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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풋볼 하우스 ] :: '더비' 그 의미 속으로. ::

The Derby.

18세기 영국에서 유례된 말로써, 유럽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경마대회이름으로써, '더비 백작'이 자신의 이름 따서 만든 이름이다. '더비'란 같은 지역의 라이벌 팀 간의 경기에만 극한되었지만 점차 확장되면서 리그 내에 속한 팀 간의 경기에까지 확장되었다

엘 클라시코 (El Clasico)

정치적 주도권을 쥔 카스티야 지방의 대표도시인 마드리들의 대표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

경제적 주도권을 쥔 카탈루냐 지방의 대표 도시인,

'바르셀로나'

엘 클라시코 역사는 1902년 5월 13일 코파 델 레이의 역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두 팀의 매치는 단순히 축구 경기라고 하기에는


그 의미가 간단하지가 않다.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 역사에서 권력의 상징이자 중심의 역활로 바르샤를 정치적으로 압박해 왔습니다. 바르샤는 스페인에서 분리독립을 외치고 있으며, 이는 마드리드의 상징에 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들의 축구는 정치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지역감정이, 축구를 통해 표출되는 '전쟁' 같은 의미였던 겁니다...

머지 사이드 더비 (Merseyside Derby)

더비라고 다 사이가 나쁜가?...아니다. 머지사이드 더비는 머지사이드 주에 연고한 두 팀간의 경기입니다.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더비로..1893년 10월 13일 그 시작을 알리는 경기가 있었습니다. 물론 더비답게 선수들의 경기는 치열하지만,

관중들은 그 반대의 성향을 띄고 있습니다.

구장끼리의 거리는 걸어서 가봤자 15분 정도이기 때문에... 각 팀의 서포터들은 서로 동네 이웃 주민들이나 친구, 가족인 경우가 많습니다^-^;; 치열하게 싸우는 선수들과 달리...한손에는 리버풀, 다른 한손에는 애버튼의 수건을 들고 응원하는 팬들을 보면...뭥미...ㅎㅎ^-^;; '제라드'선수 역시 어렸을 적 애버튼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되었는데요 삼촌이 공개한 이 사진에서 '제라드가 리버풀 유소년 시스템에 입단만 안했으면...' 인터뷰에서 실망을 하게되었다면서... 그것을 본 제라드는 '그 사진은 나의 흑역사입니다...' 인터뷰에서 미소지어 보였죠...

북 런던 더비 (North London Derby)

1913년 아스날은 북런던의 하이버리로 구단의 연고를 이전하면서 두 팀의 충돌이 생겼습니다. 바로 근처에 토트넘이 화이트 하트 레인에 구장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라이벌이 되어버렸죠... 머지 사이드 더비에 비해 가까우면서도 팬들 사이는 정말 안좋기로 유명하죠... 그 대표적인 사례가... 1차 세계대전 이후 1부리그에 두팀을 더 승격하기 위해 투표를 하게 되었고 아스날은 토트넘을 제치고 1부 리그로 승격되면서 양팀 팬들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집니다.. 아스날 팬들은 매 시즌마다 St. Totteringham's day라고...토튼햄보다 리그 순위가 더 높은 것이 확정된 날을 기릴 정도로 싫어합니다...

그리고 유명한 '라자냐 송'....

토트넘 4위, 아스날 5위... 웨스트 햄과의 마지막 경기를 앞둔 토트넘...이기면 4위, 지면 아스날과 순위가 변동되는 상황. 경기 전 날...토트넘 경기 대다수가 라자냐를 시켜먹었는데 당시 이영표 선수를 비롯해 주전 선수들이 구토가 시작 된것이다...\ 토트넘은 경기취소를 원했고 웨스트햄도 동의한 상황에서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에서 퇴짜... 결국 1 - 0 '베나윤 골'으로 패배하고 말았다...그렇게 탄생한 '라자냐 송'은 지금도...

#이영표 선수의 일화

아스날과 경기에서 패배후 토트넘으로 돌아가는 버스안에서 아스날 서포터들이 던지는 이물질들이 버스 유리창에 금이갈 정도로 엄청났다고 합니다...이겨도 그정도인데 지는 날에는...ㄷㄷㄷ...

