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la
3 years ago10,000+ Views
“힙합은 시작부터 다른 장르를 샘플링한 재창조의 음악이었다.” 뭐, 이런 이야기는 다들 질리도록 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며 샘플링 작법 역시 발전했고 다양해졌다. 가스펠, 소울, 록 등에 한정되어있던 테두리는 사라졌다. 독특한 소스를 사용한 힙합이나 힙합을 사용한 음악들. 그중에서도 필자의 귀를 즐겁게 만들었던 몇 개의 트랙을 준비했다.
Mandarin Oranges – Little Simz & Waldo (Prod. Sango)
이제 스무 살을 갓 넘긴 북런던 출신의 여성 래퍼 리틀 심즈(Little Simz)와 소울렉션(Soulection)에 소속되어 있는 미시간의 힘세고 강한 왈도(Waldo), 그리고 상고(Sango)가 함께 한 이 트랙은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서양에서 만다린이란 단어와 함께 붙어 다니는 요소는 오리엔탈리즘(이 글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동양에 대한 서구 문명의 편견’이란 의미로 사용한다)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트랙 역시 서정적인 피리 샘플과 동양미를 물씬 풍기는 현악기까지 전형적인 동양의 이미지로 가득 차있다. 이런 소스들을 얻는 곳은 당연하게도 동양의 음악이다. 동양의 악기들이 잘게 잘려 반복되는 상고의 프로듀싱의 비해, 리틀 심즈, 왈도의 랩은 오리엔탈리즘보다는 ‘만다린 오렌지’라는 주제를 비유적으로 사용한다. 특별히 부각되지는 않지만 중독성이 있다. 마치 한번 까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한 박스가 사라지는 만다린 오렌지처럼 말이다. 곡을 듣고 나서 리틀 심즈와 왈도의 다른 곡을 찾아봤다면, 당신도 이 만다린 오렌지의 맛을 본 것이다.
Cyhi Da Prynce – Nelson Mandela (Prod. Sekou Muhammed & TEC BEATZ)
힙합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뿌리인 아프리카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사하 다 프린스(Cyhi Da Prynce)의 믹스테입 [Black Hystori Project] 역시 이러한 시도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믹스테입의 주제가 흑인의 역사인 만큼, 곡의 제목들은 위대했던 흑인의 이름을 많이 인용했다. 그 중 “Mandela”를 프로듀싱한 세코우 무하마드(Sekou Muhammed)와 TEC 비츠(TEC BEATZ)가 택한 샘플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TV 시리즈, [Shaka Zulu]의 테마송이다.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를 기리기 위해 그들은 남아공으로 돌아간 것이다.
“Mandela”는 원곡의 아카펠라와 퍼커션 리듬을 그대로 차용했다. 그리고 그 위에 에디팅한 TR-808을 올리며 간단한 구성을 취한다. 하지만 이 곡이 결코 간단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사하의 진지한 이야기와 입이 떡 벌어지는 비유, 그리고 사하 특유의 라이밍 때문이다. 수많은 싱글이나 믹스테입 리뷰의 마지막은 “다음 행보를 주목해보자.”라는 뻔한 말로 마무리되지만, 적어도 이 믹스테입은 저 뻔한 말을 몇 번이나 강조해도 모자라다. 도대체 이 정도 퀄리티의 믹스테입을 내면서 왜 정규 앨범은 발매하지 않느냐는 기대감 섞인 불만과 함께 말이다.
Video 2000 – Midnight Ride (Prod. Video 2000)
위의 음악이 힙합이 다른 장르를 차용한 것이었다면, 다음의 소개할 두 곡은 반대로 힙합을 차용한 타 장르의 곡이다. 그 첫 번째는 베이퍼웨이브. 텀블러(Tumblr)에서 서식하는 힙스터(동의어 : 오타쿠)들의 한 철 파티와 같았던 베이퍼웨이브(Vaporwave). 시펑크(Seapunk)의 죽음과 동시에 키치한 이미지를 앞에 걸고, 8, 90년대 CM송 같은 BGM을 통샘플링하며 나타난 베이퍼웨이브는 사실 장르로 정의하기도 모호한 밈(Meme)과도 같은 존재였지만 그래도 나름 꽤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런 흐름의 중심에 있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즐겁게 들었던 아티스트가 둘 있다. 바로 럭셔리 엘리트(Luxury Elite)와 비디오 2000이다.
럭셔리 엘리트가 케니 지(Kenny G)가 떠오르는 촌스러움을 표방한 인스트루멘탈이었다면, 비디오 2000은 힙합과 R&B 아카펠라를 샘플링하며 기승전결을 맞추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펙터가 과하게 걸린 샘플들 사이에서 닥터 드레(Dr. Dre)나 스눕 독(Snoop Dogg), 투팍(2pac)등의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의 이질감은 일종의 쾌감을 전달한다.
Chris Brown – Loyal (DJ Sliink & Trippy Turtle Remix)
최근 전자 음악 신을 강타하고 있는 장르는 누가 뭐라 해도 저지 클럽(Jersey Club)이다. 이런 흐름에 힘입어 신은 많은 재능을 얻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각을 나타낸 아티스트라면 역시 트리피 터틀(Trippy Turtle)이다. 그런 그와 함께 저지 클럽이 발견한 또 다른 재능, DJ 슬링크(DJ Sliink)가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의 “Loyal”을 재구성했다.
DJ 머스타드(DJ Mustard)가 떠오르는 단순하고 중독적인 멜로디, 베이스를 바탕으로 한 래칫 뮤직(Ratchet Music)은 잘게 쪼개진 크리스 브라운의 목소리와 하이햇 리듬에 매력적인 전자음과 부드러운 EP가 입혀지며 훌륭한 저지 클럽으로 변모한다. 무엇보다도 이 곡의 매력 포인트는 변주다. 예상 가능한 범위를 조금씩 벗어나는 변주는 듣는 이의 호기심을 조금씩 자극하는 맛이 있다. 리믹스를 거치며 사운드도, 분위기도 달라졌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이 곡이 흘러나올 때면, 댄스 플로어 위의 트월크를 추는 여성들이 꼭 있을 것이란 점이다.
GO! VISLA Magazine! : http://visla.kr/?ref=vingle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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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천지창조 무궁무진하네요 음악의 변신은
전 보사노바와 만나면 빠져들 수 밖에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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