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kjun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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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고..

저는 동양화 전공을 하는 21살의 대한민국 청년입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제가 좋아하는 작업 스타일은 서양미술계와 가까워보입니다. 대학입시를 수시로 끝낸 직후부터 근 2년가까이 저를 계속 괴롭히던 문제가 있었습니다.
'나의 그림은?' 제 감성과 개성과 스타일, 가치관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작가 본인만의 화풍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양화를 전공하게되고 1년간은 동양 미술재료를 쓰면서 오로지 동양적인, 한국적인 화풍만 고집하고 그안에서 저만의 그림을 찾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제 감성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꾸 심미적이고 사실적인부분은 무시한채 늘 격하고 추상적인 부분만 따라가더군요. 주변인들도 '너는 동양화 작가인데 왜 자꾸 그런것들만 그리느냐', '그럴거면 서양화전공으로 가라', '이건 네 그림스타일이 아니지 않았느냐' 라는 둥... 혼란스러웠어요.. 저 나름데로 한국화 전공이란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게 저의 그림이자, 미래인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근 2년이란 시간동안 이것저것 해보다가 어느날 우연히 tv에서 방영중이던 한 영화를 보게되었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 극중 주인공(로빈 월리암스)가 말하길,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는 어렵다. -중략-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신념의 독특함을 믿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이상하다고 보든 나쁘다고 생각하든 '숲 속의 두 갈래 길에서 난 왕래가 작은 길을 택했고 그게 날 다르게 만들었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2년간의 갈등이 정리가 되더군요.. 어쩌면 제가 이말을 잘못 해석했거나, 몽상가적인 생각일지도 몰라요. 이상주의자라고 해도 할말없겠죠.. 하지만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거니까, 아직은 젊을 때, 시간이 있을 때, 저는 저의 신념을 믿고 자신만의 길을 걷는데 용기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인생에서 막다른 길이란건 없으니까. -글이 길어졌네요;; 지루한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혹시나 자신만의 감성(그림)을 찾지못해 방황하거나, 미술을 좋아하는데 삶의 스트레스에 지쳐 작업의욕이 없어진 분들께 추천합니다.^^
sukjun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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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장미쉘바스키아 느낌?
중국에도 비슷한 화가 있습니다, 吴冠中 이라는 화가인데 동양적인 기법에 서양적인 느낌을 접목시킨게 신선하더라구요, 남들시선 신경쓰지 마세요, 특히 순수미술창작에 있어서 더더욱 그래야된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신념 지켜나가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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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가 느껴지네요
있는 그대로 생명력이 넘치는 작품들 잘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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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에 생명을, Akie Nakata
바닷가에 뒹구는 예쁜 돌들 집어온 기억, 다들 한번쯤은 있으실 거예요. 돌을 집어다가 어항이나 화분에 깔아두기도 하고, 여행 다녀온 기념으로 간직하기도 하고 또는 돌에 글씨를 써서 선물하기도 하고. Akie Nakata씨에게는 돌들이 그저 돌로 보이지 않았대요. 왠지 쟤네 동물처럼 생겼다 싶은 생각이 들었던거죠. 보통은 '얘 봐라 곰같지 않아? ㅋㅋㅋㅋㅋ' 하고 말았을텐데 그녀는 더욱 그 동물처럼 보이게 만들기로 했어요. 자신이 그 돌에서 무엇을 캐치했는지를 모두가 알 수 있도록 :) 차근차근 색을 넣고, 마지막 눈을 그릴 때 비로소 그 동물이 생명을 갖는다고 생각을 했대요. 어때요, 진짜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지 않아요? 그녀가 찾아낸 생명들을 함께 감상해 보시죠. 당장이라도 또아리를 풀 것만 같아 아니 이게 돌이라니 이제는 돌이라고 무시하지 말아요. 안도현의 시가 떠오르는 시점이로군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또는 김춘수의 꽃도 떠오르지 않나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Akie Nakata씨는 이 작업을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Akie Nakata씨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방문해 보세요.
정신분열증 화가 루이스 웨인의 작품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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