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Following
9,113
Follower
0
Boost

21세기의 유두틴트

"유두가 예쁜 색이라면 좋겠어요." 진과 제인 포드 자매는 당황했다. 스트리퍼라고 자신의 직업을 밝힌 눈 앞의 고객은 유두의 색이 너무 어둡다는 고민을 토로했다. 상체를 다 드러내고 공연을 해야 할 때가 많은데, 어둡고 칙칙한 자신의 유두 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시 뷰티 살롱을 운영하던 포드 자매로서는 처음 맞이하는 상황이었다. 과연 포드 자매는 스트리퍼의 유두를 그녀가 원하던 대로 붉은 색으로 물들여주는데 성공했을까? 놀랍게도 포드 자매는 장미꽃 추출액으로 스트리퍼의 가슴을 발그레하게 물들여줄 화장품을 개발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현재 틴트 시장의 선두주자인 '베네피*' 틴트이다. 요즘은 틴트라고 하면 으레 입술에 바르는 화장품을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틴트의 기원은 유두를 물들이는 것이었다.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유두의 색이 밝기를 희망하는 여성들은 여전히 많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유두 틴트 광고가 그 증거다. 사실 2차 성징이 나타난 이후 유두의 색이 짙어지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유두의 색이 짙어지는 것은 호르몬의 영향인데, 2차 성징이 나타나며 성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되기 시작하면 그 영향으로 유두의 색이 어린 시절과는 달라지는 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다. 여드름이 많이 나는 사람, 키가 더 자라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유두의 색이 더 짙어지는 사람 혹은 덜 짙어지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로 하여금 유두의 색에 신경을 쓰도록 만든 것은 사회의 편견이다. 유두가 어두운 색이면 성경험이 많다거나, 임신을 했었다거나 하는, 이제는 미신이라고 불릴법한 이야기들을 아직도 믿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어두운 유두 색 때문에 대중목욕탕이나 수영장에 갈 때, 혹은 연인과의 첫 관계를 앞두고 있을 때, 혹시 내가 '그렇고 그런' 여성으로 분류되지는 않을지 저어하는 여성들이 심심찮게 있다. 바로 이들이 유두틴트의 주 고객이 된다. 심각한 경우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유두 색을 밝게 만들어줄 수술까지 감행한다고 한다.

딸 같아서?

“그게 왜 성희롱이야. 파인 옷 입고 온 그 여자가 잘못이지. ‘숙일 때마다 그렇게 가릴 거면 뭐하러 그런 옷 입고 왔니. 그냥 다 보이게 둬’라고 말한 게 성희롱이야? 커피 좀 타오라고 하는 것도 성희롱이래요, 걱정해주는 것도 성희롱이래요, 이놈의 기센 여자들 때문에 살 수가 없어." - 드라마 <미생> 중 다음은 성희롱의 사전적 정의다. '직장 등에서 상대방 의사에 반하는 성과 관련된 언동으로 불쾌하고 굴욕적인 느낌을 갖게 하거나 고용상의 불이익 등 유무형의 피해를 주는 행위.' 피해자의 '느낌'이 성희롱 여부를 판단하는 주요한 요소기 때문에 삽입이나 접촉처럼 물리적 척도로 결정되는 성폭행이나 성추행보다는 다소 주관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성희롱 문제가 불거질 때면 '뭘 그런걸 가지고'하는 식으로 항변하는 사람들이 있다. 피해자가 지나치게 예민해 가벼운 농담이나 일상적인 대화마저 불편하게 만든다며 말이다. 그렇게 빡빡하게 굴면 대체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겠냐며 마지못한 사과에 조롱 섞인 핀잔을 덧붙이기도 한다. 미안하다 말은 하지만 실제로 미안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첫사랑을 다시 만났을 때

