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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환석 화백의 CEO 명언’/ 마쓰이 타다미쓰
<글, 그림=유환석(한국시사만화가협회장)> 한 달에 1회 꼴로 ‘유환석 화백의 CEO 명언’과 관련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일본 경영자를 고르고, 그들의 어록(명언)을 다시 선택하는 작업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그러던 와중에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일본 경영자들이 의외로 많은 경영철학과 경영에 대한 말을 남겼다는 거다. 반면, 한국의 창업주들이 남긴 경영철학이나 그들의 말과 글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후대는 그것조차 찾아보려는 노력이 없는 듯하다. 실로, 아쉬운 일이다. 남의 나라 경영자들의 경영철학을 소개하면서 ‘타산지석 지혜’로 삼는 이 작업이 결코 헛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설이 길었다. 오늘은 송정충삼(松井忠三)이라는 경영자를 골랐다. 한자로 봐서는, 소나무 우물가 집안의 충직한 셋째 아들쯤 되지 않을까. 이름은 마쓰이 타다미쓰. 우리가 잘 아는 무인양품(MUJI)을 운영하는 회사 ‘양품계획’의 회장을 지냈던 인물이다. 지금까지 소개했던 ᐅ혼다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 本田宗一郎: 1906~1991) ᐅ마쓰시타전기(현재의 파나소닉)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1894~1989) ᐅ도시바 사장 출신 도코 도시오(土光敏夫:1896~1988) ᐅ일본항공(JAL) 회장 출신 하나무라 니하치로(花村仁八郎: 1908~1997)는 모두 고인들이다. 헌데, 이번 회에서는 처음으로 생존해 있는 경영자쪽으로 마음이 갔다. 그런 마쓰이 타다미쓰는 1949년생으로, 우리 나이로는 71세다. 그 역시 많은 어록을 남기고 있는데, 우리가 되새겨 볼 만한 말은 바로 ‘실행의 힘’이다. 마쓰이 타다미쓰는 이렇게 말한다.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행력이다. 전략이 이류라도 실행력이 일류인 회사는 ‘전략은 일류인데 실행력이 이류인’ 회사보다 압도적으로 강하다.> (企業で一番大事なのは実行力。戦略が二流でも実行力が一流の会社は、戦略が一流でも実行力が二流の会社よりも圧倒的に強い。) 마쓰이 타다미쓰는 전략보다 실행력을 우위에 두고 있다. 전쟁에 나갈 때는 무기와 더불어 전략(戦略)이 필수다. 한자 ‘략’(略)은 간략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다스리다는 뜻도 갖고 있다. 이런 전략도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전쟁뿐 아니라 기업도 마찬가지 일게다. 전략과 실행력 중에서 뭐가 중요하다고 딱 잘라 말하긴 곤란하다. 각자, 각 기업마다 처한 상황과 생각들이 다르기 때문일터. 잘 짜여진 전략이라면 실행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애매한 전략을 실행에 옮겼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말인즉슨, 현명한 경영자라면 판단을 잘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럼에도, 나는 전략보다 실행력을 우위에 둔 마쓰이 타다미쓰의 말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왜냐? 살아오면서 전략만 짜다, 또는 계획만 세우다 꼬꾸라지는 사람들을 수 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실행해 보지 않으면 성공도 없고 실패도 없다. 실패는 실행해 본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에너지원’이다. 그런 실패는 과연 ‘쓸모없는 경험’일까, 아니다. 마쓰이 타다미쓰의 또 다른 어록을 ‘덤’으로 소개하자면 이렇다. <인간 만사 새옹지마. 향후 어떻게 될까 따위 아무도 모르지만, 단 하나, 말할 수 있다면 인생에 쓸모없는 경험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人間万事塞翁が馬。将来どうなるかなんて誰にもわからないが、たったひとつ、言えることがあるとすれば、人生に無駄な経験などひとつもないということだ。) 정리하자면, 실행=쓸데 있는 경험. 실행력>전략. 일단 한번 해보자.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93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JAY PARK OPPA WON ARTIST OF THE YEAR!!!!!!!
