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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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백화점에서 바라본 그들은 각자의 지갑을 열기 바빴다. 조명은 그들을 따라 밝게 비추어 주었고 한 손엔 고결한 금박 브랜드가 박힌 종이가방을 너도나도 여러 개씩 쥐고 있었다. 눅눅했던 번데기를 당연한 습관처럼 벗어던지고 내일은 한 차원 격양된 자신의 대사를 준비할 것이다. '관객이 몇 명이든 상관없지 않습니까? 나는, 내 삶이 누구보다 희극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착각이 달콤한 이유는 당장 타인과 비교 가능하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무대를 옮겨 서점에 잠시 들렀다. 한 달 전, 이곳에서 읽었던 시집이 누군가의 눈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여전히 그 자리에 꽂혀 있었다. 신간들이 벌써 시들고 있었고 일부는 작은 카트에 실려 나갔다. 밖으로 나와 버스정류장까지 잠시 걸었다. 사람들은 어지럽게 교차하며 지나가고 강약이 조절된 햇볕은 드넓은 무대를 달구고 있었다. 정류장에서 한 커플이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남자는 애인의 쇼핑 가방을 들어주었고 나는 그들의 얘기를 가만히 들어주었다. 여자가 택시를 타자고 계속 칭얼대는 바람에 일부의 시선을 끌었지만 남자는 고집스럽게 서 있었다. 몇몇의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다가 무대에서 사라졌다. 움직일 때마다 무대가 바뀌고 눈을 떴다 감아도 무명배우처럼 나는 어디에도 낄 틈이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잠시 하늘을 쳐다보았다.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디론가 무섭게 걷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게 있어 회귀하는 습관이 흠칫 한 이유는 미리 벨을 누르지 않아도 종점은 언제나 불 꺼진 집이라는 것. 세상과 등을 진 염세주의자 같은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현관문 앞에 다다랐다. 이 문을 통과하면 오늘의 무대가 막을 내릴 것이다. 내 마지막 대사를 여섯 자리 숫자음이 대신했다. 노련한 센서 등이 켜지고 신발장 거울 앞엔 초라한 사내가 미리 와 서 있었다. 그는 '당신은 오늘의 배우였습니까, 쓸쓸한 관객이었습니까'하고 내게 묻는 듯했다. 나는 의상을 하나하나 벗고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배우도 관객도 아니었다. 내일 당신을 볼 수 없다면 이 모든 게 비극이겠지만 오늘은 무대에서 기억할 수 있을 몇몇을 보았고 어떤 책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며 여름과 나는 조금 더 쓸쓸해졌을 뿐, 웃지도 그렇다고 울지도 않은 채 무대 밖을 빠져나왔다고 자백했다. 우리 무대는 결국 더 주목받고 덜 주목받고의 차이가 잔혼으로 이어지다가 영원할 것 같은 이 연극은 언젠가 끝이 날 것이 아닌가..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나는 아주 조금씩, 천천히, 엷게 현상 밖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이내 등이 꺼지고 다시 암전이 흘렀다.
raleight ritch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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