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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로댕 AUGUSTE RODIN

생애: Francois-Auguste-Rene Rodin, 1840년 11월 12일 출생(프랑스 파리), 1917년 11월 17일 사망(프랑스 뫼동)
예술양식: 인간 형상의 사실주의적 재창조, 종교적인 주제, 공공조각의 근대화,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주의적인 얼굴의 묘사
오귀스트 로댕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조각가 가운데 한 명이다. 그가 창조한 형상들은 생명력이 느껴지며 만지고 싶은 유혹마저들게 한다. 그는 점토, 석고, 대리석, 또는 청동에 최고의 솜씨로 생명력을 불어넣어 피부, 근육, 독특한 육체적 특징, 그리고 얼굴표정 등을 재창조해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로댕은 근시였고, 학습 능력이 떨어져서 놀림을 받기 일쑤였다. 또한 숫기가 없어 남들 앞에 선뜻 나서지도 못했다. 로댕은 열 살 때부터 열심히 드로잉을 하기 시작했고, 이내 점토로 모형을 제작했다. 로댕은 에콜 데 보자르의 입학시험에서 세 번이나 떨어질 정도로, 수년간이나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가 최초로 선보인 공공 미술품들은 다른 사람의 도안을 받아서, 장식적인 거리 조각을 만드는 노동 집약적인 공방에서 탄생했다.
1860년대에 로댕은 자신의 미술 작품에 대해 점점 더 심한 좌절감을 느꼈다. 감정적으로 쇠약해진 그는 수도원에서 요양하며 시간을 보냈고, 다시 건강을 회복하자 작업실을 빌려 모델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파리 살롱전에서 작품이 거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젠가는 자신의 작품이 인정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기에 흔들리지 않고 창작 활동을 계속해나갈 수 있었다.
제 자리로 돌아와서
1875년에 이탈리아를 방문한 로댕은 고전주의 양식의 미술품들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특히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작품에서 감명을 받고서, 그는 고전 미술을 자신의 작품에서 새롭게 창조해내기로 결심했다. 로댕의 작품은 인체의 묘사가 너무 정교해서 처음 전시되었을 때 모델을 보고 조각한 것이 아니라, 실제 사람의 몸을 본을 떠 만든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로댕의 초기 주요 작품인 <지옥문>(1880)은 파리 장식미술관의 출입문 제작을 의뢰받아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파리 장식미술관이 완공되지 못하여 로댕도 제작을 완수하지 않고 이 작품을 미완성인 채로 남겨 두었다. 로댕의 명성과 지위는 확고해졌고, 향후 20년간 그는 자신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인 <생각하는 사람>(1880), <칼레의 시민>(1884~1886), <입맞춤>(1901~1904) 등을 제작했다.

501 위대한 화가

작가 | 스티븐 파딩
출판 | 마로니에북스
발매 | 200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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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배만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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