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이라고 부르면 1년전처럼 학동의 음악홀 건물 4층 한쪽 테라스에서 특유의 웃음소리와 담배 냄새를 풍기며 환하게 등장하실 것 같아요. '군인스러운' L이사가 새로 들어오고, 회사내 여러 가지 알력과 판단미스로 인해 팀이 갑자기 닻을 잃고 하염없이 떠밀려만 가던 그때, 저는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길어야 6개월, E사에서의 '좋은 날'은 다 끝났다는 것을.
어떻게 지내세요? 아주 가끔 짧게 전화통화하는 것으로는 안부를 알 수가 없네요. 때로는 그리움으로, 때로는 원망으로 팀장님을 떠올리곤 하지요. 가끔 답답한 조직문화와 불합리한 수직 체계를 강요하는 사람들 속에서 보풀처럼 일어나는 팀장님에 대한 생각은 무엇보다도 먼저 '보고 싶다'에요. 두 가지 일을 하면서도 어느 한쪽에 소홀하지 않으셨고, 그럴 필요가 없었을 때에도 늘 자상했으며, 잔정이 많아 종종 자신을 손해보면서도 사람을 챙겼던 팀장님을 되짚어보면 제가 서있는 자리가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것 같습니다.
팀장님과 제가 처음부터 친한 것은 아니었지요. E사에 입사해서 몇 달 동안 우리가 얼마나 데면데면했는지요. 중간에 한 사람이 나가고, 신입사원 하나와 제가 좋아하는 KSB형이 들어오고, 이라크 침공이 터지면서 그때까지 섞이지 못한 감정들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냈던 것 같아요. 팀이 좀 더 커지고, HYJ팀장님을 비롯해 여러 분들과 술자리를 함께 하게 되면서 회사생활은 점점 더 즐거워졌었습니다. '권위적'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두 팀장님들 및 팀원들과 일반적인 업무 교류 이외에도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들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중간중간에 위에서 내려오는 여러 가지 위기가 있었지만 그래도 같은 팀에 있었을 때, 그런 문제들은'안고 갈 수 있는' 사소한 트러블에 불과했었지요.
팀이 쪼개지고, 새 팀장을 맡느니 마느니 문제로 윗분들과 다툼을 하고, 'Generalist'들에게 깃대 없이 휘둘리기 시작하면서 저도, 다른 팀원들도, 일도 한없이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불황과 함께 온 회사의 급작스런 부침도 그에 한몫 했지요. 출퇴근시간에서부터 기획운영방향 하나하나에까지 L이사와 합의할 수 없었던 저는 굉장히 오랜 불면의 밤을 보냈습니다. 마침내 '대책없이' 나가기로 결정을 하고, 팀장님(그때는 이미 옛 팀장님이 되어버렸지만)과 상의를 하던 무렵 술은 얼마나 달콤했었는지요. 일하다 말고 잠깐 얘기하자, 며 팀장님과 회의실에 들어가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인생의 여러 이야기를 했었지요. 짧게 가졌던 몇 차례의 술자리에서도 서로 이해하고, 아쉬워하는 시간을 적지 않게 가졌던 것 같습니다. 제가 퇴사하면서 함께 간 여행에서도 (옛)팀장님과 (옛)팀원들의 수많은 배려는 변함이 없었지요. 언제 생각해도 참 흐뭇한 기억입니다.
추억담이 너무 길었네요. 아무튼, 팀장님이 자기 꿈을 찾아가고, 제가 다른 길을 찾아가고, KSB형도 자주 볼 수 없게 되면서 '생활의 위기'가 아닌 '실존의 위기'를 많이 느낍니다. 믿고 따르거나, 적어도 인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영혼의 동료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 것이지요.
이루어질리는 없겠지만, 그때 함께 일했던 좋은 사람들과 같이 일할 수 있다면 많은 부분을 놓아버려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Y사를 통해 팀장님께 얘기되었을 제안은 그런 의미에서 제가 갖고 있는 '놓지 못한 꿈'입니다. 설령, 그게 비합리적일지라도 팀장님과 함께 갈 수 있다면 저는 다른 결정들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뢰는 그런 의미에서 제 삶의 어리석은 한 축이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