노스웨스트 더비 (North West Derby)

일명 레즈 더비라고도 불리지만 정확한 명칭은 노스웨스트 더비입니다 과거 맨체스터 - 리버풀 운하라고 하는 영국 산업혁명으로 맨체스터에 운하가 생기면서 리버풀은 경제난에 빠지게 되었고, 이때 생긴 악감정이 축구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 의미로 맨체스터의 앰블럼에는 범선이 포함되어 있지만

나중에 운하를 건설하게 된 리버풀은 범선을 실지 못하게 되었다.

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전까지

리버풀이 18회 우승으로 최다 우승팀이었지만.. 출범이후...13회의 우스트로피를 추가한 맨유(20회)에게 타이틀을 내주었죠... 게리네빌은

'제라드가 대표팀 선수로 뽑힌다면 난 그에게 패스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두 팀의 신경전은 선수들 인터뷰에서도 나타날 정도였죠

맨체스터 더비 (Mancherster Derby)

1970년대 초부터 라이벌 관계가 형성됩니다. 맨유의 조지 베스트가 맨시티의 글린 파도에게 살인 태클을 시전하면서 그의 선수 생명을 마감시키죠... 그러자 다음 시즌에 맨시티의 프랜시스 리조지 베스트에게 살인 태클을 시전,

두 팀간의 앙금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합니다.

74시즌 강등권 다툼에서 맨시티가 맨유를 2부 리그로 추락시키는 사건이 생기는데... 맨시티 소속이였던 데니스 로의 은퇴 경기였던 그 경기에서 뒷꿈치로 골을 넣은 것입니다... 이에 맨유 훌리 건들이 경기장으로 난입하여 후반 85분, 심판은 경기 종료를 선언하죠... 하지만 두 팀이 다시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흐른 후가 되었죠...

'더비 같지 않은 더비다.'

의견이 많은 더비로 평가 되었다가... 만수르 형님이 나타나면서 실력있는 선수들을 영입, 맨시티의 전력이 급상승하고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44년만에 11/12년 시즌 우승과 맨유를 6 - 1대승으로 이기며

시끄러운 이웃에서 진정한 라이벌로 다시 자리매김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퍼거슨 감독님도 조금씩 맨시티를 인정한다는 말을 만치니 감독에게 전했다죠...
데어 클라시커 (Der Klassiker) 바이에른 뮌헨 과 도르트문트의 더비 매치를 뜻합니다 12/13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서 두 팀은 바르샤와 마드리드를 꺾고 결승에 올라갑니다 엘 클라시코 라인을 무너뜨려 버린거죠

데어 클라시커는 '엘 클라시코'를 독일어로 봐꾼 말이죠...

사실 다른 더비에 비해 데어 클라시커는

상업적인 목적이 강합니다

자국민도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더비죠...블랙데이같은 느낌?^-^;; 비교적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경쟁 구도? 정도로 인식되는 더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올리버 칸의 골프공 사건...그리고 바나나 투척사건...에펜베르크의 보복 태클과 설전 등... 그래도 두팀간의 경쟁은 정말 치열합니다

데르비 디탈리아 (Derby d''Italia)

세리에 A에서 강동되지 않고 리그 우승 10회이상 해본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명가들의 자존심 싸움. 그러나 2006년 칼치오폴리의 여파 는 두 팀의 경기가 더 뜨거워지게 되는 계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유벤투스의 강등으로 스쿠데토를 가져간 인테르.... 팬들은 '갈치오폴리 사건은 인테르의 음모다!' 라고 주장하면서 인터밀란과 유벤투스 양 팀간의 감정싸움이 더욱 치열해지죠... 덕분에 두 팀간의 경기에서는 매번 위험한 태클이나 감정싸움이 엄청나게 일어나죠;;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 (Derby della Madonnina)

세계 3대 더비라고 불렸을 정도로 경기의 온도가 치열하고 거칠기로 유명한 경기!

영어로 밀란 더비는 - 밀라노에 위치한 대성당 석상이름 다돈니나에서 유례된 말이다. 이 더비의 역사는 정책싸움에서 시작되었다. 영국과 이탈리아 출신만 받아들이겠다. - AC밀란 모든 나라의 선수를 받겠다. - AC밀란의 정책을 반대하여 만든 인터밀란 같은 구장을 사용하여 결성된 라이벌 의식이 대단하다... 두 팀이 맞붙는 경기에서는 홈-원정 구분이 크게 없지만

서포터즈에 지급되는 티켓의 양이 차이가 있다.

