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h1106
1,000+ Views

[전근대편 - 23] 백제의 건국과 온조왕

고구려를 떠나 새 나라를 세우러 간 비류와 온조

비류와 온조는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아들이었습니다. 처음에 비류가 첫째 왕자였고 온조는 둘째 왕자였는데, 어느날 이복 형인 유리가 나타나면서 비류와 온조는 둘째, 셋째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왕이 되는 것은 둘째치고 유리가 왕이 되었을때 자신들을 어떻게 할지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주몽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도 고구려를 떠나 새 나라를 세우기로 결심합니다.
두 사람의 뜻에 오간, 마려 등 10여명의 신하가 함께했고 그들은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남으로 내려온 일행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산 위에서 주변을 살피며 살 만한 곳을 찾았습니다. 신하들은 "큰 강이 북쪽에 있고 동쪽으로 높은 산이 있으며, 남쪽으로 비옥한 땅이 있어 살기에 적당할 듯합니다."며 하남 땅에 도읍을 세우고자 했고 온조도 그 뜻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비류는 "강의 하류로 내려가 바다가 보이는 곳에 나라를 세우고 싶다"며 백성을 나누어 미추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미추홀에 자리잡은 비류는 그곳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습니다. 땅은 습하고 질퍽했으며 물은 짜서 농사짓기 힘들었기 때문에 정착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결국 비류는 하남 위례성으로 돌아갔습니다. 위례성에 가보니 백성들은 태평하고 안정되었으며, 모두 활기에 넘쳐 있었습니다. 이를 본 비류는 자신의 결정에 후회하며 정치에서 손을 떼고 조용히 살다 생을 마감했습니다.

백제의 건국에 대한 여러 가지 설

'온조(溫祚)'의 뜻과 '백제(百濟)'라는 이름의 유래

온조라는 말은 '하늘이 내리는 따뜻한 복'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름대로 따뜻했던 왕이라고 전해집니다. 나라이름름의 '백'은 많다는 의미 '제'는 따른다는 의미로 온조는 많은 백성들이 자신을 따른다고 하여 나라의 이름을 '백제'로 정하였습니다.

비류백제설

[삼국사기]에서는 백제 건국의 다른 이야기로 '비류백제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백제의 시조는 비류왕이며 그의 아버지 우태는 해부루의 서손인데, 우태가 연타발의 딸 소서노와 결혼하면서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 우태가 죽고 소서노는 두 아들과 살다가 주몽이 오자 재혼했는데, 이들은 고구려가 세워지는데 큰 역할을 했고 소서노는 고구려의 왕비가 되었다."라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주몽의 첫 번째 부인 예씨의 아들 유리가 오자 주몽이 그를 태자로 임명했고, 두 아들은 불만에 가득 차 남쪽으로 가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한 내용은 같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백제의 시조는 비류이고 두 형제가 주몽의 의붓아들이라는 점입니다. 이 설은 백제의 첫 번째 왕이 온조로 공인된 다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백제 시조 주몽설

일본에서는 백제를 건국한 사람이 주몽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일본서기], [속본일기] 등에서 이러한 기록이 발견되었으며 백제에서도 어느 시점부터 태조라는 시호를 온조가 아닌 주몽으로 지목한 것으로 보고있습니다.

아래 역사도 함께 알아볼까요?

- 백제의 발전 및 쇠퇴 과정 : http://jisick-in.tistory.com/36
- 삼국의 통치 체제 : http://jisick-in.tistory.com/51
cmh1106
4 Likes
6 Shares
Comment
Suggested
Recent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의성 가볼만한곳 베스트 모음 9곳
긴장마에 여름 여행을 떠나지 못했다면 여기 경북 의성을 추천합니다. 제가 다녀온 곳은 여러곳인데 오늘 추천하는 빙계계곡은 정말 계곡 여행지로 최고가 아닌가 싶어요. 오토캠핑장도 있어서 시원하게 여름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호미는 취재여행으로 다녀와서 당일치기로 9곳을 들렀는데요. 이 코스 중에 골라 다녀오시면 됩니다. 1. 조문국박물관.상상놀이터(물놀이장), 조문국사적지 2. 빙계계곡(빙혈.풍혈.빙계서원) 3. 고운사 5. 탑리리마을 6. 선운마을 고택체험(소우당) 의성을 처음 방문해서 많은 곳을 들러보려고 빗길에 뛰어다니다시피해서 모두 찾은 곳입니다. 의성은 평창 동계올림픽의 은매달 주역 컬링 선수들의 고향이기도 해요.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다녀왔기에 더욱 특별했던 경북의성 여행이었어요. 전국을 여행을 떠나며 특히 지방 곳곳에 여행지를 들를 때마다 늘 감동하고있답니다. 앞으로 또 어디를 방문할 지 매번 설렘을 가득 안고 떠납니다. https://blog.naver.com/homibike/222053151615 https://blog.naver.com/homibike/222060197924 #경북드라이브#경북드라이브코스#의성가볼만한곳#고운사#빙계계곡#탑리리마을#산운마을#소우당고택#1박2일#여름여행#의성드라이브#빙혈#풍혈#여름가볼만한곳#경북계곡#계곡여행#경상북도가볼만한곳#경상북도드라이브코스#경북여름여행지#경북여름에가볼만한곳#8월에가볼만한곳#여름여행지추천#여름국내여행지추천#여름에가볼만한곳
펌) 냉혹한 어느 히틀러 애완동물의 인생.neverdie
그동안 냉혹한 동물이랑 냉혹한 역사를 따로 분류해서 썼는데 오늘은 둘이 파워합체교미한다 오늘은 냉혹한 세계의 역사를 지켜본 어떤 냉혹한 동물의 인생 이야기다 타이틀도 어마어마한게 붙어있다. 무려 히틀러의 애완동물이다 게다가 종족이랑 국적도 존나 특이해 왜냐면 미국 악어거든. 이름은 '새턴', 몸길이는 3.5m, 몸무게는 200kg. 이름이 세턴(토성)이지만 마법악어로 변신하진 못했는데 수컷이라 그렇다. 하지만 굳이 마법소녀로 변신할 것도 없이 인생이 마법 자체였다. 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미국악어가 히틀러 애완동물이 됐을까 마법악어 세일러 새턴의 스토리는 지금부터 약 84년 전인 1936년 미국에서부터 시작된다. 시작부터 스펙터클하게도 갓메리카 역사상 제일 씹창인 시대였다. 당시에 미국은 파워 대공황 상태라 존나게 살기 팍팍한 상태였다. 보너스 아미 사건이 터진 것만 봐도 뭐 뻔하지. 사람이 살기 힘든데 동물이라고 살기 편한 건 아니었다. 평범한 양키 악어로 살아갈 수도 있었던 우리의 새턴은 태어나자마자 험한 고생을 하게 된다. 미시시피 강가에서 태어나자마자 사악한 인간 헌터들에게 사로잡힌 것이다. 우왕 악어당 양키 헌터들은 붙잡은 악어를 동물원에 팔아넘기려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미국에는 악어가 썩어나는 동물이라 별로 수요도 없었고 뭣보다 대공황시대였다 동물원 동물들도 꺼내다 잡아먹어야 할 판국에 동물원에 놀러가려는 사람이 있을리가 동물원은 당연히 퇴짜를 놨고 헌터들은 불쌍한 새끼 악어를 구워먹을지 삶아먹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의외의 구매처가 나타났다. 뜬금없게도 까마득한 바다 건너 독일에서 동물원에 악어를 들여놓고 싶어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새턴은 고향 미시시피 강가를 건너 유럽으로 날아가게 된다. 그런데 교양있는 친구들은 모두 알겠지만 1936년의 독일이라고 하면 2차대전 발발 겨우 3년 전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나치 친구들이 한참 위세를 뽐내고 있던 시절이란 말이지 그리고 나치 대빵인 히틀러는 동물애호가로 존나 유명한 양반이었다 히틀러가 제일 좋아하는 동물은 댕댕이였지만 뭐 다른 동물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라서 히틀러는 존나 좋아라했다 히틀러의 취미가 동물원 방문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 둘은 곧 만나게 된다 악어 세턴이 살게 된 베를린 동물원은 같이 사는 동물만 해도 16000마리가 넘었다. 