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을 로켓에 실어 우주 공간에 간 유인 우주 비행은 1961년 구 소련이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을 인류 최초로 우주에 보내면서 이뤄졌다. 하지만 이보다 10년 앞서 영국이 유인 우주 비행에 성공시킬 수도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 승전국인 영국인 패전국인 나치 독일이 개발한 군용 미사일 V2 로켓 기술을 입수, 우주 로켓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했다고 한다.
1945년 여름 제2차세계대전이 종결되면서 유럽에서 승리한 연합군은 나치 독일이 개발한 V2 로켓의 전모를 해명하는 일을 빠르게 진행했다.
V2 로켓은 초기 로켓 기술을 선도하고 이후 미국에 망명해 로켓 개발을 이끈 유명 과학자인 베르너 폰 브라운이 중심이 되어 진행됐다. 군사용 로켓에 작고 강력한 로켓 엔진, 진공관 회로를 이용한 고급 비행 궤도 제어 장치 등 당시로는 첨단 기술을 실용화한 것이다.
V2 로켓은 나치 독일이 전쟁 당시 지배했던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런던을 향해 발사, 런던 시내에 피해를 주기도 했다. 피해 규모가 큰 건 아니었지만 초음속으로 예고 없이 날아와 피해를 줘서 런던 시민은 보이지 않는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런 수수께끼 같은 공포의 무기였던 V2 로켓은 전쟁 막판인 1945년경부터 서서히 진상이 밝혀지게 된다. 미국과 소련, 프랑스, 영국 사이에서 V2 로켓을 둘러싼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1945년 5월 패전이 농후해지면서 나치 독일에서 개발 책임자로 일하던 폰 브라운이 미국으로 망명한 동시에 수많은 기술도 미국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그 직후 소련도 독일 북부에 위치한 독일 육군 병기 실험장을 차지한다. 프랑스는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와 기술자 40명을 얻었고 영국은 미국이 상당수 가져간 연구시설에 남겨진 V2 로켓 제조에 필요한 자재와 노하우를 손에 넣게 된다.
영국은 전후 실시한 오퍼레이션 백파이어(Operation Backfire)를 통해 V2 로켓을 실제로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독일 북부 도시 쿡스하겐에서 독일인 기술자의 손에 의해 발사된 V2 로켓은 우주 공간 경계선까지 도달한 이후 북해에 설정되어 있던 착수 지점에 낙하하는 데 성공했다. 이 때 목적지의 정확도는 나치 독일이 개발한 당시보다 더 높았다고 한다.
실험에 참여한 영국인은 V2 로켓 기술에 놀랐다. V2 로켓에는 뛰어난 기술이 담겨 있어 이를 통해 우주선 건조 기술이 가능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랄프 스미스 등이 V2 로켓을 이용한 인류 수송 로켓 전용을 위한 제안서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가 구상한 V2 로켓을 기반으로 한 메가록(Megaroc) 계획에 따르면 로켓은 기반이 되는 V2 로켓을 크게 만들고 외피를 강화, 연료 탑재량을 늘리면서 무게 1톤 탄두 부분을 승무원이 타는 캡슐로 대체한다는 구상을 담았다. 하지만 이 사양으로 인간을 지구 궤도에 투입하려면 충분한 성능을 갖추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대신 포물선 궤도에 올려 고도 300km 지점에 도달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메가록은 우주 공간에 도달하면 승무원이 담긴 캡슐을 분리한다. 캡슐에는 관측용 창 2개가 설치되어 있어 우주복을 입은 승무원이 지구 표면과 대기, 태양 관측을 실시할 계획이었다. 당시 소련과의 대립이 악화되면서 정찰 활동에 이용할 방안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캡슐은 5분간 무중력 비행을 한 뒤 지구 중력에 의해 낙하 궤도에 들어간다. 단열재로 보호된 캡슐 속 승무원은 대기권에 돌입하고 낙하산을 이용해 지상에 착륙하게 된다. 또 이 계획에선 로켓 본체에 낙하산을 달아 재사용할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
메가록은 실용적 디자인을 추구했다. 모두 기존 기술로 만들어 3∼5년 안에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메가록이 적어도 당시 기준으로는 10년은 앞서가는 디자인을 갖추고 있어 영국이 1951년까지 정기적으로 인류를 탄도 궤도에 실어 우주로 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미스가 영국 군수성에 메가록 계획을 제출하고 몇 달 뒤에 제안은 거부 당한다. 영국은 이미 한정된 인적 자원을 우주 개발보다는 항공이나 원자력 기술 분야에 집중할 방침을 정한 상태였다. 그 뿐 아니라 영국은 제2차세계대전에 많은 돈을 쏟아 부은 탓에 파산 상태에 처해 있었다. 메가록 계획을 제안한 1946∼1947년 당시에는 국가 상태가 최악이었던 것.
하지만 대서양을 사이에 둔 미국에선 정반대의 방침을 발표한다. 미국에 망명한 V2 로켓 개발자인 폰 브라운 박사에게 개발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제공할 방침을 세우고 차세대 로켓 개발에 나선 것이다. 그 결과 소련보다 한 달 늦은 1961년 5월 머큐리 레드스톤3호를 발사하는 데 성공해 우주비행사 앨런 셰퍼드를 우주에 보내는 데 성공한다. 레드스톤3호 역시 크기가 늘어난 V2 로켓 자체였다. 진정한 의미로 보자면 새로운 기술은 아니었지만 이를 통해 인류를 우주로 데려갔다는데 성공한 게 중요했다. 만일 영국이 메가록 계획을 진행했다면 소련이나 미국보다 더 빨리 인류를 우주에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 세계에서 민간 우주 개발 경쟁이 과열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영국에서도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이 만든 버진갤럭틱 등이 우주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관련 내용은 이곳( http://www.bbc.com/future/story/20150824-how-a-nazi-rocket-could-have-put-a-briton-in-space )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