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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베이더의 통곡 (feat.암유어퐈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어어어엉엉엉엉엉
내가 니 아빠라고어엉엉엉엉
(출처는 온갖 짤을 수집하는 저의 친구입니다ㅋㅋㅋ)
2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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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지만 빅뿜ㅋㅋ
앜ㅋㅋㅋㅋㅋㅋ 눈코입으로 다나와도 좋았을텐데
갖고싶다 ㅜ ㅜ
ㅋㅋㅋㅋㅋㅋ웃기다
진심 갖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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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탄은 여기서 https://www.vingle.net/posts/5922045 “저 H대 갑시다”, 헉 왠 학교, 이거 가서 무슨 괴상한 실험대상 되는거 야냐, 뭐 그런거 있잖아, 호모의 사고방식 고찰, 아님, 호모 심층분석 등등, 그래 “학교엔 왜가요” 했더니, “사무실에 놔두고 온 것이 있어” 하데. 그래, 이이가 교순가 아님, 서무실 직원인가 하는 머릴 굴리며, 그냥 따라 갔잖아, 뭐 학교서 무슨일 생길까 해서, 택시서 내려 교문을 지나 가는데 수위가 나오더니 “아이고 X선생님 이 야밤엔 학교엔 왠일” “아 사무실에 뭘좀 놓아두고 와서요”, 하구 총총총 그이와 걸어 들어간 곳은 그이의 연구실, 그이가 교수란 걸 알곤, 그냥 49점을 더 주었잖아, 양복 넥타이에 대학교수, 뭘 더 바라겠어, 바랄게 있다면, 그냥 그이 손잡고 웨딩 마치 울리고, 저 푸른 초원위에 집짓고, 사랑하는 우리님과 한 백년 사는거지 뭐. 연구실을 들러서 차를 한 잔 마시고 나와, 둘이 청진동 가서 해장국을 먹고 하는데 시간이 자정이 훨 넘었더라구. “집에 가셔야지” “아니 좀더 얘기좀 하다가” 그날 늦게 까지 둘이서 놀았지, 그리고 새벽녁 해어지면서, 우리 또 만나기로 했잖아, 난생 첨으로 내가 집 전화 번호를 날렸고, 그이도 그이 학교 사무실 전화 번홀 내게 주었고. 그이와 헤어진 시간이 거의 3시쯤 되었었나봐, 시간을 보니 집에 갔다 교회 갈려면 시간이 넘 촉박하데, 내가 주제꼴에 교회 일부예밸 한번 도 빼먹은 적이 없거든, 교회서 쫓아내기 전 까진. 교회 다녀와 낮잠을 마악 자는데, 전화가... “나 형인데” 하는 목소릴 들으니 그이더라구, 어휴 기뻐! 그래 전활 하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엄마 쳐다 보며 “엄마 고마워!” 했지. “저녁에 뭐하니, 밥먹을래 같이?” “예” “뭐 먹을까?” “형 나 생선회 먹구 싶은데” 그래 그날 명동 동서화랑서 만나 차를 마시구, 대만 대사관 앞에 있던 미락 가서 회도 먹고, 늦게까지 형이랑 졸라 놀았잖아. “나랑 사귀어 볼래? “저 한 번도 남자 사귀어 본적 없는데요” 그렇게 그이랑 나랑 사귀게 되었잖아. 그렇게 시작된 우린 일년여 동안을 사귀였구, 그 형과의 낭만으로 인해 난 엄말 협박해(대학 졸업도 앞두고 취업 문제도 있고 하는 식의 개수작으로) 내 방에 전용 전화선도 싸악 깔아 놓고, 미국에 있는 형에게 부탁해, 근사한 응답전화기도 하나 설치, 그땐 삐삐도 없었거든, 그러니 그이나 나나 서로 연락 할려면, 전화 밖에 없었으니까, 엄마가 혹시 청소라도 하시다 응답기 만지실까 응답기에 비밀번호도 달고. 우린 일주일에 작으면 두번, 많으면 세번을 만났고, 몇 달후엔 형이 날 집에 데리고 가 아주 친한 동생으로 소개해, 자연히 형네 집도 드나 들고 하는, 형을 만난 이후로 난 극장도, 공원도, 딱 끊고, 아주 정숙한 생활을 시작했잖아. 87년 여름 방학땐, 우린 우리 둘만의 신혼 여행으로, 일본, 대만 홍콩을 놀러 다녀 왔잖아, 정말이야, 그 땐 세상서 부러운게 없더라구. 난 엄마 한테 세상구경, 그 형은 어학 답사란 말도 안되는 핑곌대고. 난 정말 그형이 넘 좋았어, 따스하고, 작은것에 신경 잘쓰고, 내가 좋아 한다면 뭐라도 구해 올라구 노력하구. 또 만나면, 밥 먹고 헤어질때 까지 꼭 자기 가슴에 안고, 도란 도란 이런저런 얘기히며 “형이 정말 많이 사랑 하는거 알지” “으응 형 나두 형 많이 사랑해” 둘이서 신혼 여행이랍시라구, 해외 여행을 다녀온후, 나 취직 되었잖아. 복학 하구나서, 교수의 추천으로 모 신문사서 하는 대학 논문 경연 인가 하는데에다 글을 냈는데, 글쎄 그게 당선이 되고, 기쁜 마음에 상금을 받으러 갔는데, 거기 심사위원중 한명이 나한테, 올림픽 조직위원회 일해 볼 의향이 없냐고 하데, “아직 학생인데요” 했더니 “조직위서 일하면 학교는 한달에 한번만 가도 된다고” 하데. 서울시서 학교에 뭘 보낸데나 뭔갈 해서. “에잉 공부 하기도 싫은데, 일도 하고 돈도 벌고,학교도 안가고”, 그래서 그냥 일을 시작했잖아. 그렇게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엔 형이랑 열심히 데이트를 하는 아주 이상적인 게이 생활을 열심히 하고, 정말 세상에 남 부러울게 없는 그런 날들.... 형은 우리 사랑 변치 말자고, 내게 반지를 하나 주었구, 둘이 만나고 일년이 거의 다 되어갔나. 올림픽 개막식을 앞두고 정말 졸라 바빳어, 거의 맨날 사무실서 자구 먹구, 왠 일이 그리 많은지, 일에 치여 거의 죽어 가는데, 날이 가면 갈수록 형이 전화가 뜸하드라구. 내가 전화 하면, 조교가 어디 가셨는데요, 전화 달라구 메모 남겨 놓으면 전화두 안오고. 그래 내 생각엔 집에 무슨 일이 있나 하는 생각만 했지. 우리 사랑 변치 말자구 반지 준 남자가, 우리 사랑 변치 말자고 내가 준 혁띠 찬 남자가 바람을 피리라곤 생각을 못했지. 그래 무슨 일이 있긴 있는데 하는 생각만 있지, 일이 바빠 시간이 없으니, 어찌 해볼수가 없잖아. 형이랑 놀면서 여기저기 많이 다녔거든, 술집도 가끔가고, 여기저기 드라이브가 밥도 먹고. 형이 술집 가끔 갔는데, 자연스레 나도 거기 사장, 일하는 형들과도 알게 되고 했지뭐. 하룬 출장을 잠실로 갔다가, 사무실로 가는길에, 땡땡일 좀 쳐볼요량으로 신세계 백화점엘 갔잖아. 형이 뭐가 섭섭해서 연락이 없나 하는 아주 여린 맘으로 형에게 줄 선물이나 하나 사려고. 정말 이야, 첨 해본 사랑이라 깨진다는건 생각도 못했고, 그저 그냥 그형만을 사랑하면서, 일생을 이렇게 보내도 행복하다 하는 자세였거든 그땐. 