한참 나치 독일이 잘나가던 시대라 동물원도 존나게 컸다. 동물애호가 히틀러는 유대인들 잡아죽이다 질리면 동물원에 와서 놀곤 했는데, 그중에서도 악어, 특히 미국물 먹은 양키 악어 새턴을 좋아했다고 한다. 해햏 양키 악어다 양키 악어 삐약삐약 이렇게 새턴이 히틀러의 애완동물이란 별명을 얻게 된 것이다. 이름이랑 달리 히틀러가 집안에 놓고 키운건 아니다. 동물원에 놓고 길렀음. 근데 뭐 이런 소문이 퍼졌다는 것부터가 히틀러가 꽤나 악어에 집착했음은 분명하다. 이 인간은 디즈니 팬아트도 존나 그리더니 동물도 미국 동물을 좋아한다. 뭐 여기까지야 불미스런 별명이 생긴 것 빼고 새턴의 인생에 큰 사고는 없었다. 새턴은 몇십 마리 정도 되는 다른 악어들과 함께 빈둥거리면서 살았다. 미국에 있었으면 악어백이나 악어구이가 됐을텐데... 히틀러는 뺀질나게 새턴을 보러 동물원에 들락날락거리다가 어느 시점부터 발걸음이 뜸해지기 시작했는데 왜냐하면 당연히 2차머전이 터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일은 잘나가나 싶더니 좆발리기 시작했다. 동물원에 쳐박혀있는데 동물이 전쟁이랑 무슨 상황이냐 싶겠지만 문제는 베를린 동물원은 베를린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베를린은 전쟁기간 동안 역사상 가장 많은 폭격을 두들겨맞는 도시였다 온 베를린이 쑥대밭이 되는데 당연히 베를린 동물원이라고 멀쩡할 수가. 1941년부터 1945년에 전쟁이 끝날 때까지 베를린 동물원이 직격으로 얻어맞은 폭격만 12번이다. 불쌍한 동물 친구들은 독일 동물원에 살고 있단 이유로 도매로 바베큐가 되어야 했다. 좆간이 미안해 그리고 베를린 동물원이 겪은 모든 공습 중에서도 최악의 공습이 있던 날 세턴의 운명도 완전히 바뀌게 된다 1943년 11월, 1000발이 넘는 소이탄과 고폭탄이 베를린 동물원에 직격으로 쏟아졌다. 대체 왜 동물원에? 아마 낙찌들이 대공용 코끼리를 개발하고 있다고 생각했나보다. 아무튼 이때의 폭격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던 동물들 대부분이 개작살이 났고, 세턴이 살고 있던 악어 수족관에도 직격으로 폭탄이 떨어졌다. 순식간에 악어 수족관은 악어(였던) 악어백 원자재들만 남아있게 되었다. 좆간이 미안해. 다음날 아침이 되자 동물과 사육사들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생존자를 세기 시작했는데, 6000마리가 넘는 동물 중에서 단 96마리만 살아남았다. 이 살아남은 동물들이라고 딱히 남은 인생이 편하지도 않았다. 맹수들은 풀려나서 사람들을 덮칠까봐 사살되기도 했고 덩치 큰 코끼리들은 폭격 잔해들을 치우는데 징집되었다. 그런데 맹수들을 살처분했다고 하는데 우리의 악어는 어떻게 됐을까? 베를린에 괴상한 도시전설이 탄생한게 바로 이 때였다. 30마리가 넘는 악어들의 시체가 발견됐지만, 악어 한 마리가 폭격에서 살아남아 베를린을 돌아다니고 있단 소문이었다. 당시 독일 신문에까지도 날 정도로 유명한 소문이었지만 2년동안 아무도 진위를 알지 못했다 히틀러의 애완악어가 다시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건 2년 뒤의 이야기였다 2년 뒤 베를린은 나치를 치러 온 소련군에게 무자비하게 짓밟힌다 소련이 이긴거야 뭐 우리가 지금 수용소에 안 끌려간 것만 봐도 알겠지 베를린은 그렇게 연합군한테 갈라먹혀서 앙앙대는 신세가 되었는데, 베를린 동물원(였던 것)은 영국의 전담구역이 되었다. 그런데 동물원(였던 것)을 돌아다니던 영국 병사들이 이상한 것을 발견한다 폐허 속에서 꿈틀거리며 나타난 것은 바로 마법악어 세일러 새턴이었다 2년 전 1000발이 넘는 폭탄의 비 속에서도 유일하게 살아남아 전쟁 중인 베를린에서 2년 동안이나 더 살아남은 것이다. 최후의 발악을 하는 낙찌와 숨통을 끊으려는 빨갱이들의 지독한 시가전에서 어떻게 악어가 멀쩡하게 살아남았는지는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다. 뭘 먹고 살았는지, 어케 안 들켰는지, 어케 총에 안 맞은건지 진짜 아무도 모른다. 역시 마법의 힘이 틀림없다. 영국군은 엄청나게 놀랐지만 악어를 리엔으로 빵빵 쏴죽이진 않았고, 일단 동물원으로 데려갔다. 영국인들도 비범한 마법악어의 마력을 느꼈나보다. 일단 베를린 동물원이 작살이 나도 개작살이 난 상태였기 때문에 여기서 계속 살게 할 순 없었으니 영길리들은 악어를 라이프치히라는 도시로 보냈다. 그런데 라이프치히에는 나치를 박살내고 쉬고 있던 소련군도 있었다. 소련 친구들이 신기하게 악어를 바라보자 영국군은 쿨하게 새턴을 선물로 주기로 한다. 이렇게하여 양키 악어였다가 낙찌 동물원에서 키워지다 영길리 군인한테 구출되어 이번엔 빨갱이 동물원으로 가게 된 것이다. 다들 왜 이렇게 악어를 좋아하는 걸까. 세턴이 미국과 독일과 영국을 거쳐 오게된 쏘련땅. 쏘련에 온 새턴은 모스크바 동물원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여기서는 악어가 딱 2마리 밖에 없었고 당연히 미국 악어들도 아니었기 때문에 새턴은 대인기를 끌게 된다. 사실 미국 악어라는 타이틀보다도 지옥의 베를린에서 살아남은 마법악어라는 점이 더 크게 어필했을지도 모른다. 낙찌한테 존나 두들겨맞다 대역전극을 펼쳐 얻어낸 전리품이란 타이틀도 있고 처음에는 독일에서 잡아왔단 이유로 '히틀러'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히틀러 애완동물에서 히틀러로 격상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암만 그래도 별로 기분 좋은 별명은 아니었다. 이렇게하여 '새턴'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삐약삐약 이렇게 고생을 존나 한 끝에 편하게 사나..싶었는데 빨갱이 로씨야는 불쌍한 마법악어에게 휴식할 기간을 주질 않았다. 폭격에서도 살아남은 악어를 누가 해칠 수 있냐고? 폭격에도 안 죽는 악어를 죽일 수 있는 것은 꽐라가 된 빨갱이의 짱돌이다. 술취한 개또라이 관광객 하나가 자고 있는 새턴에게 짱돌을 집어던져 뚝배기를 깨버린 것이다. 하여튼 러시아인들이란. 불쌍한 새턴은 혼수상태에 빠졌고 즉시 러시아 최고의 수의사들이 소집되었다. 낙찌를 작살내고 얻어온 마법악어가 짱돌에 맞아죽었다고 하면 숙청감이다. 몇 달이나 되는 치료기간 끝에 소비에트 매직의 힘으로 간신히 새턴은 살아남지만 아직 고생은 끝나지 않았다 또 술취한 꽐라들이 이번엔 유리병을 깨서 새턴에게 날린 것이다. 이 일로 쏘련 사람들은 아예 방탄유리로 세턴의 집을 교체해줘야 했다. 하여튼 러시아 사람들. 이렇게 간신히 평온을 찾나 싶었는데... 이번엔 소련이 망해버렸다! 1991년의 이야기였다. 당연하지만 온 모스크바에 난리가 났다. 당연히 모스크바 동물원 근처에도 탱크가 쿵쾅거리며 지나다녔다. 그러자 새턴은 지금껏 조용하고 얌전했던 모습에서 벗어나 몸부림을 치면서 울부짖었는데, 탱크의 진동으로 베를린에서 겪었던 PTSD가 살아난 것이다 뭐 이번엔 다행히 동물원이 공격받거나 하진 않았지만 충격이 엄청났는지 새턴은 식사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역시 전쟁은 인간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단식을 시작한 새턴을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사육사들은 소련이 망해가는 와중에도 열심히 세턴을 돌봤는데, 새턴이 가장 좋아하는 빗자루 마사지를 해주거나 비타민 주사를 놓거나 했다. 결국 1년 동안이나 단식한 끝에 충격에서 간신히 벗어났는지 새턴은 다시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어쨌든 이 대단한 마법악어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빌런 국가인 나치와 소련의 멸망을 두 번이나 무대 한 가운데에서 지켜보고도 살아난 악어가 된 것이다. 병신국가가 다 됐던 러시아가 조금씩 정신차리기 시작하고 미국이랑 약간이나마 사이좋아지기 시작하자 새턴에게도 좋은 일이 있었는데, 러시아에서 혼자 살고 있는 미국 악어가 있단 소식을 들은 미국 사람들이 암컷 악어를 시집보낸 것이다. 이것이 2005년, 새턴이 70살 할아버지가 되던 날의 일이었다. 말년은 동정도 때고 비교적 평화로운 여생을 보내던 마법악어 새턴은 2020년 5월 22일에 노환으로 세상을 떴다. 사육사들은 무척 슬퍼했는데 말 그대로 시대를 상징하던 악어가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죽었을 때 새턴의 나이는 84살의 나이였다. 혹시 결혼을 안 했으면 나치랑 소련의 멸망 뿐만 아니라 좆간의 멸망까지도 지켜봤을지도 모른다. (출처) PTSD오는거 너무 짠하네요. 정말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너무 많이 겪은 악어 하지만 살아남겠다는 일념이 대단했던 악어 고악어의 명복을 빕니다.
