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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 | 디에고 벨라스케스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는 세비야에서 성공한 법률가이자 소(小)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당대 에스파냐 문화를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들과 에스파냐 왕실가족의 초상으로 펠리페 4세의 궁정의 중요한 화가가 되었다. 사실주의자였던 벨라스케스는 복잡한 우의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대신 자신의 주변세계를 묘사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주인공의 낭만화되지 않은 모습에 관심을 두었던 그의 작품들은 주목할 만하다. 1650 | 캔버스에 유채물감 | 141×119cm | 이탈리아 로마,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 이 작품의 주인공은 75세의 교황 이노센트 10세이다. 1629년에 추기경으로 선출된 이노센트 10세(교황이 되기 전 조반니바티스타 팜필리)는 1644년에 교황의 자리에 올랐다. 나이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건장한 교황은 유난히 못생긴 외모와 성급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일벌레로 알려졌다. 이 작품에서 이노센트 10세는 교황의 공식복장을 하고 있다. 붉은 색이 그림의 주조를 이룬다. 교황이 앉아 있는 붉은색 팔걸이의자는 그의 혈색 좋은 얼굴과 살찐 뺨을 돋보이게 해준다. 벨라스케스는 교황의 아름답지 않은 외모를 그대로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과 단호한 표정으로 교황의 강인한 태도를 포착해냈다. 벨라스케스의 양식은 19세기 사실주의 화가와 그 이후 프랑스 인상주의자(특히 에두아르 마네)의 귀감이 되었다. 이 초상화를 여러 번 자신의 양식으로 모방했던 ‘불경한’ 영국 표현주의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처럼, 20세기에 가장 명망 있는 에스파냐 화가 피카소와 달리도 벨라스케스에게 찬사를 바쳤다. AH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명화 1001 작가 | 스티븐 파딩

팝 아트: 미술의 상업화, 상업의 미술화

현대 미술 중에 한 자리를 차지하는 대표적 흐름이 팝 아트다. 1950년대 영국에서 일어나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 확산된 현대 미술의 한 조류다. 뉴리얼리즘이라고도 불리는 팝 아트는 포스터·만화·통조림·전기 제품·자동차 등 대량 소비 시대의 기성품을 주요 소재로 한다. 또한 전후 미국과 유럽의 뚜렷한 사회적 경향인 소비주의에 대한 찬가이기도 하다. 대중문화와 대중 매체에 바탕을 두고 현대 기술 문명에 대한 낙관주의를 예술로서 표현했다. 팝 아트는 만화·광고 등 대중성을 획득한 이미지를 사용해 대중문화의 한 단면을 그린다.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의 <오늘날 가정을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는 팝 아트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다. 최신 가전제품과 생활 도구로 가득한 현대 가정의 모습을 콜라주 기법으로 표현했다. 남자 보디빌더가 쥔 사탕 포장지의 ‘POP’이란 글자에 착안하여 비평가가 ‘POP-ART’라는 말을 사용한 후 이러한 경향의 미술이 팝 아트로 불리기 시작했다. 해밀턴 | 오늘날 가정을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 1956년 근육질의 남성과 늘씬한 몸매의 여성이 자신을 뽐내듯이 정면을 응시한다. 마치 도색 잡지에 등장할 듯한 남녀가 성적 매력을 발산한다. 남성은 “당신도 강해질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여성은 “당신도 저처럼 날씬해질 수 있어요.”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구석구석으로 눈을 돌리면 현대 문명의 산물이 가득하다. 텔레비전, 소파 위에 펼쳐진 신문, 녹음기 등이 보인다. 계단에서는 가정부가 진공청소기로 청소를 한다. 한쪽에는 포드 자동차 휘장이 걸려 있다. 벽면에는 전통 액자에 그림인지 사진인지 모를 인물이 있는데 그 옆에는 그것보다 거의 4배는 커 보이는 만화 표지가 걸려 있다. 창문 밖으로는 대형 극장 간판도 보인다. 팝 아트는 ‘고상한’ 미술에 대한 도전이다. 흔히 문화를 순수 예술과 대중 예술, 고급문화와 저급 문화로 분류한다. 보통은 저급 문화에 대중 예술을 등치시킨다. 이러한 분류는 다수의 대중과 자신을 구분하려는 엘리트주의적 발상의 표현일 것이 다. 해밀턴은 대중이 공유하는 감성과 이미지를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다. 나름의 방식으로 시대의 단면을 무심히 드러내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래서 팝 아트 작품에는 자본주의의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상징을 보여 주는 온갖 상품이 등장한다. 텔레비전·라디오·녹음기와 같은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통조림·햄버거 등 패스트푸드 음식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해밀턴의 작품에는 포드 시스템에 의해 대량 생산되고 보급된 자동차가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다. 어딜 가나 깜빡이는 신호등, 교통 표지판도 현대를 상징하는 소재 중 하나다. “찾고 있던 소재는 유행·변조·소비성·기지·색정·글래머 등이었다. 저렴하고, 대량 생산적이고, 젊고, 대규모 사업적인 것이어야만 했다.”라는 언급을 보면 해밀턴은 자기 작업의 의미를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Legalize It | Peter Tosh (1975)

