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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에서 정우영에게 새롭게 테스트하고 있는 롤
U20 월드컵에서 봤으면 좋았으련만 뮌헨 B팀 소속인 정우영은 팀이 4부 리그에서 우승을 하며 승강전때문에 팀에 남게 됐습니다. 우승을 확정했지만 마지막 경기에도 정우영은 선발이었습니다. 인상적이었던건 정우영이 롤 변화였습니다. 후반전 연달아 2골을 먹히자 정우영의 롤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당초 오른쪽 윙으로 나왔던 정우영은 좀 더 후방으로 내려와 빌드업을 돕고 경기를 조율하는 흡사 플레이메이킹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건 정우영의 활동폭이었습니다. 위치상 4231에서 3의 중앙 공미였지만 좌우 가리지 않고 움직이면서 빌드업부터 경기 조율까지 섭렵하더군요. 사실상 프리롤에 가까웠어요. 아무래도 정우영이 오프더볼도 좋다보니 프리롤로 놔둬도 위협적인 위치에 가있더군요. 그러다보니 떨어지는 볼에 기회가 찾아오기도 했고 골까지 기록했죠. 흡사 국대에서의 박지성을 보는거 같았어요. 박지성도 운이 좋아보이지만 기가막힌 위치선정 능력이 있었죠. 정우영도 꽤 유사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아무래도 정우영이 오프더볼도 좋고 볼간수도 잘하다보니 B팀에서 프리롤에 플레이메이킹도 시험한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그것도 곧잘 하더라구요 아니 근데 이렇게 되면 차세대 국대에 플레이메이킹 되는 선수만 몇명입니까 ㄷㄷ 흥민이는 이제 말년에 꿀패스들 많이 먹을 수 있는겁니까??ㅋㅋㅋㅋㅋㅋ
[상식축구]구자철 국가대표 은퇴,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 줄 알았다
(A매치 76경기 19골, 13번 구자철, 사진=FC아우크스부르크 페이스북 페이지)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 상대는 일본이었다. 의미가 남달랐던 경기. 상대가 일본이라 질 수 없었고, 동메달을 따면 군 면제기 때문에 질 수 없었다. 이 날 경기로 인해 모든 국민들의 머릿속에 '구자철'이라는 이름 석 자가 새겨졌다. 당시 주장으로 맹활약하면서 차기 한국 축구 대표팀의 캡틴으로 주목받았다. 절친 기성용과 소셜 미디어에서 장난, 다툼을 벌이며 화제가 됐었고 오글거리는 글을 쓰고 말을 하면서 오글거리는 구자철 이른바 '구글거림'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내가 구자철 관련 글을 쓰는 이유는 나와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공감하기 싫겠지만 닮았다. 정말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어봤다. 구자철이 유명해지면서 나의 소셜 미디어에 올린 내 셀카는 구자철을 닮았다는 댓글로 가득했다. 이때부터 구자철의 활약은 곧 나의 기쁨이자 자랑이 되었다. 아시안컵이 끝난 지금, 그리고 국가대표팀 은퇴를 밝히고 흐른 3일. 이제서야 구자철 헌정 글을 쓴다. 구자철의 등장 (구자철의 대표 사진, "Why? Why?", 사진=SBS 화면 캡처) 2008년 동아시안컵으로 A매치 데뷔 전을 치렀다. 구자철은 연령별 대표팀에 차출되면서 대표팀 선수로서 성장하고 있었고 2009년 수원컵 국제 청소년 축구 대회에선 주장 완장을 차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재능과 리더십을 겸비한 선수라는 것을 입증했다. 2010년 1월, 잠비아와의 평가전에서 A매치 첫골을 터트렸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으로 승선할 수도 있었으나 최종 명단에서 탈락하며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절치부심하여 2011년 아시안컵 조광래호에 승선하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대회에서 5골을 기록하면서 득점 왕에 선정됐고 이는 유럽 진출의 발판이 됐다. 구자철의 진가는 올림픽에서도 이어졌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대표팀 스쿼드에 포함, 주장으로 선임되며 한국을 올림픽 3위로 올려놓는데 큰 기여를 했다. 당시 일본과의 3위 결정전에서 'Why? Why?"를 외쳤던 장면은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 그때 보여준 구자철의 퍼포먼스는 아직도 회자된다. 구자철의 부진 (한창 주가를 올리던 구자철은 부담감으로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사진=KFA) 구자철이 한창 대표팀에서 날뛰고 있었을 때는 '제로톱'의 시대였다. 스페인 대표팀이 파브레가스를 제로톱의 정점으로 활용하면서 재미를 봤었다. 