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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Mitsu The Beats

일본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Scene)을 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레이블, Jazzy Sport의 대표 뮤지션인 Mitsu the Beats가 다시 한국을 찾았다. 2003년 데뷔작 [New Awakening]를 발표하며 두각을 드러낸 그는 어느덧 굴지의 뮤직 페스티벌에서 세계적인 프로듀서들과 함께 헤드라이너로 소개될 만큼 높은 인지도를 얻었다. 그룹 GAGLE로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특유의 창조적인 믹스셋과 비트로 정평이 난 그는 국내의 힙합 팬들에게도 꾸준한 지지를 받고 있다. 새 앨범 [Beat Installments Vol.3 – Rhodes Special] 발매에 앞서 다시 한국을 찾은 Mitsu the Beats. 한결같은 스타일을 고수해온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일본 힙합그룹 GAGLE의 비트메이킹을 담당하고 있는 DJ Mitsu the Beats다.
약 10개월 만에 다시 서울을 찾았다. 감회가 어떤가.
서울에 올 때마다 느끼지만 한국 친구들은 일본에 있는 친구들만큼이나 친숙하고 편안하다. 늘 반겨줘서 더 자주 오고 싶다. 두 달에 한 번은 오고 싶을 정도로.
한국에서 상당히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체감하고 있나?
음….그런 것 같기도 하고. 최근에 일본을 방문한 한국의 모 아이돌 그룹이 방송에 나와 GAGLE을 언급했다고 들었다. 물론 일본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Scene)에서는 GAGLE이 유명할지라도 내가 셀레브리티는 분명 아닌데. 아무튼, 한국 팬들이 나를 알아봐 준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동영상)제이 딜라(J Dilla)에게 존경을 표한 2014년 앨범 [Celebration of JAY]가 인상적이다. 그의 음악 중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앨범은?
처음으로 접한 앨범인 슬럼 빌리지(Slum Village)의 [Fantastic Vol.2]를 꼽겠다. 이때만 해도 그냥 음악이 좋아서 들었지, 제이 딜라를 잘 알지는 못했다. 그가 파사이드(Pharcyde), A.T.C.Q 앨범을 프로듀싱했다는 사실도 몰랐다. 하하. 어쨌든 이 작품을 계기로 제이 딜라에 심취했다.
제이 딜라 외에도 당신의 음악에 영향을 준 뮤지션이 있다면.
피트 락(Pete Rock)과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 처음 트랙을 만들기 시작할 때, 이들은 나의 길잡이 같은 존재였다.
현재는 당신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로듀서/DJ가 되었다. 음악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 달라진 게 있나?
이름은 많이 알려졌지만,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늘 멋진 곡, 좋은 앨범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밴드캠프(Bandcamp)를 통해 드럼 소스 모음집인 [DRUM PARTS Part​.​ 1]을 공개했다. 비트메이커가 소스를 공개하는 건 정말 드문 일인데 어떤 의도였나?
사실 공개하기 전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분명 비트메이커에게 드럼 소스는 하나의 무기니까. 그러나 많은 프로듀서들이 내 소스를 사용하길 원했고, 더 널리 알려지길 바랐다. 공유를 통해서 우린 발전할 수 있다. 열린 프로듀서들이 더욱 많아지면, 신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2009년에 발표한 [A World to the Wise] 앨범은 방대한 볼륨에 걸맞게 많은 아티스트가 참여했다. 기억에 남는 뮤지션이 있다면.
“Promise in Love”에 참여한 Jose James. 보이스가 좋은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기대 이상으로 잘해줬다. 멜로디 메인 프레임에 들어간 트럼펫 샘플 역시 그가 제안했다. 여러모로 트랙의 완성도를 높여줬다.
Roses, Extra Feeding, DJ Mu-R과 함께 작업한 ‘Sound Maneuvers’ 시리즈를 비롯해 다양한 스타일의 믹스셋을 꾸준히 선보였다. 그 수많은 레코드를 디깅하고, 셀렉하는 과정을 직접 보진 않았지만, 분명 각고의 노력이 뒷받침된 결과일 것이다. 자주 찾는 단골 가게를 알려줄 수 있나?
후쿠시마에 있는 레코드 숍에 자주 가는 편이다. 희귀한 재즈 레코드가 많고, 가격도 적당하다. ‘긱(GIG)’을 하러 간 지역 근처의 레코드 숍도 종종 간다.
다른 음악에서 받는 영감을 어떤 방식으로 흡수하는가?
멜로디를 듣고 나서 집에 있는 로즈 피아노(Rhodes Piano)로 연주해본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떠오른 멜로디가 내 음악에 반영되기도 한다.
