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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디 크뤼거 | Hardy Kruger

본명: Franz Eberhard August Kruger, 1928년 4월 12일(독일 베를린-베딩) 출생
스타성: 큰 키, 강건함, 미남 아이돌 배우, 금발, 제작자, 감독, 영어로 만든 액션 영화에서 외국인 역할의 성격 배우를 자주 연기함, 유창한 영어와 프랑스어와 독일어
"나에게 맞지 않는 역할을 맡느니 차라리 영화에서 빠지는 게 낫다."
하디 크뤼거는 「젊은 독수리(1944)」에서 열다섯 살 소년 역으로 처음 영화에 등장했다. 그러나 이듬해 독일군 보병대로 징집되면서 연기 경력은 갑자기 중단되었다. 전쟁 동안 미군의 포로로 잡혔다가 세 번째 시도에서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는 1949년이 되어서야 연기를 다시 시작하여 고국 독일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막 발돋움하기 시작한 명성과 남자답게 잘생긴 외모, 제임스 딘과 비슷한 반항적인 분위기로 1957년에 영국 영화계의 큰손 J. 아서 랭크와 계약을 맺고, 이어 영어로 만든 영화를 통해 세계적인 스타라는 경력을 만들어나갔다.
그가 이 당시 출연했던 영화 중에는 두 편이 기억에 남는다. 로이 워드 베이커의 「원 댓 갓 어웨이(1957)」에서는 영국군 수용소에서 계속 탈출을 시도하는 대담하고도 동정심을 일으키는 나치 비행사 포로를 연기했고, 마티니 아이돌다운 그의 외모를 잘 살린 조지프 로지의 「블라인드 데이트(1959)」에서는 연상의 여인과의 로맨틱한 관계와 뒤이은 그녀의 살해에 연루되는 외국인으로 등장했다. 1960년대에 그가 맡은 가장 좋은 역할들은 여러 나라의 액션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워드 혹스의 「하타리(1962)」에서는 존 웨인의 상대역으로 방자하지만 다감한 사냥꾼을 연기했고, 로버트 올드리치의 「사막의 기적(1965)」에서는 비행기가 추락한 후 사막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되는 음울하지만 지적인 엔지니어를 연기했다. 스탠리 큐브릭은 역사 드라마 「배리 린든(1975)」에서 포츠도르프 대위로 그를 캐스팅했다. 주목할 만한 가장 최근의 연기는 나치 육군 원수 에르빈 롬멜 역을 연기한 텔레비전 미니시리즈 「전쟁과 기억(1988)」에서 볼 수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동안 크뤼거는 유럽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여러 편을 감독했다. 그는 역시 배우로 활동하는 크리스티아네 크뤼거와 하디 크뤼거 주니어의 아버지이다. DS

501 영화배우 : 501 MOVIE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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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 그 영화는 상영되지 않았다.
흡사 마법의 터치가 곳곳에서 꽃길을 내고 폭죽을 쏘며 샘물을 파는 것만 같다. 쓸쓸한 결말임에도 보고 나면 이상하게 행복감이 차오른다. 엠마 스톤은 한없이 사랑스럽고 라이언 고슬링은 더없이 뭉클하다. <라라랜드>는 황홀하도록 아름답다. 꽉 막힌 고속도로를 신나는 공연장으로 만드는 첫장면이 지나간 후, 이 뮤지컬 영화는 마치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처럼 펼쳐지기 시작한다. 첫만남부터 으르렁거렸던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마주친 뒤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에게 강렬하게 끌려간다. 또한 전형적인 멜로처럼 두 남녀는 사랑의 봉우리에 오르고도 어느덧 세파에 밀려 서로에게 지쳐간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간추려진 스토리일까. 더구나 이건 안과 밖, 표층과 심층이 사뭇 달랐던 <위플래쉬>의 감독 데미언 채즐의 신작이 아닌가. 빠진 키워드가 있다면 바로 꿈일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꿈과 사랑의 관계다. 둘은 각자의 세계와 불화하는 아웃사이더였다. 배우인 한 사람은 망설이며 주저앉는 게 문제고, 음악인인 다른 사람은 잘못된 자리에 가 있는 게 문제다. 중반까지 그들은 서로 사랑을 나누는 사이면서 동시에 희망을 북돋아주는 사이였다. • 그러니까 이건 경적을 울려주는 자와 이름을 붙여주는 자의 사랑과 꿈이 어떻게 화합하거나 충돌하는지를 그려내는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여자의 차는 교통체증으로 서 있거나, 견인되어 사라지거나, 주차되었지만 어디 있는지 모른다. 그런 여자에게 길이 뚫렸으니 빨리 가라면서 처음부터 경적을 울리며 나타난 남자는 요소요소마다 경적을 울려대며 계속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남자가 속한 밴드명이 메신저스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에게 경적과 함께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자신이 해야 할 음악 스타일에 대한 확고한 견해를 지녔음에도 현실의 벽에 부딪쳐 자꾸 엉뚱한 자리에서 원하지 않는 연주를 한다. 