그날 나 뭐샸나구? 논노 마르시아노서 양복 샀잖아, 내가 형 양복 사이즈를 잘 알고 있었거든, 그래 선물로 주면 바지 기장은 그냥 논노서 줄여 주니까. 아주 이쁜 감청색으로, 돈도 많이 못 버는데, 졸라 큰맘 먹고 신세곌 나오는데, 입구에서 형이랑 몇번 갔던 술집 사장을 만났잖아. “에이 서방 바꼈다구 단골 끊구 미워잉” 그소릴 듣는데 그을쎄, 아주 아주 큰 돌덩이가 뒷 머릴 그냥 때리는 것 같은거야. “무슨 말이야, 우리 아직 잘 지내는데” 그 소릴 듣더니 사장이, 무슨 낌새를 챘는지 날 바로 옆 다방으로 끌고 가더라구. “정말이나 니네 둘 아직 사귀니?” “응, 근데 형이 요즘 행동이 좀” “그놈이 결국 결국 어린애 가슴에 못을 박는구나” 띵, 띵, 띵 이 내 머릴 스치고 “뭔소리 나 반지도 받았느데” “그놈 한테 반지 받은 놈이 너 하나 뿐일줄 아니, 그놈이 돌린반지들 모아 팔면, 파싸롱 하난 채리지” 하는 소릴 하는데, 그냥 눈물만 졸라 나더라구. 믿고 싶지도 않구. 그냥 앉아서 눈물만 흘리구, 세상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는데, 내게 아무것도 안 보이는거야. 사장이 내가 넘 불쌍했는지, 내 손을 붙잡고 롯데백화점에 있는 섬마을에 가 초밥을 사주더라구. 내가 눈물만 흘리고 있으니까 “야, 세상에 남자가 그놈 하나니, 너두 게이 생활 좀 더함, 사랑하다 차이구 걷어차구 할꺼니까, 빨리 먹고 힘내” 하데. 근데 말루만 듣고는 정말 믿질 못하겠는거야. 동경서 둘이 우동 먹으며 얼굴에 묻은 후리가께 닦아주며 행복했구, 타이페이서 콩빙수 먹으며 서로 이빨에 낀 콩 껍질 빼주며 실실 웃고, 홍콩서 배타고 아경 보며, 둘이 손 꼭 잡고 “우리 내년에 또 오자” 했던 그형이 그형이.... “솔직히 나 내 눈으로 보기 전엔 믿을수 없다” 하며 내가 사장한테 사무실 전화랑 집 전활 번호 쥐여주고, 그 날을 사무실 안가고 그냥 졸라 울었잖아(물론 그 담날 사무실가서 졸라 혼났음). 그날 혼자 기차타고 춘천가 이디오피아에 앉아서 커피 한잔에, 담배 한갑 놓고, 한숨쉬고, 세상 태어나 첨 으로 가슴이 아픈 경험을 하고 있는 그런날 들을 보내는데, 가끔씩 형이 전화가 와 저녁을 먹자 해도 “형 나 오늘 넘 바빠” 일부러 피하구. 전활 끊구 또 울구, 또 울구. 하룬 밤에 집에서 벽에 머리 기대고, 둘이 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보며, 울고 있는데, 형이 전활 하데 “무슨일 있니?, 요즘 얼굴두 자주 못보구, 아직 형 사랑하지?” “으응 많이 사랑해” 그렇게 전활 끊구, 넘 속상해, 궁상과 음악을 들으며 있는데, 갑자기 머리를 스치는게 꼭 전활 어디 술집 같은데서 한 것 같은거야, 음악 소리두 들리구, 사람 소리두 배경으로 들리구, 혹시 하는 생각에 집을 나와 택시를 타고 갔잖아, 그 형이 자주 가던 그 술집에. (3부) 뜨윽 들어갔더니, 마담, 형들, 또 단골 형들이 주욱 둥그런 테이블 주위에 모여 앉아 있고, 그을쎄 그 형이, 구석 테이블에 아주 어린놈과 둘이 앉아 아주 다정히 맥주를 조지고 있더라구. 형은 날 보더니 아주 놀라며 “왠일이야 여긴 이밤에” “형은 여기 왠일” 하니까 머뭇 머뭇 “어 후배랑 술이나 한잔 할려구” 하더라구. 후배, 정말 밉고 못나 보이더라, 그 길로 반지를 뺐잖아 내 손가락서. “형 새 반지 사지 말구, 이 반지 줘 그리구 그 쪽두요, 이 반지 받았다 나중에 돌려 드려요, 이 형이, 이놈저놈 데리구 노느라 돈도 많이 없을거니까” 하구 반질 탁자에 던지구 나오는데, 형이 쫓아 나오며 “오해야, 내 말좀 듣고 가” “형 지금 무슨 소릴 해도 귀에 안들어와, 그냥 갈께” 그 담 날 부터 일만 넘 열심히 했지, 그냥 피곤하게 굴리고, 집에가 가슴 아플 시간도 없이 넘 피곤해 그냥 잠들고, 하는 날들, 그런데, 사건이 있고 며칠이 지난후 집에 와보니 소포가 와 있는거야. 반지도 들어 있고 편지도 있고. “넘 보고 싶다, 미안해 형이 가슴 아프게 한거, 왜 그랬는지 몰라, 용서해 준다면” 그러면서 몇월 몇일에 수유리 419 탑 근처에 있는 아카데미 하우스에 방을 잡고 기다릴테니, 꼭 오라는 말과 함께. 반질 보고, 편질 읽으니 맘이 확 무너 지는거야. 넘 기뻐서, 넘 따스해서. 거기다, 내가 서울서 제일 좋아 하는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날 기다려, 하는 생각에 맘이 설레데. 나 정말 아카데미 하우스 구름의 집서 밥 먹고 차 마시는 것 넘 좋아 했거든(아직도 서울에 있는지). 또 다른 쪽으론 한 번 바람난 인간은 바람기 재우기가 불가능하다는데 하는 생각으로 “나가지마 나가지마” 하고 또 다른 한쪽은 너 아직 그 사람 넘 사랑하잖아 “나가 나가”. 그날, 만나자고 한 날이 토요일 이였는데, 하루 종일 똥마려운 강아지 처럼 안절부절 못하다, 갔잖아. 그 형이 넘 좋아서, 그 형을 넘 사랑해서. 호텔가서 “바람둥이 형 만나러 왔는데요” 했더니 방번홀 가르쳐 주데. 방으로 걸어 가는데 방으로 걸어 가는데, 넘 많이 설레어, 거의 숨을 못 쉬겠더라구. 방 앞에 서서 똑똑 했더니, 방문이 열리는데, 형이, 내가 사랑하는 형이, 하얀 백양삼각빤스 하나만 달랑 입고 문을 열더라구. 나 그냥 쓰려 졌잖아, 그 형품에, 그형의 따스한 가슴에. 우린 다시 그렇게 시작 했구, 형은 내가 섭섭하지 않게 전화도 잘하구, 일이 있어 못 만날것 같으면 미리미리 연락주구, 난 다시 행복해 졌잖아. 세상에 부러울게 없더라구, 사랑을 다시 찾은 게이가 뭐가 더 필요해. 날 잡아 형 데리구 신세계가 바지도 줄여 주어야지 하면서. 하루는 형이 “오늘 학회가 있으니 못 만난다 우리 낼 보자” 하데 그래 일찍 집에가, 엄마랑 밥먹고 연속극 보고 있는데, 전화가 찌리링 오데. “여보세요” “형이다, 술집 형” “으응 웬일이야” “글쎄 지금 네 애인이 어떤 놈 이랑 시시덕거리는 걸 봤단다” 그냥 나가서 택실 탔잖아, 종로3가 까지 가는데, 손이 벌벌 떨리고, 마음은 벌렁벌렁. 손에 쥐여든 마르시아노 양복 가방위로 눈물이 또 뚝뚝 떨어지고. 파고다 학원 뒤쪽에 있던 술집 앞에 서서 있는데, 아무것도 안보이는거야. 사람이 지나가도, 차가 지나가도, 세상에 꼭 나 혼자인 기분. 한 삼십분 기다렸나. 그 형이, 내 사랑 형이, 어떤 놈이랑 어깰 마주하고 거의 키스를 하다시피 얼굴을 맞대고 술집 밖으로 걸어 나오는데. “세상에 사랑은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릴 뒤집고 들어 오더라구. “형 학회 잘했니” 하며 있는힘을 다해 귓방맹이를 한대 올려 쳤잖아. 양복을 집어 던지고 등을 돌렸는데, 잡지를 않더라구. 