KHA ( Korean Hip Hop Awards) 올해의 아티스트 ( Artist Of The Year) for the second year in a row!! 내 모든행보나 모든 활동이 다 방송에나오지않고 기사화되지않아도 나의 열정 과 노력 을알아주는 사람이있고 점점 많아져서 너무 기쁘고 영광입니다. 좋은 음악들드리고 좋은 아티스트 를 되는건 당연하고 계속 이힙합 문화가 방송에나와서 유행타는 음악뿐만이아니라 오래오래 계속 발전하면 있을수있게끔 좋은 영감과 좋은기회들을계속 생길수있도록 노력할게요. 불가능한걸 이뤄내지못해도 계속 이뤄낼수있게끔 노력은할게요. 날도와주신 모든분들 응원해주신모든분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shouts out to hiphople and hiphopplaya for covering hip hop music and hip hop artists and giving us a platform thank you #aomg #h1ghrmusic #followthemovement #티ㅈㄴ이쁘지않이요물음표 ARTIST OF THE YEAR- JAY PARK TRANSLATION- Even though all my activities and activities are not broadcasted and published, there are people who know my passion and efforts and I am very glad and honored to be getting more and more. I will try to get good inspiration and good opportunities so that good music will be a good artist, and this hip-hop culture will continue to be broadcasted not only for trendy music but also for a long time. Even if I can not achieve what I can not do, I will try to keep it going. Thank you very much for all those who cheered everyone who gave me the day.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 젊음의 비결?
피트니스·우주비행훈련에 성장호르몬 맞고 젊은피 수혈에도 관심 올해 54세인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얼마전 한 컨퍼런스장에 도착했을 때 불뚝 튀어오른 팔의 이두박근이 화제가 됐다. 올해 50세인 피터 틸 페이팔 공동창업자는 노화를 물리치는데 사로잡혀 인간 성장호르몬을 맞고 있다. 올해 41세인 잭 도시 트위터 CEO는 90년대의 펑크족에서 샌프란시스코의 수염기른 힙스터(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로 변신했다. 엘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심하게 괴롭힘당하던 소년에서 여배우 앰버 허드와 데이트하는 억만장자 멋쟁이로 변신했다. 세르게이 브린 구글 공동창업자도 파킨슨씨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 식단조절과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데일리메일이 추적해 본 실리콘밸리에서 IT로 성공한 이들 억만장자의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은 천태만상이었다. 하지만 수퍼 모델이나 여성 유명인들과 달리 그동안 별로 알려지지 않아왔다.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과거 컴퓨터업계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예에서 보듯 큰 안경, 빗질하지 않은 머리카락이나 양털 조끼 및 포켓 프로텍터들을 선호하는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연상시켜 왔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억만장자의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그 이미지가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피트니스 클럽 다니고 우주비행사 훈련받았을 것으로 예측 피터 틸 페이팔 공동창업자...성장 호르몬 맞고 젊은피 수혈에도 관심 잭 도시 트위터 CEO...아침 30분 명상, 토요일 쉬고 자주 등산 세르게이 브린...식단바꾸고 규칙적인 운동 엘론 머스크...일주일에 한두번 체육관 들러 역기들고 심장강화운동
전처의 폭로가 시발점…예고된 곤의 몰락