그런 남자에게 여자는 요소요소마다 이름을 붙여준다. 그를 조지 마이클이라고 부르고, 그가 운영하길 원하는 클럽명을 셉스라고 지어주며, 그가 연주해야 할 다음 곡명 'I ran'을 지정해준다. 남자에게 진짜 이름이 있고 지어둔 다른 클럽명이 있으며 예정 목록에 다른 노래가 있어도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름이 붙여지게 되는 상황 자체가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 그렇게 경적을 울려주는 자는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이름을 붙여주는 자는 정체성을 확인시켜준다. 하지만 사랑이 환상의 날개를 떼고 현실로 내려와 발을 내딛는 순간 꿈과 유리되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그들의 사랑은 예술이 제공하는 허구의 환상에 늘 젖줄을 대고 있었다. 로맨스가 펼쳐질 때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첫키스 장면만 해도 그렇다. 뒤늦게 극장으로 달려간 여자가 스크린을 등진 채 객석에 있을 남자를 찾을 때, 여자의 몸은 스크린에 영사되고 있는 <이유없는 반항> 장면과 겹쳐져 영화의 일부가 된다. 이어 객석에 나란히 앉은 두 연인은 서로의 입술을 찾지만 갑자기 필름이 타버리고 상영이 중단되는 바람에 키스가 유예된다. 그러자 잠시 민망해진 여자는 좋은 생각이 있다고 말한다. 그건 영화 속으로 들어가려는 아이디어였다. 두 사람은 차를 몰고 그리피스 천문대로 감으로써 <이유없는 반항>의 한 장면을 재연한다. 그리고 천문대의 돔형 상영관에서 재차 키스를 시도하지만 또다시 중단된다. 상영 레버를 작동할 때 썼던 손수건이 그들 사이로 날아 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시금, 그들이 먼저 해야 할 것은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영화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의 허리를 부드럽게 하늘로 밀어올린다. (이 영화에서 하늘은 시종 꿈을 시각적으로 은유한다.) 뒤따라 올라가 영사된 은하수를 배경으로 함께 왈츠를 춘다. 그리고 마침내 음악과 춤이 끝나고 영화가 끝난 후에야 내려와 키스를 하는데 성공한다. • 먼저 영화가 끝나고, 환상이 끝나고, 꿈이 끝나야 비로소 키스를 할 수 있다. 그게 이 영화에서의 사랑이 처한 위치다. 극중 도시는 무척이나 로맨틱하게 보이지만 정작 연인들은 낭만적이기 이를 데 없는 2인무를 두 차례나 선보이면서도, 정작 춤이 펼쳐지는 두 공간 모두에 대해선 "경치가 별로"라고 굳이 말한다. 그러니까 멋진 것은 세상이나 현실이 아니라 그 위를 수놓는 예술이나 꿈이다. 그들의 사랑은 분명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건 환상이 채색하는 특정한 조건 하에서만 한시적으로 그랬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둘은 그들 사랑에 매혹적인 정점을 찍었던 천문대를 올려다보다가 볼품 없는 광경에 실망감을 토로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낮에 온 건 처음이야." 그때 연인들은 밤의 판타지가 제거된 사랑의 앙상한 현실을 비로소 목도한다. 남자의 꿈은 타인들과의 관계를 반드시 필요로 하진 않는다. 맘에 맞는 동료들과 밴드를 만들어서 공연장을 순회하는 게 아니라, 사장이 되어 클럽을 직접 운영하며 원하는 음악을 맘껏 하고 싶어하니까. 그건 여자의 꿈 역시 마찬가지다. 손수 돈을 대서 공연장을 빌린 후 직접 쓴 극본에 따라 혼자 연기하는 일인극을 펼치고 싶어하니까.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은 각자의 홀로서기를 돕는 사랑이고,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둘보다 하나인 게 자연스러워지면서 소진된다. (예언처럼 다가오는 극 초반 장면에서, 남자의 충고에 따라 여자가 "이제 나도 오디션 집어치우고 역사를 쓸래요"라고 하자 남자는 말한다. "이제 내 역할은 끝났네요.") 두 사람 간의 마지막 대화에서 남자는 여자가 파리에서 촬영할 영화 출연을 위한 오디션에 합격하면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한다면서 "그게 네 꿈이잖아"라고 말한다. 그건 물론 사랑하는 사람의 꿈에 대한 배려였고 격려였다. 하지만 그 말은 그게 내 꿈은 아니라는 뜻 역시 내포한다. 그러니 남자가 그 직후에 "난 여기 남아서 계획된 것을 할 거야"라고 덧붙인다고 해서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여자 역시 침묵으로 그 말을 수긍한다. • 둘은 함께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둘보다 하나를 택했고, 사랑보다 꿈을 택했다. 같이 보낸 네 계절은 분명 달콤했다. 하지만 이제 그 시간은 지났다. •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보면 새드엔딩이지만, 꿈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이면 결국 둘 모두 성공하게 되는 결말은 해피엔딩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꿈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고 역설하는 영화가 아니다. 꿈을 향해 달려가다보면 관계는 망실된다고 암시하는 영화다. 