일본 유학 시절 하숙하던 주인집에는 아사코라는 예쁜 딸이 있었다. '스위트피' 꽃을 닮은 아사코는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그로부터 십 수 년이 지나 다시 아사코를 만났다. 여대생이 된 아사코가 쓰고 왔던 고운 연두색 우산이 지금도 생각난다. 아사코와 나는 날이 새는 줄 모르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지막으로 아사코를 보았을 때는 그녀가 어느 장교와 결혼해 살고 있었을 때다. 백합처럼 시들어가는 아사코의 얼굴과 마주쳤다. 나와 아사코는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요약)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 피천득 <인연> 첫사랑. 그만큼 설레는 이름이 또 있을까. 막 이성에 눈을 뜰 무렵 찾아왔던 첫사랑은 평생 가장 순수한 사랑이다. 재고 따지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 좋았던 사람, 편견이나 세속적인 잣대를 들이밀지 않고 마냥 좋았던 사람이 바로 첫사랑이니까 말이다. 시간이 흘러 감정적으로 끌리더라도 현실적인 조건이 맞지 않으면 다가가기가 망설여지는 어른이 된 지금, 첫사랑은 그래서 더욱 아련한 기억으로 남는다. 살면서 한번씩 '그 애는 지금 뭐하고 살고 있을까'하고 궁금해지기도 한다. 풋풋했던 그 애가 어떤 어른이 되었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말이다. 때문에 괜히 SNS를 뒤져보거나 포털에서 그 애의 이름이나 인적사항을 검색해본 적 있는 사람들이 꽤 많으며, 그들 중 일부는 알아낸 첫사랑의 연락처로 연락을 해 다시 한 번 만남을 시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애틋해 마지않던 첫사랑을 막상 다시 만나면 어떨까?

극혐주의 스킨십

사업가 브루노는 사랑에 서툰 남자다. 빈민가로 흘러 들어온 이민자 에바를 사랑하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몰라 번번이 상처만 준다. 그녀의 곁에서 맴돌기를 한참, 뜻밖에 그녀에게 도움을 주게 된 그는 그날 밤 기회를 보아 그녀에게 키스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에바는 차갑게 고개를 돌려 그를 외면하고 멋쩍어진 브루노는 되려 그녀에게 화를 내는데.. - 영화 <이민자> 중 스킨십을 좋아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스킨십이 항상 좋은 건 아니다. 그래서 여자친구가 스킨십을 기피하는 건 어쩌면 당신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전 편에서 한 바 있다. 이번 편에서는 구체적으로 당신의 어떤 스킨십이 여자친구로 하여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도록 만드는지, 극혐주의 스킨십을 알아보도록 하자. 1. 장소를 가리지 못하는 스킨십 : 상당히 기초적인 사실이지만, 의외로 이 사실을 간과하는 혈기왕성한 청년들이 많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여성 입장에서(물론 남성의 입장도 해당될 수 있다), 지하철이나 공원처럼 언제든 누군가에게 목격 당할 수 있는 공공장소에서의 진한 스킨십은 매우 부담스럽다. '진한'의 기준이 어디냐고? 여성이 친구와도 할 수 있는 스킨십인가를 기준으로 삼으면 된다. 팔짱 끼고 손을 잡는 것처럼 여자들이 동성인 친구와도 자연스레 하는 스킨십이라면 무방하지만, 그 이상의 농도 짙은 스킨십은 제발 둘만 있는 공간에서 시도해줬으면 좋겠다. 여긴 미국이 아니지 않은가. (물론 택시 안도 포함이다. 기사 아저씨도 '관람객'이 되실 수 있는 건 당연지사.)

여자친구가 스킨십을 싫어하는데, 왜 때문이죠?

