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lfh7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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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사소한 거짓말'에서 시작되었다.

"이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니콜 키드먼과 리드 위더스푼이 주연과 제작을 맡는 HBO 방영 확정 미드 <Big little lies>의
원작 소설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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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 봉선 (呂布 奉先) A.D.156?~198
"삼국지 최고의 장수는 누구인가?" 위 질문에 대해서는 여러 장수들이 저마다의 가치관에 따라 언급된다. 카리스마의 관우, 미션 임파서블 조운, 파워의 대명사 허저, 인간흉기 문앙, 소패왕 손책 등등.... 그러나 "삼국지 최강의 장수"가 누구인지 묻는 질문의 답은 "여포"로 통한다. 오늘은 바로 이 최강의 사나이에 대해 다룬다. 병주 오원군 구원현(중국 산시성 타이위안 인근) 출신인데, 이 곳은 지금의 네이멍구(내몽골) 자치구 인근이며 후한 말기의 이 곳은 여러 기마 유목민족들이 한창 땅따먹기를 하던 지역이다. 그러다보니 인간을 넘어서는 극강의 무력묘사에 곁들여 이민족 출신이란 설도 돌았으나 일절 근거가 없고 전반적 사료들을 취합해 볼 때... 역시 한족임이 맞다.(혼혈의 가능성은 없지 않지) 더구나 당시의 유목민족들은 후한에서는 대항해시대 당시의 아메리카 원주민들, 남북전쟁 이전의 흑인노예들 못지 않은 상종 못할 미개인으로 천대받던 시절인지라.... 정말 이쪽 혈통인 여포가 암만 무력깡패인들 저런 좋은 대우 받았을 리도 없다. 그리고 사망시점은 기록이 있지만 출생시점은 기록에 없는데, 전반적인 활약도나 묘사들을 종합해보면 대략 156년쯤이 아닐까 하는 설이 제기되고는 있다. 삼국지 내에서 여포의 무력 외에 또 하나 여포의 이미지는 바로 "패륜아", "개쓰레기", "호로새끼"등인데, 걸핏하면 행해졌던 배신, 특히나 아들을 자처하며 모시던 주군을 둘이나 배신.. 그것도 그냥 배신도 아니고 직접 살해한 노답막장으로 그려진다. 허나 사실 정원을 모신건 맞으나 호부호자 하던 사이는 아니고 그냥 단순한 비즈니스적 상하관계였던걸 나관중이 진정한 악역을 맡기고자 각색한 것. 그러나 아래 다시 언급할테지만, 비록 과장된 기미가 없진 않으나 분명 성격적 결함은 꽤나 있던 양반이였다. 참고로 이 때 동탁이 여포를 스카웃 제의하며 제시한 "적토마"가 첫 등장하는데, 이 또한 나관중이 가미한 픽션으로... 기록에 여포가 적토마를 탔다는 짧막한 내용만 있을 뿐, 누가 언제 지급했는지는 일절 언급이 없다. 여포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인 "방천화극" 이것도 후대에서나 쓰인 무기로 당시의 여포는 그냥 일반 마상 찌르기용 긴 창을 썼던 걸로 보여진다. "초선과의 로맨스"가 유명한데, 초선은 애초에 있지도 않은 상상 속 인물이고 여포가 한 번 동탁의 시중 드는 시녀와 썸 탄 적이 있는데 이게 모티브가 된 듯.. 이걸 알아차린 동탁이 빡침을 못 참고 여포에게 수극(던지기용 소형창)을 던진 일이 있는데, 이날부터 둘 사이가 틀어지긴 했다. 각종 미디어에는 구레나룻과 눈썹 날리는 터프가이마초상남자에 미남으로 묘사되나 여포가 미남이란 역사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어쩌다 저리 액션배우 몽타주가 되었는지는 모르나, 저 인상착의들이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전형적 터프가이상이라는 점을 볼 때 역시 코에이에서 창작해낸 얼굴인듯 싶다.. 남겨진 몇몇 그의 초상화에서 모두 수염없이 그려졌기에 그런지 대부분 말끔한 묘사가 특징. 여포의 수 많은 트레이드 마크들 중 하나로 '더듬이'가 있는데, 저건 자금관(紫金冠) 이라고 하며, 여포는 답답하다는 이유로 전장에서 투구를 잘 쓰지 않았고 평상시에 착용하는 저 자금관을 그대로 쓴 체 나가곤 했다고 한다. 그리고 삼국지연의가 좀 다이나믹하게 묘사해서 그렇지, 여포급의 고위장수가 사실 전장 한복판에서 직접 적병을 베고 찌를 일은 잘 없는데... 여기서 또 반전이, 여포는 실제로도 자신이 앞장서 적진으로 파고들기를 숱하게 했던 몇 안되는 장수들 중 하나였다. (그 외에 손책, 마초 등이 있었음.) 여포는 여러모로 항우의 하위호환 느낌. 기록들을 살펴봐도 정말 강력한 장수였던건 맞았던 듯.. 특히 마술, 궁술, 창술, 검술 등 무예 전반에 능통한데다 완력도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삼국지연의에서 나오듯 유,관,장 삼형제와의 3vs1, 또는 조조와의 격전 당시 조조휘하의 네임드 장수 6명과의 대결은 허구다. 사실... 임요환이나 홍진호같은 사람들도 컴퓨터랑 6vs1로 하면 못 이긴다. 어설픈 장수들과의 6vs1도 굉장한데, 당시 허저와 장합이 포함된 6명과 대등한 대결은 여포 아니라 스티브 로저스도 무리가 아닐 수 없다. 헌데, 놀랍게도 삼국지정사에는 몇 안되는 장수간 일기토 기록에 여포vs곽사의 그것이 기록되어 있는데, 심지어 둘은 여러 합을 비등하게 싸웠다고 전해진다...(곽사 오오) 인간말종같이 그려진 여포는 진정 그런 종자였는가?...ㅎ 성격이 당시의 중국사람들 치고는 상당히 유니크하긴 했다. 일단 여포의 성격적 특징들 중 하나는 "종 잡을 수 없다"였으며, 그 밖에도 단순함, 몹시 이기적이라는 것들이 있다. 자기 하고 싶은건 죽어도 해야 했는데, 설령 그게 스스로 생각해봐도 아니고 틀린 경우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가 하면 주위에서 비위만 잘 맞추고 쓰담쓰담해주면 금새 말을 따랐다고 하며 이 '당근주기'를 잘 활용하여 "우리 여포가 달라졌어요"를 가장 잘 해낸건 정원도, 동탁도 아닌 바로 그의 책사 "진궁". 전형적인 내로남불 스타일에, 자기가 한 건 까맣게 잊고 남이 서운하게 한 것만 따지고, 자기가 열 번 못하다 한 번 잘하면 그 한 번 잘해준 것만으로 생색내는 타입이기도 했다. 성적으로도 개방을 넘어 문란했고, 부하들의 아내를 탐냈으며 심지어 끝내 부하 아내와 동침하는 경우도 많았다. 놀라운건, 부하의 아내와 잠자리 가지며 그 부하에게 사과의 의미로 자신의 아내를 보낸 적도 있다는데, 이는 유구한 중국의 역사상 최초의 스와핑이다. 유비를 처음 만난 당시에도 자기 아내와 첩들을 나체로 유비앞에 앉혀 유비를 당황 시킨 일화도 있고, 저 응대는 여포가 나름 '당신과 친해지고 싶다'는 제스쳐였다. (여포와 친해지고 싶다....) 그렇다면 드는 의문이, 이런 쓰레기에 또라이인 여포를 왜 당시로도 이름 있던 장료, 진궁, 고순 등을 비롯 여러 제장들과 수 만의 병사들이 따랐는가?인데.... 장점도 없잖았던게...ㅎ 여포는 일단 '내 사람'이라 느껴지면 일절 주종관계 개의치 않고 정말 격의없이 잘 대해준거 같다. 뭔가 먹다가 그게 꽤 맛있다 느껴지면 몇 개 더 챙겨서 자신이 좋아하는 장수들에게 직접 가져다 주기도 했으며, 집안일이나 개인적 고민같은 것도 친하다 싶은 부하들 불러서 속터놓고 말하기도 했다. 부하들과 술 마신 후에는 진정 상하없이 농담따먹기에 웃고 떠들었으며 이러한 소탈해 보임은 당시 철저하고 엄정하던 주종관계 및 주군에 대한 깎듯함에 어긋날 시 자칫 목도 날아가던 세상이라 부하들이 여포에게 거리감 없이 친근함 느낄 수 있는 큰 장점이였다. 게다가 사람이 단순해 그런지, 스스로 잘못이라 인지하면 사과도 잘 했다. 그리고 이게 꼭 좋다 할 수는 없으나 부하장수들을 거의 단속하지 않았다. 약탈을 하건, 사소한 군율을 어기건 대체로 봐주고 넘겼다고 한다. 이러한 여러 부분들을 돌아볼 때, 여포를 따르던 이들은 여타 주군들을 따르는 이들과 달리 주군에 대한 존경이나 두려움, 이익여부보다는 여포가 '좋아서' 따른 것으로 보여진다. 그들 대부분은 여포를 세상이 어찌 보는지 이미 알고 있었고, 자신들의 주군과 세력의 확장에 한계가 있음도 인지하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충성, 대의보다는 의리와 정으로 여포를 따랐다. 다만, 여포의 패망이 부하들의 배반에서 비롯되었듯.... 이런 존경없는 인간적 정에서 비롯된 관계이다보니 여포와 그런 인간적 링크가 깨지면 바로 그 순간부터 여포와의 관계는 무의미 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무력의 화신으로 그려지는 이미지와 달리 풍채가 좋았던건 아닌듯 하다. 의례 맹장들에 붙는 외모에 대한 묘사가 일절 없다. 그리고 놀라운 게, 별도의 무예나 근력을 위한 단련이 일절 없었다고 한다. 적토마로 유명하지만 무조건 적토마만 타던 건 아니고 서너 마리의 말들을 번갈아 탔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말 의외지만... 그리고 안어울리고 믿기지도 않지만, 이전에 말했던 배멀미를 하는 수군도독 주유처럼, 천하무적 맹장 여포는 "겁이 많았다"고 한다. .. 적병의 후방 기습, 매복 이런 예상 힘든 변수에 대해 몹시 겁을 냈고 전투 중 입을 부상의 가능성에도 상당히 겁을 냈으며 (그럼 투구를 써...) 조조에게 잡히고나서 자신이 죽는 건 아닌지를 굉장히 두려워 하여 조조에게 체신도 잊고 목숨구걸을 했다. 엄청난 색욕가였는데도 후사에 대한 기록이 없다. 당시 대체로 일찍 혼인 후 일찍 자녀를 가졌는데, 여포같이 고위장수이자 한 세력의 수령이 자녀기록이 없는건 좀 의아하다.(설마...) 사람 잘 보고 사람 잘 다루기로 최고인 유비에게 첫 1패를 안겨주신 장본인이다. ㅋㅋㅋ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말할 때, 자기이름을 붙이는 특이한 화법을 갖고 있었다.(홍석천?...) Ex.) 이 여포는 그 계책에 반대한다. 나 여포가 배가 고프구나...