선택이란 하나의 성취보다는 다른 하나의 포기를 의미한다고 읊조리는 영화다. <위플래쉬>에 이어 음악영화를 계속 만들면서도 음악(꿈)과 삶(관계)을 구분 짓고 끝내 양립불가능한 것으로 그려내는 데미언 채즐의 비관주의는 기이하고 아프다. 5년이 흐른다. 다시 겨울이 찾아온다. 하늘이 그려진 커다란 천을 스태프들이 옮기는 이 영화 에필로그의 도입부는 의미심장하다. 그러니까 그 사랑에 내내 활력을 부여했던 하늘은 허구였다. 그 사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된 여자는 배우 친구의 연극 무대를 보러 가다가 교통체증에 맞닥뜨리자 가볍게 계획을 바꿔 옆길로 샌다. (이전의 그녀는 길이 풀릴 때까지 계속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이 자신의 연극 무대에 오지 않았던 일 때문에 큰 상처를 입었던 사람이었다.) 우연히 한 클럽에 남편과 함께 들어간 여자는 그곳의 이름이 셉스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그리곤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남자를 바라보며, 발생할 수 있었던 그러나 끝내 존재하지 않았던 일련의 사건들을 간절한 가정법으로 떠올린다. • 그 속에서 둘은 내내 함께였다. 하지만 가정법 형식 속에서조차 두 사람이 함께 가정을 꾸리는 모습은 둘이 보는 영화 속 장면들로 묘사된다. 다시 한 번, 영화가 끝나야 비로소 사랑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영화는 상영된 적이 없었다. 출처ㅣ 이동진의 어바웃 시네마 “라라랜드” / 그 영화는 상영된 적 없었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영화와 글입니다 :) 재개봉 기념으로 ( 지난 12/31부터 CGV에서 상영 중입니다 ! ) 가져왔는데 . . 극장에서 볼 수 없음에 눈물 한 방울 또륵 😢
반지) 절대반지는 왜 제작되었는가
한창 반지의 제왕 신나게 정독중에 든 생각 '이거 반지를 왜 파괴해야하고 그런 건 다 아는데, 왜 사우론이 자기 힘 쏟아서 반지 만들었는지는 좀 가물가물하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저 이유가 1편 도입부 정도만 나오고 또 반지전쟁 시점에서는 딱히 알 필요가 없었기 때문임 반지전쟁이 벌어지기 수천년 전, 중간계에 '안나타르 (선물을 주는 자)' 라는 군주가 등장함 그는 짤과 같이 몹시 아름다운 외형으로 많은 지도자들의 환심을 샀음 안나타르는 요정들에게 '세월의 풍파를 막아주며, 가운데땅에서의 영광을 지속시켜주는 반지를 주겠다'라고 설득을 시전. 종족의 운명이 가운데땅을 떠날 것임을 아는 요정들에게는 몹시 반가운 제안이었음 엘론드와 갈라드리엘 등 상당수의 요정들이 출신을 알수 없는 안나타르를 꺼려했지만, 집단 안에서 님 취존요 하면서 다른 소리는 나오기 마련. 걸출한 솜씨를 갖춘 요정 장인 '켈레브림보르' 이 이름 좀 복잡한 양반은 안나타르의 기예를 빌려, 16개의 반지를 주조해냈음. 그리고 안나타르의 힘을 빌리지 않은 3개의 반지를 더 만들어냈지. 문제는 그 안나타르라는 새끼의 정체가 사우론이었다는 것과 운명의 산 중심부에서, 자신의 힘과 존재까지 쏟아부은 최고의 반지를 만들어버렸다는거지 아무도 모르게 만든 자신만의 반지이자 유일무이한 반지. 모든 반지를 지배할 반지, 모든 반지를 찾아낼 반지 모든 반지를 암흑 속에 가둘 단 하나의 반지. 바로 절대반지를 말이지. 즉 사우론의 목적은 이랬음. 1. 요정들에게 힘의 반지를 선물해 착용하게 한다 2. 자신은 그 모든 반지를 지배할 절대반지를 몰래 주조한다 3. 요정들은 타락죽에 빠져 지배될 것이다. 2 까지는 잘 흘러갔는데....? 사우론: 흐하하하 이제 모두가 내 발밑에 조아리게 될 것이다 요정들: (침착하게 반지를 손에서 뺀다) 로 아주 스무스하게 타락죽을 회피해 버림. 계획이 파토난 사우론은 뭐 별수 있나 본색을 드러내고 전쟁을 일으켜, 켈레브림보르를 고문해 죽이고 그에게서 반지 16개를 빼았음. 오직 사우론이 손대지 않고, 켈레브림보르가 직접 만든 반지 3개만이 요정들에게 남았음. 하늘 아래 요정왕들에게는 세 반지 사우론의 손길이 닿지 않은 세 개의 반지를 의미함. 사우론의 힘이 개입되지 않아 타락죽 위험이 없었고, 사우론은 요정에게 좋은 템만 건내준 꼴이 되었다나? (어디까지나 착용시 타락죽만 없고, 제작기술 자체는 사우론의 영향이 있어서 절대반지에게 좌우되는건 같음) 이 반지는 요정 군주들에게 주어졌고, 반지제왕 시점에서는 엘론드, 간달프, 갈라드리엘이 소유함. 이렇게만 보면 사우론의 장대한 삽질기 같지만, 그 양반이 재활용을 은근 잘하더라고 돌 전당의 난쟁이 왕에게는 일곱 반지 사우론은 난쟁이들에게 반지를 나누어줬고, 그들을 지배하고 타락시키려 했음 하지만 난쟁이들은 부숴질지언정 지배당하진 않는 종족이어서, 효과는 미미했고 그렇지만 반지는 난쟁이들의 탐욕을 부추겼고 금과 보화에 대한 욕심이 심했던 난쟁이 군주들은 탐욕에 미쳐가며, 멸망하고, 반지들은 다시 사우론에게 회수됨 죽을 운명의 인간에게는 아홉 반지. 어떤 종족보다 나약했고 타락에 약했던 인간들은 바로바로 타락 반지의 효과로 영생을 살았지만, 인위적으로 수명을 늘린 것이기에 점점 투명하고 말라비틀어져갔고 결국 아홉 나즈굴, 반지망령으로 변해 사우론의 가장 충직한 부하 노릇을 하게 됨. 이들은 사우론의 명을 받아 곤도르를 괴롭혔으며, 북왕국을 침공해 멸망시킴. 이 즘에서 결산해보면, 사우론이 반지를 만든 목적인 '요정의 지배와 타락'은 실패했지만 그래도 가운데땅의 난쟁이와 인간 세력을 상당수 조져놓는 성과는 달성한 셈. 나름 본전치기는 했지. 하지만 사우론에게도 큰 페널티가 걸렸는데, 바로 절대반지에 자신의 운명과 존재가 속박되었다는 것. 저 이후에 사우론은 육신을 잃었고, 그때마다 그의 존재는 점점 절대반지에 깊이 묶이게 되어 반지전쟁 시기에는 반지를 가지면 본래의 권세를 되찾지만, 반지가 파괴되면 완전히 무력화될 정도로 반지에 의존하게 되버렸고, 결국 최종적으로 절대반지가 파괴되면서 강력한 존재에서 무력한 유령정도로 변하게 되버린것. (출처)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잘 정리된 글이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다시 봐야겠네 반지의 제왕
