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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예견하면서 현재를 비판한 대표적인 소설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아마 많은 분들이 조지 오웰의 《1984》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말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지 오웰이나 올더스 헉슬리보다 먼저 미래를 예견하는 것으로 현재를 비판한 작가가 있습니다. 과학소설의 아버지라고 불려지기도 하며, ‘타임머신’이란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허버트 조지 웰즈이죠.
공상과학 소설에 관심이 있거나 현재를 비판하는 소설의 역할에 관심이 있다면, 웰즈의 작품관과 삶 그리고 소설들을 만나보세요.
1. 웰즈의 작품관
웰즈의 작품은 소설로 읽지 않았더라도 한 번쯤은 영화로 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타임머신’을 소재로 한 영화거나 ‘투명인간’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대부분 웰즈의 《타임머신》과 《투명인간》을 참고하기 마련이니까요.
웰즈의 소설이 원작이거나 재해석 된 영화로는 아래와 같은 영화들이 있습니다.
(첨부 이미지 참고)
- <투명인간>, 1933
- <타임머신>, 2002
- <닥터 모로의 DNA>, 1933
- <우주 전쟁>, 2005
다른 영화는 모르겠지만, 톰 크루즈 주연의 <우주 전쟁>은 제목만이라도 보신 적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웰즈의 많은 작품들이 영화화가 되었지만, 웰즈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예술이나 문학을 찬양한 작가도 아니구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그는 문명 비판가 혹은 미래를 예언하고자 했던 작가에 가깝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웰즈는 초기에 자연과학 지식을 상상력과 결합한 공상과학 소설을 저술했고, 제법 밝은 느낌의 풍자와 유머가 있는 작품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차즘 문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진보적인 시각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비판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2차 세계 대전 이후, 한평생 동안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낙관적인 인간관과 세계관을 완전히 포기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2. 웰즈의 성장
웰즈는 세계 대전 이전엔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많은 공상과학 소설들을 집필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건 그의 성장과정 남달랐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웰즈는 자수성가한 대부분의 인물들이 그렇듯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온갖 잡다한 일을 하며 힘겹게 학업을 마치고 성공한 인물입니다. 자신은 자신의 노력으로 많은 것을 이루었으니 세계가 아무리 불행해 보여도 인간의 노력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희망을 가진 것은 아니었을까요.
웰즈는 넉넉하지 않은 집의 아들로 태어났고 부모의 이혼으로 13세부터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포목상 도제, 초등학교 교생, 약제사 조수, 백화점 견습 사원 등을 거쳐 1884년 사우스 켄싱턴의 과학사범학교 국비 장학생으로 입학하면서부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이때 당시 웰즈는 생물학과 동물학 이외는 특별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웰즈에게 생물학 등을 가르친 스승은 T. H. 헉슬리였다고 합니다.
3. 웰즈의 스승
웰즈가 힘겹게 학교에 입학하여 어렵게 작가로서 성공한 것은 백과사전 등으로 쉽게 알 수 있지만 그의 스승인 T. H. 헉슬리(토머스 헨리 헉슬리)에 대해선 많은 이야기가 없어 간략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뛰어난 제자는 뛰어난 스승이 있는 것 아닐까요.^^ 참고로 토머스 헨리 헉스리의 손자가 《멋진 신세계》를 저술한 올더스 헉슬리입니다. 토머스 헨리 헉슬리를 기점으로 웰즈와 올더스 헉스리가 이어지는 군요. ㅎㅎ
아무튼 웰즈가 ‘타임머신’을 최초로 만든 사람이라면, 그의 스승 헉슬리는 ‘불가지론’(신과 같은 본질적은 것은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란 단어를 최초로 만든 사람입니다. 불가지론이란 어려운 이야기는 여기에선 일단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토머스 헨리 헉슬리는 인간의 윤리가 진화의 산물이며, 인간은 진화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인간은 다른 진화하는 모든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생존하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위치에 놓여있습니다. 식물의 씨앗이 이전 세대 식물의 사체를 양분으로 삼아 상장하는 것처럼 경쟁하고 살아남는 것은 이전 세대를 양분으로 성장해 갑니다. 이게 우주의 법칙이지만 인간의 문명은 우주의 법칙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가며 공존을 꿈꾸기도 합니다. 진화가 공존의 윤리를 만든 것이죠.
그리고 여기에서 웰즈의 소설 《타임머신》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지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타임머신》은 흉측한 멀록족과 지능이 낮은 엘로이족을 통해 다윈의 진화론과는 다른 세상을 그려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퇴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리고는 스승의 사상과도 다른 생각을 펼칩니다. 헉슬리는 인간이 우주의 법칙을 거스르며 악을 제거하며 문명을 이루어야 한다고 했지만, 웰즈는 그렇게 평화로운 세상이 되면 생존에 필요한 자극을 잃게 되어 진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진화에 따라오는 생존경쟁, 문명에 따라오는 평화, 어느 쪽이 인간에게 더 나은 삶을 약속할 수 있을까요. 웰즈는 답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어느 쪽도 분명하지 않다고 말할 뿐이죠.
