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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의 디스멀랜드

뱅크시(Banksy)의 디스멀랜드(Dismaland)가 9월 27일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건물에 사용된 자재와 비품은 모두 프랑스 칼레 지역 난민 거처를 짓는 데 사용될 것이라고 한다. 기존의 작업과는 차원이 다른 스케일의 디스멀랜드는 6주간 하루 평균 4,000명의 관람객이 방문했고,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총 15만 명을 불러 모았다. ‘숫자’로 보자면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다. 적어도 그가 예상한 집객 수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디스멀랜드에 불쾌함을 느끼고 돌아갔을 것이다.
뱅크시는 오랜 시간 자신의 거리 예술을 통해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정부와 미술계 일각에 일침을 날렸다. 디스멀랜드는 그런 뱅크시의 철학을 테마파크의 형태를 빌어 집대성한, 본인의 작업 중에서도 유례 없는 최대 규모의 도전이었다. 디스멀랜드를 추후 난민 수용소를 만드는 데 사용할 계획까지 세워둔 그의 의도에서는 지금껏 그래 왔듯, 예술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사회운동가적 기질이 잘 드러난다. 고도 소비사회의 상징인 ‘놀이공원(디즈니랜드)’의 형식을 빌려 한바탕 ‘예술의 장(디스멀랜드)’을 만든 점 역시 뱅크시답다. 디스멀랜드는 뱅크시 외에도 데미언 허스트, 제니 홀저 등 여러 아티스트가 참여해 풍자로 가득 찬 작품을 내놓았다.
아이러니하면서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디스멀랜드는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데 목적을 둔 놀이공원이 아니다. 오히려 이곳은 약 한 달간 세계에서 가장 불쾌한 관광지였다.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디스멀랜드는 지금껏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는 무정부주의자들의 축제다. 그런데 이 축제에는 딱히 즐거울 만한 요소가 없다. 인류 사회의 폐부를 찌르고 풍자로 가득한 이곳에 무턱대고 아빠 손을 잡고 따라온 아이들은 순수한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이 거대하고도 냉소적인 아트 쇼는 뱅크시가 지금까지 철저하게 견지해온 아나키즘의 확장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스레 한 가지 의문에 도달한다. 뱅크시는 왜 대규모의 테마파크를 만들면서까지 자신의 철학을 설파하려 했을까?
시기적절하게 등장해 특유의 위트 있는 작품을 남겨온 그는 마치 복면에 정체를 감추고 정의를 수호하는 아트 게릴라 같았다. 그러나 디스멀랜드는 자신의 예술로 사회적 분위기를 환기하고, 미술계의 권위를 꼬집던 그의 행보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거대한 놀이공원에 관객들을 몰아넣고 직설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뱅크시의 디스멀랜드는 짓궂음을 넘어서 다소 고압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부모와 함께 온 어린 자녀들이 한둘이 아닐진대 아직 구구단이나 외는 이들에게 디스멀랜드는 불필요할 정도로 퇴폐적인 메시지를 심어주는 건 아닐까. 아이들이 시니컬한 작품의 의미를 헤아릴 수 있을뿐더러 수많은 관광객은 굳이 멀리까지 와서 엿 같은 기분을 느끼고 돌아가야 하는 걸까. 뱅크시가 만들어낸 디스토피아(혹은 적나라한 현실일지도)는 정말 성공적인가? 디스멀랜드는 그저 유명한 괴짜의 예술적 허영이 만들어낸 ‘유령’인 걸까?
