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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위의 세계> 정영문
<어떤 작위의 세계> / 정영문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어떤 작위의 세계>. 처음 읽어보는 정영문 작가의 소설인데 읽기 쉬운 소설은 아니었으나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읽었으며 어딘가에서 책 제목을 들어본 듯한 느낌에 기억을 되짚어보니 민음사 유튜브에서 편집자가 추천하는 책으로 꼽았던 기억이 났고, 혹시 내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던 그 기억이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나를 조종해 제주도의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 들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어찌 됐든 읽는 동안 즐거웠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소설이니 이 책을 읽은 것이 무의식이 날 조종한 결과이든 아니든 별 상관은 없다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 책에는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것처럼 길게 이어지는 문장들이 가득한데 어떤 것은 두세 줄에서 끝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한 문단 전체가 한 문장으로 이루어지기도 하며 어떤 경우는 거의 한 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 한 문장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기에 분명히 한 문장을 읽고 있음에도 문장의 끝 부분쯤에 가서는 문장의 앞부분이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문장의 앞부분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 만큼, 이 소설이 읽기 쉬운 소설이라고는 쉽게 말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읽기 엄청나게 어렵다고 할 수도 없기에 읽기 어렵긴 하지만 엄청나게 어렵지는 않은 그런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소설의 서사(사실 서사나 플롯이라고 할만한 것이 있는지도 의문이 들곤 했다)보다는 작가가 왜 이런 두서없고 난잡하고 흐름이 이어지지 않는 생각들을 이토록 길고 지난한 문장들로 표현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는데, 그것은 곧 인간이 그러한 존재라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그 생각은 꽤나 그럴듯한 생각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인간이 애초에 어떤 합리적인 존재 이유를 가지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므로 인간의 생각이 두서없고 합리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으로 느껴졌고, 그렇기에 인간이 하는 생각을 그대로 글로 옮긴 이 소설이 이토록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고 그 어떤 질서도 엿보이지 않는 문장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고 생각했고, 인간의 그러한 사고 과정을 그대로 투영한 이 소설은 곧 인간의 존재 자체가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고 어떤 근거도 없다는 사실을 인간의 사고 과정의 언어화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게 만들었다. 이렇듯 인간이 비합리적이고 근거 없이 존재하는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인간은 사는 것과 죽는 것 중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에게 계속해서 주어지는 무료한 시간들을 두려워하고 도대체 어떻게 그 시간들을 보내야 맞는 것인지 알지 못해 괴로워하는데, 그 두려움과 괴로움을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의미하다는 관점에서 보면 그가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는 사실, 자신의 삶 전체가 커다란 무의미이자 자신이 죽어도 상관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가져오는 지극히 당연한 감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행위로 주인공은 글쓰기, 소설 쓰기를 택하는 것으로 내게는 생각되었는데, 재밌는 것은 왜 그토록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이 계속해서 글을 쓰는지 주인공은 그 이유를 모르고 있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글을 쓴다는 것이며, 나는 이러한 주인공의 모습이 사르트르의 <구토>에 나오는 로캉탱과 겹쳐 보였는데,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로캉탱은 소설을 쓰는 것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한 시도임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어떤 작위의 세계>의 주인공은 그러한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고, 나는 이 주인공을 