(마크롱 대통령(왼쪽)과 카를로스 곤 회장. Photo=CNN 영상 캡처) 카를로스 곤(닛산, 르노, 미츠비시 자동차 3사 회장)은 희생양일까, 아니면 카리스마를 내세운 폭군이었을까. 곤 회장은 버블 붕괴 이후 일본에 진출한 ‘흑선 경영자’(黒船経営者: 서방 세계에서 온 경영자)의 상징적인 존재다. 그는 부채 2조 엔을 떠안은 닛산 자동차를 부활시켜 전세계 자동차 메이커의 거물로 거듭났다. 그런 그는 보수 축소 신고로 체포돼 닛산 부활의 일등공신에서 순식간에 ‘역적’으로 내몰렸다. 도쿄상공회의소는 19일 “곤 회장이 지난 9년 동안 받은 보수가 90억900만 엔(한화 902억)에 달한다”고 밝혔다.(일본은 2010년 3월부터 1억엔 이상 받는 상장기업의 임원 보수를 공개하고 있다.) 도쿄상공회의소의 자료에 따르면, 곤 회장은 1년에 100억원을 받았다는 것이 된다. 이번 사건으로 곤 회장의 ‘공’(功)은 물거품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일본 전방위에서 뒤늦게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곤 회장은 가는 곳마다 인정사정 없이 비용 줄이기를 감행해 ‘코스트 커터’(Cost Cutter)라는 별명이 붙었다. 닛산에서만 2만 명에 달하는 직원을 잘라냈다. 일각에서는 “비용 줄이기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경영자로서의 독창성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말도 나온다. 경제 매체 비즈저널은 경영 측면의 ‘코스트 커터’를 곤 회장 사생활과 결부시켰다. 이 매체는 11월 22일 “(곤 회장이) 사생활에서도 ‘코스터 커터’의 모습을 발휘하고 있다”(私生活においても「コストカッター」ぶりを発揮している)고 꼬집었다. 전처와 이혼 수속 당시 “너에게 줄 재산은 없다”(お前に与える財産はない)고 주장하면서 재산 분할의 권리를 포기하도록 종용했다는 것... <김재현 기자>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194 )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재현 기자다른기사 보기
‘비즈니스북 한 줄’/ “경영은 때밀이다”
‘때밀이(세신) 수건’은 대중 목욕탕이나 가정집 욕실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이 ‘때밀이’를 경영에 접목한 경영자가 있었습니다. 캐논전자 사장을 지낸 사카마키 히사시(酒卷 久)입니다. 마쓰시타전기(지금의 파나소닉)를 창업한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경영은 예술”이라고 말했다면, 사카마키 사장은 “경영은 때밀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캐논 상무를 거쳐 1999년 캐논 자회사인 캐논전자 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불필요한 기업문화의 타파’였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사무실의 의자를 없앤 겁니다. 꼭 필요한 부서를 제외하곤 의자를 치워버렸죠. 시간을 많이 잡아먹던 회의도 서서(입식 호의) 했습니다. 의자가 없기는 사장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카마키 사장은 서서 일할 체력이 안되면 스스로 회사를 떠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카마키 사장은 마치 사람 몸의 ‘때를 밀 듯’ 시스템과 사고방식을 바꿨습니다. 그는 ‘캐논, 대담한 개혁’이라는 책에서 “캐논전자에서 가장 효과를 본 것은 의자와 PC(로 놀고 있는 시간)를 없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의자를 없애는 것으로 생산효율이 눈 깜짝할 사이에 당초의 2배로 뛰었고, 지금까지 8배 가깝게 신장하였다. 의자를 철거함으로써 풋워크(foot walk)가 개선되고, 그 결과 사원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져서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제1요인으로 작용했다.”(‘캐논, 대담한 개혁’ 인용) ①저자: 사카마키 히사시(酒卷 久) ②출판사: 출판사 B&S ③옮긴이 및 출판년도: 김경철, 2008년 사카마키 사장이 의자를 없앤 이유는 미국 신문에서 한 테이터를 발견하면서죠. 한 대학이 ‘나사’(NASA)와 함께 ‘서 있을 때와 앉아 있을 때 어느 쪽이 아이디어가 나오기 쉬운가’라는 실험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결과는 흥미로웠습니다. 