정욱 중덕 (程昱 仲德) A.D.141 ~ 220
난 여기 접속해서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대략 평균 연령대가 어찌 되는지를 잘 모르겠다만... 삼국지를 좋아하되,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이면 왠지 삼국지를 처음 책(만화책)으로 접했을 확률이 높겠고, 나이가 좀 적은 분들이라면 아무래도 게임으로 먼저 접하다 흥미가 커지며 그 후에 책을 접하지 않았을까 싶다. 난 삼국지를 처음 책으로 접하다 꽤 시간 흘러 게임을 해보게 되었는데(KOEI 三國志2) 당시 상당히 충격적인 부분은 바로 "능력치" 였다... 사실.. 게임속 인물들의 능력치를 접하기까지 책이나 만화속에서는 일정 레벨 이상의 네임드 인물들의 우열을 가려내기가 상당히 어렵다. 주유와 순욱 중 누가 더 뛰어난지, 장료와 방덕 중 누가 더 대단한지, 이건 알길이 없고 저마다의 상상과 추정으로 가려진다. 그러니 토론도 가능했다. 헌데 이 능력치가 매겨지며 내신등급처럼 인물들의 우열이 가려지게 되었고 이 기준은 투명하지 않음에도 게임 접해본 이들은 이 능력치로 인물들을 판단하게 된다. . . . 오늘의 주인공 "정욱" 역시 그런 능력치 시스템의 나름 피해자가 아닐까 생각해보며 긴 서론을 써본다. 수 많은 삼국지 게임들 있으나 가장 흥한 일본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를 예시해보자면 책사의 우수성을 나타내는 능력치인 "지력"부문에서 정욱은 평균 90~91 가량인데, 그럼 과연 그는 동게임내 지력 평균치가 93~94인 순유나 95~96의 서서나 종회, 가후 등보다 못한 책사였을까?.... . . . 물론, 명확한 정답이야 없겠지만 내 생각에는 저 질문의 대답은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이며, 소설 속이나 게임 속 정욱이 아닌 역사 속의 정욱에 대해 한 번 이야기 해보기로~ 정욱(程昱)은 본명이 아니며, 본명은 "정립(程立)". 그러나 정욱이란 이름이 차명이나 가명은 아니고, 중간에 개명을 한건데 욱은 주군 조조가 지어준 이름! 어차피 당시는 이름으로 부르기보다 주로 자를 불렀으며 연의에는 이런 디테일한 스토리는 안나오니 정욱의 개명전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엥간한 삼국지 빠돌이여도 거의 없다. 정욱 자체가 본인의 활약 및 능력과 별개로 별 다른 팬덤도 없는 비인기 인물이라 더욱...(T-T) . . . 현재의 중국 허난성의 구석진 작은 동아현이란 곳이 정욱이 나고 자란 고향이며, 황건적의 난 당시 지략으로 고향을 지켜내 이미 허난성의 당시 지명이던 연주에서 유명인사였다. 집안도 비교적 괜찮던 부유층이였고 본인의 학식과 지략도 출중하며 당시로는 진짜 어딜 가도 눈에 띄는 "거한" 이였는데.... 역사기록을 보면 8자 3촌으로.. 당시의 도량형을 참고, 현재의 수치로 환산해보면 거의 2m에 가까운 거인이다. 당시에는 좀 키가 꽤 크다 싶으면 일종의 감탄사처럼 "8척 거한"이란 표현을 썼기에, 사료에 8자(척)라 해서 건강검진 때 디지털 신장측정기로 잰거마냥 정확한 8자는 아니였겠지만, 정욱의 기록에는 굳이 8자 뒤에 "3촌"이라는 추가 단위가 붙은 것으로 볼 때 거의 정확한 신장측정이 맞다고 보고 있다. 심지어 덩치도 상당히 좋았다고 하니 지금으로 치면 하승진같은 정도의 덩치로 보였을 듯.. 보통 삼국지보면 힘쓰는 장수들이 덩치좋고 머리쓰는 책사들은 왜소하고 그럴거 같은데, 정욱은 본인이 임관해 있을 당시의 어지간한 위나라 무장들보다 체격이 컸을 듯 싶다. 연주의 유명인사다보니 일찍부터 여기저기서 오퍼를 받았고 첫번째는 후한 말 연주자사였던 "유대" 였는데, 당시의 유대는 한나라의 칙명을 받고 부임한 그냥 공무원 도지사같은 개념으로 와있었고 당시 원소나 공손찬같은 자기의 세력적 홈그라운드에서 터잡은 군벌은 아니였다. 당연히 별 큰 능력이나 야망은 없었고 정욱 역시 아쉬울게 없어 오퍼를 거절한다.(나같아도...;;;) 이후에 유대가 원소와 공손찬이라는 당시의 두 고래 사이에 끼어 난감한 상황 속에 정욱에게 자문 구하고 정욱이 해준 조언을 따르자 어려움 피한 일이 있었는데, 이에 재차 유대는 정욱에 스카웃 제의하나 역시 거절... 이후 유대가 황건적 잔당들 토벌 중 사망(...)하고 비어있던 연주에 진입한 조조가 정욱에 오퍼넣자 바로 응하는데, 이 당시 정욱은 꽤 비판을 받았고 이유는 유대의 청을 두 번이나 거절하며 내세운 이유가 "재야에 그냥 남고싶다" 라는거였는데 조조의 청은 거절없이 바로 응했기에! (나같아도...;;;) 그런데 이미 이때 정욱은 나이가 꽤 있었다. 이 당시가 거의 190년대 중후반이고 정욱은 조조보다 무려 14세 연상이이였으니 거의 50대 초중반의 나이. 후한 말 ~ 삼국시대의 높은 영유아 사망률 탓이라곤 해도 역시 노인사망률도 높아, 평균 수명이 50 안팎이던 시기인점 감안하면 거의 인생 끝자락에 사회생활 시작... . . . 조조가 직접 스카웃한만큼 시작부터 제법 높은자리서 시작은 물론, 초장부터 대활약한다. 여러가지 크고 작은 활약들이 있고 공적을 세우지만 그런건 삼국지 읽어보면 대강 다 비슷하게 실려있고 이 칼럼은 그런 삼국지를 읽어도 잘 모르겠고 세세히 안나오는 개인적 성향 위주니까 안쓸란다ㅋㅋㅋ 게임만 하신 분들 입장에서는 좀 의아할 수 있지만 정욱은 그냥 안전한 후방의 주군곁에서 이런저런 꾀만 내는 전형적인 책사타입이 아니였고, 본인이 직접 전장에 나가 상황 판단하여 병력을 통솔하는데에도 상당한 소질이 있었다. 조조의 네임드 책사들인 순욱, 순유나 곽가와 가후 등이 대개 후방책사들이였던 점으로 비춰, 이는 정욱만의 특징. 임관 초기의 조조는 아직 원소에게 쫄려가며 여포에게 시달려가며 유비를 신경쓰며 원술도 그냥 넘겨볼 수는 없던.... 비록 포텐은 충만할지언정 당장의 세력이 큰 시절은 아니였고 조조가 초기거점 삼은 연주 자체가 사방으로 교통 트인 평야지대라 처신 잘못하면 여러 세력의 다굴을 당하기 최적인 곳이여서... 초반의 정욱은 본인도 전장에 나가 직접 적진을 살펴가며 참전해 공을 쌓았다. 일단 본인의 피지컬도 상당하다보니 무예가 출중하진 않더라도 워낙 또 시기가 시기다보니 어느정도의 기본 호신은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 . 조조 휘하의 대표적인 반유비파 책사였다. 그것도 아주 급진적이라 아직 세력이 크지 않을 때 일찍 유비를 죽여야(?!)한다는 주장을 해왔고, 당시는 뭐든 일단 명분이 중요했는데, 정욱은 그런 명분이 없더라도 일단 찬스오면 죽이고 보자는 식으로 유비에 대한 경계가 극심했는데... 유비의 세력이 소수의 어설픈 떠돌이집단이던 시절부터 줄창 유비살해주장론자였던걸 보면 사람보는 안목도 굉장했다는 증거! 정욱이 조조 휘하에서 공은 정말 많이 세웠다. 그런데 이게 확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정욱은 타자로 치자면 홈런을 치는 슬러거가 아닌 주로 안타와 타율 위주의 교타자같은 타입에 기인한다. 정사내 정욱전이나 여러 위와 관련된 사료들에는 정욱이 결코 순욱, 순유, 곽가, 가후 등에 뒤지는 책사가 아닌데도 삼국지연의 상에서 이렇다할 기억남는 대활약이 없기 때문에 저평가가 되는것 같은데... 연의는 다 알듯 소설이며 팩트전달보다 재미가 먼저다. 그렇다보니 잘잘한 활약이 많은 정욱이 돋보이기에 불리할 수 밖에 없다. . . . 인성이 존니 별로였는지, 내부의 적이 상당히 많았다.... 애초에 연주의 호족집안 출신, 게다가 본인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주군인 조조보다도 14살 연상이니 그가 임관한 당시 어지간한 조조의 휘하들은 문무막론 정욱보다 많이 어리다보니 거기서 오는 꼰대기질... 작전회의시에도 누군가 자기의 의견을 반박하면 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으며, 상대를 비꼬듯 말하기도 잘 했다. 딱히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이도 없었고 자기와 격차가 좀 난다 싶은 이들은 아주 하대했다. 그러다보니 임관 초기부터 위가 건국된 이후까지도 주위의 이런저런 비판상소가 조조와 그 후의 조비에까지 계속 올라왔다. 물론, 일만 잘 하면 여타 프라이빗한 부분은 일절 노터치였던 조조는 흘려들었고 정욱에게도 이와 관련 일절 말이 없었다. 그런 못되먹은 성깔에서 기인한건지 모르겠지만, 조조의 책사들 중 책략에 있어서 가장 인정이 없었다고 한다. 지가 주위 평판 신경 안쓰고 막 산다고 남들도 다 그런줄 아나, 세상의 평판을 무시한 지극히 실리적인 제안을 많이 했다. 당장 위에 언급된 유비살해만 봐도 그냥 일단 죽이고 보자는 식이였는데... 조조 역시 전형적인 실리주의자라고는 해도 그때껏 자기와 자기세력에게 별 악영향도 없고 인망도 높던 유비를 다짜고짜 죽였다가는 뭔 소리를 들을지 몰라 속으로는 맞다고 여겨도 감히 실행에 옮기진 못 했다. 정욱이야 아무리 날고 긴들 그냥 지금으로 치면 "직원", 조조는 "사장" 이였던건데, 직원과 사장은 능력여하 떠나 서로의 시야나 관점이 다를 수 밖에 없다.. . . . 그리고 그 당시에 세상의 "평판"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중요하디 중요한 요소였다. 저 당시 중국은 무정부상태나 진배없던 후한 말, 그리고 황건적의 난과 각지의 군웅할거 등 삼국시대 정립이 되기까지 말 그대로 "개판 of the 개판" 이였기에 사람들이 막 살았다. 그렇기에 그 와중에도 대의명분과 정의 등의 고결한 가치를 소신삼아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자기가 위험해 지더라도 저런 신념을 지키는 이들은 존경과 우러름을 받았다. 그리고 나름의 인재라 불릴만한 이들 역시, 자기한테 얼마줄지, 뭐해줄지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옳은 주군 아래, 바른 일을 한다는 명분을 따라 임관하는 경우도 많았다. 당연히 세력이 엇비슷하면 무조건 반드시 꼭 명분이 앞서고 평판이 좋은 이를 따랐다. 더구나 무장들보다 많이 배우고 공부한 문관들의 경우, 이런 현상이 심했으며, 아무리 무력이 중요하던 시절이나 현실은 게임과 달라 좋은 무장보다 더 필요하고 또 부족했던게 좋은 문관(행정가, 책사 등)이였다.. 예를 들어, 장수가 오호대장군 + 책사가 당신네 회사의 당신 맞고참인 쪽과 장수가 당신네 회사의 당신 맞고참 + 책사가 제갈량 & 방통이면 후자가 전투에서 승리할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다. . . . 그러다보니 평판이 나쁘면 인재가 모이지 않고, 병력징집에도 어려움을 겪으며, 호족들의 물질적 지원 및 백성들 대상 세수확보까지 여러모로 어려움이 따른다. 게다가 전황이 불리해지면 이탈자나 배반자도 높은 확률로 다수가 생겨나 조금만 불리해도 세력와해가 가속된다. 심하면 군주의 신변안전도 보장이 어려워진다. 이렇게 평판이 몹시 중요하던 시기에 그런건 싹 치우고 목적지향성이 과도한 경우가 많았던 정욱의 책략이 반려되거나 다른 책사의 보완책과 더불어지는 경우가 꽤 있었던거 같다. 그러고보면 정욱도 주인을 잘 만난거다. 유비나 손권 휘하였다면 중용받지 못했을거고 원소나 원술을 모셨으면 본인의 목숨도 위험한 상황을 맞았을 수 있었겠으며 동탁을 따랐다면 인성개막장의 동탁에 인정없는 정욱의 책략이 더해지며 레드스컬 아래의 졸라박사같이 되었을 듯.... 늦은 나이에 조조 휘하에 들어가긴 했으나, 그만큼 또 오래 살아서 일흔 아홉에 사망하여 천수를 누렸다... 인성 더러운 이들이 한때는 잘 나가다가도 막판에 험한 꼴 겪거나 비참한 말로를 겪는 경우가 있지만 다행히 정욱은 본인이 권력을 잃거나 하진 않아 고위직에 몸 담다 편히 죽었다. . . . 우리 주위에도 돌아보면 정욱같은 타입의 모진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 정욱처럼 실력과 재능이 겸비되면 뒤에서나 속으로는 욕해도 앞에서는 모두 그와 친하게 지내려 하거나 잘 하려고 한다. 역시 정욱같은 이들도 자신이 부진해지는 순간 바로 나락이란 걸 알기에, 더 악착같이 일하고 목표를 향해 수단방법, 물불 가리지 않고 나아간다. 그러다보니 계속 평판이 좋을 수 없는 악순환이..... 어쩌면 그 능력과 실적에도 불구하고 연의에서 좋은 대우를 못 받고 또 그 탓으로 현세에도 비인기 인물이 된 것 역시 그의 인성탓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황개 공복 (黃蓋 公覆) A.D.? ~ ?