♣죽어도 행복을 포기하지 마라♣
좋은아침입니다. 오늘도 날은 흐리지만, 비는 오지 않는 날이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오늘 마냥좋은글에서는 김홍신작가님의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좋은 시를 준비했습니다. 이 시와 함께 산뜻한 아침 시작하세요. 산 꼭대기에 오르면 행복 할거라 생각 하지만 정상에 오른다고 행복한건 아니다. 어느 지점에 도착하면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 그런 곳은 없다. 같은 곳에 있어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불행한 사람이 있다. 같은 일을 해도 즐거운 사람이 있고 불행한 사람이 있다. 같은 음식을 먹지만 기분이 좋은 사람과 기분 나쁜 사람이 있다. 같은 물건, 좋은 음식, 좋은 장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대하는 태도이다. 무엇이든 즐기는 사람에겐 행복이 되지만 거부하는 사람에겐 불행이 된다. 정말 행복한 사람은 모든 것을 다가진 사람이 아니라 지금 하는 일을 즐거워 하는 사람, 자신이 가진것을 만족해 하는 사람,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 갈 곳이 있는 사람, 갖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이다. - <죽어도 행복을 포기하지 마라>中 ,김홍신 - 오늘 하루도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아름다운 하루를 보내시기를 마냥좋은글에서는 늘 소원합니다. 행복과 행운이 함께 하세요. 감사합니다. 마냥좋은글.. 하루에 크게 웃고 싶을 때 하루 한가지 최신 유머 스트레스 확 날리는 짧은 웃긴 영상 세상의 모든 유머 https://bit.ly/3gAaxhA << 오늘의 추천 마냥 좋은글 >> 시간 지나면 반드시 후회되는 35가지 https://bit.ly/3hPt5LR 면역력을 높일 수 있는 간단한 방법 11가지 https://bit.ly/3hPt5LR
♣힘들 때, 슬플 때, 기쁠 때...♣
오늘 잠시 비가 소강상태입니다. 너무나 긴 장마에 수고 많으세요. 오늘은 마냥좋은글에서 벗님들을 위해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읽으면 좋은 시를 준비했습니다. ♣ 삶이 버거울 때는..., 뒤를 돌아보는 지혜를 가지세요. 두려움이 앞서 망설였던 지난 시간을 생각해 보세요. 자신을 믿었잖아요, 그래서 여기까지 왔고 . . .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먼저 한걸음 나아가 보는 거에요. 무엇이 앞에 있는지 모르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에요. 중요한 것은 발을 내딛는 그 순간이 자신을 믿는 그 순간에 이미 두려움은 사라진다는 거잖아요. ♣ 힘들 때는.. 하늘을 보세요. 같은 하늘아래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세요. 어떤 오해 속에서도 따뜻하게 믿으며 바라봐 줄거에요. 오해가 사실이라도 그럴수 밖에 없었을 상황을 이해해 줄거에요.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는 그 짐을 하늘에 날려 보세요. 분명히 받아줄거에요. 항상 그래왔듯이 말없이 지켜봐 줄 거예요. 우리 서로 믿을수 있잖아요. ♣ 슬플 때는.. 비를 맞으며 걸어보세요. 어깨 위에 내리는 빗방울처럼 모두 씻어버리세요. 하늘도 울어주잖아요. 함께 잊어버리는 거에요. 젖은 몸을 말리며 다시 웃을수 있을거에요. ♣ 외롭다 느껴질 때.. 저녁노을을 바라보아요. 아쉬움을 남기며 가장 화려하게 지는 저 태양처럼, 아쉽지만 모두 버리는 거에요. 우리 그럴수 있잖아요. ♣ 기쁠 때는.. 사람들의 행복을 조금씩 나누어 가졌다 생각이 되면 그냥 웃어주세요. 나를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맑은 웃음으로 모두에게 웃음이 묻어날 수 있도록 그냥 웃는 거예요. 세상의 중심은 자신이잖아요. 소중한 자신을 위해 누구보다 기쁜 마음으로 행복한 표정으로 웃어버려요. 그 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잖아요. - <가슴에 남는 좋은 글>中 - 많이 힘드시죠... 오늘의 시 읽으시고 힘내세요. 조만간에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다가 올 것입니다. 먀냥좋은글은 늘 벗님들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소원합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저녁 되세요. 마냥좋은글.... 하루에 크게 웃고 싶을 때 하루 한가지 최신 유머 스트레스 확 날리는 짧은 웃긴 영상 세상의 모든 유머 https://bit.ly/3gAaxhA << 오늘의 추천 마냥 좋은글 >> 시간 지나면 반드시 후회되는 35가지 https://bit.ly/3hPt5LR 면역력을 높일 수 있는 간단한 방법 11가지 https://bit.ly/3hPt5LR
처음으로 조선 땅을 밟은 미국인
동해에 고래가 많이 잡힌다는 소문을 듣고 포경을 하러 온 미국 선원들이었음. 조선 기록 다음에 미국인들 증언도 있어 1855년 [철종 6년] 7월 2일 - 철종 어진 강원도 통천군 임도면 남애면 존위(尊位) 김철이, 후망감관(候望感官) 이완백 등이 보고했다. 술시[저녁 5-7시] 경에 이양선 작은 배 한 척이 풍랑에 떠밀려 거의 모두 파괴 되었는데 이양인 4명이 겨우 죽음을 면하고 기어서 육지에 올라 왔으므로 동네에서 잠시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고를 받은 현감이 남애진(현재의 북한 지역, 강원도)에 달려가 먼저 김철이 등을 불러 당초에 상륙한 곡절을 상세히 물었더니, 그들이 말하기를 근래에 장마가 져서 비가 오지 않은 날이 없고 풍랑이 크게 일어 해안 주민이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고 있는데  본진 앞바다에 갑자기 작은 배 한척과 사람들이 함께 표류하다가  배는 돌에 부딪혀 파쇄 되고 사람은 간신히 잠수하여 육지로 올라온 자가 4명이었다고 하였다. 이는 바다를 지나가던 상선이 침몰한 것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서 보니 그들은 곧 이국인이어서 더욱 놀랍고 괴이하여 문답을 해보려고 하였더니 언어가 불통하고 또 필담(글로 대화)을 해보자 했으나 문자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머리를 숙이고 울면서 구조를 바라는 모양을 나타내는 것 같아서 그들 4명을 일제히 불러 이르게 하여 보니, 몸의 생긴 모양이 혹은 크고 혹은 작아 모두 우리나라 사람과 서로 닮았다. 그 중의 한 사람은 두발의 빛깔이 검고 길이가 세치 정도 였으며 얼굴 빛깔은 반홍 반백이었다. 수염은 짧고 콧마루는 높고 눈동자는 푸른색이었다. 오른쪽 팔뚝 위에 밧줄을 풀어놓은 것 같은 모양의 문신을 하고 있었다. 상의는 속에는 흰무늬의 비단 저고리를, 밖에는 녹색 옷을 입었고 하의는 검은 무늬의 바지를 입고 있었다. 머리에는 검은 모자를 쓰고 발에는 검은 가죽신을 신고 있었다. 한 사람은 위에서 말한 사람과 비슷했으나 수염이 없었다. 모두 의복에는 단추를 달아 풀고 끼우게 하고 있었다. 처음에 말로 심문하였더니 모두 알아들을 수가 없는 말을 하였고, 다시 한자와 한글을 써서 보였더니 역시 서로 통하지 않았다. 다만 손, 발, 입 및 눈을 놀려 형용하였는데 바닷가에 있는 대선[大船]을 가리키면서 세 손가락을 우뚝 세워 세 돛 범선의 형태를 나타내고 입을 오무려 숨을 내 뿜어 바람이 전복한 모양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모래위에 엎드려 눈을 감고 사람이 죽은 시늉을 하고 땅을 파고 옷을 묻고 울면서 눈물을 흘렸는데 이는 틀림없이 동료가 익사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남방을 가리키며 발걸음을 옮겼는데 그것은 고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건져낸 파선의 집물[什物]은 일일이 조사했는데 판목은 산산조각으로 파쇄 되었다. 