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Following
0
Follower
0
Boost

[단상] 아마도 지금

아마도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일 거다. 나는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었고 거기에 집중하면 된다. 따로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평소 농담대로 100세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앞으로 70년을 채워나갈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른으로서 어떤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부유자로서 1년은 온전한 자립의 필요성과 스스로 부족함을 깨달아 가는 시기였다.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고 매일 마음 먹은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끈기가 필요함을 배웠다. 아령을 들고 자전거를 타고 영어기사를 스크랩하는 것도 꾸준함을 연습하는 과정이다. 가능한 글을 계속해서 쓰려고 한다. 돌이켜보면 힘들었을 때 글을 썼다. 군대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꽤 벅찬 상황들에 펜을 들었다. 소설가 김영하는 글쓰기는 일종의 해방과 같아서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한 과정이라고 했다.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 무엇보다 글을 쓰는 창작자가 가장 먼저 독자가 된다는 사실은 참 재밌다. 영화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사진작가가 그토록 찾던 피조물을 찍지 않고 눈으로만 담는 이유와 비슷하다. 쓰는 것, 찍는 재미를 즐기기에 결과물은 없어도 된다는 태도다. 온전한 자기만족에 남들의 시선과 평가는 들어갈 공간이 없다.

[단상] 검은 습기

습기가 띠어리 네이비 블레이저 소매로 스몄다. 해가 쏘였지만 덜 마른 땅이 간밤에 소나기로 올라왔다. 텁텁함과 둔탁한 끈적임. 갈색 구두 고무창이 보도블록에 쩍쩍 달라붙었다. 광역버스와 지하철을 고민하다 치미는 화기에 버스계단에 올랐다. 알랭 드 보통 책과 노트북은 왜 챙겼을까. 어차피 멀미 때문에 보지도 못 할 지적 욕심 덩어리를 옆 좌석에 놓자 숨이 트였다. 뉴스 피드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직접 가야 할까 아니면 메시지를 보내고 계좌이체를 할까 주저했다. 어쩌면 생각지도 않았던 상황을 진짜 겪는 상대를 볼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검은 넥타이를 챙겨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만남과 헤어짐에 때가 있다면 72시간 만이라도 붙잡으려는 마음을 나는 모른다. 오르막길 초입 간판은 단출했다. 족히 10미터가 넘는 다리가 보였다. 회백색 콘크리트 기둥과 건물을 둘러싼 초록색 잎사귀가 이질적이었다. 피드에 올라온 장소를 찾아 내려갔다. 검은색 상복을 입은 사람들과 복도에 놓인 분홍색 조화들이 어우러졌다. 낯익지만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곳에 그녀가 있었다. 양 볼은 붉었고 눈은 더 그것보다 더 짙었다. 쉬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검은색 타이 매듭만 만지다 분향소로 들어갔다. 두 번 반 절을 마치고 상주와 마주했다. 맞절 도중 일행 중 하나가 울컥하자 상주 쪽 중간에선 그녀가 눈물을 쏟았다. 붉은 향 흩어진 연기의 메케함에 방울이라도 떨어뜨릴까봐 입술을 깨물었다. 반절 후 그녀의 어머니가 일일이 손을 잡으며 인사했다. 미소보다 진지한,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몰려드는 조문객에 그녀는 바빴다. 경황이 없어 보였지만 허둥대진 않았다. 상에 앉자 꿀떡과 편육 같은 음식들이 재빠르게 차려졌다. 모호한 허기에 계속 떡을 집었다. 목이 막혀 캔 식혜를 따 종이컵에 부었다. 분향소에는 신도로 보이는 분들이 불경을 외웠다. 경쾌하면서 리듬감 있는 목탁소리가 장례식장을 가득 채웠다. 얼큰히 취기 가득한 어르신은 소주잔을 부딪치고 부엌 쪽 상조 도우미는 하얀 플라스틱 용기에 연신 육개장을 퍼냈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3단 카트에 제사용 과일과 음식을 날랐고 청소부는 입구 쪽 재떨이를 비웠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각자 자기만의 일로 분주했다. 삼십 분 정도 머물다 일어났다. 마중 나온 그녀가 일행 옆에 섰다. '감사합니다.' 짧은 인사에 다시 북받친 감정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힘내라는 말이 싫어 어깨를 잡았다. 앞으로 몇 번을 얼마큼 울지, 혹시 탈수로 쓰러지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얼마나 쏟아내야 그 슬픔이 풀릴 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습기 가득한 입구에 사람들 사이를 지났다. 메케한 담배 냄새 만큼 쏟아지는 습기에 타이를 풀고 재킷을 벗었다.

