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혼자 유럽여행기 6편을 쓸까 했는데 오늘의 하늘이 바르셀로나의 하늘과는 너무 달라서 마음을 고쳐 먹고, 오늘과 같은 하늘이 자주 있던 아일랜드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지금 글을 길게 쓸 시간도 없어서 야금야금 짧게나마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섬인 아란아일랜드(Aran Islands)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요.
저는 아직도 가끔 닮은 구름을 보고 울컥하곤 해요. 한동안 상사병에 걸려 있었는데, 다 나았다 싶다가도 가끔 훅 파고 들 때가 있더라고요.

(Doolin, Ireland, 2011. 04)
처음 맞는 더블린의 봄, 떠나 오기 전에는 봄 같은 것은 없을것이라 생각했던 음울한 이미지의 더블린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봄이 왔다. 이제 슬슬 바다 밖의 생활이 익숙해 질 무렵 바로 옆 섬나라 영국에서 공부를 하던 학교 선배가 아일랜드를 여행하고 싶다며 동행을 제안했고, 당연히 '나만 믿으라'며 수락을 했지. 하지만 준비성이 나보다 훨씬 좋았던 선배가 이미 루트와 숙소 등을 모두 정해 둔 후였기에 나는 그냥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되었다.
더블린과 골웨이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뤄 두고, 지금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섬인 아란군도의 세 섬 중 가장 작은 섬인 Inisheer 이야기를 먼저 해 보려 한다.

더블린에서 버스를 한참 타고 골웨이에서 내려 다시 배를 타고 들어가야 갈 수 있는 아란군도, 아란군도를 지나는 배들은 이니쉬모어, 이니쉬만, 이니쉬어를 차례로 거치며 사람들을 조금씩 내려두고 태워가고를 반복한다. 우리가 갈 이니쉬어는 이 중에서도 가장 작은 섬, 가장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섬으로 이 배의 마지막 정거장이다. 배를 탈 때 잠시 이야기를 나눈 저 금발 아가씨도 우리와 같은 곳에 내렸다.

매 섬에 설 때 마다 이렇게 쪼롬이 늘어서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 작은 섬의 인구는 250명, 지금 떠올려도 울컥하는 그림 같은 풍경에 나는 금방 사랑에 빠졌다. 능선을 따라 옹기종기 늘어선 돌담들, 그 돌담들을 따라 걷다 보면 닿게 되는 1000년도 더 된 요새.

설렁 설렁 걸어서 섬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지만 역시 이렇게 작은 섬에는 자전거가 제격이 아니겠는가, 간판조차 귀여운 자전거 렌트샵에 들러 자전거를 빌렸다. 하나하나 키에 맞춰 주시고, 바퀴를 체크해 주시는 것에 감동. 항구에 내리면 보이는 단 하나 뿐인 자전거샵이다. 히히. 다시 봐도 웃음이 나는 저 귀여움.

내내 이런 길을 따라 달린다. 어디서 아이리쉬휘슬소리라도 들려올 듯 한 풍경. 반대쪽 하늘은 잔뜩 구름으로 성이 나 있었는데 이 쪽 하늘은 이렇게나 맑다.

열심히 패달을 밟다 눈에 들어온 풍경들에 우리도 몰래 멈춰서 언덕을 올랐다.

우리가 그래 왔듯 양지바른 곳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뉘인 사람들. 그 마음에 괜히 찡해졌다. 이상하게 마음이 왈랑거려 한참을 서 있었다. 지금도 아란아일랜드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

이제는 내게도 너무 큰 의미가 되어 버린 켈틱십자가.

누구는 아란아일랜드를 제주도와 같다 하지만 사실 나는 제주도를 달리며 내내 이 곳을 떠올렸다. 사실은 제주도 보다는 굳이 따지자면 우도의 풍경과 닮았달까. 아일랜드의 옛 그림들을 보면 이런 돌담들이 참 많이 등장한다. 돌담 틈마저 사랑스러운 풍경들.

사실은 카메라 베터리 충전하는 것을 깜빡 잊어서 거의 사진을 찍지 못 했다. 보통은 찍고서 좋은 사진들을 건지곤 하는데 이 여행에서는 그냥 찍은 사진이면 다 소중한 것으로. 그래도 덕분에 정말 소중한 순간들을 눈으로, 마음으로 더욱 담을 수 있었다.

아일랜드 시골의 전형적인 풍경. 회빛의 돌담과 따뜻한 초록과 노랑, 그리고 흰 페인트벽의 집들, 그리고 바다.

재밌는 것은, 두어시간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구석 구석 돌면서도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 했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예 만나지 못 했거나 한두사람을 마주쳤던 것 같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갔다.

구석구석 미운 구석이 단 하나도 없던 작은 섬

이 동네 사람들은 모두 이 펍에 모여 있었다.
내내 자전거를 밟다 보니 목이 말라서 목을 축일 겸 들어선 <이 동네 단 하나뿐인 펍>에서 우리는 동네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었다. 펍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일제히 우리를 향해 시선을 던지는 사람들. 아마 '어차피 들어오는 모든 사람은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인사를 하기 위해 그랬던 것이 아닐까. 낯선 우리가 들어오니 다들 신기함에 한참동안 우리를 주시했다.
재밌는 것은 이 펍 안 사람들의 다양한 연령대. 기껏해야 열댓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부터 80대 할아버지들까지 모두가 펍의 구석 구석을 지키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들의 손에는 맥주 대신 큐대가 들려 있었지. 그리고 이 날 이후로 몇 번의 아일랜드 시골을 다니며 알게 된 것은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는 펍이 마을회관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

기네스를 한 잔 들이킨 후 펍에서 나와 자전거를 반납하고 :)

나무 전봇대의 전깃줄마저 하늘을 닮은 이 곳을 떠난다.

안녕.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