그렇게 미워 하는데도 난 맘 속으로 “한번 잡아주지, 한번만 더 미안 하다고 하지 그럼 다시 사랑할수 있는데”, 그런데 잡지 않더라구. 난 그 길로 파고다 극장에 갔잖아, 그때 까지만 해도, 파싸롱이 새벽 4시까지 했거든, 심야상영인가 뭔가 하면서. 극장에 앉아 있는데, 싸구려 극장 화면도 울고, 나도 울고. 그렇게 그렇게, 난 첫 서방을 여의었지. 죽는 날 까지 사랑하고 잡던 그형, 좋은 걸 보면 제일 먼저 생각 나던 그형... 그러던 어느날 일요일, 그날도 어김없이 성경이랑 찬송 챙겨, 교회에 갔다가 발걸음도 가벼이 파고다 공원으로 향했지, 지금은 탑골공원인가, 두근두근, 벌렁벌렁 하는 맘을 다스리면서, 그런데 어떤 외국인이 나한테 말을 붙이는 거야. 나 정말 그때만 해두, 양놈은 에이즈, 에이즈는 양놈 이란 아주 후진 생각이 머리속에 꽉 차있는 그런 순진한 게이였거든. 그래 이리저리 도망을 다니는데, 아니 이눔의 양키가 자꾸 쫓아 오면서 말도 걸구, 실실웃구, 웃는건 좋아서 웃는거고, 씨이발, 말은 뭔말을 하는지 모르겠더라구. 영어만 좀 하믄 “야 방세야 날 좀 그냥 놔둬” 했을텐데, 그냥 말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으로 여기저기 도망을 다니는데, 아아니 글씨 그이가 기냥 마악 따라오구, “Home”두 나오구, “go out”두 나오구 또 “come” 소리두 나오구 하는게, 혹시 “너 우리집 갈래?” 하는소리가 아닌가 싶드라구. 포기하지 않구 자꾸 끼작끼작 하는거야. 그래서 “Let’s go”를 했잖아. 그 한마디가, 그 “렛츠고” 한 마디가, 내 게이 인생을 화악 바꾸어 놓을 줄이야 증말 누가 알았겠어. 둘이 나와서, 그의 차를 타고 북악터널 근처 올림피아 호텔 뒷쪽에 있던 그이의 집엘 갔는데, 왠 남자 혼자 사는 집이 그리고 깨끗하고, 잘 정돈이 되어 있는지, 그이의 깔끔함이 눈에 사악 들어오데. 주스를 꺼내오구 하면서 뭐라구 씨부렁거리는데, 뭔소린질 알아 들을 수가 있어야지, 중1때부터 줄창 끼고 산게 영어 자습서 인데도, 뭐 그냥 백치 아다다 됬잖아 그냥 나, 뭔소린지도 알아 듣지도 못하는게, 그냥 실실웃고, “yes” 만 졸라 남발 했잖아. 자기 얘길 막 하는데, 내가 전혀 알아 듣지 못하니까, 지도도 꺼내오고, 한영사전도 가지고와, 마악 단어를 보여주고 하는데, 지도를 집는 것을 보니 캐나다 퀘백에 손가락을 뜨윽 올려 놓는 것을 보니, 아마도 퀘백서 왔다는 것 같단 소릴 하는 것 같애. “퀘백은 프랑스말 한다는데, 그럼 얘가 지금까지 불어를 씨불인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렇게 놀다 그이의 손을 잡고 침실로 들어 갔는데, 침대 옆 테이블에 작은 전축이 하나 달랑 있는데, 그 옆에 민해경 테이프. 그래 내가 용길 내 물어 봤잖아 영어로 “Do You like 민해경” 했더니, 마악 웃더라구. 자는데 내등을 그 사람 배위에 사알작 데고 자는데, 또 다른 깊은 맛이 있는 것 같더라구. 전 남편이랑 여행도 가구 해서 같은 침대서 잠도 서너번 짭짤이 잤는데, 그인 항상 등을 돌리구 잤더든, 근데 이 양키 그인 내 뒤에서 날 꽉 껴안구 자는데, 좋더라. 늘어지게 자구, 아침에 일어 났는데, 글쎄 그이가 보이질 않데. 그래 빤스만 덜렁 입구 겨나와 보니까, 글쎄 그이가 부엌서 아침을 만들고 있드라구. 등치는 산더미만 한게, 부엌서 후라이팬 들고 설치는걸 뒤에서 보는데, “참 귀엽다” 하는 생각이 들고, 그으래 양키들 무서워만 할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하데. 그렇게, 그렇게 그이와 사귀게 되었잖아, 영어 한마디 못하며,둘이 만남 영어사전 팍팍 찾아가며 말도 안되는 대화졸라 하구, 내가 그때 대학 4학년 이였는데, 공부에 관심 없는 놈이, 대학 4학년이라구, 뭔 걱정있었겠어. 나 대학 4학년 초에 종로 3가에 있던 요리학원 취미반 다녔잖아, 두달동안, 엄마한텐 취업준비 한다고 학원 간다고 돈받아, 요리학원 등록 했잖아, 왜냐구? 게이로 혼자 살 생각하니까, 밥도 할줄 알아야, 맛있게 먹고 놀거 아니야, 그래서 요리학원 취미반을 두달 동안 열심히 다니며, 열심이 배웠잖아, 보다 낳은 내 게이 인생을 위해. 참 좋더라구, 첨엔 양키라 무서워서, 걱정 했는데, 사귀고 보니까, 좋은 점이 더 많더라구, 집에서 편히 놀수 있다는 것…. 그이는 소공동서 사무실을 운영 했는데, 가죽옷 밍크 같은 것들을 캐나다에 수출하는 오파상 비스므리 한 일을 했었고(그이의 설명듣고도 못알아 듣고, 사무실 놀러가 직원이 설명해 주어서 알았지), 나인 30대 후반, 그이가 내 학교 시간푤 알고 있어(내가 보여줬지), 학교가는 날은 수업 마치는 시간엔 여지없이 그이가 차를 끌구와 벙실벙실 웃으며, 차에서 날 기다렸고, 난 친구들에게 “나 요즘 영어공부 하잖아, 취업할람 영어좀 해야지” 하는 개소릴 남발하며, 그이와 데이틀 즐겼지. 말도 안통하고, 서로 할줄아는 것은 바디 랭귀지 박에 없었지만, 나 그이 사랑했잖아. 그이도 날 사랑하는 눈치였고, 매일 만남 내게 영어 가르쳐 준다고, 집에서 둘이 식탁에 않아 책 펴놓고, 몇 마다 하고 그렇게 맨날 노는데, 그이가 전활 집으로 하면, 내가 내방서 되지두 않는 영어로 전활 받음 엄만 날 쳐다 보시며 “참 아들 하난 똑똑 하게 났다니까 내가, 미국가 공부 안해 보구두, 우리 앤 저렇게 영어 잘하니” 대견스러워 하시면서, 그냥 내가 엄마 “영어학원” 소리만 나면, 그냥 학원빌 팍팍 주시구. 그렇게 놀며 2학기가 시작되었고, 남들은 다 취업 준비다 뭐다 해, 도서관서 밤을 세는데 난, 그이 만나 놀랴, 일주일에 삼일 용산 미군부대에 있는 버거킹서 알바하고. 거긴 무슨 줄이 있어야 취직이 되는 곳이었는데, 그이가 아는 사람 소개로 날, 그때 아마 알바로 한 시간에 700원 인갈 주었거든 서울서, 근데 거긴 한시간에 삼불오십센트주데, 거기다 보너스가 일년에 600프로구. 아 행복한 나날들, 학교 잘다녀, 그이가 맬 학교로 아님 용산으로 차끌고 데리러와, 또 많은 돈은 아니지만 돈도 좀 벌구, 매일 매일 행복했지 뭐. 그렇게 그이랑, 한 일년이 조금 안되는 시간을 사랑했구, 시간이 지날수록 영어로 똥오줌 가릴지도 아는 수준이 된 어느날, 그이가 하얏트 호텔에 가서 밥을 먹자고 하데, 그이가 하얏트에 있는 헬스 크럽을 다니고 있었거든.., 그래 둘이가서 밥을 먹고 커필 마시며 앉아 있는데. 왠 아저씨가 오데, “아 왠일이세요” 알고 봤더니 그이 사무실서 일하는, 그이 사무실 직원들이 그이가 게이인걸 다 안 관계로 난 저절로 그냥 커밍아웃 했었잖아 그이 사무실 직원들에게. 그 아저씨랑, 셋이 앉아서 얘길 하는데, 알고 봤더니 그 아저씨가 통역을 하러 놔왔드라구. 쪽팔려! 