여자친구가 스킨십을 싫어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과도하게 스킨십을 하는 건 아니고요, 그냥 보통 남자들 수준의 스킨십만 하는데도 그래요. 스킨십이 싫어서 저와 '친한 오빠 동생'으로만 남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까지 하더라고요. - 어느 남학생의 고민 '스킨십을 싫어하는 여자친구'는 20대 초반 남자들 사이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고민거리다. 연인끼리 스킨십을 하는 건 당연한데, 유독 다른 여자들에 비해 내 여자친구는 보수적이라거나, 스킨십을 기피한다며 한숨을 쉬는 그들의 축 쳐진 어깨가 안쓰럽다. 넋두리를 늘어놓는 그들의 결론은 대부분 정해져 있다. 남자의 성욕이 여자보다 강하니, 스킨십을 싫어하는 여자친구를 좀 더 배려하고 이해해보려 노력해야겠다고 그들은 스스로를 위로한다. 내 여자친구에게 말 못할 모종의 상처가 있을지도 모르니, 그녀가 원래 성욕이 극도로 부족한 사람이려니, 하며 접촉을 피하는 그녀를 정당화해주는 시도는 매우 가상하다. 사실 주변인에게 이런 고민을 늘어놓을 정도면, 이미 여자친구와도 어느 정도 대화를 해보았을 것이다. 왜 스킨십을 좋아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여자친구는 아마 뚜렷한 답을 해주지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정말로 여자친구에게 특별한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가장 큰 확률로 그 답이 될 법한 이야기는 한창 마음고생 중인 남자친구 본인이 미처 생각지 못한 다른 것이다. 어쩌면 여자친구는 스킨십 자체가 아니라 '당신과의' 스킨십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타인과의 스킨십을 좋아하도록 태어났다. 갓난아기들을 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것이다. 아기가 자신을 어루만지는 손길을 얼마나 갈구하는지 말이다. 스킨십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편안하게 하며 상대방과의 애착관계를 형성하는데 크게 도움을 준다. 성장하면서 가치관이 생기고 따라서 무분별한 스킨십을 마냥 받아들이지는 않게 되지만, 그럼에도 친밀한 사람과의 스킨십은 인간의 정서 함양에 대단히 중요하다.

세상의 모든 '노처녀'들에게

나이 서른 먹은 여자는 연애하기가 원자폭탄 맞는 것보다 어렵다고 어제 본 독일 영화의 여주인공이 그러더군. 웃기지 마! 나이 서른이 넘고 몸무게가 60Kg이 넘는 여자는 여자도 아니란 말이야? 인정 못해! 승복할 수 없어! 난 기필코 근사한 늑대 한 마리를 분양받아서 나의 운명의 그이와 잘 먹고 잘살 거야! - 지수현 <내 이름은 김삼순> 중 최고 시청률이 50%에 육박했던 국민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 종영한지 10년하고도 1년이 더 지났다. 당시 노처녀의 대명사였던 삼순이의 극 중 나이 30세는 11년이 지난 지금은 지극히 평범한 미혼여성의 나이다. 2015년 통계를 기준으로 결혼을 한 신부들의 평균 나이가 30세라고하니, 서른은 더 이상 ‘노’처녀 취급을 받을 나이가 아니다. 그런데 30대 여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일면 차갑다. 요즘은 ‘가격 후려치기’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는데, 30대 이상의 여자는 20대 여자보다 생식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본인의 소위 ‘스펙’이라 불리는 조건에 한참 못 미치는 남자가 ‘가격을 후려치며’ 다가와도 감사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란다. 남자 입장에선 번식에 사활적인 생식능력을 다소 포기하면서도 그 여성을 구매해준 셈이 되기 때문이다. 비혼주의자라면 모르겠지만 이쯤 되면 결혼을 바라는 30대 혹은 30대를 바라보는 여성들은 마음이 급해지기 마련이다. 이 사람이 과연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랑인가 하는 고민 보다는, 다들 결혼하는 그 시점에 이 사람과 만나고 있으니 그저 그렇게 결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의 단점이 크게 보이더라도,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냐’며 결혼을 밀어 부치는 이들이다. 그렇게 결혼을 하면 어떨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며 속상한 일이 생기고 마음에 안 드는 면이 있어도 그러려니 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러다 만약 정말 ‘이 사람이다!’ 싶은 소울메이트를 만난다면? 아무리 그저 그런 결혼이라 해도 이미 결혼을 한 이상 당신의 운명 같은 사랑은 결국 불륜이다. 그 때엔 어떤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