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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Egon Schiele)를 위한 변호 - 연인 발리의 시각에서

Vingle에 첫번째 카드를 써봅니다. 저는 주로 네이버 블로그로 활동하는데.. Vingle에 감히 진출(?)해 보네요.. ^^ 미술, 사진 등 시각 이미지를 다루는 예술 감상을 즐깁니다~ 오늘의 카드는 에곤 실레에 대한 얘기에요.. 에곤 실레에 대한 평가를 연인이었던 발리의 시각에서 재구성해 본 내용입니다.
<Self Portrait with hand to cheek>, Egon Schille, 1910 20세기가 과연 올까라고 걱정하던 것은 다 옛 이야기가 된 1911년의 봄이었죠. 이미 오스트리아 화단의 큰 기둥이신 클림트 선생님의 화실에 속한 저 발리(Wally Neuzil)는 다른 모델들과 함께 화실일도 돕고 잔심부름도 하면서 지내고 있었어요. 17살 처녀의 가슴은 봄의 향기에 취해 더없이 부풀어 올랐고 세기말의 위기를 넘긴 오스트리아의 수도는 활기와 퇴폐함이 거리에 흘러 넘치고 있었죠. 제가 운명의 남자를 만난 건 바로 1911년 봄이었어요. 그림 속의 남자. 에곤 실레! B형 나쁜남자의 전형처럼 거들먹 거리게 그려놨네요. 항상 자신을 위악으로 감추고 자화상에서조차 나약하고 병약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왜곡하던 남자. 빛나는 젊음과 예술혼을 무기로 더없이 당당하고 아름답게 빛나던 21살의 그를 저는 클림트 선생님의 화실에서 만났죠. 클림트 선생님께서 에곤 실레보다 28살이나 나이가 위시지만.. 두 사람은 유사한 점이 많았어요. 두 사람 다 부유하지 않은 집안 출신이었고 독창적인 기법을 개발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내셨고.. 관능적인 화풍으로 초기에는 평단의 비난과 저평가, 심지어 포르노작가라는 오명까지 뒤집어 쓰셔야 했죠. 실레가 클림트 선생님을 만난 것은 16살때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해서였다고 들었어요. 그때 벌써 클림트 선생님은 40대 중반이셨죠. 실레 오빠는 빈 아카데미 입학하기 2년전에 아버지를 여의었기 때문에 실레 오빠에게 클림트 선생님은 예술의 동지이자 친구이자 선생님이자 아버지이신 분이죠. 실레 오빠도 저에게 한눈에 반했어요. 우리는 서로에게 매혹되어 사랑에 빠졌고, 클림트 선생님도 저를 실레 오빠의 전속모델로 일하도록 배려해 주셨어요. 우리는 실레 오빠의 화실에서 동거하다가 다음해인 1912년 아예 빈에서 떨어진 작고 한적한 마을.. 노일렝바흐로 이사를 가요. 그곳에서 둘만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작업을 하려는 거였죠.
<Wally with a red blouse>, Egon Schille, 1913 실레 오빠가 저를 모델로 그린 수많은 작품 중에 직접 이름이 제목에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네요. 위의 작품은 제 모습을 그린 거에요. 저는 아직 미성년일때 오빠를 만났고 사춘기를 넘어선 때부터 실레 오빠의 에로티시즘을 자극하는 영감의 원천이었어요. 우리는 부끄러운 것이 없었고 저의 모든 것을 오빠에게 다 보여줬어요. 오빠도 굳이 다른 모델을 구할 필요없이 자유롭게 저에게 포즈를 요구하고 저는 기쁘게 제 육체의 아름다움을 보여드렸죠.
<Wally Neuzil>, Egon Schille 전원생활의 여유롭고 따스함은 오빠의 창작욕을 불태웠어요. 실레 오빠의 평소 천착하던 주제인 에로티시즘에 관한 작품이 이때 쏟아져 나왔죠. 모델은 저 뿐만이 아니었어요. 저는 사실 전속 모델이자 오빠의 애인, 오빠의 아내, 오빠의 식모, 어머니, 심부름꾼의 역할을 했죠. 필요하면 그림을 손님에게 전달하는 역할도 하고.. 오빠가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그림 외의 모든 것을 제가 도맡아 했다고 보면 되요.
<기대어 있는 세미누드>, 에곤 실레, 1911 그런데 세상의 눈은 우리의 행복한 생활을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았죠. 사실 시골 마을에서 끽해야 10대 후반의 처녀와 20대 초반의 청년이 결혼도 안하고 동거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을리가 없잖아요? 거기에다가 오빠가 순진한 동네 아이들을 작업실로 불러들여 옷을 벗기고 음란한 행동을 하도록 부추기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린다는 소문이 퍼졌어요. 위의 그림은 시골로 이사오기 전에 오빠가 그린 그림인데, 한눈에 봐도 아직 어린 소녀가 자고 있는 모습을 너무 적나라하게 묘사했죠. 당시에도 아청법 비슷한게 있었어요. 이게 곧 문제가 되지요.. 우리가 이사오고 나서 마을 어린애들이 대도시에서 온 멋쟁이 화가에게 관심이 많아서 실제로 화실에 자주 놀러왔어요. 아이들은 작업실에서 자유롭게 뛰어놀았고 오빠는 그걸 그림으로 그렸죠. 근데 오빠가 그림만 그렸으면 좋은데 제 누드화를 생각없이 방치해 두고는 어린 소녀들을 모델 삼아 에로틱한 그림을 그린거에요. 오빠의 친구들도 이런 상황을 걱정해 줬지만 오빠는 "야 그렇게 따지면 발리도 미성년자야" 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오빠는 전혀 문제될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동네 어른들을 비롯한 세상의 눈을 그렇지 않았어요.
1912년 4월 13일... 드디어 일이 터지고 말았어요. 경찰과 시 공무원들이 화실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와 방안을 수색했어요. 그리고는 방안에 있던 수채화를 가리키며 음란물로 압수한다고 했어요. 오빠는 당황해서 프라하의 공식 미술전에는 이런 것보다 더 에로틱한 것도 전시했는데 무슨소리냐고 따졌어요. 바보 실레 오빠... 교활한 경찰관의 입가에 미소가 흐르는 것을 오빠는 봤을까 몰라요. 그래? 그럼 그런 그림은 어디있느냐고 올가미를 던졌어요. 오빠가 자발적으로 건넨 수많은 드로잉과 함께 오빠는 연행되어 갔어요. 저 자존심 강하지만 연약한 영혼을 가진 실레 오빠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오빠가 잡혀간 첫번째 죄목은 풍기문란이었어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미성년자들을 꼬드겨 음란한 그림을 그리도록 포즈를 요구했다는 거죠. 그런데 두번째 혐의가 또 있었으니 미성년자 유괴 혐의였어요. 우리 집에 드나들던 소녀가 어느 비오는 날밤 우리 집에 와서 하루밤만 재워달라는 거에요. 저는 반대했지만 오빠는 내칠수 없다고 허락했죠. 다음날 빈에 사는 할머니 집에 가겠다고 하면서... 다음날 우린 셋이서 빈을 향했어요. 그런데 빈에 가니 소녀가 마음이 바뀌어 다시 집으로 가겠다는 거에요. 그런데 노일렝바흐로 돌아온 뒤에 소녀는 자꾸 핑계를 대면서 집에 안가려고 했고 하루밤을 더 우리집에서 묵었어요. 그런데 다음날 아이의 부모가 우리집에 와서 그 소녀를 유괴했다고 하면서 법원에 고소를 해버린거죠. 그래서 미성년자 유괴란 혐의까지 쓰게 됐어요.
21일간의 유치장 생활은 오빠의 정신을 많이 갉아먹었어요.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이유도 제대로 모른채 예술을 하는 자신을 파렴치범으로 몰아서 협박하는 이 사회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거죠. 결국 재판 전에 소녀의 부모가 고소를 취하해서 미성년자 유괴혐의는 벗었지만 아이들에게 음란물(저를 모델로 한 그림이네요)을 보여준 죄는 인정이 되었어요. 근데 다행히도 당시 판사님이 예술에 대한 이해가 높은 슈프펠 판사님이셨기에 추가로 3일만 더 징역을 살면 되는 파격적인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셨어요. 정말 다행스런 일이었죠. 오빠는 옥중에서 일기를 썼어요. "만물의 아버지, 세계이 창조자, 태양의 눈을 가진 신이여,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고문이 제게 주어지는 것을 당신이 허락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깊이 헤아려주소서"
오빠는 옥중일기와 자화상을 통해 자신은 음란물 제작자가 아니라 예술가임을 시종일관 호소했어요. 오빠는 에로틱과 외설은 전혀 다르다고 믿고 있었죠. "내가 에로틱한 그림을 그린 사실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한 예술작품이다. 비록 에로틱한 그림일지라도 그것이 예술적 가치를 지녔다면 외설은 아니다" 오빠는 자신의 그림이 외설스럽게 느껴진다면 그건 자기 잘못이 아니라 관객이 음란한 마음으로 그런 시각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인간은 엄연히 성욕을 가진 존재인데 그것을 예술로 표현하는 것이 왜 금기인지 오빠는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었죠.
사실 에로틱한 예술과 외설을 구분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죠. 외설은 오직 성적 충동을 자극해서 상업적인 이익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하고 예술작품은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외설스러운 이미지를 방법적으로 도입하는 차이겠죠.