지난번의 진도에 이어, 이번에도 남아있는 역사기록이 그리 많지 않은 인물을 또 한 번 재조명해 본다. 물론, 아예 연의 자체에서 스킵당해버린 진도보다야 형편이 낫긴 하지만... 그나저나 업데이트 후, 오히려 글쓰기가 별로가 되어버린 빙글이지만 그래도 계속 되는 이 칼럼 속 오늘의 주인공! 오의 3대 주군을 섬긴 "황개"에 대해 다뤄본다. 형주의 영릉 지역 출신이며, 조상 중 남양태수를 지낸 황자렴이 있었지만... 중간에 뭔 일이 있었던건지, 당장 최소한 황개의 부모대부터는 몹시 가난했고 그나마 그런 가난하던 부모마져 유년시절에 여의는 바람에 거의 거지나 진배없이 찢어지는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원체 후한 말 자체가 나라가 부도났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심지어 황개의 유년시절에는 대대적인 메뚜기때의 발생과 가뭄 등이 겹쳐 아마겟돈에 비견될 흉년과 기근이 있었던 모양이다. .... 후한 말의 평균 수명이 고작 40대 초반이였던 큰 이유가 영유아 및 어린이의 사망률이 비약적으로 높았던 탓임을 감안할 때, 부모가 다 계셔도 아사하거나 병들어 어린아이가 죽어나가는 마당에 고아라는 치명적 핸디캡을 갖고도 살아남은 슈퍼 차일드 황개였다. 그렇게 목숨만 부지해도 대단한 마당에, 어린이 황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리도 가난했다면서 어디서 구했는지 책과 병법서를 손에서 놓지 않고 늘 일하는 틈틈이 읽었다고 오서의 그의 열전에 기록이 남아있다. 그렇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던 황개는 군에 입대하여 하급관리가 되었고 이후 역시 열심히 군생활하던 황개는 당시 영릉태수의 추천을 받아 효렴으로 천거되어 공직자가 되는데.... 여기에서 어떤 분들은 '읭? 군인이 되었다며, 군인은 공직자 아닌감??' 하실 수 있는데, 후한 말의 군인과 지금 현대 한국 군대는 개념이 다른지라... 지금의 군은 오로지 국가가 그 소집 및 통솔권을 갖고 있지만 당시의 후한에서의 '군인'은 일부 중앙 황실 직속부대들을 제외하면 모두 지방의 권력을 누리던 군벌들의 사병들이였다. 물론, 이 군벌들도 명목상 황실에서 임명한 공직자들이긴 했지만, 황실의 영향력이 거의 전무했고 직위도 세습을 하거나 당사자가 자신의 임의로 후임을 정하는 등... 개판이였다. 그래서 황개가 사회생활 시작하며 몸 담았던 '군인'은 조정의 공식적 벼슬생활은 아니였으나 '효렴'은 황실에서 인정하는 '공식적' 벼슬이였다. 이렇게 차곡차곡 앞을 향해 가던 황개는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어렵게 이룬 것들을 뒤로 한 체... 고향을 지키고자 고향으로 돌아왔고 그 와중에 그의 남은 생을 변화시킬 사람인 "손견"을 만나 그의 휘하로 들어간다. 과묵하지만 할 말은 했고, 갖은 고생을 다하며 자수성가한 무장답게 기본기도 탄탄했던 황개를 아꼈던 손견이였고, 황개 역시 그런 손견의 최측근에서 전투에 임했으며 그렇게 황개는 여기저기 손견 따라 군공을 쌓았고 특히 손견의 위명이 전국구로 떨치는 계기가 된 "동탁토벌전"에서 특히 큰 공을 세우며 자신 또한 손견 휘하 제일의 장수라는 명성을 얻어가게 된다. 손견의 사망 후, 그의 장남 손책을 모시며 손책이 강남 일대에서 어줍잖은 애들 상대로 무쌍을 펼칠 때 함께 했고 손책이 태사자와 맞다이를 붙던 당시에도 손책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유표세력과의 전투도 참전.... 손책 사후, 손책의 동생 손권을 모시면서는 주로 당시 손가의 본거지였던 양주(揚州)의 남동쪽 산악지대에 터잡고 살던 산월족들과의 대치에서 주로 공적을 세웠다. 이후 "적벽대전"에서 주유에게 "화공"을 권하고 그 자신이 거짓항복(사항계)을 하여 조조의 본진에 불쏘시개가 될 몽충선들을 이끌고 돌진하는 선봉역할을 맡으며 본인의 리즈시절을 맞이한다. 적벽대전 이후에는 다시 형주 무릉지역의 치안을 맡아, "무릉만"이라는 역시 또 소수민족들을 상대로 방어 및 토벌의 임무를 맡으며 손가의 주인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쉴틈없고 한결같이 굴려진 끝에 병을 얻어 앓다 사망. .. 여기까지가 나름 대단하기도 했지만 그닥 인상 깊을 건 없어 보이고 그냥그냥 별 재미없이 살았던 군인 황개의 일대기다. 기록의 부족 탓도 없진 않지만 아무튼 뭔가.... 쓰는 나도 지루할 재미없는 일대기를 가진 황개. 왠지 사람도 재미없는 사람이였을거 같은 황개. 인천 인근 시골 한 고물상의 똥개이름이던 황개. 삼국지를 대표하는 "노장"의 아이콘은 누가 뭐래도 역시 "황충"이지만, 사실 삼국지의 실질적인 첫번째 네임드 노장은 바로 황개다. 허나 역사서에서 그의 생몰연대가 모두 누락되어 있는데, 그의 열전 및 정사와 오서 등의 기록들만 볼 때.... 고생스럽고 가난한 삶 탓에 관직에 나선 자체가 당시로서 비교적 늦은 나이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그가 손견을 시작, 손책을 거쳐 손권을 모시다 사망 추정시기까지의 활약기간이 대략 어림잡아 30년 내외 정도다. 그러다보니 사망 무렵의 나이는 당시의 평균 성인사망수명 기준으로도 그리 짧게 산 것은 아니였을 것이다. 황개의 노장 이미지가 각인된 데에는 결정적으로 그가 가장 큰 활약을 했던 "적벽대전" 당시에 노장이였던 이유가 크고 아마 그 무렵의 황개는 약 50대 후반 무렵으로 역사가들은 추정한다. 우리나라만 해도 불과 10여 년 전까지는 60세부터가 노인의 영역에 진입하는 단계로 봤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1800여 년 전에 60세에 가까운 나이면 당연히 노인이나 진배없었으며 심지어 그의 포지션은 육체능력이 매우 중요한 야전군이였던 것을 감안하면 50대 후반 이상의 나이는 분명히 노장의 기준에 부족이 없다. 소수민족들 상대로는 타율이 나쁘지 않았던 그였고, 한족들과의 전투에서도 숱한 공적이 있는 그지만, 기록만으로 볼 때는 독자적으로 일군을 맡아 통솔한 사령관의 경력도... 선봉을 맡아 용맹과 무예로 적진을 가르며 무쌍을 벌인 이력도 거의 없는 편에... 마냥 전장에서만 구르기보다 이런저런 전투와 군사관련 행정과 보급 및 장졸훈련 등의 궂은 일 ~ 서포트 임무도 매우 많이 맡은 듯 하며 오군 내에서의 포지션은 위의 하후돈같은 일종의 "행정보급관" 스러운 위치였다고 보여진다. 적벽대전에서의 사항계와 선봉장 역할을 빼면 딱히 맹활약의 기록 없는 그가 게임 등 각종 매체들 속에서 제법 무력 관련 수치가 높은 이유도 아마 손가 3대를 섬기며 궂은일이나 소수민족들 상대일지언정 상당히 야전에서의 임무를 많이 맡고 그 와중에도 별 다른 부상이력 없이 잘 이행한 덕이 큰 듯 싶다. 체구는 그리 크진 않았던거 같은데, 혹독한 어린시절을 지나 수십 여 년을 전장에서 구르면서도 별 다른 부상 및 질병의 이력이 없는 강골이였고 오군 내에서도 꽤나 힘 쓰는 편이였던 장수였다. 연의에서 적벽대전을 앞두고 손권을 설득하러 온 제갈량이 오의 재사들과 썰전을 벌이며 죄다 조지고 있을 때, 이를 중재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애초에 저 썰전 자체가 허구이기에 응당 그의 등장도 허구. 적벽대전에서 사항계의 리얼리티를 높이고자, 주유에게 고의로 개긴 후, 매타작을 당하는 고육지책을 쓰는 부분 또한 허구다. 물론, 실제로 그랬다면 더욱 확실했겠지만 대신 황개도 남은 여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야 했을 것이고.. 또 굳이 그렇게까지 안했음에도 결국 조조는 속았다. 참고로 연의에서는 황개의 투항서를 감택이 조조에게 전달한 것으로 나오나, 그 일은 감택이 하지 않았다. 덧붙여 고육지책 관해 첨부설명을 하자면, 연의에서 황개가 장을 맞는 씬이 있지만.... 그 형벌로서의 장을 맞는 것은 여러분들이 학창시절 엎드려 뻗친 후, 학주에게 각목으로 맞은 빠따와는 그 유를 달리하여... 일반인의 경우, 어지간히 맷집이 좋다한들 대체로 10대 내외선에서 혼절할만큼 극심한 고통이며, 연의내용처럼 수십 여 대를 맞게 된다면 황개가 아니라 캡틴 아메리카가 맞아도 사실상 하반신 불구, 더불어 성적능력조차 상실하거나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를만큼 극형이다. 이리저리 쓰임이 많은 황개였지만 생전에 최고 관직이 "편장군"에 그친 점을 보면.. 일단 오의 본격적 성장세가 시작된 손권 시절의 복무가 짧기도 했지만, 경력 대비 확실한 미션을 맡은 이력이 그리 많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사 및 열전 등의 기록들을 보면, 화려함은 없더라도 예나 지금이나 어느 조직에서건 반드시 필요한 인재였다. 그는 공명정대 및 청렴하였고, 경중을 떠나 주어진 임무는 사력을 다하였으며 무리한 군공을 탐하지도, 하사된 포상에 대한 아쉬움을 표한 적도 없었고 한결같은 충심을 지녔으며 상명하복에 철저하여 자신보다 경력과 나이가 적은 상관일지라도 일절 단정한 모습을 보였다. 황개와 비슷한 짬밥이였던 정보가 자신의 아들뻘에 불과한 주유와 공동으로 도독에 임명되며 보직 및 주유에 대해 초반, 큰 불만을 표한 것과 대비되는 면이다. 전반적으로 황개의 성향은 맨체스터Utd. 시절의 "박지성"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크게 눈에 띄진 않아도 그 누구못지 않게 중요했고, 어느 포지션에서건 최선을 다해 묵묵히 본분에 임하여, 비록 큰 활약을 하진 않았어도 모두의 존경과 신뢰를 받았기 때문. 삼국지연의에서 그가 쓰는 무기는 "철편"이다. 이름 그대로 풀이하면 "쇠채찍"인데, '채찍'이라하여 인디애나 존스나 여러분들이 SM환타지 플레이 할 때 쓰는 그런 찰싹찰싹하고 휘감기는 채찍이 아니라, 쉽게 말해 '쇠막대기'라고 보면 된다. 베고 찌르고 하는 게 아닌, 쇠의 강도나 무게를 통해 데미지를 입히는 타격계 둔기인 것이다. 그런데 정사나 오서 및 황개의 열전 어디에도 그가 그런 철편을 쓴 기록이 없다. 예전 삼.이.높.에서 무기관련 이야기 다루며 삼국지속 무기들의 대부분이 정작 그 시절에 없던 경우 많다 했지만, 철편은 당장 전한시대... 더 나아가 진나라 때에도 쓰인 기록이 있는 당시의 실존무기는 맞다. 그러나 말 그대로 '쇠막대기'를 들고, 다들 썰고 베고 찌르는 흉기들을 들고 설치는 전장에 황개가 나갔을 거 같진 않다. 물론 황개가 무술의 초고수라면 또 모를까, 그런 고수였음 분명 이리저리 전장에서 폭 넓은 활약이 많았을텐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니고.... 당장 나같아도 쇠막대기 쥐어주며 창칼이 숲을 이루는 전장에 나가라면 못 나갔을 거 같다. 철편은 호신용, 대련용, 치안용, 징벌용 등으로 이리저리 쓰이긴 했으나 여러모로 실전 병기로는 좀 무리가 있기에.... 정말 황개가 고집부리고 전투에 철편을 썼다면 노장이 되기 전 전사했을 확률이 높다. 결국.... 이 또한 당시대의 실존여부 떠나, 나관중이 황개의 기믹에 맞춰 쥐어준 무기인 공산이 큰 셈이다. 정사, 연의 통틀어도 굵직한 화려함은 없는... 그렇기에 분명 그를 다룬 이 카드에도 좋아요나 클립, 댓글이 별로 없을 비인기 종목인 황개. 그러나 진도편에서도 말했듯.... 역사의 승리는 꼭 반드시 눈에 띄는 잘 나가는 이들만의 힘으로만 이룩된 것이 아닌, 이런 눈에 안띄는 곳에서도 주어진 바 최선을 다했던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란 부분을 강조하고자 재미없을지언정 황개편을 다뤘다.