이에 한국도 구자철을 제로톱으로 활용하면서 전술을 구상했다. 하지만 주장이라는 부담감과 부상들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주장으로 활약했고 그 이후로도 주장 완장을 찼지만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2015 아시안컵에선 조별 리그에서 팔꿈치 인대 부상을 당해 소속팀으로 조기 복귀했다. 소속팀 마인츠에서도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던 점도 구자철의 기량 저하의 원인이 됐다. 결국, 구자철은 주장 완장은 기성용에게 넘겨주면서 주장직을 내려놓았다. 이 시기부터 구자철에 대한 비난 여론이 형성됐다. 대표팀에서 하는 게 뭐냐, 너무 흐름을 끊는 것 아니냐, 유리몸 아니냐 등의 여론이 형성됐다. 나도 여론에 휩쓸리면서 나와 닮은, 소울메이트 구자철을 실드 해주지 못하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본인도 여론을 잘 알고 있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때문에 이번 아시안컵은 출전하고 싶지 않았다. 대표팀 차출을 고사했지만 벤투 감독의 설득 끝에 대표팀에 합류하게 됐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구자철에 대한 비난은 끝나지 않았다. 끝내, 구자철은 국가대표팀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구자철,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 줄 알았다 (누가 구자철인지 상식축구인지 모르겠다(?), 사진=구자철 인스타그램, 상식축구) 그렇게 비난, 비판하고 그랬는데 막상 은퇴를 한다고 하니까 시원섭섭하면서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됐다. 있을 때 잘할걸. 왜 적극적으로 커버 쳐 주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맴돈다. 구자철은 대표팀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2019 아시안컵 차출을 고사했다. 어쩔 수 없이 대표팀에 합류했고 경기를 뛰었다. 벤투 감독의 요청으로 왔다가 괜히 욕만 먹은 셈이 됐다. 정말 억울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나는 대표팀이 구자철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좀 더 공격적으로 활용했으면 어땠을까. 마치 세컨드 스트라이커처럼 페널티 아크 부분에서 적극적으로 슈팅을 때리도록 지시했다면 구자철의 능력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국가대표팀은 너무 패스 패스를 해서 구자철과는 맞지 않아 보였다. 구자철은 근처 상대방의 움직임을 보면서 타이밍을 잡아 탈압박 하는 선수다. 그리고 그의 강점은 슈팅이다. 패스를 시키기엔 투박하다. 차라리 탑에서 연계하는 플레이를 주문했다면 좋았을 텐데. 결론적으로는 대표팀에서 구자철의 자리는 없었던 것이다. 잦은 부상, 치료, 회복. 무릎에 물이 차서 주사기로 그 물을 뺏다고 하던데. 나는 한 번도 안 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얼마나 고생했을까. 많은 부담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대표팀에 와서 열심히 뛰려고 했던 구자철. 고생만 주야장천하고 싫은 소리 다 들으면서 아무 소리 안 했던 구자철. 똑같은 비판, 비난한 사람이라서 미안하고 미안하다.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하는 나 자신이 밉다. 왜 그땐 지켜주지 못했는지. 꽃이 지고 나서야 그게 봄인 줄 알았다. (아우크스부르크 경기 후 구자철과, 사진=상식축구) 나는 2015년 말에 독일로 교환학생을 갔다. 분데스리가를 보고 싶었고 한국 축구 선수들을 만나고 싶었다. 내가 있던 곳은 하이덴하임이었는데 전철로 2시간이면 아우크스부르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티켓값도 그렇게 비싸지 않았고 경기장 맨 앞자리를 쉽게 예매할 수 있었다. 그래서 3개월 동안 아우크스부르크 홈경기를 3번 직관했다. 그는 매번 볼 때마다 친절하게 사진을 찍어줬다. 독일로 여행을 온 한국 국민들 한 명 한 명 모두 사진을 찍어줬고 사인을 해줬다. 풀타임으로 경기를 뛰었음에도 팬 서비스를 해줬다. 경기 후에 아내와 아이를 함께 데리고 집에 가는데 그래도 팬들을 위해 끝까지 남아 우리의 요구를 들어줬다. 힘든 모습이었지만 "네, 사진 찍어드려야죠."라고 말하던 구자철. 그의 목소리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상식축구]축구와 취업시장의 평행이론
