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llu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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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두 경찰관님에 대한 추억을 나눠볼래요 :)

2010년 봄. 꽃샘추위에 민트컬러의 트위드 자켓이 어색하지 않던 그날. 난 직속 실장님과 외근중이었다. ___(여느 글에도 몇번 거론되었듯, 심심한 인생이 싫어..! 두번째 대학을 졸업 후 취업, 서른살의 신입사원이었다) 갑자기 걸려 온 전화 한 통에 실장님과 나는 업무를 나눠야 하는 상황. 실장님: "@@아, 우리 여기서 찢어지자. 이거 완전 중요한 계약 사전미팅이니까, ₩ 실장 퇴근전에 얼른 샘플 전해줘야된다? 무슨 일 생기면 너!가! 알아서 처리해라. 알았지? 이쁜 내 여우야ㅋㅋ" 하시고는... 보도듣도 못했던 구로디지털단지 어느 곳엔가 실장님은 나를 버리고 부앙~🚗🚗🚗~~~ (실장님은 늘 내 성을 붙여 @여우, 또는 내새끼라고 부르셨다. 미친듯이 화가 날 때만, "@@@씨".. 이런 날은 정말 무서웠음 ㅠㅜ;; ) 난 구로라인은 전혀 모르는터라, 당시 스마트폰도 없던 때였고 ㅠㅠ 내가 의지할 것이라고는, 수출의 다리를 건너야만 그 브랜드 사무실이 나온다는 것과 싹싹한 성격? 과 미소..? (죄송요 ㅠ ㅋ) ..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수출의 다리는 없었고 뭔일인지 아니 거기가 어디었는지 모르지만 인적 또한 없었다 ㅜ 어쩌다 마주친 인간사람들에게 물어도 모르는 상황 ㅠ 시간은 점점 다가왔고, 자칫 퇴근시간이 걸리면 난...구로에 갇히는 상황 ㅜ 저 멀리, 경찰차 한 대가 보였다. 냅다 달려가서 창을 두드리고 물었다. "저, 수고많으세요~ 제가 @@을 가야하는데, 수출의 다리를 건너야되거든요. 방향을 모르겠는데 지도 좀 볼 수 있을까요? " 경찰 두 분은 친절하게도 커다란 지도를 펴서, 체크해가며 위치를 알려주시는데... 그 옆 나이 지긋하신 경찰님 👮왈 : "여기서 수출의 다리까지 멀어요 아가씨~ 택시도 안잡히는 곳인데, 여긴 어떻게 왔어요? 일단 탑시다. 대낮에도 위험 할 수 있으니까 태워다 주지요 뭐" 헉;;; '실장님이 나를 물먹인건가' 나 : "아니에요. 지금 근무시간이신데, 제가 걸어갈게요~ 저 잘 걸어요^^ 방향만 정확하게 알려주세요~" 또 다른 젊은 경찰님 👮: "진짜 멀어요. 그리고 곧 퇴근 시작이라 서두르지 않으면 여기서 빠져나가는것도 일이에요. 타세요. 저흰 순찰중이니까 가는 곳이 근무지입니다" 무뚝한 말투였지만, 진심으로 걱정해주시는 두 분 덕에 난생 처음으로 경찰차를 타고 부앙~~~거래처에 도착!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경찰차는 안에서는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ㅋㅋ 가는 도중에 걸려 온 거래처 전화에 ___나 : "지금 경찰차 타고 날아가는 중이에요!" 거래처 실장님 : "엥? 경찰차까지 타는거야 이제? 푸하하 @@씨 대박이다 정말. 알았어 완전 기대하고 있을게" 그리고는 직속 실장님께 바로 걸려 온 전화. ___실장님 "@@! 너 지금 경찰차 타고 간다며! 낄낄낄길 내가 너 땜에 웃고 산다. 어쩜 하루도 평범한 날이 없니 ㅋㅋㅋ 이뻐이뻐 너가 복덩어리다. 일 마치면 보고해라! 수고!" ___ 빌딩 앞에 도착해서 경찰님이 직접 문을 열어주시니, 주변 사람들..눈이 쏟아지게 나를 쳐다보고...^^;; 덕분에 나는 제 시간에 맞춰 샘플을 전달했고, 그 이후 경찰 빽도 있는 대박@@씨라고 소문나고.. 계약은 무사히 성사되고.. 퇴사한지 몇 년 이지만, 직속 실장님은 신입들에게 "예전에 @@이는 경찰차도 타면서 일했어!" 라고 말씀하시는 일화가 되었다. 그날, 나이지긋한 경찰분이 내게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경찰은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도움을 청하라고. 그리고 이제 복지도 조금 나아져서 신랑감으로 좋으니 명함 한 장 달라고.. 옆에 이 친구 지금 애인없는데 내가 보장하는 남자라고..^^ 그 이후, 너무 바빠서 직접 찾아뵙지는 못하고, 이리저리 수소문한 끝에 그 분들의 근무지를 알아내어 "친절 경찰관님들" 이라는 제목으로 사연을 남겼다. 두 분의 주변분들이 먼저 보시고는, 두 경찰님들께서 직접 답글도 남겨주시고.. 두어달 지나, 간식거리를 준비해서 방문했을 땐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신 터 ㅠㅠ 많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내 마음을 글로나마 표현했고, 전달되었던 것만으로도 위안삼으며 되돌아 오던 길. 