4. 마지막으로 웰즈의 소설
(표지는 첨부 이미지를 참고하여 주세요. 도서명 옆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도서 소개를 보실 수 있습니다.)
《타임머신》 http://goo.gl/gg5fKY
시간을 여행하는 시간 여행자는 자신이 본 미래의 지구를 말해주지만 아무도 시간 여행자의 이야기를 믿지 않습니다. 미래의 인류는 문명을 잃어버렸고 지능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퇴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시간 여행자가 본 미래는 정말 믿지 못할 이야기일까요?
책 속의 한 문장
“어떻게 인류가 이처럼 두 종족으로 분화된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 우선 우리 시대의 문제점들을 기반으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명확해질 것이라고 본다. 현재에는 그저 일시적이고 사회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차이가 점차 확대되었다고 하는 사실이 전체적인 입장을 푸는 열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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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박사의 섬》 http://goo.gl/Eafb54
남태평양의 어느 섬에서 모로 박사는 인간의 노예로 쓸 수 있는 동물을 만들기 위해 연구를 진행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자신도 죽음에 이르게 된다. 동물의 생명을 무가치하게 다루는 인간에 대해 비판하는 이 작품은 반려동물을 소중하게 여기는 오늘날에도 읽어볼만한 책이다.
책 속의 한 문장
“주위 남자와 여자 들은 진짜 남자와 여자 들이다. 변치 않는 남자와 여자 들이고 완벽하게 이성적인 존재들이며 인간의 욕망과 사소한 걱정거리로 가득 찬 사람들이다. 본능으로부터 자유롭고 황당무계하지 않은 법의 노예들이라 동물 인간들과는 전연 다르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을 피한다. 그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과 그들의 질문과 그들의 도움을 피하고 그들에게서 벗어나 혼자 있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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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http://goo.gl/wrouyw
타인의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인간은 어떻게 될까요. 주인공 그리핀은 투명인간이 된 후 몸을 되돌리려고 노력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공포를 이용하려는 야심을 가지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정치나 권력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가진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이야기겠죠. 타인에 대한 폭력도 자유이고, 처벌도 내릴 수 없으니까요.
책 속의 한 문장
“나는 아무런 의구심도 없이 투명성이 한 인간에게 미칠 엄청난 비전, 그 미스터리, 권력, 그리고 자유를 예견해보았어. 허점이라곤 보이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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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전쟁》 http://goo.gl/QfQMBb
화성인들의 압도적인 화력을 막아내지 못하고 결국 런던을 포함한 일대의 도시들이 무참하게 파괴되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주인공인 화자가 자신이 목격한 바를 그대로 서술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철제 무기들을 녹이는 외계의 광선포, 긴 촉수로 인간을 휘어잡아 죽이는 외계 생명체 등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이 작품을 단번에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책 속의 한 문장
“촉수들은 고르곤 같았고, 낯선 대기권 속에서 힘겹게 작동하는 허파로 인해 숨소리가 요란했다. 둔하고 고통스런 움직임은 아마도 지구의 엄청난 중력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커다란 눈동자에서 나오는 특유의 강렬한 눈빛까지 합쳐져, 생생함, 강렬함, 냉혹함과 괴물 같다는 인상을 불러 일으켰다. 미끈 거리는 밤색 피부에는 균사가 증식했고 천천히 꿈틀거리는 동작은 형언하기 힘든 불쾌감을 안겨주었다. 두려움과 공포가 나를 압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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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모음집