Writer | Peter Tosh Producer | Peter Tosh, Lee Jaffe Label | Intel-Diplo HIM Album | Legalize It (1976) 과거 웨일러스의 멤버였던 피터 토시의 데뷔 앨범의 타이틀 트랙 “Legalize It”은 1975년 자메이카에서 발매되었을 당시 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진압 노력은 모두 헛수고로 돌아갔고, 이 트랙은 그해 히트로 부상하며 자메이카의 “약초 요법사(Bushdoctor)”에게 국제적 유명세를 부여받게 했다. “대마는 담배처럼 여겨질 거예요.” 1978년 피터 토시가 NME 인터뷰에서 이렇게 예언했다. 여기 담긴 대마를 지지하는 가사와 마리화나를 피우는 포즈를 실은 커버 디자인, 전설적 존재가 된 마리화나 향 스티커가 물론 음반 판매를 조장했을지는 모르지만 이 기분 좋은 발라드가 단순히 마리화나 애용자들의 파티용 앤섬일 뿐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토시의 깊고 힘 있는 보컬은 웨일러스의 5인 악기 반주가 빚어내는 전염성강한 멜로디에 힘입어 이렇게 요구한다. “Legalize it and I will advertise it(그것을 합법화해라 그러면 내가 그것을 선전하겠다)”. 한편, 아이 스리즈(I-Threes) 중 2명의 보컬리스트(리타 말리와 주디모왓)가 이에 응수해 동의를 표한다. 마리화나를 의약으로 사용하자는 발칙한 가사와 그의 경쾌한 공격 속에는 정치적 이슈에 대한 그의 진심 어린 염려가 담겨 있다.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 | 베르트 모리조 Berthe Morisot

이 작품에서 베르트 모리조의 언니 에드마 퐁티용은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받으며 앉아 있다. 하늘하늘한 여름 실내복은 베르트 모리조가 다른 인상주의 화가처럼 흰색의 미묘한 색조변화를 표현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여기서도 코로에게 배운 미묘한 색조의 조화를 볼 수 있다. 그러나 1년 전 마네를 만난 다음 모리조가 작품을 다루는 방식은 상당히 다양해졌고 구성적 배열들은 자연주의적으로 변했다. 이 작품과 같은 해에 제작한 어머니와 언니를 그린 그림(그림 1)을 본 마네는 특정 부분을 수정함으로써 모리조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불같이 화를 냈다. 전적으로 출품자가 제작한 작품만 살롱전에 전시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 1] 베르트 모리조, <화가의 어머니와 언니> 1869-1870년, 워싱턴 내셔널갤러리 창가의 아름다운 용모의 언니가 멍하니 일본 부채를 만지고 있다. 임신 사실을 알린 에드마 퐁티용은 평화로운 파시Passy 구역의 어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표정과 몸짓은 지루함을 암시하는 듯하다. 다른 한편 매력적인 이국적인 물건 부채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미술에 대한 관심이 계속됨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다. 어머니 집으로 오면서 에드마는 남편의 사회적인 모임에서 잠시 멀어졌다. 그녀는 심지어 발코니가 아니라 맞은편에 있는 아파트도 보이지 않는 창가에 앉아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마네는 1년 전에 발코니에서 대담하게 바깥을 보는 베르트 모리조를 화폭에 담았다. 난간 반대편에서 보면 그녀는 신비하고 우아하며, 시각을 만족시키는 대상이다. 에드마와 발코니의 간격이 시사하듯이 세상은 그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창문 건너편 건물에는 꽃에 물을 주는 하녀와, 그녀 혹은 거리를 내려다보는 듯한 신사가 보인다. 이 남자의 위치는 카유보트의 뛰어난 작품을 생각나게 한다. 카유보트의 작품에서는 뒤로 돌아선 동생 마르시알이 매우 현대적인 구역을 홀로 지나가는 여인을 응시하고 있다. <창가에 앉아 있는 화가의 언니>, 1869년, 캔버스에 유채, 54.8×46.3cm, 워싱턴 내셔널갤러리 수많은 인상주의 그림에서 발견되는 시각의 강조는 다양한 요소에서 기인했다. 복잡한 도시에서의 개인적 공간과 공적 공간 대립의 문제는 그들의 겹침이 증대하면서 첨예해졌다. 개인의 외모는 익명의 세상에서 부각되기 위해 더 중요해졌다. 시각적인 볼거리는 엔터테인먼트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소통의 매체가 되면서 결과적으로 외관에 더 신경을 쓰게 된 것이다. 모리조는 이 초상화에서 언니가 처한 상황의 핵심에 있는 이러한 긴장을 탐구한다. <쥘리 마네와 그녀의 그레이하운드 라에르테스>, 1893년, 캔버스에 유채, 73×80cm, 파리 모네 마르모탕 미술관