데르비 델라 카피탈레 (Derby della capitale)

영어로 '로마 더비' 라고 불리기도 하며

이 무서운 더비는...

마피아와 직 - 간접적으로 연계된 양 팀이다... 과격하기로 소문난 서포터들 간 물리적 충돌이 끊이지 않으며 삼엄한 공안 세력의 경계가 펼쳐짐에도 불구하고 각종 칼...도끼...낫 등 수많은 흉기들이 경기장 내외부에 전개된다 ㄷㄷㄷ....

이스탄불 더비 ( 갈라타사라이 SK vs 페네르바체 SK)

'Wellcome to Hell'

이라는 문구가 대변되는 경기!

서 이스탄불 vs 동 이스탄불의 기반으로 한 두 팀은...

또 다른 의미로 가진 자 vs 못가진 자 사이의 사회 계층 대립적인 색깔이 짙게 깔린 더비... 어쨋든 지역감정이 지속해 나가자 축구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만... 스포츠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유혈사태가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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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sunghoon9 다...그게...정말 그 사건때문인지도...에효...ㅠ
하긴 요즘 슈퍼매치가..많이...죽었죠...예전만큼은 아닌듯 싶어요...
@jungsunghoon9 네 피파에서 선정한 7대 더비로 속하지만 ㅎㅎ...대륙 대표로 뽑힌거라 이슈적으로는 같은 아시아 컵을 놓고 싸우는 테헤란더비보단 많이 약한편이더라구요 ㅎㅎ...
서울vs수원 슈퍼매치도 있어요~ㅋㅋㅋㅋ
@smallparty 살벌하더라구요ㄷㄷ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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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이 1명의 축구선수에 열광하던 시절 ㄷㄷㄷ
지금은 그라운드를 떠났지만, 박지성은 한국 축구가 낳은 역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 중 한 명이죠.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온 국민이 박지성이라는 이름에 열광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엔 박지성의 전설적인 플레이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전설의 시작.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터트린 골입니다.'벼락 같은 골'이라는 표현이 정말 잘 어울렸던 멋진 골이었죠 ㄷㄷ 이때만 해도 박지성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21살의 무명 선수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 골 이후 박지성의 커리어는 180도 달라집니다. 다른 각도에서 봐도 너무 멋집니다. 대포알 같은 슛이 정확하게 골문 구석을 향해 날라갑니다 ㄷㄷ 아마 한국 축구 월드컵 역사에 길이 남을 골이 아닌가 싶습니다.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가, 너무나 중요했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저렇게 침착하게 골을 넣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박지성 본인도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골일 겁니다. 월드컵 이후 일본을 거쳐 PSV 아인트호벤으로 이적한 박지성. 처음엔 유럽축구 무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전했지만, 결국 아인트호벤 팬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가 됩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터트린 이 골은 박지성 커리어 뿐만 아니라 PSV 아인트호벤 구단 역사에도 남을 만한 멋진 골이었죠. 결국 퍼거슨 감독의 눈에 띄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박지성. 