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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바라는 게 없다

블레이크처럼 되고 싶었던 나에게...

나는 지상의 명성을 누리는 것이 달갑지 않다. 인간이 누리는 세속적인 영광이 무엇이든 그 크기만큼 영적인 영광을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이익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나는 오직 예술을 위해 살기를 소망한다. 그러므로 바라는 게 없다. 나는 아주 행복하다. (블레이크)
겁도 없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1997년 겨울 IMF를 핑계 삼아 회사를 나왔다.
나가라고 말도 하기 전에 혼자인 내가, 제일 늦게 들어온 내가 나가는 게 맞다고 그만둬 버렸다.
저축도 없고 계획도 없고... 역시 그때도 단무지였다..
25살 겨울이었다.
참 홀가분했다.
기회만 되면 일러스트 워크숍을 기웃거리던 나는
그림 그리고 싶다는 소망을 이뤄보자며 30살이 되기 전의 목표를 세웠다.
첫째, 30살이 되기 전에 내 책을 내기
둘째, 내 전시회를 하기
셋째, 작가로 성공하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철이 없지만 딱 그때의 내 나이만큼의 수준대로 기도를 했다.
내 책을 내고 성공하게 해 달라고 주일 예배 시간만 기도했다.
(나는 오래된 크리스천이지만..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다.)
워낙 단순한 나는 책만 내면 모든 게 달라질 거라 막연히 생각했던 듯하다.
그리고 28살에 창작 그림책 공모전에 당선되고
2002년 30살에 내 책을 세상에 내보냈다.
그리고 미친 듯이 마감에 쫓기고
생활과 육아전쟁에 쫓기며 쉼 없는 십 년을 보냈다.
나는 스스로에게 핑계를 댔다.
많이 그려보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공부하고 있는 남편도
아이들도 좋은 이유였다.
어느 새 십 년이 지나고
남편은 학위를 받았고
애들은 많이 자랐다.
하지만 나는 나를 잃은 거 같았다.
건강도 잃었고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할 시간도, 친구도 잃었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많이 함께 보내지 못했고,
책은 절판됐고
그림 속엔 내 모습이 없는 거 같았고
여전히 내 그림은 어설프고 촌스럽기 만한 쓰레기처럼 보였다.
한참 동안 쉬면서 고민했다.
나는 실패한 건가?
잘못 살았던 걸까?
다른 일을 할까?
많은 말들을 들었으며
많이 흔들리기도 하고
많이 울고
많이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감사했다.
나는 그래도 많이 이루었다고, 많이 해봤다고 말이다.
그리고 또 욕심을 내게 되고 다시 슬퍼졌었다.
43살의 봄..
새로운 친구가 내게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필요한 걸 이미 다 주셨다고 말이다.
그 말이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
이제
도돌이표처럼 처음 시작으로 다시 온
나는
새롭게 살고 싶고
의미 있게 살고 싶었다.
다시 시작하는 지금의 나는 예전과 다른 두려움이 생겼다.
다시 교만할까 봐,
다시 나를 잃을까 봐,
다시 또 쫓기고 놓치게 될까 봐
두려움이 생겼다.
그 두려움에 압도되지 않기를
나를 잃지 않기를
무엇이든 내려놓을 수 있는 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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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 인용구는 나에게 많은 용기를 준 책에서 가져왔어요. 블레이크의 말이죠.
"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유혹"은 브렌다 유랜드 Brenda Ueland 가 쓴 책이에요.
이분은 1891년 생이예요. 이분이 사시던 때에는 여성의 위치가 오늘과는 좀 달랐기에 아이들의 엄마로, 아내로, 여자로서의 글쓰기의 집중할 수 없는 어려움을 얘기하시는 부분도 많이 위로가 되었던 거 같아요.
여자분들은 한번 읽어 보시는 것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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