소지품은 지남철 한 개, 쇠도끼 한 개, 한글도 범자(산스크리트어)도 아닌 글이 당지(唐紙)에 책자 5권 및 의복 등물이 있었는데, 모두 숫자를 맞추어 조사해 보고 봉하였다. 이 강원 감사는 장계에서 이와같은 내용을 밝힌 뒤에 역관을 파견하여 심문하고 배를 만들어 줘 이들에게 다시 바닷길로 귀향시키는 문제를 조정에 품의하였다. 그러나 조정은 이들을 이양인들이 많다는 북경을 통하여귀향시키기로 하였다. - 19세기 선박의 모습 조선인들은 몰랐겠지만 이들은 사실 난파 선원은 아니었고,  - 도망에 사용된 작은 보트가 난파된 건 맞긴 함 미국의 최대 포경 기지인 '뉴 배드포드 항' 소속 포경선 '투 브라더스 호'에서 도망친 선원들이었음. - 미국의 기록에서 확인 가능  당시 선원들의 삶은 너무 고달파서 견디지 못한 선원들이 도망친 것  <도망친 선원들의 명단> 멜빌 켈시 23세 토마스 맥과이어 21세 데이비드 번스 20세 에드와드 브레이리 18세 - 19세기 미국 선원들의 모습 아래는 당시 미국 선원들이 직접 적은 글이야. (도망 선원 중 제일 연장자, '켈시'의 증언) 우리가 '투 브라더즈 호'를 타고 1854년 6월 13일 미국 '뉴 베드포드 항구'를 떠나 북태평양에서 일년간 조업을 하다가 1855년 6월 조선해역으로 이동했다. 우리 배가 조선 연안에 접근했을 때 위도 40도선에서 다른 3명과 함께 탈출했다. 우리가 30일간 머무른 마을에서 원주민들(조선인)은 우리의 짐을 꾸리고 우리를 말에 태워  우리와 함께 국경으로 향했다. 거기서 우리는 청나라 관리들에게 인도 되었고 우리는 수레를 타고 북경으로 갔다. 북경에는 약 20일간 머물렀다. 러시아 외교관들(정교회 선교사들)이 우리를 찾아와서 보고  우리의 처지를 청의 황제에게 잘 설명해주어서 귀국 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는 51일전에 북경을 떠났다. 러시아인들이 우리들에게 말하기를,  황제가 우리들에게 상해로 가는 여비로 쓰라고 은화를 하사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은화를 우리는 한 푼도 보지 못했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거의 굶어 죽을 뻔했다. 먹을 것을 제대로 주지도 않아서 우리는 북경까지 오면서도 청의 호송 관리들과 싸움질을 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물을 원했으나 그들이 본체만체 했기 때문이다. 중과부적이던 우리는 그들에게 호되게 두들겨 맞았다. 우리 네 명은 타던 배에서 선장과 항해사들에게 내내 학대를 받다가 참을 수가 없어서 탈출했다. 생필품은 턱없이 부족했고 먹을 것도 제대로 얻어먹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벌로서 선체에 페인트 칠하는 고된 일을 자주해야 했다. 걸핏하면 선장의 구타를 당해야 했다. 우리가 불평을 하면 적게나마 주었던 음식물조차 빼앗아 가져가 버리고 조금도 주지 않았다. (선원 '맥과이어'의 증언) 1855 년 6월26일 부로튼 만 맞은 편의 타타르(조선) 연안에서 우리 네 사람은 본선의 보트 1척을 탈취하여 탈출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남쪽으로 향하여 갔는데 7월1일 조선연안에서 상륙할 때, 우리의 보트가 부서졌다. 해안에는 원주민들(조선인)이 있었으며 그들은 우리를 잘 대우했고 의복과 음식을 후하게 주었다. (선원 '번스'의 증언) 우리는 위도 약 40도 동해 조선 해안 근처에서 6월26일 밤 12시에 포경선 투 브라더즈를 떠났다. 우리는 배에서 보트 한 척을 훔쳐 타고 6일 동안 남쪽으로 갔다. 그때 광풍(狂風)이 불어서 그날 밤 우리는 육지에서 떨어진 곳에 머물렀다. 다음날 아침 상륙했는데 상륙 도중에 보트가 부서졌다. 우리를 발견한 원주민들은 우리를 잘 보살펴 주었다.. 조선인들은 우리를 인간답게 대우하였다. 하멜 같은 경우는 사실 운이 무척 나쁜 케이스 였고 당시 조선은 청에 대한 전쟁을 준비 중이었기에, 이들을 중국으로 놓아줄 수 없었음. - 이들이 조선이 전쟁 준비 중이라는 것을 발설할 것을 걱정했기 때문.  하지만 본래 조선은 표류자는 후하게 대접해서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전통이었음 (柔遠之義 : 멀리서 온 손님을 잘 대접하다) 조선은 이후(10년 뒤, 1865년)에 표류한 미국인들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줌  출처 : 쭉빵카페 모야^^ 조선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오,, 아휴 우리 조상님들 따뜻한 것 좀 보소~~~ 저 외국인들 인생은 엄청 파란만장하네ㅇㅇ 나였음 죽는 그 날까지 내가 말여... 그 시절 배에서 탈출해서 동양의 작은 나라에.... 구구절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선 관리가 사표 내는 흔한 방식
영조 20년 2월 27일 을해 2번째 기사 황해 수사(黃海水使) 박문수(朴文秀)가 아뢰기를, "당선(唐船)이... ~ 이하생략 ~ 비선 20척을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만 본영(本營)의 재력으로는 실로 착수하기가 어렵습니다. 감영의 유고전(留庫錢)과 병영의 별비전(別備錢) 각 2백 민(緡), 상정미(詳定米) 50곡(斛)을 특별히 획급해 주도록 허락하면 제때에 배를 만들어 쓸 수 있겠습니다." 하였다. 좌의정 송인명이 그 말을 따를 것을 청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은 간과(干戈)가 극렬한 가운데에서도 능히 전선(戰般)을 만들었었는데 옹진(瓮津)이 아무리 피폐되었다고 해도 돈 4백 냥을 마련하지 못하여 이런 청을 한단 말인가? 수신(帥臣)은 추고하고 스스로 마련하여 배를 만들게 하라." 하였다. 형조 참판 이주진(李周鎭)이 말하기를, "황해 수사가 새로 부임했기 때문에 이런 요청이 있는 것입니다만 1년에 거두어 들이는 어리(漁利)가 4,5천 냥에 가까워서 그 재력이 호곤(湖閫)에 견줄 바가 아닙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임금에게 어떻게 영곤(營閫)에 있는 물력(物力)의 풍박(豐薄)에 대해 비교하여 진달할 수 있는가?" 하고, 이주진을 추고하라고 명하였다. ----------------------------------- 요약 박문수: 해적때문에 군선좀 만들어야 하는데 예산이 부족함 영조: 이순신은 알아서 했는데 넌 왜 못해? 이주진(형조참판): 박문수가 이번에 새로 부임해서 그래요. 그 동네가 좀 가난함 영조: 너 이 새끼 건방져 ------------------------------------ 6 년뒤 영조 26년 7월 3일 계묘 3번째기사 호조 판서 박문수(朴文秀)가 상서 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지금 양역(良役)의 폐단은 하늘에 사무쳤으니, 어찌 소소한 경장(更張)과 추이(推移)로 구제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생략~ 하나의 통영인데도 원균(元均)이 장수가 되니, 군대 전체가 패망하고, 이순신(李舜臣)이 장수가 되니 가는 곳마다 겨룰 만한 상대가 없었습니다. 통영도 이러한데 소소한 진보는 말할 것이나 있겠습니까? 하물며 이순신 당시에도 이렇듯 허다한 진보가 있어서 힘이 되어 주었습니까? 이제는 그 중 긴요치 않은 진보 4, 50곳을 혁파하고 가장 요해처에 대진(大鎭)을 두어 방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습니다. ~생략~ 용병을 도태한다는 것은 무엇을 이름이겠습니까? 국고를 탕갈시킴은 쓸데없는 군병보다 더함이 없습니다. 지금 서울에 있는 군문으로 말하더라도 군영의 이름이 너무 많고 쓸데없는 비용도 심히 많아 식자의 깊은 걱정거리가 되어 왔습니다. 금위영의 설치는 다른 영문보다 가장 늦어서 전후로 여러 신하들이 혁파를 청한 것만도 한두 번에 걸쳐 그친 것이 아니므로 공의를 알 수 있겠습니다. 지금 양역에 폐가 생겨 장차 나라가 망하게 되는 데에 이르게 될 판국이니, 군문을 그대로 두고 나라를 병들게 하는 것과 군문을 혁파하고 나라를 이롭게 하는 것과는 어느 쪽이 낫겠습니까? ------------------------------------ 요약 박문수: 이순신이 쩌는겁니다. 예산부족이 제 잘못은 아니라니까요. 박문수는 저 상소와 함께 사표도 같이 제출했다. 영조는 당장 튀어 오라고 했으나 등청하지 않았다고함. 출처) 이 짤이 생각나는구려. '죄송해요. 저는 토니스타크가 아닙니다.' 참. 이야기 속의 박문수는 그대들이 아시는 그 어사 박문수가 맞다고 하오.