실제로 오빠의 그림을 본다면 전혀 외설스러움을 느낄수 없을 것에요. 겉을 보면 약간 야하다는 느낌이 있을수 있지만 가만히 보면 쓸쓸함과 비애가 느껴지죠.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이 어렸을 때 얼마나 강력한 성적 충동에 시달렸는지, 음란한 상상을 했는지 치솟는 욕정으로 고통을 받았는지 죄다 잊은 것같다. 하지만 나는 잊지 않았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것은 성욕으로 인해 상상을 초월한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다" 라고 얘기했어요. 오빠가 소녀의 육체를 빌어 에로티시즘을 구현한 것은 바로 성적 충동과 호기심을 억제하기 힘든 시절이 바로 사춘기이기 때문이죠.
두 소녀가 하반신을 드러낸채 포개져 있네요. 지금은 잠이 들었는지 어떤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지 알수 없지만 두 소녀의 붉은 옷은 성적 흥분과 욕망을 상징하죠. 내적으로 타오르는 욕망과 호기심을 어설프게 풀어내려고 하는 소녀들의 모습에서 육체적 욕망이 얼마나 사람을 번뇌에 휩싸이게 하는가 짐작하게 하는거 같아요. 오빠가 어린 소녀에 집착한 요인이 또 있는데요. 오빠의 아버지는 오랜동안 매독으로 고생하다가 오빠가 14세때 돌아가셨어요.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관련을 깨닫고 충격을 받은 오빠는 성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밀려드는 충동으로 혼란스러워 차라리 성겸험이 없는 미성년자에 대한 애착으로 나타났는지도 모르겠어요. 또하나는 빈이라는 도시의 퇴폐성도 한몫했어요. 세기말의 성적타락이 극에 달해 성매매가 기승을 부렸고 빈민층 아이들은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몸을 팔고 기성새대는 원조교제에 탐닉했죠. 이런 시대적 사회적 영향도 분명 있었을 거구요.. 마지막으로 오빠는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기 위해 성에 몰입했다고 생각해요. 인간에게 성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잖아요.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과 해답을 인간의 육체, 그리고 섹스에서 찾으려 한거죠. 오빠가 그린 그림을 보면 아름답다는 생각보다는 울퉁불퉁.. 모나고 불편하고 괴이한 느낌이 드는게 사실이죠. 그래서 오빠를 표현주의 화가라고 부르는가 봐요. 표현주의란 예술가의 감정, 즉 열정과 비애, 기쁨과 고통.. 분노 등을 격렬하게 바깥으로 그림으로 표출해 내는 것이잖아요. 자신의 내부에 시선을 두고 그 감정을 작품으로 구현하는 것이죠.
이런 오빠에게 포르노 화가라는 누명을 씌운 것은 부당한 거에요. 오빠는 현실에서는 도저히 실현될수 없는 성욕을 상상 속에서 체험한 죄밖에 없으니깐요. 머리속에서 저지른 것도 죄라고 한다면 할말 없네요. 많은 사람들이 에로틱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음탕하다는 편견이 있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성에 대해 담백해요. 왜냐?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어두운 욕망을 그림으로 모두 배출해 버렸기 때문이죠. 이미 그의 마음은 정화가 되어 있어요. 실제로 오빠의 사생활은 문란하지 않았어요. 오빠의 친구들도 증언하고 있죠. "실레의 작품에서 풍기는 에로티시즘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활은 전혀 문란하지 않았어요. 동료 화가들도 그가 실제로 부도덕한 성관계에 탐닉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빠가 실제로 남긴 말들을 좀 적어 볼까 해요. "내가 인간에게 한없는 연민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크나큰 슬픔이 담겨 있다는 것, 가을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 계절까지도 쇠락하는 순간이 가장 아름답다." "예술가는 거대한 영적 재능을 지녔다. 자연현상을 다양한 관점으로 표현하는 그들은 선택된 자들이다. 그들의 언어는 신의 언어이며, 이승에서도 천국처럼 산다." ㅇ ㅇ 요절한 화가 에곤 실레의 비운의 여인이었던 발리에게 감정을 이입해서 발리가 옆에서 바라본 에곤실레의 전성기, 그리고 시련의 순간을 변호하는 입장에서 글을 써 봤어요. 이후에 에곤 실레는 발리를 배신하고 부인을 얻지요. 발리는 전쟁터에 간호사로 떠나고 전장에서 성홍열에 걸려 사망합니다. 그때 나이가 20대 초반이었구요. 허무하게도 발리가 사망한지 1년 이내에 실레의 부인과 태중의 아기, 그리고 실레 자신마저 스페인 독감으로 세상을 뜨게 됩니다. 지난번에 얼핏 포스팅한 적이 있는 실레와 발리가 헤어지는 장면.. 실레의 죄의식을 담은 작품을 통해 발리가 느꼈던 감정을 상상해서 적어볼까 하다가 너무 길어질것 같아서 뒤의 이야기는 생략했어요. 원전은 이명옥 저, "센세이션 展 : 세상을 뒤흔든 천재들"과 구글링 자료등을 참조해서 작성했습니다. 에곤 실레 화가의 삶에 대해 기초지식이 없는 경우 이게 무슨 소린가 하실지도 모르겠는데.. 어떻게 보셨는지도 좀 궁금하네요 :) 실레를 옆에서 관찰하는 것처럼... 최대한 역사적 팩트는 지어내는 것 없이 감정적인 묘사와 변호에만 제 해석을 추가했어요..
울오빠 배바지패션 지못미ㅠㅠ.jpg 자화상에 비해 항상 미남이라는 해설이 있었는데 실제로 사진을 보니 자화상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요. 오빠 미안~
자신감 폭발의 날.jpg 이날은 실레 오빠 컨디션 좋은날의 그림.. 얼굴에 자신감이 넘치고.. 곧휴도 평소에 그리던 지워진/쪼그라진 모습이 아니고요.. 신체의 왜곡도 거의 보이지 않네요..
이래서 미남이라는 건지.jpg  깔끔하게는 생겼는데 확실히 고집이 세보이고 이기적으로 보이네요. 저 눈안에 들은 고뇌를 읽을수 있을까요?
오빤 장난꾸러기.jpg 강남스타일의 마지막 장면 같기도 하고 에반게리온 초호기를 연상시키도 하는 모습... 거울을 보며 키득거리며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던 실레 오빠의 모습이 생생하네요. :)
<죄수>, 1912 짧게 깎은 머리와 피골이 상접한 얼굴, 더러운 회색 모포.. 90도로 돌아선 얼굴은 왜 지금 자유를 구속받고 있는지 언제까지 갇혀 있을지도 알수 없는 고통받고 있는 실레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군요. 거울도 없이 상상만으로 그린 자화상입니다.
<나는 예술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최후까지 고통을 견딜것이다>, 1912 감옥안에서 그린 마지막 자화상입니다. 피눈물이 흘러내려 얼굴을 적시고 있고 이제는 자신이 부당하게 고난에 맞서도 있는 순교자가 되가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술의 숭고함과 사랑하는 발리를 위해 언제까지 될지 모르는 기한없은 고통을 감내하리라 다짐하네요. <The Single Orange was the Only Light>, 1912 발리는 실레가 옥살이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면함없는 지지자였고 보호자였고 동반자였습니다. 면회가 허용이 안되자 창문 창살 너머로 사식(오렌지)을 넣어준 모양인데요.. 실레에게는 절망의 감방에서 예술혼과 발리의 지지로 버텨나가죠. 발리의 사랑과 헌신이 담진 오렌지 한 알... 그것이 실레에게는 어두운 감방을 비추는 유일한 빛이었나 봅니다. - Fin. - Vingle에 첫 카드여서.. 길이가 넘 긴거 같고.. 블록도 제대로 활용 못한거 같네요.. 개인적으로 실레는 존경하는 예술가이지만 인간으로.. 남자로는 사절인 스타일입니다. ㅎㅎ 연인 발리의 입장이 되서 최대한 그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눈길로 바라봤지만 - 감정이입해서 쓸땐 진짜 실레를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 났어요 - 냉혹하게 객관적인 나로 돌아오자 그의 이기심에 먼저 울컥하는 감정이 생기네요. 아무튼 멋진 예술가임엔 분명합니다~ 원래 블로그는http://curatever.blog.me 입니다.