그렇게 낯설던 그 곳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꽃샘추위로 바람이 서늘했던 그 봄날. 경찰관님과 헤어지는 자리에서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요 앞에서 커피라도 두 잔 사올테니 절대 가지 마시라고 말하니, ___"👮안됩니다~. 잘못하면 뇌물이에요. 허허. 계약 잘 마치고 가시고요~ 요즘 젊은 친구들, 아가씨처럼 공손하게 도움청하는 사람 드물어요. 어찌나 버릇없고 무례한지... 다음에 우연히 만나면 그때 인사나 합시다" 하고 바로 떠나시던, 두 분의 모습이 오랜동안 기억에 남았다..^^ 친구들은 그 젊은 경찰관님과 로맨스는 없었냐는데.. ㅋㅋ 당시 여기저기 연애중이라🙈 그리고 딱 봐도 나보다 어려보이던 경찰관님이시라, 지금 말하는 "썸"은 없었다...! ___이 글을 쓰면서, 순간순간 "어, 아무때나 경찰차 타는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긴 해요.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람이 갖는 선입견이 때론 나를 잡는 족쇠가 될 수 있다는 것. 절대절대 아무때나 경찰차를-> 택시타듯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당시 상황이.. 🚨인적이 드문 한적한 구로 뒷골목이었고, 저는 길을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고, 경찰관님들은 주변을 순찰중이던 상황이었어요!! ^^ 그리고 하나 더.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는 분들! 잘 모르면 주변에 물어보세요 무조건!!!!! 도움을 청한다고해서 "넌 그것도 모르니" 하는 사람은 없어요. 태도가 바르고 공손하다면, 기분 좋게 여러분의 "스승"이 되어주실거에요~~^^ 한 때 나의 길잡이와 짐 도우미가 되어주었던, 역삼역의 공익근무요원청년과, 압구정의 부동산 직원분과, 선릉역에서 짐을 들어주던 노신사...등등 고맙습니다 ^^ ___지금은 엄마사람으로 네 살 악동님과 전쟁중이지만, 문득문득.. 그날이 참 그립답니다~. 내일은 월요일이네요. 월요병...까짓 것 이겨내요 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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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어두웠다. 해저(海底)와 같은 밤이 오는 것이다. 나는 자못 이상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배가 고픈 모양이다. 이것이 정말이라면, 그럼 나는 어째서 배가 고픈가? 무엇을 했다고 배가 고픈가? 자기 부패작용이나 하고 있는 웅덩이 속을 실로 송사리떼가 쏘다니고 있더라. 그럼 내 장부 속으로도 나로서 자각할 수 없는 송사리떼가 준동하고 있나보다. 아무렇든 나는 밥을 아니 먹을 수는 없다. 밥상에는 마늘장아찌와 날된장과 풋고추조림이 관성의 법칙처럼 놓여 있다. 그러나 먹을 때마다 이 음식이 내 입에, 내 혀에 다르다. 그러나 나는 그 까닭을 설명할 수 없다. 마당에서 밥을 먹으면, 머리 위에서 그 무수한 별들이 야단이다. 저것은 또 어쩌라는 것인가? 내게는 별이 천문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시상(詩想)의 대상도 아니다. 그것은 다만 향기도 촉감도 없는 절대 권태의 도달할 수 없는 영원한 피안(彼岸)이다. 별조차가 이렇게 싱겁다. 저녁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보면, 집집에서는 모깃불의 연기가 한창이다. 그들은 마당에서 멍석을 펴고 잔다. 별을 쳐다보면서 잔다. 그러나 그들은 별을 보지 않는다. 그 증거로는 그들은 멍석에 눕자마자 눈을 감는다. 그리고는 눈을 감자마자 쿨쿨 잠이 든다. 별은 그들과 관계없다. 나는 소화를 촉진시키느라고 길을 왔다 갔다 한다. 돌칠 적마다 멍석 위에 누운 사람의 수가 늘어간다. 이것이 시체와 무엇이 다를까? 먹고 잘 줄 아는 시체─나는 이런 실례로운 생각을 정지해야만 되겠다. 그리고 나도 가서 자야겠다. 방에 돌아와 나는 나를 살펴본다. 모든 것에서 절연된 지금의 내 생활─자살의 단서조차를 찾을 길이 없는 지금의 내 생활은 과연 권태의 극 그것이다. 그렇건만 내일이라는 것이 있다. 다시는 날이 새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한 밤 저쪽에, 또 내일이라는 놈이 한 개 버티고 서 있다. 마치 흉맹한 형리처럼─ 나는 그 형리를 피할 수 없다. 오늘이 되어 버린 내일 속에서, 또 나는 질식할 만치 심심해해야 되고, 기막힐 만치 답답해해야 된다. 그럼 오늘 하루를 나는 어떻게 지냈던가? 