(ft. 나는 내 삶의 가해자입니다)
첫번째 화살 VS 두번째 화살 (ft. 나는 내 삶의 가해자입니다) 29살때 회사를 그만두고 이 일을 했다. 벌써 13년이 되어간다. 내 직업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작가...강사....유튜버...상담사 최면사...명상가... 마음공부가 하고 싶었고 무의식을 알고 싶었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래도 가장 많이 했던 일은 누군가의 아픈 사연을 듣고 상담하고 가능하다면 치유하는 일이다. 누군가의 자서전을 읽으면 많은 세상을 경험한다. 나는 책보다 더 리얼한 한 사람의 삶의 스토리를 매일 듣는다. 물론 해피엔딩은 하나도 없다. 하나같이 돌덩이처럼 무겁고 두 다리가 잘려나간듯한 울부짖음이다. 배우자의 바람, 이혼, 싸움, 폭력, 집착... 시어머니의 히스테리.. 친척의 괴롭힘 학교 왕따, 성추행, 성폭행, 연인과의 이별... 직장생활 스트레스, 돈문제, 인간문제... 그래서 삶이 우울해지고 마음이 불안해지고 저녁에 잠이 안오고 숨쉬기가 어렵고 죽고 싶어한다. 이렇게 힘들게 살기를 원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면 온통 후회로 가득찰 것이다. 하나같이 괴로워한다. 지날날의 상처를 곱씹는다. 과거로 돌아가 복수하고 싶어한다. 자신을 미워한다.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미래의 삶마저 체념해 버린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게 가장 화나고 슬프고 억울할 것이다. 내가 나쁜짓을 해서 벌을 받는다면 감내하겠지만 그 가해자가 내가 믿었던 부모, 친구, 애인, 배우자라면 그 상처는 이루말할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아쉬워하며 현재 눈물을 흘리며 살아갈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다. 나는 이를 '첫번째 화살'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전혀 통제할수 없는 상황이다. 때론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그러한 일들이 있다. 가족을 위해 헌신했는데 남편이 바람을 폈다. 약하다는 이유로 친구들의 장난감이 되었다. 성추행, 성폭행을 당하면 영혼이 짓밟힌다. 열심히 일했는데 사업이 망해버렸다. 친구에게 보증을 서서 거지가 되었다. 이유없는 모함, 배신, 뒤통수를 맞았다. 평생 꾸었던 꿈을 물거품이 되었다. 음주차량에 의해 교통사고를 당했다. 전혀 예상할수도 없는 상황속에서 우리는 한순간의 지옥을 경험해 버린다. 다시 말하지만 이를 막을수는 없다. 그냥 하늘에서 우박이 떨어지는데 재수 없게(?) 내가 그 자리에 지나간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보이지 않는 필연성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첫번째 화살'이라 한다. 무조건 맞을수밖에 없다는 소리이다. 당신이 잘했던 못했던 그렇게 나에게 고통이 부여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두번째 화살'이다. 첫번째는 외부의 누군가(사람, 환경, 업보)에 의해서 발생하지만 두번째 화살은 바로 내가 나에게 쏜 화살이다. 예를 들면) 1. 남편의 바람을 알고나서 우울증/정신분열이 일어나고 남편에게 끔찍한 복수를 한다. 2. 왕따 이후로 자신은 죽어야 한다며 매일 자해를 하고 훌륭한 선생님이 되고자했던 꿈을 버려 버린다. 3. 성추행, 성폭행을 당한후 살 가치가 없다면서 죄인처럼 숨어 다니고 피해 다닌다. 4. 사업이 망할때쯤 사채까지 끌어 쓰고 급기야 알콜중독자가 되어버렸다. 5. 시험에 떨어진 이후로 자신은 쓸모 없는 인간이라며 정신줄을 놓아 버린다. 6. 믿었던 사람의 배신으로 인해서 마음의 문을 닫고 세상을 극도로 저주해 버린다.. 우리는 이런식으로 '두번째 화살'을 스스로의 심장 한가운데 그대로 박아버린다. 가차 없이, 잔인하리만큼.. 내가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정작 피해자인 나에게 가장 큰 벌을 주는 어이없는 잘못된 판결을 내려버린다. 이는 거의 사형선고에 가깝다. ㅠ 그냥 나에게 죽으라는 소리이기도 하다. 왜 그래야 하는가? '첫번째 화살'을 맞았을때 당신은 피해자였다. 그런데 '두번째 화살'을 스스로 쏘았을때 당신은 한순간에 가해자가 되어버렸다. 당신의 죄목은 자기학대범이다. 첫번째 화살을 맞았을때 당신은 누구보다 위로받고 치유받아야 할 상처받은 영혼이다. 화살을 맞았던 괴로움과 분노를 잠재우고 나를 따뜻하게 감싸안아줬어야 하는데 엉뚱하게 분노를 나에게 쏘아 버린 것이다. 그때의 고통이 당장은 죽도록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그정도까지는 아닐지는 모른다. 나는 종교는 없지만 만약 신이 계신다면 인간에게 죽을 만큼의 고통은 주지만 죽게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힘든 일을 겪었을지라도 다시 일어날 최소한의 에너지는 남아있다. 그 남은 생명의 에너지를 잡고 병든 어린아이달래듯 일어서야 하는데 우리는 내가 바보같다면서 자신의 심장에 화살을 꽂는데 남은 에너지를 써버리곤 한다. 왕따/성추행의 경험은 영혼이 사라져버리는 극도의 고통이다. 그렇다고 내가 죽거나 없어진것도 아니고 내가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왜 스스로를 어두운 지하감옥에 가두어서 벌을 줘야 하는가? 그럴수록 더 밝은 빛으로 자신을 초대해야 하지 않을까? 때론 2차 가해자가 더 무섭기도 하다. 네가 맞을짓을 하니까 왕따당한거지 어떻게 행동을 했기에 성추행을 당한거야? 누군가가 이유없이 나에게 고통을 줬다면 이는 결코 참아서는 안된다. 혼꾸녕을 내줘야 한다. 또한 참고 넘어가는 것도 내가 나에게 '두번째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첫번째 화살'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진다. 그렇게 서슬퍼런 칼날도 시간이 지나면 녹이슬고 부러지고 부셔지고 없어진다. 그런데 '두번째 화살'은 내가 뽑지 않는한 죽을때까지 죄값을 치뤄야 한다. 당신은 여전히 '첫번째 화살'때문에 괴로워하며 현재를 잃어버렸을지 모른다. 그런데 정작 내 삶을 망가뜨린 것은 아니러니하게도 바로 '두번째 화살'이다. 왜냐하면 이미 '첫번째 화살'의 유통기한은 끝나버렸다. 진짜 고통은 '두번째 화살'이며 당신은 오늘도 '첫번째 화살'을 떠올리며 스스로 '두번째 화살'을 그대 깊은 가슴에 박고 있지 않는가? 이제 '두번째 화살'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첫번째 화살'을 정성스럽게 뽑아줘야 한다. " 이제 끝났어 " " 너의 잘못이 아니야 " " 그냥 그렇게 된거야 " " 우리 이제 나를 위해 놓아버리자 " " 다시 천천히 걸어가보자 " " 이제 지옥과 같은 감옥에서 나가자 " " 내가 너무 늦게와서 미안해 " " 남은 삶은 너를 더 많이 아껴줄께 " " 이젠 내가 지켜줄께 " " 넌 혼자가 아니야, 외로워 하지마 " - 김영국 행복명상센터 -
♣8월 8일 여름! '황금복(福)나무' 배달왔어요♣