1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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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katrealart 이것은 마치.. ㅂㅅ을 보면 운다는 전설의 븟새같은 건가요..? 어딘가에도 비슷한 컨셉이 있었는데 ㅎㅎㅎ 암튼 재밌네여~
@dkdpdldhdn 감사합니다. 내용이 좀 긴거 같네요. 다른 카드 참고하면서 적절히 맞춰가 볼께요~ 응원감사합니다~^^
세상의 하이페리온 참고하셨나봐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ㅎㅎ 당시 시대적 분위기도 잘 드러난 것 같고 한때 저도 '발리'에 감정이입이 되었던 적이 있어서 더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와... 블록 활용도 잘하셨고 글도 너무 재밌네요 ^^ 반갑습니다 ~ 순수예술커뮤니티 모더레이터입니다 :) 앞으로 빙글에서 자주 뵜음 좋겠어요 ^^
에곤 셀레의 그림중 최고의 사랑(?) 최후의 사랑 이라는 그림은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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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서 받아서... 제3장 정합성의 종언: 사실에서 상징으로 플라톤은 이데아를, 기독교인은 신을, 헤겔은 절대정신을 원본으로 봄. 따라서 자연은 자기 소외 또는 외화(外化) 현상. 이러한 정합적 재현이 상징적 재현으로 시작. ... 미를 위한 예술 형식 추구 원형 인상주의, 원형 상징주의 ... 상징적 인상, 지각 형태 가운데 일차적인 것(인상) 표현. 모더니즘의 개막 에두아르 마네, 근대성의 발명자.  <풀밭 위의 점심>(1863), 티치아노 베첼리오 <전원 연주회>(1510경) 모사 <올랭피아>(1863), 티치아노 베첼리오 <우르비노의 비너스>(1538) 모사 시작적으로 톤의 '덩어리 효과' 사용. 상징적 색채에 의한 인상. ... 에밀 졸라에 의하면 마네의 이들 그림은 매력적이고 세속적, 인간적. 밝은 색과 톤의 적확. 창녀를 모델로 그대적 누드의 신기원. 자본화된 여성의 성. 에드가르 드가, 여성 혐오증이 있는 역설의 작품들. 실상은 독신주의자. 공간 분할을 통한 클로즈업으로 의도적인 주제의 사실성이나 존재감 부각. 일본의 우키요에에서 대각선을 이용한 평면 구도, 낯선 원근법에 관심. 사진도... 귀스타프 모로, 비현실적 비논리적 비과학적 신화의 세계. 상징적 뮈토스. 상징주의 선구. 고전주의 마니아. 남자이기도 여자이기도 한 양성의 대상들. 피타고라스 음계라... 앙리 드 툴르즈로트레크, 명암 입체감 제거. 순수한 색과 선으로 2차원적 색면으로 해체된 형태와 색의 복원 시도 제4장 데포르마시옹과 인식론적 단절 (p667 에서...)  미술은 형(form)을 만드는 예술이다. 조형예술. 상(image)을 그리는(imagine) 것이 아닌 가시적 형태로 만들어내는 기예이다. 양식을 필요로 하는 형상적 조형 예술(formative art)이자 매체를 통한 성형적 조형 예술(plastic art)이다. 로고스적 철학과는 달리 파토스적 기예라는... - 그렇다면... 음악은 조형 예술이 아니라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음악은 미술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소리도 파토스이고 악보라는 형상적 언어로 치환되는데... 포르마시옹(formation)이 조형이라면, 데포르마시옹(de'fromation)은 변형이라는 건데... 빛은 계몽한다... 어둠을 비추는 빛의 투사 현상을 계몽(깨우침)이라 했다. 그리고 계몽은 빛의 본성이고 역할이라고. 계몽의 수혜는 빛의 속상상 가장 가까운 주변부터, 내 생각을 더하면 주변, 그리고 앞이다. 직진성 때문에. 빛의 이면엔 가까워도 어둠이 있지 않나... 동일성에 대한 도전, 바로 원본의 붕괴에서 시작 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 레오나르도 다빈치 옵스큐라 원리 고안 1522 알브레히트 뒤러, 투사 장치의 발멸 1558 다니엘로 바르바로, 조리개 사용 1568 조반니 바티스타 델라 포르타, 볼록.오목 렌즈 결합 1580 프리드리히 리즈너, 이동 가능한 옵스큐라(카메라 상자) 제작 제1성질, 즉물적 성질. 객관적 항상적 존재. 크기 모양 수 운동성 고체성 연장성 등 제2성질, 파생적 성질. 감관의 작용에 의해 때때로 변하는 현상적 실재. 소리 맛 향기 색깔 등 ... 색깔을 제2성질로 본 것이 특이하다. 색은 물리적 성질이 아닌 감각적 성질로 보았다는 것인데... 실체가 없다는 얘기도 되고... 색을 빛의 현상으로 본다는 의미일까? 사진이 흉내낼 수 없는 탈조형으로의 모색 노발리스(프리드리히 본 하르덴베르크), 독일의.시인. 우연은 그 자체의 법칙을 가지고 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셉 셀링, 독일의 관념론 철학자. 다른 시대에는 다른 영감이 있다. p683  외광파에게 인상은 관념의 근거가 되는 인식의 재료라기보다 조형적 재현의 과정에서 빛의 본성과 조우함으로써 비로소 발견한 감각적, 정서적 직관이다. - 직관이며 빛의 본성에 대한 깨달음이 인상주의라는 것이지...  - 다초점의 지각으로 구도화... 입체주의, 큐비즘으로?  화가들의 시간 의식은 공간적이었다고. 움직이는 형이 아닌 정지된 공간의 형으로, 구도와 배치를 통해 안정된 공간 효과 중시. 앙리 베르그송. 지속이 작용하는 곳은 환영이지 지속 자체가 아니다. 시간은 모든 것이 한꺼번에 주어지는 것을 방해하는 것. ... 시간과 공간에 대한 사유... 생각해 볼 만... 모네에게 시간은 '지속하는 현재', 연속적 현존이라는 것 클로드 모네, 빛은 지속하는 찰나적 현재를 지각하게 하는 창조와 선택의 수송체.  ... 차연의 미학, 동일성.동시성을 시간적 차이와 지연으로 극복. 창조적 미메시스(모사나 모방의 단순 반봇을 부정하는 개념) ... 헤라클레이토스, '만물은 유전 변화한다.' 빛에 의해 형태나 색채는 늘 다르게 직각된다. 다초점의 색채 광학. 폴 세잔, 야수파와 입체파에 영향, 사과로 파리를 정복한 화가(저자가 말하는 역사를 바꾼 사과는 이브, 뉴튼, 잡스의 사과라고...ㅋㅋ) ... 살롱전 낙선과 마네 콤플렉스, 에밀 졸라에 대한 배신감이 정신병리적 징후들이라고. ... 타나토스(공격적인 죽음의 본능) 카미유 피사로, 빛의 입자성에 대한 적용. 1870년대 중반부터 점묘법 사용. 1890년대부터 빛의 입자들이 스며든 파동 효과의 극대화 시도. 모네와 쇠라, 시냐크의 화풍이 종헙적으로 보이는 '인상파 화가들의 아버지' 알프레스 시슬레, 물빛의 화가. 빛을 담는 그릇인 물. 모네에겐 빛을 비추는 거울로서 물.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탈이념적 통속 화가. 누드의 천재 ... 축제 때 가슴과 어깨가 넓게 파인 데콜테의 착용은 귀족의 특권. 디드로는 누드는 예술적, 지적 의미를 지닌다고. 나체를 재구성한 이미지가 누드, 화가의 마음에 투영된 이미지 귀스타브 카유보트, 남자를 모델로 남자다움 배제, 남성성-온화한 신사성으로 대체 시도. 관망하는 타자(플라뇌르-산책하는 사람)적 시선으로 거리 두기-조감도식 표상 의지(과장된 원근법 동원으로 카메라 렌즈의 흐림-블러 효과를 썼다고 하는데... 그보다 아웃포커스가 맞는 것 같다) ... 절충주의.시대가 낳은 감성과 이성의 절충주의 화가. 감각과 이성과 의지의 절충, 사실주의와 절충 인상주의는 정서적 치유적 효과를 지닌다고. 자연친화적이고 긍정적, 낙관적이기에. 빛의 파동은 감동으로 ... 전위와 급진으로 혁신. 파괴적 혁신과 해체 혁명 ... 외곽선의 해체와 선과 형의 융합 ... 모네는 태양을 길들인 사람, '옥타브 미르보' 욕망의 양상... ... 가로지르기, 횡단, 공시성, 지배 권력, 정치의 조건, 유파 형성 ... 세로내리기, 종단, 통시성, 번식 욕구, 역사의 생산, 양식의 대물림 후기post, 이념의 상속이나 계승, 현상의 진화나 발전 신新neo, 새로운 면모의 부각, 새로운 평가와 해석 빈센트 반 고흐, 자아 중독 증세-자기 존재에 대한 불안감. 자살 전 테오에게 보낸 편지, "내가 늙고, 추하고, 심술궂고, 아프고, 가난해질수록 실패를 만회하고 싶운 마음에 그림의 색을 더 밝고 조화롭고 눈부신 것으로 만들려고 애쓰게 된다."라고... ... 고흐의 색에는 방어기제가 작용했나 보다. ... 구두가 개인의 실존을 상징한다고 보았다고 ... 고흐의 노랑, 파랑, 초록, 빨강 ... 고흐에 대한 재평가. 광기에 의한 천재성보다 사색적 고뇌, 철학적 이념이나 독창적 예술 정신의 부재. 고로 "실패하고 파멸했다" -인고 발터 ... 저자는 고흐의 작품에 대해 공허하고 무계획하다고 말한다. 실질적으로 미술의 역사에서 모범적이지 않다고 결론을... 나르시시즘, 자기애는 불안정한 개인이 타인보다 자신을 주요한 사랑의 대상으로 취하는 '퇴행적 심리 상태'로 규정 -프로이트 신호등의 색 빨강(위험)과 파랑과 초록(안정), 노랑(주의 경계) -클라우드 레비스트로 "모든 창조적 싹의 궁극적 토대는 질병" -키에르케고르 조르주 쇠라, 쇠라를 신new인상주의자라고 일컬은 펠릭스 페네옹. 