사카마키 사장은 “아이디어 자체는 앉아 있으나 서 있으나 별 차이가 없지만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스피드는 서 있는 편이 30% 정도 빨랐다”고 했습니다. 캐논전자의 경영회의는 의자를 없애는 것으로 무려 75%나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그런 노력은 이익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카마키 사장 취임 5년 만에 이익이 10배로 늘어난났다고 합니다. 다음은 사카마키 사장이 강조한 ‘때밀이 경영’의 한 마디입니다. “매너리즘은 낭비의 온상이며 생산성의 적이다. 익숙해지는 것이 보이면 매너리즘에 빼지지 않도록 시스템의 때를 벗겨내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리더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라. 이를 항상 강하게 의식하고 있지 않으면 자칫 독선적이 되기 싶다. 인간의 자질, 사고도 항상 깨끗이 때를 밀어두어야 한다.” 여러분은 개인적으로 ‘때’(습관, 사고 등)를 어떻게 벗겨내고 있습니까? 만약 경영자라면 어떤 방식으로 조직의 ‘때’를 씻어내고 있습니까? <김재현 기자> 기사출처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55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경영 이념이 없으면 금방 망합니다”
‘캄브리아 궁전’(텔레비전 도쿄)이라는 일본 TV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주로 중소기업 CEO들이 출연해 성공 경험담을 털어놓는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프로그램을 다 보고나면 해당 기업이 왜 성공했는지, 경영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지를 알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재팬올 서포터즈인 선설아씨가 ‘캄브리아 궁전’ 분석에 나섰습니다. 한국 경영자들이나 사업가들에게 ‘작은 인사이트’를 전하기 위해서죠. 다이어트&피트니스 관련회사 ‘다노’의 글로벌비즈니스팀에서 일하는 선씨는 일본에서 사회경험을 먼저 시작한 ‘재팬 덕후’입니다. 20대 후반인 선씨는 자신의 업무에 대해 “일본시장 진출을 위한 온라인 커머스 분야”라며 “수출 관련 공급망 관리, 마케팅, 시장조사 등의 일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선씨는 ‘캄브리아 궁전’과 함께 ‘가이아의 새벽’이라는 프로그램도 소개합니다. ‘가이아의 새벽은 경제 다큐멘터리로, 현장에서 분투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선씨는 두 프로그램에 대한 글을 번갈아 연재할 예정입니다. 먼저 3월 21일 방송된 회전초밥 회사 ‘쵸시마루’(銚子丸)편을 모니터링했습니다. 다음은 선설아씨의 ‘데뷔’ 글입니다. <편집자주> 외식업계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일본 회전초밥 시장은 계속 성장세다. 회전초밥 시장은 저렴한 가격을 강조하는 100엔 회전 초밥집과 네타(ネタ:초밥 위에 올라가는 생선회)의 질로 승부하는 ‘미식계(系)’ 회전 초밥집으로 나눌 수 있다. ‘캄브리아 궁전’에 소개된 쵸시마루라는 초밥집은 후자에 해당한다. 쵸시마루는 소비자 선호도 조사에서 ‘고객 만족도 넘버원’을 받고 있는 곳으로, 2007년엔 자스닥에까지 상장됐다. 쵸시마루의 인기 비결은 3가지로 모아진다. ①초밥의 신선도 ②독특한 분위기 ③경영자의 이념이다. ①초밥의 신선도 뭐니뭐니해도 쵸시마루의 최대 강점은 초밥의 신선도에 있다. 직원들이 직접 항구로 가서 감정하고, 낙찰된 생선을 각 점포로 직송한다.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점포를 수도권으로 한정하고 있다. 도쿄 도내에 87개 점포가 영업 중이다. 전체 매출은 188억엔(1917억원). ②점포 분위기 쵸시마루의 점포 분위기는 특이하다. 마치 극장공간(劇場空間)을 연상시킨다. 한 마디로 ‘극장형 가게’. 직원들은 극단 배우, 손님은 관객이다. 직원들은 공연을 하듯 목소리를 낸다. 점포 내에는 일본 회전초밥집에서는 보기 드문 활어조(活魚槽)가 있다. 배우(직원)는 관객(손님)이 보는 앞에서 생선을 바로잡아 회를 뜨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참치 해체쇼와 함께 관객을 매료시키는 그들만의 비법이다. ③경영자의 이념 기업 성공담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부분은 경영자의 ‘마음 자세’다. 