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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합

* 웬델 베리의 <온 삶을 먹다>를 읽고 있다. 조금 읽다보니 알게 됐는데, 이 책은 내가 고대해 온 저자의 <먹는 즐거움>을 번역한 책이 아닌 것 같다. 일단 원제 자체가 그렇다. "Bring it to the Table:On Farming and Food" 그렇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았는데, 웬델 베리는 어떤 글을 읽든 간에 독자에게 실망감 같은 걸 줄 만한 저자가 못 되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욕망하는 바를 모두 체현한 사람이다. 그는 탁월한 저자이고, 건실한 농부이며 지극히 래디컬한 운동가다. ** 위 책의 서문은 마이클 폴란이 썼다. <잡식동물의 딜레마>, <욕망하는 식물>의 저자 마이클 폴란 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저자가 한 책에서 결합해 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이 책이 원래 읽고자 했던 <먹는 즐거움>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이런 망각은, 환영한다. **** 책에 나오는 테리 커먼스의 글 한 대목을 인용하겠다. 바로 이런 부분이, 내가 생태학 책이라기보다는 농사와 그에 관련된 먹거리 책들에 열광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기가 다른 것들의 기분을 좋게 해 준다는 걸 알게 되면, 자기 기분도 좋아진다. 내면의 감정은 그냥 그렇게 되는 건지 모른다. 딱히 무엇 때문에 그런 감정이 생겼다고 말하기 어렵다. 작은 것들이 많이 모여서 그런 감정이 생기는 것이리라. 지치고 더워하는 말에게 땀에 절은 마구를 벗겨주는 게 특별히 주목할 일은 아닐 것이다. 찬비를 맞으며 바깥에 서 있는 양에게 외양간 문을 열어주는 것, 닭에게 모이 몇 알을 던져 주는 것은 작은 일이다. 하지만 이런 작은 일들이 자기 안에 쌓이면, 자기가 중요한 존재라는 걸 이해하게 된다. 신문에서나 보는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들처럼 정말 중요한 존재는 아닐지 모르지만, 주변에 있는 모든 생명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자기가 하는 일을 누가 썩 잘 알아주거나 관심을 가져 주는 건 아니지만, 자기 하는 일에 대해 속으로 좋은 느낌을 갖고 있으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나는 혼자 소들을 몰고 돌아올 때나 온종일 예초기에 앉아 있을 때, 내 자신에 대해 아주 많은 생각을 한다. 하지만 우리 가축이나 작물이나 밭이나 숲이나 텃밭 같은 게 모두 얼마나 잘 어울리지는지 생각하기 시작하면, 속에 좋은 느낌이 들면서 나한테 어떤 일이 닥칠지에 대한 걱정은 별로 하지 않게 된다." ***** 인용문에서 농부가 '나한테 어떤 일이 닥칠지에 대한 걱정'을 '별로 하지 않게' 되는 이유는 그가 자리한 세계가 그 자신과 완전히 일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웬델 베리는 그같은 '일치'로 가는 길들을 40년 넘게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는 사람이다. 제 삶을 번역한 자신의 책으로. ****** 화가 좀 났던 일이 있었다. 누군가와 만나기 앞서, 전에 약속됐던 일이고, 이번이 처음도 아니며, 그래도 혹시 몰라, 잘 챙겨서 오라고 전화로 다시 당부를 했는데도 만나자마자 그가 챙겨왔어야 하는 물품을 챙겨오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봐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어서 근처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짜증이 멈추지 않았다. 내가 도대체 어디까지 얼마나 더 신경써야 하는 걸까, 행위자가 책임을 지는 당연한 일이 왜 그와는 이토록 어려운가, 자신에 엄격하지 않고서 어떻게 진정으로 타인에게 따뜻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의구심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것이다. 그 와중에서, 나는 가까운 이들에게 관대한 사람은 못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성격이 바뀔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살래살래 젓고 있다. ******* 마음을 보고 판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지만 마음은 결국 행위로 드러난다. 우리는 실천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만 진보적일 수 있다. 마음이 따뜻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없다.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좋고 착함이 내가 여유롭거나 높은 자리, 편안한 환경을 차지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번거롭고 귀찮은 보통의 시간 사이에서 드러나야만 진정으로 '좋고 착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TV에서 가난한 이들이나 고통받는 이들을 '구경'하면서 그때 혀를 차고 마음 아파하는 일은 연민이 아니라 그저 '뻔뻔함'이다. 우리의 연민은 행위로 구체화될 때 비로소 '연민'이지 그렇지 않다면 그저 '감정의 해소'나 '자기 위로'에 지나지 않는다. ******** 올해 여행은 대부분 내게 인내를 가르쳐 주었다. 그 자체가 즐거움이며, 해방이라는 것을 나는 거의 체험하지 못했다. 좋은 동행자를 구할 수 없다면, 혼자 가도 괜찮으리라. 잠시 바깥을 거닐자. 일상의 바깥, 나의 바깥, 현실의 바깥을. 성찰은 눈감고 무릎 끓어야 비로소 일어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가자, 내게 시간을 허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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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257700 제가 감사하죠. 고맙습니다. (--)(__)(--)
어디까지 신경써야할까..이게 정말 짜증스럽다는..오롯이 혼자이고 싶을때 카드에 올리시는 책들 들고 어디론가 떠나야겠네요~^^좋은책 얘기 늘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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