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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트가 추천하는! <추석맞이 필수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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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덜 알려진 와칸다급 득템 정보
요즘 들어 느끼는게 참 맛있는 것도 많고, 사고 싶은 것도 많고, 참가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뭔가 누릴 것이 많고 다양해졌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솔직히 제 돈벌이는 하고 싶은게 많아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ㅁ- 그러다보니 뭐.. 자연스럽게 할인정보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됩니다. 어차피 살 거 싸게 사면, 남는 돈으로 뭐라도 더 할 수 있으니까요 ㅋㅋ 네, 저는 아끼기보단 조금 즐기렵니다ㅋㅋ 그럼 주변분들이 잘 모르는 제가 간혹 이용하는 꿀팁 공유해보겠습니다. 전시했던 상품이나 리퍼브제품을 싼 값에 살 수 있는 곳입니다. 노트북이나 가전제품 구매 전에는 꼭 들러보는 곳입니다. 컴퓨터를 많이 알지 못해서 그 기준이 너무 높지 않다보니 저에게는 꽤 괜찮았습니다. 특히 이사해서 가전제품들 살 때 잘 활용했네요. 근데 선물용으로는 주의하세요. 전시상품이나 리퍼브제품이라서 포장상태가 안좋은 경우가 많거든요. 저도 청소기 선물하려고 샀다가 난감했던 적이 있습니다 ㅎㅎ 꿀팁을 드리자면, 롯데아울렛 등에도 매장이 있던데 온라인 없는 득템을 할 수도 있습니다. ★★★★★ 점점 신상품 수량이 많아지다보니 상대적으로 할인상품이 적은 느낌이 들지만 그만큼 콜라보나 행사도 많아져서 별 만땅줘봅니다. http://www.ajjuncmall.com/ 공연을 좋아하신다면 혹은 커플이시라면 눈여겨볼 서비스입니다. 입찰을 통해서 보다 저렴하게 티케팅을 할 수 있는 서비스예요. 본래는 공연을 더 저렴하게 본다는 취지였는데 꽤나 괜찮은 공연, 단독 티케팅 공연들도 있다보니 최저가보다는 공연을 보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주곤 합니다. 하지만 이전에 비해 공연 업뎃속도가 떨어져 점수를 좀 짜게 줘야 할 것 같습니다. ★★★☆☆ https://m.allwin.co.kr/ 특이한 해외직구샵입니다. 해외에서 이슈가 되는 비즈니스를 다루는 뉴스미디어였는데 최근에는 이슈가 되는 비즈니스 상품을 직접 판매까지 하고 있습니다. (뉴스기사 마지막에 구매버튼이 생겼습니다.) 해외에서 잘 나가는 회사들의 성공기를 보여주면서 상품구매로 연결시키니 구매욕이 꽤나 자극됩니다. 아마도 얼리어답터분들께는 참 매력적인 쇼핑몰로 느껴질 겁니다. ★★★★☆ 직접 직구에 비해 가격메리트가 떨어지는 경우를 종종봐서 별 하나 줄였습니다. http://ttimes.co.kr/index.html?menu=pick 무신사나 29cm같은데 입점한 국내 신진디자이너브랜드나 스트릿브랜드를 저렴하게 구할 수 있습니다. 이월상품 위주라서 할인이 크다고 합니다. 할인율이 굉장히 좋아서 여름티셔츠는 1만원도 안하는 가격에 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요즘 국내신진패션브랜드들이 워낙 인기라서 거품이 좀 있다고 느꼈다보니 상당히 만족스럽습니다. 이월이라곤 하지만 6개월채 안된 제품들도 많고해서 유행에 처지는 느낌은 없습니다. ★★★★☆ 아직은 상품수가 적어서 별 하나 줄입니다. 상품수만 많아지면 꽤 큰 쇼핑몰이 될 것 같습니다. https://mdoutlet.co.kr/
신천지 31번 확진자의 대구 초토화 실황.txt
- 교통사고로 입원 4일차, 발열 시작. 한방병원 영상의학검사 진행 폐렴 확인. (내과 전문의 있는 병원) - 병원측, 전문적인 치료를 위해 검사 가능 병원 전원 권유. - 31번 신천지 `해외 여행 안하고, 확진자 접촉 안했다. 안간다` - 병원, 항생제 투여. 차도 없음. (4인실에 홀로 입원시켜 격리) - 31번, 입원 상태에서 15일 대구 퀸벨 호텔 결혼식 참석 16일 대구 남구 신천지 예배 참석 -> 새로난한방병원 일시 폐쇄. 환자 33명 대구 의료원 전원     한방병원 1층. 약국. 신협 범어지점 임시 휴업(자가격리) -> 수성구 보건소 전체 방역. 민원실 폐쇄. 직원,공익 11명 자가 격리 -> 퀸벨 호텔. 휴업. 방역 시작. CCTV로 동선분석. 휴업 -> 신천지. 다단계 폐쇄후 방역중 -> 환자 아들이 다니는 자동차 부품업체. 환자 아들 자가격리. 사무실 소독 -> 병원 간호사 자녀가 다니는 유치원. 휴원 -> 대구시 주최 행사 모두 취소. -> 수성구 도서관 8개 2.19~3.3일 임시휴과ㅣㄴ -> 청도군, 2월 22일 재개 예정 소싸움 무기한 연기.     청도군. 이서면 주민 수십명이 퀸벨 호텔 결혼식 방문 이력 확인. 조사중.  성주군, 직원 51명 동료 결혼식 퀸벨 호텔 참석 -> 전원 자가 격리중(재택근무) (군수 재량으로 결정한 재택근무라고 함. 질본차원에서 하는 공식 조치 아님.) 새로 확진된 15명 중 10명이 31번 확진자와 같이 예배 본 신천지 신도들이라고 함. 덕분에 신천지 예배 중단
인간미가 느껴지는 조선왕들의 일화 (꿀잼 시간순삭)