2018년 하반기 취업시장이 문을 닫았다.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에 돌입했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나처럼 가슴 아픈 일을 당한 많은 청년들을 생각하며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 잘 된 사람은 꼭 그곳에서 자신의 꿈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나는 축구 칼럼을 쓰는 블로거다. 동시에 취준생이다. 생각을 해보니, 축구와 취업시장은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느꼈다. 축구 선수 중에도 빅클럽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선수가 있고 축구 약소국, 소규모 클럽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선수도 있다. 마치, 대기업에서 시작하는 직장인과 스타트업, 중소기업에서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내딛는 직장인처럼 말이다. 그래서 상훈이식으로 축구와 취업시장의 평행이론을 살펴보려 한다. (토마스 뮐러 "난 한팀만 뛴다!", 사진=베스트일레븐 게티이미지코리아) 1. 대기업 출신 - 토마스 뮐러 대기업에서 경력을 시작한 대표적인 선수는 토마스 뮐러라고 할 수 있다. 뮐러는 TSV펠 이라는 구단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바이에른 뮌헨 유스팀으로 넘어와 본격적으로 선수 인생을 걸었다. 현재 뮌헨 소속으로 뛰고 있는 선수 중, 가장 오랜 시간 뮌헨에서 뛰고 있는 선수가 뮐러라고 할 수 있겠다. 뮐러는 2000년부터 올해까지 뮌헨에 몸담고 있다. 실력도, 유머도 출중한 그는 뮌헨의 트렌드 아이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햇수로 19년 동안 뮌헨 소속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19년 동안 일해 훌륭한 성과를 냈다면 아마 이사진까지 가지 않았을까 싶다.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원으로서도 뛰어난 성적을 냈기 때문에 CSR 활동도 잘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아니 어쩌면 전 세계 청년이 가장 부러워하는 직장인 유형이 아닐까 싶다. (팀이 지고 있는데 웃고 있어요! 폴 포그바, 사진=포그바 SNS) 2. 대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직한 사례 - 폴 포그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스 출신인 포그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포그바를 데려왔으나 정작 제대로 기용하지 않았다. 포그바는 당시 맨유 미드필더였던 톰 클레버리, 안데르손에게 밀렸다. 은퇴했던 폴 스콜스마저 은퇴 번복을 하고 돌아와 포그바는 전혀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이에 불만을 품고 재계약을 거부해 다른 대기업인 유벤투스로 팀을 옮겼다. 맨유라는 빅클럽(=대기업)에서 유벤투스로 팀을 옮긴 뒤, 포그바는 매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유벤투스에서 잔뼈가 굵은 마르키시오를 밀어내고 주전 자리를 꿰찼다. 2013년엔 골든 보이상을 수상하며 무한한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런 포그바가 다시 맨유로 돌아왔다. 대기업에서 시작해 대기업으로 이직한 포그바. 이직한 회사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를 나타내고 다시 원래 있던 기업의 스카우트를 받았다. 자신의 몸값을 엄청 높이고 복귀한 케이스. 과거에 몸담았던 기업으로 돌아가는 사례가 흔하진 않지만, 포그바의 경우는 몸값을 더 높여서 돌아갔으니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포그바 역시 많은 청년이 부러워할 만한 사례다. 돈 많이 주는 대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직한 대기업에서 과거 대기업의 스카우트로 복귀. 역시 어딜 가나 능력이 최고다. (최고의 직원 리오넬 메시, 사진=베스트일레븐 게티이미지코리아) 3. 대기업 출신의 근속연수, 성과 최고 직원 - 리오넬 메시 이 선수를 빼고 축구를 논하긴 어렵다. 바로 현존 우주 최강 메시. 메시는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 축구에 입문했다. 일찍이 바르셀로나 레이더망에 잡혀 가족과 함께 유럽으로 떠났다. 팀에서 그를 위해 성장 호르몬 치료도 해주겠다고 했다. 마치 인턴에게 건강검진, 기숙사 제공 등 엄청난 복리후생을 제공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메시. 현 업계에서 가장 최고의 인재다. 