[라이트하우스] ‘현타’보다 선명한 미래는 없다
- 욕망의 여정으로 보는 원초적 공포 ※ 영화 <라이트하우스>의 결말 등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 ------- 공포영화에서 공포는 주로 ‘어떻게’ 오는가. 우선 어제와 다른 오늘, 익숙한 시공간에 금이 가고 그 틈으로 괴물 또는 괴이한 무언가가 스며들겠지. 가족과 친구들, 주인공의 미래가 그것들에 갉아 먹혀갈 때 공포영화는 그 상황과 괴물을 공포의 근원으로 삼을 터. 이때 공포감의 운동성은 ‘칼’의 움직임과 닮았다. 평온의 막을 베고 침투해서는 난도질, 그러다 훅, 관객의 영역까지 찌르는 모양새. 물론 이 물리적 흐름으로 설명되지 않는 영화들은 있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라이트하우스>(2019)도 그중 하나. 이 영화에는 침입, 침투, 그 무엇이든 쳐들어와 헤집는 운동성이 없다. 일상과 비일상 간 대조도, 공포의 제작 및 전달자도 부재하다. 그럼에도 국내외 영화 소개 페이지들은 이 작품을 ‘호러’로 분류 중. 실제로 제법 무시무시하다. 공포 전달용 일반 회로가 장착되지는 않았지만 무섭다는 말, 이 공포감의 정체는 뭘까? # 욕망과 욕망의 오디세이아 흑백으로 촬영된 <라이트하우스>는 20세기 초반의 두 등대지기, ‘고참’ 토마스 웨이크(윌렘 대포)와 ‘신참’ 에프라임 윈슬로(로버트 패틴슨)에 관한 이야기다. 에프라임은 등대 불빛을 교대로 관리하길 바라지만 토마스는 이를 완강히 거부한 채 불빛을 독차지한다. 두 남자, 억누름과 밀어올림. 무슨 일이 일어날까. 영화 중간의 짧은 숏 하나, 거꾸로 보이는 등대가 화면이 뒤집히면서 바로 선다. 이를테면 발기하는 페니스. 실제로 로버트 에거스는 여기다 진짜 페니스를 찍어 붙이려 했으나 무산됐다고 한다. 다시 ‘두’, ‘남자’임을 떠올리자. 그러니까 <라이트하우스>는 발기된 두 개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외부 ‘침입’보다는 서로 간 ‘경합’이 어울릴 듯하다. 욕망은 둘인데 탐할 수 있는 실체적 대상, 즉 등대 불빛은 하나인 상황. 영화는 주로 욕구불만인 에프라임의 의식 흐름을 좇는다. 훔쳐보기는 수순일까. 그는 등대 불빛 칸에서 토마스가 인어인지 거대 촉수인지 모를 무언가와 ‘교미’ 비슷한 것을 하는 걸 보고, 자신을 대입시키고, 분출하고, 분노한다. 이런 식이다. 단, 경험 없는 상상은 결핍을 키우기 마련. 욕망은 끝내 해소돼야 한다. 어떻게? 나를 가로막는 토마스를 없애서라도. 애초에 이럴 운명이기는 했다. 이 등대섬은 그러라고 장만된 무대 같다. 폭풍우는 멈출 기미가 없으며 교대팀의 배는 오지 않는다. 고립은, 공간 감각은 물론 시간 경과에 대한 인식마저 도려낸다. 며칠 혹은 몇 주가 흘렀는지 시간적 배경을 그들도 관객도 모를 지경. 게다가 각자 과거의 고백과 의심이 뒤섞여 두 사람의 정체성마저 뭉개졌다. 에프라임의 ‘욕구 불만족’과 토마스의 ‘수호 의지’만이, 이 우주를 통틀어 남은 유이한 키워드인 것 같다. ‘이때 토마스는 누구인가?’ 토마스는 해독 불가한 모종의 구전 신화를 읊는 등 무언가에 홀린 듯하면서도, 일이 느리고 게으르다며 에프라임을 구박하고 말대꾸 시 급여를 안 주겠노라 협박까지 한다. 원시성과 현실성을 두루 갖춘 억압. 말은 안 통하는데 위협은 실재적이다. 익숙하지 않은가. 이를테면 누구나 한 번은 겪(었)을 폭압적 부모, 스승, 선배, 상사, 또는 그 비슷한 무엇들. 안타깝게도 이 토마스‘들’은 특정한 마법으로 소환된 게 아니라 그냥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다. 우리, 그리고 우리의 욕망이 그렇듯. 두 욕망의 역학관계상 나중 것에 의한 전복은 필연이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에프라임은 마침내 등대 불빛을 오롯이 향유한다. 결과는? 그는 불빛을 보며 쾌락인지 고통인지 모를 표정으로 산화하듯 절규하다가 밑으로 굴러 떨어진다. 아마도 죽겠지. 불빛의 정체와 그 순간의 감정은 영영 알 수 없게 됐다. # ‘현타(현실 자각 타임)’와 ‘죽음’, 언제나 참 결자해지의 의지일까. 로버트 에거스 감독은 여기다 최종 숏을 붙임으로써 이 등대 치정극의 ‘장르’는 규정 지어준다. 바로 눈 하나를 잃은 알몸의 에프라임이 바닷가에 널브러져 죽어 가면, 갈매기가 그의 내장을 뜯어먹는 숏. 이때의 에프라임은 제우스의 불을 훔쳐 인간한테 전해줬다가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게 된 프로메테우스와 노골적으로 닮았다. 이를테면 ‘신화’로 박제된 ‘소멸’의 엔딩. 왜? 에프라임이 욕망했기 때문에. 오르가즘은 태생적으로 증발하는 것 아니던가. 거 ‘현타’ 한번 오지다. 한걸음 더. 욕망의 카테고리 중 가장 큰 것은 ‘숨’의 지속, 즉 생(生)에의 의지다. 이렇게 보면 증발하는 건 결국 우리 자신이요 기다리는 건 죽음이 된다. 선점자인 토마스도, 후발주자인 에프라임도 모두 죽었다. 쾌락이든 목숨이든 일단 점유한 자들은 길게 머무를 수 없다. <라이트하우스>에서 공포란, 곧 소멸할 쾌락을 좇도록 디자인된 우리의 방향성,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의 너머에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인 셈이다. 