《허버트 조지 웰스》 http://goo.gl/vjVUP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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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미정
1. 칠흑같이 어두운 골목길을 걷는다. 가로등이 저 멀리 보일 듯 말 듯 불빛 마저 희미해지는 곳을 걷고 있다. 지금 몇시쯤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시계를 들여다 보니 아날로그 싸구려 가죽시계가 깨져 있다. 대학 입학을 축하한다고 아버지께서 사주신 낡은 가죽 시계였다. 이제는 단종이 되서 건전지를 갈아끼우는일 조차 쉽지 않은데 시계 유리가 깨져 있다. ‘ 시계유리만 교체해주는 곳이 있었던가?’ 결국 정확하게 몇시인지는 확인하지 못한 채로 길을 걷는다. 와본 기억이 없는 곳인데도 이상하게 낯이 익다. 창문에 붙여진 찢어진 창호지, 철로 된 대문위에 붙여진 껌 씹고 나서 붙이는 스티커까지... 어디서 보았던가? 여름이 다가왔는데도 아직은 밤공기가 차가워 대충 걸치고 왔던 자켓을 여미어 본다. 길을 걷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다. 그래. 분명 그녀밖에 없었다. 분명 아까 시계를 보려고 손을 올리기 전까지는 저 여자는 없었다. 분명히 없었는데... 흐릿하게 보이는 가로등 밑에 누군가가 서있다. 아까는 확인하지 못했던 사람이 길 끝에 서 있다.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좀 더 앞으로 다가갔다. 거리가 점점 좁혀지는데도 그 사람의 얼굴은 확인하기 어렵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얼굴을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얼굴이 없는 것 같았다. 붉은색 원피스를 입고 그 자리에 서있던 사람은 여자였다. 이목구비가 보이지 않았는데 슬픈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처연했다. 가까이 다가가 손을 뻗었다. 누구인지 몰라도 확인해야한다. 머리가 지끈거려 얼굴이 찡그려진다. 그때 문득 생각이 났다. 매일 온 것 같았던 이곳은 매일 밤 그녀를 괴롭히던 꿈속이었다는 것을. 지금 꿈속에서 괴롭히는 이 여자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또 다시 손을 뻗는 것이다. 이번에야 말로 기필고. ‘ 너 대체 누구니? ’ 짜증섞인 말투로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는 순간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그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 언니.... ” 땀 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서 꿈에서 깨어났다. 침대 옆 시계를 확인해보니 매일 그렇 듯 시간은 새벽 4시 26분이었다. 마른 세수를 하며 얼굴을 감싸쥐었다. 술을 깨지 못한 것처럼 정신이 몽롱하고 머리가 아파왔다. 시계 옆에 놓여진 두통약 한 개와 물을 삼키고 나서야 비로소 현실임을 깨달았다. 벌써 일주일째 반복되는 꿈을 꾸고 있다. 어두운 골목길을 걷고 있고 어떤 여자를 만난다. 그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려고 가까이 다가가면 자꾸 꿈에서 깬다. 이상하게 그여자는 지현과 스친 적이 있는것처럼 낯이 익었고 막상 생각을 해보면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멍해진 정신을 가다듬고 자리를 정리했다. “ 다시 자기는 틀렸네 ” 언제나처럼 자켓 하나를 두르고 베란다로 나갔다. 담배 한개와 라이터를 챙기고 베란다에 놓여진 의자에 앉았다. 무신하게 불을 붙이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처음 서울로 올라 왔을 때 유일한 낭만이라며 구매했던 작은 테이블과 의자는 맥주 한잔 대신 수북히 쌓인 담배와 재떨이가 놓여져 있었다. 아직 차가운 새벽 공기에 불을 부치며 쓰게 뱉는 담배연기가 하얗게 번진다. 그 때 손이 시려워 넣은 왼손에 무엇인가 잡혔다. 어제 충전해야지 하면서 챙기지 못했던 핸드폰이었다. “ 아,,, 충전해야 했는데 배터리가 남았던가 ? ” 눈을 찌푸리며 켜본 핸드폰 액정에는 배터리 12% 절전모드 화면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빨갛게 표시된 알림표시. 부재중 3통, 메시지 1통 막상 이런 부재중 연락이 요즘 들어 무서울법도 한데 일단 확인해 보았다. 부재중 1통 고딩친구 김수연 부재중 1통 고딩친구 김수연 부재중 1통 고딩친구 김수연 모두 고등학교 동창 수연의 번호였다. 혹시나 하고 확인 한 메시지에도 역시 그녀의 번호가 찍혀져 있었다. 지현아 일어나면 전화좀 줘 - 낯선 그녀의 연락은 당황스러웠다. 지난번 억지로 끌려간 고등학교 동창모임때 번호를 교환했었지만, 지현과 수연은 친한편이 아니였다. 물론 사회에 나와서도 연락하는 사이는 더욱 아니였다. 다만 으레 그렇듯 어색하기 짝이 없는 그 공간의 훈훈한 분위기를 채워보고자 멋쩍게 교환한 번호였다. 동창회 이후로 잘 들어갔냐는 흔한 안부인사도 없었던 사이에 갑자기 전화라니. 더군다나 일어나면 전화를 달라는 그녀의 메시지는 잘못보냈나 생각하는 의심조차 들수 없게 했다. 낯선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노인과 바다