보험 업계에서 판매왕이라면, 축구 업계에서 판매왕이 바로 메시다. 메시의 말 한마디에 회사가 휘청일 정도다. 이 정도면 바르셀로나 주식 지분도 갖고 경영진급이라 할 수 있다. 우리도 그런 직원이 되고 싶다. 내 한마디에 회사가 흔들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고 있는 상황. 부담도 되지만 내가 그런 존재라고 여겨지기에 마냥 좋다. 축구팀을 기업에, 선수를 직원에 비교하고 이런 것 다 떠나서 메시는 그냥 부럽다. 내가 메시보다 잘하는 것은 그저 높은 위치에 있는 물건을 꺼내줄 수 있다는 것뿐. (경력직으로 성공한 최고의 직원 박지성, 사진=인터풋볼 게티이미지코리아) 4. 중소기업으로 시작해 대박을 터트린 직원 - 박지성 한국인이니까 박지성을 뺄 수 없다. 정말 어렵게 대학 축구 팀이라도 입단한 박지성이다. 운 좋게 명지대에 입학해 선수 생활을 이어나갔다. 당시 명지대학교 김희태 감독은 교토 퍼플상가 총감독과 상담 끝에 박지성을 교토 퍼플상가로 이적시킨다. 박지성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하루빨리 해외에서 꽃을 피우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후 박지성은 올림픽 대표팀에 차출됐고, 실력을 인정받아 A 대표팀에도 차출됐다. 박지성은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자신의 진가를 세상에 알렸다. 그래서 중견기업인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직(=이적) 할 수 있었다. 에인트호번에서 중요한 경기에 한 방을 터트리며 퍼거슨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결국 대기업 맨유로 이직하면서 한국인 최초 프리미어리거 타이틀을 얻었다. 현재 한국 사회가 말하고 있는 직장인 유형이 바로 박지성이다. 일단 중소기업에서 일을 시작하라는 것이다. 경력을 쌓고, 조금씩 더 큰 기업으로 이직하는 커리어를 설계하라고 한다. 말이 쉽지. 돈을 떠나서, 교토 퍼플상가의 대우가 나쁘진 않았을 것이다. 과도한 일을 요구하진 않았을 테니까. 한국에 존재하는, 평점 낮은 중소기업에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싶지 않다. 과도하게 일을 시키거나 너무 불합리한 구조로 이루어진 중소기업이 아니라면 나도 좋다. 괜찮은 중소기업이라면 나도 이런 경력 모델을 설계하고 싶다. (토레스를 보고 회사의 인재상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사진=스포탈코리아 게티이미지코리아) 5. 동종업계 이직하다가 망한 사례 - 페르난도 토레스 동종업계라 함은 여기선 당연히 축구다. 또 하나의 동종업계는 바로 같은 리그다. 토레스는 리버풀에서 꽃을 만개했지만, 첼시에서 시들었다. 리버풀에선 최고의 직원으로서 발롱도르 3위, 피파 월드 베스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더 좋은 보상을 좇아 첼시로 이직했지만, 회사 인재상과 맞지 않은 직원으로 판명됐다. 나는 이직을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이런 경우가 실제로도 있을까? 예를 들어, SKT 마케팅 팀에서 일한 직원이 KT 마케팅 팀으로 갔다고 가정하자. SKT 마케팅 철학, 방법과 KT 마케팅 철학, 방법이 다를 수 있다. 그것이 본인과 맞지 않아 과거에 보여준 퍼포먼스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일 것이다. 실제로 이런 경우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생각하기엔...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혹시나 그런 경우를 알고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시길 부탁드린다. (무리뉴 "이직은 무조건 3년 이상!", 사진=베스트일레븐 게티이미지코리아) 6. 이직은 역시 3년부터 - 주제 무리뉴 이번에도 짤렸다. 동시에, 다른 팀에서 감독직을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바로 '3년 차 징크스' 무리뉴 감독이다. 2016년부터 올해까지 3년 동안 맨유 감독으로 있었지만 선수단 불화, 성적 저조의 이유로 경질됐다. 경질 보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 보도가 나오면서 업계 소식을 뒤흔들고 있다. 역시 이직은 3년부터다. 보통 이직하기 위해선 3년 정도 버티라고들 말한다. 무리뉴의 커리어를 보면 다 3년 이후다. 포르투에서 3년, 첼시에서 4년, 인테르에서 4년, 레알 마드리드에서 4년, 첼시에서 3년, 맨유에서 3년. 이직을 해도 다 대기업으로 이직한다. 역시 엘리트다. 단, 너무 잦은 이직의 흔적은 앞으로의 이직에 좋지 않다. 인턴이 전부였던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혹은, 몰랐다면 지금부터라도 마음 단단히 먹기를. 