이런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냥 자자! 자다가 불행히─아니 다행히 또 깨거든 최서방의 조카와 장기나 또 한 판 두지. 웅덩이에 가서 송사리를 볼 수도 있고─몇 가지 안 남은 기억을 소처럼─반추하면서 끝없는 나태를 즐기는 방법도 있지 않으냐. 불나비가 달려들어 불을 끈다. 불나비는 죽었든지 화상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불나비라는 놈은 사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들 줄도 알고─평상에 불을 초조히 찾아다닐 줄도 아는 정열의 생물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 어디 불을 찾으려는 정열이 있으며, 뛰어 들 불이 있느냐? 없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흑은 암흑인 이상, 이 방 좁은 것이나 우주에 꽉 찬 것이나 분량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이 대소 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 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내일, 그것이 또 창 밖에 등대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 (12월 19일 미명, 동경서) 이상 - 권태 하루종일 설렁설렁 동네 한 바퀴 돌고 먹고 놀고 백수 생활하다가 밤이 되니 현타가 와서 아 언제까지 이렇게 살지 내일 아침이 오는 걸 두려워하는 글 을 쓴 이상
[토박이말 살리기]1-77 따따부따
[토박이말 살리기]1-77 따따부따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따따부따'입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딱딱한 말씨로 따지고 다투는 소리. 또는 그 모양'이라고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네가 왜 따따부따 남의 일에 참견이냐?"를 보기로 들었습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딱딱한 말씨로 따지고 시비하는 소리를 나타내는 말. 또는 그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풀이를 했습니다. 보기월로 "운전사는 그에게 시비를 걸듯이 뻐드렁니를 드러내며 따따부따 따지는 것이었다."를 들었습니다. 두 곳의 풀이를 보면 '딱딱한 말씨로 따지는'이 같고 표준국어대사전은 '다투는 소리'라고 했고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시비하는 소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비하다'가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말다툼을 하다'는 뜻이니까 다음과 같이 다듬어 보았습니다. 따따부따: 딱딱한 말씨로 옳고 그름을 따지며 다투는 소리. 또는 그런 모습. 부드러운 말씨로 말다툼을 하는 것을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모습을 보게 되면 엄청 놀라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토론'이라는 것을 할 때 서로 옳다는 것을 알려야 하기 때문에 절로 딱딱하게 말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따따부따'라는 말에 '따'가 세 셈이나 나오는 것 '딱딱한' 말씨와 옳고 그름을 '따지다'의 '딱딱과 따'가 서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도 때로는 이렇게 따따부따 잘 따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둘레에 따따부따를 잘하는 또는 즐겨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딱딱한 말씨로 옳고 그름을 따지며 다투다'는 뜻으로 '따따부따하다'는 말도 쓸 수 있으니 알아 두시면 쓸 일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토박이말에 마음을 써 봐 주시고 좋아해 주시며 둘레 사람들에게 나눠 주시는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4354해 온가을달 스무이레 한날(2021년 9월 27일 월요일) 바람 바람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따따부따 #터박이말 #참우리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추석이 민족 최대의 명절이 된 이유는?