왕이라는게 진짜 준니 하드코어하구나.. 를 느낀 일화들 잼나는 것도 있고 안타깝고 씅나는 내용도 있고 재밌어서 퍼옴 ㅇㅇ 어진을 찾을 수 없는 왕들은 걍 뭐 대충,,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태종 1. 직업정신 투철한 사관이 따라다니며 일 거수 일 투족을 다 기록해서 태종이 걷다 헛발질한 것도 적었다. 태종이 그건 제발 지워달라, 창피하다 애원까지 했는데도 사관은 끝까지 '왕이 길을 걷다 헛발질하다. 헛발질한 것을 적지 말라고 말한 것은 적지 말라 명하셨다' 라고 적었다. 2. 하도 사관이 쫓아다녀서 못 쫓아오게 멀리까지 사냥을 나갔는데 사관이 거기까지 말 타고 쫓아와 사냥기록을 적었다고 한다. 3. 태종은 아들 양녕대군이 너무 사고를 치고 돌아다니자 속이 상해 밤새 울어 목이 쉰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점은 양녕대군의 아들인 이혜는 아버지인 양녕대군보다 더 많은 사고를 쳐 양녕대군의 속을 썩혔고 결국 왕자의 아들의 직위인 '군'의 작위를 깎여 서산군에서 서산윤으로 강등당했다. 결국 이혜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자살시도를 하였고 이틀 뒤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이혜는 사람을 때려 죽이라고 시키기도 하였고 직접 사람을 죽이기도 하였으며 남의 첩을 빼앗기도 하고 시전에서 종친들과 패싸움을 하였고 과격한 놀이판을 벌이다 놀이 중 사람이 죽어나가게 하기도 하였다. 실록에서는 이혜가 망가진 원인을 사랑했던 첩을 아버지에게 빼앗기고 난 후에 울화병이 생겨 이리 되었다고 한다.) 4.태종은 운명론자가 아닌 현실론자였는데 태종이 세종에게 양위한 어느날은 우연히 하급관리 두명의 토론을 듣게 되었다. 한명은 부귀영화는 모두 임금에게서 나오는것이라고 하였고 도 한명은 하늘이 정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현실론자였던 태종은 부귀영화가 임금에게 나온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한품계를 올려주려 하려고 그 관리에게 '지금 가는 아무개에게 한 품계를 올려주도록 하시오'라는 종이를 세종에게 전해주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관리는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운명론자인 관리에게 대신 종이를 전해주라 하였고 결국은 그 관리가 진급을 하였다. 5. 조선왕들중 가장 많은 자식을 가진 왕으로 12남 17녀, 29명의 자식을 가졌다. 세종 1. 세종대왕은 좋아하던 후궁에게 신하들 몰래 따로 불러서 말없이 귤 하나를 쑥- 내밀어 준 얘기도 있다. (그 당시 귤이 귀한 것이었다.) 2. 친경한다고, 소 끌고 밭 갈다가 갑자기 비가 내리자 배고픔을 못 견뎌, 밭 갈던 소를 때려잡아서 국 끓여 먹은 적도... 3. 명재상 황희는 청백리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었다. 임금이 사람을 붙여 철저하게 감시하고 너무도 기분 나쁘게 점검하는 바람에 ‘내참 더러워서 뇌물 먹지 않으리라’ 결심한 케이스다. 4. 훈민정음 반포식을 축하하는 잔치 행사에는 집현전 학사 절반이 참석하지 못했다. 대부분이 살인적인 과중한 업무와 임금의 요구사항에 시달리다 못 견뎌 병석에 누운 탓이었다. 성군의 캐치프레이즈는 “신하가 고달파야 백성이 편안하다”였다. 5. 세종은 부하들을 휘몰아치는데 도가 튼 인물이었다. 아침 조회 격인 새벽 4시 상참에서부터 과업 달성이 부진한 부하들을 닦달하였다. 밤낮으로 시달리다 못한 김종서의 경우 임금 곁에 있다가는 제명에 못살 것 같아, 스스로 궁궐을 떠나 삭풍이 몰아치는 북방을 개척하겠다고 손을 들고 나섰다. 정인지는 임금이 너무 독촉하고 소위 ‘갈궈 대는’ 바람에 모친 3년 상을 핑계로 상소를 올리고 낙향하려 했으나, 임금은 법령까지 바꿔서 그를 다시 붙잡아다 오히려 일을 더 시켰다. 6. 양녕대군이 평안도를 유람하게 되어 세종은 형인 양녕대군에게 ‘제발 여색을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몰래 평안도 관찰사에게 명하기를 “만일 양녕대군이 기생을 가까이하거든 즉시 그 기생을 역마에 태워 서울로 올려 보내라” 라고 하였다. 양녕은 세종과의 약속도 있고 하여 가는곳마다 기생의 수청을 물리치고 근신하였으나, 그가 평안북도 정주에 이르렀을 때 그만 양녕의 마음을 사로잡는 절세의 미인이 나타났다. 양녕은 그날로 동침하고 귀신도 모르리라 자신했다. 그래서 시를 지어 하룻밤 풋사랑을 읊기를 “아무리 달이 밝다하나 우리 두사람의 베게를 들여다 보진 못할것이다. 그런데 바람은 어이해서 신방을 가린 엷은 휘장을 걷어 올리는가” 라 하였다. 그러나 이튿날 정주수령은 이 기생을 역마에 태워서 서울로 보냈다. 세종이 기생에게 명하기를 “너는 양녕대군이 읊은 시를 노래로 불러 익혀두라” 하였다. 양녕은 이런 사실도 모르고 유유히 서울로 돌아와 세종을 알현하였다. 세종: 잘 다녀오셨습니까. 제가 신신 당부한 말씀을 잘 지켜주셨는지요? 양녕: 물론입니다. 어찌 어명을 어기겠습니까? 한 번도 여색을 가까이 한 일 없습니다. 세종: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습니까. 제가 형님의 노고를 덜어 드리고자 가무를 준비하였습니다. 양녕은 기생이 나와 노래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누군지 몰랐다. 그런데 가사를 들어보니 자신이 지은 시구가 아닌가. 깜짝 놀란 양녕은 그 자리에서 땅에 엎드려 용서를 빌었다. 세종을 웃으며 뜰에 내려와 형님의 손을 잡고 위로하면서 그날 밤 그 기생을 양녕댁에 보냈다. 7.양녕대군과 세종은 원래 우애가 깊지 않았다. 태종은 양녕과 효령과는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았지만 유독 충녕, 즉 세종을 편애 하였다. 게다가 세종은 알려진것과 같이 머리가 아주 좋았고 공부를 좋아했다. 