'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저 (지극히 주관적이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노인과 바다. 헤밍웨이의 대표작이다. 개인적으로 깔끔하고 짧은 단문을 선호하는 편이다. 물론 만연체나 화려체, 우유체 등도 충분히 매력 있지만 간결체로 된 단문은 서사 중심의 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문체이자 문장이다. 그래서 국내 작가로는 김훈 작가와 장강명 작가를, 외국 작가로는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좋아한다. 이 노인과 바다에서도 간결하게 서사를 표현해내는 헤밍웨이의 하드보일드 한 문장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사실 노인과 바다는 큰 스토리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한 늙은 어부가 커다란 물고기와 삼일 밤낮을 사투를 벌여 결국 물고기를 잡고 그 물고기를 뱃전에 묶은 채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가 물고기의 살점을 모두 뜯어먹는 내용이 전부다. 하지만 이 노인과 바다를 명작의 반열에 올려놓는 이유는 헤밍웨이 특유의 간결하고 냉철한 문체로 늙은 어부가 물고기를 잡는 상황과 감정을 날카롭게 그려냈다는 점, 한 늙은 인간과 대자연인 바다, 그리고 그 속의 커다란 물고기가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한 명의 인간이 거친 대자연 속에서 어떻게 의지를 잃지 않고 버텨나가며 고난과 싸우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숭고해지고 위대해질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는 점, 늙은 어부와 물고기의 끊임없는 투쟁 과정과 그동안 어부가 느끼는 생각들을 생생하게 서술해 독자에게 인간의 마음이란 얼마나 연약하고 또 얼마나 강인한지 그 양면성을 보여주었다는 점 등이 있겠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점은 인간의 노력과 과정, 성과에 대한 것이다. 늙은 어부는 삼일 밤낮을 새워 거대한 물고기를 잡는다. 하지만 뱃전에 물고기를 묶고 돌아오는 길에 어부의 필사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상어 떼에게 그 살점들을 모두 빼앗기고 만다. 결국 어부는 엄청난 노력을 들이고 숭고하기까지 한 과정을 거쳤음에도 어떤 성과나 결과도 남기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노인을 무시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노인 스스로도 좌절하지 않는다. 소설의 마지막에는 레스토랑에 있는 부인이 살점이 모두 사라진 물고기의 흰 등뼈를 보며 말한다. "상어가 저렇게 멋있고 아름다운 꼬리를 가지고 있는 줄 몰랐네요." 독자의 감상과 상관없이 소설의 여러 부분에서 헤밍웨이는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한 일이 성과가 없기 때문에 헛되다고 생각하지는 않은 듯하다. 요즘 우리 시대에는 결과나 성과가 없는 일은 미련한 일로 취급받는다. 어차피 너 하나 그렇게 한다고 세상 안 바뀌어, 너 그거 헛고생이야 라는 말은 심심치 않게 주변에서 들려오곤 한다. 미련하게 노력하는 건 무식한 짓이고 요리조리 잘 살피면서 자신이 성과를 낼 수 있는 길로 치고 빠지는 것이 현명한 것이며, 어차피 안 바뀔 일이면 그냥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서 실익을 따지는 것이 옳고, 아무리 아이가 열심히 공부를 했고 그것을 두 눈으로 봤더라도 시험 점수가 40점이 나오면 그 아이는 공부 못하는 아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결과와 성과가 나오지 않는 일은 미련하고 무식한 짓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노인과 바다는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말인지 보여준다. 성과가 전혀 남지 않는 일이라도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쳤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있고 심지어 숭고하기까지 할 수 있다.(노인과 바다를 읽으면서 산티아고의 여정을 따라간 독자라면 어차피 내다 팔 물고기 살점 하나 안 남았는데 쓸데없는 짓 했네 라고 이야기할 순 없을 것이다.) 인간의 의지와 노력 그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찾을 수 있는 소설이다. 고전임에도 지금 시대의 기형적인 부분을 예리하게 꼬집고 있다. 점점 노력이 의미를 잃어가는, 힘들이지 않고 지름길로 가는 것이 미덕이 된 우리 사회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면 '노인과 바다'를 읽어보기를 바란다. 소설 속 한 문장 : 배는 아직 괜찮구나, 노인은 생각했다. 