[단상] 순하리와 콩나물국밥

버스로 약 두 시간 이십 분 걸리는 세종시로 향했다. 거기서 근무하는 십년지기 고등학교 친구를 보러 표를 끊었다. 술을 제법 좋아하는 그가 퇴근 후 홈플러스로 픽업을 왔다. 주차 후 오피스텔 근처 카페에 들러 생맥주를 시켰다. 세종시는 이게 항상 아쉽다며 친구는 홍대 펍원과 주엽 와바를 그리워했다. 원액과 탄산의 황금배합과 청결한 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알싸함이 떠올랐다. 번화가로 자리를 옮겼다. 늦게 출발한 친구 마중과 2차 겸 움직였다. 주말이면 사람들이 빠지는 탓에 밤 10시가 넘으면 대부분이 문을 닫는다는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저 멀리 전주 콩나물국밥 간판이 보였다. 빌딩 한곳을 밝히는 그 불빛이 유독 빛나 보였다. 계단을 오르는 우리에겐 일단 이 밤을 길게 보낼 콩나물국밥과 술이 필요했다. 순하리를 시켰다. 술을 즐기진 않는 터라 인스타그램을 점령한 핫 아이템을 처음 봤다. 깍두기에 한 잔을 넘기자 달콤상큼한 내음이 입 안에 퍼졌다. 웃으며 또 한 잔을 나눴다. 십분 뒤 콩나물국밥이 나왔다. 수란에 국물을 조금 부어 호로록 마시고, 은종지에 담긴 꼬릿한 새우젓으로 간을 했다. 심심한 콩나물과 아릿한 마늘이 육수에 잘 우러났다. 한 수저 후 순하리를 입에 털어 넣었다. 순간 과학실 램프에 든 알코올처럼 비릿한 유자향이 솟구쳤다. 친구도 찡그리며 잔을 털었다. 삼분 전 짜릿했던 순하리의 신세계는 본래 쓴 소주도 달곰한 매화주도 아닌 비릿함만이 가득했다. 달큰한 유자향 혹은 콩나물 냄새인지 애초에 궁합이 안 맞는 둘인지 이유를 모르겠다. 아니면 누구나 먹었다는 순하리니까 나도 뒤처질 수 없다는 오기를 가장한 호기심이 부른 참극일 수도 있다. 아님 덤덤한 콩나물국밥엔 쓴 오리지널 소주라는 '정도'를 알면서도, 타인의 욕망에 사로잡혀 순하리를 찾은 죗값일지도 모른다. 자몽, 블루베리, 석류 각종 과일 향 소주가 인기다. 그날의 비릿한 추억을 누군가는 또 느낄까.

[창작단편] 조작 (원제: 피리부는 사나이)