태종이 충녕에게 나중에 '너는 할일이 없으니 놀아라'라고 하며 글씨,그림, 비파등을 마련해준 때가 있었다. 그 때 양녕은 충녕에게 비파를 배우며 서로 친해졌고 다른 면에서 보면 자신의 경쟁자였던 충녕이 공부를 포기 했기 때문에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일것이다. 그 후로는 양녕대군도 공부에 열심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비파, 글씨 등에 관심이 있지 않았고 언젠가부터 다시 학문에 관심을 가지고 양녕에게 많은 충고를 하였다. 양녕은 열등감으로 인해 방황하였고 다시 비행에 빠져들게 되어, 결국 세자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 자리는 세종이 차지하게 됬다. 8. 나라에 큰 일이 있어, 모두 고기를 먹지 않는 기간이었다. 태종은 특별히 세종에게는 삼시 세끼 고기를 챙겨먹도록 하였는데… 그것은 충녕(세종)이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종 1. 수염이 매우 풍성하여 관운장과 같은 풍모를 냈었고, 얼굴 또한 매우 잘생겼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이후 폐허가 된 궁을 정리하는데 타다 남은 왕의 어진이 한 장 나왔다. 수염이 길고, 풍채도 당당하여 신하들은 인종의 어진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사람만은 수염이 길다는 말만 듣고 문종의 어진이라고 주장했다. 나중에 어진을 조사하다가 보니 어진 구석에 문종대왕의 어진이라는 기록이 나왔다고 한다. 2. 학식, 외모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단 하나.. 건강 세조 1. 술 먹고 신하 팔 꼬집고 신하한테 '너도 나 꼬집어라' 라고 시키자 신하는 세조를 꼬집었다. 그 뒤 자기 혼자 열 받아서 혼내주려다 그냥 넘어갔다. +세조의 팔을 꼬집은 것은 신숙주다. 정확히 말하면 꼬집은 게 아니라 팔씨름하다가 세조의 팔을 두 손으로 넘겼다. 그래서 세조가 신숙주 죽이려고 했다가, 술 취한 것을 감안하여 넘어갔다. 2. 세조는 후궁이 단 한 명뿐이고 평생 중전인 정희왕후와 금슬이 좋았는데, 국사를 논할 때도, 국가의 모든 행사에도 꼭 정희왕후를 대동했으며 사냥을 할 때도 둘이 나란히 말을 타고 사냥에 나갔다. 3. 신숙주가 영의정었을 때 구치관이라는 사람이 좌의정이 됐다. 이때 세조가 신숙주하고 구치관을 불러서 "내 오늘 경들에게 질문을 할 테니 대답을 잘 못하면 벌을 줄 것이요"라고 하였다. 그리고 세조가 "신 정승!"하고 부르니까 신숙주가 대답했는데 세조가 "나는 새로 된 정승을 불렀는데 경은 대답을 잘못했소"하면서 벌주를 먹였다. 그리고 "구 정승!"하고 부르니까 구치관이 대답하니 그리고는 "나는 옛 정승을 불렀는데 경은 대답을 잘못했소"하면서 구치관한테도 벌주를 먹였다. 그러고 다시 "구 정승!"하고 부르니까 이번에는 신숙주가 대답했다. 근데 이번에는 "나는 성을 불렀는데 경이 대답을 잘 못하는구료" 하면서 또 벌주를 먹였다. 그러고서 또 "신 정승!"하니까 구치관이 대답하는데 구치관한테도 "나는 성을 불렀는데 경은 잘못 대답하였소" 하고 벌주를 먹였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신 정승! 구 정승!" 하고 부르니까 둘다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임금이 부르는데 신하가 대답을 안하는건 예의가 아니라면서 또 벌주를 먹였다고 한다. 성종 성종은 후추 중개무역으로 돈을 벌기 위해 후추 씨앗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결국 후추는 구하지 못 하고 주변국에 성종이 후추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나 계속해서 조공으로 후추가 들어오는 바람에 창고에 후추가 가득히 쌓여, 예쁜 비단 주머니에 담아 조정 관리들에게 다 하사하였다. 연산군 1. 성종과 연산군이 오랜만에 밖에 바람 쐬러 나와서 성종이 ‘융아, 좋지 않으냐?’ 하니 연산군이 소떼를 보며 ‘아바마마 저 송아지도 어미 소가 있는데 저는 왜 어미가 없습니까’ 라고 말했다. 2. 또 다른 야사에서는 연산이 동궁이었을 때 어느 날 성종에게 거리에서 나가 놀고 싶다고 하여 성종이 허락하였다. 저녁에 동궁이 궁궐로 돌아오자 성종이 “오늘은 밖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하고 묻자 연산은 “구경할만한 것을 없었습니다. 다만 송아지 한 마리가 어미 소를 따라가는데 그 어미 소가 울면 송아지도 따라 우니 그것이 가장 부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여 성종이 가여워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전해짐. 3. 공부하는 걸 엄청 싫어하여, 왕자를 훈육하는 학자들이 엄청 고생을 했다고 한다. 매일 꾸중 듣고 야단맞아, 폐비 윤씨 사건이 일어났을 때 모두 죽여버렸다. 4. 춤을 잘 췄다고 한다. 5. 모후인 폐비 윤씨와 고려 공민왕의 비인 노국대장공주의 얼굴이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관공서에 노국대장공주의 초상화를 수집하게 한 일도 있었다. 6. 엄청난 꽃미남이었다고 한다. ++ 보너스 연산군에 대한 잘못된 사실들 연산군이 정치를 잘 하지 못하고 폭군의 모습을 다소 보인점은 사실이지만, 몇가지 왜곡된 사실들이 있다. 1.연산군은 궁궐 담장 아래 백척 내에 있는 민가들을 철거하여 쫓아냈다. - 하지만 이것은 원래 불법주택들이였다. 선왕, 후궁들의 모습이 민간에 노출되어서는 안된다는 법도에 의한 것들이였다. 