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hghl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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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잠만 자요.

신혼이라 깨소금 좔좔...ㅋㄷ 제 아는 분이 그러시더군요. "와이프 잠만 잘 때가 제일 행복한거다. 나중가봐라...(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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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을하면 거의 잠이많이 올꺼예요 저두 예전에 시부모님 모시고있을때 잠은 쏟아지는데 시시때때로 끼니를 챙겨드린다고 일어나는것이 너무 힘들더라구요 힘들겠지만 이해를 해주셔야될듯하네요~~~~
잠이 정말정말 많이와요... 걱정마세요 ... 행쇼!!
교대근무후 후유증과 초기임신기간중 잠이 많아 지는데‥ 두가지 이유가 같이 온듯합니다‥^^ 저도 퇴사후 한동안 엄청 잤었거든요~ 예쁜결혼생활 하세용~♥
배가부를수록 잠을 편히 못자요 저축잠이니 먹을것 잘 쟁여주세요
잠도 억지로는 못자요,, 잘 땐 그냥 내버려 두세요,( 좀 있으면 많이 먹는다고 사연 올릴 수도 있겠는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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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트 샤펠,
좁은 나선형 계단을 앞사람의 등만 보며 올랐다. 어디에선가에서 연이어 터지는 희미한 탄성이 우리의 귀에 조금씩 더 명확하게 들려오기 시작하자 이름 모를 우리 앞의 등들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졌고 우리는 이 짧은 고행이 곧 끝남을 알 수 있었다. “와아.”  우리의 뒤를 이어 누군가가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도 깜빡 잊은 채 우리는 그만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우리에게 쏟아져 내려오는 것은 빛이 아니었다. 좁은 어깨를 하고 걷던 봄날, 우리의 머리를 뒤덮으며 내리던 시린 붉은 비, 그 여린 듯 진했던 벚꽃비처럼 그것은 한 뭉텅이로 우리의 추억 안에 지울 수 없는 색을 밀어 넣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이 비도 좀처럼 무뎌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한국에서 받아온 기본 서류들을 번역하고 공증을 받기 위해 트램을 타고 벼룩시장이 유명한 Vanve까지 갔다. 그리곤 다시 지하철 13호선을 타고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이 있는 Varenne역으로 갔다. Varenne역은 근처에 로댕 미술관이 있는 곳으로 지하철 출구로 나와 대사관들이 모인 거리로 걸어가다 보면 왼편으로 육군박물관이 보이고 그 앞 광장 너머로 에펠탑이 보이는 마치 서울의 광화문과 같은 느낌의 지역이다. 육군박물관 뒤편으로 황금색 돔이 유난히 눈에 띄는데 그곳이 바로 프랑스혁명의 영웅이자 동시에 역적인 애증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그의 일가가 묻혀 있는 Tombeau de Napoléon이다. 공증이 완료된 서류를 다음날 오전 11시 이후에 찾으러 오라고 해서, 다음날 오전 수업을 마치자마자 우리는 다시 트램에 올랐다. 트램은 전 세계 각국에서 지원을 받아 만든 그래서 각국의 이름을 딴 기숙사들이 모여 있는 씨떼 유니벡시떼를 지난다. 건물들은 조금 낡았지만 가격이 싸서 인기가 많고 따라서 입주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 곳이다. 하루를 다녀왔다고 익숙해진 풍경들을 지나 Porte Vanve역에서 메트로 13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는데 우리의 근처에 서있는 누군가의 인상이 문득 나의 눈을 잡아맸다. 오랜 시간 연기를 하고 또 영화를 만들다 보니 사람들을 관찰하고 혼자서 그들의 성격이나 처한 상황 그리고 감정이나 목적까지도 추측 추리 상상하는 버릇이 몸에 깊게 베여 있다. 그래서 사람들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많은 것들을 지레짐작하게 된다. 그것이 어떤 편견이 되진 않을까 싶어 절로 완료되는 짐작들을 애써 지워 버리려고 애먼 노력을 또 하곤 하는데 이곳은 낯선 땅이라 내 생각들이 편견일 확률 또한 높아서 여태껏 한국에서 보다 더욱 조심을 해왔다. 프랑스의 지하철에 대한 여러 글들을 많이 봤고, 소매치기와 거동이 이상한 사람들을 마주친 여러 사람들의 경험담도 또 그때 그들의 대처들도 지나치게 보고 이곳으로 왔지만, 지난 한 달간 딱히 위험한 상황을 만난 적은 없었다. 