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manChan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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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 라라소아냐-시주르 메노르 #잊지못할 그 맛! '카페 콘 레체!' 전날의 가르침으로 우리는 되도록 이른 아침에 출발해 시에스타(스페인에서 낮 중 가장 더운시간)를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준비를 마친 뒤 새벽 공기를 마시며 알베르게를 나섰다. 오늘 코스는 지도에선 본 바로 대부분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 크게 어려움을 느낄거 같진 않았다. 전날 즐거운 저녁식사의 기운이 아직 남아있던 터라 성큼성큼 길을 걸었고 길 위에서 원과 나는 서로 마주보며 다소 오글거리는 사진을 찍었다. 걷는 내내 누구와도 마주치지 못한 원과 나는 첫번째 마을에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무리의 순례자들이 아직 오픈준비가 한창인 바르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봤는데 그 중엔 어제 이야기를 나눈 아일랜드 여성 예나와 그녀의 시누이도 함께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그냥 지나치려 했으나 원이 발길을 멈춘다. "형, 커피 한잔 하고 가실래요?" 커피를 아주 좋아한다는 원의 제안에 마찬가지로 커피를 매우 좋아하는 나도 동의했고 우린 그렇게 순례자들이 한번 먹으면 쉽사리 잊지 못한다는 'caffe con leche(카페 콘 레체)'를 생에 처음으로 접하게 된다.
처음엔 바리스타가 약간은 잠에서 덜 깬 상태로 손을 덜덜 떨며 커피를 제조하는 모습을 보고 아마추어가 아닐까 반신반의 했던 우리는 커피맛을 본 후론 적잖히 놀랐다. 먹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뭐랄까 인스턴트 맛이 아닌 건강한 커피믹스 맛을 내는 카페 콘 레체의 매력에 완전히 매료 되었달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웰빙 커피믹스맛'. 원체 음식에 흥미가 없어 맛 표현을 잘 못하는 나의 한계를 이해해주길 바란다. 앞으로 산티아고를 거쳐 피스테라(fisterra)와 무시아(muxia)까지 걷는 삼십여일의 기간동안 우리는 이곳보다 맛있는 카페 콘 레체를 몇군대 맛보지 못했으니 사진을 보고 기억하는 분은 한번 들려 꼭 맛보고 가길 추천한다. 하지만 음식맛 이라는게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른법이니 선택은 여러분의 몫. 우리가 커피를 거의 마실 때 쯤 라이언과 네이트도 바르로 들어와 커피를 마셨고 우린 그들과 인사를 한뒤 먼저 바르를 떠나 길 위로 올라왔다.
바르에서 나온 뒤 팜플로냐 교외지역의 트리니다드 데 아레를 향해 걸으며 몬테 마라바예스의 높은 언덕을 올랐다. 이쯤에서 우린 예나와 그녀의 시누이 그리고 라이언과 네이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6월에 산티아고의 청명한 아침하늘과 언덕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대부분 촌락을 지나는 까미노의 특성상 높은 건물이 없어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언덕을 오르며 드문드문 예나와 그녀의 시누이를 만났지만 다리가 길쭉길쭉하고 씩씩한 이 여성들은 걸음이 너무 빨라 도무지 따라 잡기가 힘들다. 원과 나는 우리의 페이스 대로 걸으며 라이언, 네이트와 함께 걸었다. 이번에도 대화는 영어가 유창한 원이 이끌었고 나는 함께 걸으며 간간히 대화에 끼거나 대부분 듣기만 했다. 