일년을 넘게 데이트하구, 만나구 했는데, 말이 안 통해 삼자가 나와서,, 휴우… 그 아저씨왈... 제임스가 캐나다에 돌아 가야 하는데, 나랑 같이 가고 싶다는 내용을 통역을 해 주시데, 정말 할말이 한 마디도 없두라구, 해외라구 해봤자, 일본 동남아 서너나라 가본거, 대학 일학년때 미국 한번 가본거(엄마랑, 누나, 형 만나러) 밖에 없는데. 나 정말 제임스 좋아 했는데, “으익 씨이발 또가”하는 생각이 들며, 참 많이 속상하드라. 아니 팔자가, 왜 이꼴인가 하는 생각이 마악 들구, 첫 서방은 난봉꾼이요, 둘짼 졸라 좋아 할만 하니깐 간다 그러구. 씨이발 소리가 막 나는 거야. 많이 속상하더라, 한국 사람이 아니어서, 언젠간 갈줄 알았는데, 너무 빨리 간단 소리가 나오니, 눈물도 나구, 마구 마구 가슴도 아프구, 그이가 사무실 정리하느라 바쁘구, 난 졸업이 코앞에와 , 공부도 못하는게 논문 쓰느라 죽을똥 살똥 하구. 일하랴, 졸업논문쓰랴, 그이랑 이별준비 하랴, 그런 날들을 보냈지. 결정을 못하겠더라구, 세상 태어나 첨으로 누군가가 날 좋아해, 같이 가서 살자는 얘길 했는데, 선뜻 결정을 못하는 내가 넘 밉더라구, “에이 일본만 되두, 갈수 있는데” “아니 미국만 해두 나 가는데” 이런 생각이 마구 들고, 생각을 해봐, 캐나다에 서방하나 달랑 믿고 갔다가, 깨지기라도 함, 캐나다서 집에 올람 좀 멀어, 일본이야 현해탄 건너 수영이라도 해 서울에 돌아오지, 미국은 형이랑 누나 한테 감 되지 하는데, 캐나다.. 그이는 가는게 싫었구, 난 보내는게 싫었구, 그래 둘이는 시간만 남 같이 죽자사자 했잖아. 난 거의 학굘 그이의 집에서 다니구, 둘다 친구두 안 만나구, 간다는 말이 나온뒤 시간이 정말 잘 가데, 한것없이 시간은 가구, 난 결정을 못내리구, 그이는 내가 부담가질까봐 조르지도 못하구. 그날, 괴상한 트럭이 와서 그이의 짐을 실어낸 날, 나 그냥 주저 앉아서 넘 많아 울었잖아. 그의 집 베란다에 앉아서 줄줄 눈물 흘리는데, 그이가 와서 날 뒤에서 껴안으며 축축한 눈물을 흘리는데, 그 큰 남자가 눈물을 내 목위에 뿌리는데, 가슴이 무너지데. 그냥 둘이 서로 얼굴 마주보며 “I love you” 소릴 수십번 하구, 둘이 부둥켜 안구 그냥 울었지 뭐, 용기 없어 님 못 따라 가는 주제에 뭐 할말이 있었겠어. 가자구 떼 못쓰는 용기없는 그이가 무슨 할말이 있었겠어. 그리구 나서 사일을 소공동에 있는 프라자 호텔서 지냈잖아, 난 일두 안하구, 학기말인데 학교두 안가구, 둘이서 걷구 또 걷다 치치면, 그냥 주저 앉아서 얼굴만 쳐다보구, 할말은 많은데, 난 영어를 못해 표현도 못하고, 그인 한국말을 몰라 못하구. 그이가 떠나기 바로 전 날, 나한테 편지 한통을 주데. 그 편질 전해 주는데, 그이 제임스 눈이 버얼게 지며, 날 쳐다 보는데, 심정 같아선 “썅 그냥갈까. 주제에 이런 님 어디서 만날려고” 하는 생각이 가슴을 쥐어짜고. 편질 열어 봤더니, 대한항공 표드라구, 뉴욕을 들려서 퀘벡 까지 오고가는, 오는날 가는날도 없이 그냥 달랑 표한장 이랑, 편지. 이런 내용의 “자기야, 자구 있는 애기람, 그냥 달랑 안고 갈텐데, 말 못하는 동물 이라면 그냥 비행기에 실어 데리구 갈텐데, 사는 마지막 날 까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과 같이 갈수 없는게 넘 슬프다” 얼추 이런 내용의. 나두 편지가 있었거든, 그이가 짐 싸기 시작할 때부터 짧은 영어로 개발 세발 쓴게. “자기야, 갈수있는 용길 내지 못하는 내가 정말 밉다, 캐나다가 내 모든걸 버리고 가기엔 넘 생소하구, 멀기두 하구, 자기랑 같이 못가는 나 미워하지 말구, 둘이 보낸 추억만 잘 간직하구 살다, 또 만나자” 얼추 이런 내용의 편질. 가는 그이에게 난 민해경 이름이 들어간 모든 테이프랑 판을 선물 했잖아, 유달리 뭔 소릴지도 모르며, 민해경의 목소릴 좋아 했던 그이였거든, 시내를 다 뒤져, 민해경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은 다, 그리구 그인 나에게 방학하면 꼭 자기 보러 오라구 날짜 없는 비행기표를 주구. 그이가 떠나 던 날, 참 신기하게 하루종일 하늘이 어둡데, 비도 오지 않는게 구름이 낮게 끼구, 날씨두 춥구, 마음도 춥고. 공항을 가는 택시 안에서, 나 정말 안 울을라구, 졸라 노력했는데, 제임스가 내손을 꽉 잡구 코를 벌렁 벌렁 거리며, 눈물을 흘리더라구, 그걸 보니까 물터진 뚝방 처럼 내 눈에서두 눈물이 줄줄 또 흐르구, 둘이서 택시안에서 손 잡구 우는데, 운전사 아저씨가 흘끔 흘끔 뒤를 보며, “꼴갑들 하네” 하는 시선을 보내구. 그이가 보딩패스를 받구 나니까, 정말 이별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데. 이별은 눈에는 안보이구, 가슴만 아프게 하는것인줄 알았는데, 이별이 보이데. 둘이서 공항 구석에 주저 앉아, 꼭 손을 붙잡고, 아무말도 못하고, 서로의 눈만 쳐다보며, 난 그이에게 안녕을 고하구, 제임슨 나에게 안녕을 고하구. 그이가 비행기 타러 들어갈 시간이 됬는데, 넘 슬퍼 눈물도 않나구, 넘 가슴아파, 아픔도 안 느껴지구, 그렇게 비행기 표 보여주고 들어 가는 입구에 서있는데, 그이가 “wherever I am, whatever I do, you will be right here in my heart” 하면서 내 손을 자기 가슴에 가져다 대드라구, 참으려 노력 했던 눈물이 솟구, 그이가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아주 큰 뽀뽀를 하더라구. 여기 저기서 “으잉, 망측, 왠 제수, 흉해” 소리가 막 들리구, 난 아랑곳 하지 않구 그냥 그이랑 마지막 뽀뽀를….. 그렇게 제임스는 가구, 눈물이 마를 때까지, 난 공항 밖에서 울다 택시를 탔지. 제임슨 가구, 난 마지막 방학을 했구, 제임슨 가서 거의 매일을 빼지 않구 전활하구, 난 전화만 끊고남, 베개 껴안고 혼자 울구 또 울구. 방학 하자 마자 나 뭐 했냐구, 대한항공에 갔잖아, 제임스가 준 비행기표 들구, “이걸루 캐나다 갈수 있나요” 그래서 나 갔잖아, 캐나다에, 제임스랑 편지랑 전화로 주고 받은 계획이 뉴욕서 만나 놀다, 뉴욕서 캐나다로 가는 걸구 하구서. 아주 추운 1월 어느날 뉴욕 캐네디 공항에 도착 했는데, 그 산더미만 한 그이가, 나보다 머리가 하나는 더 큰 그이가, 벙실 벙실 웃으며, 날 기다리드라구. 날 번쩍 안아 들면서 넘 기뻐 하는 모습을 보며, 나두 기뻤구, 둘이서 뉴욕을 마악 쏘아 다니면서, 노는데 넘 행복하드라. 그이가 한국을 떠나구, 내가 그일 만나러 뉴욕에 올 때까지 정말 생각이 많았거든, 둘이는 알구 있었구, 이미 서로 편지로 얘길해서, 뭐냐면 내가 캐나다로 와 살수 없다는 걸. 그럼 왜 갔냐구? 그냥 둘이 좋아서, 그냥 둘이 정이 넘쳐서. 