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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운동! [턱걸이 개수늘리기 7단계]

8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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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보고 철봉 지름... 7번이 목표다!!
한번해봐야지..집엔제대로 살아서 돌아갈수 있을런지...
아...이거 정말 필요했던 거네요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ㅎ 감사요~
정확한방법이네요ㅎㅎ
그럼 데일리로 세트는 몇개씩하면 되나요? 한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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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암 환자 "말려도 '개 구충제' 먹겠다, 지푸라기라도…"
복용 후 경과, 기록으로 남기는 국내 말기암 유튜버들 '펜벤다졸' 품귀현상…"말기암 부모님께 구해드리고 싶다" 의료계 "사람대상 임상시험 결과 없다…심정 알지만 복용 멈춰야"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항암치료의 고통은 죽음의 공포보다 심했다. 나는 잃을 게 없다. 펜벤다졸(개 구충제)에 대한 공식적인 임상시험이 없으니 개인적으로라도 임상시험을 하겠다." '개 구충제'로 말기 암이 완치됐다는 해외 사례가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면서 보건당국이 부작용을 우려했지만, 말기 암 환자들의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절박한 심정을 막지는 못하고 있다. 앞선 지난달 4일, 강아지 구충제인 '펜벤다졸'이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유튜브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해당 영상에 따르면, 말기 암 환자였던 미국인 조 티펜스(60대)는 2016년 말 소세포폐암 진단을 받았다. 이후 암세포가 간과 췌장, 위 등 전신으로 퍼져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동물용 구충제인 '펜벤다졸'을 복용한 후 암세포는 말끔히 사라졌다고 한다. 해당 내용이 국내 말기 암 환자 온라인카페, 블로그 등에서 화제의 중심에 서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설명자료를 발표하고 "'펜벤다졸'은 인간 대상 임상시험을 하지 않은 물질로,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말기 암 환자는 항암치료로 인해 체력이 저하된 상태이므로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 발생이 우려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런 보건당국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펜벤다졸의 '품귀현상'은 지속되고 있다. 펜벤다졸이 말기 암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지푸라기'를 넘어 '막연한 생존의 끈'이 된 것이다. 지난 4월 직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는 유튜버 A씨는 2주전 '펜벤다졸' 공개임상시험을 선언했다. 이후 총 4개의 치료경과 영상을 업로드했는데, 9일 업로드한 영상에서 그는 "직장암 통증이 사라졌다. 지난 5일부터 5일째 진통제를 투여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일본어 교육이 주 콘텐츠였지만, 담도 말기 암 판정을 받으면서 투병일기를 올리고 있는 유튜버 B씨는 1주일 전 펜벤다졸 복용을 선언했고, 7일 업로드한 영상을 통해 자신의 종양표지자 검사, 백혈구 수, GOT·GPT, 빌리루빈 수치 등을 공개하며 검사 수치가 전반적으로 좋아졌다고 했다. 이외에도 3주째 매주 3일씩 펜벤다졸 250밀리그램과 비타민E를 복용한다는 네티즌부터 자신의 부모님이 말기암 환자임을 밝히며 펜벤다졸을 구하고 싶다는 네티즌까지, 당분간 온라인에서 펜벤다졸 구매 열기는 지속될 전망이다. ◇ "환자들 심정 이해하지만, 전문가로서 복용 권고 못 해" 의료계는 말기 암 환자와 그 가족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공식적인 인간 대상 임상시험 결과가 없는 만큼 전문가로서 '펜벤다졸' 복용은 권고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A씨가 복용 후 통증이 가라앉았다고 한 것과 관련해 김대하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고려의대 졸업, 내과)는 "펜벤다졸의 암성 통증(암에 의한 통증) 관련 학문적 근거는 없다. 