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김탁환을 이야기하려면 '조선명탐정'부터 얘기해야 할 것 같은데, 요즘은 '목격자들' 얘기부터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운선 침몰사건이라는 '조선시대의 세월호'를 다룬 얘기입니다. 물론 이 사건을 따라가는 것도 선비 명탐정 김진과 정의감 넘치는 의금부도사 이명방이니, 목격자들은 조선명탐정의 최신판인 셈입니다. 하지만 초기작의 유쾌함과 달리 김진과 이명방이 마주하는 조운선 침몰사건은 한국 사회의 세월호처럼 답답하고 슬픈 이야기라고 합니다.(저도 사놓기만 하고 못 읽었습니다.)
김탁환은 다작(多作)하는 작가입니다. 1996년 첫 장편 '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이야기'를 쓴 뒤로 1, 2년마다 소설을 발표합니다. 권수로 따지면 연간 장편 1권 분량이 넘습니다. 당장 1998년에 4권짜리 '불멸'을 발표했고, 1999년에 '누가 내 애인을 사랑했을까' 출간, 같은 해에 2권짜리 '허균, 최후의 19일'을 또 펴냅니다. 2000년부터 2001년까지 2년 동안 7권짜리 장편소설 '압록강'을 발표했고, 그해에 '독도평전'이 나왔으며, 2002년에는 '나, 황진이'와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이 출간됩니다. 2003년 드디어 조선명탐정 시리즈의 탄생을 알리는 두권짜리 '방각본 살인사건'이 나오고, 98년 출간한 불멸을 완전히 다시 쓴 '불멸의 이순신'(동명 드라마 원작)이 8권 분량으로 다시 나옵니다. 2005년에 '부여현감 귀신체포기'(2권), 역시 같은 해에 조선명탐정 시리즈인 '열녀문의 비밀'(2권)이 나오며 ... 다 쓰기가 힘듭니다. 2006년에만 '애이불비-백제인의 사랑', 단편집 '진해벚꽃', 장편 '파리의 조선궁녀, 리심'(3권)이 나옵니다. 2007년에는 '노서아가비'와 '열하광인'(2권)이, 2008년에는 '혜초'(2권)가, 2009년에는 다시 쓴 '홍길동전'이 계속 나오죠. 2010년에는 SF인 '눈먼시계공'과 '밀림무정'(2권)이, 2011년에는 동화에 도전한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왕대'가, 2013년에는 'BANK'(3권), 그리고 2014년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따라가며 조선 500년을 다루겠다는 각오로 '혁명-광활한 인간 정도전'(2권) 작업을 시작하죠. 같은 해 호랑이 왕대 시리즈도 이어져서 왕대 휴전선을 넘다'와 '백두산 으뜸 호랑이 왕대'가 이어지고, '조선누아르, 범죄의 기원'도 나옵니다. -_-;;; 이게 많이 누락시킨 겁니다.
저는 김탁환 작가의 소설을 참 좋아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운데 다 읽은 건 절반 정도밖에 안 됩니다. 이중에서 방각본 살인사건 같은 건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얘기고, '눈먼시계공'이나 '나, 황진이' 같은 소설은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소설가의 소설에 대해 늘 명작을 기대하는 건 도둑놈 심보죠. 야구선수는 3할대 타율만 기록하면 대단하다고 손가락을 추켜세워주면서 작가에게만 9할대를 요구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이건 제 얘기가 아니고 문학평론가 김동식 선생의 얘기입니다.)
소설가란 시대의 더듬이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김탁환은 한국의 대표적인 대중소설 작가이고, 실험적인 소설보다는 누구나 쉽게 즐기며 읽을 수 있는 방각본 같은 소설을 쓰려고 노력하는 작가입니다. 그런 그가 작년에 혁명을 출간하면서 했던 말이, 조선왕조 500년에 남은 인생을 걸어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이 결국 그의 모든 작업을 중단시켰습니다. 김탁환은 대한민국의 세월호를 꼭 빼다박은 조선왕조의 조운선 속에서 오늘날의 우리를 그려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역사소설부터 SF까지 넘나드는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가장 깊고 어두운 우리 자신의 심연(深淵)은 어떤 모습일까요. 김탁환을 모를 수는 있어도, 김탁환의 소설에서 파생된 이야기를 보지 않고 넘어가는 한국인은 거의 없게 마련입니다. 그런 한국인에게 작가가 묻습니다. 1년이 지났는데, 과연 여러분의 배는 지금 안전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