회화와 과학 융합. 폴 시냐크는 고흐에 가려졌던 쇠라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 역사적 기여와 역할 지대하다고. 색채 광학과 생리 광학 적용. 산업화 근대화 속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반성적 성찰로, 색을 섞지 않고 색채 분할주의에 의한 '점묘법' 창안-광학적 혼합. 균형 잡힌 구도와 구성을 적용하고 윤곽선을 살림. 분할주의적이고 지속적. "풍경 속 함축된 감각을 보존하려 그 궁극적인 면을 종합하려는 것이 신인상주의의 노고-펠릭스 페네옹. 찰나적 직관보다 지속적 종합을 위한 분석. 기하 광학 - 직진, 반사, 굴절 등 기하학적 빛의 전파 물리 광학 - 간섭, 회절, 편광 등 파동 광학 분광학 - 빛의 방출, 흡수 등 물질과의 상호 작용 색채 광학 - 빛의 색 생리 광학 - 빛과 인간의 눈과의 상호 관계 보색은 병치하면 상승, 혼합되면 파괴.보색은 순도를 강화시킨다. 폴 시냐크, 색채 분할주의 철학자. 활기차고 찬란항 색과 형(形)의 시간, 공간적 운동성과 역동적 조화. 지속적으러 현전히는 시간성과 유동하는 생동감을 되찾으려함. 모네보다 생동감을, 쇠라보다 사실성을. 실증적 과학주의보다 관념적 직관주의. 상징적 표상으로 상징주의로 ... 쇠라는 '실증적 과학주의'였겠다. 관념론자 옥타브 아믈랭, 시간과 공간 정의 <시時-간間-지속>, 또는 <점-거리-직선>. 시간과 공간의 종합이 운동. 에두아르 마네의 상징주의 <풀밭 위의 점심>은 자본주의 번영기 도시인들의 위선과 타락한 욕망을 상징적으로 그렸다는데... 권위과 관습에 저항하는. 보들레르와 함께 위선의 상징적 폭로, 생략과 암시로 상징 효과로 선구적 의미 부여 아르튀르 랭보와 오딜롱 르동, 영혼을 기괴하게 만드는 일이 중요했던 랭보의 모범이라 볼 수 있는 르동의 영혼을 각성하는 듯한 그림들. 스테판 말라르메와 마네와 폴 고갱,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오후>을 연상시키는 퓌비 드 샤반의 <신성한 숲>은 평화롭고 이상적인 형이상학적 자유를 표현했다. 이를 토대로 고갱은 <우리는 어디서 와서, 무엇이 되어, 어디로 가는가?>라는 작품을 그림. 주관적 관념론과 유심론이 철학적 토대. 상징주의 화가들의 교의 ... 미술은 사상적이어야 한다. ... 미술은 사상 형식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 주관이 인식한 대상의 묘사는 주관적이어야 한다. ... 예술의 양식은 종합적이어야 한다. ... 결과적으로 미술은 장식적이어야 한다.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 -조지 버클리, 주관적 관념론자 폴 고갱, 브르타뉴의 원시적 이국적 모습은 고갱의 유년기를 보낸 남미의 원시성을 자극했는 듯. 원시 자연주의적 이상을 종합주의 이념하에 상징화. 소박한 미술을 지향하는 신원시주의. 생득적 인류학 그림 욕망. 종합주의 - '~ 결합해 두기'의 뜻으로 색과 형태를 보다 단순하고 대담하게 결합하는 반이상주의이자 상징주의. 분여分與-융즉融卽이나 감응感應의 법칙, 문명화되기 이전의 원시사회에서 신비스럽고 전前논리적인 집단적 표상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현전하는 것 이상의 존재에 자신을 합치시키는 상태라는, 민속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뤼시앙 레비브륄의 이론 오딜롱 르동, 회화의 말라르메-모리스 드니. 신비롭고 환상적인 세계를 독창적으로 표현. 재현보다 '느껴지는 것'을 표현. 의지력보다 무의식에 의존. 신비주의적 진화론에 의거한 인간 영혼의 꽃. 신비주의와 초월주의. 데카당스, 세기말적. 퇴폐주의. 쇠미, 쇠퇴, 조락적. 고흐 니르바나, 열반. 고갱이나 르동. 쇼펜하우어, 리하르트 바그너, 프란츠 리스트, 니체 등 불교의 우월성 인정. 회화는 가공되지 않은 우물에서 의미를 길어 낸다. 순진무구하게 의미를 길어 내는 것은 회화뿐 -메를로퐁티 판도라는 '만물을 부여받은 자'를 뜻하는 대지의 여신 레아의 별칭. 레아는 '붉은 존재'라는 뜻의 이브와 같은 '원죄의 여신' 구스타프 클림트, 상징주의와 표현주의의 에피고네(아류). 오스트리아 빈은 염세적인 구스타프 말러, 칸딘스키의 절친 아크놀트 쇤베르크가 활동하던 시기. 여성의 성은 자신만의 예술 언어이자 철학적 주제. 은밀한 개인적 잠재의식과 은폐된 집단적 표상을 표현.
차이나 다름의 발견으로...
~-> 앞에서 받아서... 영국은 섬나라. 그래서... 지리적 고립성으로 대륙 이성론아닌 경험론 주류였고 습도에 약한 프레스코화는 발전하지 못했다. 중층적 습합성으로 대륙에 대한 개방과 시차로 인해 중층적으로 수입되고 수용되어 습합을 통해 특징을 형성한다. 영국은 게르만족(앵그로족과 색슨족)이 남하하여 5~6세기에 자리 잡은 해양 인종으로 게르만의 주신인 오딘의 후예. Wedneseday(바람의 신, 오딘Wodan의 날) 교황 클레멘스 7세는 메디치 가의 두번째 교황. 레오 10세와 사촌 간이며 로렌초의 동생인 줄리아노 메디치의 유복자. 헨리8세와 세 번째 왕비 제인 시모어. 에드워드 왕자의 모. 둘은 합장되었다고. 여섯 명의 왕비 중 제일 사랑했단다, 제인 시모어를... 네 번째 왕비인 안네 클레베 공국의 공주로 '플랑드르의 암말'이라고 조롱. 다섯 반째 왕비 캐서린 하워드는 문란한 성생활로 처형되고, 여섯 번째 왕비 캐서린 파와 결혼 후 얼마 안 있어 사망. 캐서린 파는 토마스 시모어와 결혼하게 된다. (p350에서...)  한스 홀바인은 누구보다도 정확한 데생과 세부 묘사에 뛰어났었다고... 죽음의 공포를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철학적 문제를 제시하였단다. 대사들에서도 그랬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지나친 플라톤주의와 인문주의를 영국의 르네상스는 인문주의와 근대 과학의 발달에 대비시켜 실존적인 차별화를 가한 작품들이 홀바인의 그것.  홀바인의 세계 전도는 대서양 시대를 상징하는 새로운 지평을 보여주었다고... 과학적 인식과 경험적 세계관을보여주는 것. 토머스 그레샴...1568년 왕립 증권 거래소 창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글쿤... 악화와 양화 사이에 일정한 교환비가 필요하다는, 그래야 서로 잘 유통된다고...  참... 영국도 섬나라의 부침이 심했다고 보아야 하나? 헨리 8세(16세기 중반) 이후 메어리 1세의 피의 숙청 , 대영 제국의 초석이 된 엘리자베스 1세의 황금시대(동인도회사 설립, 1600), 에드워드 6세와 찰스 1세를 지나 크롬웰의 공화정과 청교도 혁명, 찰스 2세의 왕정복고, 제임스 2세를 지나 윌리엄 3세와 메어리 2세의 명예혁명까지... 1707년 대브리튼 섬(Great England)으로 출발(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통합) (p361에서...)  르네상스 시대까지만 해도 광인은 신과 소통하는 초월적 상상력을 지닌 존재였다고 한다. 산업화가 되면서 노동이 선이 되고 노동력을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은 무능력한 존재로... 그래서 정신병원과 감금 시설이 등장하고, 쇠사슬로 묶인 비인간적 대우에서 개선된 병원과 감옥이라는 권위적 시설은 육체적 감금에서 도덕적 감금으로 형태만 바뀐 감금 시설이었다. 윌리엄 호가스, 당시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를  여러 섹션의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풍자화로 그렸다. 조너선 스위프트(통 이야기, 걸리버 여행기), 새뮤얼 존슨의 냉소적 풍자시(런던, 덧없는 소망), 올리버 골드스미스(웨이크필드의 목사) 등의 문학에서 경도된 풍자적 예술의 영향이라고... 소지(늪이 많은 땅)와 같은 섬나라의 특성인 습합적인 표현 기법으로 17세기 이탈리아와 18세기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판화를 연극적으로 각색한 <채색된 소설>이라고 데이비드 비드먼이 그랬단다. 골계(滑稽; 익살스러울(어지러울) 골, 상고(조사)할 계) 넓게는 '풍자와 해학, 기지, 반어'를 모두 포괄한다고... 비유적 수사법으로 소크라테스적 아이러니와 디오게네스적 냉소주의, 애타적이고 소박한 감정 표현이라고... 타자의 욕망에 댜한 여유의 시선이며 여과적 사유 과정 윌리엄 호가스의 미학 정신? ...오직 관찰에 의해서만 미술의 본질적은 특성을 습득할 수 있다고, 다양성, 성품, 표현은 원래 자연에서 나온 것이므로 상상력을 억제하지 않는 방식으로 교육해야 한다며 이탈리아 유학 반대. 죠수아 레이놀즈 ... 영국 왕립 아카데미 초대 원장으로 21년 역임. 신고전주의, 미켈란젤로 찬양. 경험주의적 미술 교육. 고전을 배우라고. 신고전주의 화가. 토마스 게인즈버러 ... 