배는 온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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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중요한 것들, 그러니까 다른 중요한 것들은 미루고 미루는 한이 있어도, 이 글은 어떻게든 이렇게 마감일을 지켜 쓰고 있다. 나는 나와의 약속만을 중요시하는 사람 같다. 한 번쯤은 이 지면을 시 다운 시, 그러니까 분량은 그대로라도 어느 정도 보편적인 범주에서의 시 형식으로 채우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이 글은 이제 내 의지와는 조금 무관하게,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흘러가는 것도 같다. 나는 거들 뿐이다. 며칠 전에는 아는 사람과 낙원상가 부근에 있는, 통나무 식당이라는 곳에 해물찜을 먹으러 갔다. 해물찜의 맛을 보기 전 그는 나를 의심했다. 과연 이번에 내가 데려가는 집은 맛집이 맞는지.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올해 초에 염장을 하지 않은 맛없는 튀김 닭을 먹고 나를 비난했던 그 작자이기 때문이다. 사실 튀김 닭만으로 나를 필요 이상으로 비난한 것은 아닌 것이, 하필 그날 튀김 닭을 먹기 전 데려갔던 이태원의 ‘존슨탕’이라는 음식을 파는 바다식당이란 곳에서도 형편없는 맛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상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태원의 바다식당은 꽤 유명한 집이며, 유명하다고 다 절대적인 맛집은 아니겠지만, 분명 내가 전에 경험한 그곳의 존슨탕 맛은 꽤 괜찮았기 때문이다(여담이지만 그날, 그러니까 맛이 괜찮았던 날, 우리 일행의 옆 테이블에는 영화 『강철비』의 감독 양우석이 그의 배우자로 보이는 사람과 그의 아이로 보이는 사람과 셋이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여기가 과연 맛집이 맞느냐며 나를 비난했었고, 내가 생각해도 그날의 존슨탕 맛은 너무나 밍밍하기 그지없었다. 그날 주방장의 컨디션 문제였는지, 레시피 하나가 실수로 빠졌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비난을 막아낼 명분이 없었다. 그런데 그것을 만회한다고 저녁에 데려간 양재동의 한 튀김 닭집은 테러 수준이었던 것이다. 사실 우연히 알게 된 그 닭집은 내가 가본 집은 아니었지만, 분위기가 맛집 그 자체였기 때문에 모험을 감행했다가 호되게 당한 꼴이었다. 그곳의 분위기가 어떤가 하면, 일단 지하로 내려가며, 다소 허름하다. 을지로의 분위기가 나기도 한다. 외관상으로는 최고의 통닭집이다. 아마도 함께 보았다면, 누구도 부인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배웠다. 허름한 집이 꼭 맛집은 아니라는 것을. 외관이 허름한데, 맛조차 허름한 곳도 분명 있다는 것을. 이유 없이, 아니 이유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필요 이상의 비난을 받았던 나는 그에게 이번에는 제대로 된 맛을 보여줘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는 해물찜을 먹고 만족해했으며, 앞으로 더 두고 볼 테니 잘하라는 듯한 느낌으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게다가 나는 해물찜을 먹이기 전 충무로의 태극당에서 그에게 모나카 아이스크림 하나를 쥐여 주었다. 그는 대체로 마음에 들어 했다. 나는 별걸 다 만회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대학로의 학림다방을 가자고 권했고, 그는 좋다고 했지만, 그곳은 만석이었으며, 대기자도 두세 팀이나 있었다. 창가의 한 4인용 테이블에는 여자 손님 한 명이 혼자서 앉아있었는데, 그녀는 마치 70년대의 한 풍경처럼 노트에 펜을 끼적이며, 눈을 감고 과하게 무언가에 몰입하고 있었다. 시라도 쓰고 있는 것 같았는데, 조심스레 다가가 “저기……, 시를 좋아하시나 보죠?”라고 하며, 은근슬쩍 착석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사실 그러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다. 우리는 터벅터벅 내려와 프랜차이즈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태극당에서 사 온 사라다빵을 반으로 나눠 그를 먹였다. 태극당의 사라다빵은 꽤 유명하지만, 사실 그 부피에 압도되는 것이지, 맛이 그렇게 특별한 편은 아니다. 그는 배가 부르다고 했지만, 조금 뒤 카페 건너편에 보이는, 백종원이 운영하는 한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가서 열탄불고기나 먹자고 했다. 나는 그에게 그것이 진심이냐고 물었고, 그는 그렇다고 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그는 잠시 망설였다. 식당이 2층이었기 때문이다. 계단을 오르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진심이냐고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했다. 잠시 뒤 우리는 결국 그 식당에 갔다. 확실히 그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까.