닭이 울었다. 아직 잠에서 덜 깬듯한 여자가 눈을 비비며 일어난 앞치마를 둘렀다. 그녀가 두툼한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나무계단을 올랐다.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나무가 삐걱거렸다. 2층에 올라온 그녀는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늘 그렇듯 아이에게 모닝키스를 하려고 이불을 만지는 순간, 여자의 동공이 커졌다. 비어있는 침대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며 눈을 비볐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여자의 비명소리가 창문유리를 뚫고 나갔다. 5초 뒤 옆집에서도 비명소리가 들렸다. 꼬리에 꼬리를 문 비명이 온 마을로 퍼졌다. 아이들이 사라졌다. 한밤중에 일은 일어났고 누구도 아이들이 사라진 걸 보지 못했다. 남은 것은 마을 경계선까지 이어지는 발자국뿐이었다. 130명의 족적은 하나같이 보폭이 일정했다. 그런데 단 하나 큰 어른의 발자국이 군데군데 섞여있었다. 지그재그와 물결무늬가 합쳐진 신발 밑창은 외지인의 것이었다. 그가 분명했다. 사람들의 굳은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주민들은 마을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쥐를 없애주면 금화 5개를 주기로 사나이에게 약속했다. 그는 피리를 잘 불렀다. 사나이의 피리소리에는 듣는 사람을 홀리는 듯한 신기한 힘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쥐떼를 없애자 마을사람들은 입을 바꿨다. 금화를 주기는커녕 그를 주술사 취급하며 마을에서 내쫓았다. 장정들에게 끌려가며 사나이는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로 마을의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가져가겠다고 소리쳤다. 누구도 그 말을 신경 쓰지 않았고, 지금 아이들은 없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왕을 찾아갔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잡고, 없어진 아이들을 찾아달라는 간청이었다. 그들이 했던 약속과 없어진 쥐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왕은 병사들을 풀어 전국에 수배령을 내렸다. 7일이 지날 무렵 한 남자가 잡혀왔다. 그의 손에는 피리가 들려있었다. 신발도 사나이의 것과 똑같았다. 왕은 그를 감옥에 넣었다. 마을 사람들은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충성을 맹세했다. 왕은 아이들도 곧 찾아주겠다며 그들을 위로했다. 주민들은 마을로 돌아갔다. 그날 밤 사나이가 갇힌 감옥에 달빛이 들어왔다. 왕도 거기 있었다. 같이 온 경비들을 밖으로 내보내서 방 안에는 오직 둘 뿐이었다. 왕이 피투성이가 된 사나이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리고 사내 품 속의 피리를 꺼내 손에 쥐었다. 눈이 마주치자 사내가 빙긋 웃었다. 왕도 빙긋 웃더니 그 의 주머니에 작은 열쇠를 넣었다. 감옥을 나온 왕이 더 깊은 계단으로 내려갔다. 사방이 두꺼운 철장문으로 닫힌 그곳에선 어린 아이들이 피리를 배우고 있었다.

[영화리뷰] 손님(2015)

※ 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너랑 나만 아는 거야. 알겠지 약속?” 계약이 성립된 모종의 유대관계는 짜릿하다. 비밀엔 암묵적인 어떤 상황에도 말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따른다. 개인뿐 아니라 ‘우리’도 약속을 한다. 구성원의 비밀은 단단한 유대감을 만들지만 강한 ‘결박’ 도 된다. 누군가 이를 깨려고 할 때 그는 이단이자 공공을 위협하는 적이 된다. ‘손님’은 약속에 관한 영화다. 촌장(이성민)과 피리 부는 사나이(류승용) 간 전쟁에 관한 약속을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이 금기시하는 사건, 촌장과 미숙의 모종의 계약이 줄줄이 이어진다. 이 약속들은 좌시, 즉 입 단속의 대상으로 수면 아래 잠겨있다. 한편 쥐를 없애주면 돼지 값을 치르겠다는 촌장의 말은 누구나 인정한 공공성을 띈다. 그러나 표면위로 드러난 약속이 깨졌을 때 손님은 추방된다. 그렇게 쉬쉬했던 비밀들이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모두가 공멸하는 결말은 아이러니다. 약속의 과잉에 영화는 종종 지루하다. 마을 사람들과 피리 부는 사나이의 관계의 변화도 ‘북괴’ 만으로는 설득력이 약하다. 너무 많은 메시지에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지는 원작의 테제가 흐릿하다. 그래도 류승용을 비롯한 배우들의 합이 좋고, 소재는 호기심을 끈다. 곳곳에 녹아있는 유머코드가 덤이다. +) 관련 콘텐츠 추천 :'DOT' (다음 웹툰, 고립된 조직의 권력관계를 그린 작품,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