풍부한 활동량과 과감한 플레이로 맨유 팬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엄청난 스피드와 활동량으로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던 박지성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공을 빼앗긴 후에도 끝까지 쫓아가서 백태클로 다시 공격권을 가져오는 박지성. ㄷㄷ 이런 선수 하나만 있어도 엄청 든든하죠! 이번에도 태클로 공을 가로채고 직접 역습을 시도하는 박지성 ㄷㄷㄷ 뭐랄까요 정말 날랜 황소 같습니다 크으! 박지성은 뛰어난 득점원이기도 했습니다. 항상 중요한 순간에 골을 터트리며 맨유 팬들을 열광하게 했죠! 울버햄튼전에서 92분에 터트린 이 극장골은 아직도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ㅎㅎ 박지성은 맨유의 라이벌이었던 아스널, 리버풀, 첼시 상대로도 멋진 골을 터트리곤 했습니다. 리버풀전에서 터트린 이 헤딩골도 정말 일품이었죠. ㄷㄷㄷ 첼시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는 디디에 드록바에게 실점한 뒤에 곧바로 박지성이 직접 골을 터트리며 올드 트래포드를 들썩거리게 만들었습니다. 너무나 극적이고 멋있는 골이었습니다 ㅜㅜ 가까이서 본 첼시전 골. 박지성은 세레모니도 너무 멋있는 선수였습니다 ㅎㅎ 이 골은 아마 한일전 역사상 최고의 골로 남을 것 같습니다. 혼자 중앙에서부터 박스까지 돌진에서 골을 넣어버렸죠. 박지성이라는 선수가 한국인이라는 게 너무나 자랑스러웠던 순간 ㄷㄷㄷ 이날 소위 말하는 '국뽕'을 치사량 이상으로 맞으신 분이 엄청 많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ㅋㅋㅋㅋ 우리를 더 취하게 만들었던 것은 골을 넣은 이후의 세레모니였죠. 경기장을 가득 메운 일본 관중들을 스윽 바라보는 '산책 세레모니'! 전혀 자극적인 동작으로 이렇게 세레모니를 멋지게 할 수 있다니 ㅜㅜ 역시 갓지성입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요즘도 박지성 영상을 종종 찾아보곤 한답니다. 정말 행복했고 그리운 시절입니다! https://www.facebook.com/sportsgurukorea/
호나우지뉴의 이니에스타의 일화
레알 마드리드와 엘 클라시코를 맞붙기 며칠전, 한밤중에 호나우디뉴가 잠깐 나보러 만나자고 했다. '안드레아, 지금이 한밤중(새벽 3시)이라는건 알지만 너한테 꼭 이야기해줄게 있었어. 나 6월에 바르셀로나를 떠날거야. 우리 친형이 내가 레알 마드리드 가는걸 합의했어. 미친 일이지만 난 거절할 수 없었어' '넌 아직 어리니까, 이해해 줄 수 있을거야..... 그런데 부탁할게 하나 있어. 라커룸이나 클럽 사람들 어느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진 말아줘. 난 다른 누구보다 널 믿고 있어. 안드레아 잘 자' 그는 저에게 말할 타이밍을 주지 ㅇ낳았어요. 다음날이 됐고 우리 모두 트레이닝장에 갔죠. 그런데 뭔가 나를 둘러싼 이상한 기운을 느꼈어요. 팀원들 모두 지나치게 조용했고 호나우지뉴를 예전처럼 대하지 않았죠. 엘 클라시코 날이 밝았고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로 향했어요. 라커룸에서 갑자기 호나우지뉴가 우리에게 연설을 하기 시작했어요. '오늘은 정말 중요한 경기야. 레알 마드리드는 정말 강한 팀이지만 난 우리가 가족같은 팀이었다는걸 오늘에서야 알게 됐어. 난 지난 저녁동안 모두에게 6월에 팀을 떠날거라고 말했어. 하지만 그 누구도 이를 발설하지 않았지' '그제서야 난 알게 됐어. 우리 모두가 기꺼이 남을 배신하는 것보단 함께 고난을 이겨낼 준비가 됐다는걸. 난 바르셀로나에 오랫동안 남을거야.... 경기장에 들어가 마드리드 놈들에게 한 수 가르쳐주자!' 그리고 그 경기에서 바르셀로나는 호나우지뉴가 2골을 터뜨리며 마드리드 원정에서 3:0 완승을 거둡니다. 베르나베우의 마드리드 팬들은 호나우지뉴의 플레이에 기립박수를 보냈던 놀라운 경기였죠. 이 이야기는 안드레아 이니에스타의 자서전에서 이니에스타가 직접 밝힌 일화 중 하나입니다. 역사적인 경기에는 항상 뒷이야기가 있기 마련인데 역시 이 경기에도 있었군요!
페르난도 토레스의 목숨을 살린 선수들