그러나 연산군은 오히려 봄까지 기다려주고 주택의 등급을 나눠 무명을 보상으로 주고 대토 와 거주지까지 마련해 주었다 2.궁을 짓기 위해 열한 고을의 백성들을 내쫓았다 - 백성들을 내쫓은것은 사실이지만 그 수는 500여호에 불과했고 열한고을은 사관이 의도적으로 과장해서 쓴것이다. 또 지나가는 자는 죽여서 시신을 구경시키는 형을 내린다고 했으나 무덤이 있는 자들에게 명절 출입을 허가했으며 불법주택에도 보상을 해준 연산군이 보상을 안해줬을 가능성은 적다. 게다가 궁은 큰집 50칸으로 몇몇 사대부들의 99칸 집들보다도 작은 크기였다. 3.연산군은 음란했다. -연산군이 비구니를 간음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나 연산군은 기생의 출입도 소문이 두려워 꺼렸던 인물인데 늙은 비구니를 몽둥이로 쫓고 젊은 비구니들을 간음했다는것은 말이 맞이 않는다. -연산군이 여성 음악인들을 혼음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연산군에게 그들을 예술가들였을뿐이며 오히려 여성 음악인들은 사대부들에겐 첩을 들이는 통로였다. 사대부들은 연산군에게 연산군이 남성음악인들만 잔치때 내려주자 불만을 갖고 여성음악인들 을 내려달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 좋은 왕으로 묘사되는 성종은 16남 21녀를 가졌으나 그의 아들 연산군은 4남3녀만을 두었다. - 연산군이 백모인 월산대군 부인 박씨를 강간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리고 그녀가 죽자 임신을하고 약을 먹고 죽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나이를 추측해보면 그 때는 이미 쉰세살에서 쉰다섯으로 당시에 그나이엔 잉태가 불가능했다. 4.정치는 하지않고 사냥을 즐겼다 -연산군은 군사력 강화를 원했던 왕이다. 연산군 5년 여진족이 백성들을 사로잡자 연산군은 정벌에 나서려 했으나 그때마다 신하들은 반대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노비들이 부역에 나가는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냥은 군사력 강화를 위했던것이고 이것이 신하들의 반대로 무산된 결과가 임진왜란이다. 5.폐비 윤씨사건으로 폭군이 되었다 - 완전히 틀린말은 아니지만 연관인들의 처형은 신하들을 무력화 시키려는 의도였기도 하다. 그러나 훈구파를 무너트렸으면 사림을 불러들였어야 하는데 사림들조차 적으로 만들었으니 그를 보호할 사람은 없었다. 결국 연산군은 백성들에게는 폭군은 아니였지만 모든 사대부들에게는 적이였다. 그 결과 사관들에 의해 폭군으로 기록되었으며 그 기록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믿어지고 있다. 명종 1. 다른 사람들은 다 물러가 있거라 하고 노래 잘 부르는 내관이랑 둘이서 내관은 노래 부르게 하고 명종은 그에 맞게 춤추며 2인조 가수 못지 않게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2. 꾀병 부려서 총애하는 내관의 극진한 간호를 받았다. 3. 위의 내관은 동일인물로 남자이다. 4. 내시와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았던 명종은 몸이 아프다고 꾀병을 부려 경연을 취소하고 내관들과 놀러 다니기 일쑤였다. 5.조울증을 가지고 있었다. 명종에게는 손빈이라는 총애하는 환관이 있었는데, 그에게 집과 많은 값비싼것을 하사했으면 원하는것들은 모든지 들어줬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장령을 만났을때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는 사소한 이유로 명종으로부터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벼슬길도 막혔다. 명종의 조울증에 관환 일화는 이밖에도 많으며 아침에 파면했다가 저녁에 회복시켜주는 일들도 많았다. 중종 1. 자식 사랑이 남달라서 공주, 옹주랑 왕자들이 오랜만에 문안 오면 눈물을 흘리며 버선발로 뛰어나갔다. 2. 또 중종은 동궁 전에서 불이 나자 맨발로 달려 나와 훗날의 인종을 애타게 부르며 울었다. 3. 또한 효정옹주의 남편(부마)가 바람을 피우고 다니자 철거지악이었던 질투를 하지 않는다고 딸을 꾸짖은 적도 있었다. 결국 효정옹주가 남편의 구박을 견디지 못 하고 죽자 직접 부마를 잡아와 친국을 하기도 했다. 4.연산군을 폐위할 때, 중종을 보호하려 군사들이 오자 중종은 자기를 잡으러 온줄 알고 놀라서 자결 하려고 했다. 다행히도 그의 부인 신씨가 말려서 중종은 살아서 왕이 되었다. 5. 중종이 연산군 폐위후 왕위에 즉위했을때, 위에서 말한 신씨는 당연히 왕비책봉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반정때 그녀의 아버지 신수근을 죽였는데 보복이 올줄도 모른다는 이유로 조강지처였던 신씨를 중종은 '조강지처'라는 말 한마디의 저항을 딱 한번 하고는 출궁시켰다. 중종 11년 3월 28일,ㅡ 그는 고려사를 공부하게 되었다. 그가 배운 부분은 최충헌 최충수가 명종을 폐위하고 신종을 옹립하는 부분이였다. 최충수는 배필이 있던 태자에게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들이려고 신종을 협박했다. 신종은 완강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눈물을 흘리며 태자비를 폐출시켰다. 이 부분을 읽으며 중종은 울먹거리며 책을 제대로 읽지도 못했다고 한다. 인종 인종은 모후인 장경왕후가 자신을 낳고 7일만에 죽자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의 손에 자란다. 