의 원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청춘관 내 카페 ‘동경(あこがれ)’에서 잠시 쉬면서 다쿠보쿠와 겐지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다시 덴덴무시 호(でんでんむし号)를 타고 모리오카 덴만구(盛岡天満宮) 신사에 갔습니다. 이곳도 다쿠보쿠가 모리오카 중학교 시절에 학교를 도망쳐 나와 자주 놀러왔던 곳입니다. 본전 앞에는 한 쌍의 고마이누(狛犬)가 있습니다. 고마이누는 신사나 절에 사악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사자를 닮은 상상의 동물 형상으로 이름이 고려견(高麗犬)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우측의 고마이누는 입을 벌린 형태인 ‘아형(阿形)’이고, 좌측의 고마이누는 입을 닫은 형태인 ‘훔형(吽形)’입니다. 아훔(ahum. 阿吽)은 산스크리트에서 왔습니다. ‘아(阿)’는 입을 벌릴 때 나는 소리로 ‘처음’을 의미하고, ‘훔(吽)’은 입을 다물 때의 소리로 ‘끝’을 의미합니다. 신사 옆으로 조금 내려가면 언덕에 다쿠보쿠 시비가 있습니다. 病のごと 思郷のこころ湧く日なり 目にあをぞらの煙かなしも 마치 병인 양 고향 그리는 마음 솟구치는 날 눈에 푸른 하늘의 연기 서글프구나 [‘한 줌의 모래(一握の砂)’ 제2장 ‘연기(煙) 하나(一)’ 중에서] 다쿠보쿠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시부타미(渋民)에 가기 위해서 모리오카 역으로 갔습니다. (계속) [오늘 탄 열차] 13:12 모리오카(盛岡) - 13:31 시부타미(渋民) (IGR이와테 은하철도 IGR7000계) 16:06 시부타미(渋民) - 16:27 모리오카(盛岡) (JR하나와센 JR花輪線 키하110계 キハ110系) 16:36 모리오카(盛岡) - 17:08 이치노세키(一ノ関) (E5계 신칸센 하야테 新幹線はやて) 17:26 이치노세키(一ノ関) - 17:34 히라이즈미(平泉) (JR도호쿠혼센 JR東北本線 701계 701系) (여행일 2017.08.15.)
‘중국파’가 득세하는 혼다의 속사정
하치고 사장과 부사장 쿠라이시는 입사동기 중국시장 총괄했던 '중국파'...인사권 장악 주류였던 북미시장파의 불만 표출 등 위기 # 창업가문이 경영하지 않는 혼다 일본 자동차 메이커 혼다(혼다기연공업:本田技研工業)는 창업 가문이 경영을 하지 않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그게 전통이었다.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는 비교적 이른 나이인 65세(1973년)에 용퇴했다. 그는 회사에 혼다(本田) 성을 가진 친인척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했다. 혼다 소이치로가 후계자로 뽑은 사람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45세에 불과한 가와시마 기요시(河島清好)라는 사람이 경영을 이어 받았던 것.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를 포함한 혼다의 사장 계보는 아래와 같다. ᐅ초대 사장 (한자명과 재직 기간)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郎:1948~1973) ᐅ2대 사장 가와시마 기요시(河島清好:1973~1983) ᐅ3대 사장 구메 타다시(久米是志:1983~1990) ᐅ4대사장 카와모토 노부히코(川本信彦:1990~1998) ᐅ5대 사장 요시노 히로유키(吉野浩行:1998~2003) ᐅ6대 사장 후쿠이 다케오(福井威夫:2003~2009) ᐅ7대 사장 이토 다카노부(伊東孝紳:2009~2015) ᐅ8대 사장 하치고 다카히로(八郷隆弘:2015~현재) 오너 자녀들이 회사에 발을 못 붙이는 전통을 이어온 혼다는 그동안 별다른 잡음 없이 경영이 유지돼 왔다. 하지만 8대 사장 하치고 다카히로가 취임하고부터는 내부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과거 혼다는 주력차 피트의 대규모 리콜 사태를 겪었다. 당시 경영자가 7대 사장인 이토 다카노부(伊東孝紳)다. 이토 사장은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바통을 이어받은 이가 현재 사장인 하치고 다카히로다. <혼다 사장 하치고 다카히로(八郷隆弘)와 부사장 쿠라이시 세이지(倉石誠司). 