오늘 아침은 축구 역사상 가장 끔찍한 날 중 하나가 될 뻔한 날이었습니다. 후반전 84분경 토레스와 베르간티뇨스가 헤딩 경합을 하던 중 토레스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단순 기절을 넘어 토레스는 정말 죽을 뻔 했습니다. 순간적으로 혀가 말려들어가 기도를 막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토레스의 상태를 빠르게 알아본 선수들이 있었고 비극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선수들이 조금만 늦게라도 상황을 캐치했다면 우린 다시는 그라운드 위에서 토레스를 못봤을 수도 있습니다. 토레스가 쓰러지자마자 주심에게 항의하다 곧바로 상황을 눈치챈 선수가 있습니다. 이 선수는 곧바로 토레스를 제대로 눕히고 토레스의 얼굴을 봅니다. 그리고 재빠르게 합류한 다른 선수들과 함께 곧 바로 토레스의 입을 벌려 말려들어가는 혓바닥을 필사적으로 잡아 뺍니다. 만약 이 순간을 그대로 방치했다면 일시적으로 산소 공급이 끊긴 토레스는 뇌손상을 입게 됐을겁니다. 다시는 그라운드 위에서 용맹하게 뛰어다니는 토레스를 보지 못했을 겁니다. 토레스의 상태를 가장 빠르게 인식하고 달려든 선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오른쪽 풀백 브르살리코였고 그를 도와 응급조치에 빠르게 합류한 선수들은 가비와 호세 히메네즈였습니다. 토레스의 사고 이 후 언론 보도에서도 브르살리코와 가비의 재빠른 응급처치는 퍼펙트했으며 토레스를 살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가비가 말려들어가는 토레스의 혓바닥을 잡았고 팀닥터들이 바로 투입됐다고 합니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응급처치에 나섰던 히메네즈의 반응으로 알 수 있습니다. 히메네즈는 시종일관 안절부절한 모습이었고 경기가 재개된 이 후에도 멘붕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페르난도 토레스는 가까운 병원으로 후송된 뒤 의식을 되찾았고 걱정하고 있는 팬들에게 바로 트윗을 남겼습니다. "저를 걱정해주셨던 모든 분들의 메시지, 격려에 감사합니다.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빠른 시일 안에 복귀할 수 있길 바랍니다!" 바로 트윗까지 남길 정도면 확실히 응급조치를 빨리해서인지 뇌손상은 거의 없는 모양이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ㅠㅜㅜㅜ
LA 타임스 극찬 "류현진, 역사와 겁없이 맞서고 있다"
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류현진.(사진=노컷뉴스DB) 가벼운 목 부상 뒤 11일 만의 복귀전을 화려하게 장식한 류현진(32·LA 다저스). 7이닝 무실점 쾌투로 시즌 12승째(2패)와 한국과 미국 무대 통산 150승을 달성했다. 류현진은 12일(한국 시각) 미국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메이저리그(MLB) 애리조나와 홈 경기에서 7이닝 4탈삼진 5피안타 1볼넷 무실점 환상투를 펼쳤다. 다저스가 9 대 3으로 이기면서 승리 투수가 됐다. 지난 1일 콜로라도전 이후 목 통증으로 10일짜리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한 이후 첫 등판에서 건재를 과시했다. 최근 두 경기 연속 호투하고도 승리와 인연을 맺지 못한 불운도 날렸다. 특히 올 시즌 22번째 등판에서 평균자책점(ERA)을 1.53에서 1.45까지 낮췄다. 100년이 넘는 MLB 역사에 길이 남을 '괴물' 시즌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권위지 LA 타임스는 이날 승리를 비중있게 다뤘다. '류현진이 흠잡을 데 없는 투구와 팀 승리로 부상자 명단을 떼어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의 첫 문장이 "ERA가 낮아질수록 다저스 좌완 류현진이 더욱 용감하게 역사에 도전한다"는 찬사다. LA 타임스는 "류현진의 ERA는 구단 역사상 최소 20번 이상 선발로 등판한 투수 중 가장 낮은 기록보다 좋은데 브루클린 다저스 시절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루브 마쿼드가 1916년 세운 1.58"이라고 조명했다. 이 매체는 이어 "그 다음 기록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거나 달려가는 전설적인 두 좌완인데 2016년 클레이튼 커쇼의 1.69와 샌디 쿠팩스의 1966년 1.73, 1964년 1.74"라고 덧붙였다. 