하지만 문정왕후는 어린 인종을 끈임 없이 못살게 굴었다. 하루는 밤에 쥐의 꼬리에 불을 붙이고 인종이 잠을 자고 있는 궁 안에 들여 보냈다. 인종이 창문을 보니 문정왕후가 웃으며 빨리 불이 타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빈궁만 내보내고 자신은 문정왕후에게 효를 행하기 위해 불 속에서 죽으려 했다. 빈궁과 인종이 어쩔 수 없이 불을 바라보며 울고 있는 그때, 밖에서 중종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종은 죽는 것이 문정왕후에게는 효가 되지만 중종에게는 불효가 되므로 곧바로 나왔다. 그 후 인종은 불을 지른 장본인을 알고 있으면서도 중종에게 고하지 않았다. 선조 1.임진왜란 이후 선조는 의주까지 도망을 하는데, 의주에서 어느 백성에게 생선이 올려진 상을 접대 받았다. 그 생선이 너무 맛있어서 인조가 생선의 이름을 묻자, 백성은 '묵'이라 대답하였다. 선조는 생선의 이름이 그 맛에 비해 별볼일 없다 생각하여 '은어'라 명했다. 나중에 궁에 돌아와 그 생선을 먹었으나.. 맛이 전 같이 않아 '도로 묵'이라 하게 하였는데, 바로 여기서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2.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파죽지세로 평양까지 밀어오는 바람에 의주로 도망하였으나 그에 만족하지 않고 명에 혼자 도망가기 위해 망명을 요청하였다. 명은 일국의 왕이 백성들을 버리고 어찌 그럴 수 있냐며 거절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명에 끊임없이 압록강을 건너겠다고 시위를 했다. 결국 명은 그렇게 오고싶으면 개처럼 네발로 기어서 북경까지 건너오라고 무안을 줬고 선조는 그제서야 망명을 포기했다. 이후 이여송이 이끄는 명 지원군이 선조앞에 도착했고 이여송은 선조가 보는 앞에서 조선의 대신들의 싸대기를 후려치면서 어찌 나라를 이지경까지 만들었냐며 타박을 주었으나 선조는 아무말도 못하였다. 광해군 선조가 세자를 가리기 위해 여러 왕자를 시험하였는데 “반찬을 만드는 것 중 무엇이 제일이냐?”라는 질문에 광해군이 “소금이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임금이 그 이유를 묻자 “여러 가지 맛을 조화시키려면 소금이 아니면 안 됩니다.” 라고 답하여 그 현명함을 인정받았다. 이에 선조가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느냐?” 라고 묻자, 광해군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것이 가장 애통하옵니다” 라고 답하였다. 효종 1.나르시즘에 빠져, 항상 거울을 볼 땐 스스로 만족에 차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2.효종의 얼굴에 난 종기의 치료를 놓고 침으로 피를 빼내어 독기를 제거하자는 신가귀와 그에 반대하는 유후성이 싸웠다. 이에 왕이 가귀의 의견을 취하여 침을 놓았는데, 침구멍에서 피가 쏟아져 왕이 "이제 정신이 좀 든다. 가귀가 아니면 큰일날 뻔했다"라고 말했는데 침이 혈락(血絡)을 범하여 과다출혈로 사망. 어의 가귀는 조사결과 수전증 있는걸로 밝혀졌다. 현종 유일하게 후궁을 두지 않은 왕이다. 숙종 1.신하들이 따뜻한 온돌방에서 꾸벅꾸벅 졸자 온돌을 빼버리고 얼음장에서 일하게 하였다. 2.관우의 팬이였다고 한다. 인조 1.소현세자는 손톱밑이 시커멓게 변하고 얼굴은 검게 변하며 죽었다. 전혀 확인되지 않은 병이었다. 독살이라는 소문은 퍼져나갔지만 인조는 이것에 대한 조사를 피하려 했으며 어의를 처벌하지도 않았다. 2.자신의 몸과 봉림대군의 몸이 아프자, 소현세자의 아내가 저주를 내려서 아프다고 하여 사약을 내리고 가족들을 모두 죽였다. 소현세자를 죽일 때 11살과 6살이던 아들들도 다 죽이고 임신했던 세자빈까지 죽였다. 영조 1.연애소설을 좋아하여 가끔 자신의 글에서도 소설을 인용하기도 하였다. 성품이 근검하여 백성들에게 사치를 금하라는 뜻으로 금주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2. 영조의 어진에 나와있는 쌍꺼풀지고 길쭉한 눈과 오뚝한 코에 조그마한 입술은 조선의 남성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미인상이었다. 왕실에서는 이런 외모를 천하다 하여 기피하였으나,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가 양반 사대부가 출신이 아닌 무수리 출신에서 정1품 빈까지 신분상승 한 것을 감안할 때, 숙빈 최씨는 굉장한 미인이지 않았을까. 3. 영조가 왕위에 등극하기 전, 연잉군이었던 시절, 달성 서씨 집안의 규수(정성왕후)를 아내로 맞이하여 첫날밤을 치를 때의 일이다. 영조가 아내의 손을 잡고 ‘손이 참으로 곱다.’ 면 서 칭찬을 하자, 연잉군부인이 무심코 ‘궂은 일을 해본 적이 없어 그렇다’고 했더니 영조가 그날로 부인을 소박하며 그 다음부터는 멀리하였다. 아마, 무수리로 고생했던 어머니의 거친 손과 발을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 4.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가 간택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쓰인 방석에 앉지 않자, 그 이유를 물으니 “자식이 어찌 아버지의 존함이 쓰인 방석을 깔고 앉겠습니까." 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또 ‘고개 중에는 어떤 고개가 제일 넘기 힘드냐’ 묻자, 강원도에서 온 규수가 대관령고개라 답하고 경상도에서 온 규수가 추풍령고개라 답하였다. 