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yde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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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ge - 사진을 말하다(1)

데이비드 두쉬민의 "사진을 말하다"의 한 페이지를 발췌하여 소개할까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항상 "카메라가 좋아야 좋은 사진이 나온다" 라는 말을 합니다. 몇프로는 맞는말이지만 그말이 결코 옳은 말은 아닌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항상 제가 해드리고싶었던 대답이 이 구절나와있어 발췌해보았습니다. 사진예술커뮤니티의 빙글러 여러분들의 사진은 어떤 내면을 표현하고있나요? 그리고 여러분들의 사진은 무엇을 표현하고있나요?
8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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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lover3 그렇죠ㅎㅎ주객이전도되면안되죠
@Clyde88 ㅠㅠ 감사합니당 근데 정말 장비는 장비뿐인거같아용 ㅋㅋ 본질적인 내용이 별로라면 장비는 정말 장비로만....
@photolover3 오오 그런가요? 수정해야겠어요 하루중 하늘을 보는걸 놓치기쉽죠ㅎㅎ!앞으로 좋은 하늘보여주세요!
@photolover3 제가 글을잘쓰다니오!!! 창착문예커뮤니티에서 가보시면 엄청많아요ㅋㅋㅋ
@Clyde88 주객전도! 맞아용! 오오 역시 글 잘쓰시는 분들은 단어 선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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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일기_여름, 개선문, 샹젤리제, 프티몽후즈
https://youtu.be/9qmQF6POn8k 한강이 노랗게 부어있는 사진을 보았다. 며칠 전에는 왠지 모르게 나도 부어있었다. 멀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그 어떤 소식도, 나에 관한 것들도 나의 주변에서 흘러들어오는 것들도 모두 건조한 뉴스 맨트만 같아 눈 귀 모두로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아픔들에 둔감해진 나는 정말 ‘사이’에 끼여 있는 것이 맞나 부다. 반쯤은 비에 발이 다 젖고 반쯤은 건조한 여름 덕에 두드러기가 다 난다. 시끄럽게 밀려오는 뉴스들의 사이, 이 고요한 방에 빠진 우리는 우선 떠 있기 위해 번갈아 발장구를 친다. 흘러가버릴까 때론 꿈에서도 서로를 꼭 붙들고서 두 명 분의 발장구를 친다. 어느 날은 맑은 웃음이 모르게 다 사라지기도 하고 그래서 더 단서 없는 하늘을 보며 지난 일들에라도 성을 내보기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벅차게 자잘한 일들이 떨어지지 않는 입이 도무지 담기지 않는 말들이 다만 시작도 아니고 여전히 실체 없는 것들의 준비를 위한 것이라는 것. 그래 그것이 나를 제일 지치게 한다. 무엇을 만드는 일 아닌 곳에 머리와 시간을 써 본 적이 20년은 더 되었으니. 성급해 준비는 늘 우스웠고 시작은 언제나 오늘만의 단어였던 난 그 많았을 지난 배움들을 이제야 뻐근한 등으로 종기 나는 엉덩이로 징그러운 한숨으로 얼차려처럼 배우고 있는지도. 늦었는지도. 그러니 더 해야겠지. 지난 시간들에 자랑할 게 거의 남지 않았다는 건 쑥스럽기보다는 미안한 일이다. 그럴 나이가 되었다. 머쓱하여 담그는 단어를 바꾸면 다른 생각이 찌를 물 것처럼 허풍도 떨고 있다. 30도가 채 되지 않던 파리의 여름은 어느덧 볼펜만 돌리는 나의 팔에도 축축한 습기를 드리울 만큼 한껏 치고 올라섰다. 습하지 않는 여름이라 서울보다 견딜만 하긴 하다. 그래도 땅을 40도 가까이 데우는 햇볕은 무척이나 강렬해서 지난주 샹젤리제 거리 끝자락에 있는 마히늬 광장에 앉아 잠시 햇볕을 맞았더니 우습게도 우리 둘의 가슴에 옷 모양으로 일기가 남았다. 아예 상의를 벗은 채 나란히 몸을 태우던 노부부도 있었지. 그 날은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선풍기를 사러 간 날이었다. 