이 정도로 근원적인 공포감이 기존 호러영화들의 운동성을 짜잔, 두르기란 어렵다. 보다 날-공포인 만큼 그 성질에 대한 힌트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찾아야 한다. 날것, 태초… 그렇게 인류의 출현부터 먼 미래까지를 ‘꿰어’버린 영화로 가보자.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이 걸작 SF를 꺼내든 건 이 영화에 인류사를 유인원 시절부터 촉발시켜온 검은 돌기둥 ‘모노리스’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색이 입혀지기 전부터 우리 생을 운용했을, 절대적 배후 같은 물질. ‘증발’과 ‘소멸’, ‘죽음’ 따위의 <라이트하우스>적 공포는 바로 이 영험한 유물에 새겨진 지침처럼 존재한다. 애초에 운동성을 띨 필요가 없었던 것. 가라사대, 침투하지 않아도 그저 기다리면 인간들이 도착하리니. ← 공포계에 짜라투스트라가 있다면 이렇게 말했을 거다. (위)<라이트하우스>의 최종 숏 / (아래)<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모노리스’ # 이보다 선명한 미래는 없다 로버트 에거스는 장편 데뷔작 <더 위치>(2016)에서 마녀를 공포감의 근원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선택되는 모종의 출구로 다뤘다. 무서운 건 모든 걸 왜곡하는 렌즈, 즉 인식 불능에 빠진 ‘맹신’의 시대였다. 그리고 <라이트하우스>에서는 비율 1.19:1의 흑백 프레임에다 ‘소멸론’을 인류의 기원신화인 양 보존해놨다. 말로 옮기자면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정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욕망하고 살아가는 우리 앞에, ‘현타’와 ‘죽음’보다 선명한 미래가 또 있을까? ⓒ erazerh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올라갑니다.
스튜디오 지브리가 그리는 여성
지브리 팬들도 알겠지만 스튜디오 지브리 (대부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애니메이션의 여성캐릭터들은 공통점이 있어 그건 바로 남자의 도움 없이 어떤 문제도 해결을 못하는 수동적인 여성캐릭터(민폐여캐)가 없다는 거야 그 예시로 1984년에 개봉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를 보면 주인공은 자연재해를 막는 영웅성이 강한 여자고 그와 대응하는 악역도 여자야 오히려 남자주인공은 서포터 역할을 해 그럼 이제 민폐여캐가 아닌 지브리 애니메이션 여주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여성상을 투영하는지 알아보자 이웃집 토토로 (1988) 주인공이자 언니 역할인 사츠키 부모의 부재중에도 독립적이고 자존감이 강한 여성 마녀배달부 키키 (1989) 키키 환경을 탓하거나 남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자주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여성 원령공주 (1998) 자연을 지키기 위해 인간과 싸우고 자신을 희생하며 헌신하는 강인한 여성 산 작품 중 난폭한 자연을 상징함 오히려 남주는 부드러움과 타협, 평화를 상징 인간측을 대표하는 악역 리더 에보시 비록 자연을 파괴하는 악당이지만 남성지배문화를 극복하고 나병 환자와 여성에게 동등한 노동의 기회를 주기도 한 입체적이고 양면성을 가진 여성이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여러 사람과 유대관계를 맺고 용기를 내며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실천하는 여성 치히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 모자 가게를 계승하는 장녀 소피 극 중 전쟁이라는 문제와 하울의 마법을 풀어주는 구원자 역할을 하는 여성 캐릭터가 각기 다른 여성상을 투영하고 참 입체적이지?? 그렇다고 스튜디오 지브리가 "여성 만세!" 하면서 여성을 숭배하는건 아니야 *천공의 성 라퓨타* 극 중 남자주인공들 또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해 다만 다른 작품과 차이점은 여자가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보호받는것이 아니라 남자와 동등한 비중을 갖고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하는거야 때로는 여자가 남자보다 리더십과 책임감이 강한 인물로 묘사가 되기도 해 이는 남주의 구원만을 기다리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흔해빠진 여성캐릭터와 큰 차이가 있지 또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여성캐릭터는 남자 관객의 눈요기를 위한 노출이나 섹스어필을 하지 않아 다른 작품과의 비교 *너의 이름은* 치마를 입은 여성캐릭터는 속바지를 입고 절대로 가슴이나 팬티 노출을 하는 경우가 없으며 바지를 입은 여성캐릭터도 있고 여자 주인공들의 외모도 개성있고 독특하고 정통 미소녀 얼굴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아 *벼랑 위의 포뇨* 물론 지브리 애니매이션 여성캐릭터도 리본이나 악세사리를 착용하는 등 여성성의 상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진 않아 *키키의 왕리본* *산의 귀걸이와 목걸이* +) 하지만 바지를 입거나 리본을 다는 등.. 