라이언과 네이트 둘 다 학구열이 엄청난 친구들이었는데 나중에 원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라이언 이녀석, 아직은 연애보다 공부가 좋아 계속 공부만 하고 싶다고 했단다. 여담으로 네이트는 콜롬비아 국적의 여자친구가 있었으며 이 진중한 로맨티스트는 그녀가 '첫' 여자친구였다고 한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걸음이 조금 빨랐던 우린 라이언과 네이트보다 먼저 트리니다드 데 아레의 큰 중시다리에 도착했고 시원한 그늘에 앉아 쉬던 중, 뒤늦게 도착한 이 미국인 콤비를 맞아주었다. '아레'라는 마을에 있는 이 트리니다드 수도원은 무려 11세기의 중세시대부터 순례자를 위한 알베르게를 제공했다고 하니 꼭 숙박을 하지 않더라도 순례자 여권에 도장정돈 받아두고 지나가도록 하자. 자 이쯤 되면 여러분이 조심해야 할 것 하나 생기는데, 예전관 다르게 이곳 트리니다드 데 아레 교외지역에서 종종 도난사고가 벌어진다는 것. 아직까진 길 위에 짐을 벗어두고 자리를 비워도 내 짐에 아무도 손대지 않는곳이 많은 까미노지만 큰 도시 내에선 소매치기가 활동을 한다고 하니 변질된 까미노의 모습에 대한 씁쓸함은 뒤로 미뤄두고 귀중품을 잘 챙기도록 하자. '신을 믿어라, 하지만 네 낙타는 꼭 묶어두도록' 나의 길잡이가 되어준 '존 브리얼리'의 가이드북이 나온 적절한 조언이다. 한편 우린 이 트리니다드 데 아레(수도원) 앞에 위치한 중세 다리에서 또다른 반가운 얼굴과 마주쳤는데 바로 이탈리아 훈남 '니꼴라'. 우리보다 한결 느긋한 그는 다리에 마지막에 도착했고 마지막에 출발했는데 결국 이 느긋한 미남이 우리보다 훨씬 먼저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것은 나중 이야기다. 길 위에서 반가운 재회를 한 우리는 까미노 공식 사랑꾼 겸 포토그래퍼 원의 셀카에 동참해 기념사진을 찍었고 운이 나쁘게도 난, 잘생긴 니꼴라 옆에서 사진을 찍는 수난을 당해야 했다. 화질이 흐려 우리 얼굴이 뭉개져서 나온것은 한편으로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아레를 각각 출발한 우리 일행은 산티아고 위에서 처음 만나는 큰 도시 '팜플로냐'를 행해 발걸음을 옯겼다.
'팜플로냐'는 지금도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활기찬 대학도시이다. 산티아고를 잘 모르는 여러분에게도 어쩌면 익숙한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곳이 바로 '산 페르민'(산 페르민은 팜플로냐의 수호성인)이라고 불리는 '소몰이 축제'를 하는 곳이기 때문. 한번쯤은 어떤 매체를 통해서라도 봤을것이다. 흰 옷에 귀여운 스카프를 두른 앙증맞은 모습관 다르게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자신의 다리를 의지한 체 목숨걸고 성난 소들로부터 도망치는 치킨런 게임 같은 축제 말이다. 6월 말에 우리가 마을을 지날 땐 한창 축제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던 팜플로냐는 순례자들에겐 특히 많이 알려져 있는데, 피레네 산맥을 패스하고 순례를 시작하는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바로 이곳 팜플로냐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큰 도시답게 편의 시설이 잘 되어있고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아 출발하기도 편하며 교통또한 좋으니 마드리드 또는 바르셀로나를 통해 입국한 순례자들이 특히 많이 찾는 곳이다. 피레네를 넘기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된 예비 순례자들은 축제기간에 맞춰 팜플로냐를 충분히 즐긴 뒤 순례를 떠나는 것도 까미노를 한층 더 즐기는 방법 되시겠다. 하지만 이 역사깊은 도시는 '큰도시는 가급적 피하고싶다'는 나와 원의 의견이 일맥상통하여 머물지 않기로 하고, 적당히 마을을 둘러보고 필요한 물품 몇개만을 구매한 뒤 오늘의 목적지인 시주르 메노르로 향했다.