제목없음 4
안녕하세요 빙글러님들 ^^ 드디어 제가 쉬는날이 와서 다음 화를 적어봤습니다. 원래 구상했던 내용이 통으로 날라가버려서 급하게 적어내려간 이야기가 조금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기다려주신 분들을 위해 4편 남깁니다 ^^ ====================================================================== [제목미정 4] 동영상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한동안 정적이 흐르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지현은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수연은 하염없이 흐느끼며 이미 젖어버린 휴지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 지현아, 나도 알아. 내가 이런 부탁하는거 너한테 엄청 무리라는거... 그런데 지현아. 나 정말 부탁할곳이 없어... 이미 성인인 수정이가 실종된거를 경찰측에서는 단순 가출일거라고만 하고 나를 과잉 보호하는 여자처럼 오바하지 말라고 나무라기만해. 지현아. 너도 알잖아. 우리 수정이는 정말 이렇게 말도 없이 잠적할 애가 아냐... " 실내금연이 아니였다면 몇 대를 피고 싶었으나 애꿎은 [카페내금연] 문구만 멍하게 쳐다보면 지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고있다. 오히려 동아리에 살다시피 했던 수정이랑 가장 가까웠던 지현이였기에 수정이 얼마나 곧은 성격인지 알고있다. 고등학교때 선생님이 동반하는 동아리 엠티를 가려고 할때에도 언니가 아르바이트를 가버리면 할머니 혼자 계셔야 한다며 그 흔한 추억거리도 만들지 못했던 친구였다는 것을. " 수연아. 일단 잘들어. 나 기자여도 흥신소는 아니야. 알아는 보겠지만 내가 경찰보다 더 잘찾는다고 보장할순 없어. 다만 경찰이 지금 너무 기다려보자고 시간만 끌고있으니 내가 알아는 볼게. " 초점없이 퀭해져있는 수연의 어깨를 두드리며 지현은 대답했다. 본인의 코가 석자라서 신변보호를 요청해도 모자랄판에 지현은 일단 수정의 동선이라도 좀 알아내야 경찰에게 정보라도 줄수 있을거같다고 생각했다. " 수연아 . 일단 너 집에가서 뭐좀 먹고 잠도 좀 자고 정신 좀 차려. 니가 이렇게 무너져있으면 같이 찾지도 못해. 알겠니 ? " " 응... 고마워 지현아 " " 그리고 이 핸드폰은 내가 가져갈게. 단서라도 찾으려면 핸드폰 좀 뒤지는 수밖에 없을거같다 . " " 고마워 지현아... 사실... 우리 할머니한테 말도 못했어. 수정이가 연락이 안된다고. 원래 한달에 한번은 할머니 보고싶다고 집에 오는 앤데... 이번주쯤이면 올때가 됐는데 안오니까 좀 이상하다고 느끼셨는지 막둥이 무슨일이 있는거냐고, 혹시 너무 바빠진거냐고 찾으시네 ... 근데 거기다가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몰라서 일단 시험공부때문에 바쁘다고그랬어.... " " 일단 할머니께는 말씀드리지마. 몸도 안좋으신데 정말 알면 쓰러지셔. 내가 아는 기자들한테 최대한 정보 알아내볼테니까 넌 일단 집에서 내 연락 기다려. 알겠지 ? " " 응, 부탁할게 지현아 " . 집으로 오자마자 씻지도 않은채 방한구석으로 가방을 집어던졌다. 평소라면 집에 오자마자 맥주한캔을 따고서 담배를 한대 피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컴퓨터를 켜고 usb로 수정의 핸드폰 동영상을 다운 받았다. 좀 더 큰 화면으로 살펴보기 위함이였다. 그러나 동영상 자체 배경이 너무 어둡고, 흔들리는 길을 올라가면서 찍는 터라 화면은 심하게 흔들렸다. 세번정도 돌려볼때쯤 지현은 멀미가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화면을 정지시켰다. ' 왜 이 핸드폰이 수연이네 집앞에 있었던거지 ? ' ' 수정이가 수연이랑 같이 살지 않는데 그 집은 어떻게 알고?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뒤로 하고 지현은 잠시 눈을 감았다. [Rrrrrrrrr] 가방에서 울려오는 벨소리에 정신이 퍼뜩들었다. - 윤기자 - "여보세요 " [ 야 백지현!!! 내가 얼마나 전화했는데 이제야 받아!!! ] " 아 미안, 친구좀 만나느라고. 오늘 헤드 잘봤어. 기사 잘빠졌더라 ? 데스크에서 승인해줘 ? " [김의원 뇌물수수 가려야 해서 우리 꼰대는 오히려 잘됐구나 하던데 ? 우리 꼰대가 후속 기사 써오라고 난리인데 제보자가 전화를 안받아. ] " 너라면 본인 얘기 헤드라인 차지했는데 좋다고 받겠냐? 지금 그분이 안전한지나 모르겠네 내가 걸어도 계속 안받으시던데. 설마 무슨일 있는건 아니겠지? " [그래도 기사 올리기전에는 메일도 주고받았어. 허락은 받고 올려야하니께. 걱정하지마 내가 계속 연락해볼게. 그래도 그 한영기업쪽에서 나한테 해꼬지 할까봐 좀 후달리긴한다야 . 