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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당신에게 필요한 '야구선수'들이 남긴 8가지 인생철학

야구는 상대의 진영에 공을 넣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홈플레이트(Hone Plate) 즉 '집'에 들어와야 점수가 나는 유일한 구기 종목이다.
야구를 흔히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 하나하나에 희노애락이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인생을 닮은 야구를 직업으로 삼은 야구 선수들이 남긴 말들은 삶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머릿속에 저장해두고 지칠 때마다 꺼내보면 삶의 원동력이 될 야구 선수들이 남긴 8가지 인생철학을 소개한다.
1.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10개를 보유한 메이저리그 최고의 포수 요기 베라(Yogi Berra)가 남긴 말이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야구는 시간 제약이 없이 아웃카운트 27개를 잡는 순간 끝이 나는 스포츠다. 때문에 아웃카운트를 하나 남겨둔 시점에서도 얼마든지 역전이 가능하다.
하물며 길고 긴 인생에서 끝은 없다. 끝이 나지 않는 한 최소한 끝난 것은 아니니 미리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2
. "소시민은 항상 도전하는 자를 비웃는다"
1995년 노모 히데오(のもひでお, Nomo Hideo)가 거액의 연봉과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스타라는 수식어를 버리고 미국으로 건너가며 남긴 말이다.
모두의 우려 속에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그는 1995년 내셔널리그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2008년 은퇴할 때까지 당시 동양인 최다승인 123승을 기록했다.
주변의 시선에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 자신의 선택에 용기를 가지고 과감히 도전한다면 실패해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3. "나와의 약속은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동양인 야구 선수 스즈키 이치로(すずきいちろう, Suzuki Ichiro)가 한 말이다.
자신과의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진출 첫해 신인왕과 MVP를 차지했으며,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 안타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을 때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으려면 이치로만큼은 치열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4. "승리하면 배울 수 있다. 그러나 패배하면 모든 걸 배울 수 있다"
1906년 월드시리즈 3번 등판 3완봉승을 기록한 ​뉴욕 자이언츠의 위대한 투수 크리스티 매튜슨(Christy Mathewson)이 남긴 말이다.
그의 말처럼 승리하면 승리하는 대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실패하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실패했다는 상황에 움츠러들지 말고 자신이 왜 실패했는지, 어느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는지 되새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5. "야구 몰라요"
야구 해설위원 하일성은 해설 도중 보기 힘든 장면이 나오거나 극적인 순간이 있을 때면 '야구 몰라요'라고 말하곤 했다.
간결하고 자칫 웃기게 느껴질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 속에 많은 뜻이 담긴 말이다.
인생 역시 모르는 것 투성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어느 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 미리 알 수 없으니 후회가 남지 않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6. "꿈이 있으면 됩니다. 나는 한 손이 없다는 데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 팔을 보지 않았다 내 꿈을 보았다'의 저자 짐 애보튼(Jim Abbott)은 태어날 때부터 오른손이 없어 '조막손' 투수라고 불렸다.
하지만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 야구 금메달리스트이며 1993년 뉴욕 양키즈 소속으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선수로 야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꿈이 있으면 된다. 꿈이 있다면 현실의 제약이나 신체의 장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7. "난 지금까지 야구를 하면서 한 번도 걸어서 1루까지 간 적이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1루까지 열심히 내달리는 선수였던 양준혁은 '어떤 선수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라는 질문에 '그저 1루까지 열심히 뛰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답했다.
그는 2010년 9월 19일 대구에서 열린 마지막 은퇴 경기에서도 땅볼을 친 뒤 1루로 최선을 다해 뛰는 모습을 보여줘 박수를 받았다.
1루로 내달린 양준혁이 땅볼을 안타로 만든 것 처럼 결과가 짐작되는 끝이 보이는 길도 최선을 다해서 가다보면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모른다.
8. "경기가 끝났을 때 내 유니폼이 더럽지 않다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메이저리그 단일시즌 최다 도루 130개, 통산 최다 도루 1406개를 기록한 리키 핸더슨(Rickey Henderson​)의 유니폼은 언제나 더러웠다.