(동영상1)그루브맨 스팟(Grooveman Spot)과 함께한 보일러 룸(Boiler Room) 영상을 재미있게 봤다. 어떤 분위기에서 진행됐나?
100% 프리스타일이었다. 모니터 스피커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자세히 보면, 목을 흔드는 장면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각본도 없었고, 심지어 스피커 한쪽의 소리가 나오지 않아 그루브맨 스팟이 케이블을 만져보면서 체크하기도 했다. 비트도 엇나가고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믹스는 아니었지만, 분위기는 좋았다. 어쩌면 그 덕에 좋게 봐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필리핀의 ‘Malasimbo Lights’, 태국 ’Summer Canival(Vana Nava Hue Hin)’, 일본 ‘MTV Presents Soul Camp’ 등 올 한 해 동안 여러 페스티벌을 소화했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가 이뤄졌을 텐데 특히 친해진 뮤지션이 있다면?
DJ Spinna. 이전부터 DJ Spinna와 알고 지내긴 했지만, Malasimbo Lights 페스티벌에 참여했을 때 스케줄 이동을 함께하면서 더 친해졌다. 그때 그가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집에 놀러 간 이야기를 해줬는데, 팬의 입장에서 너무 재미있게 들었다. 하하.
(사진1)SARASA Japan Tour 중 센다이에서 그녀와 함께하지 않았나. DJ SARASA는 어떤 뮤지션인가??
가장 돕(Dope)한 여성 DJ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장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뮤지션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유명하다. 이스트 코스트(East Coast) 계열 음악만을 믹스할 때도 있고,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 재팬(Ultra Music Festival Japan)같은 파티에서는 XLII & DJ SARASA라는 팀으로 어퍼(Upper)한 음악을 틀기도 한다. 디스코 장르에 대한 이해도도 높고, 외모 또한 훌륭하다. 예의도 바르다. 투어 중 계속 영상을 찍어서 부담스러웠지만. 하하.
DJ Mu-R, MC Hunger와 Mitsu the Beats의 팀, 가글(GAGLE)로 공연할 때는 마이크를 쥐고 랩도 하더라. 팀에서 Mitsu the beats는 어떤 포지션인가?
파트를 예전보다 더 세분화했다. 공연할 때는 DJ Mu-R가 DJ의 역할을 담당한다. 나는 머신 이펙터를 통해 Hunger의 목소리에 효과를 입힌다. 물론 Hunger는 랩을 하고. 예전에는 Hunger와 함께 랩을 한 적도 있지만, 이건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포기했다.
MC Hunger는 어느덧 일본 내 손꼽히는 래퍼로 우뚝 섰다. 팀원으로서 그의 랩을 평가하자면?
딜리버리(Delivery: 전달력)라는 측면에서 그의 랩은 최고의 경지에 올라 있다. 그의 라이브는 정말 훌륭하다.
밴드 Ovall과 좋은 합을 보여줬다. 어떤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되었나?
서로 곡을 데이터화해서 주고받았다. 서로 데모를 만들어서 보내면 추가 작업을 해서 돌려보내는 방식을 통해 완성되었다.
멋진 DJ라면?
모든 장르를 섭렵한 DJ를 존경하는데, 한편으로는 하나의 장르를 파는 DJ도 멋지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자주 온 만큼 한국 뮤지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누구와 함께 작업하고 싶은가?
너무 많다. DJ Soulscape를 비롯해 360sounds 친구들, 그리고 아메바 컬처 소속 래퍼들. 또 내게 추천하고픈 뮤지션이 있나?
왠지 김아일(Qim isle)이나 후디(Hoody)와 잘 어울릴 것 같다.
한번 체크해보겠다.
향후 계획에 대해서 알려 달라.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매일 작업을 하고 보통 하루에 한 곡씩은 만들고 있다. 만든 곡을 밴드캠프나 사운드클라우드에서 공유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 작업과 GAGLE의 행보는 별개다.
견지하는 삶의 태도가 있다면?
너무 나만의 세계에 빠져들지 않는 것이다.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노래는 너무 상업적이야”, 혹은 “이 곡은 너무 빨라” 따위의 생각들이다. 이전에는 반대로 고지식하게 한 가지 생각에만 몰두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아쉽다.
텍스트/진행 ㅣ 이철빈
사진 ㅣ 백윤범
통역 및 도움 ㅣ BK (The Jas / Jazzy sport Seoul)
장소 협조: The Ja’s climbing g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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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zzzz 보일러룸 엄청 좋아합니다 :D
와우 직접 인터뷰하신건가요? 인터뷰 깊이가 대단하시네요 저런 질문이나 추천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ㅋㅋㅋ 보일러룸 엄청 좋아하는데 이 편은 못본것 같네요!
