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e8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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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지난번 포스팅에서 중국산 비단과 도자기는 유럽 내부에서 생산된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그렇다면 중국산 차는 어땠을까요?
혹시 "트와이닝"이라는 홍차 브랜드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세계적인 브랜드인 이 회사는 원래 중국산 차를 수입하던 상점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영국에서 차가 인기를 끌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커피하우스에 출입이 금지된 여성들이 집에서 끓여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후 커피하우스가 사라지면서 티 가든이 생겼는데, 이는 최초의 공공장소라고 합니다.
차를 지속해서 수입하면서 항구가 있는 도시는 경제적 부를 축적하게 됩니다.
스웨덴의 한 도시는 중국 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고 합니다.
예테보리 호는 총 항해 중에서 3번을 제외하고 모두 중국으로 가서 차를 싣고 왔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해상도시도 발달하였는데, 오늘날 광저우의 13행루로 동서양을 잇는 대외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광저우에는 지금도 오래된 유럽식 건물이 많다고 합니다.
광저우는 이 당시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됩니다. 차는 유럽이 직접 생산하지 못하는 데다가, 1회성 소비상품이기 때문에 청나라 건륭제때는 13행로 수익이 엄청나게 증가하게 됩니다.
오병감이라는 사람은 이화행의 주인이었는데, 당시 미국 최고부자보다 5배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포브스의 양아버지이기도 했죠.
광저우와 13행과 유럽의 항구도시를 잇는 역할을 했던 것은 각 나라의 동인도회사였고, 이들역시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고 합니다.
중국 광저우 황포항에는 유럽 각국에서 차를 사러 온 상인들이 붐볐지만, 실제로 배에서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상급자만 가능했고 그 외의 사람들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1792년 메카트니 사절단이 중국방식으로 예를 취했으나 건륭제는 깔끔하게 통상거부하였고, 13행에 계속해서 부가 축척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유럽에서 실어간 차들은 어떻게 이용되었을까요? 그리고 그 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마지막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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