프랑스에서 유학하는 사람들이 모여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아무런 사건 없이 생활을 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방심했을 때 소매치기를 당하고 말았다는 글을 읽고는, 반은 장난으로 ‘방심하다 당한다’ 며 서로에게 잦은 주의를 주곤 했지만, 시간의 힘이 참 무서워 요즘은 긴장을 거의 안 한 채 지내고 있던 참이었다.  13호선은 우리가 주로 타고 다니는 7호선과는 다르게 의자가 한편으로는 한 열이 나있고 다른 한편으로 두 열이 나있는 비대칭 구조이다. 다른 호선의 지하철들처럼 정방향의 의자와 역방향의 의자가 서로 마주 보게 되어 있는 구조는 마찬가지였다. 나와 엠마는 두 열의 의자가 나있는 쪽에 정방향의 의자에 나란히 앉았고, 그 남자는 다른 쪽 한열의 역방향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문득 들었던 부정적인 인상을 지워내고는 핸드폰으로 뭔가를 검색을 하고 있을 때, 어떠한 짐작되는 이유도 없이 그 남자가 불쑥 나의 앞자리로 자리를 옮겨 왔다. 다른 이곳의 사람들과 달리 나를 빤히 바라보는 모습에 혹 소매치기를 하려는 건 아닐까 싶어 하던 검색을 멈추고 핸드폰을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런데 이 남자의 목적은 우리의 물건이 아닌 건지 우리를 방심하게 만들려는 어떠한 수작도 없이 노골적으로 우리를 노려보는 게 아닌가. 우리는 괜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이 남자는 계속 우리의 돌린 옆얼굴을 노려보다가 심지어 창문으로 고개를 돌려 창문에 비친 우리를 눈을 찾아내 노려보기 시작했다. 순간 확실해지는 이상함에 나는 등이 굳었다. 평일 오전이라 객차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창문에 비친 남자를 주의 깊게 견제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남자는 왠지 모를 흥분까지 느끼며 우리의 돌린 얼굴과 창문에 비친 우리의 이미지를 번갈아 노려보는 일을 지속적으로 반복했고 급기야 몸을 조금씩 떨기까지 했다. 연기를 통해 익힌 경험을 비추어 보면 일반적으로는 감정이 신체의 징후를 만들어내지만 신체의 징후 또한 숨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나는 더욱 긴장을 했다. 남자의 신체 징후는 분명 이 감정이 그의 내면 안에 가만히 갇혀 있을 만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남자의 감정과 신체가 서로를 계속 불러내며 확장을 해가고 있을 때 열차는 다행히 이름 모를 정거장에 멈춰 섰다. 나는 마치 이곳이 Varenne역인 듯, 당연한 듯 엠마를 데리고 열차에서 내렸다. 엠마도 긴장을 많이 했는지 놀란 얼굴을 쉽게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남자가 우리를 따라 내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끝까지 그를 살폈다. 다행히 그 남자는 열차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열차가 정거장을 떠날 때까지 남자는 우리를 노려 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굳었던 식은땀이 등줄기를 따라 서서히 녹아내렸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잠자리를 설쳤다. 결국 다음날, 여러 번 울린 알람에도 우리는 침대 위를 떠나지 못했다. 오전 수업이 시작하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우리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뒤늦게 발을 돌려 올린 창문 밖에서 위로 같은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햇빛을 받으며 숨을 좀 녹인 후 우리는 하나의 사건을 렌즈로 파리를 바라보진 말자고 다짐을 했다.  기왕 학교를 못 간 김에 우리는 파리의 동쪽 크레테유라는 곳에 위치한 우리 지역 CAF 아정스에 서류를 내러 가기로 했다. CAF는 주택보조금을 산정, 집행하는 기관으로 인터넷으로 가입, 신청을 한 후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해서 우편을 통하거나 직접 제출을 하면 검토 후 각자에 맞는 보조금을 산정해준다. 아날로그의 나라 프랑스도 많은 변화가 있어 CAF도 모든 서류를 스캔한 뒤 온라인상으로도 제출할 수 있게 되었다지만 검토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기에 가장 빠르게 처리된다는 직접 제출을 하러 간 것이다. 파리가 아닌 외곽 지역은 위험한 곳도 많다고 들었기에 우리는 어제의 기억까지 더불어 떠올리며 긴장을 했다. CAF 아정스는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간 후 조금 걸으면 되는 곳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외곽지역을 둘러가는 동안 보는 풍경은 파리의 중심지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공항을 오가는 도로에서처럼 거리에는 그래피티가 가득했고 현대식으로 지어진 커다란 아파트 단지도 높은 굴뚝이 있는 발전소나 공장 같아 보이는 곳도 자주 눈에 띄었다. 