핸더슨은 2009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됐으며, 그가 활약했던 오클랜드는 등번호 24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그의 유니폼이 언제나 더러웠던 것처럼 오늘 하루를 마감하면서 나의 노력이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떠올려보는 것도 삶을 설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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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34년 중국 길림성에서 조선족의 자녀로 태어남 2. 조선족 최초로 베이징대 아랍어학과 입학 및 수석 졸업, 중국 최초 ‘국비장학생 1호’가 되어서 이집트 카이로대에서 아랍 문학 전공, 그 이후에는 모로코 중공 대사관에서 서기관으로 근무  3. 60년대에 갑자기 민족주의에 물들어서 북한으로 귀화 신청 (참고로 귀화 요청하자, 당시 외무부장이랑 싸우고 이래도 안 해주니까, 저우런라이한테 직접 편지써서 귀화 허가 받아냄)  4. 60년대가 중국에선 문화대혁명 기간이라서 많은 조선족들이 북한으로 넘어갔으나, 북한에서도 50년대부터 김일성 제외한 나머지 종파 세력들 정리하고 있어서, 이때 넘어간 조선족들도 대다수가 숙청 당했는데, 저우런라이 허가증 들고 있어서 숙청 피함  5. 북한으로 귀화한 후 1974년까지 평양 국제관계대학 교수와 평양외국어대 동방학부 아랍어학과 교수로 재직, 마지막에는 아랍어과 학과장까지 맡음. 아랍 대표단이 북한에 올때 김일성 통역도 맡음  6. 언어 실력과 이국적인 외모 때문에 북한 노동당이 스카웃, 4년 5개월에 걸쳐 간첩 교육을 받으면서 남파 간첩으로 변신 7. 노동당 지령받고, 전쟁으로 혼란스럽던 레바논에 가서 현지 도움으로 레바논 국적 획득 8. 레바논 국적으로는 남한에서의 활동이 힘들다는 판단, 튀니지로 가서 대학원 석사 학위를 따고 사회 경제 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기회를 모색. 튀니지는 호적관계법이 잘정비되어 있어 국적을 취득하기 힘들다고 판단. 말레이시아 대학 이슬람 아카데미 강사(1982.7)를 거치는 등 호주, 파푸아뉴기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의 국적 취득 기회를 모색하였으나 모두 실패. 1983년 4월 필리핀에 입국, 1984년2월에 필리핀 아버지와 레바논 어머니 사이의 아들인 '무하마드 깐수'로 국적 세탁하고 한국에 입국 9. 위장을 위해서 연세대 어학당에 들어와서 한국어 배움. 그러다가 단국대 사학과 박사 과정 밟아서 박사 학위를 취득. 동서 문명 교류사와 실크로드학의 권위자로 1990단국대 사학과 초빙교수, 1994년에는 조교수로 임명. 이 기간에 간호사 출신 아내 만나서 결혼도 함 10. 1984년 6월부터 라디오를 이용해 1996년 7월까지 161차례에 걸쳐 북한의 지령을 수신.  11. 1996년 3월부터 팩스로 전송 수단을 바꾸는 바람에 잡힘. 12. 안기부에서 전향시키려고 했으나, 북한에 남아있는 처자식들 때문에 거부. 그리고 남한에서 만난 아내한테 자기 잊어달라고 했으나 매달 찾아와서 면회하자 맘 흔들리고 전향. 13. 원래는 사형 내려졌는데, 연구 성과, 전향 의사, 북한에 넘긴 자료가 단순히 언론 보도 자료만 넘겨줘서, 국가 기밀 위협 혐의가 없다 판단하여 징역 12년으로 최종 판결 14. 이후에 광복절 특사로 4년 만에 출소. 2003년에 특별 사면, 복권 돼서 학계로 복귀 참고로 이 분이 최초로 처용 이슬람인 도래설 주장했고, 쿠란 표기법 종결시킴 고오급 인력 키워서 남조선에 헌납한 북조선 (출처) 무려 자기가 연구한 학문 혹시 도움될까봐 북한에 보냈는데 이런 거 보내지 말라고 해서 서운하셨다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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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현황 및 전시일정