[책추천]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를 보고 읽으면 좋은 책 5
안녕하세요, 책과 더 가까워지는 곳, 플라이북입니다.  올봄, 현존 작가 중 최고 작품가를 기록하고 있는  현대미술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의 아시아 최대 규모 전시가 열리며 미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 전시를 관람하기 전후 작가의 예술관을 이해하면 작품에 대한 공감이 깊어지고 여운도 더 오래 남는데요. 여기,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 세계를 더 깊이 살펴볼 수 있는  세 권의 책을 플라이북이 추천합니다. 01. 다시, 그림이다 마틴 게이퍼드 | 디자인하우스 저명한 미술 평론가 마틴 게이퍼드가  10여 년에 걸쳐 데이비드 호크니와 나눈 대화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회화에 대한 철학관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02. 그림의 역사 데이비드 호크니, 마틴 게이퍼드 | 미진사 드로잉부터 회화, 사진, 영화까지 수천 년간 그림이 어떻게 그리고 왜 만들어졌는지 고찰하는 데이비드 호크니와 마틴 게이퍼드의 예술적 탐구를 담은 책입니다. 03. 데이비드 호크니 마르코 리빙스턴 | 시공아트 유화, 수채화, 판화, 무대 디자인, 사진 콜라주까지 1960년대부터 시작된 데이비드 호크니의 방대한 40여년 작품 세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입니다. 플라이북 앱 바로가기 > http://me2.do/xOFTiTre
[책추천] 노트르담 대성당에 대해 알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은 책 3
안녕하세요, 책과 더 가까워지는 곳, 플라이북입니다.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마에 휩싸이며  이를 지켜보는 프랑스 시민들은 물론 세계인들의 마음이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 마르셀 프루스트 등  문학의 거장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던 노트르담 대성당. 여기, 노트르담 대성당을 만날 수 있는 세 권의 책을 추천하며 하루빨리 그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길 기도해봅니다. 01. 파리의 노트르담 빅토르 위고 | 민음사 15세기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배경으로  성당의 종지기인 꼽추 카지모도와 집시 처녀 라 에스메랄다의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02. 로맨틱, 파리 데이비드 다우니 | 올댓북스 미국에서 태어나 파리의 매력에 빠져 이주해온 저자가 낭만주의 예술가들의 삶과 사랑을 주제로 노트르담 대성당을 비롯한 파리의 곳곳을 돌아보며 쓴 여행기입니다. 03. 화가들이 사랑한 파리 류승희 | 아트북스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 등이 화폭에 담은 노트르담 대성당 등 명화 속 장소들을 둘러보며 화가들의 작품 소재로 즐겨 다뤄진 파리의 매력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에 대한 더 많은 책을 추천받고 싶다면 - >> http://bit.ly/2ILW8AS
30초 안에 소설 쓰는 법
글을 쓰겠다고 다짐을 할때마다 썼따면 벌써 출판을 하고도 남았을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찾아본 짤이에여 좋은 글도 있어서 덧붙입니다! 글쓰기를 고민하는 분들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여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글을 쓰는 것이 정 어렵다면, 좋은 글을 써야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대충 쓰자!  품질을 떨어뜨려도 된다. 써서는 안 된다고 했던 상투적인 표현이나 수십 번도 더 봤던 거들떠보기도 싫은 이야기도 어쩔 수 없다면 눈 딱 감고 갖다써도 좋다. 그렇게 해서 넝마 같은 글일지언정 하여간 써나가는 것이다. '내가 이러려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나' 하는 후회라든가. '이렇게 볼품없게 쓰면 안 되는데' 하는 걱정이 들지라도 우선 대강대상 어떻게든 버텨내면서 쓰는 것이다. 양심이 있고 본능이 있다면 그런 중에도 조금씩은 덜 썩은 글을 쓰게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하면서 일단 이글만 후딱 써서 마치고 그 다음에 축하 파티를 하기 위해 클럽에 가든, 뷔페식당에 가서 배터지게 먹든, 스무 시간 동안 잠을 자든, 뭐든 하자는 결심으로 하여간 계획대로, 목표한 대로 밀고 나간다.  역시 우리에게는 컴퓨터와 워드 프로세서라는 현대 기술의 산물이 있기 때문에 이 방법은 썩 괜찮다. 일단 개떡같이 글을 써놓고 나중에 다시 뒤돌아보면서 찰떡같이 다듬으면 된다. 컴퓨터에 저장되는 글은 나중에 고쳐도 티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글을 쓰는 것보다 개떡같은 내용이라도 뭔가가 있는 상태에서 고치고 뺴고 더해가는것이 더 쉽다. 뭐라도 내가 써놓은 글이 있으면 대체로 쉬워져도 훨씬 쉬워진다. 구체적인 것이 눈앞에 이미 펼쳐쳐 있으니 목표를 세우고 일정을 관리하고 의욕을 갖기도 더 쉽다. 개떡 같더라도 좀 쓰다 보면 서서히 리듬을 타게 되고 흥이 오르면서 점점 애착이 생기고 다시 좋은 글을 열심히 쓰게 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그래도 일단 써라' 방책을 쓰기 위해 잠시 글의 품질을 떨어뜨리고 쉽게 넘어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 얼마든지 나중에 다시 고치면 된다.  그리고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도,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어차피 항상 최고로 멋진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충 때워나간 뒤에, 나중에 고치고 또 고쳐서 수습한 정도의 글이라면 일단은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거창한 글을 쓰겠다고 시작했다가 무슨 글을 쓸지 계획을 세우며 이런저런 개요나 줄거리를 짜거나, 앞부분을 조금 쓰다가 떄려치우고 마는 일은 아주 흔하다. 나 역시 아직까지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지금 내가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컴퓨터에도 앞부분 몇 페이지만 쓰다가 그만둔 소설이 몇 편이나 버려져 있는지 모른다. 땅속에 심은 씨앗이 자라나 꽃을 피워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그저 언젠가 미래에 피어날 지도 모른다는 기대만 하면서 계속 캄캄하고 차가운 흙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나는 글을 쓰는 실력은 글 하나를 마무리 지을 때 늘어난다고 본다. 4분의 1만 쓰다가 때려치운 글 열 편을 쓰는 것보다 제대로 결말을 지은 글 한 편을 쓰는 것이 더 실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느낄 정도다.  글 한 편을 마무리 짓는 일을 몇 차례 하다 보면 그러지 못하면 깨달을 수 없는 귀중한 것들을 깨달을 수 있다. 내가 어느 정도 분량의 글을 쓰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지, 글의 앞부분, 중간부분, 끝부분을 쓰는 일 중에서 어느 대목에서 가장 힘겨워하는 지, 마감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어떠한지, 글을 쓰는 중에 어떤 일이 생기면 가장 방해받는지,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시작해서 얼마 정도 지나면 시들해지는지, 어쩌다가 의욕이 사그라지는지, 사그라진 의욕을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런 것들을 경험하고 반성하며 돌아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사람마다 다 달라서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는 알기 어렵고, 알 수 없으니 대책을 세우기도 어렵다.  거기에다 마무리된 글에는 운이 좋으면 어디에 팔아먹을 수 있다는 장점 한 가지가 있다. 미완성인 글을 팔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마무리된 글이라면 누군가 새로운 글을 찾고있다고 할 때, 어딘가에 공모전이 있다고 할 때 보낼 수 있다. 좀 못 쓴 글일수도 있고, 좀 잘 쓴 글일수도 있겠지만, 하여간 마무리된 글이라면 보내서 팔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는 있다. 글이 미완성이라서 아예 보내지도 못하는 것에 비해, 마무리된 글이라면 가능성이라는 면에서는 전혀 다르다.  마무리괸 글을 여러 편 쌓아놓으면 듬직하고 뿌듯한 느낌을 맛볼 수 있다. 그 뿌듯함은 참 좋은 감정이다. 그 뿌듯함이 있으면 예전에 쓴 글을 다시 보면서 잘했던 점과 잘못했던 점을 되새기는 일도 좀 더 즐거워진다.  한참을 입으로만 무슨 글을 쓸지 떠들고, 그렇게 하면 어디가 재밌을지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다 보면, 그러다 김이 빠져 실제로 그 글을 쓰는 자체는 귀찮은 일처럼 느껴지는 경우를 여러 차례 겪었다. 그보다는 '이런 거 정말 재밌을 것 같은데, 지금 누구한테 말 할수는 없고, 얼른 써서 보여주고 싶다. 얼른 쓰면 보여줄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당장 말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채로, 조바심과 애타는 마음을 이용해서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열성을 불태워 글을 실제로 쓰는 것이 더 좋다. -곽재식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 ㅡㅡㅡㅡㅡㅡㅡㅡ 첫글자 떼기가 제일 어렵다....ㅇㅈ...
조운 자룡 (趙雲 子龍) A.D.? ~ 229
아오.. 시부랄 다 써놨더만, 뭔 에러가 났는가.. 업로드 누르니 싹 씻은듯이 날아가 처음부터 다시 쓰는 오늘의 주인공새끼는 바로 "조운" 삼국지라는 컨텐츠의 인기가 가장 좋은 동아시아 삼국인 한국, 중국(타이완 포함), 일본은 각기 최고인기 인물이 그 나라의 국민성향 및 역사적 특성에 따라 다른데, 중국 : 이미 신격화된 "관우" 한국 : 전통의 문(文) 숭배 영향인지 "제갈량" 반면, 삼국지를 가장 상업적 컨텐츠로 잘 활용해낸 일본은 조운의 인기가 제일 좋다. . . . 아마 오랜시간 무(武)가 우선시되며, 또 그런 문화특성상 주군의 명이라면 유불리 떠나 묵묵히 수행하는 "사무라이(侍) 정신"이 모토인 점 등이 작용한 듯. 조운이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다지만, 중국이나 한국에서 인기 없진 않다. 두세번째쯤에서는 반드시 언급이 되는 역시 인기스타! 심지어 인기는 오히려 삼국지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더 높은데, 이건 조운을 좋아하면 삼국지를 모른다거나... 그런 디스가 아니라, 아무래도 삼국지에 대한 관심이 깊을수록 더 많은 인물들에 대해 알게 되고 그러다보면 조운 외의 다른 인물들을 최애할 수도 있으니까~ 이건 워낙 유명한 조운의 인기에 대한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삼국지는 잘 모르거나 안읽어본 이들도 알만한 급의 유명스타기에 그렇다는! (이는 조운 외의 인기인물들도 비슷한.. ,) . . . 조운은 위처럼 유명할 수 있는 여러 이유 있지만 무엇보다 후한 말, 초창기 떠돌이시절의 유비를 따르기 시작, 후에 그 유비가 황제 되고 또 붕어한 이후까지의 긴~ 활약기간의 이유가 있는데, 정말 의외스럽게도 그런 긴 시간 활약하며 제국의 개국공신되고 또 그만큼 고위직에 오른것치고 의외로 기록이 많이 부실하다. 정사의 촉서 중 조운전과, 신뢰성은 좀 문제가 있지만 조운전의 부실함을 좀 채워주는 조운별전 등의 기록을 모두 합쳐도 군시절 내가 쓴 편지의 양보다 적다....;;; 조운이 이토록 부실한 기록을 가졌음에도 거대한 인기를 누리는 실질적인 큰 이유는, 내가 보기에는 바로바로.. 일본게임업체 "코에이(KOEI)" 의 "삼국지 시리즈" 덕이다. 삼국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책과 코믹스가 있었고... 중국에는 그보다도 훨씬 더 옛날부터 "경극"이라는 미디어(?)매체들 통해 후대인들이 삼국지(연의)를 즐겼다. 하지만 사서 통해 확고한 비쥬얼 이미징이 되어 있던 극소수의 몇몇 인물들 외에는 인물간 개성을 구분지을 표현은 부족했다. 그러던 와중, 1985년 일본의 코에이에서 창업자이자 삼국지 시리즈의 창조자이기도 한 삼국지덕후인 "에리카와 요이치"가 미칠듯한 덕력으로 자료들을 수집해 이를 토대로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와 함께 각 인물들의 프로필을 제작하여 이를 게임에 응용하게 되는데... 이 게임이 대박이 나게 되며 나름 고증도 괜찮았고 멋지게 잘 표현된 인물들 일러스트들도 같이 대박났다. . . . 이후 각종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등등 온갖 미디어물에서 다루는 삼국지의 인물묘사들은 이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의 일러스트를 모티베이션으로 나오게 되는데, 바로 이 삼국지 시리즈에서 조운을 초절세미남으로 표현했고 시리즈 거듭될수록 나날이 더 미남이 되어가며 대부분 사람들에게 "조운 = 미남"의 공식이 공식화 되었다는... 이로서 사료와 연의 속의 과묵하고 충직한 무력깡패 이미지에 코에이가 미남 이미지를 데코레이션 해주며 인기가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인물이 되어 버린 것...ㅋ . . . 참고로 위에 언급한 에리카와 요이치는 삼국지 시리즈 오프닝 초반에 이름 나오는 프로듀서인 "시부사와 코우"와 동일인물! 저작권 관리 등 사업적인 이유로 지은 이름인데 에리카와가 존경하던 "시부사와 에이이치"라는 이의 성과 코에이의 코를 따와서 지은 이름. 실제 조운도 미남이였는지에 대해 조운전은 무언급, 조운별전에서만 "8척의 위풍당찬 체구와 사내다운 용모" 라고 짧게 언급이 꼴랑...ㅎ 당시 도량형 기준 8척은 지금 기준으로도 큰 키인데, 정말 딱 자로 재서 저만큼의 키라는 것보다는 주로 당시의 작디 작던 일반인들보다 훌쩍 키 큰 이들을 일컬으며 쓰던 감탄적 관용어구로 주로 쓰인 표현. 그래서 사료에도 실제로 키가 크다며 제법 명확한 데이터가 있던 제갈량이나 정욱 등등도 있지만 대체로 삼국지에서 8척, 여덟 자 어쩌고 하는 표현이 붙는 이들은 대개 "덩치 좋다!!" 