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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난극복에 앞장선 외교의 달인 사명대사 유정 이야기

사명대사(四溟大師·1544〜1610)는 1592년(선조 25) 일본이 조선을 침공하자 승군(僧軍)을 이끌고 일본군과 싸운 승병장(僧兵將)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전쟁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15만 일본군이 ‘명나라를 칠테니 길을 빌려달라(征明假道)’는 명분하에 조선을 침략하면서 시작되었다. 7년간 계속된 이 전쟁을 우리 역사에서는 ‘임진왜란(壬辰倭亂)’이라고 부르고, 일본에서는 ‘문록경장의 역(文祿慶長の役)’, 중국에서는 ‘만력의 역(萬曆之役)’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이 전쟁을 임진왜란(壬辰倭亂)이라고 부르면, 대마도를 거점으로 고려와 조선을 약탈해 온 왜구(倭寇)가 일으킨 전쟁이 된다. 이 전쟁은 왜구가 아니라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통일된 일본 막부가 조선을 정조준해서 침략한 전쟁이었다. 그리고 명의 참전으로 국제전으로 확대된 ‘동북아 7년 전쟁’이었다. 따라서 이 전쟁을 단순히 임진년에 발생한 왜란이라고 하는 것은 검토를 요한다. 본문에서는 ‘조선·일본 전쟁’ 또는 약칭으로 ‘조·일 전쟁’으로 부르기로 한다.
조선의 요청에 따라 참전한 명나라는 7년의 전쟁기간에 4년이나 휴전하면서 일본과 비밀리에 강화회담을 진행했다. 이 회담에서 조선이 소외된 것은 물론이고 일본은 명 측에 조선의 분할을 제의하는가 하면, 명은 조선을 직할통치(直轄統治)하려고 했다. 전시에도 치열한 외교가 병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조·일 전쟁은 열전(熱戰)과 외교전(外交戰)이 혼합된 이중 전쟁이었던 것이다.
이 전란 중에 사명대사(이하 사명·四溟 또는 그의 법명인 유정·惟政으로 호칭)는 외교밀사로 일본의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만나 이러한 명·일 간의 음모를 탐지하고, 전란 후에는 조선의 외교사절로 일본을 방문하여 막부의 장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담판하는 등 대일 외교의 최전선에서 활약하였다.
올해는 을사조약 110주년, 광복과 분단 70주년 그리고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오늘날의 불편한 한·일 관계를 돌아보면서 불승(佛僧)에서 호국(護國) 승병장으로 그리고 외교사절로 변신하며 조선을 구하는 데 앞장섰던 사명대사의 생애를 추적해 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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