헌데 김규수는 보릿고개라 대답하였다. 보릿고개라! 겨울 양식이 봄이 되자 다 떨어지고 그렇다고 햇보리는 아직 나오지 아니한 때 세끼, 아니 두 끼, 심지어 한끼를 채우기가 그 얼마나 난감한가. 이것이 보릿고개인데 김규수가 넘기 힘든 고개가 바로 보릿고개라 하니 얼마나 명답인가! 다음으로 꽃 중에 제일인 꽃을 묻자, 김규수는 목화 꽃이 제일이라 답하였다. 이유를 물으니, “목화 꽃이 다른 꽃들보다 화려하지도 예쁘지도 않지만, 핀 연후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면에서는 다른 꽃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유익한 꽃이니, 바로 목화가 백성의 옷감이 되어서 예절도 지키고 품격도 살리고 추울 때 보호하여 주기 때문입니다.” 라고 답하였다. 정조 1. 정조가 말하길, “매양 취침하기 전에 두 발바닥의 가운데를 마주 문질러 비비면 기운이 절로 퍼진다. 내가 밤마다 시험해 보았는데, 처음에는 힘이 드는 듯 했으나 오래도록 계속 했더니 신통한 효험이 있다.” 2. 연애소설을 비롯한 소설을 무척 싫어하여 영조가 죽고 왕이 되자마자 서고에 있던 모든 소설을 불태웠다. 또한 숙직을 하던 규장각 학자들이 몰래 연애소설을 읽고 있다 들켜서 정조에게 혼이 났고 벼슬을 삭탈했다. 그들은 정조에게 다시는 소설을 안 보겠다는 반성문을 쓰고 나서야 벼슬길을 다시 열어주었다. 3. 영조는 근검하여 백성이 먹을 쌀이 없어진다는 이유로 금주령을 내렸지만 정조는 개인적으로 술을 너무 좋아해서 영조가 죽고 왕이 되자마자 금주령을 없앴다. 4. 공부 못하는 신하한테 공부하라고 끈임 없이 시키며, 숙제를 내고 제대로 하지 못하면 망신을 주고 술을 마시지 못하는 신하에게 술을 강요하여 기절할 때까지 마시게 하고, 활을 못 쏘는 신하에게 끊임 없이 연습을 시켰다고 한다. 5. 술을 무진장 좋아하여, 정약용에게 필통에 술 한가 득 부어 원샷! 하기를 강요하여 정약용은 술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때 당시 필통에 술 붓기라면, 요즘 사발에 소주를 들이붓는 거와 맞먹는다고 한다. 6. 정조 20년, 이정용이라는 유생이 술에취해 늦은밤 궁궐 담장 아래에서 잠에 들었다 잡혀간적이 있었다. 그러나 술을 좋아했던 정조는 요즘 유생들은 술을 잘 마시지 않는데 술을 좋아한다고 칭찬을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생들이 숙박하던 잡촌과 집춘영은 벽을 맞대고 있으니 이정용은 잡촌에서 잤던거라는 궤변을 펼쳐서 오히려 상까지 주어서 보냈다. 헌종 1. 이 헌종이 그렇게 미남이었다고 한다. 기록을 보면 여색을 즐기는 왕 때문에 궁궐 내 용모가 예쁘다고 하는 궁녀들은 거의 승은을 입었다고 한다. (덕분에 후궁첩지도 아무나 내리지 못했음. 딸을 낳은 궁인 김씨도 첩지를 받지 못했다.) 왕 자체가 너무 미남이라 젊은 궁인들이 참 많이 유혹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부터 가진 잦은 성관계 때문에 건강이 악화되어 죽기 직전에는 피가래까지 토하며 고생하다가 2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요절한다. 궁녀들이 유혹을 할 정도였으니 엄청난 미남이 아니었나 한다. 2. 헌종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으므로 늘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마음 아프게 여겨 한 신하에게 늘 물었는데, “진전에 모신 수용이 오히려 매우 닮으신 전하의 용안에 미치지 못합니다.” 하니 헌종이 거울을 보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고 한다. 고종 1. 고종 황제가 행차하다가 땀을 뻘뻘 흘리며 테니스 라켓을 휘두르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보고 “어찌 저런 일을 하인들에게 시키지 않고 귀빈들이 하느냐”고 안타까워 했다. 2. 명성황후가 죽고 나서 끝까지 재혼을 하지 않았지만 아끼던 후궁이 있었는데 명성황후가 부리던 상궁이었다고 한다. 명성황후는 그녀를 곁에 둔 이유가 못생겨서 고종이 쳐다도 안 볼 것이라고 생각하고 곁에 두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녀는 명성황후와 똑같이 생겼다고 말했다. 3.당시 1887년대, 전신(전보총국)의 등장과 함께 최초 궁궐에 가설된 전화를 경험한 고종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성음을 들을 수 있군" 이 생각에 고종은 상당한 고액의 전화를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141-1번지 홍릉에 설치한다. 그 곳은 고종의 부인 명성황후(민씨)의 무덤. 전화의 설치가 끝난 직후 고종은 아침마다 그 곳으로 통화를 걸어 말을했다. "여보, 어제는 춥지 않았소?" 고종은 매일아침 홍릉으로 전화를 걸어 죽은 민씨에게 안부를 전했고 매일아침 울었다고 한다. "아무리 멀리떨어진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순 있어도 저승까지는 못 하는구나." 그럼에도 고종은 매일아침 홍릉으로 전화하는 걸 잊지 않았고 일제에 의해 강제퇴위를 당하는 그 날에도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나만의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Vlog 제작 필수템 3종 리뷰(짐벌, 미니삼각대, 타임랩스)