약간 아둔한 로캉탱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 더 재미있었던 것은 이 소설에 정어리라는 단어가 꽤나 자주 등장한다는 것인데 이 소설을 읽는 중 정어리라는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계기인 민음사 유튜브에서 이 책을 추천한 편집자의 별명이 정어리라는 사실, 그리고 그 편집자가 정영문 작가의 소설 쓰기 수업을 들었다는 사실이 생각나며 어쩌면 정영문 작가는 예전에 자신의 소설 수업을 들었으며 지금은 편집자가 된 그 사람의 별명이 정어리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성이 정인 그 사람의 별명이 정어리라는 것이 어린 시절 유치하게 이름으로 별명을 짓던 때를 떠올리게 해 그 별명이 머릿속에 깊게 남았고, 심지어 자신의 이름도 정영문이니 어린 시절 자신 몰래 자신을 정어리라고 놀리던 아이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고, 그것이 정영문 작가에게 그 편집자와의 동질감을 느끼게 만드는 바람에 정어리라는 단어가 이토록 자주 소설에 등장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책을 읽다 가끔씩 하게 되었고 그 바람에 책을 읽는 데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쓸데없는 생각은 그렇게 재미있지 않은 것 같고 그렇다고 재미가 아예 없지는 않으니 조금 재미없었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기도 하다. (이 리뷰는 <어떤 작위의 세계>를 보고 영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소설 속 한 문장 결국 나는 아무런 느낌도 일으키지 않는, 다시 말해 막막함과 불편함을 절감할 정도로만 느낌을 불러일으킬 뿐, 다른 느낌은 주지 않는 요세미티의 풍경을 보며, 그것이 얼마나 마음을 끌지 않는지를 절감했고, 돌멩이 몇 개를 비탈을 굴러가게 하면 막막하고 불편한 기분이 사라질 것 같았지만 적당한 장소를 찾을 수 없었고, 그래서 막막함과 불편함을 느끼며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글쓰는 습관을 기르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은 책
글의 정의를 넓혀 생각하면 우리 모두는, 누구나 제법 오랜 시간, 많은 글을 써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숙제처럼 매일 써야 했던 일기나 교과서나 참고서 내용을 베껴 적었던 과정 모두가사실은 글쓰기라는 거죠.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히 납득할만한 글을 썼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모두가 글을 쓰지는 않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생각을 갖고 있고 표현하고자 하는 바람을 품고 살아 갑니다. 글 쓰는 습관을 만들고 싶은 분들을 위한 책을 소개합니다. 뭔가를 시작하려고 할 때 꼭 장비와 도구를 먼저 갖추어 준비가 완벽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때가 있습니다. 물론 준비는 필요합니다만 모든 게 준비되지 않았다고 해서 무한히 유예하는 게 좋은 습관은 아니죠. 글쓰기도 그렇습니다.  이 책은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고 글 쓰는 기술 혹은 요령을 배우려고 하거나 다른 사람의 흉내 내기를 시도하다 지쳐서 그만두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잘 쓰려고 욕심부리기 보다 매일 그냥 쓰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자기 글을 알아가라고 하죠.  자신에게 엄격한 글, 더 완벽한 글을 쓰려다 보면 글쓰기는 재미 없고 힘든 일이 되어 버립니다. 재미도 즐거움도 없이 억지로 쓴 글은 읽는 이에게도 비슷하게 읽히기 마련이고요. 노력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노력만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보다 오래, 멀리 가기 어렵다는 사실, 잊지 마세요. 날마다! 그냥!! 이라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어떨까요? 날마다 그냥 쓰면 된다 자세히 보기 >> https://goo.gl/s2yDzC 어린 시절 잠이 들라치면 어머니는 “일기는 썼니?”하고 묻곤 하셨습니다. 부랴부랴 엎드려 몇 줄 적다 잠든 날도 많았죠.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일기는 하루를 마치고 잠들기 전에 쓰는 게 당연하다고 말이죠.  이 책은 일기는 밤이 아니라 아침에 쓰는 거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루에 활력을 더하고, 희망을 불어넣을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는 거죠. 예를 들어 오늘 중요한 발표가 있다고 하면 불안과 기대가 복잡하게 얽힌 아침일 겁니다. 아침 일기가 도움이 되는 건 바로 그 순간입니다.  머리 속으로 생각하던 불안함이 글로 실체를 보이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게 됩니다. 몰라서 생긴 불안이 해소되는 순간이죠. 희망과 기대를 적음으로써 용기를 북돋을 수도 있습니다. 어제 속 상했던 일이 아침에 보니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고 웃게 되기도 하죠. 복잡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 시작해보세요. 아침 일기. 하루 5분 아침 일기 자세히 보기 >> https://goo.gl/2dZn5R 많은 작가와 더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습관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필사’죠. 