선입견 없이 다양한 여주들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더 매력적인 것 같아 34년 전부터 스스로의 권리를 찾아가고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상을 꾸준히 묘사해온건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럼 다들 재밌게 읽었길 바라고 좋은 하루 보내! 참고문헌: 백선기 - 영화 그 기호학적 해석 이사벨 마이어스 - 성격의 재발견 마르틴 졸리 - 이미지와 기호 김은주 -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이데올로기적 이미지 출처: 쭉빵 , 꽃과 사슴
미국 드라마 역사상 최악의 왕따사건 (섹스앤더시티)
1998년, 존나 신개념의 미국 드라마가 등장함. 여자 친구들이 각자의 성생활에 대해 웃고 떠드는 내용의 발칙한 드라마였고 때문에 윗선의 압박이 만만치 않았지만 결국 방송됨. 네 명의 여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이 중에서도 '캐리 브래드쇼' 라는 칼럼리스트가 극의 중심에 있었고 캐리 역을 맡은건 사라 제시카 파커 하지만 시즌이 진행될수록 거침없는 성생활을 지향하는 자유로운 '사만다 존스' 캐릭터의 인기가 높아졌고 이 역을 맡은건 킴 캐트럴 극의 중심이던 사라 제시카 파커(이하 사제팍)의 심기가 불편해지게 됨. 점점 사제팍과 킴 캐트럴(이하 킴)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형성되는데 킴이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갔기 때문 이와중에 '미란다 홉스' 역을 맡은 신시아 닉슨(이하 신시아)과 사제팍은 12살 때부터 함께 연극을 하던 친구사이였고 이 둘은 자연히 동맹관계가 됨. 여기에 '샬롯 요크' 역의 크리스틴 데이비스(이하 클쓰)가 합류하면서 세 명은 친목을 형성하고  사제팍과 긴장관계에 있었던 킴이 자연히 배제되면서 존나 길고 지독한 따돌림이 시작됨. 시즌 1~2 까지는 그나마 연출자였던 대런 스타가 킴의 능력을 지지했기 때문에 크게 문제화 되지 않고 신경전 정도로 지나갈 수 있었지만 시즌3 부터 연출자가 바뀜 사제팍과 친구인 마이클 패트릭 킹이 새로운 연출자로 오게 되면서 상황은 많이 달라졌고 아예 사제팍이 제작자에 이름을 올리게 되면서 드라마의 주도권은 완전히 사제팍에게 넘어감. 사제팍은 신시아와 클쓰를 매번 자신의 트레일러(대기실)로 초대했고 이 와중에 킴의 캐릭터인 사만다는 갈수록 노출씬과 섹스씬이 많아져 킴은 따돌림+많은 노출씬의 이중고를 안고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었음. (사제팍이 작품에 손을 대면서 분량 및 노출 수위 등 캐릭터 간 불합리가 심해졌다는 말이 많지만 이건 명확한 증거가 없으니 넘어감, 드라마를 보면 각자 판단할 수 있는 문제임...) 드라마 보면 사제팍은 노출 한번도 없고 신시아 클쓰 가슴노츨 한번씩, 킴은 진짜 심했음 헤어 노출까지 함 상황은 점점 심각해져서 막바지 시즌들에서는 스태프들 조차도 킴을 따돌리는 분위기가 생겼고 심지어 분장실에서도 킴에게 사적으로 말을 거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고 함. 단적인 일화로는 뉴저지의 애틀랜틱 시티에서 촬영을 하게 되자 사제팍은 바로 아파트를 렌트하고 여기에 신시아와 클쓰가 함께 머무르게 했지만 그들은 단 한번도 킴을 부르지 않았음. 나중에 문제가 되자 HBO(방송사)는 킴은 결혼을 했기 때문에 따로 머물렀다며 변명으로 얼버무렸으나 사실상 말이 안되는 내용이고 그냥 존나 따돌린거. 내부 잡음과 별개로 드라마는 시즌을 거듭하면서도 승승장구 했고 거대한 팬덤이 그들을 지지하고 있었기에 킴은 끝까지 계약을 이행하며 홍보 인터뷰 등에서도 절대 불화를 인정하지 않고 서로 좋은 말만을 나눔. 시즌6을 끝으로 드라마는 막을 내리게 되고(1998~2004) 제작진과 배우들은 모두 아쉬워하며 재계약을 원했으나 지난 6년간 지독히 시달렸던 킴은 당연히 거부했고 시즌7은 무산됨 여기서라도 멈췄어야 했지만 제작진과 배우들은 의기투합해서 영화 제작을 희망했음. SATC에 출연한 배우들 모두가 이 시리즈 외에 이렇다 할 커리어를 기록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들 모두는 영화로 그 명성과 수익을 이어가고자 했고 한마음 한뜻으로 뭉칠 수 있었음. 물론, 걸림돌은 킴이었음. 투명인간 취급 받는 촬영장에서 꿋꿋히 연기하고 심지어 노출신, 베드신에 시달리느라 킴은 매우 힘들어하고 자주 울었다고 함. 거의 살신성인으로 연기한 것에 비해 계약했던 페이도 낮았고 킴으로서는 영화에 참여해서 또 다시 수모를 당할 이유가 없었음. 그러나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많은 팬들과 언론이 영화를 원하는데다 관계자라는 이들의 입을 빌려 "킴이 많은 돈을 요구해서 영화를 못만들고 있다"는 식의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당연히 팬들은 킴을 비난함. 결국 감당하지 못할 비난에 직면한 킴이 영화에 합류하게 되었고  킴의 측근은 "킴이 마지못해 계약서에 싸인했지만 그녀는 정말이지 원하지 않는다. 킴은 6년간 사라 제시카 파커로부터 끔찍한 대우를 당했다고 느끼고 있다." 라고 말함. 말도 섞지 않는 두 배우가 다시 뭉쳤지만 영화는 성공했고 세계적으로 4억 1500만 달러를 벌어들임. 신난 제작진과 배우들은 다시 두번째 영화를 준비함. 