펜벤다졸 관련 연구가 모두 동물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인간의 항암치료 근거는 물론 암성 통증 연구결과도 당연히 없는 것"이라며, "혹시 펜벤다졸이 암의 진행을 늦춰 통증이 줄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A씨가 밝힌 복용기간이 너무 짧다"고 했다. B씨가 밝힌 종양표지자 검사 등의 수치개선과 관련해서는 "암의 병세를 살필 때 화학적 검사결과를 참고할 수는 있지만, 수치는 단기간에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펜벤다졸로 인한 호전이라고 단정 짓기는 힘들다"면서 "약물복용 후 혈액검사 수치 호전은 환자의 종합적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김대하 이사는 펜벤다졸을 현재 '항암신약후보 물질' 정도로 볼 수도 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펜벤다졸이 사람을 위한 약은 아니지만, 낮은 근거 수준(동물실험, 개별적 증례 등)의 호전 사례들이 많이 보고되면, 사람을 대상으로 잘 설계된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항암신약후보 물질도 가혹하고 엄격히 설계된 시험을 통해 검증된다. 신약후보물질 5천~1만 개 중에서 실제 시판까지 가는 것은 1개 정도로 검증과정에서 어떤 변수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환자들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을 이해한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 무엇이라도 해보고 싶다는 것이 환자와 가족들의 생각일 것"이라며, "현재 환자가 개인적으로 약을 구해 먹는 것을 전문가 단체가 현실적으로 모두 막을 순 없지만, 펜벤다졸의 근거 수준은 현재 매우 낮다는 것을 거듭 밝힌다. 복용을 고려하는 환자들은 반드시 주치의와 상의하고 주치의 인지 하에 복용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98센트...식료품 배달원의 마라톤 우승화
... (일본 브랜드 네이밍, 스포츠 브랜드편 아식스/미즈노/데상트 관련 기사입니다.) 2003년 6월 22일 뉴욕타임스는 한 전설적인 마라토너의 부음(Johnny Miles, Upset Winner of Boston Marathon, Dies at 97)을 전했다. 식료품 배달원을 하다 보스턴 마라톤을 제패한 조니 마일스(1905~2003)의 사망 기사였다. 존 크리스토퍼 마일스(John Christopher Miles)가 본명, 조니(Johnny)는 별명이다. 그런 그는 1926년과 1929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의 우승자다. 뉴욕타임스가 전한 조니 마일스의 우승 신화는 드라마틱했다. 캐나다 광산 마을의 식료품 배달원 조니 마일즈 조니 마일스가 태어난 곳은 캐나다 동남부의 광산마을 노바 스코디아(Nova Scotia). 가정 형편이 좋지 못했던 조니 마일스는 식료품 배달원을 하며 달리기를 시작했다. 10대 시절 지역경주에서 우승한 적은 있지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나가지 전까지 10마일 이상을 달려본 적이 없던 그였다. 그런 그가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도전한 건 1926년이다. 하지만 경비가 문제였다. 동네 사람들이 보고만 있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마일스의 이웃들은 그를 기차로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보내기 위해 수백 달러를 모았다”(Miles's neighbors raised a few hundred dollars to send him by train to Boston for the 1926 marathon)고 전했다. 98센트...초라한 운동화 신고 보스턴 마라톤 출전 뉴욕타임스는 “단풍에 고향 노바 스코티아(Nova Scotia)를 상징하는 NS를 새긴 유니폼을 입었고, 운동화는 98센트 짜리였다”고 했다. 생전 첫 풀코스였다. 보스턴 마라톤 대회가 열린 날은 그해 4월 30일.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당시 기록이나 관록으로 보자면, 조니 마일스 같은 아마추어가 도저히 우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924년 파리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알빈 스텐루스(Albin Stenroos)와 보스턴 마라톤 3연패의 클라렌스 데마르(Clarence DeMar)가 출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니 마일스는 두려울 게 없었다. 레이스가 진행되며서 데마르가 뒤쳐졌고 스텐루스가 주도권을 잡았다. 마일스는 훗날 보스턴글로브(Boston Globe)에 당시 레이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선수들 제치고 더 위대한 우승 일궈 “나는 스텐루스를 쳐다 보았다. 그의 눈은 가라 앉아 있었고, 얼굴은 튀어 나와 있었다. 나는 그를 제칠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하트브레이크 힐(Heartbreak Hill)에서 나는 스텐루스를 앞질렀다.” (I looked at Stenroos and his eyes were sunken, his face was kind of pulled in and I figured this was the time to pass him. I passed him on Heartbreak Hill) 조니 마일스는 2시간 25분 40초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식료품 배달원의 기적과도 같은 반전 드라마였다. 조니 마일스는 1929년 한 차례 더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제패했다.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19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