2020년 8월 8일입니다. 8은 행운과 부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오늘 마냥좋은글에서는 행복한 여름 '황금복(福)나무' 배달왔어요^^ 코로나19과 긴 장마와 폭염, 폭우 3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힘을 드리고 싶습니다. 힘내시라고 '황금 복(福)나무'를 가져왔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벗님들 항상 건강 잘 관리하세요. 2020년 여름을 잘 이겨내시고 건강과 사랑이 가득하시는 계절 되세요. 가정에는 만복(萬福)의 축복이 흐르고 기쁨의 행복이 찾아오시기를 온 마음을 다 바쳐 축복을 기원합니다. ♣ 올 여름에는 만복(萬福)의 축복이 가득하소서! 가난한 사람에게 물으면 돈 많은 것이 복이라 하고! 돈 많은 사람에게 물으면 건강한 것이 복이라 하고! 건강한 사람에게 물으면 화목한 것이 복이라 하고! 화목한 사람에게 물으면 자식 있는 것이 복이라 하고! 자식 있는 사람에게 물으면 무자식이 복이라 합니다. 결국 복이란? 남에게는 있는데 나에게는 없는 것을 얻게 되는 것을 복이라고 합니다. 항상 남에게 있는 것 보다 나에게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면 어떨까요? 그러면 행복과 행운이 저절로 찾아오는 것 같아요.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천국이 됩니다. 오늘도 감사하며 사랑하며 서로 서로 행복을 나누며 살아요. 마냥좋은날 되세요. 아름답고 행복한 날 되세요. 감사합니다. 마냥좋은글... 하루에 크게 웃고 싶을 때 하루 한가지 최신 유머 스트레스 확 날리는 짧은 웃긴 영상 세상의 모든 유머 https://bit.ly/3gAaxhA << 오늘의 추천 마냥 좋은글 >> '암(癌)'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적 소식! https://bit.ly/3hPt5LR 매일 마늘 한쪽씩 먹으면 일어나는 기적같은 변화 6가지 https://bit.ly/3hPt5LR 보약보다 좋은 누룽지의 효능 3가지 https://bit.ly/3hPt5LR 매일 커피를 마시면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 7가지 https://bit.ly/3hPt5LR 아침 공복에 먹으면 보약보다 '좋은음식' 몸에 독 '나쁜음식' https://bit.ly/3hPt5LR 몸이 죽어가는 위험 신호 20가지 https://bit.ly/3hPt5LR 얼려 먹으면 몸에 더 좋은 의외의 음식 5가지 https://bit.ly/3hPt5LR 면역력을 높일 수 있는 간단한 방법 11가지 https://bit.ly/3hPt5LR 간기능 이상 신호 18가지 증상 https://bit.ly/3hPt5LR 눈이 건강해지는 의외의 습관 10가지 https://bit.ly/3hPt5LR 쉽게 간과하면 큰 코 다치는 건강 적신호 8가지 https://bit.ly/3hPt5LR 이것 즐겨 먹으면 장수하는 7가지 이유 https://bit.ly/3hPt5LR 뇌건강을 강화하는 확실한 방법 50가지 https://bit.ly/3hPt5LR #마냥좋은글 #건강정보 #건강상식 #건강관리 #건강음식 #건강식품 #건강유의 #건강식사
♣꼭 삶에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
전국적으로 비가 많이오네요. 수재민들이 아픔을 느끼며... 빨리 비가 그치고 수해가 복귀될 수 있도록 기원합니다. 오늘 마냥좋은글에서는 살아가면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에 대해서 준비했습니다. 2,000 년전 화산재에 덮였던 폼페이는 원래 5만 여명이 살았었다 비세비우스 산이 대 폭발이 있기 전 화산 재가 조금씩 뿜어져 나오는 며칠 동안 노예와 가난한 시민들은 서둘러 피난을 떠났다. 결국 파묻힌 2,000 여 명은 귀족들과 돈 많은 상인들 이었다. 돈과 권력, 명예로 배 부른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자기의 저택을 지키려다가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태풍에 뿌리가 뽑히는 것은 큰 나무이지 잡초가 아니다. 자신이 일등이라고 생각한다면 먼저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지구 별에 놀러온 여행객들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곳에서 소풍을 끝내는 날 하늘로 돌아가야 한다. 여행이 즐거우려면 세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첫째,짐이 가벼워야 한다. 둘째, 동행자가 좋아야 한다. 셋째, 돌아 갈 집이 있어야 한다. 유황불 비를 피해 도망가야 하는데 롯의 아내는 소돔 성에서 누리던 물질 문명을 못잊어 뒤를 돌아다 보았고, 그 결과 소금 기둥으로 변해 지금도 그 자리에 서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여기 사는 동안 잠시 빌려 쓰는 것이다. 여행 간 호텔에서의 치약 같은 것이다. 우리가 죽을 줄 알아야 올바로 살 수 있다. 죽음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 세 가지 있는데... 1. 사람은 분명히 죽는다. 2. 나 혼자서 죽는다. 3. 아무것도 갖고 갈 수 없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모르는 것이 세가지 있는데... 1. 언제 죽을지 모른다. 2.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 3.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그래서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낳는 방법은 거의 비슷하지만 그러나 죽는 방법은 천차 만별하다. 그래서 인간의 평가는 태어나는 것보다 죽는 것으로 결정된다. 안 중근 의사는 30 세에, 윤 봉길 의사는 25 세에, 유 관순 열사는 18 세에 순국했다. 그렇지만 누가 그들의 젊은 죽음을 가벼이 볼 수 있을까 ? 그들의 죽음은 모두 거룩한 죽음이다. 비가 계속내리고 있습니다. 부디 비 피해 없도록 조심하세요.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수재민의 수해 복귀를 하루 빨리 이루어지기를 소원합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 되세요. 마냥좋은글... 하루에 크게 웃고 싶을 때 하루 한가지 최신 유머 스트레스 확 날리는 짧은 웃긴 영상 세상의 모든 유머 https://bit.ly/3gAaxhA << 오늘의 추천 마냥 좋은글 >> 시간 지나면 반드시 후회되는 35가지 https://bit.ly/3hPt5LR 면역력을 높일 수 있는 간단한 방법 11가지 https://bit.ly/3hPt5LR
펌) 처음 나온 비행기, 처음 나온 폭격
인간 ㅅ끼들은 뭘 발명했다하면 일단 그걸로 누굴 조질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못된 버릇이 있는데 비행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1차대전은 비행기가 처음으로 도입된 전쟁이기도해서 이러저러 기묘한 실험무기들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이것도 그 기묘한 시도 중의 하나 1. 상자에 대못을 담는다 2. 비행기를 타고 머리 위로 날아간다 3. 붓는다 끼에에엑 이것이 비행기가 사상 최초로 전투에 투입되었던 1차머전 당시 바게트들이 쓰던 최초의 대인폭격방식 '플례세트'다 플례세트 폭격은 걍 육안이랑 감으로 뿌리는 방식이라 존나 원시적이고 부정확했지만 비행기가 처음 투입되던 시절이다. 하늘에서 강철비가 쏟아진다는 압박감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무기가 되어주었다 이런 경우엔 강철비가 어디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오히려 플러스 요소가 되어준다 정확도랑 별개로 높은 고공에서 떨어뜨리는 존나 큰 대못의 파괴력은 절대 무시할게 못됐는데 두꺼운 원목을 이렇게 관통해버릴 정도다 여기 두들겨 맞은 불쌍한 땅개들이 남긴 기록 중에는 정수리에 떨어진 플례세트가 헬멧을 관통하고 몸을 일직선으로 고속도로를 낸 다음 똥구멍으로 빠져나왔다는 믿지 못할 기록도 있을 정도다 저런 쯧쯧 (출처) ㄷㄷㄷ 사실 엄청 많은 발명들이 전쟁때문에 나온 것만 봐도 사람의 창의성은 누군가를 조지는 데서 나오는 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네요 아니 그래도 이건 너무 잔인한 거 아닙니까? 작성자 말마따나 저런 쯧쯧