넓어진 센느강의 모습도 고풍스러운 건물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던 파리에서의 모습이 아니라 여느 곳에 흐르는 고요한 강 그 따름이었다. 강변은 온통 풀밭이었고 강 위에는 큰 새들이 앉아 먹이를 찾고 있었다. 낯선 거리의 모습에 경계와 신기함이 반쯤 섞인 시선으로 두리번거리며 CAF 아정스에 도착을 하자 먼저 건물 입구에 긴 줄을 선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파리의 주거비용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벅찬 짐이 되는지 아침부터 먼 곳까지 와 긴 줄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순서를 기다려 아정스의 직원에게 검토를 받고 제출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었지만 건물 밖에 장치해둔 CAF전용 우체통에 집어넣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글도 많아서 우리는 긴 줄에 두 명을 더 보태는 일을 포기하고 그냥 우체통에 서류를 집어넣고 가기로 했다.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우체통에 서류를 집어넣는 모습이 보여 우리는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서류가 잘 검토되길 바라며 우체통에 서류를 집어넣고 기념사진을 찍는데 아정스를 들렸다가 나온 한 흑인 아저씨가 우리를 응원을 해줬다. 그리고 홀로 줄을 서고 있던 한 한국 청년이 그 모습을 보며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이신가요? 서류 그냥 여기에 넣고 가면 되는 거예요?” 서류를 봉투에다 넣어서 밀봉을 한 후 우체통에 넣어야 하는데 그 청년은 그런 사항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정스 안에 가면 봉투를 준다는 글을 본 것 같아 청년에게 알려주었다. 청년은 고맙다며 아정스 안으로 가고 우리는 남은 오후를 소중히 보내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먼저 파리의 동쪽에 있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들려보기로 했다. 내가 무척 가보고 싶어 하던 곳이었는데 영화의 성지에는 역시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좋을 거 같아서 프랑스어가 조금 더 들릴 때까지 미뤄둬야지 했었다. 다만 오늘은 파리의 동쪽으로 나온 김에 인상적이라는 건물의 모습도 봐볼 겸, 영화 박물관이라도 봐보고 갈까 해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있는 Bercy역으로 갔다.  역에서 나와 조용하고 깨끗한 거리를 조금 걸으니 사진에서 봐왔던 역시나 다양한 곡선들이 인상적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눈에 보였다. 이곳은 빌바오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은 프랭크 게리의 작품으로 원래는 미국 문화원이었던 곳이다. 2005년, 에펠탑을 마주 보고 있어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샤이요 궁 안에 있던 옛 시네마테크를 옭겨오기 위해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했다고 한다. 영화 몽상가들에 등장하던 68 혁명의 주무대였던 프랑스 영화의 최전성기를 지탱하던 ‘그 시네마테크’ 는 이 건물이 아니지만 시네마테크는 위치나 외형보다는 내용이 더 핵심이기에 Cinematheque Fracaise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이처럼 들떴다. 시네마테크 앞에는 조용하고 예쁜 공원이 있었고 그 안에는 작은 회전목마가 있어 이질적인 건물과 함께 영화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영화를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을 거 같아 예고편처럼 사진 몇 장만 찍고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Bercy는 계획도시처럼 긴 공원을 따라 길고 낮은 아파트가 쭉 이어진 곳이었다. 공원이 끝나는 지점에 Bercy village라는 예쁜 쇼핑몰이 있었다. 이곳은 한때 세계 최대의 와인시장이 있었던 곳으로 건물의 외관을 최대한 유지한 채 내부만 리모델링을 해서 지금의 쇼핑몰로 꾸민 곳이다. 당시 와인을 운송하던 기찻길도 그대로 남아 있어 마치 파리가 아닌 지방 소도시의 번화가를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규모는 작지만 테라스 자리에 앉아 햇볕을 쬐기에는 좋은 곳 같았다. 햇볕은 좋았지만 날씨는 꽤 차가웠는데 테라스 자리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우리도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남은 낮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해 보기로 했다. 