앞서 언급한 의문에 대한 대답은 그가 이번 작품의 소재로 채택한 ‘디즈니랜드’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뱅크시는 체제전복, 반자본주의적 메시지를 거리 예술로 풀어내는 아티스트다. 풀이 죽어서 돌아간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디스멀랜드는 놀이공원이 아니라 뱅크시의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일전에 뱅크시는 뉴욕의 여러 미술관에 침투해 자신의 작품을 걸어놓는 과감한 행위를 시도하며 현대미술을 조롱한 적이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비현실적 유토피아의 대표격인 디즈니랜드를 비틀어 이 거대한 디스멀랜드를 세우고는 세계에 또 한 번 장난을 건 것이다. 조금은 괘씸하지만, 디스멀랜드가 운영되는 동안 뱅크시는 아마도 관객, 또는 평론가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실컷 즐겼을 것이다.
관객은 ‘미키 마우스’가 존재하지 않는 데서 오는 배신감을 필연적으로 맛볼 수밖에 없다. 우리가 기대한 판타지 대신, 적나라한 현실로 디스멀랜드를 메우고 그 뒤에서 천진하게 웃고 있을 뱅크시를 생각하니 마치 어릴 적, 아무렇지도 않게 짝꿍의 장난감을 망가뜨리던 장난꾸러기 친구들이 떠오른다. 그의 디스멀랜드가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 정도로 암담한 상태는 아닐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뱅크시는 질문을 던진다. ‘디즈니랜드’는 정말 당신을 환상의 세계로 인도해왔는가? 이곳에 침을 뱉고 싶을 만큼 우리는 무책임한가?
행복한 웃음을 머금고 디스멀랜드를 방문한 관객에게 뱅크시는 불편한 답변을 요구한다. 그는 이곳에서 이전까지와는 조금은 다른 해괴한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했다. 환상을 품고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세계의 진위를 외면한 이들의 뒤통수를 저릿하게 할 뱅크시의 디스멀랜드는 애초에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 가치 충돌의 모순을 안고 태어났다. 그러나 예술가는 상상을 구현하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디즈니랜드’의 판타지는 이렇듯 어처구니없는 방법을 동원한 뱅크시에 의해 낱낱이 까발려졌다. 이 거짓 같은 현실은 일종의 ‘마술’을 기대한 관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디즈니랜드’를 잉태한 자본주의 논리에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한 뱅크시는 꼭 어린아이 같다. 멀쩡히 ‘잘’ 돌아가는 세상에 딴지를 거는 디스멀랜드가 우리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뱅크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로 그의 작품은 언제나 전 세계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디스멀랜드는 그중에서도 여러 가지 의미로 본인 업적에 한 획을 그은 중요한 작품임이 분명하다. 이제 뱅크시의 정체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정도의 파급력을 보여준 예술가의 차후 행보다. 그의 영향력은 이미 웬만한 셀레브리티 이상으로 거대해졌다. 뱅크시의 작품은 오래전부터 경매장에서 고가에 팔렸으며, 심지어 그의 작품이 새겨진 벽을 떼어다가 판매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정부와 미술계는 이런 뱅크시의 존재를 달가워해야 할지, 부정해야 할지 매번 골머리를 앓을 것이다. 뱅크시 역시 유명세를 적절히 이용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 또한 이제 각종 미디어, 파파라치, 자본 등 자신을 끌어내려는 수많은 장애물과 싸워 자신의 예술을 지켜나가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뱅크시의 거리 예술은 작품으로서의 ‘오브제’보다는 작가의 행위와 작품이 놓이는 상황, 그리고 관객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생명력을 주창한 뒤샹의 철학에 동조한다. 그는 제도권 밖에서 정체를 숨긴 채 관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왔다. 뱅크시는 모든 권위로부터 자유롭다. 그렇기에 그의 모든 ‘행위’는 예술이 된다. 그가 인류의 존엄성 회복이라는 예술의 숭고한 가치를 표현하고 실천하는 몇 안 되는 예술가라는 사실을 부정할 이는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뱅크시는 가장 순수한 형태로 반자본주의적 질서를 제시한 최초의 스트리트 아티스트로서 역사에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그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까. 이미 어딘가에서 또다시 ‘정의’를 싹 틔우고 있을 뱅크시의 예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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