두 사람은 혼다의 중국시장을 총괄한 '중국파'다. photo=혼다 홈페이지> # 입사동기가 나란히 사장, 부사장 혼다는 현재 입사 동기가 나란히 사장, 부사장을 맡고 있다. 전 세계 글로벌기업 어디를 봐도 찾기 어려운 희귀한 케이스다. 현사장 하치고 다카히로(八郷隆弘)와 부사장 쿠라이시 세이지(倉石誠司)는 1982년 혼다에 함께 입사했다. 하치고가 1959년생, 쿠라이시는 1958년생이다. 둘은 혼다의 중국시장을 총괄했던 대표적인 ‘중국파’다. 승진은 ‘앞서거니 뒤서거니’했다. 2013년엔 쿠라이시가 하치고의 상사였다. 쿠라이시가 중국 총괄 사장(유한공사총경리), 하치고가 총괄 부사장(유한공사부총경리)을 맡았다. 그러다 2014년엔 똑같이 상무로 승진했다. 이후엔 상황이 역전됐다. 하치고는 2015년 전무에 이어 같은 해 사장에 올랐다. 쿠라이시도 2016년 전무로 승진, 곧바로 부사장 자리에 오르는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 하치고 사장은 2017년 4월, 최고경영책임자(CEO)까지 맡게 됐다. 쿠라이시 부사장 역시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취임해 2인자 지위를 굳혔다. 입사 동기생에다 ‘중국파’인 두 사람이 인사권을 장악하게 된 셈이다. # 전무가 회장으로 기용 재밌는 인사 올해 2월엔 혼다에 재미있는 인사가 났다. 전무가 회장으로 승진 기용된 것. 미코시바 도시아키(神子柴寿昭) 전무는 2016년부터 공석이었던 회장을 맡게 되었다. 미코시바는 1957년생으로, 사장과 부사장보다 연장자다. 입사(1980년)도 두 해 더 빠르다. 미코시바 회장 역시 중국파로 분류된다. 2014년 6월까지 중국 합자회사의 총경리(사장)를 맡았다. 이후 그는 북미혼다와 아메리칸혼다 사장 겸 CEO를 지냈다. 사실 하치고 사장 이전까지 혼다 경영진의 주축은 북미담당 출신자들이었다. 그런데 하치고가 사장에 오르면서 무게중심이 중국파로 기울었다. 미코시바의 회장 기용을 두고 이런 목소리(혼다 전직 임원)도 있다. “(실은 부사장인) 쿠라이시가 회장이 되는 안도 있었지만, 이러면 점점 더 미국파의 불만이 심해지기 때문에 그 절충안으로 미국과 중국 모두를 경험한 미코시바 도시아키가 회장에 선임된 것이 아니겠느냐.” # 혼다 최초의 여성 임원도 ‘중국파’ 하치고 사장 체제에서는 2016년 혼다 최초의 여성 임원도 탄생했다. 주인공은 스즈키 아사코(鈴木麻子, 55)로, 그 역시 ‘중국파’로 통한다. 1987년 혼다에 입사한 스즈키 아사코는 해외 영업을 오래 했다. 2014년부터는 동풍혼다자동차유한공사(東風本田汽車有限公司) 총경리(사장)을 맡았다. 동풍혼다는 중국 동풍자동차그룹과의 합자회시다. 이처럼 중국 시장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출세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주류였던 ‘미국파’와의 대립과 갈등이 깊어졌다. 게다가 실적이 떨어지고 평균 연령이 높다는 점도 혼다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 “'기술 혼다'에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혼다가 5월 8일 발표한 2019년 3월기 결산 매출액은 전분기 대비 3.4% 증가한 15조 8886 억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영업 이익은 12.9% 감소한 7263억 엔으로 집계됐다. 영업 이익률은 4.6%로, 도요타(8.2%)나 경차 중심인 스즈키(8.4 %)보다 훨씬 낮았다. 혼다의 평균 연령은 45세로, 39세인 토요타보다 고령화 집단이다.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인 경제저널리스트 이노우에 히사오(井上久男)는 혼다의 이런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일본 시사매체 주간현대 6월 20일)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가 구축한 ‘기술의 혼다’에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本田宗一郎が築き上げた「技術のホンダ」に危機が忍び寄っている) <이재우 기자, 재팬올 발행인>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412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일본 재정운용에 ‘호네부타’(骨太)란 말이 왜?