얼탱이가 없는 킴은 참여하지 않겠다고 통보했으나 또 같은 상황이 반복됨. 킴이 높은 돈을 부르며 디바 놀이를 한다는 기사가 돌았고 팬들은 "또 킴이냐!" 면서 비난. 사실 드라마가 끝나고 첫 영화 조율 당시 킴이 연봉 인상을 요청한건 너무나 당연했고 드라마를 모두 봤다면 모두가 이유를 알 것이라 생각함. 그 정도의 노출씬은 존나 멘탈을 찢어(...) 결국 킴은 내키지 않았지만 두번째 영화에도 참여할 수 밖에 없었음. 영화의 퀄리티는 바닥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충성도 높은 팬덤을 보유한 그들의 영화는 3억 달러의 수익을 내며 또 성공해버렸고(ㅅㅂ) 죽지도 않고 또 오는 각설이마냥 섹앤시 배우와 제작진들은 즉시 세번째 영화를 준비함. 2010년, 당시 킴의 나이는 이미 54세였고 사실 킴은 나머지 세 배우보다 약 10살 가량이 더 많았음.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은 참기 힘들었던지 킴은 끝내 영화를 거부했고 2017년, 긴 줄다리기 끝에 최종 무산됨. "실망했다. 우린 아름답고, 가슴아프고, 더 즐거운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사제팍이 이런 먹먹문 늬낌의 소감 발표를 하던 바로 그 날, 익명의 출처를 요구한 기사가 또 떴는데 또 다시 킴이 돈을 요구하고 왕 대접을 원한다는 찌라시ㅋㅋㅋㅋㅋ 거의 20년을 꾹 참고 있던 킴이 존나 흑화하기 시작하고 기사 보고 빡쳤는지 바로 트위터에 반박함. 내가 뭔가를 ^요구^ 했다면 영화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 그것 뿐이었죠? 심지어 지난 2016년도에 이미 안하겠다고 말하고 끝난 일이죠? 올. 존나 쎄진 킴. 그러나 팬들과 언론이 끊임없이 섹앤시3을 언급하며 킴을 비난했고 흑화한 킴이 피어스 모건쇼에 나와서 지난 모든 일을 나긋하게 폭로함ㅋㅋㅋㅋㅋㅋ - 우린 한번도 친구였던 적이 없었다. 그저 동료였고, 어쩌면 더 건강한 관계였다. 공과 사를 구분할 수 있었으니까. - 사라 제시카 파커... 분명 그녀는 더 친절하게 대할 수 있었다. 그녀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 나의 나이는 이미 61세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해야 하는 시기라고 판단했다. 등등... 존나 담담하게 맞는 말 대잔치 해서 모두들 충격받음 당하고 있을 수 없는 사제팍은 방송에 나와 해명하기 시작하고 - 슬프고 화가 난다. 나는 우리의 경험을 그렇게 기억하지 않는다. - 같이 촬영한 세월이 몇 년인데 개인적인 대화가 없었겠나. 등등... 약간 음오아예... 소리 나오는 해명을 하고 다님. 누가봐도 폭로전의 승자는 킴이었고 이걸로 킴의 지난 20년 설움이 다 씻기는 듯 했으나 2018년, 킴의 남동생인 크리스 캐트럴이 실종되었다가 사망한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함. 킴은 애타게 동생을 찾았지만 끝내 사망한 것을 확인하고 큰 충격을 받고 깊은 슬픔에 잠김. 이에 대해 신시아와 사제팍이 킴의 SNS에 글을 남기는 것으로 애도를 표했는데 킴은 신시아에게는 걱정해줘서 고맙다며 적당히 댓글을 달았지만 사제팍의 댓글은 무시하... ...는 줄 알았지만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는지 다음날 킴은 작정하고 SNS에 이런 글을 올리는데 이 비극적인 상황에 너의 사랑이나 응원따윈 필요없어 @사라 제시카 파커 오늘 어머니가 나에게 그러더라. "그 위선적인 사람은 대체 언제쯤 널 놓아준대니?" 니가 지속적으로 연락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니가 얼마나 잔인했는지 계속 떠올리게 만들어. 아직도 깨닫지 못했다면, 확실히 말할게. 너는 내 가족이 아니야. 너는 내 친구도 아니야. 그러니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너의 위선적인 '착한 소녀 이미지' 만드는 것에 나의 비극을 더 이상 이용하지마. 누가봐도 분노를 꾹꾹 눌러담아 쓴 것이 분명한 킴의 인스타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음. 1998년에 드라마 촬영하면서 시작된 따돌림이 2018년 킴 캐트럴이 대폭발 할 때까지 지속된거 아는 사람 별로 없더라. 이러한 폭로들을 끝으로 대부분 킴은 대체 그 긴세월 어떻게 견뎠냐 하면서 킴을 위로하는 쪽으로 돌아섰고 지금은 서로 먹금하기로 하면서 대충 마무리 된듯. ++ 섹앤시 3편 제발 찍어달라는 팬한테 정중히 답변하는 킴 팬 : 킴, 섹앤시 3편 출연 해주세요 제발요ㅠㅠ 킴 : 저는 못해요. 제 마음이 더 이상 거기에 있지 않네요. 전 계속해서 일해왔어요. 61살은 53세나 41세가 아니에요. 사만다를 연기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녀는 나의 영웅이죠. 하지만 저는 이제 쉼을 원해요. 지난 몇년간처럼 힘들게 일하고 싶지 않아요. 보다 덜 바쁜 삶을 원합니다. 제가 내린 결정은 현재의 제 삶을 반영하고 있고 불행하지 않다면 그 결정을 바꿀 수 없어요. 부디 절 이해해주시길 바라요 킴은 정말 섹스 앤 더 시티 3 제작을 원한다면 새로운 사만다 배우를 캐스팅하라고 인터뷰도 했음 Good for you, Kim. 디미토리 펌 ㅊㅊ 더쿠 모야 사제팍 ㅡㅡ 이거 나름 해연에 관심 있는 사람들한테는 유명한 얘기인데 오늘 사만다 없이 섹앤시 새 영화 제작한다는 기사 뜬 거 보고 끌올함 ^^ 진짜 징글징글하네 ㅇㅇ
[리뷰]'원더우먼 1984', 잊고 있었던 소중한 일상에 관한 성찰