나를 사랑하는법-자애명상을 해보자
나를 사랑하는법-자애명상을 해보자 자애심은 충만한 영성생활을 가꿀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다. 사랑의 마음을 바탕에 깔면 우리가 시도하는 모든 행동,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대상이 더욱 쉽게 열리고 유연해진다. 자애심은 여러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생겨날수 있지만, 노력을 통해서도 길러낼 수도 있다. 다음에 소개하는 명상법은 2500년의 역사를 가진 수행법이다. 처음 시작할때 가장 좋은 방법은 매일 한 두번 15분이나 20분 정도 아래 경구를 반복적으로 읆조리는 것이다. 일종의 자기암시 유도문을 낭독하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이 명상법이 기계적이고 어색하게 느껴지거나 심지어 짜증과 분노 같은 정반대의 감정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미워 죽겠는데 어떻게 나를 사랑하라는 건가요? 할때마다 안좋은 기억만 더 올라오고 화가 나는데 계속 해야 하나요? 이렇게 한다고 해서 정말로 좋아지나요? 내 안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기 보다는 선의적인 의도를 갖고 그 또한 내가 사랑으로 품어주어야 할 대상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편한 자세로 정좌하라. 몸의 긴장을 풀고 마음을 가라앉히라. 최대한 정신을 평온하게 하고, 모든 생각과 잡념을 내려놓으라. 그런 뒤 자신을 향해 다음 경구를 가만히 읊조리기 시작한다. 나에게 자애심이 충만하기를 내가 정신적으로 평안하기를 내가 육체적으로 평화롭기를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출처 : 잭 콘필드의 마음의 숲을 거닐다 자애심은 대체적으로 타인에 대한 마음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것을 하기란 여간 쉽지가 않다. 그래서 먼저 나를 사랑하는법을 깨닫고 난뒤 그 대상을 주변으로 돌려도 된다. 이 명상은 어느 곳에서나 할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교통 정체가 심할때, 버스와 비행기 안에서, 병원 대기실에서, 그 외 온갖 상황들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쉽게 할수가 있다. 에밀쿠에는 "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 라는 구절을꾸준히 말하다보면 실제로 몸과 마음의 변화가 생긴다고 말한다. 자애 명상은 처음에는 자신에게 한다. 스스로에게 사랑의 감정이 싹트게 되면, 주변으로 돌리면 된다. 그 대상은 가족-> 친구-> 동료-> 우리나라-> 이 세상-> 우주 점차적으로 범위를 넓혀 감으로써 그 사랑을 무한대로 방사하면 된다. 이 수행법은 단순하지만 많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이끌어준다. 1. 대인관계가 좋아진다.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2. 집중력이 강해진다. 당신의 불안의 자리에 사랑이 채워지기 때문이다. 3. 욕심과 집착이 줄어든다. 마음이 비워진다. 4. 몸의 건강을 되찾는다. 내면의 충만함은 신체를 건강하게 만들게 된다. 5.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다툼, 시기,질투, 미움등이 끊어진다. 6. 삶 자체가 안정적으로 변한다. 여유로움으로 가득찬다. 일단 우리는 나를 먼저 사랑하는법을 실천해야 한다. 나무로 말하면 뿌리이다. 썩은 뿌리에서는 건강한 열매를 맺기 어렵기 때문이다. 위의 경구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면 필요에 따라 수정하는 것도 무방하다. 이 또한 긍정적인 자기최면이라 할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한두번 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연습해서 그 사랑과 감사의 느낌들을 내 가슴으로 불러 들이는 것이다. 오늘부터 매일 자애의 마음을 초대해요.^^* 2015.6.21. 쓴글 김영국 행복명상센터
조선시대의 성범죄 처벌
조선시대는 성범죄에 대해서 지금보다 관대했으리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요. 조선은 기본적으로 사대를 하는 나라였으므로 법에 관련해서는 명나라의 체계와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성폭행 사건의 경우 은 '대명률(大明律)' 범간(犯奸)조의 적용을 했다고 합니다. * 강간 미수 : 장 100대에 3천리 유형(유배) * 강간 : 교형(絞刑·교수형) * 근친 강간 : 목을 베는 참형 지배층에 더욱 엄격한 처신을 요구했다. - 예 : 중종 23년(1528) 벼슬아치인 도백손이 과부를 강간하자 중종이 "상인(常人, 상민)이 강간하는 것도 옳지 않은데, 더구나 사족(士族)이겠는가?"라며 엄벌을 지시 * 화간(和姦,부부가 아닌 남녀의 관계) : 남녀 모두 장 80대(장 80대는 남녀 모두에게 견디기 힘든 벌이었으므로, 여성은 강간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 경우 여성의 처음 의도가 판단 기준이었다고 합니다..) - 예1 : 세종 12년(1466) 정4품 호군 신통례가 관비 고음덕과 여러 차례 성관계를 가졌다고 합니다. 고음덕은 "처음에는 거절하여 소리 내어 울었다."는 이유로 무사하고 신통례만 처벌받은 것이 이런 경우이다. * 이 사건처럼 피해여성의 신분은 중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 예2 : 중종 26년(1531) 이팽령이 사노 봉원의 딸(순금)과 관계했다고 합니다. 봉원의 아우가 중매한데다 관련자가 모두 화간이라고 증언했지만, 순금이 "나는 여인이라 거역할 힘이 없어서 이틀 밤을 함께 잤다."고 답하는 바람에 강간으로 처벌받았다고 합니다. * 피해여성의 신분은 중요하지 않음, 정당방위 적극 인정합니다. : 세종 15년(1469) 좌명 1등공신 이숙번의 종 소비(小非)는 강간하려는 주인의 이마를 칼로 내리쳤으나 무죄 방면합니다. * 기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폭력이 없었어도 여성의 동의가 없었으면 강간으로처벌 * 피해 여성이 처벌을 원하는지 여부는형량의 참작 대상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 절도 도중 강간까지 한 경우는 참형 * 유아 강간은 예외 없이 교형이나 참형 성범죄에 관련된 몇몇 왕들의 일화 태종 “사노 잉읍급이 11살 어린아이를 강간했습니다.” 어느날 신하가 고하는 성범죄 소식에 태종은 신속한 판결을 내립니다. 잉응급을 교수형으로 사회에서 사라지게 합니다. 또다른 일화는 판사(현재의 차관급) 이자지 부부의 딸인 내은이란 딸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 부모 둘이 모두 사망해서 3년상을 행하려 하는데 이때 이집의 노비였던 실구지 형제와 그의 처남등 3명이 내은이를 집으로 끌고 가 손발을 묶고 성범죄를 저지릅니다. 태종은 당시 이 보고를 듣고 교수형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겨 그들 모두를 능지처참형으로 사회에서 사라지게 합니다. 세종 한 앳된 부인이 편복 차림으로 여종을 거느리고 여종 2명을 데리고 성균관 옆 냇가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곳에서 옷을 홀랑 벗고 목욕을 하고 있던 생원 최한경이 갑자기 뛰어나가 여인을 쓸어안았습니다. 부인이 완강히 저항합니다. 계집종이 “우리집 안주인이시다”라고 외칩니다. 최한경과 함께 목욕을 했던 동료 두 명이 여종들을 때려 쫒아냅니다. 세 명은 완력으로 여인을 눌러 옷을 벗기고 욕 보이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큰 일을 당할 뻔했던 여인은 사헌부에 최한경을 비롯한 유생들을 ‘강간미수죄’로 처벌해달라고 고소합니다. 