수업 시간에 선생님, 교수님의 말을 받아 적거나 필사하듯, 인상 깊고 완성도 높은 작가의 문장을 따라 쓰면서 자신의 문장을 단련 하는 과정을 거치는 겁니다.  이 책은 좋은 문장을 쓰고 싶지만 처음이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베껴쓰기를 소개합니다. 베껴쓰는 과정을 통해 문장과 단어, 조사 등 요소에 대한 이해와 활용을 배우는 거죠.  문장은 쇠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쇠를 달구고 두드리기를 계속해서 단단하게 단련하듯 단련할 수록 좋아진다는 거죠.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가 같은 쇠로 다양한 연장을 만들어내듯 글쓰기도 꾸준한 연습과 단련으로 능숙해질 수 있습니다. 베껴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 자세히 보기 >> https://goo.gl/ctsdQs 글쓰기는 읽기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읽다 보니 쓰고 싶고, 쓰려니 더 읽게 되는 효과가 생기는 거죠. 그런데 우리의 기억력에는 유통 기한이 있습니다. 오늘 읽은 문장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이 내일까지 남아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죠.  이 책은 읽기의 연장이자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쓰기, 그 안에서도 서평 쓰는 방법을 이야기 합니다. 서평이란 무엇이며, 왜 쓰는지를 짚어보고 쓰는 연습으로 나아가게 하는 거죠.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과 의문에 논리적으로 묻고 답할 수도 있고, 자기만의 결론을 내고 결론을 뒷받침할 생각을 구체화할 수도 있습니다.  서평에는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같은 책을 읽고도 다른 결론에 닿을 수 있기에 생각의 변화나 내면의 성장을 확인하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으니까요. 기록은 단순한 과거가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입니다. 서평 쓰는 법 자세히 보기 >> https://goo.gl/N9r3QV 글을 쓰다 보면 욕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얼마간의 재능이 있고, 글 쓰는 게 즐거울 때 욕심이 커지죠. 하지만 전업 작가로서의 삶은 만만하지 않다고 합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생계가 되고, 일이 되면 대하는 마음이 변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 책은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 밥벌이로써 글을 쓰는 작가들의 경험을 담고 있습니다. 예상하고 계신 것처럼 “책을 썼더니 처음부터 잘 팔렸다, 당신도 열심히 써서 나처럼 되길 바란다.”같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어려움과 위기, 계속 써나가는 고충과 같은 냉엄한 현실이 있죠.  글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 작가는 예술인 중에서도 몹시 가난한 축에 든다고 합니다. 좋아하고, 계속 하고 싶어도 현실과 이상 사이에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죠. 그럼에도 쓰고 싶다면 꼭 도전하시길 응원합니다. 그 모든 과정이 또 다른 이야기가 되어 이어지고 전해질 테니까요. 밥벌이로써의 글쓰기 자세히 보기 >> https://goo.gl/1pMv24 글을 쓰는 데는 많은 도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펜과 종이, 스마트 폰 메모장이나 글쓰기 앱, 공간과 방법은 얼마든지 있죠. 습관이 된다는 건 부담 없이, 꾸준히 해나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부터 장편 소설을 쓸 생각이 아니라면 짧은 낙서, 일상의 기록을 남기는 일에서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정기배송 자세히 보기 >> https://goo.gl/BjCm9p
[책추천] 내 책을 쓰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은 책
안녕하세요! 책과 더 가까워지는 곳 플라이 북입니다. 여러분은 독서를 하다 나의 이야기 혹은 나의 상상 속 이야기를 써본 적이 있으신가요? 대화가 아닌 책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며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때가  있었다면 도움이 될 수 있는 5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막연한 독립출판을 마음먹고 준비해 보려는 이에게 5년간 1인 출판사를 운영하며 배운 것들을 공유하는 책 책만들기 어떻게 시작할까 이정하 지음ㅣ 스토리닷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2OWRRw2 글쓰기는 곧 자기 생각을 번역해 내는 일이다? 