반 다이크의 네덜란드식 사실주의와 호가스의 철저한 반아카데미즘에 영향을 받음. ... 레이놀즈와는 다른 성향의 반고전주의자. 로코코 풍의 섬세함과 목가적 풍경. 자연적 감성적 표현. 그래코로만(Greco-Roman: 그리스와 로마의 영향을 받은) 신(new)고전주의, 반(anti)고전주의에 반하여 발생. 후기(post)고전주의가 아닌 비자발성과 변이성이 특징. 과거의 질서나 규칙만이 아닌 새로운 인식의 화려함, 우아함, 유연함으로 새로운 주관성 추구. 데카르트의 이성주의가 철학적 토양 classis - 고대 그리스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모범적인 계급을 의미하기도... ... 저자는 예나 지금이나 고전이 사회적 지위를 과시할 수 있는 표시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옛날은 몰라도 지금에 있어 고전은, 사회적 지위의 과시보다 사회적 지위에 있는 이들의 필수 교양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전을 가까이할 만한 여유가 되었기 때문일 테지만, 고전에는 통찰과 원리가 담겨있기 때문에 사회의 작동 원리를 알려면 고전을 보아야 한다. 어떠한 분야든... 화가 철학자, 안톤 라파엘 멩스 고고학자이자 미술사가, 요한 빈켈만 두 독일인은 1750년대에 로마에서 활동. 신고전주의의 창립 - 리오넬로 벤투리에 의하면 드니 디드로, 계몽주의적 반아카데미즘은 절대권력에 억압된 예술의 자유와 복권의 일환으로 빈켈만과 지향점이 같다. 빈켈만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 미술가의 생각 파악, 다양성과 단순함 속의 미, 제작의 완성도를 살펴야 한다. ... <라오콘 군상> 등 그리스 조각에는 고귀하고 고결하고 고매하며 기품있는 귀족적인 자태의 소박함, 순수함, 단순함이 있어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으로 표현했다. '단순과 고요'를 위대한 미의 조건과 기준으로... 기품있는 소박하고 순수한 단순함, 정숙하고 정적인 심해와 같은 고요한 상태의 위대한 정신의 표현. '위대한 영혼의 표현은 자연이 창조한 것을 훨씬 능가한다' ... 이성과 오성이 고요하게 결합된 아폴론주의적 고매와 고결, 격정적이고 장엄한 디오니소스적 비장미의 그리스 정신. 순수와 단순 신고전주의자들은 절대 군주에 맞서 낙관적인 인문주의(인간의 타고난 창조력, 정신 능력 찬미, 계몽적 진화론적)와 인간학적 고전에로의 회심. 18세기는 프랑스 계몽주의와 독일의 관념론과 영국의 경험론이 철학으로서, 미술과 문학에서는 철학적 보폄성을 지향하는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공존 (p390 에서...)  데이비드 흄, 경험론자. 철학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이성적 관념(idea)보다 재현의 단초가 되는 감각적 인상(impression)이 생생함(vividness)에서 앞선다고 1789년 프랑스 대혁명... 혁명은 지배층의 과대화, 토지의 편중화, 문해로 고양된 의식, 전쟁이나 봉기로 대중의 피폐해진 삶으로부터 촉발된다. 프랑스 시민혁명이나 우리나라의 동학운동도 배경은 대동소이했다. 이치는 동서 불문 통한다. (p407 에서...)  자크루이 다비드, 역사화보다 권력에 편승한 정치화를 그렸단다. 그에게 고전주의는 이상에서 현실로의 다리, 신고전주의는 교통수단, 권력을 위한 선택의 방편에 지나지 않는 그림들을 그렸다고. 다비드외 3G(안루이 지로데, 프랑수아 제라르, 앙투안장 그로) 지로데는 역사 정시화를 그린 다비드와는 달리 낭만주의적 경향의 신화를 소재화(달의 여신 다이아나가 반한 미소년 엔디미온의 잠을 그림) 제라르는 현실도피적 신화 미학 표현 그로는 전쟁 화가로 실존적 현실을 낭만주의 화풍으로 제2장 배설의 자유와 차이의 발견 시대-권력-철학-학문-경제권 측면에서... 중세(봉건) - 교권 - 스콜라철학 - 신학 - 귀족 르네상스(절대왕정) - 왕권 - 아카데미아 - 인간학 -부르주아 "상상력과 발상의 창조가 아닌 표현 기술의 창조만 허용하는 미학은 욕망 억압의 미학이다." ... 미학 민주주의라고나 할까? 이제 인간은 욕망에서 깨어나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이해하며 다양한 미학이 발현되는 시점이 아닐까 한다. 본문에서 그동안 '동일성 미학'의 기저엔 미술가들의 '원본 강박증'이 있었다고. (p424 에서...)  '인간의 본성은 결핍에 있다.' 심신 모두가 존재의 결핍(부재), 소유의 결핍에서 다양한 인간상이 구현된다는 얘기인데, 예술과 문화, 즉 문명은 이러한 겹핍을 충족하기 위한 행위의 결과물이라고 봐야 할까? 그렇다면... 그 결핍을 잘 읽고 표현하는 것이 예술가이고 혁신가이겠지... ... 그리고 또, 합리적 이성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잔여', 그것이 로맨틱(낭만) 감성이라는데... 낭만주의... 지루함이나 권태는 '남아도는 잔여', 잉여에서 비롯되지만 오히려 결핍에서 비롯된 한 부분으로, 다름이나 새로움을 욕망하는 결핍의 양상으로 발현되는... 빈켈만의 <고대 미술사>(1764) 낭만주의가 철학보다 문학과 음악으로, 역사보다 현실로, 신보다 인간과 자연으로 적용되어, 전자의 지향성이나 스타일이 아닌 후자의 내적 경향성과 외적 조형성으로... (p426 에서...)  신고전주의에 대한 권태로 낭만주의 대두, 충족되지 않은 잔여로브타 긴장하며 타자화... 차이나 다름은 위반이다. 그래서 긴장으로 대립한다. 차이나 다름의 발견은 새로움에 대한 인식이다. 그래서 창조는 낯설다. 신고전주의 특징 ... 이성 중심주의적인 고전주의와 계몽주의의 후원  ... 이념적 확실성과 절대성, 궁극성, 보편성 ... 객관주의와 역사주의에 입각 ... 이상적, 귀족적, 영웅적 거대 이야기 ... 색채보다 데생, 동적 운동감보다 정적 구도 우선 낭만주의 특징 ... 비현실적이고 공상적인 서사의 통속적 로망(roman) ... 인간주의 자연주의 지향 ... 인간의 부조리와 모순적 내면 세계 표형 ... 허황되고 기괴하고 공상적, 모험적, 정서적 ... 주관적, 상상적 ... 감성에 호소하기 위해 동적 형태, 강렬한 색채, 명암 대비 선호. 애매하고 불균형, 불명료함 허용, 과장과 감성적 자연미 추구로 따스한 촉감과 애로탁한 정념 신고전주의자에게 적용된 낭만주의 ... 경계인 장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후기 작품들은 '회화적 오리엔탈리즘' 경향은 터키에 대한 경계심과 강박, 질투에서 비롯된 비하 저자의 시선이 새롭다. 물론 현대에 수정된 미학사라 할 수 있겠다. 서구인들에 의한 서구인들을 위한 오리엔탈리즘은 오리엔탈 문명 안의 사람들에겐 불명예스런 증거이고 아픔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서구 중심주의는 진행 중이다. 그나마 코로나 팬데믹으로 방향성을 바꾸는 시도가 되고 있지만... ~~> 앞에서 받아서... 좋은 작품의 선결 요인이라고나... 예술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가늠하는 잣대, 예술가의 역할과 사명 예술가의 정신세계 - 미학적 표상 의지, 도덕적 시대 정신, 예술 작품의 깊이 - 예술가의 고뇌어린 사상 예술가와 예술 작품 모두의 생명력 - 예술가의 철학적 신념 (p435 에서...)  질서와 구속과 형식의 상징으로서 정형화된 예술은 아폴론적으로, 이성에 대한 반대와 위반과 흥분은 디오니소스작이며 니체가 말하는 예술 창조의 에너지라고... 테오도르 제리코 - 낭만주의의 창시작로 일컬어짐. 디오니소스주의 정형. <메두사호의 뗏목>은 149명의 승객이 구조되기까지 12일 간의 참상의 결과 남겨진 15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페르디낭 들라크루아 - 낭만주의의 기수, 이국적 환상주의자, 비관주의자, 최후의 역사화가, 문학적인 화가, 대표젓 모사 화가, 보편적 화가. 문학적 비장미를 회화적 조형미로 구현.  (p450 에서...)  독일의 낭만주의는 사변적이고 형이상학적, 직관적, 신비주의적인 격정적 감상주의의 균형감과 안정감으로 예술적 직관과 미적 판단에 관심, 프랑스의 낭만주의는 어둡고 우울한 격정으로 치우친 불균형. ... 주관적 취미 판단을 강조하는 칸트의 미학 정신과 주관적 주정주의를 지향하던 낭만주의 예술의 상호 작용이라... ... 칸트의 지知, 정正?, 의意? - 인간이란 무엇인가?  제1비판서, 순수이성비판,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제2비판서, 실천이성비판, 인간은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제3비판서, 판단력비판, 인간은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 저자는 '지.정.의'를 말하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이럴 땐 한자를 병기해야지... 한자도 없이 이 어려운 글자를 어찌 이해한단 말인가... 