나야 뭐 잃을거 없으니 글 싸지르긴 했다만 .. 넌 괜찮냐? 저번에 협박 문자 왔었잖아 ] " 그거 때문에 신경쓰여서 요즘 호신용품 좀 갖고다닐라고 . 야 윤씨. 그건 그렇고 너 영상쪽 좀 잘아냐? " [왜? 뭔데뭔데 ? 내가 큰건 하나 받았으니 뭐든 해주마.] " 헛소리하지말고. 내가 지금 사람 하나를 찾아야 하는데 단서가 동영상 밖에 없어 . 나는 아무리봐도 잘 모르겠어서 넌 그래도 좀 사진 영상쪽은 알잖냐 " ["흠... 뭔데 그래 ? 돈떼먹은 사람이야 ? 나한테 파일 보내보던가 . "] " 흠.... 그럼 내가 드라이브에 올려놓을테니까 받아서 확인해봐 . 좀 그 동영상 찍힌 장소 알아볼수 있으면 더 좋고. " ["알겠어. 야 큰건 하나 꽁으로 줬는데 이정도는 해줘야지. 내가 바로 확인해보마"] " 오키 고맙다~ " 윤기자라면 기사때문에라도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니 오히려 자신보다는 더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친구라면 이렇게 멀미도 안나고 좀 찾아봐주겠지. 답답한 가슴을 좀 해소하고자 지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맥주를 꺼내려 냉장고로 향했다. 벌컥 벌컥 캔을 들이키자 갈증으로 짜증났던 목이 조금씩 청량해지는 느낌이었다. ' 딱 요때 담배도 펴줘야지 ' 지현은 맥주캔을 든 채 안방 서랍 에서 담배를 꺼내려고 문을 열었다. 침대옆에 한켠 놓여진 서랍에서 새 담배를 꺼내려고 하는 순간 지현은 왠지 모른 위화감에 사로잡혔다. ' 내가 서랍을 열고 갔었나 ? ' 그녀는 평소에 출근할때 단정하게 정리를 하고 가는 편인데 안방 수납장이 열려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반쯤 열린 서랍사이로 옷은 묘하게 헤집어진 느낌이 들었다. 분명 오늘 본인은 건조대에 널어진 옷을 입고 출근을 해서 서랍을 열일이 없었는데 말이다. 불안해진 느낌에 지현은 퍼뜩 방안에 불을 켰다. '탁' 스위치를 올리자 힘이 풀려진 지현의 손에서 맥주캔이 추락했다. 거품을 튀기며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던 맥주는 그녀의 발까지 냉한 기운을 전했다. 불을 켜야 비로소 보이는 흔적. 안방사이로 가로질러진 그것은..... 누군가의 신발자국이었다.
제목 미정3
아무도 안봐주실줄 알았는데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ㅎㅎ 3. “ 커피는 너무 많이 마셔서 그냥 에이드 마실게 ” 애써 무시하려고 했지만, 지현 앞에 앉아있는 수연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다. 여름이 다되어서 이제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지 않을 텐데 싶었지만, 그녀는 뜨거운 줄도 모르고 데워진 커피잔을 계속해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 것 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머릿속이 복잡해 마땅한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 지현아, 미안해, 당황했지? 네가 이 회사에 다닌다고 저번 동창회 때 들은 거 같아서…. 상의할 사람이 너밖에 생각이 안 나는 거야. 그래서 실례일줄 알지만 무작정 찾아왔어. ” “ 좀 당황스럽긴 하다. 새벽부터 아까 점심때까지 계속 전화했었잖아. 대체 무슨 일이야? ” 수연의 눈동자는 불안하게 시선을 따라갔고, 바짝 마른 입은 좀처럼 가만히 있을 줄 모르고 오물거렸다. 계속해서 고민하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 지현이 너……. 기자라고 했지? 그럼 혹시……. 사람도 찾을 수 있니? ”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지현은 그녀가 자신을 흥신소쯤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처럼 느껴져 황당하기 짝이 없었지만 일단 들어보기로 하고 대답했다. “ 야. 내가 흥신소냐? 사람을 찾게? 누구 찾으려고? 누가 네 돈 떼먹기로 했어? ” 웃으며 대답한 지현의 말인데도 그녀의 눈은 여전히 불안했다. 그녀는 부산스럽게 가방에서 무언가를 찾았다. 한참을 찾는 그녀의 손에 쥐어진 건 둘둘 말아져 있는 흙 묻은 신문지 꾸러미였다. “ 이게 뭐야? ” “ 2주 전에 집에 배달된 택배 상자 안에 있었어. ” 지현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신문꾸러미를 조심스럽게 펼쳐 보았다. 구겨진 신문꾸러미 틈 사이에 놓인 것은 액정 유리가 조금 깨진 검은색 핸드폰이었다, 충전해놓았는지 전원을 켜자 깨진 유리 사이로 선명하게 대기화면이 보였다. 