쵸시마루도 예외는 아니다. 쵸시마루의 1대 사장은 창업자인 호리치 하야오(堀地速男)씨다. 1998년 1호점을 개업하면서 지금의 브랜드를 붙였다. 그는 ‘고객 만족’을 모토로 정했다. 단순한 고객 만족이 아니다. 쵸시마루는 현재 호리치 하야오씨의 부인인 호리치 히로코(堀地ヒロ子)씨가 회장을, 이시다 미츠루(石田満)씨가 사장(2대)을 맡고 있다. 창업자 호리치 하야오씨는 암으로 2016년 세상을 떠났다. 방송에 따르면, 일본은 1970년대 후반에 패밀리 레스토랑이 생겨나면서 외식 붐이 불었다. 이런 분위기에 불을 붙인 건 아내 히로코씨였다. 남편에게 먼저 사업 제안을 한 것이다. 당시 도시락이나 반찬가게의 테이크아웃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흐름을 읽은 아내 히로코씨는 남편에게 “테이크아웃 초밥집을 해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그렇게 쵸시마루 간판을 단 가게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1년 만에 점포 5개를 순식간에 열었다. 사업이 잘되면서 욕심을 부렸다. 매출을 더 올리기 위해 남편 하야오씨는 라면, 돈가스, 중화요리, 심지어 부동산, 학원으로까지 사업을 확대했다. 부부 둘이 시작한 사업은 금새 종업원이 500명으로 불어났다. 하지만 급격한 사업 확대가 화근이 됐다. 경영이 악화되면서 사업을 하나 하나씩 접어야 했다. 답답하던 차에, 남편이 1997년 미국으로 시찰을 떠났다. 그는 인기 있는 한 햄버거집 사장에게 매출을 올리는 경영 포인트를 물었다. “매출은 둘째입니다. 경영은 먼저 이념을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이런 답변을 들은 하야오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귀국하자마자 이념을 확립하는데 힘썼다. 그렇게 만든 이념이 ‘고객의 감사와 기쁨을 얻는 것’(お客様の感謝と喜びを頂く)이었다. 이런 이념으로 ‘무장’한 부부는 이후 회전초밥 사업에만 집중했다. 부부의 벤치마킹도 계속됐다. 당시 일본의 회전초밥집 형태는 카운터석으로만 운영됐고, 가격도 한 접시에 ‘100엔 균일가’였다. 이렇다 할 특징이 없었던 것이다. 전국 회전초밥집을 둘러보던 부부는 한 초밥집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 가게는 가족끼리 앉을 수 있는 테이블석에다, 디저트도 제공되고 있었다. 또 접시 색깔에 따라 요금을 달리하고 있었다. 아이디어가 신선했던 것이다. 하지만, 주방은 ‘그저 그랬다’. 이미 가공되어 신선도가 떨어진 생선 횟감과 기계가 만드는 샤리(シャリ:초밥에서 쌀밥 부분)로 초밥을 만들고 있었다. 이를 본 남편 하야오씨가 무릎을 탁쳤다. 신선한 생선을 직접 매입해 보자고 다짐했다. 그걸 손님 앞에서 직접 요리했다. 쵸시마루만의 ‘새로운 초밥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아쉽게도 그런 하야오씨는 ‘지금 없다’. 사업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고 2016년 아내 곁을 떠났다. 현재 쵸시마루는 출장 회전초밥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방송에서 꽤나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여기다. 외식을 잘 할 수 없는 실버타운을 직접 방문해 회전 레일을 설치하고 노인들이 회전초밥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숨어있는 소비자들’이었던 셈이다. 쵸시마루는 이 틈새를 놓치지 않았다. 이외에 개인이나 회사 파티 수요도 많다고 한다. ‘유스케’(YASUKE)라는 비지니스맨들을 대상으로 한 초밥집도 운영을 시작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직원들 교육도 남다르다고 한다. 11년 연속 미슐랭을 획득한 초밥집에 직원들을 연수 보내고 있다. 프로그램을 다보고 나니 강한 메시지가 가슴에 박혔다. 창업자 하야오씨가 현 사장인 이시다씨에게 남긴 말이다. “초밥을 팔지 말고, 이념을 팔아라.”(寿司を売る な、理念を売れ) 이를 거꾸로 말하면 ‘경영 이념 없는 사업은 금방 망한다’는 교훈이 아닐까.<선설아 재팬올 서포터즈, ‘다노’ 글로벌비즈니스팀 근무> 기사출처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39)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캐논의 이름은 ‘관음보살’에서 출발했다