 엠마가 마침 지하철을 타면 한번 만에 가는 곳에 Châtelet역이 있다며 Sainte Chapelle에 가보자고 했다. 처음 어학교재를 사러 시떼섬에 갔을 땐 긴장된 걸음으로 그 앞을 지나치기만 했던 곳이다. “Oui.” Sainte Chapelle은 고등법원 건물과 붙어 있어 파리의 관광지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보안 검사를 하고 있었다. 흡사 공항에서와 같이 짐 엑스레이 감사와 금속탐지 검사도 거친 후 부속 건물의 뒷문으로 나가자 센느 강 어느 다리에서도 보이던 날카로운 첨탑이 가고일 꼬리를 꽉 쥔 채 우뚝 서 있었다. 검은 괴수들이 사방으로 울부짖고 있는 검은 첨탑 너머의 하늘은 티 없이 파랬다. 그래 신은 이곳에는 없는 거지. Sainte Chapelle은 성루이라고 불리는 루이 9세가 동로마제국의 황제에게 금전적 지원의 형식으로 사들인 예수의 가시 면류관과 후일 모은 예수의 못 박힌 십자가 조각 등의 성물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왕실 전용 예배당이자 보물창고이다. 티켓을 끊고 듣어간 곳은 성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은 높이에 기둥이 유난히 많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는 단출한 홀이었다. 심지어 그곳 안에 기념품을 파는 곳과 안내 전단을 배포하는 곳까지 같이 자리하고 있어 더욱 이곳이 사람들이 그렇게나 찾을 만한 곳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알고 보니 그곳은 궁중 관리들과 성당을 관리하는 이들을 위한 예배공간이고 왕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준비된 곳은 이 낮은 홀이 위층 공간이었다. 이곳이 보통의 성당들 보다 낮은 이유도 기둥이 많은 이유도 위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파리에 온 후 수없이 오른 나선형 계단을 앞사람의 등만 보며 올랐다. 위쪽 어딘가에서 사람들의 탄성이 연이어 들려왔다. 아래층의 모습에 실망해서인지 별다른 기대는 가지지 않고 허벅지를 손으로 도우며 계단을 오르는 일에만 집중을 하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뱉고 말았다. “와아.” 그곳은 그 안 든 것이 어떠한 모습의 어떤 마음의 사람이든 그 안에 든 것이 어떤 피비린내가 나는 프로필을 지닌 물건이든 아이들의 보석함의 고증 없는 ‘보석’ 들처럼, 모두를 모든 것을 그저 순수히 빛나게만 만들어버리는 섬뜩한 마법의 공간이었다. 15미터의 거대한 스테인글라스가 최소한의 테두리만 두른 채 공간 안으로 피할 수 없는 색깔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고개를 들고 오래도록 바라보게 하는 것들, 가령 하늘이나 별 같은 것들. 내가 한다던 비워내고 납득하는 그런 아름다움 말고 집요하게 강요하는 채우고 또 채워서 지나침을 훨씬 더 지나쳐 내가 모르는 곳으로 그곳으로 넘어가 버린 아름다움을 보면서 나는 내가 하는 예술이 미리 지고서 핑계만 오래 고민하고 있던 건 아닌지 조금 씁쓸했다. 이 곳은 온통 빼곡하다. 빈 손으로 꾸밈도 없이 걷기 위해 오랜 시간 나를 붙잡고 얘기를 해 왔는데 벌칙처럼 온통 내가 못하는 그저 아이처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어야 할 것이 가득한 이 곳으로 불쑥 와버렸다. 우습다. 사람은 그렇게 멋대로 걸어간다. 자기 물건이 가장 지겨워서, 자신과 다른 이의 품으로 기꺼이 간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낯설어진 나를 나는 또 가까스로 소개를 해야 하겠지. 내가 마치 이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돈도 잘 내고 길도 잘 찾고 하지만 내일에 해야 말만은 여전히 모른다. Oui ou Non 으로 대답하는 내 시꺼먼 마음에 뭐가 걸쭉하게 녹아 있는지 꺼내지 못해서 모르겠다. 가끔은 주말에 무엇을 또 보러 가기가 조금 겁날 때가 있다. 보고 좋아하는 거 말고 내가 해서 보여주고 싶어 그런 거겠지. 안다. 그 마음.  좋은 것을 보고 나면 우린 더 많이 지쳐 파리 지하철의 악명도 다 잊고서 머리를 붙여가며 졸기까지 한다. 안다. 당신의 그 마음도. 글, 영상 레오 촬영 레오, 엠마 2019.10.29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지내고 보면 모두가 그리운 것 뿐인 뿐 일까요?