는 의미로 쓰였고 조운도 마찬가지다. 보아하니 그냥 덩치 좀 있고, 생긴 것도 잘 생겼다기보다 남자답게 생긴 호남형 외모 수준인 것을 코에이가 무슨 존잘러로 만들어 놨다...ㅋㅋㅋ 오히려 조운의 외모묘사는 요코야마 미쓰테루가 더 사료에 입각했지 싶은ㅎ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우리나라에서 제갈량과 함께, 주로 자로 불려지는 인물. 간혹 조운이란 이름은 모르고 조자룡으로만 아는 이들도 꽤 있다. . . . 많은 분들이 별 생각없이 넘겼을 수도 있지만.... 은근 논란이 되었던 건 조운의 "나이"다. 제목에서 보듯 그의 생년관련 공식기록은 없다. 긴 시간 활약하며 사망당시는 제법 고위직이였음에도 인물기록 중 가장 기본이랄 수 있는 생년기록이 없으며 정사 저자 진수조차 체크를 못한 듯 싶다. 삼국지연의내의 내용들만 보면 유비보다 8살이나 연상으로 나오지만, 이건 나관중이 이렇게 저렇게 조운을 띄우다보니 설정붕괴가 오며 생긴 착오로 보여지고... 대체로 중국과 일본의 관련 사학자들은 조운을 대략 170 ~ 171년생쯤으로 보고는 있다. 그런데 170년으로만 잡아도 만 60세도 채 못 채우고 사망.. 연의에서 그려지는 노익장의 이미지에는 살짝 아쉽다. 물론 당시 평균수명 짧은 탓이 영유아 사망률이 높아서이기도 했다지만 노인사망연령 역시 짧은 탓도 있던 터라, 단명으로는 절대 볼 수 없겠지만 오래 살았다 할 수도 없는 나이임은 분명하다. 하긴, 당시 기준에 50대 중후반 나이의 장수가 전장에서 현역생활 했다면 노장인건 맞긴 하지... 살짝쿵 이견들은 있지만 확실한건 "공손찬" 아래에서 사실상의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 와중에 공손찬 휘하에서 객장, 즉 일종의 용병 생활하던 유비를 만난것도 맞지만, 소년장수 조운이 이미 당시의 하북에서 네임드 맹장이던 문추와 대결한건 허구다. . . . 연의에서처럼 실제로도 조운은 공손찬 휘하에서 별 다른 활약기회없이 지내다 공손찬과 원소 양측이 제대로 전쟁 치르기 전에 형의 장례를 이유로 낙향하며 사실상 공손찬측에서 '퇴사' 했다. (형이 있었어?ㅋㅋ) 많은 이가 조운을 못 알아본 공손찬의 무지함을 까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관점일뿐... 당시 시점에서 공손찬이 무지했다 볼 수는 없는게, 그때의 공손찬은 북방의 여러 소수민족들과의 전투를 이겨내며 명성을 키운 실전강자였다. 거칠고 사나운 그들을, 몸소 전장지휘하며 조져놨던 공손찬세력에는 당연히 병력들을 이끌던 여러 검증된 장수들이 있었을테고 공손찬이 무슨 스카우터를 쓴 것도 아닌데 어느 날 나타난 젊은 신입장수의 전투력을 알아보고 기회 주기보다는 기존의 전공 많고 검증된 이들 위주로 운용했을거다. 체격이나 그런거 딱보면 모르겠냐 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평균신장 작던 그 시절이라도 공손찬처럼 성공한 큰 세력하의 장수들까지 다 작진 않았을거다. . . . 축구로 치면 몇 시즌 동안 리그우승을 거듭한 강팀이 있다 치고 그 팀에는 당연히 우승을 이끈 여러 스타 플레이어들이 있을텐데 이런 와중에 그들을 벤치에 앉히고 유망주에게 선뜻 기회 주긴 쉽지 않다. 게다가 스포츠는 큰 의미없는 게임이나 대승을 거둘 때 잠깐 투입해도 무리없겠지만 후한 말의 난세는 실전이라 괜히 검증안된 어설픈 지휘관을 투입했다 혹여 실책이라도 저지르면 그대로 수 많은 인명/재산피해가 발생한다. 또 여러 번 말했듯 당시 전투는 "기세싸움"이라, 내리 이기고 또 전력이 유리해도 엄한 짓 한 번으로 역전패 할 수도 있는 말 그대로 "실전"이였다. 그리고 조운이 공손찬 휘하에 임관한 때는 공손찬이 북방을 어느 정도 다져놨고, 원소와는 제대로 붙기 전이라 더욱 전투에 나설 기회가 많지 않던터에, 원소와 붙기 전 낙향했다. 여러모로 공손찬이 모자라서 조운을 활용안했다 몰기는 공손찬도 억울하다. 삼국지연의에서 조운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역시 당양 장판파에서 아두(유선)를 품고 조조의 대군 사이를 들쑤시고 다니는 부분이다. . . . 이 부분을 보면 따르는 이도 없이 오로지 혼자... 심지어 애까지 품고 전장을 휘저으며 싸울 놈과 싸우고 죽일 놈은 죽이는 등 할 거 다하고 다니는 육아무예의 정점을 찍는다. (물론, 훗날 유선 하는걸 보면 이는 조운 최고의 실책....;;;) 이 부분은 역시나 나관중이 조미료를 과도하게 쳤다. 물론, 저 극한상황 속에서 목숨바쳐 자기주군의 유일한 적자를 구해낸 자체는 맞는데... 저렇게 이리저리 죄 후비고 다닌 것은 아니였다. 상식적으로... 적군이 널린 상황 속에, 자기는 혼자. 주군의 아이를 품고 있는걸 떠나 설령 혼자라 해도 대놓고 '내가 조운인데 뭐 어쩌라고' 하며 다니는건 무예와 용맹을 떠나서 만용의 정점을 찍는 어리석음밖에 되지 않는다. 정말 부득불 적병과 마주쳐도 걔네들을 싹쓸고 가기보다 아주 최소한의 마찰만으로 어떻게던 돌파하거나 경우에 따라 제법 많은 인원이 다가오면 숨어있다가 다 지나가면 뒤도 안보고 달아남을 반복하며 빠져나갔다. . . . 나쁜소식은 당시 장판벌을 헤집던 조조군의 주력은 평상시 조조의 호위를 목적으로 양성된 최정예부대인 "호표기(虎豹騎)"였다는거고... 좋은(?)소식은 이들의 포커스는 유비를 쫓는것이였다는 것. 게다가 당시 호표기가 뉴스나 인터넷으로 조운의 프로필을 검색해보거나 유튜브로 조운의 활약상을 본건 아닐테니 설령 조운을 마주한들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며, 당시 조운의 꼴도 말이 아니였을터라 효표기 입장에서 조운을 마주한들, 그냥 난전 중 낙오된 적군의 기병쯤으로 봤을테니 굳이 무리하게 전원이 덤벼서 악착같이 쫓거나 막으려고는 안했을 것이다. . . . 여튼 실상은 좀 김새고 싱거운건 맞지만, 조운의 활약이 과장되었단거지 없는걸 지어낸건 아니고 아무리 위와 같은 상황인들 조운이 생사고락의 아수라를 혼자만의 실력으로 돌파해 나온건 팩트다. 저 때의 활약이 인상깊었는지, 이후부터 조운은 주로 유비의 신변을 보호하는 호위부대장을 맡거나 유비 부재시 유비의 집안질서를 잡거나 보호하는 보안대장 비슷한 포지션을 주로 맡게 된다. 유비 입장에서는 성격도 단호박에 무력도 빼어나고 전략기재가 빼어난건 아닐지라도 원리원칙에 상명하복 확실하며 당장의 전술적 판단은 괜찮았던 편인 조운이, 성격적으로 워낙 개성들이 강하다보니 장단점이 확실한 의제보다 그런쪽으론 더 믿음 갔을 것이다. . . . 다만, 원체 난놈이라 전투에도 수 차례 투입되긴 했어도 기본적 포지션이 유비와 그 가솔들의 신변보호를 우선하는 직할대장이다보니 여타 야전지휘관들보다 가시적인 공적 세울 기회는 아무래도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느끼는 임팩트 대비 훗날 유비가 왕이 되고 황제가 되며 공신들의 공을 기려 직위를 하사때 조운은 우리가 알기로는 거의 동급 혹은 조운보다 아쉬운 이들이라 여겨지는 관우, 장비, 마초, 황충보다 낮았고 위연, 이엄 등과 비슷하거나 살짝 앞서는 정도였다. 물론, 관직면에서는 그랬을지 몰라도 유비세력.. 나아가 촉한내에서 그는 직급을 떠나 아무도 감히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였다. 현대군에서 주임원사는 엄연히 계급상 갓 임관한 어린 소위보다 낮음에도 위관급은 물론 영관급 고위 장교들도 절대 함부로 못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 당장 서열 No.1 인 유비 제외 그 아래로 관우나 제갈량조차 조운에게 큰소리조차 내지 못했으며 지시를 내릴지라도 대놓고 명령조로 말하지 않았다. 물론, 이는 단순히 조운의 실력이나 공적 및 짬밥만으로 가능한게 절대 아니였고 조운의 "인성" 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당장 관우, 장비, 위연만 해도 촉한내에서 눈도 못 마주칠 거물들이였음에도 뒤에서는 그들을 싫어하거나 속으로 욕하는 이들이 적잖았고 결국 관우와 장비는 부하들의 하극상이 원인되어 남의 손에 목이 날아가고, 위연 역시 안티들에 둘러싸여 어그로만 끌고 살다 그 무수한 공을 세우고도 끝내 숙청이나 진배없는 최후를 맞은 걸 보면 조운은 전혀 그런 부분이 없었다. . . . 무엇보다 상명하복에 철저한 "진짜 군인" 이였다. 다른걸 떠나 제갈량 영입 직후... 나이도 어리고 당장 크게 보여준 것도 없는 키만 큰 허연 선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에 대해 관우와 장비는 몹시도 불편한 기색을 보였으나 당시 넹~ 하고 따른건 조운뿐이였다. 이후에도 유비의 명이건, 제갈량의 명이건 조운은 자신의 위세 높아지고 공적이 쌓여가도 대부분 군말없이 이행했다. 그런 조운이 유비의 지시에 대해 그와는 다른 자기주관을 드러낸건 역사적으로 딱 두번이다. 하나는 익주 정복 직후 기존 촉의 고관대작들과 부호들의 집과 토지와 뽕나무밭을 모두 압류 후 공신들에 재분배 하자는 것을 민심안정우선을 이유로 반대한 것. 두번째는 유비가 초사이언이 될 정도로 개빡쳐서 온 나라를 들어 오나라를 불싸지르러 가겠다는걸 정세와 이치상 맞지 않다며 반대한 것. . . . 둘 모두 너무나 옳고 바른 반대였다. 그러나 당시 분위기로는 정말 감히 반대하기가 거시기한... 사나이의 반대였다. 재산재분배의 경우, 가만히 있었으면 공이 적잖은 자신도 상당한 수혜자가 되며 유비의 그 발표 직후 모든 문무대관들은 입이 귀에 걸려 샴페인을 따는 분위기였고.. 오정벌의 경우, 의제 둘의 죽음과 오가 연관되어 인자함과 덕의 아이콘 유비가 생전 처음 눈까리가 뒤집혀 폭주를 하고 있는 현장이였다. 하지만 조운은 반대했다. 상명하복에 충실했지만 대의명분과 시국을 판단할 줄 아는 지혜에서 비롯된.. 조운이 단순히 커맨드대로만 움직이는 전투머신이 아니라는 뜻. 참고로 재산재분배건 당시에는 조운보다 서열이 위였던 제갈량, 장비, 수틀리면 상대 안가리고 막말 쏘는 법정, 조운 못지 않은 공적과 역시 근소하나마 윗서열 황충 등등 조운의 저 이뭐병소리를 지적하려면 지적하고도 남을 사람들이 잔뜩 있었음에도 누구도 저 의견에 싫어요를 누른 이가 없음은 조운의 위세를 보여주는....! 평소에 원체 말수가 적었고 다른 이들과 별 다른 교분을 갖지 않았다. 조운의 사료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다른이들의 기록을 봐도 조운과 술 한잔 했다는, 조운과 사냥을 했다는, 조운과 식사를 했다는, 조운과 담화를 나눴다는, 조운과 차를 마셨다는, 조운과 바둑을 뒀다는, 조운이 집에 찾아왔거나, 조운의 집에 찾아갔다는 그 어느 기록도 없다. 그렇다고 조운이 그냥 아싸거나 독고다이였다기보다 과묵하지만 인성이 좋고 필요시에는 바른말을 했고, 맡은 소임에 충실한 직장인의 정석같은... 비록 노잼이긴 해도 누구도 그를 싫어하지 않는 그런 묵직한 존재감의 인물이였다. 게다가 전장에 나가면 그 과묵함을 유지하며 미칠듯한 용맹을 자랑했으니, 별 기록 없다는 정사에도 조운이 매우 용맹했다는 기록이 강조되어 있다. 위에서 지시 떨어지면 형세가 불리하건, 병력이 적건 일단 묵묵히 들이대러 갔기에 붙는 기록이다. 연의에 등장하는 유비의 코멘트 중 "자룡은 온몸이 담덩어리(子龍一身都是膽也)" 라는 멘트도 실존했던 멘트. 이릉대전 당시 유비에게 반대 걸었다 후방으로 빠지는 부분이 있는데, 이건 나가리의 개념이 아닌 조금이라도 본군의 형세가 불리할시 바로 지원 및 혹여 만에 하나라도 패퇴시 밀려올지 모를 오군을 사전에 방어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 강주를 맡긴 것이였고, 촉에서도 한중과 함께 매우매우매우 중요한 요지여서 조운 직전은 장비가 맡았던 곳! . . . 유비가 백제성에서 유언 당시 제갈량과 함께 문무대관들 중 유이하게 유언을 직접 받은 신하로 연의에 나오는데, 하긴 유비가 떠돌던 시절부터 따르던 이들 중 당시 생존해 있던 신하가 그 둘뿐이도 했고 관우, 장비, 간손미, 진도 다 죽고 미방은 배신때리고 당시 숨 쉬던 게 그 둘뿐....T-T . . . 헌데 사실 저것도 나관중이 감동을 더하고자... 독자의 눈물을 뽑고자 지어낸 신파! 사실 유비 사망 당시 신하들 중 유비의 유언을 직접 받든건 제갈량 포함 두 명이 맞는데, 또 한 명은 조운이 아닌 바로 "이엄".. ..;;;; 이후 조운은 촉한에서 군의 인사권을 관할하고 황실을 호위하는 정예부대를 지휘감독하는 등... 대외정벌 부문 제외한 내부적 군사업무를 총괄하는 직위에 오른다. 보통 저 역할을 하는게 대장군인데, 본래 대장군은 타국원정권도 갖지만 그 방면은 제갈량이 도맡았던 터라 조운은 대장군의 저 책무만 분담한다. 유비는 직위, 직책에 대해 상당히 프리하게 실리를 중시해서 운용해왔는데... 유비는 당시 후한에 없는 직위도 임시로 만들어 쓰거나 기존 직위의 롤을 임의적으로 변형 하는 등 포지션보다 롤에 더 포커스를 맞춰 내부운영을 했고 이는 제갈량도 일정부분 비슷하게 진행했다. 그래서 조운의 직위자체는 실상 공적과 재직기한 등 커리어 대비 그닥 높은편은 아니였으나 역할은 상당히 주요업무를 맡은 편이였다. 이후 조운은 제갈량과 함께 남만정벌도 다니고... 북벌도 다니며 눈감는 날까지 쉼없이 말타고 싸우러 다닌다. 참고로 위와의 전투 중 한덕과 그 다섯인지, 여섯 아들을 죄다 썰어놔서 한씨집안 씨를 말린건 조운의 노익장을 버프해주기 위한 나관중의 픽션이며 저런 한 부자들 자체가 없던 인물이다... 실제로 연의 속에서 조운의 창 아래 비명횡사한 이들 일부가 가상의 인물들이다. . . . 여튼 조운은 쉼없는 전투로 굴려지다 1차 북벌 다음해인 229년에 사망하는데.... 위에서 언급했듯, 짧은 생은 아니지만 길게 살지도 못한데는 역시 촉의 영토를 구석구석 누비며 거듭 참전하며 쌓인 과로탓인듯 하다. 그도 그럴게 촉은 고질적인 인재부족문제로 조운 정도의 경력과 나이의 장수면 황도에서 머물며 주요사안결정과 천자알현업무가 주가 되어야 했으나 당장 승상이 최전선에 지휘관으로 나가는 상황이니 조운 성격에 당연히 본인도 쉬지 않고 따라 나갔을 것이다.... . . . 조운 사후 순평후라는 시호가 내려졌는데 이 시호는 조운 생전, 촉에 귀순하며 평소 조운을 존경해 마지않던 강유가 지었는데, 강유는 조운을 공경하여 몇 차례 함께 술자리나 식사자리를 권했으나 모두 뺀찌먹었다... 전형적인 군인 of the 군인 스타일이다. 맡은바 임무에 의문제기없이 유불리 떠나 최선을 다하며 정치적 개입도 일절 없이 사리사욕조차 없다. 늘 과묵하며 정말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았고 매사에 엄정한 일처리 위해 개인적 친분도 나누지 않았으며 역시 무엇보다 주위의 신뢰와 존경을 받을 실력자였다. 본인의 경력, 실력, 공적에 맞지 않는 포상이나 직위에 대해 일절 불평불만을 가진적이 없다. 자신의 직위와 처우가 높아져도 이를 토대로 과한 야욕은 커녕 직권남용이나 후배들에 대한 하대조차 없었다. 게다가 이런 모습을 흐트러짐 한 번 없이 죽음의 순간까지 지켜냈다.., . . . 공직자, 군인으로서의 조운은 완벽 그자체다. 제갈량과는 또 다른 면에서 공직자로서의 완벽을 보여준다. 다만, 인간 조운의 삶은 완전 개노잼이였을거 같다. 모르겠다... 난 주위에 저런 선배나 형, 상사가 있으면 분명 당연 존경하고 롤모델 삼긴 했겠지만 고민이나 걱정 있을 때 조언을 구하진 않을거 같다.ㅋㅋ 하지만 요즘같은 세상에 그게 정부관료건, 군인이나 경찰이건, 국회의원이건, 공무원이건간에 공직자로서는 확실히 저런 사람이 필요하고 절실하다는 것이다. 한 번도 아쉬운 처사에 불평불만이 없고 사리사욕 채우지 않았고 다른 고위직들과의 친분은 커녕, 말수도 없었던 그였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조운을 아무도 쉽게 보거나 하지 못했다. 위나 오에는 있었겠지만 유비를 만나 따르고, 훗날 고관대작 되어 최후 맞기까지 최소한 내부에는 적이 없었다. 나는 조운같이 살고 싶진 않지만, 주위에, 사회에는 조운같이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6.