따라 하기 쉽게, 친절하고 세심하게 안내하는 책 열 문장 쓰는 법 김정선 지음ㅣ 유유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39wWqqt 나만의 책은 만들고 싶은데, 경험이 없어 두려울 때 기초에 관한 이해와 더불어 자신감도 담뿍 얻을 책 시작, 책 만들기 김은영, 김경아 지음ㅣ 안그라픽스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2X1nCJ3 우연히 알게 된 독립출판에 관심이 깊어지고 있을 때 들어볼 만한, 자신의 책을 세상에 내 본 이들의 이야기 우리, 독립출판 편집부 지음ㅣ 북노마드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2BxXzBH 짧든 길든, 오늘도 끄적끄적 무언갈 쓰고 있는 이에게 그간 쓴 글을 돌아보게도 하고, 또 연이어 쓰게 하는 책 당신의 글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강준서 외 6명 지음ㅣ 디자인 이음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2WZvwT1 책과 더 가까워지는 곳 플라이북 👉 https://bit.ly/3g1K5x6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신형철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문장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슬픔을 공부하는 사람이 느끼는 슬픔을 의미하기도 하고 슬픔이라는 존재가 슬픔에 대해 공부하는 행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나의 가정이 있다면 두 가지 의미는 하나로 합치될 수 있다. 이 책의 후반부를 읽어갈 때쯤이면 그 가정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신형철 평론가가 시, 소설, 에세이, 영화, 음악, 사회의 여러 가지 사건 등에 대해 써 내려간 글이다. 우리가 문학 평론가에게 기대하는 시와 소설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 한 움큼, 사회의 여러 사건들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인 의견 한 움큼, 작가가 좋아하는 영화와 책, 음악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 한 움큼, 주변인들에 대한 사랑과 타인의 슬픔에 대한 애도 한 움큼. 에세이 같기도 하고 평론집 같기도 한 이 한 권의 책으로 신형철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엿볼 수 있다. 이 시대 가장 유명한 평론가 중 한 명인만큼 기대했던 대로, 아니 그보다 더 글을 잘 쓴다. 시나 소설에 대한 평론, 묵직한 사회적 사건들에 대한 담론을 다루면서도 글이 딱딱하지 않고 맛이 산다. 문학동네에서 진행하는 팟캐스트, 문학이야기에서 조곤조곤 책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마치 그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그가 내 옆에서 책의 내용을 읽어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표시해놓은 인상적인 부분을 되짚어보니 무려 스무 곳이 넘었다. 평소 책에 잘 표시를 하지 않는 나로서는 과도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숫자다. 그만큼 이 책에는 내게 인상적인 문장과 사유가 많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줄곧 슬픔에 대해 다룬다. 책에 나오는 슬픔에 대한 여러 문장들 중 내가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문장은 이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이 책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다. 여기서 공부되는 슬픔은 자신이 아닌 타인의 슬픔이다. 자신의 슬픔에는 누구나 민감하고 예민하다. 그러나 타인의 슬픔에 예민하고 민감해지는 것은, 그리고 그것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애도하는 것은 공부해야만 하고 또 공부되어야만 한다고 이 책은 말한다. 그것이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이며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계속해서 슬픔을 들쑤신다. 세월호나 용산 참사, 천안함 사건과 같은 슬픔이라는 단어와 동치 될 법한 일들, 누군가 깊은 슬픔을 겪을 수밖에 없는 성소수자에 대한 시각, 슬픔을 논하는 시와 소설과 영화와 음악들까지.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내가 아닌 타인의 슬픔을 읽고 목격하고 듣는다. 그렇게 우리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통해서 타인의 슬픔을 공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배우고 또 연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무도 타인의 슬픔을 공부하지 않는 세상은 어떻게 될까. 타인의 슬픔이 없는 세상에는 사랑도, 배려도, 공감도 없다. 사랑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슬프지 않게 하는 것에서, 배려는 다른 이들이 슬픔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공감은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적이라고 말하는 그것들은 타인의 슬픔에 대한 공부 위에 세워져 있다. 슬픔을 공부해야만 비로소 인간적인 삶을 사는 인간이 될 수 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의 두 가지 뜻이 하나로 합치되도록 만드는 가정은 이것이다. [인간 = 슬픔]. 사실 인간이 곧 슬픔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고민할 수 있는 지능을 가졌으나 그 답을 알지 못한다. 영원히 찾을 수 없는 답을 갈구하는 존재란 얼마나 슬픈가. 