호네부타(骨太) 방침은 2001년 고이즈미 내각 때 시행된 경제운용을 말한다. 2001년 고이즈미 정부의 경제운용 방침 ‘성역없는 구조 개혁’ 차원에서 시작 매년 6월 정부가 발표하는 정책의 뼈대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6월 21일 “일본 정부가 경제재정운영의 기본 방침(骨太の方針)과 성장전략을 각의결정 했다”고 보도했다. 각의결정의 핵심은 ᐅ10월 소비세율 인상(8%⤍10%) ᐅ30대 중반~40대 중반 취직빙하기 세대 3년간 집중지원 ᐅ최저임금 전국 평균 1000엔 조기 실현 등을 담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경제재정운영의 기본 방침’의 정의다. 이는 ‘성역없는 구조개혁’(聖域なき構造改革)을 실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으로, ‘호네부타의 방침’(骨太の方針)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그럼, 경제정책에 왜 ‘호네부타’라는 이상한 단어가 붙었을까. 호네부타는 한자 그대로 ‘뼈대가 굵다’는 뜻이다. 이 단어가 경제적 의미로 쓰인 것은 2001년 무렵이다. 그해 1월 자민당 내각 산하에 경제재정자문회의(経済財政諮問会議)가 설치되었다. 발족 초기는 모리 요시로(森喜朗) 정권 말기로, 자문회의는 거의 개점 휴업 상태였다. 당시 재무상은 오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재무성이 독점하던 예산편성권한에 내각이 관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그는 “‘뼈대 굵은 논의’(骨太な議論)라도 해보자”는 느긋한 자세였다. 그러다 3개월 뒤인 2001년 4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정권이 출범했다. 경제재정장관이 된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蔵)는 “뼈대 굵은 논의 즉, 호네부타 논의(骨太な議論)를 호네부타 방침(骨太の方針)으로 바꿔놓았다. 논의(議論)보다는 방침(方針)이라는 단어에 힘이 실린 셈이다. 그러면서 자문회의는 총리 주도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자문회의는 고이즈미의 노련한 정치수법과 맞아 떨어지면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총리가 의장을 맡고 각료와 민간인들이 참여했다. 경제재정자문회의에서는 매년 6월, 경제 정책과 재정 정책의 기둥이 되는 기본방침을 최종적으로 정했다. 이는 이듬해 정부의 예산 등 각종 정책에 반영됐다. 고이즈미 내각에서 비서관을 지낸 이이지마 오사오(飯島勲)는 ‘고이즈미 관저 비록’(小泉官邸秘録, 2006)이라는 책에서 고이즈미를 인용해 호네부타(骨太)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호네부타 방침’이라는 건 큰 우산과도 같다. 총론을 확실히 억제하여 그 아래에 각 부처의 개혁 프로그램을 통합한다. 그러면 모두 싫어도 개혁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骨太の方針というのは大きな傘みたいなもんだ。総論をしっかり抑えてその下に各省の改革プログラムを組み込んでいく。そうすればみんないやでも改革案を考えざるを得なくなる) 고이즈미 정부에서 자리잡은 '호네부타'는 아베 정부에서도 여전히 경제운용의 굵은 축을 담당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6월 22일 사설에서 “‘개혁 없이는 성장도 없다’라는 기치를 내건 고이즈미 정권 시절에는 매년 ‘호네부타 방침’에 포함시키는 시책과 관련해 각료와 민간 멤버들이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改革なくして成長なし」を掲げた小泉政権時代には、毎年度の「骨太の方針」に盛り込む施策について、閣僚や民間メンバーが激しい議論を闘わせた)고 했다. <김재현 기자>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411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야쿠시마 사진전'에서 만난 현지 호텔리어