지내고 보면 모두가 그리운 것 뿐인 뿐 일까요? 그때는 뼈를 녹일것 같은 아픔이나 슬픔 이였을 지라도 지나고 보면 그것마저도 가끔은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견디고 살았던가 싶을 만치 힘들고 어려웠던 일도 지금 조용히 눈을 감고 그때를 추억하다 보면 더욱 생생하고 애틋한 그리움으로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어찌 생각해보면 이시간이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과 고통스러운 삶의 길목에 서있다 할지라도 결코 이겨내지 못할 일은 없다는 뜻이 아닐런지요? 가진 것의 조금을 잃었을 뿐인데 자신의 전부를 잃었다고 절망하 는것은 남이 가지지 못한것을 보지 못함이요 남이 가진 것을 조금 덜 가짐에서 오는 욕심이며 비워야할 것을 비우지 못한 허욕 때문이며 포기와 버림에 익숙하지 못해서 일수도 있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기로에 서있는 사람들의 기도는 참으로 소박합니다. 비록 평생 일어서지 못한다 할지라도 살아 숨쉬고 있음 그 하나가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 되고.... 남의 가슴에 틀어 박혀 있는 큰 아픔 보다 내 손끝에 작은 가시의 찔림이 더 아픈 것이기에 다른 이의 아픔의 크기를 가늠하긴 어렵지만 더이상 자신만의 생각과 판단으로 스스로를 절망의 늪으로 밀어넣는 일은 말아야 합니다. 지난 날을 되돌아보면 아쉬움도 많았고 후회와 회한으로 가득한 시간이였을지라도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새 날의 새로운 소망이 있기에 더 이상은 흘려보낸 시간들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 두려하지 마십시요. 아픔없이 살아온 삶이 없듯이 시간속에 무디어지지 않는 아픔도 없습니다 세상을 다 잃은듯한 아픔과 슬픔마저도 진정 그리울 때가 있답니다. 병실에서 아스라히 꺼져가는 핏줄의 생명선이 안타까워 차라리 이순간을 내 삶에서 도려내고 싶었던 기억마저도.... 그런 모습이라도 잠시 내 곁에 머물 수 있었던 그 때가 그립습니다. 좋은글 받아보기 : http://pf.kakao.com/_xnxcdYT
비교의 마약(feat. 무너진 자존감 세우기)
비교의 마약(feat.무너진 자존감 세우기) 당신의 자존감을 갉아 먹는 도둑놈이 있다. 바로 비교라는 놈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를 하며 살아간다. 옆집남자, 옆집여자, 학교친구, 직장동료 지나가는 행인..... 재산을 비교하며 외모를 비교하며 학력을 비교하며 살아간다. 비교대상보다 내가 나으면 어깨가 으쓱 좋아.. 내가 부족해보이면 어깨가 쳐짐 싫어.. 처음에는 내가 대단한줄 알고 어깨를 으쓱하며 웃고 살지만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그러면 결국 어깨가 축 쳐진다. " 내가 이거밖에 안된거야? ㅠㅠ " " 난 못난 놈이야. " 당신이 제 아무리 대단한 사람일지라도 비교를 통해서 얻을것은 단 하나다. 바로 초라한 그대의 현주소.. 아니 그대 자신... 나는 엄청난 비교쟁이였다. 비교로 인해 내 공격력은 매우 뛰어났다. 남들보다 더 앞서고 싶었고 남들보다 더 돈을 많이 벌고 싶었고 남들보다 더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렇게 내 삶은 승승장구하듯 잘 풀렸다. 남들이 보기에도 꽤 괜찮았다. 어느시점이 되면서 비교의 마약(주술)이 풀리는 것이다. 눈을 떠보니 정신이 확 들었다. 1. 남들만 보고 살다보니 나를 잃어버렸다. 2. 남이 기준이 되다보니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잃어버렸다. 3. 자존감은 땅으로 꺼졌고 쓸데 없는 자존심은 솟구쳐 올랐다. 5. 비교를 통해 나를 괴롭히는 재주만 늘어남 6. 신이시여! 전 언제 행복할수 있나요? 7. 비교를 통해 얻은 것을 다 잃어버림 물론 나는 지금도 비교쟁이다. 눈에 보이는데 비교를 안할수가 없다. 귀에 들리는데 비교를 안할수가 없다. 느껴지는데 비교를 안할수가 없다. 그런데 작은 변화는 있었다. 키가 큰 사람을 보며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나는 왜 키가 작지?" 라는 한탄 안한다. 연예인을 보며 "멋지다" 는 생각을 하지만 " 나는 왜 이렇게 못났지"라는 험담 안한다. 고급 외제차가 지나가면 "와~" 라고 하지만 "내 차는 똥차?" 라고 짜증 안한다. 고급 아파트를 보며 "좋겠다" 라고 생각하지만 " 난 빌라 전세" 라고 푸념 안한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며 "대단해" 라고 생각하지만 " 난 뭐야?" 라고 비난 안한다. 한탄 안한다. 험담 안한다. 짜증 안한다. 푸념 안한다. 비난 안한다. 남의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이 가장 좋은 법이다. 내 얼굴이 가장 좋고 내 집이 가장 좋고 내가 하는 일이 가장 좋고 지금의 내 모습이 가장 좋은 것이다. 비교는 나에게 독과 같다. 내 것이 아닌데 남의 것을 부러워한 나머지 내가 가진 초라한 것을 무가치하게 여긴다. 그렇게 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러면 내가 살 가치가 없어진다. 도박에 빠지면 재산을 탕진하듯.. 비교의 1단계 : 나도 너처럼 되고 말테야 비교의 2단계 : 왜 나는 안되는거지? 