캐논은 관음(観音)의 일본식 발음인 '칸논'에서 따왔다. 인물 사진은 캐논의 초대 사장 미타라이 다케시. 일본 카메라 시장의 빅4는 캐논, 니콘, 올림푸스, 소니 광학 부품 부문이다. 이중 캐논과 니콘은 일본제 카메라의 대명사로 유명세를 누려왔다. 하지만 지금 전 세계 카메라 시장은 그야말로 ‘바닥’이다. 대신 빅4는 의료 내시경, 반도체 제조장비 등 광학기술을 내세워 전 세계 의료장비 시장을 쥐락펴락 하고 있다. 이중 뒤늦게 치고 올라온 회사가 캐논(Canon)이다. 캐논은 CT(컴퓨터 단층촬영)와 MRI(자기공명영상) 일본 시장점유율 1위였던 도시바의 의료기기 사업부(도시바메디컬)를 인수(6조5000억원) 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해 1월 최종적으로 인수 절차를 마무리했다. 카메라 메이커들이 의료 광학 분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재팬올의 ‘일본 브랜드 네이밍 시리즈’ 전자전기 기업 이야기가 캐논으로 넘어간다. 캐논의 브랜드는 특이하게도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 다음은 캐논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진 사연과 창업자 스토리다. <편집자주> “독일엔 ‘라이카’가 있어. 정밀공업 없이는 (우리의) 발전도 없어.” 1933년 어느 날, 도쿄의 한 맥주 가게에서 요시다 고로(吉田五郎), 우치다 사부로(内田三郎), 미타라이 다케시(御手洗 毅)라는 세 남자가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일본 기업정보사이트 net,ir 자료) 당시 35mm 카메라의 최고봉은 독일의 라이카와 콘탁스였다. 라이카의 경우, 가격이 500엔에 달했다. 일본 대졸 직장인의 평균 월급이 70엔이던 시절이었다. 저렴한 일본제 35mm 렌즈 파인더 카메라가 요구되던 때였다. 이에 세 사람이 의기투합했다. 요시다 고로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영화 촬영 카메라와 영사기 수리 및 개조 일을 하고 있었다. 우치다 사부로는 증권회사 직원으로, 요시다 고로의 처남이었다. 좀 특이하게 미타라이 다케시는 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매형 처남지간인 요시다와 우치다는 1933년 도쿄 롯본기에 캐논(Canon)의 전신인 정기광학연구소(精機光學硏究所)를 설립했다. 산부인과 의사였던 미타라이는 우치다 부인의 출산을 계기로 그들과 친분을 쌓게 되었고, 공동경영자로 참여하게 됐다. 이듬 해인 1934년 ‘아사히 카메라’ 6월호에 정기광학연구소의 카메라 광고가 처음으로 실렸다. 카메라 이름은 칸논(KWANON). 칸논은 관음(観音)의 일본식 발음이다. 왜 이런 불교식 명명을 한 걸까. 이와 관련 마이니치신문의 ‘근원을 따지면’(もとをたどれば)이라는 코너에는 이런 설명이 나온다. “관음보살의 신앙에 심취했던 요시다가 ‘관음보살의 덕으로 세계 최고의 카메라를 만들고 싶다’(観音菩薩」の信仰に熱心だった吉田氏が「観音様にあやかり、世界最高のカメラを作りたい)는 마음에서 칸논으로 명명했다.” 칸논은 이후 어감이 좋은 캐논(canon)으로 바뀌었다. 정기광학연구소는 1937년 정기광학공업주식회사로 이름을 변경했는데, 캐논은 이때를 회사 창립연도로 정하고 있다. 공동경영자인 요시다 고로, 우치다 사부로, 미타라이 다케시 중 최종적으로 경영을 맡게 된 사람은 미타라이였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인물도 바로 그다. 당시 마타라이는 의사 일과 경영 두 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었다. 의사라는 직업에 맞게 그는 X선 카메라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 시절 결핵은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여겨졌다. 결핵에 가장 신경 썼던 곳이 군 당국이었다. 당시 X선 카메라는 대부분 독일제였다. 미타라이는 직업의 장점을 살려 해군의무국(海軍医務局)으로부터 X선 카메라 수주를 받았고 정기광학연구소는 1940년 일본 최초로 간접방식 X레이 카메라(Japan's first indirect X-ray camera)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육군으로부터도 수주를 받아 연간 100대를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미타라이는 이를 발판으로 1942년 지금의 캐논 초대사장에 취임했다. 2차 세계대전 중 자신이 운영하던 산부인과 병원이 공습으로 소실되면서 그는 경영에만 주력하게 되었다. 의사라는 직업 때문에 의료용 기기 개발을 추진했고, 그것은 지금의 의료 광학기기 개발의 초석이 됐다. 정기광학연구소는 1947년 ‘캐논 카메라 주식회사’로 이름을 변경했다. 