별 다른 예보없이 단순한 개인사유로 무려 반년이나 연재를 쉬었는데, 그 와중에도 늘어나는 팔로워와 어서 돌아오라는 댓글들... 연재를 할 때만큼의 템포는 아니여도 간간히 늘어나는 좋아요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일상에 지치고 빙글에 실망해 손 놓고 있던 내 마음에 파동을 일으킨 것은 제 빙글의 시작은 이 곳에서 시작됐습니다 이곳이 없다면 저한텐 빙글은 쓸모가 없어요... 글이 한동안 안올라오길래 무슨 일이 있으신가 걱정했네요 독자로써 항상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ㅎㅎ 이런 댓글을 남겨주신 athletics01 님의 댓글... 물론 athletics01님 외에도 내 글이 자신이 빙글을 지우지 않는 이유라며 복귀요청 댓글 주신 몇몇 분들을 보며 내가 진짜 어디 가서 이런 대우 받아보나 싶어 다시 시작 T-T 헌데 다시 시작은 했지만 반 년만의 새 글이고 하필 그 재시작 주인공도 인기나 인지도는 그닥인 진수여서 읽거나 피드백 주시는 분이 많지 않을 줄 알았으나 댓글 대폭발에 완전 에너지차징 만빵! 그리하여 오늘은 예전부터 많은 삼국지매니아들의 심박동을 거칠게 해왔고 숱한 이슈와 논란의 중심이며, 앞으로도 그럴 주제를 다루고자 한다.... 오늘의 주제는 그래서 바로...!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삼국지를 딱 한 번만 읽은 사람이라도 이들을 모를 수는 없다. 삼국시대 아니, 동아시아판 "어벤져스" 라고 칭해도 모자람 하나 없는 최강의 조합 "오호대장군" 이 바로 오늘의 테마. (BGM으로 Alan Silvestri의 The Avengers가 딱 어울림) 오늘은 뭇 남성들의 진정한 드림팀인 이 조합에 대해 심층탐구를 해보기로 하겠다. 가장 먼저 저 '오호대장군' 이라는 명칭부터 살펴보면 대장군이라는 단어는 있지만 그렇다고 저 다섯이 후한시절 실존한 군최고직위인 "대장군(大將軍)" 이라는게 아님은 당연히 다들 아실거고... 일종의 용맹무쌍한 저 다섯 인간흉기들을 묶어 부른 별칭인데 사실 실제 역사 속에서 저런 별칭은 없었다. 놀랍게도 저 별칭은 일본에서 생겨난 별칭이다. 별칭도 그렇지만 저 다섯을 싸잡는 개념조차도 실제 역사에 없었고 나관중이 삼국지연의 속에서 "오호상장(五虎上將)" 이라며 저 그룹을 창작해 냈다.(김새죠?ㅋㅋㅋ) 뭐, 그렇지만 어쨌건 저 다섯이 촉한의 무력을 맡으며 대활약을 한 사실과 저들이 있던 당시의 촉한은 위와 오에 비해 가장 작은 영토와 처지는 국력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둘을 벌벌 떨게 했던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동시출격 여부. 저 다섯이 출격! 캡틴관우가 비브라늄 청룡언월도를 던지자 청룡도가 쓰리쿠션 찍으며 위나라 빌런들을 작살내고, 감마선에 노출되어 괴력을 뿜는 헐크장비는 위빌런들의 말과 수레를 집어던지고 성벽을 맨손으로 파괴하며, 토르조운은 우르로 된 창으로 벼락을 쏴서 적진을 지지고, 골드티타늄 재질의 갑옷을 입은 아이언마초 또한 손에서 리펄서빔을 마구 쏴댄다. 호크황충 역시 무시무시한 연사속도로 화살을 속사해대며... 이렇게 다섯은 순식간에 허창을 점령 후 조조를 굴복시킨 뒤 조운은 조조를 데리고 고향인 아스가르드로 돌아간다. 왠지 이랬을거 같고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어찌보면 당연하게도 저 다섯은 동시에 한 전장에 출격한 일이 없었다. 언뜻 이해가 안가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 아니, 저 무적의 조합을 왜 굳이 안쓰고 묵혔지? ' 라는 의문이 생길터인데, 당장 내가 저들을 비유한 어벤져스만 해도 전원이 모여 상대를 박살내는데 왜 저들은 못 그러는가? . . . 일단 장수, 즉 지휘관들은 당연한 말이지만 전장에 앞장서 싸우지 않는다. 이는 다른 칼럼에서도 몇 차례 언급한 바 있는데, 당시의 전투에서 가장 중요시 한 부분은 바로 군의 "기세" 였는데, 전투 도중 지휘관이 부상이나 전사 및 패닉 등으로 무용화 될 경우.... 우세한 병력이나 지리적 선점에도 불가하고 패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런만큼 지휘관의 존재는 실상 그가 이끈 군 전체의 전력만큼 비중이 컸다. 현대의 군체계야 워낙 시스템이 잘 짜여 전쟁 중 지휘관이 무력화 되어도 최소한의 자신들이 맡은 롤을 수행하여 그 손실의 최소화 및 바로 그를 대체할 2, 3순위의 예비 지휘관이 있으나 저 당시는 그러지 않았다. 그런만큼 지휘관의 비중이 매우 컸는데... 저들은 모두 그 능력과 경력 등에서 지휘관이였고 지휘관은 늘 군의 중군 내지는 후방에서 군세를 조율한다. 저 다섯 중 넷은 인재풀이 부족한 촉한에서 지휘관을 맡아 각기 전략적 요충지를 맡는 총사령관이였다. 관우는 유비가 입촉 당시 유비의 본진이던 형주를 맡겨 가장 역할이 컸고, 장비와 황충은 야전사령관을 주로 맡다가 유비가 촉을 완전히 점령 후 장비는 촉지역의 대오전선방면 사령관을 맡았으며, 마초 역시 투항 이후 촉의 서북방면 사령관으로 강, 저족 및 서량쪽의 위세력을 견제했다. 이렇듯 각자 요충지에 배치된 관, 장, 마는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참전이 사실상 불가하다. 게다가 촉한의 국력과 동원 가능 병력 수 등을 감안해보면 저 다섯 모두를 지휘관으로 한 전투에 참전 시킨들 그만큼의 효율은 나올 수 없다. 예를 들어 여기 축구 좀 좋아 하시는 분들 계신가 모르겠다만 어느 축구클럽이 쇼미더머니를 쳐서 감독에 주제 무리뉴, 수석코치에 호셉 과르디올라, 수비코치 파비오 카펠로, 전술코치에 요아힘 뢰브, 피지컬 트레이너에 거스 히딩크를 임명했다 치자. 팬들 입장에서야 입이 벌어진다지만 저런 과도한 코치진 스쿼드를 두면 과연 팀이 잘 돌아갈까? 오히려 자기 주장이 강하고 일부는 스스로 생각한 본인역량 이하의 직책을 맡았다는 생각에 불만 품거나 월권시도 및 지시불이행 등이 나타날 수 있는 등... 쉽게 말해 팀웍이 작살난다.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가지만, 장수가 많으면 군은 저승으로 간다. 그보다 먼저 아이러니 하게도 이들은 위 이미지같은 현대의 미디어믹싱이 흔한 것과 반대로 한 자리에 다 모여본 적조차 없다. .... 당장 픽션의 정점인 삼국지연의만 봐도 이들이 다 모여 서로 얼굴본 적이 없다. 관우는 애초에 유비가 장, 황, 조 셋을 이끌고 입촉 당시 역사기록 동일하게 형주에 남았고 마초는 그 유비의 입촉 이후 합류... 디테일 다 떠나 정사기록만 봐도 최소한 유비의 입촉 때 관우는 형주에 있었다. 그래서 장비, 마초, 조운, 황충은 서로 본 적이 있겠지만 관우와 마초는 서로를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마초가 스마트폰에 구글 검색으로 관우를 찾아봐 프로필을 확인했을리도, 관우 역시 TV를 통해 마초의 아군합류속보를 접하며 마초를 봤을리도 없다. 한 자리 모이기는 커녕 당장 관우와 마초는 서로의 얼굴도 몰랐으며, 물론 서로 마주하면 관우의 인상착의야 홍면장염이 당시로도 워낙 유명한 트레이드마크니 마초가 딱 보고 ' 아! 저 양반이 관우인갑네ㅋㅋ ' 알아봤겠지만 관우 입장에서는 바로 마주쳐도 누가 소개 안해주면 마초를 알아봤을 리 없다. 결국... 저 다섯 맹장이 모이는 길은 게임말고는 애초에 없었던 것. 인간관계. 삼국지연의나 게임 및 기타 각종 미디어믹스들 자체가 큰 사건 위주로 풀어나가다보니 삼국지 속 인물들의 인간관계나 거기에서 비롯된 에피소드나 면모들에 대한 묘사가 없거나 부족 또는 왜곡된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보니 흔히 저들이 서로 사이가 원만하지 않았겠나 싶어 하시는 분들도 계실거다. 일단 각자 소속집단에서 제법 고위직에 주요멤버들이니. 허나 저들이 무슨 아이돌처럼 맨날 같이 뭉쳐 다니며 합숙소 생활하고 같이 운동하면서 무예수련도 돕고 그런게 아니라 각자 맡은 바가 있다보니, 또 그런 높은 직책들 탓에 친하기는 고사하고 얼굴 서로 보는 것부터 벅찬 사이였다. 일단 저 다섯이 유비휘하에 콜렉션 된 시점부터 관우는 내내 형주에 있다 끝내 거기에서 사망했고...(T-T) 조운은 대부분 유비의 근위대장을 주로 맡다보니 유비 곁에 있는 시간이 길었고, 마초는 유비진영 합류 이후 여러가지 이유로 거의 내내 서쪽만 바라보다 병사했다. 장비도 유비가 서촉 점령이후 어느 정도 시스템이 정비되자마자 강주로 발령받아 대오전선 수비사령관을 맡아 내려갔고.. 뭐 이러다보니 다섯이서 모여 술 한 잔 하고 싶어도 도통 짬이 안났다. . . 그렇다고 당시 뭐 카톡이 있나, 전화가 있나, 이메일이 있나..,. 서신(편지)을 주고받았다한들 이건 뭐 한 통 쓰면 가는데 한 달.. 받아 읽고 바로 답장 써보내도 역시 한 달.... 편지 보낸 후 답장 받는데 두 달 걸리면 이건 실상 의미도 없거니와 다 떠나 저 개상남자 오인방이 손발 오글지게 서로 보고싶다며 그리움에 붓을 들어 편지를 했을리도 없다. 관우 마초? 걔는 뭔데 오자마자 대접이야? 어린놈새끼가.. 황충? 그 뭔 듣보잡나부랭이가 나랑 동급취급이지? 조운 이새끼는 맨날 말이 없냐... 장비 마초? 좆까! 내가 킹왕짱. 조운 이새끼는 맨날 말이 없냐... 마초 관우인지 뭔지 시발 겐세이 지리네... 없는집 서민자식놈들 장비인지 뭔지 시발 겐세이 지리네... 없는집 서민자식놈들 조운 이새끼는 맨날 말이 없냐... 조운 .................. 황충 씨부랄것들! 난 안중에도 없구만? 화살로 눈까리들을 그냥 역사기록들을 집대성해보면 오호대장들의 서로간 인간관계는 위와 같은 뉘앙스였다. 딱 봐도 무슨 막역하고 정다운 느낌은 없다. 게다가 오호대장군의 모티브가 된 계기는 유비가 한중왕에 즉위하며 자신의 왕위즉위에 따른 논공행사 중 무관분야에서 독보적 군공자 넷인 관,장,마,황에게 사방장군(전장군, 후장군, 좌장군, 우장군)에 임명하는 이슈였는데... 저 당시 관우는 형주로 저 메세지를 전달하러 온 비시에게 황충같은 노병(老兵)과 동렬에 설 수 없다!!!!! 라며 직위를 거절했다는 역사기록이 있다. 관우 입장에 장비야 형제고 마초도 워낙 명성있는 집안의 자제에 조조를 엿먹인 커리어도 있지만 황충 나부랭이는 도저히 인정 못 하겠다는 소리. 물론, 저 말이 황충 귀에 안들어 갔을리 없고 황충이 겁나 대인배라한들 저런 말 듣고 깊은 빡침을 느끼지 않았을리 없다. 물론 저 부분은 연의를 깊게 보신 분들로서는 언뜻 이해가 안갈 수 있는게, 장사를 공격하며 관우와 황충의 결론 안나는 대결을 겪으며 관우의 인정을 받은 황충이 왜 갑자기 저런 대우를 받나 싶을 수 있지만.... 관우와 황충이 서로 저리 맞붙어 싸운 자체가 없던 일이기 때문이다...ㅎㅎ 진정 능력자들? 삼국지연의에서 이들의 신격화가 진행되며 어벤져스처럼 묘사되었는데 역사기록을 봐도 이들 개인의 무용에 대한 어마무시함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대로 이들이 직접 싸우기보다 대체로 일군의 지휘관역할을 했음에도 그 통솔력에 있어서는 의문이 남는다. 정사기록을 살피면 실제로 지휘관으로도 탁월했던 이는 장비, 황충 정도에 마초도 나쁘진 않았으나 유비 휘하로 들어간 이후로는 활약이 전무하다. 