이중섭의 '흰 소' (1953~54)  - 현존하는 이중섭의 '흰 소'는 약 5점뿐이다.  - 기증 작품은 1972년 개인전과 1975년 출판물에 등장했으나 자취를 감췄다가 이번 기회에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됐다. 이중섭의 '황소' (1950년대)  - 삼성가에서도 아끼던 작품으로 그의 부산시절 가장 중요한 작품. 이중섭의 '바닷가의 추억_피난민과 첫눈' (1950년대) 청전 이상범의 '무릉도원도'(1922)  - 존재만이 알려진 작품이었으나 이번 기증으로 약 100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 1980년대 이후 실제로 보기 어려웠지만, 다시 감상할 기회가 마련됐다. 김환기의 '산울림 19-II-73#30' (1973)  - 국립현대미술관에는 김환기의 예술적 기량이 절정에 달한 1970년대 전면점화는 한 점도 없었다. 나혜석의 '화녕전작약'(1930년대)  - 나혜석 작품 진위평가의 기준. 장욱진의 '소녀(전면)/나룻배(후면)' (1939/1951) -  작품 뒷면에는 1939년 그린 ‘소녀’가 있다. 재료가 부족했던 시기여서 양면에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 장욱진의 '공기놀이' (1937)  - 양정고보 재학 중 제2회 '전조선학생미술전람회'에 출품해 최고상을 받은 작품. 여성 화가 백남순의 '낙원'(1937)  - 백남순의 유일한 1930년대 작품. 김종태의 '사내아이'(1929)  - 총 4점만 전해지는 김종태의 유화 중 1점 박래현의 '여인 A'(1942) 클로드 모네의 '수련' (1919~20) 파블로 피카소의 '무제(도자기)' 호안 미로의 '구성' (1953) 마르크 샤갈의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 (1975) 폴 고갱의 '무제' (1875) 카미유 피사로의 '퐁투아즈 시장' (1893)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책 읽는 여인' (1890년대)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 (1940)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1954) 김기창의 '군마도'(1955)   - 한국전쟁이 끝난 후 폐허를 딛고 재개된 1956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추천위원 자격으로 이 작품을 출품. 노수현의 '계산정취'(1957) 김은호 '간성(看星)'(1927)  외 다수 작품 ------- 한국 근현대미술 작품 유영국187점(회화 20점, 판화 167점), 이중섭 104점(회화 19점, 엽서화 43점, 은지화 27점 등), 유강열 68점, 장욱진 60점, 이응노 56점, 박수근 33점, 변관식 25점, 권진규 24점 등 한국 근현대미술 작가 238명의 작품 1천369점  - 1950년대까지 제작된 작품이 320여 점으로 전체 기증품의 약 22%  - 1930년 이전 출생해 근대작가 범주에 들어가는 작가 작품이 약 860점으로 약 58% ------- 해외 거장 작품 모네, 고갱, 피카소,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마르크 샤갈 등 외국 근대작가 8명의 작품 119점  - 국립현대미술관 역사상 처음으로 소장하게 됨 전시일정 덕수궁관 ・2021년 7월 '한국미, 어제와 오늘'  - 도상봉의 회화 등 일부 작품 첫선 ・2021년 11월 '박수근 회고전' ------- 서울관 ・2021년 8월  '이건희 컬렉션 1부: 근대명품'(가제) 전  - 한국 근현대 작품 40여 점 전시 예정. ・2021년 12월 '이건희 컬렉션 2부: 해외거장'(가제) 전  - 모네, 르누아르, 피카소 등의 작품 전시 예정. ・2022년 3월 '이건희 컬렉션 3부: 이중섭 특별전'  - 이중섭의 회화, 드로잉, 엽서화 104점 전시 예정. ------- 과천관 ・2022년 4월 / 2022년 9월 '새로운 만남'  - 이건희 컬렉션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및 아카이브의 새로운 만남을 주제로 한 전시 예정. -------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뮤지엄(LACMA) ・2022년 9월 한국 근대미술전  - 이건희 컬렉션 중 일부를 선보여 수준 높은 한국 근대미술을 해외에 소개할 계획. ------- 청주관 수장과 전시를 융합한 '보이는 수장고'를 통해 이건희 컬렉션 대표작들을 심층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할 예정. ------- 2022년 지역 미술관과 연계한 특별 순회전 개최.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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