자연을 닮은 곡선, 테시마미술관

환경과 작품이 이어지는 건축 니시자와 류에(건축가) 테시마미술관은 지세의 기복이 풍부한 아름다운 지형 속에 세워졌다. 그 주위의 자연이 지닌 곡선을 닮은 건물을 만들고자 물방울 모양을 떠올렸다. 거의 무형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자유 곡선의 형태이다. 도회지라면 주위 건물이 모두 직선이겠지만, 자연의 경우에는 모든 것이 곡선이다. 그것도 원호나 포물선 같은 수학적인 곡선이 아니라 자유로운 곡선이다. 그래서 미술관도 수식화했을 때 몹시 복잡한 식이 도출될 만한 곡선 형태가 좋겠다고 판단했다. 또 건물의 높이도 중요한 문제였다. 주변의 자연 풍경과 새로운 조화를 이끌어낸다는 테마였기 때문에 너무 높고 크게 했다가는 중세의 돔과 같은 형태가 되어버릴 수 있었다. 그보다는 물방울처럼 나지막한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구조적으로 보자면 이처럼 낮은 셸 구조는 지금까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설계도 간단하지 않았을 뿐더러, 건축 허가며 그 외 여러가지 행정적인 면에서도 어려움이 있었다. 구조 설계사인 사사키 무츠로佐木睦朗와 함께 작업하면서 그가 독자적으로 구조 계산을 해주었다. 그 어느 개구부에도 유리를 사용하지 않았다. 환경과 건축, 예술의 조화와 연속성이 몹시 중요한 테마였다. 유리를 넣으면, 아무래도 외부와 완전히 분리되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개구부를 열어놓으면 바람이나 비, 소리 등이 안팎으로 순환하기 때문에 미술관 안에서도 테시마의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안인 동시에 밖이기도 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테시마미술관뿐만이 아니라, 나는 언제나 환경과 이어지는 건축을 꿈꾼다. 또 건축 내용적으로도 연속성을 띠기를 원한다. 주거공간인지 미술관인지, 미술관이라면 어떤 성격의 미술관인지 등 건축물이 지닌 내용적 특성과 잘 어울리고, 주변 환경과 역동적인 관계와 조화를 가지는 건축이기를 바란다.

김홍도 화풍의 여운

이풍익의 <동유첩>에 실린 금강산 그림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진경산수화의 조류는 18세기 전반 겸재 정선에서 18세기 후반 단원 김홍도로 새로이 정형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예컨대 금강산도가 정선 화풍을 답습하며 형식화하는 경향을 보일 무렵, 김홍도가 부상하고 사생풍 금강산 그림이 새로운 영향력을 펼친 것이다. 김홍도의 진경산수화는 정선이 확립한 진경의 표현양식과 더불어 풍경을 잡는 시점에 서양화풍을 뚜렷이 수용했다. 또 표암 강세황이나 능호관 이인상, 현재 심사정 등 당대 문인화가들의 사의적寫意的 진경산수 화풍을 소화하여 자기 양식을 도출했다. 작가미상 〈환선정〉, 이풍익 《동유첩》, 1825~1838년, 지본담채, 20×26.6㎝,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김홍도는 당대 ‘국중國中의 화가’로 명성이 드높았던 만큼, 그의 화풍은 자연스럽게 ‘시대양식’으로 자리 잡으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자칫 혼동을 일으킬 만큼 똑같이 베껴그린 엄치욱嚴致郁을 위시하여 작가미상으로 전하는 19세기의 금강산화첩들이 대부분 김홍도의 화풍을 따랐다. 19세기에 그러한 김홍도 화풍의 흐름과 여운을 확인시키는 대표작이 여기 소개하는 우석 이풍익友石 李豊瀷, 1804~1887의 《동유첩東遊帖》이다. 《동유첩》은 당시 문인들이 기행시와 기행문, 그리고 그에 합당한 그림을 모아 시서화첩으로 꾸며 완상하거나 소장했던 당시 문인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예사료이기도 하다. 작가미상 〈해금강 전면〉, 이풍익 《동유첩》