그렇게 뉴욕서 놀다, 캐나다 퀘벡가서, 제임스 가족도 만나구 놀다가, 돌아오는데, 그 땐 별로 많이 안 슬프드라구, 그냥 둘이 현실이 무언지, 둘이 같이 살수 있는 방법이 없는걸 확실이 인식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두 나 쪼금 울었지, 공항서. 그래두 섭섭해서. 제임스랑 사귀며 넘 뼈져리게 느꼈지. 그래서, 난 캐나다서 돌아오자 마자 영어 공부 시작했잖아. 별다른 재주도 없고, 취직 면접 제출 불가능 판정의 성적증명서를 받은 내가, 먹구 살라면 영어라두 하는 생각으로. 꼬박 6개월을 하루에 15시간 씩, 하루도 빼놓지 않구 집에서 공부 했잖아, 엄마 한테 “너 제정신이니” 소리들어가며, 테이프 듣구, 쓸데없는 영어잡지 읽구, AFKN 졸라 보며, 하루두 안 빼고 6개월을 방에서만 보냈잖아. 영어 잘해야, 행복하게 잘 산다라는 생각하나, 영어 잘해야 취직 할수 있다 하는 생각으로. 정확히 6개월을 그렇게 방구석서 보냈지. 그리고 취직을 했는데... (4부, 마지막회) 신기해 사는게, 그렇게 놀다 와서 취직을 했는데, 글쎄 내가 영얼 몇마디 한다구 회사서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지사로 날 보낸 것 있지. 그래서 필리핀서 일년반 살았잖아. 필리핀에서 일을 할 때, 마카티라는 동네서 살았는데, 회사서 아파트를 준비해 거기서 한국서 같이간 과장이란 놈이랑 함께 살았잖아, 결혼두 하구, 자식도 있는 사람이였는데, 그렇게 여잘 밝히드라구, 하여간 퇴근만 하면 맛사지, 술집 등등, 자칭 변강쇠, 그래 이 핑계, 저 핑계대구, 혼자서 놀기를 시작 했지, 혼자서 마비니(서울의 이태원쯤) 가서 세이키스 피자가서, 라이브루 음악 들으며, 피자먹구, 맥주 마시구, 그리구 토요일엔 웨스틴 호텔 로비가서, 맥주 마시며, 라이브 음악듣구, 그렇게 자꾸 혼자 노니까, 이 과장이란 사람이, 삐진 것 같드라구. 말두 시큰둥하게 하구, 괜히 아무일두 아닌 것 가지구, 집에서 삐지구, 생난릴 치는데, 뭐 내가 할말이 있었겠어, 그래두 상산데, 까라문 까야지. 정말이야, 첨엔 해외근무라구 해서 마악 좋았었는데, 막상 필리핀서 사니까 재미가 넘 없드라구, 정말 혼자서 노는 것두 하루, 이틀이지, 하루저녁, 과장이랑 아리스토크랏 이라는 식당엘 갔는데, 밥을 먹다가 과장이 “자네 호모지” 하데. “왜요?”그냥 긍정두 부정두 안하구 답을 했잖아. “맛사지도 안가구, 혼자서 마비니 가서 놀구….” “혼자 마비니 가서 놀문 다 호몬가요?” 하믄서 아무 말을 안했잖아. 그리구 그 과장두 더 이상 말이 없데. 과장은 3개월에 한 번씩 한국에 다녀 왔는데, 하여간, 필리핀 간지 약 9개월 만에 첨으루다 서울에 다니러 왔는데, 본사 남자 직원들이 날 보는 눈빛이 곱지가 않더라구, “아하 방세들, 신입인 내가 필리핀을 가서 부러워서, 후진것들” 이렇게 자위 하며, 놀다 다시 마닐라에 왔구, 뭐 별루 과장 이란 인간두 내게 신경 쓰는 것 같지두 않구, 내 사생활이 어떻건, 그 사람한테야 상관 없는 일이잖아. 내가 뭐 자길 좋아한다구 한것도 아니구, 하여간 정확히 일년 반 동안 필리핀서 일하구, 서울 본사로 왔는데. 날이 감 갈수록, 나랑 놀아주는 남자 직원들이 없는거야, 넘 신기하데. “으윽, 내가 뭐 잘못했나, 내가 넘 잘생겨서, 이놈들이 질투를” 회식을 하구, 어딜 놀러가두 지네끼리 쏘옥 가구, 나랑 당구 졸라 치던, 직원애들두, 당구 한 번 치잔 소릴 않하구. 내가 왕따 당하는게 피부루 콱콱 느껴지데. 하루는 친하게 지내던 여직원 한명이 “저 오늘 저녁줌 사주시면 안돼요” 하데 그래 둘이서 저녁을 먹구, 차를 한잔 마시는데 “대리님 넘 속상하시겠다..” “왜? 뭐 때문에?” “모르세요” “뭘” “어머머 정말 모르세요, 김과장이 회사에 좌악, 대리님 호모라구 소식 전하구 다닌 것”, 엄마야, 졸라 황당하데, 지가 무슨 증거루다가, 설상 지가 무슨 증거가 있어두, 개인 사생활을 지 맘대루 떠들구 다니나, 하는 생각 때문에. 그 얘길 듣구 나니, 정말 회사 출근 자체가 힘들어 지드라구, 일도 손에 안잡히구, 그 김과장 새끼만 보믄, 손이 부들부들 떨리구 “저 새끼 집에가 확 다 불어, 그 개새끼가 필리핀서 어떻게 살았는지” 하는 생각만 졸라 들구. 너무 속상하구, 분해서, 더 이상 출근을 못 하겠더라구, 맘 같아서야 이런일루 지면, 게이인생 끝이다 하는 생각두 굴뚝 같았는데, 그렇게 하기두 싫구. 그래서 사표를 냈잖아. 사표를 내가 낸다는 소문이 돌자, 정말 모든 남자 직원들의 얼굴에 안도감이 도는 듯 하데 “다행이야, 변태 새끼가 없어지다니, 아휴 저 찝찝한 것 때문에 힘들었었는데” 하는 그런 표정들 있잖아. 너무 화가 나구, 분해서, 정말 몇일을 잠두 잘 못자구, 밥두 잘 못먹구 하다, 마지막 날 책상을 다 정리하구 나오면서, 회사 곳곳에 편지를 붙이구 왔잖아. “여러분 호모 대리는 갑니다, 김 과장님 넘 감사드리구요, 제 입으루 말하기 힘들걸 대신 다 해주셔서. 근데 세상에 호모는 저 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족중에두 있을수 있구, 여러분의 자식중 한명이 호모 일수두 있습니다. 세상에 10%가 호몬데, 여러분 가족중에 한 명이 호모람, 제게 한 것 하지 마시구, 잘 감싸 주시구, 이해해 주세요, 싸우지 못하구, 내 권리를 찾지 못하구, 그냥 퇴사 하는 제가 미울 뿐입니다”라는 편지를. 물론 사장실에두 한 통을 전하구. 엄만 이핼 못하시구, 내가 회사 그만 둘걸 넘 속상해 하시드라구. 엄마한테 “엄마, 나 호모라구 회사에 소문나 그만뒀잖아” 소릴 못하겠데. 그렇게 퇴사를 하구 나니까 정말 한국이 싫어 지더라구, 어디감 또 그런일 안 생기겠어 하는 생각에. 그래 마음도 달래구, 좀 놀 겸, 미국에 갔잖아, 엄마 한테 미국에 있는 조카들이 넘 보고 잡아 하는 핑계를 … 그리구 다시 취직을 했잖아, 그리구 차두 사구. 서울서 길 뛸람 젤 필요한게 차드라구, 그래 장안동 가서 중고 콩코드를 샀잖아. 차 사구 나니까 남 부러운게 없데, 토요일 아침 서울서 출발해, 대구 가서 바 뛰구, 정말 졸라 놀구, 대구 한일극장 건너편에 있던, 자칭 원조 따로국밥집서, 밥먹구, 거기서 부산가 보림극장 뛰구, 데레사여고 들어가는 골목 근차에 있던 게이 술집가서, 말빨이 정말 넘어갈 정도루 쎈 부산 문딩이 형들이랑 놀다, 부산 역전 아리랑 호텔 가서 자구, 그러다 피터를 만났잖아, 일본 후쿠오카 사는 피터를, 태어나긴 덴마크서 태어나, 어려 미국이민와, 일본서 교수하던 피터를 파고다 공원서 만났잖아. 일년에 서너번은 다니러오구, 피터가 첨엔 날 살살 피하더라구, 그래도 뭐 내가 미모가 있으니까, 다 넘어 오더라구, 경국지색 뭐 그런 말들 있잖아. 