만약 류현진이 현재 페이스를 이어간다면 다저스 최저 ERA 시즌 기록이라는 금자탑을 세우는 것이다. 류현진은 MLB 전체 역사에도 남을 시즌을 이어가고 있다. 1920년 공인구의 반발력이 향상된 라이브볼 시대 이후 역대 ERA 1위는 1968년 밥 깁슨의 1.12다. 다만 해당 시즌은 투수에게 유리하게 마운드가 현재보다 25cm 정도가 높았다. 그 시즌 리그 전체 ERA가 2.98로 역사상 가장 투고타저 현상이 두드러진 시즌이었다. 이 때문에 이듬해 마운드 높이가 조정됐다. MLB 역대 ERA 2위는 1985년 드와이드 구든(당시 유욕 메츠)의 1.53이다. 마운드 높이가 현재처럼 조정된 가운데 사실상 역대 1위 기록이다. 만약 류현진이 현재 ERA를 유지한다면 MLB 역대 2위 기록이자 사실상 역대 1위 기록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현역 베스트 공격수 (1)
빅리그가 아닌 선수들은 제외했으니 이해바랍니다. 비야짱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레알 마드리드) 7번의 대명사, 골무원 호날두입니다. 매시즌 득점왕후보, 발롱도르후보로 손꼽히는 아주 대단한 선수입니다. 메시와 현재 축구계를 양분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죠. 호날두에 대해선 길게 쓰지 않겠습니다. 딱히 더 이상 설명할게 없는 슈퍼스타이고 팬심이 터지면 계속 써내려서 끝이 안날듯 싶네요 파예 개ㅅ... 리오넬 메시 (FC 바르셀로나) 마드리드에 호날두가 있다면 바르셀로나에는 메시가 있죠. 최초로 4연속 발롱도르수상, 5회 수상, 라리가 한시즌 최다골, 한 해 최다골 모두 메시의 기록입니다. 국가대표은퇴가 매우 아쉬운 선수이고 세금 꼬박꼬박 잘 납부하기를 바립니다. 카림 벤제마 (레알 마드리드) 나쁜형 벤제마입니다. 유로2016때 벤제마가 있었다면 우승국은 아마 프랑스일수도 있었을거 같습니다. 만약은 없지만 그래도 아쉽습니다. 연계, 슛 모두 최정상급이고 몇년동안 레알마드리드의 붙박이 9번이 벤제마의 실력을 증명하고 있는거 같네요. 아무쪼록 그 사건이 잘 해결되어 레알에서 오래오래 뛰길 바래봅니다. 루이스 수아레즈 (FC 바르셀로나) 지난 15-16시즌 호날두를 제치고 40골로 득점왕을 차지한 수아레즈입니다. 현 시점 바르셀로나의 에이스는 수아레즈라고 생각됩니다. 지난시즌 메시, 네이마르가 부진한 경기가 생각보다 좀 있었는데 그때마다 바르셀로나를 지탱해준건 수아레즈덕분이라 봅니다. 이번 발롱도르 최종후보3인중 한명으로 평가받고있습니다. 가레스 베일 (레알 마드리드) 작은형 베일입니다. 호날두가 빠질때마다 그 역할을 채워주고, 레알마드리드가 최근 2번의 빅이어를 들어올릴때 에이스역할을 톡톡히 해준 선수입니다. 이번 유로2016을 통해 마음껏 기량을 보여주었고 현시점 최고이적료의 사나이기도 합니다. 베일도 길게 쓰지않겠습니다. 팬심이 두근두근 하네요. 네이마르 (FC 바르셀로나) 메시와 호날두의 시대가 끝나면 차세대 발롱도르후보로 꼽히는 네이마르입니다. 지금 브라질국대의 어찌보면 유일한 월드클래스입니다. 네이마르의 플레이를보면 호나우지뉴와 상당히 흡사합니다. 화려한 개인기를 바탕으로 경기를 풀어가는모습은 상당히 아름다워 보입니다. 네이마르가 바르샤의 10번을 사용하게 될지 지켜보는것도 상당히 기대가 되네요. 이번에는 소위말하는 BBC와 MSN을 소개해봤습니다. 담에는 이 6명의 선수를 제외한 개인적인 베스트선수를 소개해 볼까합니다. 가볍게 봐주세욧
KOT가 선정한 프리킥 스페셜리스트 TOP 10
현란한 드리블, 멋진 팀플레이등으로 얻어낸 골들도 멋있지만, 직접 프리킥으로 얻어낸 골 또한 아름답죠? 이러한 프리킥에 특화된 장인들을 알아보았습니다. 'KOT가 선정한 프리킥 스페셜리스트 TOP 10' 10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우리형', 'CR7'으로 대변되는 호날두의 상품성은 외모, 실력 등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되었지만, 절륜한 프리킥 실력도 호날두라는 선수의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렸다고 생각합니다. 9위.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비안코네리의 영원한 No.10 판타지스타가 가져야 할 필수덕목인 테크닉과 더불어 프리킥 실력까지 갖고 있었습니다. 8위. 로베르토 바지오 토티, 델피에로 이전의 판타지스타. 