게다가 조운 또한 본인이 직접 판단 및 지휘하는 부분은 약했는지 대체로 유비의 근위대장 또는 직속부대장 정도만 맡았고 관우 역시 지휘관으로서의 실적은 좋지 못 했다. 게다가 연의에서는 이들을 너무 띄워 주느라 타국 심지어 자국내 다른 장수들의 비중과 역할이 크게 축소 및 생략 되는 부작용도 커 이들의 사후 등장하는 장수들에 대한 이미지가 듣보잡 취급이 되어 내용자체가 재미 없어지는 부작용도 크다. 솔직히 이들과 동급이라고까지 하는데는 무리가 있지만 촉한에서 이들 이후로 등장한 장수들도 분명 자신의 역할을 수행함에 부족없는 준장들이였지만... 워낙 오호대장군들의 비중 연의내에서 넘사벽으로 나와 나머지들이 파묻히다보니 연의에서의 촉한은 마치 베스트5 외에는 인재없는 북산고교같이 묘사된다. 말하고보니 오호대장과 북산 베스트5의 캐릭터도 좀 겹친다 관우 : 최장신의 엄한 리더 채치수. 장비 : 열혈남아에 터프가이 강백호. 조운 : 과묵한 실력파 서태웅. 황충 : 저들 사이에 가장 원만한 서포터 송태섭. 마초 : 가장 뒤늦게 합류한 실력파 정대만. 게다가 정사기록을 보면 관, 장, 마, 황에 비해 유독 조운이 받는 저평가와 그 대단하던 마초.. 심지어 오호대장 최연소이자 가장 최신 입단 멤버인 마초가 왜 입촉 이후부터 활약없는 먹튀가 되었는지가 의문인 분들도 계실텐데 이는 각자 당사자들의 칼럼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여튼 가타부타 이들에 대한 과대평가와 논란들이 있는건 사실이지만, 이들이 갖춘 개개인의 무력과 그 공적 그리고 이들이 돗자리장사꾼인 몰락황족 유비를 왕을 거쳐 황제의 자리까지 올리는 것은 물론... 삼국 중 가장 열악한 국력의 촉한임에도 되려 위와 오의 두려움을 자아내던 다크호스가 되도록 만들어준 개국공신들이 틀림없다는 점이다. 또 이들의 존재가 있기에 우리는 삼국지를 더욱 재미있고 흥미롭게 접할 수도 있는 것이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우리회사에도 오호대장군의 존재가 있는데, 초저녁에 앉은자리 소주 아홉 병 까고 있다 중요한 약속 있다며 나가던 혈중 알콜농도 20% 박팀장.. 하루 담배 반 보루를 피우며 조기축구 최강의 미드필더인 폐가 아홉이라는 구폐남 조차장.. 추석연휴 중 4일간 식음전폐 복지부동으로 오버워치한 PC방 마네킹 장과장.. 하우스 다니며 섯다만 쳐서 내집마련 성공한 유과장.. 간통죄 폐지의 최대 수혜자인 정대리..(자세한 설명 생략) 내가 보기는 촉한의 오호대장군보다 우리회사 오호대장군이 더 초인이고 강하게 느껴진다.... 이전에는 슈퍼스타들을 너무 아껴온 감이 있지만 앞으로는 심심치 않게 꺼내들도록 하겠습니다.ㅎ 그리고 오호대장군 중 장비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도 빠른 시일 안으로 올리도록 할께요! 새해 복 다들 많이 받으시고 기다려 주신 분들 정말 다들 너무 고맙습니다. 새로 와서 봐주시는 분들 역시 너무 고맙지만 시작부터 좋아해주신 분들에게 특히 큰 고마움 느끼고 있어요. 주변에도 많은 홍보 부탁 드리고 좋아요와 댓글은 큰 힘이 되니 아끼지 말아주세요ㅎㅎ 새해에는 모두 건강하시고 이래도 되나 싶을만큼 좋은일의 홍수 속에 사시며 왕성한 성생활 하시길!
주유 공근 (周瑜 公瑾) A.D.175~210
역사에 있어 가장 무의미 하면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만약에"(Maybe)라는 가정이 아닐까 한다. 특히 역사 속 인물들에 있어서 가장 많이 적용되는 '만약에'는 'OO가 더 오래 살았다면...'이 아닐런지. 오늘의 주인공은 삼국지를 읽어본 이들에게서 바로 저 '만약에...'를 가장 많이 되내이게 했을 인물 "주유". 삼국지에서 주유는 위에서 언급한 '만약에...'에 제일 많이 언급됨과 동시에 저승에서 나관중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면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린 나관중의 거듭된 항소에 3심까지 가더라도 무조건 다 승소할 만큼.. 삼국지연의 최대의 피해자나 다름 없는 너프를 먹은 비운의 인물이다. 삼국지 등장인물 중 가장 빼어난 용모 + 명문가의 귀족 + 최상류 부유층 금수저 + 너그럽고 대범한 성격 + 천부적음악재능 + 천재적 전략가 기질 + 미녀 아내 등등.... 엄친아를 넘어 먼치킨이던 이 남자는 촉빠에 제갈량빠인 나관중에 의해 "제갈량과 맞다이를 벌인 죄"로 앞뒤 안가리고 덤비는 다혈질에, 상황파악 못 하는 넌씨눈, 속 좁아서 제 성격도 못 이기는 쫌생이로 격하되었다. 어린 초딩시절, 당시 원술 휘하의 장수던 손견의 장남인 손책을 조우하고 그에게 반해 그때부터 마음 깊이 손책의 사람이 되기로 다짐한 주유는 당시 대대로 명문가에 양주지역의 큰 호족의 자제였음에도 고작 일개 장수의 아들에 불과한 손책에게 다방면의 호의를 베풀며 둘의 우정은 깊어간다. 나이는 동갑이지만 생일은 손책이 빨랐고, 손책의 모친 오국태부인도 주유를 매우 예뻐 했으며 손견 또한 주유를 아들같이 대했고 주유는 자기네 집안이 보유한 가장 큰 저택을 손책에게 선물한 적도 있었다. (역시 친구를 잘 만나야..) 지금으로 치면 하버드를 졸업하고 잘 생긴데다 머리 좋고 돈 많은 신진그룹의 조태오가 아버지가 9사단에서 대대장 하시는 내 친구 창석이랑 친구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창석이네 아버지 예편 하시고 베스킨라빈스 하심) 삼국지연의에서 어쨌건 삼국의 한 축을 맡는 손가의 출발점인 손견에 대한 미화가 커서 그렇지, 사실 죽는 순간까지도 손견은 원술 휘하의 장수였고 더구나 손책과 주유가 알게 될 당시의 손견은 진짜 크게 대단할 게 없던 장수였다. 손책이 십대 후반이 되면서부터 주유는 양주 일대의 여러 호족들에게 손책을 소개하고 친분을 쌓게 하고 안면을 트게 하는 등 손책을 키우기(?) 시작했고 물심양면으로 손책을 조건없이 도울만큼 손책에게 잘 대해줬다고 한다. 이후 손책의 바로 아랫동생인 손권과도 친분이 깊어졌고 손권 역시 하나님같이 여기던 형의 베프인 주유를 형님의 예로 모셨는데, 놀라운건 그래봤자 친구 동생이고 무려 일곱 살이나 어린 꼬맹이던 손권을 "깍듯이" 대했고 늘 존칭과 경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결과론적으로 주유가 손권 아랫 사람이 된 역사를 아는 우리 입장에서야 '당연한거 아님??' 이라지만 그때만 해도 손책이 그렇게 크게될 지, 손권이 그보다도 더 크게될 지는 알 수 없던 상황.... 심지어 손책은 부친 손견이 전사한 후, 원술에 의해 잉여쩌리 취급 받다 소수병력만 이끌고 독립했는데, 이 때만 해도 손책의 성공을 점치는건 고영욱이 뽀뽀뽀 진행자를 맡을 확률보다 낮았다. 아마도 주유는 손책의 대단한 포텐셜을 감지하고, 자신의 모든 걸 바쳐 손책을 크게 성장시킬 마음을 먹고서 그랬던게 아니였나 하는 짐작을 해본다. 이전 제갈량편에서 짧게 언급했지만, "전략가"로서의 자질과 능력은 제갈량 이상이였고, 실제 역사에서 조조를 사실상 유일하게 처참히 발라버린 판의 총지휘자였다. 적벽대전 당시 고작 3만 여에 불과한 겁에 질린 오군을 이끌고 2만이 좀 안되던 유비군과 연합하여 당시 약 20만 ~ 24만 여 명으로 추산되던 조조군을 지워버린 가장 큰 주역은 각 군의 배치와 전술기획, 총 지휘를 한 주유였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 24만 VS 5만은 넘사벽 차이까진 아니라 보여질 수도 있지만, 무슨 첨단무기나 장비가 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쪽수가 깡패고 전술이던 당시 상황에서 저 차이면 대개 GG 치는 경우가 부지기수.. 더구나 저 때의 조조군은 중국 특유의 빅뻥을 가미, "100만 대군"을 자칭하며 장강(양쯔강) 상류에 진을 쳤고, 당시 분위기는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와 스파르타의 전쟁이나 엇비슷한 분위기, 상황이였는데 오히려 이길 수 밖에 없다는 자신감으로 뭉쳐서 여유있던 주유였다. 오의 대부분 고관대작들이 항복을 주창했으나, 항전론을 외친 최초 발언자는 "노숙"이였지만 노숙은 "우리가 이김!"이라기보다는 "아마 질거임...그래도 붙어보자능!!!" 이던데 반해 주유는 항전을 넘어, 승전을 자신했다. 그는 여느 전략가들처럼 혼자 이것저것 짜내기보다 여러 책사들과 장수들과 회의를 하고 거기에서 나온 여러 아이디어들 중 "될 만한" 기획안을 채택하는데 능한 '수석' 스타일이였다. 사실 저것도 대단한 게, 정말 뛰어난 대국안이 없으면 당연히 여러 아이디어 중 뭐가 옥석인지 알 수 없다. 적벽대전의 신의 한 수였던 "화공"도 주유나 제갈량의 아이디어가 아닌 무장이던 "황개"의 의견이였던걸 주유가 채택한 것... 게다가 유비를 대단히 경계했던 사람이였다. 당시 오 내부에서 대체로 유비를 그리 높게 보는 이가 없었고, 유이하게 노숙, 주유만이 유비를 높게 봤으나 둘의 대처는 달랐다. 노숙은 유비와의 화친을, 주유는 유비 및 유비세력의 조기견제를 주창.... 만약, 손권이 주유의 의견을 따랐다면 이후 황제까지 오른 유비는 없었을 것이나, 손권도 유비를 잠재적 위협요소라 인지는 했으나, 주유만큼은 아니였고 당시의 상황도 상황인지라 노숙의 의견을 따른다. 장로가 유장이 통치하던 익주를 공격하자, 그 소식을 듣고 손권에게 서촉정벌을 주장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이였다. 일단 천하패권보다 형과 자신이 일군 강동의 지배력 강화가 우선이던 손권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던 시각의 오 문무대신들에게, 성공할 시에는 천하의 남쪽 절반을 먹는 서촉 정벌은 실로 스펙터클 했다. 그러나 홈에서는 막강했어도 원정능력이 그닥이던 오군 이끌고 장거리 원정에 심지어 험준한 산지에다 오군 최대 장기인 수전을 벌일 수 없던 터라, 주유의 "서촉정벌"은 '하이리턴 & 하이리스크'로 받아들여졌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 나는데 맞손뼉 없어 흐지부지 되었으나 이를 통해 주유의 야망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솔직히 이건 좀 많이 무리수였다...) 그는 실제로 서량의 마등&한수와 연합하고 요동의 공손일파와도 협력한 후 조조의 등 뒤를 흔든 틈을 타 형주와 서촉을 온전히 손에 넣어, 양쯔 이남 점령 후 북진하여 위를 쳐부술 플랜을 갖고 있었고... 그 당시에는 심지어 조조조차 천하통일을 염두 못한 시점에서 삼국지 등장인물 최초로 천하통일 플랜을 품었던 인물이였다. 제갈량과는 앙숙처럼 나오며 못 죽여 안달처럼 이미지가 각인 되었지만, 적벽대전 당시는 제갈량을 존중했고, 이후로도 비즈니스적으로만 적대했을 뿐, 그를 상당히 대우했다고 한다. "하늘은 어찌 주유를 낳고, 또 제갈량을 낳으셨나!" (旣生瑜, 何生亮) 주유는 이 말을 한 적이 없다. 주유가 화살 맞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제갈량 탓의 빡침에 상처가 터져 끝내 죽었다는 것은 픽션으로, 병사했고 학자들은 말라리아로 추정하는 쪽으로 무게가 기운다. 