회사가 창업 30년이 되던 해인 1967년, 미타라이는 경영 다각화를 선포했다. ‘오른 손에는 카메라, 왼손에는 사무기기’(Cameras in the Right Hand, Business Machines in the Left Hand)라는 케치플레이즈를 내건 것이다.(캐논 홈페이지 자료) 그 2년 뒤인 1969년에는 카메라를 떼고 ‘캐논주식회사’로 사명을 다시 변경했다. 미타라이는 1974년 마에다 다케오(前田武男)에게 사장 자리를 물려주고, 10년 뒤인 1984년 향년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공동경영자가 ‘관음교’에 귀의 하면서 이름을 붙였던 칸논(KWANON, 1934년)과 2019년 현재의 캐논(Canon). 그 사이에 8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재우 기자,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인> 기사출처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59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재팬올 서포터즈가 본... ‘닛산 사태 그후’
재팬올 서포터즈 선설아씨가 일본 경제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한 후,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선씨는 다이어트&피트니스 관련회사 ‘다노’의 글로벌비즈니스팀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일본에서 사회경험을 먼저 시작한 ‘재팬 덕후’입니다. 이번 회는 ‘가이아의 새벽’(ガイアの夜明け)편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매주 화요일 밤 TV도쿄에서 방송되는 경제 다큐입니다. 3월 마지막 주인 26일에는 카를로스 곤 사태를 빚은 닛산자동차와 부실시공 의혹을 받고 있는 부동산회사 레오팔레스를 조명했습니다. 선설아씨는 ‘가이아의 새벽’이 이날 방송한 닛산자동차 부분을 정리했습니다. <편집자주> 닛산 자동차의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은 지난해 11월 이후 4번째로 체포(보수 허위기재, 회사자금 유용 의혹)돼 구속 수감 중이다. 곤 회장의 부정 사태로 닛산자동차의 브랜드는 큰 상처를 입었다. 10년간 장기 집권했던 곤 전 회장이 닛산 회장직을 공식 사임한 건 지난 1월 말이다. 르노그룹은 타이어 제조사 미쉐린의 CEO인 장 도미니크 세나르(Jean-Dominique Senard)를 르노의 새 회장으로 선임했다. 곤 전 회장의 사임과 세나르 회장의 선임으로 르노-닛산-미쓰비시 3각 연합(Alliance)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전 세계 자동차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8일 닛산자동차는 임시주총을 열고 곤 전 회장의 이사직 해임안을 가결시켰다. 이로써 곤 전 회장은 닛산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날 르노 세나르 회장의 닛산 이사직 취임안도 가결됐다. ‘가이아의 새벽’ 취재진은 곤 전 회장 이후 닛산의 판매 시장, 3각 연맹, 직원들의 반응을 조명했다. 먼저 판매시장이다. 이 프로그램에 따르면, 중고차 판매점에서는 한 때 잘 나가던 닛산의 미니밴이 최근 1,2개월간 전혀 문의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 닛산차 전체로는 작년 12월 이후 10~20% 문의가 줄었다고 한다. 시장에 남아도는 자동차가 많아지면서 당연히 가격도 하락했다. 닛산 공장에도 변화가 몰아치고 있다. 닛산차 공장은 작년 대비 생산율이 크게 감소하면서 3교대 근무체제가 2교대로 바뀌었다. 하청업체들도 종업원의 잔업과 휴일 근무를 줄여 나가고 있다. 닛산은 2019년 3월기 최종 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약 45% 감소했다. 북미 시장의 판매 대수는 8.5% 줄어들면서 수익이 악화됐다. 3월 12일 닛산・르노・미츠비시 자동차간의 연합 이사회(Alliance Board)가 신설됐다. 의사회의 의장은 세나르 회장이 맡았다. 일본 미디어로는 처음으로 ‘가이아의 새벽’ 취재진이 르노 본사에서 세나르 회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세나르 회장은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자신감의 배경엔 3사의 자본관계가 존재한다. 이미 알려진대로 닛산이 르노에 15%를 출자했고, 르노는 닛산에 43%를 출자한 대주주다. 