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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 이후의 최면연구와 최면심리학의 발달

성공적인 최면가가 되지 못하여 최면을 중도에 그만 둔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이후에 최면에 대한 연구는 표면적으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고 대중적으로도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을지 모르지만, 학문적인 연구대상으로는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예로서 최면은 전문 심리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프로이트 이후에는 대표적으로 헐과 힐가드가 최면연구를 했지요.
미국 예일 대학교의 실험 및 학습심리학자였으며 학습의 욕구감소 이론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헐은 1930년대 초에 최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예일대학 교수였던 헐(Clark Hull)은 10년간 최면과 피암시성 (suggestibility) 연구에 헌신하여
총 32편의 논문과 대표적인 최면관련 전문서인 '최면과 피암시성'(Hypnosis and Suggestibility) 을 저술했으며 그는 이 시기에 최면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하여 엄격하게 통제된 최면실험을 시도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최면과학의 정립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특히 그의 실험정신은 최면분야에서 표준화되고 객관적인 실험절차에 의한 최면실험 전통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헐은 간접적 최면, 즉 에릭슨 최면 (Ericksonian hypnosis)의 창시자인 에릭슨 (Milton Erickon)의
심리학 박사과정 지도교수로서도 알려져 있습니다.
에릭슨은 정신의학자이자 정신과 의사로서 최면의학 분야에 있어 당대 최고의 권위자였는데 헐의 지도하에 심리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함으로써 심리학과 정신의학 분야에서 최면 및 심리치료와 관련하여 명성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의 문제에 최면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치료한 에릭슨.....
약물치료가 아닌 마음의 문제, 심리적 문제를 최면을 통해 치료한 밀턴 에릭슨은 최면치료의 대가입니다.
그리고 헐 이후에 최면을 연구한 또 다른 유명한 심리학자로서 힐가드를 꼽을 수 있는데 그는 1949년 미국심리학회 (APA) 의 회장을 역임하였고 스텐포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서 학습심리와 교육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았습니다.
그는 1957년에 최면연구를 위한 실험실을 만들어 이때부터 20여년간 같은 대학교의 정신과 의사이자 교수였던 부인 조세핀 (Josephine Hilgard) 과 함께 최면연구에 몰두하여 수백편의 최면관련 논문과 다수의 저서를 발표하였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최면감수성' (Hypnotic Susceptibilty), 분리된 의식세계 (Diveded Consciousness: Multiple Controls in Human Thought and Action) 가 있고 조세핀이 단독으로 저술한 책으로는 '성격과 최면' (personality and Hypnosis) 이 있습니다.
이렇게 살펴 보았듯이 심리학과 교육학 분야에서 잘 알려진 헐 및 힐가드와 같은 심리학자들이
최면에 대해 공부했고 전문적인 최면연구가였다는 내용들은 아쉽게도 일반 심리학이나 학습심리 서적 어느 곳에서도 발견하게 어렵습니다.
바로 이러한 점들이 제대로 알려진다면 일반인들이나 심리학 전공자들이 최면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고 보다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기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심리상담 전문가로서 또는 교육학을 가르치던 사람으로서 설기문 박사의 입장은 최면에 대한 무한가치와 효용성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열린 마음으로 최면을 공부하고 이해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됩니다.
심리치료가 필요한 사람들 중에는 최면과 최면치료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들이 정말 많고 많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최면에 대한 지속적인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함께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출처 : 설기문마음연구소 블로그 http://blog.naver.com/mindcoach/22030382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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