나만의 여행을 더 특별하게 즐기는 방법 중에, Vlog로 여행 영상을 남기는 것만한 게 없죠!! 거기에 짐벌, 미니삼각대, 타임랩스 제품이 있다면 나만의 Vlog를 더 특별하게 만들 수 있겠죠? 여행 Vlog에 꼭 필요한 3가지 필수템들을 리뷰해보았습니다!! 1. 흔들림 없는 촬영, 짐벌(Gimbal) 짐벌은 수평을 인식하는 자이로스코프가 내장되어 있어 흔들림을 보정해주는 기능이 있는 카메라 부속장치입니다. 스마트폰용 제품도 많이 나와서, 요즘 인기있는 유튜버들은 대부분 짐벌을 들고 흔들림 없는 영상으로 깨끗하게 여행 Vlog 영상들을 제작하죠. 리뷰 제품은 페이유(Feiyu)의 빔블 C(Vimble C)입니다. 스마트폰용 짐벌이고 3축의 자이로스코프 장치가 있습니다. 무게는 420g 정도로 매우 가볍고, 배터리는 5시간 정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장착 가능 기종도 아이폰 7+ 이하, 갤럭시 S8+ 이하, G6 (폭 5.5~8cm, 무게 200g 이하 )로 대부분의 스마트폰에 지원됩니다. 이 제품을 사용하려면 먼저 페이유에서 제공하는 페이유 온(Feiyu on) 어플리케이션을 깔아 주셔야 합니다. 그런 뒤에 스마트폰을 짐벌에 끼우면서 블루투스를 통해 어플과 짐벌을 연결시켜줍니다. 스마트폰을 짐벌에 장착할 때 수평을 맞춰주는 게 중요한데요. 무게중심을 제대로 맞추고 작동시켜야 제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짐벌은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에 중심 잡는다고 왔다갔다 정신없이 움직여서 짐벌과 하루종일 씨름을 하게 될 수도 있어요. 스마트폰용이라서 걸어다니면서 간단하게 셀카로 영상 찍기에 좋습니다. 또 매뉴얼에 패닝모드와 틸팅모드가 있는데요.(* 작동모드: 패닝모드(기본)  / 팔로우모드(패닝&틸팅) / 고정모드 / 수직방향모드 / 절전모드) 팬(pan)은 카메라를 좌/우, 수평방향으로 움직이는 촬영법, 틸트(tilt)는 위/아래, 수직방향으로 움직이는 촬영법으로 이와 같이 더 멋진 영상을 남길 수 있게 해주는 모드들이 지원됩니다. 그외에도 짐벌을 아래 방향으로 거꾸로 잡고 촬영하여 인상적인 로우앵글 씬을 찍는 등 다양한 응용 방법이 있죠. 스마트폰에만 장착하면 별다른 편집과 기계장치 도움 없이 고퀄리티의 흔들림 없는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짐벌. 여행 Vlog 필수템 중 하나로 손색이 없겠죠? 페이유 빔블 C 스마트폰용 3축 짐벌 최저가 알아보기 2. 귀엽고 가벼운, 미니삼각대 여행을 가서 멋진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보면 사진을 찍지 않을 수가 없죠. 하지만 원하는 만큼 배경을 담기엔 셀카봉으로도 부족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겁고 커다란 삼각대를 들고 다니기엔 나도 힘들고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줄 수도 있죠. 그런 분들을 위해 가볍고 작아서 가방에 쏙 넣고 다니기 좋은 미니삼각대를 추천합니다. 이 제품은 맨프로토(Manfrotto)의 픽시 에보(Pixi Evo) 미니삼각대인데요. 접었을 때 23cm, 무게는 267g 정도라서 들고다니기 매우 편하죠. 최대 2.5kg까지 장착할 수 있어서 미러리스 카메라 정도의 무게까지는 무난하게 소화 가능합니다. 이 제품은 기본적으로 카메라용이기 때문에 스마트폰에 사용하려면 스마트폰용 거치대를 별도로 구매해야 합니다. 올록볼록 튀어나온 지면에서 촬영을 하게 되어도, 다리와 축을 조절하면 어디서든 수평을 맞추어 촬영 할 수 있습니다. 축은 앞 뒤로 35°씩, 왼쪽은 40° 오른쪽은 90°로 기울일 수 있어서 수직 촬영도 가능합니다. 다리는 2단 조절이 가능하며 최고 높이가 19.5cm입니다. 다리를 완전히 쫙 피면 높이가 6cm 정도로 낮아져서 로우앵글로 지면에 가깝게 촬영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여행가서 사진 좀 찍는다 하면 등장하는 삼각대. 하지만 무겁고 커서 불편하다면, 이 미니삼각대만한 것도 없겠네요!! 맨프로토 픽시 에보 미니삼각대 (헤드일체형) 최저가 알아보기 3. 타임랩스를 더 다채롭게, 전동 타임랩스 볼헤드 타임랩스는 간단하게 말하면 일정시간 동안 일정 주기로 사진을 촬영한 후 그 사진을 이어 붙여 마치 영상이 재생되는 듯한 효과를 주는 기법입니다. 촬영 결과물의 시간은 촬영시간보다 짧아서 마치 고속 재생을 하는 듯한 효과가 있죠. 하늘을 1시간 동안 찍어서 구름과 태양의 움직임을 1분으로 압축할 수 있고 도시 한복판을 6시간동안 찍어서 시민들의 바쁜 일상을 5분으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굉장히 재미있고 매력적인 기법이죠. 자연스럽게도 타임랩스의 매력을 더 높여주는 제품들도 많이 나오죠. 이 제품은 세븐오크(Sevenoak)의 전동 타임랩스 볼헤드 제품인 SK-EBH01 PRO라고 합니다. 이름이 좀 어렵죠? 보통 타임랩스는 카메라를 한 곳에 고정시켜 한 화면만 찍는 데, 이 제품은 카메라를 오랜시간에 걸쳐 천천~히 시계방향으로 돌려 마치 틸팅 촬영처럼 느끼게 해주는 제품입니다. 위의 미니삼각대 제품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카메라용이기 때문에, 스마트폰용 거치대는 따로 구매해주셔야 합니다. 배터리는 계속 작동시킨다고 했을 때, 1kg의 카메라를 장착하여 6시간을 사용할 수 있으며 카메라는 2kg까지 장착할 수 있습니다. 시간은 R.T 버튼으로 세팅하며 5분, 15분, 30분, 한 시간이 있고, 각도는 Duration 버튼으로 세팅하며 15°, 30°, 45°, 60°, 90°, 180°, 360°가 있습니다. 시간과 각도를 조합하면 5분동안 15°를 움직이게 또는 30분동안 180°를 움직이게 조절할 수 있는 것이죠. 세팅이 끝나면 가운데 Start/Stop 버튼을 눌러 작동시키고, 같은 버튼으로 정지시킬 수 있습니다. 위의 미니삼각대와 전동 볼헤드의 조합도 가능한데요. 최대한 낮게 자리를 잡아서 로우앵글로 타임랩스를 찍으면 정말 멋있는 장면을 촬영할 수 있죠. 위 제품들에 비해서 여행 Vlog 영상 제작에 필수템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간단한 조작법으로 영상의 퀄리티를 단숨에 끌어올릴 수 있는 제품이기에 만약 여행을 자주 다니고, 사진찍는 걸 좋아한다면 하나 쯤은 구매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SEVENOAK 360도 전동 타임랩스 볼헤드 SK-EBH01 PRO 최저가 알아보기