원어도 많이 쓰고... 그나마 원어는 찾아보면 나오니 다행인데... 휴~ 서양 철학사를 보면... 동양 철학의 꽁무니를 따라 오는 듯하다. 18세기 이후 다양한 이론들이 결국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BC8세기 이후 제자백가로 수렴된다. 현재 주류가 된 서양 철학은, 다만... 보편화된 문자와 인쇄술로 많은 주석이 달려 정리되고 분화된 것이 사상의 발전과 적용에 다양한 이론의 축적으로 발현된 것일 뿐인 듯... 필리프 오토 룽게 - 아코프 뵈메의 범신론적 신비주의에서 영향을 받아 신비주의적 우주론적 풍경화를 그림. 신비주의 철학과 화가의 독창적 표상의지로 형상 해석학적 작품의 모범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 형식은 수직 존재론과 안개주의, 내용은 정적주의와 경건주의. 수평과 수직 구도가 특징. 안개 속의 아침의 바다와 산속이 주요 소재. ... 원근법이 세속화의 테크닉이라... 아드리안 루트비히 리히터 - 후기 낭만주의 화가. 쇼펜하우어의 음울한 염세주의에서 영향. 나폴레옹 치하에서의 독일 게르만족을 위로하는 국민 화가로서 활동했다고. 데이비드 흄, 감관이나 경험에 의한 지각은 인상과 관념의 두 가지 형태라고... 흄의 경험론에 의한 감각적 인상, 생생함이 재현 미술의 단초. 독일의 관념적 사변적 낭만주의에 비해 영국의 낭만주의는 대자연의 웅대함과 숭고함의 생생한 감각의 경험적 측면을 부각 윌리엄 블레이크, 시인이자 화가. 미치광이라고도. 무한한 상상력으로 신비주의를 넘어선 환상가. 윌리엄 터너, 문맹이나 예민한 감수성과 감각의 소유자. 지적 열등감으로 염세주의, 비밀주의로 이어져 이를 극복하는 예술 작업의 방향은 인간이 대신 자연으로. 존 러스킨은 화가의 주관적 감정 전달을 회화의 원리로 제시. 구름은 터너에게 상상력의 원천이자 지향점이라고... 그름을 빛으로 연출. 인상주의의 선구자. 음악은 3~5세에, 미술은 10~15세에 천재성이 드러난단다... 존 컨스터블, 대담하고 의도적인 연출과 모방의 어리석음은 피해야할 것들. 컨스터블에게 구름은 평온한 풍경의 배경. 대상과 하나되는 직관의 순간을 포착. 19세기 후반 자연주의로...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물론과 사회주의, 진화론, 실증주의 만연. 우라나라의 진경산수와 실학, 서양의 사실주의와 실증주의 모두 19세기의 모습이다. 반 세기의 시간차는 있을지 모르나 사람의 의식의 경로와 방향은 결국 한 곳으로 향하기 마련인가 보다... 오노레 도미에, 냉소적 사실주의 지향. 암울한 시대에 우울함 표현. 당시 2월 혁명, 6월 봉기가 일어나... 구스타브 쿠르베, 혁명의 화가. 역사와 현실을 새롭게 철학하며 본질적 가치를 고뇌하는 작가로 왕실 중심의 살롱전에 반기를 들거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딘다. '자신의 예술적, 정신적 위상을 결정하는 현실적 알레고리'로서 개인전과 함께 '사실주의 선언' 발표 정치 의식에서 경제 의식으로, 근대 이성적 주체에서 현대 사회적 주체로... 당시 사회의 자아의식의 진화 장프랑수아 밀레, 쿠르베가 '노동자를 대변하는 사실주의'라면, 밀레는 '농민으로서 실천하는 사실주의'. 이념이기 이전에 삶으로서의 사실주의. 빈농에 대한 대지주의 간계를 보여주는 <이삭줍기>. 어린 아이의 시체가 감자로 대체된 죽음의 묵시록과도 같은 <만종>. 빈센트 반 고흐, 밀레주의자라고 할 만큼 밀레 모작을 많이 했단다. 밀레의 그림을 훔치기 기법의 정당화 같은 발언들을 저자는 비판하고 았다. 색의 자율성을 강조한 고흐의 기법은 위장술이라고... 예술 철학자 필립 브르노는 20세 이후부터 철학 교육이 동반되지 않으면 고도로 훈련된 '예술적 기술자'에 불과할 수 있다고.. 고흐는 철학이 부재했다고 보는 것이다. - '모작의 시대'를 에드가르 드가가 주도했다는데... 뒤로 이어서... ~~>
예술직품의 역사성은 태생적 조건...
<미술철학사> 1권. 권력과 욕망: 조토에서 클림트까지 표지, '팔라스(아테나)와 켄타우로스' ... 이성과 본능의 상징, 지혜와 전쟁의 여신과 무지한 반인반마 2600쪽에 달히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벽돌책 3권이다. 도판이 1/4 페이지를 차지한다. 실린 그림들도 낱낱이 읽어야하니 이 또한 만만치 않다. 미술 철학에 한하여 봄이 오기 전에 체계라도 잡아볼 수 있다면 성공이다. 1편. 욕망의 지렛대가 된 철학 ---------- 제1장 이중 구속에서의 해방 제2장 선구적 미술철학자들 1. 최초의 계몽주의 철학자, 첸니노 첸니니 1437년 <기예에 관한 책>의 출간되었다. 스승 아뇰로 깃다의 공방에서 12년간 배운 미술의 전통 기법과 재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소개한 책. 밑그림, 시노피아를 그린 후 소석회 반죽이 굳기 전에 재빨리 그리는 프레스코 화법, 거기서 반전한 건식 화법인 템페라 화법, 템페라 화법에 윤택 효과를 가미한 수지유 피복을 하는 코팅기법, 아마씨 기름에 물감을 용해한 유화 기법들이 전한다. 그는 미술가에게 인문주의적 사유와 상상의 자유를 영위하는 주체적이고 자유 의지에 따른 예술행위를 강조하며, 권세가들에게 한낱 기술공으로 생각되^던 미술가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도록 주문한다. 노예의 일, 기계적이라 한 미술 노동에 품격을 입히기 위한 철학적 사고를 주문하여 미술에 대한 격상을 시도한 계몽 이론가이고자 했다. 2. 최초의 인문학적 미술 비평가, 로렌초 기베르티 투시도법을 활용한 조각 작품인 피렌체 두오모 성당 세례당의 <천국의 문>(1425~1452)과 저서 전3권의 <비망록 Commentari>(1447)이 있다. 빛과 시선 그리고 사물과의 관계를 밝히는 미학 원리를 탐구하여 빛의 발광성(루미니즘 luminism)을 아름다움의 주된 표현 방식으로 간주하고, 자연과학과 예술 정신을 이론적으로 조화시키려 한 인물이다. 고대미술의 우수성은 이론과 실재의 일치에 있다고 보고, 스스로를 인문학적 이론가로 정립하고자 했다. 3. 최초의 존재론적 회화론자,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선 원근법과 기하학적 원리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회화의 과학화>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 모든 회화의 시대성과 역사소에 주목며 회화와 역사의 관계짓기를 시도하며 회화에 미적 본질과 사료적 가치를 담아낼 것을 주장하였다. 역사화의 한 구석에 자신의 초상이 사료화되길 바라며 회화의 역사성과 통시성에 주목했다. 역사에 개입적은 회화의 특성상 이론가나 비평가도 역사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주인공임을 피력한다. 제3장 피렌체 현상 조토, 마사초, 브루넬레스키, 도나텔로가 피렌체 미술 시대를 개막한 장본인. 반중세적 인식과 자연주의적이고 인문주의적인 시대정신은 피렌체를 중심으로 회화에서 평면 이탈과 입체화를 주도했다. 휴머니즘에 근거한 사실주의와 기하학에 의거한 과학주의는 인간 주체로서의 자아에 대한 발견과 실존을 화가들이 화폭에 그리기 시작했다. 부르크하르트가 인정한 시인 페트라르카는 중세를 비판하며 문화 창조를 시도한 최초의 르네상스인이라고... 문학에서 시작된 피렌체 현상은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로부터 시작된 현실적 휴머니즘과 과학적 자연주의 로 대변된다. 이성적(도덕적) 휴머니즘을 강조한 모럴리스트, 페트라르카 감성적(예술적) 휴머니즘을 더욱 적극적으로 그려낸, 보카치오 교회의 세속화를 질타하는 단테의 <신곡> vs 인성을 탐미하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미술보다 문학에서 역사적 단절주의와 포스트고전주의로, 플라톤 철학의 재발견 등이 피렌체 현상의 견인차 조토의 각성제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란다. 중세기독교는 죄책감과 죄의식으로 실존적 주체에 대한 자기 반성의 기회를 빼앗아 엄숙주의 경건주의로 인도하였으나 종교와 신에 대한 회의주의는 인간적 본성을 눈뜨게했다. (p71 에서...)  인문주의자 프란체스카 페트라르카, 대성당과 성상 조각물들을 신격의 대리보충물로 인식하고 고고학적 열병식으로만 일관해 온 중세를 <암흑시대>로 정의했다. 고대를 <문명 시대>, 중세를 <암흑 시대>, 인문주의 시대(르네상스)로 구분한 것이다. (p72 에서...)  암흑 시대란, 역사의 동인을 오직 기독교의 유일신에게만 돌리고 인간의 힘으로 비쳐 온 문명과 문화의 빛이 차단되거나 소멸된 역사 시기를 가리킨다. 이에 덧붙여, 저자는 문화와 문명의 중심이 아시아로 옮겨 왔다고 하는데... 당시 세계 속 아시아는 어떤 세상이었다는 말인가? ... 피렌체 현상은 먼저 페트라르카의 역사 인식에서 시작 되어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으로 각성하고 조토의 회화으로 이어졌던가 보다. 