한국보다 선풍기 가격이 꽤 하는 터라 왠지 모르게 아까운 마음이 들어서 누군가 귀국을 위해 선풍기를 중고로 내어 놓고 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조차 없이 여름을 견디는 일이 가능할까 싶었지만 그렇게 괴롭지는 않았다. 문만 열어도 들어오는 바람이 꽤나 쓸만했고 해가 지거나 구름이 끼는 날에는 기온이 많이 떨어져 가을이 벌써 와 버렸나 싶을 때도 있었다. 한국에서 파리의 삶을 준비할 땐 에어컨도 없는 방에서 여름을 견디는 일이 상상조차 안 되었는데 와서 겪어보니 이곳 사람들이 에어컨을 쓰지 않는 이유가 다 있구나 싶었다. 그래도 엠마의 말 맞다나 아직 여름의 끝까지 온전히 겪어 본 건 아니었기에 최후의 보루는 있어야겠다 싶어 습관처럼 커뮤니티를 드나들면서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지난주 룩셈부르 정원을 산책하고 나오는 길에 마침내 올라온 어느 선풍기 판매 글을 보고 제일 먼저 글을 달았다. 새 것 같은 선풍기가 18유로. 선풍기를 사기 위해서 판매자 분의 집 앞까지 가야 했다. 카타콤브(비밀 지하 묘지)가 있는 프티 몽후즈에 있는 알레시아 가의 한가운데쯤이었다. 프티 몽후즈 지역은 여태 와 본 적이 없었는데 관광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깔끔하고 조용한 지역이었다. 알레시아 가는 길가로 커나란 가로수가 늘어서 있는 예쁜 길이었다. 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나란히 낮은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고 그 거의 모든 건물의 일층에는 상점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여러 메이커의 마트와 장난감 가게, 중고옷 가게, 식당, 카페 등 있어야 할 것들은 다 있는데 신기하게도 전혀 번잡하게 느껴지지가 않는 그런 동네였다. 4시에 약속을 잡았는데 3시쯤 도착해버린 우리는 마치 집을 보러 온 사람처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동네와 건물들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들도 살펴보며 걸었다. 그러다가 다리가 아프면 가로수 아래에 있는 벤치에 앉아 쉬었다. 현금을 뽑으려고 괜한 산책을 또 하기도 했다. 4시가 조금 안된 시간, 어느 건물 입구에서 뽁뽁이 비닐을 한껏 두른 선풍기를 품에 안은 채 걸어 나오는 한 여자분의 모습이 보였다. 서로 눈치를 보다가 마주 서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그분의 손에 18유로를 건네드리고 선풍기를 품에 받아 안았다. 그리곤 우린 또 조용한 길을 다시 걸어 집으로 향했다. 하루 동안 해야만 하는 일이 선풍기 사는 것 하나라니. 괜스레 멀리 돌아 개선문 전망대에 올라 투명한 볼에 담긴 시리얼 같은 파리를 한참 눈과 카메라에 담았다. 어느덧 아는 곳도 많아져 여기저기를 손가락으로 찌르며 지도 놀이도 했다. 가고 싶은 학교들을 두꼭짓점으로 두고 내년쯤 이사를 해야 할 지역도 눈으로 점찍어 두곤 어지러운 회전 계단을 휘청거리며 내려왔다. 샹젤리제 거리를 굳이 다 걸어 내려와 꽃을 두른 분수 옆에 앉아 살이나 태웠다. (분수의 제 윗단에는 비둘기가 모여 물을 마시고 있었다. 까마귀 한마리가 날아들자 물을 튀기며 다 달아 났다. 커피를 마시는 나의 얼굴로 하얀 나비가 날아들었다. 눈을 감았다. 벤치에 닿은 엉덩이와 등이 온돌 위인양 풀어졌다.) 그리곤 가야지하고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발음이 입에 안 붙는 낯선 역에서 내려 선풍기 하나를 품에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비어 있는 날들을 우리가 또 보낼 수 있을까. 비어 있어 사이에 있어 아무도 우리를 찾지 않는 이 시간들. 보물 같은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는 것을 지금의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걷다가 난 땀에 어느덧 부어 있던 마음도 부기를 가라앉혔다. 바람은 시원했지만 그만큼 소리도 큰 선풍기를 내 의자 옆에 부적처럼 놓아뒀다. 전용의 깔판도 광고지들을 잘라 붙여 만들어 줬다. 그렇게 파리의 여름은 어느덧 그 이름의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다. 글 레오 이미지 레오, 엠마 2020.07.29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펌) 시체로 만든 물감