더러운 갑질의 참담한 결말.txt (요약 有)
그리고 갑질한 사람 등판 그리고 몇달 후... 요약) 택배 기사 아버지를 도와 택배일을 하던 딸이 착불비 3000원으로 진상부리는 고객 만남 계좌 번호 문자로 보내고 마무리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 고객이 택배회사에 계속 컴플레인 걸고 아버지께 갑질 문자를 보냄 속상해서 네이트판에 하소연함 갑질 고객이 네이트판 글을 보고 해명글을 올림 사람들이 해명글보고 더 욕하니까 지인 동원해서 택배 착불 + 컴플레인 테러함 그 때문에 아버지는 택배회사에서 짤리고 딸은 죄책감에 자살함 가족은 딸과 아버지 둘 뿐이었다고 함 - 세상이 진짜 미쳐 돌아간다 지인들까지 대동해서 클레임을 제기할 정성이면 그냥 착하게 살지 도와준 지인들은 또 뭐고... 정신병 아닙니까 이거? 아버지 고생하실까봐 저렇게 나서서 돕는 착한 딸을... 말이 안나오네요 미친사람같으니라고 택배 갑질 진짜 많던데 좀 더불어 삽시다 사람들 참... +) 댓글로 묻는 분들이 계셔서 청원 주소 추가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FJIq04 그리고 찾다가 고인이 쓰신 다른 글도 발견해서 추가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강동구 천호동 거주중인 26세 여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예전에 네이트판에 하소연 삼아 쓴 글에 보배드림에서 오셨다 하시며.. 직접 가입해서 글 써달라 하셨던 기억에 용기내어 염치 불구하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제가 네이트판에 작성했던 글은 아빠가 하시는 택배일을 잠시 도와드리던중 저와 고객님의 마찰이 생겨 아빠께 컴플레인이 걸리셨고 그로인해 아빠가 해당 고객님께 지속적인 사과를 하셨음에도 돌아오는건 아빠의 인격을 모독하시는 답변들 뿐이였읍니다 당시에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자면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였고 당장 전화해서 해당 고객님께 따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감정적으로 대처하기에는 아빠가 그동안 택배업을 하시며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으셨음에도 오로지 가족을 위해 꿋꿋하고 묵묵하게 참아오셨던 긴 세월을 제가 감히 헤아릴 자신이 없었고 그런 아빠를 위해 제가 할수있는 일이라고는 저와 고객님의 마찰로 인하여 발생한 상황이기에 직접 댁을 방문하여 사죄드리는 방법밖에는 다른 선택사항이 없었고 아빠의 노고를 생각하면 더한것도 할수있었기에 정말 다 내려놓고 진심으로 사죄드리고 왔었습니다 그후 가슴이 뻥 뚤린 기분으로 정말 그냥 마땅히 털어 놓을곳은 없고 하소연 삼아 익명의 힘을 빌어 작성한 글 하나로 아빠가 고통을 받고 계십니다 아주 조금의 실수에도 컴플레인이 누적 되는 상황이고 의도적이라 말씀 드리기에는 증거가 없지만 택배를 착불로 시키신후 착불비를 안주시는 고객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로인해 아빠가 착불비 안내 문자를 다시 보내시면 그걸 또 꼬투리 잡으셔서 아빠에게 무례한 언행을 하시며 마지막에는 꼭 컴플레인을 걸겠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리십니다 이뿐만아니라 자동으로 통화녹을을 제가 설정했었는데 아빠의 직업 특성상 시간에 너무 쫒기시다보니 특별한 지시사항 없으시면 대부분 문앞 배송인데 이 사건 이후 문앞배송 항의전화와 분실했다시며 찾아달라시는 전화에 막상 방문하면 다른 물건과 착각하셨다며 헛걸음 하게 하셨고 정말 너무 어처구니없는 항의 연락을 너무 많이 받고 계십니다 제가 고통스러운건 이런 아빠를 도와드릴 방법이 마땅히 없는 것이고 아빠는 누적 컴플레인으로 재계약에 문제가 생길까 하루하루 노심초사 하고 계십니다 저와 아빠는 아무 힘이없는 그냥 정말 평범한 가족입니다 정말 정직하게 살아오신 우리 아빠한테 왜 이런일이 생기는건지 그렇다고 제가 마음대로 나서기에는 아빠에게 돌이킬수없는 피해가 갈까 너무 두렵고 그냥 능력없는 제 자신이 한탄스럽기만 합니다 제가 어떻게 행동해야 될까요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법을 조언받고 싶습니다 매일을 가슴조리며 오늘은 또 무슨일이 생길까 아빠가 혼자 얼마나 힘들게 계실까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늦은시간 불편은 글을 올려 죄송하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보배드림) - 어디서든 갑질 좀 하지 맙시다 이건 다른 사람 갑질임 이러지도 말고 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