모든 작품은 직간접적으로 역사를 반영하며 모든 예술의 역사성은 모든 작품의 시간과 공간에 피구속된(가다머의 `입장 구속성 standortgebundenheit`), 아무리 독창적일지라도 역사성은 모든 작품의 태생적 조건이라고... <파치가의 음모>는 피렌체 르네상스의 치부란다. 왜? 중세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기독교의 신학으로 둔갑하는 시기였다고... 14세기에는 그에 대한 반발이 건축과 조각에서 배치법과 이미지의 형식을 통해 주도되어 왔던 것이 창유리 그림이나 벽 그림 등의 회화가 시대정신을 반영하기 시작했단다. 건축의 과묵한 카리스마를 회화의 자상한 스토리텔링이 대신하며... 타락해 가는 기독교에 대한 염증과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대한 진저리가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조토 등 예술가들의 관심을 플라톤 철학에로 옮겨가게 했다. 고대 그리스의 정신과 문화에 대한 열등감을 신전 건축으로 극복하려던 기독교의 거대 설화라... 신학에서 인간학으로, 섭리(신앙)에서 합리(이성)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 플라톤의 인식론으로. 제4장 피렌체의 지렛대들 그 옛날 서양의 종교 카톨릭의 수장 교황은 신성 로마제국인 프랑크 왕국과 대립의 날을 세웠던가 보다. 그리고 로마를 떠나 프랑스의 아비뇽에 일시 의탁하였던가 보다.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에서 언급했던 '프랑스가 그리스와 로마에 이어 역사의 권위를 받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 즈음의 사건 때문이 아니었나 짐작해 본다. 후엔 독일로 넘어가게 되지만... 앙리 포시용은 중세의 대성당을 '구세주의 족보'라고 말하며, 로마네스크 조각이 신앙의 표현이라면, 고딕 조각은 연민의 표현이고, 그 말기 조각은 독실성의 표현이라고 했다... 프랑스권 - 프랑스, 나폴리, 피렌체, 교황령 신성 로마 제국 - 독일, 프랑스 남부, 밀라노 황제와 교황의 대립은 실상은 아우리스파의 예수의 위격에 대한 의의 제기에서 촉발하였단다.  롱고바르드족의 침입, 신성로마제국에 구원 요청, 신성로마제국 황제 인정의 수순 피렌체에서는 상업과 금융의 발달로 시민 의식 확충. 1378년 비숙련 노동자 <치옴피(길드에 가입할 수 없는 단순 노동자들)의 반란> 등이 '시민 자치 도시 국가' 피렌체를 형성해 감. 코시모 데 메디치를 비롯한 메디치 가문의 플라톤주의의 르네상스 시작. 길드 중심의 공화주의를 주장하며 1439년 <피렌체 공의회> 개최. 국가적 교회주의가 아닌 시민 중심의 인문주의 표방.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튀르크에게 함락. 플라톤 철학자 플로티누스는 <엔네아데스>에서 '방사와 유출'은 단계적으로 진행된다고. 최초의 유출은 신적 정신이고, 다음은 세계 정신(영적인 것의 정신), 그 다음은 물질세계와의 중간 단계에 존재하는 개별적 영혼, 마지막으로 신과 가장 먼 가중 불완전한 존재들의 집합 물질세계. 플로티누스의 사상을 주시한 이가 비잔틴의 플라톤 철학자 플레톤, 동방으로부터 사유의 전염과 언설의 감염(인류의 정신과 지성사에는 새로움의 유입이 동방으로부터였다고)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코시모를 감명하게 하고 주치의의 아들 마르실리오 피치노에게 '플라톤 아카데미아'를 설립하여 주관케 했다고... -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은 동방 교회 인적 자원의 대탈출을 야기했다고 한다. 그들에게 야만이랄 수 있는 오리엔트의 콘스탄티노플 진출이 인적 자원의 서방 진입이 유도되었다. 이것이 피렌체 현상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플라톤을 계승한 플로티누스와 플레톤, 그리고 피치노의 플라톤주의는 신과 인간 영혼의 합일이 가능하다는 이론인가보다. 인간의 지적활동으로 승화된 자아를 말함인데, 성리학과 다르지 않다. 다만 성리설은 신이 아닌 군자라는 것. 신과 인간을 구분한 서양의 철학은 동양철학보다 미개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실상은 그 신이란 것이 인간에게서 발원한 어떤 기운이 아닐까? 철학은 용어만 다를 뿐인 듯 싶고, 서양이나 동양이나 기독교나 유교나 불교나 도교나 천도교나 사상의 뿌리는 인간에 있을 뿐이라는 것 산드로 보티첼리의 템페라화, <팔라스(지혜 이성 예술의 신 미네르바를 상징하기도 함)와 켄타우로스>는 교황 식스투스 6세의 사주로 나폴리 국왕 페란테가 한 무력 도발을 단판으로 물리친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화한 작품. 아폴론이 사랑한 다프네가 월계수로 변하자 그 잎이 영웅을 상징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데서 기인한, 월계수의 상징이 영웅 (p100 에서...)  폴리치아노라는 시인을 기억하고 가야겠다. 피렌체 대학의 초대 교수인 모양이고, 로렌초가 후원한 사람인 듯하다. 코시모는 예술가를 지원했고, 로렌초는 예술보다 인문학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모양이다. 화가가 후원자를 위한 봉헌화를 그리고 화가 자신도 그려 넣음으로써 자신의 존재에 대한 주체적 인식을 과시하는 시대로 왔다. 제5장 피렌체 효과 * 플라톤의 이데아 - 르네상스의 철학, 초월적이고 함의적, 종교와 인산의 분리, 인간에게 이성적 능력 부여, 최고의 도덕적 이타심과 최상의 지식 가능, 프란체스코 수도회 보나벤투라, 프란체스코는 성화를 통한 포교 주력, 피치노, 폴리치아노, 피코 델라미란돌라 *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비유신론) - 중세의 철학, 이성적이고 논증적, 신학을 논리적으로 가르치려 함. 논리적 오류와 모순을 무릅쓰고 신앙과 이성의 융합 가능성 강조. 신앙과 이성(철학)을 결합하고자, 연역적 논리와 변증법적 형식, 스콜라 철학자 보이티우스, 토마스 아퀴나스 고딕은 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고트족의 예술'이라는 뜻으로 프랑스식을 말하기도 한다고... 중세 미술 - 신의 섭리와 계시를 상징, 재현의 세계 너머의 영적 피안의 세계을 상징적으로 표현 르네상스 미술 - 역사 의식과 예술 의지가 인간의 형상과 자연에 대한 정확한 묘사로 성상주의(iconism)에서 벗어남 산드로 보티첼리 - 비너스의 탄생, 프리마베라, 이교적 이신적 헤시오도스의 시집 '신통기'에서 하늘의신 우라노스의 아들 크로노스가 어머니 음부에 숨었다가 아버지의 생식기를 잘라 바다로 던졌는데, 생식기 주변의 물거품이라는 아프로스가 일며 태어난 아프로디테=비너스라고... 프리마베라 - 왼쪽부터 봄바람 요정 제퓌로스, 대지의 여신 클로리스, 꽃의 여신 플로라, 비너스, 헤스오도스의 세 자매(삼미신, 아름다움 아글라이아, 우아함 에?우프로시네, 기쁨 탈(레이아?)리아 - 세네카는 주는 것, 받는 것, 되돌려주는 것, 곧 관대함), 헤르메스(메르쿠리우스, 머큐리), 비너스의 머리 위에 큐피드 분쟁과 불화의 여신 에리스의 딸 레테(망각의 화신)와 아테(재앙의 여신) 조르조 바사리 - <예술가 열전>을 쓴 미술사학의 아버지, 재생, 부활이라는 '르네상스'라는 말도 처음 사용  p123  예술가에게 철학의 빈곤은 그를 공허한 장인으로만 머물게 한다. 미켈란젤로는 14세에 철학을 만난다. 로렌초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폴리치아노로부터 고대 그리스의 인문주의를 피코 델라미란돌라로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지적 흡수력이 강한 14세에 철학을 만난다는 것... 미켈란젤로는 권력의 속성을 알았던가 보다. 로렌초가 죽고 줄리아노의 아들 교황 클레멘스 7세가 죽자 혼란한 틈에서 광기의 피렌체를 떠났다가 안정되니 돌아왔단다. 그리고 인문주의적 그림의 여전함이라니... 제6장 곽외의 천재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라파엘로 p145  천재성의 조건은 언제, 어디서나 같음보다 다름에 있다.  - 중세의 미술가들의 예술 의지는 원형에 대한 모방에 한정되었고, 종교적 독단주의 성행. 책에서는 다빈치가 미켈란젤로에 비해 소외와 배제의 대상이었다고 말한다. 동성애에 연루되었고 그로 인해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을 수 있었던 점 등을 들었다... 이데올로기적인 철학보다 가치 중립작인 과학에 몰두하여 아리스토텔레스주의지로 인식 다빈치 - 미술의 과학화, 종교적 성화만, <최후의 만찬>은 형상화를 위한 재현 기법의 성서 회화, 회화와 해부학은 가시적 현시성의 도구로 표피적 현시주의, 죽음의 메시지로써의 성서주의로 시대정신이나 역사와 철학에 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고... 