비교의 3단계 : 나는 쓸모 없는 사람인가봐 비교의 4단계 : 나는 살 가치가 없어 비교의 5단계 : 나는 왜 살아가는 걸까? 우리가 불행한 것은 갖지 못해서가 아니라 남들에 비해서 갖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 때문이 아닐까? 도대체 그 남이라는 기준은 무엇일까? 끝이 있는 것일까? 왜 남의 내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걸까? 그렇다면 내 삶은 남이 주인이란 말인가? 만약 그 남의 삶의 행복하지 않는다면? 물론 남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지만 영원히 그 남이 내가 될수 없다. 한때 나는 내가 몹시 싫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더 좋아진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누군가의 얼굴로도 살고 싶지 않고 누군가를 닮아가고 싶지 않고 누군가가 기대하는대로 살고 싶지도 않다. 그냥 나대로 잘 살고 싶다. 그래서 편하다. 부족한 점은 인정할수 있으며 넘칠 것 같으면 조금 물러설수도 있다. 비교를 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비교로 인한 부정적인 화살을 나에게 돌리지 말자. 나보다 부족하고 못나 보이는 사람을 비교하며 자신을 위로하거나 기쁨을 얻지말자. 타인의 고통이나 아픔을 공감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으로 자신을 달래는 것은 매우 불손하다. 비교를 꼭 해야 한다면 사람과 하지 말고 부족했던 나의 어제와 비교를 하자. 확 와닿지는 않겠지만 나는 그 어느누구와도 비교할수도 없고 비교되어서도 안된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 나의 현재위치정도는 파악할수 있다.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쳐다볼 시간에 그냥 열심히 힘을 내서 묵묵히 내 갈길을 가자. 그러면 비교하지 않아도 멋진 나를 만난다. 비교할 시간이 있다면 타인의 장점을 통해 교훈삼아 배우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며 타인의 단점을 통해 교훈삶아 배우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당신이 여전히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그만큼 할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자기 확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열심히는 살았을지 모르지만 지혜롭지 못했다. 자신과의 진실된 소통을 하지 못했다. 김영국 행복명상센터
자존감 도둑 그 이름은 수치심
자존감 도둑 그 이름은 수치심 수치심: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 이 수치심은 발생 초기에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노출되고 경멸받는 경험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 네이버 백과사전 - 당신은 자신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당신은 수치스러움을 당한 사람이다.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거나 성적 학대를 당했거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거나 공부 못한다고 놀림을 받았거나 키가 작다는 이유로.. 비싼아파트에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모의 직업이 그렇다는 이유로. 얼굴이 조금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남들에게 내세울게 없다는 이유로.. 부당한 평가를 받는 것이다. 물론 당신에게 상처를 준 그들은 당신을 평가할만큼 뛰어난 인간이 아닌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그러저러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1. 당신은 수치스럽게 여기는 그 사람이 수치스러운 사람이다. 2. 당신이 피해자라면 어떤 일을 당했던 수치스럽지 않다. 가해자가 벌레다. 3. 완벽한 인간은 없다. 한가지 부족한것을 가지고 자신과 동일시 여기지 말라. 영어 못할수도 수학 못할수도 있다. 한과목만 잘하면 된다. 4. 부족한 점은 채울 것이고 잘못한 점은 반성하고 깨달으면 된다. 수치심은 들어올 자리가 없다. 5.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 삶을 내 인생을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쉽게 판단하지 말자. 그 판단은 죽는 그날 이루어진다. 넘어졌을뿐 경기는 지금도 진행중. 6. 타인에게 운전대를 넘겨주지 말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차는 내가 운전한다. 7. 당신이 느끼는 수치심은 가짜다. 상처받은 과거의 기억이 만들어내는 망상과도 같다. 지나갔다면 다 끝난거다. 우린 어제 잠을 자고 죽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새롭게 태어났다. 수치심에 대한 유튜브 강의 - 김영국 행복명상센터 -
최면술에 걸리지 말라.