사실 내가 생긴 건, 씹다 버린 장아찌 같지만, “흥 내 미모가 파고다 최고다” 하면서, 얼굴 빳빳이 들구 다녔거든 그래서 또 피터를 사귀게 됬잖아, 그것두 아주 오래 동안. 난 한번 누구 좋아함, 정말 졸라 좋아 하거든, 눈에 보이는 것두 없고. 피터는 날 좋아 하면서도, 일본에 산다는 이유로, 내게 많은 자유를 줬고, 둘이 거의 매일 통화하구, 편지두 자주 주고 받고, 한 달에 한번 꼴루 일본엘 갔잖아, 나중엔 공항서 여권에 도장 찍어주는 직원이랑, 인사를 할수 있는 지경이 될 정도루 일본을 갔잖아, 뭐 후쿠오카야, 말이 국제선이지, 거의 제주도 가는거잖아 금요일 저녁 뱅기를 탈람, 사무실서 늦어두 4시엔 도망을 나와야 하는데, 어휴 참 많이 힘들었네, 말이 한 달 한번이지, 왕복 뱅기삯, 이박 호텔비 또 먹는것, 쓰는것 등등, 돈두 졸라 들두라구, 연휴란 연휴는 다 일본서, 휴가는 일본가서.. 가족 버리구. 그럼 어때, 좋아 하는 사람 만나 행복 하믄 되지 하는 생각으로 현해탄 건너 다니는 짓을 글쎄 96년 8월 호주로 야반도주 하기전 까지 했잖아. 후쿠오카 도착해, 시내 들어가, 조금 있으면, 피터가 오구, 늦은 저녁 먹구, 그이가 단골로 가끔 가던 옥터보 숏바 가서 술두 한잔 씩 하구, 난 혼자서 빠찡고두 하구, 그러다 나중엔 술집 주인이랑 넘 친해져, 그 술집 주인이 호텔비 아깝다고 몇번 재워줬잖아. 넘 좋은 날들 이였다고 생각해,,, 그 때가 피터는 첨 날 만날땐, 사랑에 빠지지 않을려고 노력을 했는데, 한 번 불이 붙으니까 넘 뜨거워 지더라구, 날이 가구 서로 정도 깊어 가면서 방방 뜨던 그이 입에선 쓸데 없이 기다리란 소리만 졸라 하구. 신기한건, 낼 나랑 함께 살것 같이 행동하던 사람의 입에서, 기다려 달라는 말만 자꾸 하는데, 듣는 내 입장선 기분이 별로 안 좋드라구. 뭐 내가 같이 살아달라구 빈것두 아니구, 매일밤 물떠 놓고 정성 들인것두 아닌데, 자꾸 그인 나한테 그런 기분이 들게 만들드라구. 속만 타구, 죄책감만 들구. 그렇게 시간은 가구, 결정된건 하나두 없구,,,, 그러다 둘이서 시드니로 96년 6월에 휴가를 갔잖아. 그때, 난 이미, 이이랑은 정리를 해야지 하는 생각이 머리속에 있었고, 그인 그냥 좀만 더 기다림 하는 소릴 달구 살구. 시드닌 두번째로 간건데 그때, 공항서 내려,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넘 괴상한 기분이 들더라구, 아주 친근한 기분, 한 번 밖에 다녀가지 않았는데 꼭 오랫만에 고향에 돌아온 기분, 아주 따스한 기분이 드는게, 신기하게 전혀 서먹 하지가 않데... 한국에 돌아와, 그이는 후쿠오카로 돌아가구, 나 짐싸기 시작 했잖아. 호주루 이사 갈라구. 그때 정말 한국서 사는게 정말 피곤해 지구 있었거든. 숨어 게이생활 하는것두 넘 피곤하구, 매일 결혼 소리 듣는것두 싫구... 내가 호주로 이살 간다 하니까, 친구는 방방뜨구, "가긴 어딜가 이놈아, 니가 거기에 남자가 있니 가족이 있니" 하면서 걱정하구. 내가 게이인걸 아는 친구 놈들은 "정말 갈꺼니 하며" 걱정의 눈빛만 보내구. 휴가 다녀와 거의 한달만에 사표내구, 짐정리 하구, 호주로 도망 가는데 까지 채 3개월이 안 걸리데. 집에서 다들 뒤집어 지시구, 특히 엄만, 은근히 내가 미국가 살길 원하셨는데, 갑자기 호주 소리가 나오니까 "너 제 정신이니" 소리만 하시면서두, 말려봐야, 힘만 낭비 하시는걸 넘 잘아시니까 말리지두 못하시구, 그냥 걱정만 하구. 전세루 살던 아파트, 전세 빼달라구, 누나에게 부탁하구, 거의 준비 다하구 난 그이보러 후쿠오카에 갔잖아. "나 호주간다, 살러" "으잉, 왠 자다가 봉창 뚜드리는 소리, 좀 만 기다림..." "기약없이 기다리는 것두 싫구, 진짜루 게이답게 살아 보구두 싶구, 그래서 나 가. 그러니 잡지마" 했더니. 그이가 마악 화를 내데,,, 둘이서 보낸 시간이 얼만데, 니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등등 소릴 하면서, "난 너한테 하나두 바란게 없잖아, 내가 언제 나랑 살잔 소릴 했니, 아님, 니가 죽도록 좋으니까, 죽는 날까지 너만 기다릴께 한 적도 없구, 사랑한 만큼, 내가 행복하길 원하는 만큼, 그냥 내가 행복하게 그냥 보내줘". 그랬더니, "니가 좋아 하는 차 사줄께 가지마" 하데. 나 정말 사브 차를 넘 좋아 했거든, 중학교 때 엄마 따라 일본가서 한번 보구, 그래 저 차다 하는 생각으루, 정말 한땐 돈 벌어 사브 사는게 소원일 정도루. 근데 너무 싫더라, 내가 몸 파는 것도 아니구.. "내가 너 한테 몸 팔았니, 좋아서 사랑했는데, 좋아서 번 돈 다버리며 물건너 다녔는데, 행복해라 소린 못하구, 차 사줄게 가지말라니..“ 넘 실망 스럽구, 속상하드라구. 얼마나 내가 가는게 속상해 그런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두 넘 싸구려가 된것 같아, 많이 속상 했잖아. 그렇게 한국을 떠났잖아. 밤 비행기 타구, 혼자서 혼자서 외로이 "내 인생은 나의것" 을 외치며... 가방 하나 달랑 들구, 아무도 연고가 없는, 그 먼 시드니루 비자두 관광비자 하나 달랑 들구.... 게이처럼 살아 볼라구, 좋아 하는 사람 만나 손잡구 길도 걸어 보고, 정말 좋음, 결혼도 해볼라구. 나 정말 센가봐. 다른 게이들은 힘들어두, 눈치가 보여두, 한국서 지지고 볶으며 잘 사는데 그렇게 혼자 한번 벅차게 살아 보겠다구, 그 먼나라에 갔으니. 시드니에 도착해 한 달 반쯤 걸렸나봐, 취직하구, 정착 하는데. 잘 살았잖아 시드니서, 행복하구, 데이트두 질리게 하구 차이구, 차기두 하구, 결혼 하자구 청혼두 받아보구... 기냥 맨 땅에 헤딩 하듯이 그냥 그렇게. 근데 사는데 무서운게 없는것 같아, 어디가든 좋은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 보단 훨 많은것 같구, 피부색이 틀려두, 머리색이 틀려두, 좋은 사람들은 항상 따스하고, 싸가지 없는 것들은 어디가나 다 똑같구. --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 뒤에 더 있었는데 보관하지 못함. ㅠㅠ 사이트는 사라짐. 원덬이 10년 전에 퍼다 보관하고 있던 글이야. 아마도 글쓴 분은 1960년대 초 태생으로 추정되며 (현재 50대 후반) 지금은 시드니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애인과 살고 계신다고 함. 악플이 너무 달리니까 그 이후로 글을 그만 쓰더라구. 원덬은 자기 과거사를 남기지 못한 게이 윗세대에게서 들을 수 있는 몇 안되는 구술사료격으로 생각하고 보관하고 있었음... 그리고 이건 근황이래요
캐스팅 때문에 망한 캐릭터 최강자 투표!