3일차에 접어든 원의 발이 심상치가 않다. 일찍 물집이 잡혀 고생한 탓에 팜플로냐의 대학가를 지나던 중 잠시 쉬어가며 그의 다리를 간단히 소독하고 양말을 갈아신기 위해 휴식을 취했다. 한번 잡힌 물집은 대게, 까미노 중-후반까지 어러분을 괴롭힐 가능성이 크다. 딱히 노하우는 없다. 물집덕에 고생한 원과 달리 특별히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냥 운동화를 신은 난 한번도 물집이 잡히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저 뭔가 느낌이 온다 싶으면 귀찮다 생각치 말고 바로 그자리에서 양말을 갈아신고 발바닥 주위를 한번 더 점검하길 권고한다. 원이 발을 치료하는 동안 난 무당벌레 친구와 함께 놀며 지친몸을 달래주었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피에스타 탓에 기운이 많이 빠진 우리는 힘들게 시주르 메노르에 도착했고 이 환상적인 시설(마치 리조트 같은)의 사설 알베르게에 만족감을 느끼며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우리보다 뒤늦게 도착한 라이언과 네이트는 다음마을까지 걸어야 할지 여기서 멈춰야 할지 고민하다 원의 추천에 힘입어 우리와 함께 머물기로 했다. 오스피탈레에게 이 주변에 순례자에게 50%가량 할인해 주는 수영장이 있다는 정보를 얻고 원과 함께 가보기로 했다. 아쉽게도 수영장 사진은 담지 못했으나 내리쬐는 햋살을 건디기 힘든 순례자는 이곳 시주르 메노르에 짐을 풀고 수영장을 방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수영을 마친뒤 시에스타 동안 닫혀있던 슈퍼마켓에서 파스타 재료를 구매한 뒤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근데 왜인지 어제완 달리 너무, 정말 너무 맛없는 파스타의 맛에 어찌할지 모르던 우리는 호기심 많은 라이언이 온 틈을타 이거 정말 환상적인 맛이라며 거부할수 없는 파스타 접시를 내밀었고 '니네 이게 진짜 맛있냐?'는 표정을 지으며 "맛있다, 내가 만든것보다 맛있어"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을 보며 억지로 웃음을 참아야 했다. 식사를 마친뒤 원과 라이언은 자존심을 건 체스 국가 대항전을 했고 승리는 아슬아슬하게 원에게 돌아와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
4일차, 시주르 메노르-로르카 #용서의 언덕 이른아침 눈을 떳다. 옆 침대에서 잠을 잤던 원이 없다. 발에 무리가 와 걸음이 많이 느려진 원이 나에게 피해를 주길 원치 않는다며(나는 걸음이 무척 빠르다!) 미리 출발해 속도를 맞추겠다는 의견에서였다. 힘들게 눈을 뜨고 간단한 세면을 하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는데 가슴 한켠이 아련(?)해지는 쪽지가 하나 남겨져 있다. 오늘의 목적지로 정해 넣은 'Lorca'까지 갈길이 머니 먼저 출발한다는 쪽지. 나중에 들어보니 '찬영'이란 내 이름 대신 '찬'이라고 써놓은건 빨간색으로 이름쓰기 좀 그래서였단다. 약간은 웃기지만 세심한 것도 배려하는 원. 함께한지 4일밖에 안되었는데 잠시 헤어진게 아쉽고 벌써부터 보고싶어 빠르게 알베르게를 나선다. 아, 어감이 조금 이상한데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꾼 원은 아름다운 여자친구가 있으며 난 우리의 순수한 우정을 말 한 것이니. 전날의 피곤함은 온데간데 없고 발걸음이 가볍다. 