- "소원을 버려봐", DC코믹스의 또 다른 계획? 코로나19의 재유행 여파 속에 혹한기를 맞이한 극장가는 연말연시 성수기, 관객 기근을 겪고 있는데 가운데 충무로는 재개봉 영화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영화팬들에게는 블록버스터의 개봉이 반가운 일인데 DC코믹스의 히어로, '원더우먼' 속편인 <원더우먼 1984>가 지난해 23일, 개봉한 후 줄곧 정상을 유지하며 누적 관객수는 42만 명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이 같은 관심은 많은 영화들이 개봉을 연기하거나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로의 공개를 선택하면서 신작에 관한 희소성도 있지만,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소원을 버려봐"라고 말하듯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영화는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위드 코로나 시대에 휴머니티로 가득한 정서에 따뜻함과 즐거움, 행복 등 그 동안 너무 당연해서 잊고 있었던 소중한 일상을 성찰합니다. <원더우먼> 전편, 1차 세계 대전에서 연인 스티브(크리스 파인)을 잃은 다이애나(갤 가돗 분)의 슬픔이 속편에서 어떻게 전개될 지 관심이 모아졌습니다. 다이내나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보석 학자 바바라(크리스틴 위그 분)를 만나 소원을 실현해주는 신비한 '황수정'을 발견하고 히어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소원인 연인의 부활을 목격하면서 '소원을 말해봐' 보석을 놓고 빌런 맥스(페드로 파스칼 분)와 욕망의 노예가 된 바바라와 인류 구원을 위한 전투를 펼칩니다. 영화를 연출한 패티 젠킨스 감독은 마치 타임슬립을 하듯 1편 개봉 후 3년 여만에 레트로 풍으로 1984년의 미국의 거리와 패션 등을 재현하였고, 자신의 주무기이자 아마존의 기운을 이어받은 황금빛 '진실의 올가미'라 불리는 채찍을 사용해 보석털이범을 붙잡는 다이애나의 모습은 과거와 현재가 오버랩된 듯한 낯설음 등 B급 정서를 유발합니다. 갤 가돗은 고대 유물을 연구하는 인류학자이자 고고학자로서 세련되고 품위 있는 캐릭터를 소화했고, 1984년 분위기에 어울리는 붉은 색과 황금색 톤을 많이 활용해 80년대를 완벽히 재핸해냅니다. 특히 대이애나가 영화 후반부에 광기어린 치타의 모습으로 변신한 바바라와의 일대일 격투신에서 등장하는 또 다른 무기, 황금 갑옷인 골든 아머는 영화 도입부에 소개한 아마존 전설에서도 절대로 뚫을 수 없는 마법의 갑옷으로 2편에서 액션과 스펙터클을 한층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영화는 전편에 비해 '진실'이라는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세뇌하듯 반복하는 이야기 구성과 스티브와의 재회 시퀀스는 장황해보이고, 갤 가돗의 액션이나 연기는 다소 아쉽고 결말부에 빌런의 선택이나 각성도 개연성이 떨어집니다. 하지한, <원더우먼 1984>에서는 다이애나와 바바라의 인간적인 욕망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파산한 사기꾼 빌런 맥스의 왜곡된 욕망은 커질대로 커져 스스로를 욕망의 주체로 만들면서 모든 인간들의 숨겨진 욕망을 이끌어냅니다. 이러한 소원 성취에는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내놓아야 하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일깨워주면서 말이죠. 돈이나 가족 등 물질적인 것 외에도 맥스는 인간들의 건강이나 미소, 즐거움, 행복, 안전 등 추상적인 것들도 뺴앗으며 이를 대신해 그들의 욕망을 채워줍니다. 슈퍼히어로인 원더우먼으로서 활약은 맥스가 전 세계의 통신망을 통제할 수 있는 미국 대통령에게 접근하면서 시작됩니다. 핵무기 보유를 원한다는 지도자의 소원을 들어주면서 인류에는 일촉즉발의 위기가 닥치고 스스로를 파괴해버릴 위기에 처한 절대적인 존재로 변화한 맥스의 메가톤급 파워에 저항하면서지요. 스스로를 다이애나와 비교해 열등감을 욕망으로 채운 바바라의 폭주는 다이애나가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지고, 다이애나는 이를 통해 자신 안의 욕망을 직시하게 됩니다. 원더우먼의 맥스나 바바라와의 숨 막히는 결투를 기대했던 액션 팬들에겐 다소 실망스럽거나 아쉬움을 남기지만 소중한 것들을 되찾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탈피하는 다이애나의 각성은 맥스가 장악한 통신망을 통해 욕망에 사로잡힌 인류 개개인에게 전달돼 저마다 '소원을 버려봐'를 실현하게 됩니다. 그 동안 돈이나 권력, 명예욕에 사로잡힌 빌런의 스토리들은 많았으나 이번 편에서는 거시적으로 확대해 인류 개개인이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잃고 욕망에 사로잡혔던 것을 각성케합니다. 마치, 코로나19로 인해 과거 연말연시에 너무도 당연시 됐던 즐거운 만남, 행복한 기억, 함께하는 행복을 잊지 말라는 듯이요. 영화에서는 황금갑옷의 진짜 주인공인 1세대 원더우먼, 린다 카터가 등장하는 깨알 같은 쿠키 영상을 통해 3편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합니다. 슈퍼히어로를 통해 잊고 있었던 소중한 일상을성찰케 해주는 영화 <원더우먼 1984>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