책 속 한 문장 그러므로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책, 이게 뭐라고> / 장강명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책, 이게 뭐라고 팟캐스트를 열심히 들었던 사람으로서 이 책을 안 읽을 수는 없었다. 뭔가 필수코스 같은 느낌이랄까. 한 챕터씩 읽어나갈 때마다 들었던 팟캐스트들이 떠올랐다. 유튜브로 바뀌어버린 지금의 책, 이게 뭐라고 가 아쉬울 뿐이다. 책, 이게 뭐라고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진득하니 1시간가량 들어줘야 제맛인데 말이다. 이 에세이에는 장강명 작가님이 책, 이게 뭐라고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고민했던 생각들이 담겨있다. 짧은 에피소드? 챕터? 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에피소드의 제목들이 전부 좋았다. 가장 좋았던 제목은 "단 한 사람의 독자와 죽음을 기다리는 병든 짐승"이었다. 모든 제목들이 이처럼 연관성을 생각하기 힘든 두 문장의 연결로 이루어져 있다. 두 문장의 연관성을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에서 찾아내는 장강명 작가님의 시각이 돋보이게 만드는 좋은 제목들이었다.(한 에피소드씩 읽어나갈 때마다 이번 제목이 의미하는 건 뭘까 하는 궁금증이 치솟는 바람에 자기 전에 읽을 때는 일부러 다음 에피소드 제목을 읽지 않고 책을 덮었다. 제목을 보면 그 챕터를 안 읽고는 잘 수가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위에서 말한 "단 한 사람의 독자와 죽음을 기다리는 병든 짐승"의 연관성이 궁금하시다면...... <책, 이게 뭐라고>를 읽어보시길 바란다.) <책, 이게 뭐라고>에서 지속적으로 나오는 세계관이 있다. 말하고 듣는 세계와 읽고 쓰는 세계다.(마블 유니버스나 하하 유니버스 같은 세계관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말하고 듣는 세계는 일시적이고 짧으며 읽고 쓰는 세계는 지속적이고 길다. 장강명 작가님은 이 두 세계가 적절히 공존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세계는 점점 말하고 듣는 세계로 가고 있다. 읽고 쓰는 세계는 점점 말하고 듣는 세계에 자리를 내주는 중이다. 말하고 듣는 세계를 대표하는 유튜브만 봐도 그렇다. 유튜브는 점점 더 커지고 있고 심지어 이제는 모든 검색을 유튜브에서 하는 시대가 되었다. 유튜브 영상은 점점 더 짧아지고 일시적이 되어 간다. 10분 이상의 동영상에만 달리던 광고는 이제 8분만 넘어도 달 수 있게 되었다. 유튜브에서 길고 진지하게 한 사건의 처음부터 끝을 전부 다루는 영상은 인기가 없다. 사건의 핵심, 예를 들면 어딘가의 모 중학교에서 집단 왕따로 인한 자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1분 내외로 짧게 말해주는 영상의 인기가 훨씬 높다. 거기에는 피해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 안타까운 일이 정확히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그 대처법과 해결방안은 제대로 모색되고 진행되었는지,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은 들어 있지 않다. 단지 집단 왕따로 피해자가 자살했다는 거짓은 아닌 정보만 들어있을 뿐이다. 이 안타까운 사건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얽혀 있을 테지만 유튜브를 보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고 댓글창은 전쟁터가 된다. 그러나 읽고 쓰는 세계에서는 다르다. 앞에서 말한 가상의 왕따 사건에 대한 르포가 나온다면 거기에는 온갖 것들이 담겨있을 것이다. 거의 모든 관련 인물들의 인터뷰와 사건의 진행 경위, 다양한 시각의 전문가들의 사건에 대한 의견, 이외에 다른 왕따 사건들에 대한 예시와 여러 다양한 주장으로부터 비롯한 해결방안들까지. 이 르포를 읽는 것이 왕따 사건에 대해 훨씬 제대로 이해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방법이란 사실은 자명하다. 그러나 이 르포가 나올 때쯤 사람들은 이미 다른 일에 열을 올리고 있을 것이다. 르포가 아무리 빨리 나오더라도 적어도 사건의 시작으로부터 몇 년은 걸릴 테니 말이다. 이렇게 읽고 쓰는 세계는 말하고 듣는 세계와의 경쟁에서 패하고 만다. 읽고 쓰는 세계가 더 우월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말하고 듣는 세계와 읽고 쓰는 세계는 양쪽이 모두 중요하다. 말하고 듣는 세계에서는 즉각적이고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읽고 쓰는 세계에서는 깊이 있는 생각과 일관되고 설득력 있는 논리 체계를 마주할 수 있다. 문제는 세계가 점점 한쪽으로 쏠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빠르게 세상의 정보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얻은 정보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말하고 듣는 세계가 읽고 쓰는 세계를 완전히 장악하는 순간, 세상은 스쳐 지나가는 온갖 정보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기를 포기하고 말 것이다. 읽고 쓰는 세계를 좋아한다. 물론, 말하고 듣는 세계도 좋아한다. 둘 다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튜브만 보면 생각하지 않게 될 것이고 책만 읽으면 세상의 변화에 뒤쳐진 외골수가 될 것이다. 나는 책도 읽고 유튜브도 보고 싶다. 그러니 지금은 약해진 읽고 쓰는 세계에 조금 더 애정을 기울여야겠다. 어느 한쪽이 없어지지 않도록. 책 속 한 문장 그런 동영상들을 보면 털이 다 빠져 맨 가죽과 그 아래 앙상한 뼈를 드러낸 채 쓰러져 죽음을 기다리는 병든 짐승의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