또 프랑스 정부는 르노의 대주주(15%)로 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세나르 회장은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르노의 주주이며, 나는 비즈니스를 함에 있어서 주주를 엄격히 존중할 것이다. 정부와의 관계는 앞으로도 문제가 없을 것이며, 정부 또한 내가 책임자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취재진이 이사회를 언급하면서 “이것이 경영통합을 위한 단계가 아닌지”를 물었다. 그러자 세나르 회장은 르노와 닛산의 경영통합에 관해서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은 3사의 연합을 강화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세나르 회장의 이런 발언에 취재진은 일본 자동차 애널리스트의 의견을 담았다. 이 애널리스트는 “세나르 회장이 닛산의 보호자인 양 자세를 취하고는 있지만, 경영자로서 최후에는 얼라이언스(연합)를 성공시키고, 이를 불가역적으로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에서는 닛산 직원들의 반응도 전했다. 3각 연합의 새로운 체제에 대해 현장 사람들은 어떤 생각일까. 한 직원은 “당장 두려움이나 불안함은 없지만, 뒤로 미루어진 것일 뿐, 언젠가는 불거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직원은 르노와의 경영통합을 불안하게 느끼면서도 세나르 회장에게 기대하는 눈치였다. ‘가이아의 새벽’(ガイアの夜明け)이라는 프로그램 제목처럼 닛산도 새로운 새벽(夜明け)을 맞고 있다. 연합 이사회(Alliance Board)가 닛산의 거버넌스(경영체제)를 어떻게 개선할 지가 주목된다. <선설아 재팬올 서포터즈, ‘다노’ 글로벌비즈니스팀 근무> 기사출처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49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유환석 화백의 CEO 명언’/ 하나무라 니하치로
<글, 그림=유환석(한국시사만화가협회장)> 오늘은 공자(孔子) 얘기로 ‘유환석 화백의 CEO 명언’을 시작할까 한다. 다들 아시겠지만, 공자님 말씀 중에 ‘백번 지당’한 예가 많은데, 사실 실천하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공자는 대략 3000명의 제자를 뒀다고 한다. 그 제자들 중 출중한 자들을 일컬어 ‘육십일자’(六十一子), ‘칠십자’(七十子), ‘칠십이현’(七十二賢)이라고 부른다. 기록에 따라 숫자를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이 중에 우리가 한 번 쯤 들어본 제자로는 안회(顔回), 자로(子路), 자공(子貢), 자하(子夏), 자장(子張), 염유(冉有), 유약(有若) 등이 있다. 여기서 자장(子張)의 이름을 한번 기억해 두기 바란다. 공자의 말씀을 모은 논어(論語) 자장(子張)편에 ‘존현용중’(尊賢容衆)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군자는 어진 사람을 존경하고 뭇 사람을 포용한다’는 뜻이다. 어찌 군자만 포용이 필요하겠는가. 우리 같은 범부들도 실천은 어렵겠지만, 가정과 직장에서 군자 못지 않은 포용의 ‘그릇’이 요구된다. 논어의 위정(爲政)편에는 그 그릇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군자불기’(君子不器)이다. ‘군자는 한 가지만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자장편과 위정편을 합치면 이런 말이 되지 않겠는가. ‘한 가지 이상 담는 그릇을 가지돼, 포용력까지 담아라.’ ‘학문이 짧은’ 내가 어려운 공자님 말씀까지 빌려 온 데는 이유가 있다. 일본 재계 경영자 중에도 이 포용력을 강조한 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항공(JAL) 회장을 지낸 하나무라 니하치로(花村仁八郎: 1908~1997)이다. 경단련(한국의 전경련) 사무총장과 부회장을 맡기도 했던 그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경영자가 반드시 똑똑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사람의 재능을 알아보고, 격려해 주는 포용력이 필요하다> (経営者は必ずしも頭がよくなくてもいい。人の才能を見抜き、激励してやる包容力が必要なのだ。) (이어지는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22)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