카타리나 프리치 | Katharina Fritsch

나무로 뒤덮인 녹색조의 이미지 앞에, 무시무시해 보이는 곤봉에 기대어 서 있는 카라리나 프리치의 <거인>은 우리를 애절한 시선으로 대하고 있다. 불투명한 뿌연 회색빛 샅바를 입은 원시인은 어쩌다 자신의 시간과 장소에서 떨어져 나와 결국 갤러리의 광활한 하얀색 공간에서 헤매는 난민처럼 보인다. 그는 환상적이면서도 친근하다. 너무도 인간적인 인체의 세부사항들(머리가 벗겨진 정수리, 약간 나온 배, 처지기 시작한 가슴)은 누가 봐도 신화적인 기원과 연관된다. 풀이 죽은 얼굴은 익명의 행인의 특별할 것 없는 특징들을 지니고 있고, 그의 뒤 배경은 숲이 무성하고 넓게 펼쳐져 있지만 딱히 무어라 규정하기 어렵다. 〈거인 Riese(Giant)〉, 2008 | 폴리에스테르, 페인트, 195×95×70cm <거인>(신장이 193cm 가량의 뒤셀도르프 택시 운전기사를 모델로 함)은 프리치의 몇몇 조각작품들 중 하나로, 구상적인 이미지의 배경과 함께 전시되었다(배경의 작품 제목은 <우편엽서 4(프랑켄)>)이다). 예술가들의 작품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이 작품의 힘은 부분적으로는 스케일과 색채의 부조화에서, 또한 부분적으로는 따분함, 불안함, 매혹의 뒤섞임에서 온다. 조각상의 무광 코팅은 대량생산되는 사물들, 틀로 찍어낸 마네킹, 혹은 특대 사이즈 장난감 같은 인상을 준다. 반면에 경직된 자세는 삭막한 느낌을 보탠다. 하지만 디테일의 정도는 단순히 무엇을 대신한 것 정도로 무시할 수는 없게 한다. 프리치는 자신의 이력에서의 광범위한 소재들을 이와 동일하게 다루었다. 1981년부터 1989년 사이에 만든 형광 토템인 다수의 <성모상Madonna Figure>에서부터, 거대한 검은 설치류를 만든 무서운 <왕쥐>, 그리고 자신에게 해를 끼친 갤러리 주인의 초상을 새빨간 조각상으로 만든 <딜러> 등이 그것이다. 〈왕쥐Rattenkonig( Rat King)〉, 1993. | 폴리에스테르 레진, 페인트, 280×1300cm 기계로 제작된 것 같은 외관이긴 하지만, 프리치의 조각상 대부분은 손 주형, 석고 주조, 재작업, 폴리에스테르 재주조, 마지막에는 그리기 등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초기에는 자신이 직접 만들었지만, 이제 그녀는 최종 제작을 위해 모델들을 공장으로 보낸다. 이렇게 전통적인 수공 기법과 몰개성적 제조를 결합하는 그녀의 작업은 제프 쿤스와 무라카미 다케시 같은 포스트 팝 오브제 제작자들의 활동과 연결된다. 널리 알려져 있거나 도상적인 형태들에 초점을 맞추는 프리치의 방식은 예술의 내용과 디스플레이 유형에 관한 관객의 예측을 빗나가도록 허용하는 신속성을 작품에 부여한다. <거인> 같은 작품은 3차원 도상학의 일부를, 즉시 인지가능한 것의 아카이브를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상하게 변형되어 묘한 원시적 힘을 소유하고 있다. 〈딜러 Handler(Dealer)〉, 2001. | 폴리에스테르, 페인트, 192×59×41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