태생적으로 걸음이 빠른 나에게 원은 '코리안 푸마'라는 별명을 붙여줬고 소문까지 내는 바람에 이 별명은 내가 까미노를 마치는 날까지 날 따라 다녔다. 별명답게 빠른 걸음으로 마을을 벗어난 나는 저 멀리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잠시 뒤로 돌아 숨을 고르고 다시 출발했다. 아름다운 밀밭과 숲길이 이어진 이곳은 샤를마뉴의 기독교 군대가 아이골란도의 무슬림 군대와 전투에서 패배했던 장소라고 한다. 평화로운 지금의 모습에선 그 때의 상황을 상상할 순 없지만.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걷다가 서서히 그림자가 내 갈 길을 일러줄 때 쯤 뒤돌아 바라보는 일출의 아름다움은 까미노를 걷는 모든 순례자들의 특권이다.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벗어난 나는 페로돈 봉을 향해 뛰듯이 걸었다. 저 멀리 이 지역 전력을 담당하는 풍차가 줄지어 서있었고 왠지 저 언덕 정상에 원이 있을거 같단 생각에서였다. 드디어 정상. 나의 예상대로 원은 그곳에 있었다. 그 역시 내가 곧 올거 같다고 느껴 그냥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나보다 한시간 가량 먼저 출발했는데 벌써 따라 잡은거 보니 발걸음이 가벼워 정말 뛰듯이 걸었나보다. 서풍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쇠로만든 중세 순례자 상이 있는 이곳은 용서의 언덕이라 불리며, 이름답게 내 마음의 짐을 하나 덜어주기에 충분히 그 힘이 실리는 곳이었다. 저 멀리 넓은 평원과 산, 대자연과 불어오는 서풍을 맞으며 이 바람에 그대로 실려 보내지 못할 타인의 잘못이 무엇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이 길을 걷게 될 여러분도 타인에게 받은 마음속 상처 한가지씩 있다면 이곳에서 그를 위한 자비를 배푸시길. 용서해야 할 마음에 응어리 하나 없는 삶을 살아 온 것이 더 좋겠지만.
정상에서 만나 함께 산을 내려온 원과 나는 그 때부터 다시 함께 걷기로 했다. 몇개의 마을을 더 지나친 우리는 순례자를 위해 만들어져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왕비의 다리'가 있는 '푸엔테 라 레이나'에 도착했다. 마을에 들어서 우린 중심부의 한 바르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는 네이트를 만났고 그에게 라이언의 행방을 묻자, 잠시 병원에 간 그와 이 마을에서 합류하기로 해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인사를 나누고 길을 나선 그 때, 전날 시주르 메노르에서 만날 줄 알았지만 그러지 못한 니꼴라와 마주쳤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보다 한 마을 더 지나서 '사리키에기'에 머물렀다고 한다. 만날줄 알았건만 못만나 아쉬웠다며 오늘은 어디까지 가냐고 묻자 자신도 잘 모른단다. 참 느긋한 청년이다. 우리는 오늘 '로르카'까지 걸을 것이니 그곳에서 보길 희망한다고 말하고 다시 작별을 했다. 마을을 벗어날 때 쯤 만난 '왕비의 다리'에서 라이언과 마주쳤다. 어디 갔었냐고, 네이트가 마을 안쪽 바르에서 기다린다고 하니 길을 잃었었다는 허당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까불거리고 나사풀린듯 행동하지만 이 어린 미국친구를 미워 할 수가 없다.