이직은 3년부터다. 버텨라. 짤리지 말고. 당신의 발걸음으로 회사를 나오길. 또 하나. 무턱대고 나가지 말고 갈 곳을 정하고 나가자. (언제쯤 경기는 회복되고 맨유는 탈 '맹구'할까, 사진=골닷컴 게티이미지코리아) 7. GM, 조선, 해운 사태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한국 GM은 거의 회복 불가다. 군산 공장 직원들을 포함해 여러 GM 직원들이 회사를 이탈했다. 혹은 구조조정으로 사원증을 반납해야만 했다. 조선, 해운 기업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매우 안 좋게 되어 수차례 구조조정을 단행해야만 했다. 그렇게 잘 나가던 한국 조선 사업이 순식간에 풍비박산됐다. 마치 맨유처럼. 퍼거슨 감독 재임 시절만 하더라도 맨유는 리그 최강이었다. 맨유는 통산 20회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리그 최다 우승 기록이다. 2012-2013 시즌 이후 우승컵이 없다. 모예스, 판 할, 무리뉴 등 명장이라 할만한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으나 모두 경질 당했다. 투자를 해도 상황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 경제가 살려면 자동차, 조선, 해운 사업 등이 회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영국 팀이 강세를 보이고 리그 순위를 유지하려면 맨유도 강팀의 면모를 찾아야 한다. 과연 두 분야 모두에게 어떤 대비책이 마련될지 지켜볼만하다. (기적의 아이콘 레스터시티, 사진=레스터시티 SNS) 8. 사업 대박 - 레스터시티 배틀 그라운드 덕분에 블루홀이라는 중소 게임 회사는 대박을 터트렸다. 프로젝트 초기부터 참여한 소수에게는 최대 50억 원, 그 외 다른 구성원들에겐 평균 3천만 원의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블루홀의 대박은 레스터시티의 대박과 맘먹는다. 언더독의 반란. 엘비스 프레슬리가 살아 돌아올 확률. 기적을 일으킨 팀. 바로 레스터시티다.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맨유, 아스널, 첼시, 맨시티가 리그를 장악했다. 레스터시티는 이런 생태계 속에서 기적같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워치, 피파온라인, 메이플 스토리 등 인기 있는 게임이 장악했던 게임 시장을 뒤흔든 배틀 그라운드처럼 말이다. 지금은 우승 팀 때 보여줬던 퍼포먼스를 잃었다. 우승의 주역이었던 캉테, 마레즈, 라니에리 감독 모두 팀을 떠났다. 게다가 구단주였던 비차이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배틀 그라운드를 만든 블루홀은 퍼포먼스를 잃지 않고 꾸준히 발전해 나가길 기원한다. (카페인에 놀라고, 경기력에 또 놀라고...사진=RB 라이프치히 구단 홈페이지) 9. 스타트업 대박 - RB 라이프치히 스타트업이라 함은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를 말한다. 스타트업이 3년 버티면 궤도에 올랐다고 말하는데 축구계의 RB 라이프치히가 그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라이프치히는 2009년에 창단된 신생팀이다. 세계적인 음료회사인 레드불에 의해 탄생한, 마치 스타트업이 대기업에 투자를 받아 창업된 그런 유형이라 할 수 있겠다. 라이프치히가 대박이라 할 수 있는 점은 매우 짧은 역사를 가졌지만 단숨에 분데스리가 1부로 승격했다. 2016-2017 시즌에 승격하자마자 리그 2위를 기록했다. 개인적으론 카카오와 유사해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창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을 인수하고 O2O 시장을 이끌어가는 핵심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라이프치히도 2016-2017 시즌 리그 2위, 2017-2018 시즌 리그 6위, 이번 시즌 현재 4위를 기록하며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업계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줄 것으로 예상한다. 이렇게 취업시장과 연관 지어 축구계를 살펴봤다. 이해가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간단하게 비교해보려 노력했다. 요즘 경기가 어려워 취업이 쉽지 않다. 나도 그렇다. 그러나 재밌게 돌아가는 축구계처럼 우리도 웃음을 잃지 않고 취업 시장에서 존버해보자. 또한, 앞으로 어떤 회사를 갈지, 남을지, 떠날지 등을 지혜롭게 고민, 선택해보면서 경력을 이어나가길 기원한다. 취준생에겐 희망을, 경력자들에겐 지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