최면술에 걸리지 말라. 아직도 사람들은 최면사가 사람을 눕혀서 최면을 걸어서 원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도록 마술과 같은 기교를 부린다고 생각한다. 방송의 힘이자 부작용이기도하다. 그런데 이는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최면가는 한 인간이 원하지 않는 무언가를 끄집어 내거나 조종하거나 통제하지 못한다. 해서도 안된다. 다만 그 사람이 그것을 원했을때 때로는 자신조차 자각하지 못한 기억이나 감정을 편안한 상태에서 무의식의 문이 열리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것도 말처럼 쉽지 않다. 나와 같은 최면사는 한 인간이 내면의 바다를 잘 탐색하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일 뿐이다. 그런데 이 최면술이 일상생활에서 악용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물론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최면술은 부모가 자녀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일 것이다. 그 이외는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것이다. 나쁜놈들은 순진한 그대를 자꾸 좀비처럼 만들려고 한다. 당신이 아무런 생각없이 조종되기를 바란다. 1. 100%를 주장하는 이를 조심하라. 100점은 수학 시험을 볼때나 존재한다. 우리의 삶에는 100%와 같은 완전무결한 것은 없다. 나를 믿고 투자하면 100% 성공한다. 얼마전 이상한 번호로 전화가 왔다. 1억만 투자하면 매달 백만원씩 이자를 100% 주겠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아직도 이 말에 혹하는 순진한 바보들이 있다. 특히 심리전문가 명상전문가 종교인등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을 다른다. 이들 중 100% 완치하거나 치료해줄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의심 먼저 하라. 만약 그 100%가 사실이라면 그를 위대한 스승으로 모셔라. 2. 폭력적인 사람은 세뇌전문가이다. 폭언이나 폭행은 한 인간의 영혼을 짓밟는다. 힘이 약한 자는 그 순간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저항하지 않고 그만 자신의 의지를 놓아버린다. 나중에는 폭언 폭행이 일상처럼 느껴진다. 매낮는 아내는 남편의 폭력이 당연한것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오히려 매를 맞아야만 할일을 한것처럼 그녀는 영원히 벗어날수가 없다. 폭력적인 사람은 상대를 굴복시켜서 자신의 노예로 만들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슬픈 한 가지가 있다.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난 그녀는 여전히 폭력적인 남자 옆에서 고분고분해진다. ㅜ 폭력 앞에 무릎 꿇지 말자. 당장 경찰에 신고해서 콩밥을 먹이자. 3. 혀를 달콤하게 놀리는 자를 조심하라. 이들은 매우 뛰어난 언어의 마술사이다. 사람의 감정이나 기분을 가지고 놀줄 안다. 인간은 칭찬받는 순간 이성을 상실한다.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아가의 마음처럼 칭찬받는 순간 마음의 경계가 풀어져 버린다. 이유없이 친절을 베푸는 자는 조심하라. 틀림없이 의도를 갖고 접근을 한 사람이다. 이 세상에 우연은 없다. 따지고 보면 필연을 가장한 우연이다.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지 않는 이상 쉽사리 그대의 마음의 문을 열지 말자. 이는 사람을 의심하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보호본능이다. 초인종을 누르면 아무나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주겠는가? 4. 두려움을 자극하는 자의 최면술 인간의 마음을 가장 쉽게 빨리 건드릴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공포) 예를들면 - 내 말대로 안하면 천벌을 받게 된다. - 지구는 멸망한다. 