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탕의 귀환으로 기뻐하신 아버지가 베푼 잔치소리를 듣고 경익했던 그날도,
큰아들은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큰아들은 매우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는 분노했다
내가 하루같이 성실하게 아버지를 섬겼건만
내겐 염소새끼한마리를 주어 벗들과 즐기게 해주지 않더니...
우리에게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봉사했는데
섬겼는데
내게는 쪼그만것이나 나뉘주는 인색한 아버지로서의 하니님 이미지가 있다
나는 집나간 둘째같지 않음을 각인하려 열심히 일하고 그 보상을 바란다
내힘으로, 내'의'로 하기에 공로의식이 들어간다
보상기대의식이 생긴다
둘째아들의 비도덕적인 실수를 정죄한다
인간취급 형제취급하지않는다
정죄의식의 대표적 현상이 현연조차 인정치 않게되는 것이다
큰아들은 둘째아들이 돌아옴을 환영하시는 아버지께 시위하면서 자기동생을 동생이라 부르지 않았다
아버지의 재산을 창기와 함께 낭비한 자를 위하여는 잔치를 여시냐고 아버지와 동생을 정죄했다
우리는 자기 주머니 안에 자신만의 자, 캐논을 가지고 있다가 남에게 적용해 길이를 잰다
그 자에 적합한 다른 이는 찾기 어렵다
내가 새벽기도를 하지 못하면 새벽기도에 열심인
다른 사람은 '좀 광신적인데..' 가 되고
내가 새벽기도를 하면 새벽기도를 못하는 사람들은 믿음이 약한 사람이 된다
내가 매일 큐티를 해서 남에게 보여주면
큐티를 하지 않거나 공개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좀 부족한 것 같고
내가 큐티를 하지않거나 공개하지 않는 사람이면
매일 공개하는 사람은 지나친 열심이거나 과시욕에 사로잡힌 사람이 된다
내 기준의 자에 꼭 들어 맞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자는 내가 애초에 나의 입맛에 맞게 내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조직을 이만큼 키웠는데..
흐지부지했던 이 조직을 내가 헌신해서 키웠는데
하는 공로의식이 들면
이 일은 나의 '의'가 된다
하나님의 보상이 염소새끼도 없어 보인다
로마서에서 ' 믿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라고 하신다
우리의 의는 모두 파산하였다
하나님의 의만이 온전하시고 아름답다
큰 아들의 헌신은 자기'의'의 발로였다
그래서 그 수고는 힘들었고 기쁜 노동이 아니었다
그 의는 동생의 귀환잔치에서 파산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온전한 은혜의 복음이다
집앞에서 시위하는 큰 아들의 멱살을 쥐지 않으신다 섭섭해하지도 않으신다
'얘야 너는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모두 네것이 아니니?'
우리 큰아들들이 잘 깨닫지 못한 것이 있는데
사실 우리는 큰부자라는 사실이다
우리 아버지가 부자셔서 우리도 그분 집에 있을때 당연히 부자이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살펴보면 살진송아지가 문제가 아닐 것이다
앞으로도 더 놀라운 것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Gs타워도 사실은 우리소유인데 아직 소유권 잉크가 마르지 않아 그들이 관리를 하고 있을뿐이고 언제가 더 큰 것으로 우리는 돌려받게 될 것이다
어는 회사의 신입이 야단을 맞으면서도 싱글벙글 일하길레 승진도 빠르고 촉망받는 상사과장이 물었다
자네는 머가 그리 좋은가 그렇게 야단 맞으면서
언제 대리되고 과장되겠나
했더니 네 저는 일배우는 게 기쁘고 즐거워서요
아버지가 여기 있으라해서 있는것도 좋고요
그래 네 아버지가 누군데?
그 사원 아버지는 그 회사 회장이었다
우리는 이사원 처럼 천국에 매일 들어가야한다
들어가 아버지의 회사에서 기쁘게 천국을 누려야 한다
큰아들처럼 불평과 원망 정죄와 공로와 권위주장으로 천국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며 시위하는라 천국잔치의 기쁨을 놓치지 말고..
아버지사랑 사람사람 이웃사랑이 복음이다
누가복음 ' 돌탕 '비유의 주제는 탕자가 아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교제하는 것을 보고 못마땅하게 여기고 정죄하는 교회안의 착실한 소위 종교인들,즉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들의 반응을 보시고
그 허식적인 교회안의 종교인들을 비유하신 것이다
교회안의 이 큰 아들들이
잔치집에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시위하고 원망하는 오늘 우리 종교인들과 나의 모습이다
siizea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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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큰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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