예전부터 ‘설’과 ‘추석’ 중 어느 명절이 더 민족 최대의 명절인지 궁금했답니다.  여러분은 그러지 않았나요? 전혀, 네버, 안 궁금하셨다고요?^^ 우선 추석이 설날과 함께 민족 최대의 명절이 된 건 가짜 오리지날, 즉 ‘가리지날’입니다.  추석이 이렇게 큰 명절이 된 건 100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예전 조선시대에도 관청에선 휴일 규정이 있었습니다.  조선 조정의 관료들은 음력 1, 8, 15, 23일이 쉬는 날로 정해져 있었다죠.  당시 동양엔 요일 개념이 없었는데도 7일 간격으로 놀았습니다. 하늘에서 붙박이로 있는 별(항성)을 제외하고 태양 - 달, 5개 행성(화성 - 수성 - 목성 - 금성 - 토성) 등 7개 천체만 움직이기 때문에 7을 신성시 여겨 날짜 간격 단위를 7로 했기에 서양과 동일한 현상이 나타난 겁니다.   그러던 것이 1894년 갑오개혁 때 서양식 요일 개념이 적용되면서 기독교 세계처럼 일요일을 휴일로 정하게 되었지요. 당시 조선이 일본을 통해 서구식 요일 제도를 받아들임에 따라 일본이 번역한 대로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순으로 해와 달, 다섯 행성이름으로 요일명을 정했는데요.  중국은 이와 달리 평일 5일을 1 - 2 - 3 - 4 - 5 요일로 달리 명명해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조선시대 휴일이 현재보다 적어 보이지만, 항상 예외가 있는 법.  춘분, 동지 등 24절기에 해당 하는 날도 놀았습니다.  (한 달에 두 번) 그 외에도 임금님 생일, 선대왕 기일 등 별도의 임시공휴일도 있었기에 한 달에 최소 6~7일 이상 휴일이 있었던 건데요.  그래서 연간 100일 정도 휴일이 있었다고 하니……, 주 5일제 시행 전 대한민국 직장인보다 더 많이 쉬셨습니다. 대신 노는 날과 절기일이 겹치면 그냥 하루 손해 보는 거였지요.  대체휴일 제도가 생기기 전엔 일요일과 명절이 겹치면 그냥 하루 손해 보던 것과 동일하지요. 특히 세종 당시엔 당직 개념이 있어서 궁인들이 휴일에 근무하면 평일 대체 휴무가 가능했고, 아이 출산 시 관노이더라도 출산 여성에겐 90일, 남편도 15일 의무 휴일을 주었다는 겁니다. 다만, 당시 조선의 국립대학인 성균관 유생은 매달 8, 23일 이틀만 휴일이었다네요.(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은 공부하느라 고생이네요. ) 그 외에 조선시대 당시 휴일로 지정된 명절은 네 가지가 있었습니다.  설(1월 1일), 정월대보름(1월 15일), 단오(5월 5일), 추석(8월 15일).  흔히 정월대보름 대신 한식이라고 알지만, 그래서 그런지 요새 5대 명절 운운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그나마도 고려시대 9대 명절에 비해 대폭 줄어든 것이라고 하죠. 그런데 이들 명절마다 쉬는 기간이 달랐으니, 설날은 7일 연휴(오~. 스케일 크신 조상님들. ), 정월대보름과 단오는 각 3일간 쉬었지만, 추석은 딱 하루만 쉬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설 > 정월대보름 = 단오 > 추석 순으로 그 비중이 달랐던 겁니다. 이는 당시 상황상 설, 정월대보름, 단오 등의 시기는 겨울이거나 여름이어서 날도 궂으니 집에서 쉬라는 따뜻한 배려인 반면(특히 1월의 경우엔 거의 절반 가까이 휴일이었어요.) 한창 수확을 하는 가을철인 추석은 열심히 일해야 했기 때문에 그리 했을 겁니다.  실제로 일부 영남지역에선 음력 8월 15일엔 아직 벼가 여물지 않아 음력 9월 9일인 중구에 차례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선 정월대보름, 한식, 단오 등 타 명절은 그냥 넘어가는데 왜 추석은 갑자기 설과 함께 ‘민족 최대의 명절 2 TOP’으로 격상되었을까요? 이는 구한말 서양 문명과의 만남이 원인이었습니다. 미국 선교사 : “우리 미국엔 조상과 신에게 감사드리는 추수감사절이있다. 조선에도 이 같은 명절이 있는가?” 우리 조상님 : “이 넘들이……. 우릴 뭘로 보고~. 너넨 겨우 1620년부터 그거 했냐? 우리는 1800년 전 신라 유리왕 때부터 한가위란 추수 명절이 있는 뼈대 있는 나라이니라. 에헴~!” 이러면서 추석 자랑을 한 거죠.  이처럼 서구 문명과 접한 동양 3국 모두 미국 추수감사절처럼 중국 중추절(仲秋節), 일본 오봉(お盆) 등 자기네 가을 명절을 온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조상께 감사를 표시하는 민족의 대표 명절로 격상시킨 겁니다.(가끔 추석을 중추절이라 부르시는데, 그건 중국 명절 이름이에요.  중국인들은 음력 설날은 춘절(春節), 음력 8월 보름을 중추철이라고 해 두 명절 이름을 대응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에 이르러 유이하게 설날과 추석이 민족 고유의 명절로서 3일 휴일로 지정된 겁니다.  우리 고유의 명절도 글로벌 경쟁에 따라 그 위상이 바뀌었다는 거, 재밌는 현상이죠? 출처)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 -과학 경제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