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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

불행한 이들 사이에 있을 때, 나도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무실 책상에 머리를 떨어뜨리고 앉아 헤어나올 수 없는 인생을 저주하고 있었다. 술자리에서 가끔 행복한 얼굴을 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쨍한 웃음을 터뜨리는 누군가도 있었지만 그것은 잠시의 반짝임이었을 뿐,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한층 더 어두운 얼굴로 입술을 잠그고 일에 몰두하곤 했다. 집에 돌아가는 버스 속에서 책에 빠져 있다 어디쯤 왔는지 확인하러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승객들이 차의 흐름에 따라 힘없이 흔들리면서 어디론가 가고 있으나 아무 데도 가고 싶지는 않다는 표정을 눈물처럼 흘리고 있었다. 종종 나도 환한 조명의 커피집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렸는데 그것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또는 그냥 그 이후의 시간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불행은 전염병이었고, 이미 만연되어 있었으나 아무도 치료하지 않았고 다들 앓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특별하게 더 아프지 않았다. 때때로 자신이 너무 아프다고 소리지르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 사람은 백에 아흔아홉, 스물에서 스물 일곱 즈음의 젊은 아이들이었다. 같은 병이나 통증이 유독 또렷이 감각되는 시기의. 이제 나는 몇 알의 진통제와 치료약을 갖고 있다. 모두 다 알다시피, 통증을 완화하는 약이란 그저 신경을 마비시켜 자신을 속이는 위약이다. 알코올과 니코틴과 픽션과 음악과 화면 같은 것들. 한때는 그것들로 순간을 휘발시키는 질료로 사용하는 일이 생에 대한 모독이며 예술에의 비하라고 생각했지만 더이상은 그렇게 믿지 않는다. 쓸모란 정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롭게 발견되는 것이므로. 치료약이란 하나다. 모두가 그렇게 살기 때문에, 모두가 지금 인생이 뭔가 잘못 되었다고 여기기 때문에 계속 마모되다 보면 언젠가 다 닳아지거나 혹은 스스로를 포기할 수 있게 된다는 비루한 각성. 뒤에 서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돌진하는 세상의 지독한 속도와 거기 휩쓸려 가면서도 스스로를 놓치지 않았다고 믿는 수많은 동료들의 희미한 그림자를. 그러므로 때때로 나는 멈춰, 당신들의 불행과 아주 드문 환희의 순간들을 기록하고 싶다. 그리고 그 슬픔과 행복의 근거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천천히 셈해 볼 것이다. 도망치고 싶다, 고 말하는 모든 이들이 삶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도망치고자 하지도 않는 이들이 관성에서 떨어져 나올 수는 없다. 도망치려면 먼저 불평하라. 불평하는 사람들만이 도망칠 수 있다. 불평은 그 자체로 아무것도 아니지만, 출구와 출구에 대한 욕망을 자신에게 새겨넣는 작은 주문일 수 있다.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먼저 투덜거리라. 결국 못 마땅한 삶을 마땅하게 바꿀 사람은 이 세상에 딱 한 명 자신밖에 없으니.

LJH팀장님께 드리는 편지

팀장님, 이라고 부르면 1년전처럼 학동의 음악홀 건물 4층 한쪽 테라스에서 특유의 웃음소리와 담배 냄새를 풍기며 환하게 등장하실 것 같아요. '군인스러운' L이사가 새로 들어오고, 회사내 여러 가지 알력과 판단미스로 인해 팀이 갑자기 닻을 잃고 하염없이 떠밀려만 가던 그때, 저는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길어야 6개월, E사에서의 '좋은 날'은 다 끝났다는 것을. 어떻게 지내세요? 아주 가끔 짧게 전화통화하는 것으로는 안부를 알 수가 없네요. 때로는 그리움으로, 때로는 원망으로 팀장님을 떠올리곤 하지요. 가끔 답답한 조직문화와 불합리한 수직 체계를 강요하는 사람들 속에서 보풀처럼 일어나는 팀장님에 대한 생각은 무엇보다도 먼저 '보고 싶다'에요. 두 가지 일을 하면서도 어느 한쪽에 소홀하지 않으셨고, 그럴 필요가 없었을 때에도 늘 자상했으며, 잔정이 많아 종종 자신을 손해보면서도 사람을 챙겼던 팀장님을 되짚어보면 제가 서있는 자리가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것 같습니다. 팀장님과 제가 처음부터 친한 것은 아니었지요. E사에 입사해서 몇 달 동안 우리가 얼마나 데면데면했는지요. 중간에 한 사람이 나가고, 신입사원 하나와 제가 좋아하는 KSB형이 들어오고, 이라크 침공이 터지면서 그때까지 섞이지 못한 감정들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냈던 것 같아요. 팀이 좀 더 커지고, HYJ팀장님을 비롯해 여러 분들과 술자리를 함께 하게 되면서 회사생활은 점점 더 즐거워졌었습니다. '권위적'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두 팀장님들 및 팀원들과 일반적인 업무 교류 이외에도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들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중간중간에 위에서 내려오는 여러 가지 위기가 있었지만 그래도 같은 팀에 있었을 때, 그런 문제들은'안고 갈 수 있는' 사소한 트러블에 불과했었지요. 팀이 쪼개지고, 새 팀장을 맡느니 마느니 문제로 윗분들과 다툼을 하고, 'Generalist'들에게 깃대 없이 휘둘리기 시작하면서 저도, 다른 팀원들도, 일도 한없이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불황과 함께 온 회사의 급작스런 부침도 그에 한몫 했지요. 출퇴근시간에서부터 기획운영방향 하나하나에까지 L이사와 합의할 수 없었던 저는 굉장히 오랜 불면의 밤을 보냈습니다. 마침내 '대책없이' 나가기로 결정을 하고, 팀장님(그때는 이미 옛 팀장님이 되어버렸지만)과 상의를 하던 무렵 술은 얼마나 달콤했었는지요. 일하다 말고 잠깐 얘기하자, 며 팀장님과 회의실에 들어가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인생의 여러 이야기를 했었지요. 짧게 가졌던 몇 차례의 술자리에서도 서로 이해하고, 아쉬워하는 시간을 적지 않게 가졌던 것 같습니다. 제가 퇴사하면서 함께 간 여행에서도 (옛)팀장님과 (옛)팀원들의 수많은 배려는 변함이 없었지요. 언제 생각해도 참 흐뭇한 기억입니다. 추억담이 너무 길었네요. 아무튼, 팀장님이 자기 꿈을 찾아가고, 제가 다른 길을 찾아가고, KSB형도 자주 볼 수 없게 되면서 '생활의 위기'가 아닌 '실존의 위기'를 많이 느낍니다. 믿고 따르거나, 적어도 인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영혼의 동료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 것이지요. 이루어질리는 없겠지만, 그때 함께 일했던 좋은 사람들과 같이 일할 수 있다면 많은 부분을 놓아버려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Y사를 통해 팀장님께 얘기되었을 제안은 그런 의미에서 제가 갖고 있는 '놓지 못한 꿈'입니다. 설령, 그게 비합리적일지라도 팀장님과 함께 갈 수 있다면 저는 다른 결정들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뢰는 그런 의미에서 제 삶의 어리석은 한 축이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