(지난 결과는 아래 쪽에 있습니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보면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대로 캐릭터가 괜찮은데, 혹은 안그래도 캐릭터가 망조인데 캐스팅이 캐릭터를 말아먹는 경우. 오늘 개봉한 스타워즈 시리즈의 프리퀄 삼부작에 등장한 루크스카이워커가 대표적인 사례죠. 생각난 김에 투표를 열어봅니다. 캐스팅이 망친 캐릭터, 최고는 누구? 1.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 - 아나킨 스카이워커 다스 베이더의 탄생기를 다룬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은 관객들로 하여금 다크 포스를 제대로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 모두가, 아나킨 스카이워커를 맡은 헤이든 크리스텐슨을 향해 폭탄이라도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을 테니까요. 후에 다스 베이더가 되리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의 존재감 없음, 거기에 감정은 커녕 고통도 드러나지 않는 얼굴, 0에 가까운 나탈리 포트만과의 케미까지... 헤이든의 아나킨은 안그래도 말이 많던 영화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습니다. 2. 블러드 - 박지상 블러드에서 박지상 역을 맡은 안재현은 분노 연기를 하기 전에 고민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연기할 수 있을까? 방법은 쉽습니다. 먼저 그 연기를 한 뒤,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TV를 보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죠. 안재현이 블러드의 주연으로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부터, 사람들은 이 신인 배우가 너무 큰 역할을 맡은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우려는 정확히 적중하고 말았죠. 3. 다크 나이트 라이즈 - 미란다 테이트 마리옹 코티야르는 라 비앙 로즈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충분히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거기에 인셉션에서도 출중한 연기를 펼쳐 놀란 감독과 합이 좋음을 보여주었죠. 이러다보니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그녀가 출연했을 때 많은 관객들이 기대를 한 것은 당연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언급할 수 없지만, 그녀의 역할은 영화 전개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옹 코티야르는 이 영화에서 어이가 없을 정도의 발연기를 선보이죠. 그녀의 연기에선 아무런 강렬함도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말의 좋은 예가 아닌가 해요. 4. 심야식당 - 민우 시작부터 논란을 빚었지만 '심야식당'에는 많은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창 집밥과 요리가 유행하는 타이밍에 드라마가 시작되었고, 공감이 가는 캐릭터를 통해 힐링 드라마라는 명성을 얻을 수도 있었죠. 하지만 이 모든 가능성을 어이 없게 발로 차버린 캐릭터가 있었으니... 심야식당의 민우는 흔히 얘기하는 88만원 세대로, 힘겨운 시기를 살아가는 이 시기 젊은이들의 표본과도 같은 캐릭터였습니다. 그리고 방영직후 이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가 인터넷을 뒤덮죠. 바로 민우역으로 캐스팅된 남태현의 연기력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배우와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가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집어삼키는 기현상이 벌어지죠. 부탁인데 다음에는 우는 것과 웃는 것 둘 중 하나만 했으면 좋겠네요. 마치기 전 지난 결과를 발표합니다! 불쌍한 캐릭터! 누가 갑중의 갑?의 결과는? 1. 스파이더맨: @jonabot 2. 고길동: @jihwan0880, @itsmepjy, @jhhj4860, @eco11, @sonyesoer, @gkals1129, @hongly, @kym5824, @jooho0403, @JJOA, @ll1203ll, @jeongsori, @june8200, @sms2738, @Parfait15 3. 배트맨: 4. 김갑수: @EuniYomi, @tlsskdus13, @Mijeong0617, @DeaGeunSong, @zlddyd123
설날에 몰아보면 좋은 2015 전세계 흥행 T0P 10 작품
다가오는 설날, 여러분은 어떤 계획을 세우고 계신가요? 친척들 혹은 가족과의 재회도 좋지만, 5일씩이나 되는 연휴가 코앞에 있으니 긴 휴식을 계획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이런 날에는 드라마를 몰아보는 것도, 만화를 몰아보는 것도 좋지만, 놓친 지나간 영화들을 보는 것도 좋지요. 특히나 바쁜 시간을 보내느라 놓친 인기작들을 관람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작년 한 해, '너 아직도 그 영화 안 봤니?'라는 질문에 시달리셨던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설날에 몰아보면 좋은 2015 전세계 흥행 T0P 10 작품! 10위 - 마션 작년 가을, 화성인 열풍을 불어왔던 그 작품! '마션'이 10위입니다. 총 5억 9800만 달러(약 7200억)원을 벌어들였죠. 화성 고립이라는 극한의 상황을 다루었지만, 위트 넘치는 분위기와 희망적인 메시지로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입니다. 9위 - 헝거게임: 더 파이널 드디어 마지막 장에 이른 캣니스의 모험기, '헝거게임: 더 파이널'이 9위의 자리를 차지 했습니다. 6억 5100만 달러의 수입을 거둬 들였죠.(약 7930억원) 이 시리즈는 해외 보다는 미국 내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국내에도 꽤 많은 고정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설날에 시간이 남는다면 전편을 몰아보는 것도 좋은 선택입니다. 8위 - 미션 임파서블: 로그 네이션 친절한 톰 아저씨가 직접 비행기에 매달려 화제가 된 작품이죠? '미션 임파서블: 로그 네이션'이 8위를 차지했습니다. 6억 8200만 달러(약 8310억원)의 수입을 올렸는데요, 헝거 게임과 달리 미션 임파서블은 미국내 수입보다 해외 수입이 월등히 높았습니다. 이 말인 즉슨, 국내에서 이 영화를 본 관객이 많았다는 것인데요,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 못 쫓아가는 상황을 막으려면 꼭 감상하는게 좋겠죠? 7위 - 인사이드 아웃 '어른들을 위한 동화',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란 평을 들으며 인기 몰이를 했던 작품이죠, 바로 '인사이드 아웃'입니다. 이 작품은 8억 5600만달러(약 1조 430억원)을 벌어들여서 7위에 올라섰죠. 국내에서도 픽사 최고 관객 기록을 갈아치울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끈 작품이기에, 꼭 봐도시는 것도 좋습니다. 6위 - 007: 스펙터 작품성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지만 흥행 성적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007: 스펙터'가 8억 7700만 달러(약 1조 680억원)의 기록으로 6위에 올랐습니다. 전작 스카이폴이 준 감흥이 어마어마 했기에, 국내에서도 많은 팬들이 개봉에 맞춰 극장에 달려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영화라면 한 번쯤 봐두는 것이 필수! 5위 - 미니언즈 슈퍼배드 시리즈에 등장에 엄청난 인기를 모았던 캐릭터, 미니언들이 따로 독립해 큰 사고를 쳤습니다. 바로 5위를 차지한 '미니언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니언즈 캐릭터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이 영화가 무려 11억 5700만달러(약 1조 4100억원)이나 벌어들일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겁니다. 올 설날 돈을 부르는 이 귀염둥이들과 함께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4위 -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1편의 개봉 당시에는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지만, 이번엔 아쉽게도 4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어마어마한 성적을 거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14억 5000만달러(약 1조 7124억원)의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개봉당시 특히나 서울 장면이 많은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려면 미리 보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3위 - 분노의 질주: 더 세븐 처음 1편이 개봉할 때만해도 누가 이 시리즈가 이 만큼 성장하리라 생각했을까요. 결국 시리즈 최고 수입과 동시에 전세계 박스오피스 3위에 안착했습니다, 바로 '분노의 질주: 더 세븐' 이야기 입니다. 이 영화는 15억 1500만달러(약 1조 8464억원)의 수입을 거두었습니다. 특히나 폴 워커의 퇴장과 그를 추모하는 노래가 많은 화제가 되었던 작품입니다. 2위 - 쥬라기 월드 어느정도의 흥행은 기록하리라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쥬라기 월드가 2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영화는 16억 6900만달러(약 2조 341억원)의 성적을 올려 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지요. 특히나 무수한 패러디를 생산한 작품이니 만큼, 미리 봐두어야 이야기에서 뒤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 1위 -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1위는 바로 현재에도 아바타와 타이타닉의 기록을 호시탐탐 노리는 작품,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가 차지 했습니다. 이 영화의 수입은 현재에도 추가되고 있는 중인데요, 현재까지 19억 8400만달러(약 2조4180억원)의 수입을 거두고 있습니다. 명절이면 스타워즈 오리지널 세대, 프리퀄 세대가 모두 모일 자리! 깨어난 포스까지 미리 보고 가는 건 어떨까요?