한눈에 봐도 대학생 그것이구나 싶은 게 대기화면에 수강시간표 위젯과 할 일을 적어둔 목록이 바로 보였다. “ 이거 누구 거야? ” “ 그거 우리 수정이 꺼야. 수정이 기억나지? 너 나랑은 안 친했지만, 수정이랑은 같은 동아리라서 가까웠었잖아. ” 그제야 희미해진 기억 속에서 생각난 ‘수정’의 이름이었다. 중학교 때 지현과 같은 방송반이었던 수연의 동생. 김수정. 방송부장이었던 지현이 차기 아나운서를 뽑겠다며 목소리가 좋았던 신입생을 뽑았었는데, 알고 보니 그녀가 수연의 동생이었다는 사실을 듣고 놀랐었다. 중학교 졸업 이후로 교류가 없어서 전혀 기억에도 없었던 그녀의 이름이. 이렇게 다시 떠오르게 될 줄이야. “ 수정이는 어디 가고 핸드폰만 여기 있는 거야? ” “ 수정이가 중간고사가 끝나고 주말에 친구들이랑 2박 3일 MT를 간다고 했었어. 근데 수정이가 대학교 기숙사에 살 거든. 기숙사에서 아직도 복귀를 안 했다고 나에게 연락이 온 거야.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 수정이가 연락이 안 돼. ” “ 경찰에 신고는 했어? ” “ 당연히 했지. 그런데 핸드폰 위치 추적해보니까 일행들이랑 핸드폰 위치가 일치한다고 가출인 거 같다고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거야. ” “ 경찰한테 이 스마트폰 보여주지 그래서 ” “ 보여줬지. 그런데 알고 보니 택배로 보낸 것도 아니라 누가 택배 상자에 넣어서 집 앞에 두고 간 거더라고. 그래서 경찰에 보여줬는데 경찰이 믿질 않아. 경찰이 위치추적 했을 때는 수정이 핸드폰이 제주도라고 하는데. 분명 나한테 온 핸드폰은 따로 있고……. 뭐라고 말하고 증명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일단 너한테 도움 청하려고 왔어. 기자면 그래도 사람 찾는 건 잘 할 거 같아서….” 그녀가 손을 떨며 설명을 하는 동안 지현은 진심으로 걱정스러워졌다. 신경쇠약이 걸린 것처럼 핏기 어린 그녀의 얼굴에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눈물을 억지로 닦아내며 핸드폰을 만지더니 무언가를 실행했다. “ 핸드폰에 이 동영상이 있었어. ” 그녀가 실행시킨 동영상에는 대학생 4명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어떤 숲속을 걷는 것처럼 보였다.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기도 다리가 아픈 친구를 위해 짐도 대신 들어주며 한참 동안 길을 걸었다. “ 동영상이 좀 길어서…. 잠시만. 이 부분부터 봐야 해. ” 20분 남짓한 길이의 동영상을 끝에 18분쯤으로 수연이 플레이 버튼을 끌었다. 어스름하게 어두워진 그 배경 안에는 몇 명이 어떤 건물에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딱 봐도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떤 건물을 그들은 올라가고 있었고 사람이 없어 보이는 건물 안에서 빛을 비추며 여기저기를 살피고 있었다. 그들은 건물 내부를 이리저리 살피며 다른 친구는 사진을 찍기도 하고 잡담을 하기도 하며 1층부터 조금씩 위층으로 올라가는 듯해 보였다. 화면 안에는 세 명 이외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올라가는 일행 중에는 수연의 동생 수정의 모습이 희미하게나마 보이기는 했다. 물론 빛이 없는 상태라 잘 보이진 않았고 화면 속 여자는 이리저리 손전등을 비추며 앞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모습이 보였다. 음량을 크게 해봐도 그들의 대화 내용은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여자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음은 틀림이 없었다. [ “ 쟤 지금 누구한테 말하고 있는 거야? 저 사람 누구지? ” ] [ “ 여기 우리말고 사람 또 있어? ” ] [ “ 저 사람 누구야? ” ] 뒤를 따르던 그녀의 일행들이 수연을 부르고 있었고, 이윽고 카메라는 심하게 흔들렸다. 아마 수정을 따라 뛰고 있는 것 같았다. 숨을 헐떡거리는 소리와 함께 “ 악 ” 하고 짧은 비명이 퍼졌다. 그 순간 카메라는 건물의 바닥을 비추며 화면이 갈라져 버렸다. 아마 카메라 렌즈가 조금 깨진 듯했다. 바닥만 비친 화면 사이로 희미한 그림자가 빠르게 지나갔고 간간이 비명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몇 초가 지났을까? 정적과 함께 바닥만 비추고 있던 화면에 어떤 손 하나가 보였다. 그리고 그 후에 화면은 탁하고 꺼졌다. 영상은 그렇게 끝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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