미켈란젤로 - 미술의 철학화, 신화를 가미한, <최후의 심판>은 신화적 요소와 회화적 융합의 지평 융합적 다빈치의 미술의 과학화의 지적 계보 ... 레온 알베르티의 기하학적 원근법과 회화론을 중간 숙주로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만학, 마르크안토니오 델라 토레로부터 전수된 해부학이 다빈치를 거쳐 조반니 바티스타 모르가니의 해부학으로 연결됨. ... 다빈치의 회화론은 대기의 자유분방한 유동성에 의한 스푸마토(sfumato)와 빛의 명암 현상에서 비롯한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명암의 뚜렷한 대비) 개념으로 이론화한 물리학적 대기원근법에 더하여 인체에 대한 정확한 해부학적 이해까지 동원됐다고...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알베르티와 다빈치의 관계가 초보자와 완성자, 또는 아마추어와 대가의 관계라고... 다빈치의 미완성은 느긋하고 게으른 습관에서 비롯된 책임감과 자존감의 결여라고... 유화 작업도 프레스코화와는 다르게 천천히 하는 작업이 가능한 게으름의 소산이라고... 철학적 미숙함과 예술 의지의 불철저함이 낳은 미완성... 흠... (p82에서...)  초상화란 내재된 인간성의 시각화이자 내면의 표상화이다.... 죽음을 투영하는 유서이기도 하고 정지된 삶의 단면도이다. - 평범한 상인 프란체스코 조콘도의 세 번째 부인. 당시 16살이던 리자 디 안토니오 마리아 게라르디니가 24세 되던 해에 그려진 '모나 리자'. 권력층의 주문도 무시하고 그렸던 그림. 다빈치는 무명의 여인을 그려 예술성을 발휘하고자... 모나 리자에 대한 수사는 어떤 의미일까? 암수 한 몸, 양성인인 안드로진(그리스어로 남andero과 여gyne). '남성의 수천 년 동안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그림이라는데... 마르셀 뒤샹의 [L.H.O.O.Q]...? 제목의 의미는? 르네상스에는 유사 강박증이 있었더란다. 고전에 대한 주석도 유사했다고... 그래서 실물처럼 그리는 초상이 유행했다고... 다빈치도 특히 라파엘로도... 진리란? 감각적 - 이성적, 가시적 - 가지적, 실재적 - 관념적, 상대적 - 절대적, 유한한 - 영원한, 가변적 - 불변적,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 ... 철학적 담론의 유형들을 살펴볼 만한... 기초 교양 - 문법, 수사학, 논리학 전문 교과 - 대수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9명의 뮤즈, 에라토-서정시, 카리오페-서사시, 에우테르페-음악, 테르포시코레-무용, 탈리아-희극, 멜포메네-비극, 클리오-역사, 폴리힘니아-종교, 우라니아-천문 믿음, 희망, 사랑의 삼주덕 이 시현되는 이상향에 푸토(이탈리아어, 어린 유아)와 이성적 사리 분별의 미덕, 기백과 용기의 미덕, 인간의 욕망에 대한 절제의 미덕의 세 여인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정의라는 개념의 라파엘로의 <시민법과 교회법의 확립>, 이성-힘-열정, 지혜-용기-절제 (p175, 각주 98에서...)  로제 드 필의 <회화의 균형>에서 데생, 색채, 구성, 표현을 기준으로 라파엘로를 최고로 여김 2편. 욕망의 표현형으로부터 본 미술 ---------- 제1장 유보된 자유와 표류하는 미술 (p185에서...)  이탈리아 경제의 내리막, 모직업과 조선업의 붕괴, 일부 엘리트에게만 집중되는 부와 그들의 욕망은 산업과 무역의 발달을 저하시켰다. 전쟁과 전염병, 지동설 포기 서약 등이 서양의 중심을 이탈리아에서 대서양 연안으로 옮겨지는 데 일조했다. 스페인을 필두로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등의 패권 경쟁 양상으로 국왕이 신의 대리자이자 신 자체라는 인식, 절대왕정의 시작. 영국의 제임스 1세, 프랑스의 잉리 16세로부터 시작되어 태양왕 루이 14세. 루이 14세, 베르사이유궁전, 건축설계 루이 르 보, 실네건축설계 아르두망 망사르, 조경 르 노트르, 자문 극작가 라신과 몰리에르, 천장과 벽 장식 왕립 미술 아카데미 관장 샤를 르브룅. 루이 14세가 설립한 왕립 미술 아카데미는 포스트르네상스와 다름 없다고... (p193에서...)  잔 파올로 로마초의 비유에 따르면 미술계는 태양계로 다빈치가 태양, 미켈란젤로가 토성, 과텐치로 페라리가 목성, 폴리도로 칼다라는 화성, 라파엘로는 금성, 만테냐는 수성, 티치아노는 달로 규정했다는데... 로마초는 훗날 프랑스 아카데미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바로크는 성화에서 역사화로 가는 길이라는 거지... 앙드레 펠리비앙, 프랑스 왕립 마술 아카데미의 실제적 프로그램 구상자로 상상된 행위들의 표현이 회화의 진수라고 보고, 인간의 대사건을 그려야 탁월한 자, 살아있는 동물을 그려야 그 다음, 그리고 풍경, 꽃이나 과일 같은 정물을 그리는 화가의 순으로 위계가 있다고... 물리적 조화는 기하학적 비례를 따진 감각미보다 영혼을 담은 우아미 추구. 르네상스가 신앙에서 이성으로, 신학에서 인간학으로,성상주의애서 인문주의로 갔다면 아카데미는 인간들의 거대 서사인 역사화를 이념화한 인간사를 중심에 두었다. 근대 정신, 17세기의 정신적 주류, 과학주의와 이성적 합리주의 스페인의 산페르난도 왕립 미술 아카데미...계몽 군주 펠리페 5세 때인 1710년부터 준비하여 페르난도 6세 때 1752년에 개원 엘 그레코 ...인위적이고 과장된 표현의 마니에리스모풍. 자의적이고 개성 강한.. 디에고 벨라스케스 ...루벤스 효과.  국가 파산을 선언한 펠리페 4세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 화가의 작업실을 표현한 어두운 왕가의 현실에서 자화상을 넣어 자기 반성적 역사화로.. 프란시스코 데 고야 ...비판적 이성과 철학적 신념의 화가. 엽기적이고 잔혹한 계몽주의적 작품들. <카를로스 4세와 그 일가>(1800)에 자신을 그려 넣고 권력의 중심에 있는 요부로 알려진 왕비를 <늙은 여인들의 시간>(1810~1812)으로 조롱하듯 묘사 절망과 허무에서 비롯된 기발하고 기상천외한 생각들로 고뇌하고 저항하는 궁정 화가로.. 저자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유목 욕망'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가? 정착하고자 하는 본능은 무엇으로 말할 수 있을까? 그 욕망의 발현은 두려움을 떨쳐낸 용기있는 자들의 전유물일까? 힘이 있는 자들은 안주하지 않는다. 그것이 유목 욕망이라 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근대로 접어든 시대에 대서양 국가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등의 패권 경쟁은 식민 시대를 만들었다. 자신의 나라에서는 자유를 외치면서, 다른 종족, 민족에게는 복종을 강요하는 표리부동의 오만의 시대로... 네덜란드는 1848년(?: 1648년인 듯. 1848년 헌법 개정이 이루어져 시민들의 투표권이 발효되었다는데...)에 겨우 독립국가로서의 헌법을 제정했단다. 많은 전쟁과 변화가 체질화 되었달까? 네덜란드는 그렇게 제 살 길을 찾아 패권 국가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수구, 폐쇄 정치로 망국의 길로 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패권 국가의 번영은 침략과 피로 이루어진 역사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화풍을 역사 의식과 철학이 결여된 비합리적이고 과장된 바로크식의 마니에리스모 풍의 화화란다. 절대왕정이 성립될 수 없는 네덜란드라는 정치.사회적 환경이 정체성 결여와 역사적 이념의 부재를 낳았을 것이라고... 철학적 신념(내면 세계를 통찰하는 본질 직관)과 시대 인식이 훌륭한 미술가를 낳는다고... 프란스 할스 ...웃음으로 만든 화풍의 네덜란드인을 치유하려 한 국민적 화가라고... 웃음의 기호, 그 의미태는? 저자는 웃음은 웃는 자의 자유를 표상한다고 했다. 서민들의 웃음으로 절대 권력에 저항하는 것. 웃음보다 인간적인 것은 없다고? 할스의 작품은 그렇지... 웃음은 관계의 표현이고, 사회학적이라고 베르그송이 말했다고. 렘브란트 반 레인 ...윤곽선을 안 쓰는 방식으로 모든 것이 대단히 강렬한 음영을 띠고 있다고 엉뚜하거나 천재로 인식했단다. 렘브란트는 문맹에 배운 것도 없었다던데... 34세, 53세, 62세 세 번의 초상화. 초상 욕망은 존재론적이든 인식론적이든 본래적이고 생득적인 것이란다. 그럴까? 거울의 발명과 자화상, 초상화 등에서 증명된다는데... 초상화가 인류학의 역사라면 자화상은 한 장의 자서전, 마지막 자화상은 유서이며 인생의 단면도라... 말년의 초상회는 죽음에 이르는 실존, 몸 철학이라고... 뒤로 이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