[스토리뉴스 #더] '범죄도시3' 개봉에 즈음해 보는 "속편 영화의 불편한 흥행사(史)"
영화 <범죄도시3>가 5월 31일 개봉한다. 전작 <범죄도시2>가 지난해 5월 개봉, 1269만명으로 코로나 팬데믹 최다 관객수를 기록한 지 딱 1년 만에 후속편이 찾아왔다. 이번에도 마동석(마석도 역) 유니버스는 대중의 발길을 끌어모을 수 있을까? 흥행 침체로 허덕대는 한국영화판이 이 액션 프랜차이즈 신작에 거는 기대는 크다. 속편 영화는 흥행 면에서 종종 높은 기대치를 부여받는다. 애초에 속편이 나왔다는 건 전작(들)의 평가나 인기가 나쁘지 않았다는 뜻. 그 전작의 인기 요인을 계승하는 만큼 호불호 관련 변수가 줄어드는 것이다. 실제로는 어땠을까? <범죄도시2>처럼 입이 귀에 걸릴 만한 성적표를 누가 또 받았을까. 우선 지난 20년간 1편과 속편이 영화관에서 개봉한 적 있는 한국영화들을 추렸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1편과 속편이 모두 영화관에 걸린 한국영화 시리즈는 14개다. 한 편이라도 전국 관객수 100만명 이상을 기록한 시리즈를 기준으로 했다. 영화 편 수는 총 31편. 2편을 넘어 3편까지 내놓은 프랜차이즈는 '타짜' '조선명탐정' '범죄도시'다.(이순신 트릴로지의 최종편 <노량: 죽음의 바다>는 올 12월 개봉 예정) 전작과 속편 개봉 간격이 가장 긴 건 '타짜' '명량' 그리고 '해적' 시리즈다. 다들 1편 이후 2편 등장까지 8년이 걸렸다. 텀이 제일 짧은 시리즈는 '신과함께'와 '범죄도시'로 각각 1-2편 및 2-3편이 해를 이어 개봉했다. 전체 작품을 계산해보니 전작과 속편 사이 평균 간격은 4.3년으로 나왔다. 이제 이들 영화의 박스오피스를 살펴볼 차례다. 대중과 비평가 의견도 중요하지만 주관적인 데다 범주가 너무 넓어 여기서는 흥행 결과로만 성패를 판단했다. 속편들은 과연 믿음에 부응했을까? 결과는 다소 의외다. 20년간 전편보다 더 흥행한 속편 영화는 <범죄도시2>와 <탐정: 리턴즈>가 유이했다. 대체로 1편이 성공한 뒤라 그 정도의 관객을 다시 끌어모으기가 쉽지 않았겠지만, 그렇다 해도 기대 대비 감소 폭이 만만찮다. 그중 최악은 <해적: 도깨비 깃발>이다. 134만명의 관객이 들어 1편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865만명보다 84.5%나 줄었다. 감소율 단연 1위. 감소 관객수는 731만명으로 <한산: 용의 출현>(<명량> 대비 1035만명↓) 다음으로 많았다. 단, <명량>이 우리나라 역대 관객수 1위 영화임을 감안하면 뼈가 아픈 쪽은 <해적: 도깨비 깃발>이다. 개봉 당시에도 감독과 출연진이 다 다른 '무늬만 속편'인 데다 졸작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나 알지?'를 미끼로 관객을 꼬드기다가 된통 당한 셈. 낯익음을 무기 삼을 때는 그만큼 높아진 기대치를 감당해야 한다. 흉내조차 제대로 못 내는 영화에 돈을 지불할 관객은 드물다. 이밖에 '공조'와 '마녀' 속편은 각각 10.7%, 11.9%씩 관객이 빠지기는 했어도 손익분기점은 무난히 넘기며 나쁘지 않은 결과를 보였다. '신과함께'는 1편과 속편이 모두 천만 관객을 돌파한 유일한 시리즈로 남아있다. 다시, '범죄도시' 차례다. '범죄도시'는 권선징악 유의 형사물에 배우 마동석이 수년간 쌓아온 '코믹하고 친근하되 호쾌한 한 방을 보유한 자' 캐릭터가 흡수된, 일명 한국형 액션 프랜차이즈다. 뻔한 듯 보여도 고유한 정서가 있다.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주먹과 손바닥은 마동석이라는 아이콘을 거치면서 폭력성이 휘발되고 통쾌함이 배가된다. 물론 여기에는 가해자 선처나 교화 따위에 치중된, 대한민국의 기형적 인권 시스템도 한몫한다. 현실 법체계에 대한 답답함을 선한 폭력이 '사이다'가 돼 달래준다. "진실의 방으로"는 인권유린이 아니라 (실제로는 불가능한) 범죄자 단죄의 유쾌한 현장인 셈. 주먹으로 말로, 보는 이의 눈과 귀에 타격감 한번 오지다. 이런 이유들로 <범죄도시2>는 관객이 전편 대비 85.3%나 늘어 수치상 역대 가장 성공한 속편이 됐다. 유니버스 확대를 위한 가속페달도 밟았다. 4편이 촬영을 마쳤고 5편과 6편은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단, 안심은 곤란하다. <범죄도시2>도 흥행은 잘됐지만 악역을 비롯해 캐릭터 매력 구축이나 대립 빌드 업 작업 등이 1편에 비해 부족하다는 평이 많았다. 실제로 영화는 짜임새보다 익숙한 개인기에 기댄 면이 없지 않았다. '질림'이 임계점에 도달하면 박스 오피스 곡선은 꺾이기 마련. '범죄도시' 프랜차이즈의 흥행사는 어떻게 새로 고침 될까? 개봉 박두다. 이성인 기자 silee@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