본 에디터가 해외축구를 처음 접했을 때는 이 선수의 전성기가 끝나있던 상태였지만, 그나마 뒤늦게라도 구해 본 영상에서는 이 선수의 위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한 5~8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바지오의 전성기를 조금 더 가깝게 지켜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너무나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7위. 데이비드 베컴 프리킥의 대가 백암 선생님. 언제나 잉글랜드가 위기에 처하면 프리킥으로 팀을 구해내곤 하셨죠. 위 영상도 2002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93분에 터진 골이죠. 팀을 월드컵 본선에 올려보내는 극적인 득점이었습니다. 물론, 국대에서의 PK 성공률은 말하기 싫습니다 :) 6위. 호나우지뉴 '외계인' 이 한 단어로 정리하겠습니다. 5위. 리오넬 메시 사실 프로 초창기때는 프리킥 실력이 돋보이진 않았죠? '신'이 프리킥마저 장착한 케이스라 할 수 있겠습니다. 4위. 디에고 마라도나 메시 이전의 축구 신. 펠레와 더불어 세계 축구계에서 No.1 논쟁에 나오시는 분인데요, 아르헨티나 감독을 하던 시절에도 프리킥 실력은 상당했습니다 ㄷㄷ;;; 3위. 호베르투 카를로스 UFO 슛만 많이 보시니 식상하셨죠? 브라질에서 뛰던 시절의 프리킥 영상을 준비했습니다. 저 특유의 왼발은 그야말로 살상무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2위. 시니사 미하일로비치 프리킥으로 한 경기 해트트릭을 기록했던 선수죠. 감독으로서는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축구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드는 왼발 프리키커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위. 주닝요 페르남부카누 '주님요', '무회전 프리키커', '올림피크 리옹의 레전드' 리옹 시절 기록한 75골 중 무려 44골이 프리킥 골이었습니다. ㄷㄷ;;;; 지난 2006년 월드컵에서는 무회전 중거리슛으로 일본 국대에게 참교육을 시전하셨죠. 좋아요와 댓글은 본 에디터에게 큰 힘이 된다능..ㅎㅎ 데헷 :) https://www.facebook.com/sportsgurukorea/
박주호가 도르트문트를 떠나지 않는 이유
이번 여름에도 박주호 선수는 이적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시즌 리그에서 5경기에 출전하는데 그쳤음에도 박주호 선수는 도르트문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내용은 네이버 라디오인 풋볼앤토크에서 박문성 위원이 직접 박주호 선수에게 들은 내용을 밝힌 부분입니다. 박주호는 도르트문트 이적 당시 고려했던 사항이 주전 출전이 아니었습니다. 본인이 직접 도르트문트에서 10경기 내외로 뛰면 족하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당시 도르트문트 말고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팀에서도 오퍼가 들어왔는데 거절하고 도르트문트를 선택했다고 하네요. 도르트문트에 가서 주전으로 뛰고 팀을 바꿔 놓는 것을 목표로 한게 아니라 은퇴 이 후에 삶을 위해 여러가지 경험을 하려고 빅클럽인 도르트문트로 이적한 것이라고 합니다. 유럽의 강팀이 어떻게 훈련을 하고 운영되는지 알고 싶었다고 합니다. 중장기적으로 선수 은퇴 이 후의 삶을 위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상황인거죠. 출처 풋볼앤토크 라디오 이번 시즌도 본인이 뛰는 자리에 추가로 선수가 영입됐지만 남은걸 보면 아직 배우고 경험할 것이 더 많은 모양입니다. 국가적으로 보자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하나가 될 순 있지만 개인으로 보자면 축구 선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고 만들어 가는 모습이 멋있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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