야쿠시마 산카라(SANKARA) 호텔의 전경. \ 우치무라 총지배인의 삼나무 명함. 6월 5일, 재팬올의 야쿠시마 사진전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야쿠시마 산카라(SANKARA:sankara hotel & spa 야쿠시마) 호텔의 우치무라 토모야(38, 內村 友也) 총지배인(General manager)이다. # 오사카 출신의 30대 호텔리어 건장한 체격에 오사카 출신인 우치무라 총지배인은 30대임에도 야쿠시마(가고시마현) 현지의 특1급 호텔을 책임지는 자리를 맡고 있다. 오사카에 이어 야쿠시마에서의 호텔리어 경력은 10년 째다. 총지배인이 된 지는 4년이 넘었다. 그는 야쿠시마관광협회(屋久島観光協会)의 이사도 겸하고 있다. # 지난해 야쿠시마 현지에서 만나 비즈니스 일정으로 서울을 방문했던 우치무라 총지배인은 스토리투어의 조현제 대표에게 “서울에서 야쿠시마 사진전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전시장을 방문했다. 우치무라 총지배인과는 구면이다. 지난해 6월 야쿠시마 현지를 취재했을 때, 그를 만나 야쿠시마 현지 정보를 다양하게 들을 수 있었다. # “야쿠시마를 사랑하는 남자” 그는 당시 기자에게 “세계자연유산인 야쿠시마의 멋진 자연, 공기, 물의 상쾌함에 매료돼, 마음 깊숙이 야쿠시마를 사랑하고 있다”(世界自然遺産『屋久島』の自然と空気と水の 素晴らしさに魅了され、心から屋久島を愛する男。)고 말했었다. 또 “세계 각국에 야쿠시마의 매력을 전하는 영업을 누비고 있다”(世界各国に屋久島の魅力を伝えに営業に飛び回っている。)고 했다. 우치무라씨가 총지배인을 맡고 있는 산카라호텔(3만㎡ 부지)은 야쿠시마의 럭셔리 리조트호텔로 유명하다. 이름이 좀 특이하다고 느낄 것이다. ‘산카라’라는 이름은 ‘하늘의 은혜’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야쿠시마 남동부에 위치한 산카라호텔은 울창한 숲으로 우거진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호텔 로비와 풀장에서 바라보는 동지나해의 풍광이 장관이다. #호텔 이름은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 호텔 객실(29동)은 빌라 형식의 독채로 구성되어 있어서 젊은 연인들이나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는다. 로비와 객실 간 이동은 직원이 카트를 운전하며 서비스하는데, 일본 특유의 오모테나시(접대)를 받는 기분이 든다. 호텔 레스토랑(ayana와 okas)의 맛과 수준도 꽤 높다. # 삼나무 명함으로 지역 홍보 우치무라 총지배인은 두 가지 명함을 갖고 다닌다. 일반 명함과 삼나무로 된 명함이다. ‘원령공주의 섬’의 야쿠시마는 삼나무('야쿠스기'라고 부름)가 유명한데, 이런 삼나무 명함을 갖고 다니면서 지역을 홍보하는 것이다. 지난해 산카라호텔에서도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이번 전시회에 내걸지는 못했다. 우치무라 총지배인은 전시회 방문 자리에서 “현지의 사진을 서울에서 감상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방명록에 적었다. 전시회를 마치고 그날 밤 늦게 우치무라 일행과 다시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이재우 기자, 재팬올 발행인>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404 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