푸엔테 라 레이나를 벗어난 뒤 로르카로 향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이미 우리 머리 위를 덮친 시에스타의 영향으로 점점 진이 빠지던 찰나, 라라소아냐에서 친해진 대만출신 크리스를 다시 만났다. 목적지를 묻자 우리보다 한마을 전에 머문다고 한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 너무 힘드니 로르카까지 함께 하자고 넌즈시 던져보았다. 이날부터 앞으로 우리와 계속 함께 하는 이 친절한 대만친구 입에서 나온 대답은 놀랍게도 1초의 고민도 없이 'Okey'. 걷는동안 대화를 나눈 결과 크리스는 프로그래머였다고 한다. 대만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도 태어난 순간 많은 사람들이 부모에 의해 꿈이 정해지고 남들과 같은 삶을 살며 진짜 자신이 원하는 꿈이 무엇인지 모른채 살아간다고 한다. 그는 그것을 원치 않았고 과감히 일을 그만둔 뒤 폭스바겐 미니밴을 구입하고 해변에서 음료와 간식거리를 파는 일을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장사는 잠시 접어둔 채 대부분 까미노를 오는 이유, 자신의 미래와 꿈에 관해 생각하며 그 열쇠를 찾기위해 이 길을 걷는다고 했다. 40살이 된 그의 도전을 보니 새삼 그가 멋지다고 느껴졌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나지 않는 길을 걸은 끝에 우린 드디어 로르카에 도착했고, 스페인 사람이 한국 여성과 결혼해 이곳 로르카에서 '호세네'라고 불리는 알베르게를 운영하는 곳을 찾아갔다. 침대가 단 네개 뿐인 방에 배정받은 우린 방하나를 우리끼리 사용한다는 기쁨에 서둘러 개인 정비를 마치고 간단한 요기를 한 뒤 저녁을 기다렸다. 그동안 라이언과 네이트, 미국인 콤비도 도착했고, 약간은 귀차니즘을 갖고있지만 친절한 호세의 저녁식사를 먹은 뒤 하루를 마무리 하기 위해 방으로 돌아갔다. 작은 테라스에 앉아 일기를 정리하고 있을 때 한 러시아 순례자 커플이 저녁 8시가 넘은 늦은 시각에 마을에 도착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들은 이미 문이 닫힌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하길 원했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자 나에게 '침대는 사용 안해도 되니 방문만 열어달라'는 제안을 했고 방값은 내일 호세에게 지불하겠노라고 했다. 난처한 상황이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그들의 요청을 수락했고 그렇게 4일째의 밤이 저물었다.
-초보 순례자의 초보 순례자를 위한 TIP 다들 아시겠지만 스페인은 더운 나라 특성상 '낮잠시간'인 '시에스타'가 존재합니다.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은 큰 관광도시엔 해당되지 앉지만 까마노 위의 거의 모든 마을이 이 '시에스타'가 적용되죠. 이 시간엔 레스토랑이나 바르 알베르게 같은 곳을 제외하곤 모두 문을 닫습니다. 마을이마 상점마다 시간차이는 있습니다만 대부분 평균적으로 오후 12:30분 부터 오후 5시까지가 그 시간에 해당 됩니다. 저 또한 시간을 잘못 맞춰 상점이나 슈퍼마켓이 문을 닫는 바람에 주린배를 채우지 못해 고생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니 앞으로 걷기 될 현명한 순례자 분들은 시간을 잘 조정하셔서 어려움이 닥치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빙글 사진 업로드가 50장 제한이 있는즐 모르고 여행기를 길게 써버려서 사진을 70%밖에 못올려서 아쉽네요ㅜㅜ @uruniverse @monotrav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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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여행기가 제가 다니는것처럼 생생하구 술술 읽혀요 감사합니다:)
@ragraphy 감사합니다:)학교 다닐 땐 한번도 못들어본 칭찬을 빙글에 여행기 쓰면서 종종 듣네요ㅠ감격
@uruniverse 또 만나리라 기대하고 길위에서 재회하면 그렇게 반갑더라구요! 그게 산티아고의 매력인거 같아요!!
@monotraveler 저두 7월 말에 산티아고-피스테라-무시아 마치고 지금은 라오스에요! 다음에 또 걷는 기회가 있으면 큰 도시 머물러 보려구요!!
글을 무척 잘 쓰시는것 같아요. 특히 산티아고 편들은 고전모험소설을 읽는것 같은 느낌인데 실제한 여행기라니 더 낭만적으로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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