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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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 인테리어 돈이모이는 집!
풍수에서는 운을 불러들이는 데 집이나 가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돈이 모이는 집이 있는 반면 있는 돈이 금방 없어져버리는 집이 있다는 것. 금전운이 높아지는 풍수 인테리어를 배워보자. ✔ 부자가 되는 집 꾸미기 1. 현관은 밝고 깨끗하게 현관에 우산꽂이, 구둣주걱, 쓰레기, 헌책 등을 두지 말고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해둔다. 매일 물청소를 해서 깨끗하게 만들고 조명은 밝게 설치한다. 2. 북쪽에 진한 색상의 가구를 둔다. 예금통장이나 인감, 자주 사용하지 않는 중요한 물건을 보관하는 곳으로 북쪽을 택하면 좋다. 진한 색상의 서랍장이나 금고 등을 놓아두고 현금이나 귀금속 등을 보관하면 집안의 금전운이 높아진다. 3. 동남쪽에 연녹색의 물건을 놓아둔다. 녹색은 긴장을 풀어주고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색상. 동남쪽의 연녹색은 인간관계를 좋아지게 하고 금전운도 높여준다. 4. 서쪽에는 흰색이나 진노란색의 물건을 놓아둔다. 서쪽 벽면에 노란색 벽지를 도배하는 것도 좋다. 금전운을 상징하는 황금색이나 진노란색 계통의 패브릭을 이용한 침구나 쿠션 등을 적극 활용해볼 것! ✔ 돈이 모이는 집 꾸미기 5. 북동쪽에는 무늬 없는 백색 도자기나 흰색 가구를 북동쪽은 집안에 운이 머무는 중요한 곳. 지저분하게 물건을 늘어놓지 말고 정갈하게 꾸민다. 이곳에 수납장이 있다면 안까지 신경 써서 깔끔하게 정돈한다. 6. 창 쪽으로 머리를 두고 잔다. 좋은 기운은 잠잘 때 몸속으로 들어온다. 밖에서 들어오는 자연 에너지와 금전운을 듬뿍 받으려면 침대 헤드를 창 쪽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 좋다. 침대 옆에는 작은 스탠드를 항상 켜둔다. 7. 자주 환기하여 집안에 상쾌한 기운이 감돌도록 한다. 집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침체된 공기는 얼른 밖으로 빼주어야 한다. 또한 밖에서 들어오는 좋은 기운을 가득 받아들이기 위해서도 환기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 돈이 솔솔 새나가는 집은? 01. 현관이 어둡고 지저분하다. 02. 주방 가스레인지에는 국물이 얼룩져 있다. 03. 주방 가구의 문이 삐걱거리거나 잘 여닫히지 않는다. 04. 주방이나 식당이 온갖 잡동사니들로 채워져 있어 시장바닥을 연상케 하고 개수대에는 항상 먹다버린 음식찌꺼기가 남아 있다. 05. 환기가 잘되지 않아 퀴퀴한 냄새가 난다. 06. 화장실 타일이나 욕조, 세면기 등에 더러운 얼룩이 잔뜩 묻어 있고, 배수가 잘 안되어 불쾌한 냄새가 가득 차 있다. 07. 침실 창가에 온갖 물건들이 쌓여 있다. 08. 침대나 장롱 등 사람보다 물건이 돋보이는 침실은 명예나 진로에도 흉하게 작용한다. 09. 잠잘 때 머리 부근에 불필요한 물건들로 가득 채워놓는다. 10. 침실천장의 조명을 깨진 채로 두거나 전구가 끊어진 채로 둔다. ----------------------------------------- [#세모인] 카톡친구하기 -> https://goo.gl/hndtKG ----------------------------------------- 세모인 인기게시물 보러가기↘️↘️팔로우➕
풍수지리, 도강김공(기술) 묘소
김기술(金箕述) 1849년(헌종 15)∼1929년. 일제강점기 유생‧의병. 자는 정범(正範), 호는 국헌(菊軒)이며, 본관은 도강(道康)이다. 전라북도 태인(泰仁) 고현내(古縣內: 지금의 정읍시 칠보면)에서 출생하였다. 조선 개국원종일등공신(開國原從一等功臣) 충민공(忠敏公) 김회련(金懷鍊)의 후손으로, 부친 동몽교관(童蒙敎官) 김영석(金永碩)과 모친 수원백씨(水原白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성품이 강의(剛毅)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 봉양에 지성을 다 바쳤다.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이며,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났을 때 반동학군(反東學軍)으로 활약하였다. 1906년 을사보호조약에 항거하여 담양(潭陽) 용추사(龍湫寺)에서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등 호남 유생의 거의동맹(擧義同盟)에 가입, 면암 최익현 선생의 무성창의(武成倡義)에 참여하여 우익장(右翼將) 직책으로 정읍(井邑) 무성서원을 출발한 뒤, 순창(淳昌)에 이르러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그는 이때 스승을 끝까지 지킨 12 명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2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고 태형(笞刑) 1백대를 맞고 풀려났다. 의병활동 관련하여 『창의일기(倡義日記)』가 전한다. 아들은 김운(金熉)과 김환종(金煥鍾)이 있다. 묘지는 전라북도 정읍시(井邑市) 칠보면(七寶面) 지채동(池釵洞) 선산 아버지 묘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1975년 시산사(詩山祠: 현재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 산 4번지에 소재)에 배향되었다. 초상화는 석지 채용신의 작품 [네이버 지도]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산68-3 http://naver.me/xTrycdc2 右旋水,水局辰破口,正養向,貴人禄馬上御街,乾亥(水局官方)得水,丁未(水局養方),巽巳方(水局絕方)破水,丑坐未向,官來養絕,萬水盡從天上去,群龍皆向地中行。(40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