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윤형렬이 다시 무대에 섰다. 작년 <페스트> 이후, 약 9개월 만에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것. 오랜만에 선 무대에서 윤형렬은 그동안 뿜어내지 못한 감정을 원 없이 풀고 있다. 바로 <아리랑>이라는 작품에서 말이다.
<아리랑>은 조정래의 대하소설을 뮤지컬화 한 작품이다. 침략부터 해방기까지 방대한 이야기를 다뤘던 원작과 달리 뮤지컬은 1920년대 말까지로 시간을 한정했으며, 감골댁 가족사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윤형렬은 극 중 양치성 역할을 맡았다. 양치성은 양반인 송수익의 몸종으로, 열등감을 갖고 살다가, 아버지가 의병에 의해 살해된 것을 알고 친일파가 되는 인물이다.
양치성으로 무대에 오른 윤형렬의 분위기는 최근에 맡았던 <페스트>의 랑베르,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리스월드와 사뭇 다르다. 역할도 역할이지만, <페스트> 이후 피 같은 땀을 흘리며 준비했던 작품 <록키>가 관객들을 만나지 못한 여파도 빼놓을 수 없으리라. 덕분에 윤형렬은 더욱 단단해졌다. 10년 넘게 오른 무대지만, 소중함과 간절함을 절감하면서 감정을 담은 넘버의 농도는 더욱 짙어지고, 연기력에는 꽃이 피었다.
"그동안 대학원 논문도 쓰고, 나름 뜻깊은 시간을 보냈어요. 약 9개월 만에 첫 공연을 했는데 너무 떨리기도 하고, '내가 이걸 할 수 있나'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왠지 자존감도 낮아진 것 같고(웃음). 내가 10년 동안 오르던 무대인데, '이게 맞나?' 싶은 부분도 생기더라고요."
매일 오르는 무대도 긴장의 연속이건만, 오랜만에 오르는 무대의 긴장은 배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 게다가 그동안 쌓아둔 '윤형렬의 무대'를 향한 관객들의 기대가 있기 때문에 그의 '떨림'은 괜한 걱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나 첫 무대에 오르는 순간 모든 것이 '기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픈하고 탄력 붙으니 달라졌죠. '이런 거였지'라는 감정이 밀려오면서 감격스럽더라고요. 원래 제 자리를 찾은 감정이었죠. 첫 공연은 울컥 그 자체였어요. 작품이 갖는 색과 더불어 감정이 고조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