적벽대전 당시 위의 스파이 역의 장간이 연의에서는 주유와 동문으로 나오지만 이는 허구... 둘은 이 때 처음 본 사이였다. 손책과 주유의 아내인 대교와 소교가 유명한데, 대교와 소교를 얻을 당시 손책은 이미 정실이 있어서 대교를 첩으로 들였으나, 미혼이던 주유는 소교를 정실로 맞았다. 아내를 많이 사랑했는지, 굉장히 자상히 아내를 잘 챙겼던 듯 한 기록이 있다. 상당히 젠틀했고 사실상 오의 군권을 잡은 손권 다음 2인자였음에도 누구에게도 위압적이거나 하대 하는 법이 없이 예의바르고 겸손히 대했다고 한다. 손견부터 손가를 섬긴 노장 정보가 초반 그를 몹시 무시했으나 변함없이 예의바르고 자신을 공경하는 그에게 감화되어 끝내 잘못을 빌었다. 이건 왠만한 이들 잘 모르는데... 신은 공평했는지, 키는 좀 작았다고 한다.ㅋ 노숙에게 장신이던 제갈량과 마주하며 목이 아프단 말을 한 적 있다. 음악적 재능이 대단하여 아무리 정신없거나 술 취한 와중에도 곡의 연주가 틀리면 지적했다고 하고, 악기도 다루고 노래도 잘 했다고 한다. 굉장한 말술을 마셨다고 하며 오에서 손권 다음가는 주당이였으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진 않았고 술도 주위에 강권하진 않았다. 장남은 이것도 유전인지 요절, 차남은 개망나니, 막내딸은 남편이 요절.... 자식농사는 흉작이였던 듯..;;; 홍콩 영화배우 주윤발이 주유의 후손이라고 한다. 실제로 영화 적벽에서 원래 주유 역은 주윤발이 먼저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검술에 제법 조예가 있었다고 하며, 감녕과의 대련에서 호각지세를 이뤘다고 한다! 허나 그렇다고 감녕과 무력이 동급이라 할 수 없는게, 감녕은 전장에서 다수를 상대하는 마상창술 (말 타고 창질)에 능한 야전장수였기 때문. (또 실전이 아닌 '대련'이였고...) 이건... 진짜 깨는 정보인데... 주유가 오의 군권을 쥐고 있었고 오는 지리적 특성상 양쯔강의 수군이 주력이라, 오는 수군의 총사령관인 "도독"이 지상군과 수군을 총괄한다. 아무튼 주유는 그런 수군 사령관임에도 함선에 탄 적이 "거의" 없었다.(아예 없진 않음) 그 이유는.... 그 이유는..... 바로 "배멀미".... 수군 도독인데도 배멀미를 해서 함선을 왠만하면 안탔고 본인도 이게 되게 창피했는지 이를 숨기려고 꽤 애를 쓴 모양이다. (멀미약이 있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지도..) 아무래도 주유의 리즈가 적벽대전 당시이다보니 적벽대전 관련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적벽대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 단독으로 다룰 예정이라 일부러 너무 자세히 풀진 않았음! 또 주유가 워낙 손책과 베프인지라, 손책 이야기도 좀 나왔는데, 역시 손책도 나중에 자세히 다룰 예정.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1.
이 칼럼은 일단 삼국지를 읽고 보면 더 재미있을 듯 싶다만, 분명 모두 삼국지를 읽진 않았을 수도 있고 읽긴 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디테일하게 정독한 분도 계실거고, 주욱~ 요점만 훑듯 본 분도 계실거다.. 혹시라도 삼국지를 이제 처음 읽을 예정이거나, 또는 다시 읽어 볼 예정인 분들을 위한 팁을 준비해봤다ㅎ 뭘 하건 먼저 어느 정도 "룰"을 알고 하면 더 재미있고 뭘 보건 먼저 어느 정도 "지식" 갖추고 보면 더 즐겁다 삼국지도 마찬가지로 일정 수준의 정보를 미리 알면 약간은 더 재미를 느끼고 조금은 더 몰입할 수 있을거 같다. 1. 자. 삼국지를 보면 "자(字)"라는 게 있고, 거의 대부분 이름에 자가 붙는다. (Ex. 조조 "맹덕", 여포 "봉선") 이 자는 현재는 거의 사라진 개념이라 좀 생소한데, 아마 대부분 책 읽으며 별 의문들 안갖고 그러려니~ 하고들 넘겼을듯 싶다.ㅎ 지금보다 훨씬 더 예와 격을 따지던 오래전 옛날의 중국에서는 일정 나이 넘은 성인남성의 이름을 동년배이하 연하자나 아랫 사람이 함부로 부르는건 큰 결례였다. 이름이 매우 중요하다 여겨 아껴아 한다는 개념이 있었기에 되도록 상대의 이름을 부르길 자중했고 그래도 부를 려면 뭔가 명칭이 있어야 했는데 그게 바로 '자'였다. 정말 절친하지 않으면 동년배끼리도 본명은 거의 부르지 않았고, 반대로 손윗사람에게는 자신을 소개할 때 자보다는 이름으로 소개하는게 예였다. 자는 성인이 되며 스스로 짓기도 하지만 대개는 집안 어른, 스승, 기타 마을 어른 등의 손윗사람들이 붙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근대까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쓰였던 "호(號)"와 엇비슷한 개념인데, 호는 심지어 편히 부르고자 쓰는 저 자보다 살~짝 더 편한 명칭이고 주로 남이 지어준 자보다 주로 본인이 편히 짓는 경우가 많았다는게 차이라면 차이? 2. 당시 상황. 유구한 중국역사는 스킵하고 그냥 바로 딱 삼국지의 배경이 시작되는 후한말만 보면 한마디로 "개판"... 요즘 시스템에 비하면 지방자치or연방국가와 엇비슷하게 천자(중국의 황제의 명칭)가 있는 당시 수도인 낙양(지금의 허난성 뤄양) 일대를 제외하면 실상 각 영지를 맡아 다스리는 군벌들이 자신의 관할지의 왕이나 진배없었고... 지역 별로 화폐단위, 법제도, 각종 행정 시스템들도 제각각인 경우가 많았다.. 명목상으로는 중앙집권형을 추구했으나 부정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황실은 그 기능을 많이 상실했고, 각 지방 군벌들도 그에 따라 자기 마음대로 영지를 주무르다보니 백성들은 높은 세금에 시달렸으며 설상가상 거듭된 자연재해, 엉망인 치안으로 인한 창궐하는 도적떼들로 인구도 많이 줄어 있고 경제도 몹시 좋지 않았다. 식량 부족으로 인한 영양상태 저하 및 각종 전염병의 영향으로 평균 수명도 40대 초반이 될까 말까였는데, 이는 그때 사람들이 마흔 살까지 살다 다 죽는다는건 아니고, 워낙 영아 사망률이 높다보니 그런 결과가 나온 것. Ex.) 80세 사망 A + 2세 사망 B = 평균수명 41세 (80+2)÷2=41 하여간 저렇게 살기 빡치다보니 자연스레 전국가적 대규모 소요사태인 "황건적의 난"이 발발하는 계기가 된다... 3. 위, 촉, 오의 국력 비교. 책을 보며 첨부된 지도, 또는 특히 게임하며 보는 지도에 의하면 위나 오는 거의 면적도 비슷해 보이고 촉도 생각처럼 작지 않다.(위 첫번째 지도 참조) 그러나 그건 당시의 인프라를 전혀 고려치 않은 착시나 진배없고 실제로 그 당시 세 나라의 국력을 따질 때 유효하던 영토는....(두번째 지도 참조) 저렇게 특히 촉과 오가 팍 쪼그라드는 이유는 역시 당시의 "인프라 수준" 탓. 일단 중국은 몹시 넓다. 참고로 위, 촉, 오 세 나라가 숱하게 차지하려 애쓴 대륙의 중심부의 전략요충지인 형주만 해도 한반도 전체 면적보다 넓었다. 그 넓은 면적이 첫 째, 또 당시는 개간기술도, 도로나 교통도 지금과 비교불허인 시절에 통신이란 개념도 없었고... 그러다보니 후한이 그러하듯 저 세 나라도 자신들이 명목상 차지한 영역의 구석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오의 남쪽, 촉의 국토 대부분은 거칠고 험한 산악지대였다. 또 지금도 중국은 수 많은 소수민족들이 어울려 살며 아예 한족들과 많은 부분이 달라 자치권을 인정받고 자기네 마음대로 사는 자치구들도 있다. 하물며 저 당시는 말할 것도 없어,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이민족)들은 한족의 통제를 거부했다. 아무튼 저러다 보니 세 나라의 국력차는 극명했다. 당시의 인구는(정확하진 않지만) 위가 대략 450만, 오가 220만, 촉은 90만 가량... 참고로 이 인구는 당시 삼국의 자체적 인구 리서치에 의한 수치이며 역사가들은 대략 저 시기 중국내의 총 인구를 약 1,600여 만 ~ 2,000만 명 가량이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알기 쉽게 설명해보면 세 나라의 인구, 경제, 군사 등 내셔널파워를 요즘 국가에 비해 본다면 위 = 미국 / 오 = 일본 / 촉 = 한국 정도로 보면 비슷! 4. 단위. 삼국지를 읽다 보면 등장인물들에 대한 비쥬얼을 묘사하는 경우가 있다. Ex.) 여덟 자 키에 범의 머리요, 원숭이같은 팔에 곰같은 상체를 한 장수가 나타났다...(괴물??..) 다른 건 주관적인 묘사니 그렇다쳐도 특히 저, 여덟 "자"의 키는 도대체 얼마나 되는건지 다들 한 번쯤은 궁금해 했을 거다. 일단 지금 기준, "한 자 = 30cm" 인데, 이걸 저기에 도입해 버리면 이건 무슨 거의 골리앗을 넘어 진격의 거인이 되어 버린다. 당시 중국 후한의 도량형에서의 한 자(척)는 23.7cm 정도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 삼국지연의 내에서 여덟 자로 표현되는 장비, 제갈량, 여포, 허저 등의 키는 189cm 가량, 아홉 자로 표현되는 관우, 화웅, 왕쌍, 정욱 등은 213cm 정도가 된다.(하킴 올라주원ㅋㅋ) 당시 중국 성인남성의 평균 키가 140후반~150초반 이였던 점을 보면 엄청난 장신들인데, 이는 그들이 정말 크기도 컸지만 영양결핍 등으로 당시 사람들이 유난히 작았던 탓도 없지 않으며... 정말 키가 크다며 구체적인 내용들이 사료에 남은 이들은 제갈량, 관우, 정욱 등등이 있으며 나머지는 아마도 신체검사 통해 정확히 측정된 수치라기보다 어쨌던 당시로서는 굉장히 키가 크다보니 어림잡아 표현했던 걸로 추정된다. 요즘은 잘 안쓰는 "8척 장신"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정확히 키가 8척이라기 보다 그냥 "키가 크다" 라는 감탄조의 대명사같은 격이라 아마 저들도 그런 표현이 붙었다 보여진다. '관우가 여든 두근의 청룡도를 휘둘렀다....'에서도 저 당시의 한 근은 지금의 한 근인 600g보다 적어서 대략 200g이 좀 안되었기에 실제 청룡언월도는 대충 18kg가량으로 보지만 일단 청룡언월도는 당시 실존한 무기가 아닌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 다루겠음. 일단, 저런 단위 부분에서의 혼선은 어찌보면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저런 단위 관련 묘사들은 정사보다 주로 연의에서 많이 발견되고, 연의의 작가인 나관중은 삼국시대의 거의 1,100여 년 이후 사람이다보니 원이나 명 기준 도량형으로 쓰거나 하기도 했고 또 당시는 지금처럼 깐깐하게 굴지 않으니 고증이 좀 틀린들 딴지거는 사람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인물들 이야기를 하는 틈틈이 이런 사건 or 이해도 높이는데 도움될 듯한 스토리들도 다루겠으니 많은 관심과 피드백 부탁 드립니다ㅎ 다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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