1904년 6월 30일, 영국의 신문 ‘데일리 메일’에는 이런 광고가 실렸습니다. ‘물감으로 만들 이집트 미라, 적당한 가격에 삽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광고를 보고 놀랐겠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려드리자면 이미 몇 세기 전부터 미라는 도굴되어 문제 없이 여러 용도로 쓰여왔단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이집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씻은 뒤 향신료, 밀랍, 톱밥 등의 복잡한 혼합 방부물로 염을 했습니다. 이 시신들이 잘 보존된 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라죠. 이집트에서는 미라를 금이나 보석 등을 통해 화려하게 장식된 관에 넣었고, 또 죽은 자가 생전에 사용했던 물건과 함께 매장했기에 피라미드 안은 보물창고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다가 시신을 미라로 만들 때 바르는 ‘역청’, 즉 아스팔트는 그 당시 만병통치약으로 통했습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미라를 부숴서 만든 가루를 몸에 바르거나, 심지어 먹기까지 했습니다! 뭐라고요..? 제가 지금 뭘 본거죠..? ‘박물지’로 잘 알려진 로마 시대의 학자 대 플리니우스는 미라 가루를 치약으로 사용했고 ‘아는 것이 힘이다’는 말로 유명한 프랜시스 베이컨은 미라 가루를 지혈제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면서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동시대 인물이었던 프랑스의 국왕  프랑수아 1세는 미라 가루의 효험을 철썩같이 믿었기에 미라와 대황 가루가 담긴 작은 주머니를 언제나 지니고 다녔다고 해요. 그런데 이런 미라 가루가 어떻게 ‘머미 브라운’이라는 이름의 물감이 되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시 약방에서는 안료도 같이 취급하고 있었거든요. 진한 갈색의 미라 가루는 호박색 기름과 섞여서 무려 12세기부터 20세기까지 쓰였습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라는 그림으로 유명한 외젠 들라크루아가 파리 시청사에 그린 벽화에도 이 물감이 사용되었을 정도 였습니다. 머미 브라운은 너무 활발하게 사용되어서 피라미드 도굴은 물론이고 노예와 범죄자의 시신으로도 만들어졌으며, 심지어 넘쳐나는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유통업자들이 직접 미라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머미 브라운도 19세기 말부터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원료가 부족해진 것은 물론이고, 물감 자체의 질도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1881년, 화가 에드워드 번 존스는 점심식사를 하던 도중, 친척이 물감상의 창고에서 미라를 갈아내는 광경에 대해 얘기하는 바람에 자기가 사용하던 머미 브라운이 어디서 온 건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그는 당장 자신의 작업실로 달려가서 머미 브라운의 물감 튜브를 꺼내 들고, 적절한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지요. 그 자리에는 에드워드 번 존스의 외조카이자 후일 <정글 북>을 집필한 러디어드 키플링도 있었는데요. 당시 십대의 청소년이었던 그는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아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물감 튜브를 매장하기 위해 삽에 발을 올려놓는 광경을 본 적이 없다. 지금은 해외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미라를 그렇게 마구잡이로 갈아서 물감으로 만들었다니. 믿을 수 없지만 실제로 이루어졌던 일이라니 정말 놀랍기만 합니다. 출처 : http://naver.me/FXRtulk2 모...모야... '미라=사람시체' 이 공식을 모르는 거야..? 사람 시체로 물감을 만들고 치약을 만들어 쓰고 지혈제로 썼다고..???????? 미쳤습니까 휴먼 ㅡㅡ;;;;;;;;;;;;; 남의나라 문화유적이라고 ㅈㄴ 막 썼구만.........미쳤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