@lizzzz 자스도 좋지요 :)
@paradis 인터뷰는 지난달 초에 진행했던 내용입니다!
@visla 저도요 왔을때가봤어야했는데 ㅎㅎㅎ 자스클라이밍짐은 정말 핫하네요 여러모로 ㅋㅋㅋㅋㅋ 개인적으로 자인님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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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토를 작살낼 불타는 G funk hiphop 추천😎
모두의 화끈한 불토네요!!! 다들 지금 꽃단장 하고 계신가요? 아니면 이미 핫플레이스 가고계시나요? 벌써 시작하신 분들도 있겠네요 불토를 조금더 핫하게 만들 신나는 g funk 몇곡 링크하고 갈라구요 Dr.dre - the next episode 안들어도 이미 귀에서 맴돌만한 곡이죠 라이브는 더 신나네요! 혹시 공공장소나 이동중이신분들은 1:35초부터 후방주의...(쉿) 위 영상은 풀버전공연영상으로 보면 19금이죠.. Ice cube - bow down westside connection 과 함께한 곡이네요 큐브형 특유의 익살맞은 랩은 언제들어도 흥겨운것 같아요! snoop dogg - G funk intro 우리 개형의 1집앨범 수록곡이네요 요즘과는 사뭇다른 느낌! 보통 90년대 힙합아티스트들은 옛날 스타일이 낫다 생각하지만 스눕만큼은 최근 스타일이 좋다생각하는 1인 coolio - ooh la la 서부의 총질하던 갱스터 흑형들과 달리 착한과거를 지닌 흑형 coolio..! 그래서 그런지 그의 음악은 조금은 부드러운 느낌이 드네요! 그중에서도 빠르고 신나는곡 이네요 ㅎㅎ 이형 머리스타일은 산다라박은 따라갈수도 없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 coolio - exercise yo game 또다른 coolio의 곡입니다 나 전에 팝핑좀 해봤어...! 하는 분들에겐 클래식한 곡이죠 사심잔뜩 들어간 사랑하는 곡입니다 nate dogg - I got love g funk 하면 dr.dre 만큼이나 먼저 떠오르는 아티스트죠ㅠㅠㅠ 이제는 고인이 되신..Rip 좋네요...역시 daz dilinger - tha dogpound gangsta 정확한제목은 기억이 안나네요 ㅠㅠ 마찬가지 팝퍼들에겐 클래식과 같은곡..! 강한비트가 인상적인 곡이네요 ㅎㅎㅎ 힙합은 언제들어도 좋지만 푹푹찌는 여름엔 건조한 동부 힙합보다는 멜로디컬하고 신나는 서부힙합이 낫지않나 싶네요 ㅎㅎㅎㅎ 지금 놀고계시는분들! 이제 놀준비 하고 계시는분들! 모두 성공하시길! (뭘..?) 즐거운 불토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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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이를 감동시킨 학생들의 떼창
지난주 이하이양의 연세대축제 공연이 화제인데요, 여러 기사중에 허핑턴포스트의 기사를 퍼왔습니다. "이하이를 감동시킨 학생들의 떼창(영상)" 가수 이하이와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갑자기 일어난 음향사고에 무반주 공연과 ‘떼창’을 선보였다. 지난 22일 유투브의 ‘Yein Chung‘이라는 유저는 이하이가 연세대학교 축제에서 선보인 무대 영상을 공개했다. 이는 이보다 하루 앞선 21일 촬영된 것이다. 영상에서 이하이는 ‘원, 투, 쓰리, 포’를 부른다. 갑자기 반주가 끊어지고, 이하이는 침착하게 마이크를 객석의 학생들을 향해 돌린다. 이에 학생들은 환호하며 ‘떼창’을 선보인다. 곧 반주가 나왔으나 계속 불안정한 상태였다. 이에 이하이는 무반주로 노래를 이어가고, 학생들과 함께 주고 받으며 무반주로 노래를 마친다. 노래를 마친 뒤 이하이는 “어떻게 된 건가요? 너무 좋아”라고 말하고, 학생들은 이하이의 이름을 외친다. 이 영상은 유투브에서 37만7천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댓글에는 국내를 넘어 해외의 팬들까지 “멋지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출처 http://m.huffpost.com/kr/entry/10124472 이 영상은 이하이양의 공연전체가 담긴 풀영상입니다. 1,2,3,4를 무사히(?) 마친 후 앵콜로 나는 달라를 불렀는데요 중간에 사회자가 올라와 공연을 끊습니다. 그 이유가 한 학생이 노래를 듣다가 실신을 했다는 거였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은 공연이었지만 연세대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끌어냈고 인상도 깊게 남겼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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