그래서 나를... - 당신에게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 이 약을 먹지 않으면 병들어 죽습니다. - 제 말대로 안하면 대학에 떨어질 겁니다. 이들은 인간의 약한 취약성을 건드린다. 건강한 사람은 두려움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하게끔 도와준다. 한번 두려움에 취하면 그들은 지속적으로 당신의 두려움을 건드려서 당신의 돈을 훔치고 영혼을 훔치고 당신의 삶마저 빼앗으려 할지 모른다. 당신은 어느순간 그에게 의존하게 된다. " 제발 저좀 살려주세요. ㅠㅠ " 두려움 조장은 인간을 나약하게 하는 악질적인 최면기법이다. 쫄지마!!! 죽기밖에 더 하겠어 ^^* 5. 선한 의도를 지닌자의 어리석음 이런 사람을 구분하기는 참 어렵다. 너무나도 순수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착한 마음은 참 좋은 성품이다. 그들의 순수성에 사람들은 매료된다. 그 순수한 의도에 동참하고 추종한다. 그 사람이 지혜로운 자라면 스승이 된다. 그러나 잘못된 신념, 가치관에 빠졌다면 아무리 착한 사람일지라도 악인이 된다. 설령 악인이 아니더라도 착한 추종자들을 이끌고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우를 범하게 된다. 지혜로운 자는 당신이 만든 잘못된 최면에서 깨어나도록 도움울 주겠지만 어리석은 자는 당신에게 지속적으로 최면을 걸어 세뇌를 시킨다. 6. 욕심이 만들어낸 마약, 최면술 가장 강력한 최면술이 두려움이라면 가장 쉽게 걸려드는 최면술은 욕심이다. 인간의 마음을 조종하기는 사실 쉽다. 앞에서는 욕심을 건드리고 옆에서는 달콤하게 칭찬해주고 뒤에서는 두려움을 건드리면 된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 꺽고 싶고, 화려한 음식을 보면 침을 흘릴 것이고, 돈을 보면 눈이 뒤집힐 것이다. 인간의 무의식적인 본능이다.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면 이성을 상실한다. 사기꾼은 당신의 욕망을 툭툭 건드린다. 달콤한 마약이 혀 끝에 닿는 순간 당신의 욕망은 다시 활활 타오를 것이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매우 위험한 최면술사이다. 그들은 열정적이며 매력적으로 보인다. 긍정적이며 무엇이든 할수 있는 자신감 넘치는 사람처럼 비춰지기에 충분하다. 그들은 당장 당신을 화려하고 멋진 세상으로 데려다줄수 있지만 당신이 잠시 눈감는 순간 당신의 것을 다 훔치고 도망갈것이다. 당신이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지혜로운 자와 친구가 될 것이며 당신이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욕심이 많은 사기꾼과 친구가 될 것이다. 나도 위의 6가지 모습에서 자유롭지 않다. 어떤 부분은 경계에서 왔다 갔다 한다. 사람들은 티비에서 최면술 장면을 보면서 신기해하고 신비해한다. 때로는 무서워하기도 한다. 십수년 최면을 한 사람으로서 1%도 결코 신비롭지 않다. 가끔 최면이 안걸려서 미안할 지경이다. 아무리 최면을 걸어도 100% 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쁜 의도로 최면을 걸면 그 사람은 벌떡 일어나서 내 뺨을 때릴 것이다. 사실 진짜 무서운 것은 최면술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다. 이 현실에서 눈을 뜨고 살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최면을 걸고 누군가에게 최면에 걸리면서 살아간다. 눈을 뜨던 눈을 감던 욕망에서 벗어나서 마음이 눈뜬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게 잘못된 최면에 걸리지 않는 법이다. 최면사로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최면을 거는것이 아니라, 이미 이상한 최면에 걸린 사람을 최면에서 깨어나도록 돕는 것이다. 최면사는 사실 별다른 능력이 없다. 그냥 눈 감은 상태에서 대화하는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눈 뜬 상태에서 당신의 코가 베어진다는 사실... ^^* 김영국 행복명상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