조사가 시작되자 최한경은 "희롱한건 사실이지만 강간하려는 마음은 없었다.”고 변명하지만 세종은 적절한 선에서 처벌을 합니다. 바로 곤장 80대 형을 내립니다. 조선시대 성범죄에서는 교수형이나 참형같은 극형도 있었지만 부수적으로 이렇게 곤장형도 있었다고 합니다. 근데 곤장형이 너무 가벼운 처벌이 아니냐고 생각할수 있는데요. 곤장은 십자모양으로 된 형틀에 죄인을 엎드리게 묶어놓고 나졸이 서서 저런 몽둥이로 볼기짝을 내리는 형벌이었다고 합니다. 곤장은 듣기와는 다르게 몇대만 맞아도 엉덩이 살이 터져나가고 곤죽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그로 인한 평생 흉터 + 트라우마+ 신체불구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맞는 도중 죽는경우도 있고 다 맞고 회복중 장독이 올라 사망하기도 하는 무지막지한 형벌이었다고 합니다. 양반의 경우 성범죄로 처벌시에 사회적으로는 매장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성종 오늘날로 치면 군수를 지낸 전직 공무원 황우영이 이란 양반이 반가의 부인인 반씨의 집에 들어가서 강간하려다가 반씨의 어머니와 여종의 저항에 강간미수에 그칩니다. 당시 사헌부에서 이 사건을 거론하며 "죄질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라고 고합니다. 이 보고를 들은 성종은 화우영의 직첩을 거두고 영원히 등용하지 않고 3천리 밖으로 유배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최악의 변방인 회령의 관노(노비)로 강등시켜 쫓아냈다고 합니다. 또 요즘의 대통령 사면에 준하는 대사면령에서도 성범죄만큼은 제외시킬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입니다. 또다른 성범죄 사건으로 처삼촌의 조카딸을 강간한 최습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실수로 사면을 받아 풀려납니다. 이 사실을 들은 성종은 전가사변을 시켰다고 합니다. 전가사변이란 죄인의 처자식까지 전부 변방중에 변방으로 강제로 쫓겨나는 처벌이라고 합니다. 이런 예는 강력한 처벌을 받지만 경우나 신분에 따라 요즘처럼 관대한 처벌을 받는 경우도 당연히 있었다고 합니다. 왕족이라든지 상위1% 권력층일 경우 처벌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조의 경우에는 달랐습니다. 선조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시대 임금으로 가장 안 좋은 말을 많이 듣는 임금입니다만 성범죄의 경우 자기 친아들을 강간죄로 처벌합니다. 당시 선조는 “이보의 소행은 차마 형언할 수 없다. 여러차례 살인을 했고~오직 마음을 태우고 부끄러워 할 뿐이었다.~오늘 빈전의 곁 여막(무덤을 지키려고 옆에 지어놓은 초가)에서 제 어미의 배비(陪婢)를 겁간했으니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국가의 치욕과 내 마음의 침통함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자식을 둔 것은 곧 나의 죄로서 대신들을 볼 면목이 없다. 다만 내가 차마 직접 정죄(定罪)할 수 없으니, 유사로 하여금 법에 의해 처단하게 하라.” 신하들이 “골육 사이의 정이 있으니 화를 참으시라”고 상주했지만 선조 임금은 단호합니다. “상중에 백주대낮에 궁인(宮人)을 겁간한 자식을 용서할 수는 없다.”고 하며 아들 순화군을 유배형과 동시에 녹안에 처한다고 합니다. 유배형은 강간죄에 대한 처벌이었고 녹안은 거기에 낙인을 찍는 것이라고 합니다. 현대기준으로는 전과가 남는것이죠. 왕자신분으로 성범죄 전과가 남는다는것은 얼굴을 못들고다닐정도로 치욕적인 일이었다고 합니다. 아들이 죄를 짓자 아버지가 나서서 가중처벌을 해 처벌을 마무리합니다. 조선시대 성범죄 처벌은 기본이 곤장 80대~ 100대 상위층인 양반은 사회에서 완전매장 왕족이라 할지라도 낙인 ,참수, 능지처참, 교수형, 유배, 노비전락등 현대보다 훨씬 강력한 처벌을 보여줍니다. 성범죄에 관대한 우리 사회의 그릇된 인식은 조선이 아니라 일제 때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일제의 유산인 현재의 성범죄 인식을 조선시대인들의 엄격한 인식으로 되돌려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성범죄 처벌이 너무 관대하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 https://m.blog.naver.com/ghshffnfffn1/221961542988 조선시대만도 못한 성범죄 처벌 현황... 이게 나라냐... 성범죄자들한테 인권이라는게 존재하냐고 다른 나라는 성범죄, 특히 아동 관련 성범죄자는 인간 취급도 안 하던데 우리나란 대체 왜.... 에휴........
[2020 뉴스저작권지킴이] 8월 개인 미션 / #뉴스저작권 어떻게 지켜야 하나요? #뉴스콘텐츠 어떻게 사용해야 하나요?
안녕하세요! 뉴스저작권지킴이 5기, 여지입니다 :) 저희의 지난 7월 팀 미션 영상, 재밌게 시청하셨나요? 7월 팀 미션 및 개인 미션까지 마치니, 벌써 새로운 8월이 되었습니다! 이번 8월에는 팀 영상 공개에 앞서 알려드릴 내용은, 뉴스저작권을 지키면서, 뉴스콘텐츠를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제가 간단하고, 확실하게!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히힣) 우선! 뉴스저작권, 다들 이제 뉴스저작권의 개념에 대해서는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하는데요! 뉴스저작권 그러면 그 뉴스저작권을 지키는 방법에는 확실하게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정말 간단한 것 같지만, 이 간단한 사실들만 지키면 뉴스저작권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 캡처 공유 안돼요, 전문 복붙 안돼요!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그리고 출처없이 공유하는 행위는 모두 뉴스저작권에 위배되는 방법이란 점 꼭 기억해주셔야 해요! 그러면... 뉴스는 대체 어떻게 공유해야 하는 건가여??? 라는 의문이 드실 것 같은데요! 뉴스콘텐츠 그래서 들고 왔습니다! 뉴스콘텐츠를 활용하는 올바른 방법! 대학생, 직장인, 그리고 일반 국민으로 나눠 그 방법을 나눠봤어요 ㅎㅎ 우선 저와 같은 대학생분들! 과제 때문에 기사 내용을 과제에 인용하거나, 발표 대본에 인용하는 경우 많으실 거라 생각됩니다 (과제 그만 내주세요) 어... 어라 속마음이... ㅎㅎ 과제에 사용하는 경우 명확한 출처를 밝히고 만약 대본에 인용하게 된다면, 출처를 밝히는 건 기본! 또한 인용할 수 있는 분량의 범위까지 있었단 사실 !!! 또한 회사 내에서도 뉴스를 공유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위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캡처 공유 및 전문 복사가 아닌, 기사의 링크 또는 기사의 제목을 공유해야 합니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인 모든 저작물을 개인 sns에 업로드하는 건, 뉴스저작권을 명백히 침해한단 사실 !!! 다들 알고 계시죠 ??? - 이상 지금까지 뉴스저작권을 지키면서 뉴스콘텐츠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알아보았는데요! 다음에는 조금 더 질 높은 사용을 위해 뉴스콘텐츠를 유료로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그럼 다음 글에서 만나요 !!! . . . #2020뉴스저작권지킴이 #뉴스저작권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저작권지킴이5기 #뉴저지 #얼투참투 #8월미션 #8월 #미션 #대학생 #휴학생 #대외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