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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요타 86은 아직도 200 마력일까?"

- 글 | 김동연 월간조선 기자/ 자동차 칼럼니스트
알립니다. 본 기사의 자동차 제작사, Toyota는 국립국어원의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도요타를 사용했습니다. 국내 수입되는 Toyota Korea는 자사 이름을 '토요타'로 칭하고 있습니다.
▲드리프트 중인 도요타 86
도요타 86이 2012년 처음 출시했을 때, 이 차는 출시와 동시에 무수히 많은 자동차 전문매체들이 2013년(년식대비 1년을 더해 평한다) 최고의 차라는 ‘카 오브 더 이어(Car of the Year)’로 이 차를 꼽았다. 그 후로 3년이 지났다.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2016년형은 2012년에 나왔던 최초 모습에서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버튼식 엔진스타트 및 키리스 엔트리(Keyless entry)와 같은 편의장비가 달라졌을 뿐이다.
성능적인 부분으로는 서스펜션의 세팅에 정교함을 더했다. 요철을 넘을 때 충격은 더 잘 흡수하면서도 코너링에서는 더 안정적이다. 그렇다고 최초 등장했던 86의 서스펜션이 형편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완벽에 완벽을 더했다는 표현이 아마도 정확할 것 같다. 최초의 86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했던 “아쉬운 출력”에 대한 보강은 없었다. 여전히 86은 200마력을 만들어낼 뿐이다.
그리고 달라진 것은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저조한 판매고 일 것이다. 당초 도요타가 예상했던 판매율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말은 곧 개발에 쏟아 부은 비용에 비해 벌어들인 수익이 적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연 도요타 86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최근 스포츠카라는 이름으로 거금을 들여 개발되었던 대다수의 스포츠카들도 이런 저조한 성적을 나타내고 있다.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 X(10기형)도 그렇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랜서 에볼루션은 없다. 미쓰비시는 이미 랜서 에볼루션을 교훈삼아 소수의 매니아보다는 다수의 대중을 위한 차를 만들기로 방향을 수정했다.
기자는 이 차가 처음 등장했던 2012년과 지금 2015년 모두를 경험해보는 행운(?)을 얻었다.
이 차를 처음 탔을 때의 기억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2013년형 86 시승기는 기사 맨 아래 링크 참조)
“닥치고 운전이나 해라”
당시 처음 86을 마주했을 때 감탄이 터져나올만한 구석은 하나도 없었다. 밋밋하고 심심한 익스테리어(Exterior, 외관)와 인테리어도 그저 그랬다. 오히려 사용자 편의를 고려한 인테리어 구성은 국산 스포츠카인 투스카니, 제네시스 쿠페, 포르테 쿱보다 못했다. 일례로 수납공간과 뒷좌석 엔트리 등을 들 수 있다. 선글라스를 수납하기 위한 공간이라던지 중앙 기어박스 주변의 컵 홀더 포지션 등은 현대가 오히려 한수 위다.
현대 투스카니나 제네시스 쿠페 등은 운전자가 손을 뻗어 닿을만한 공간마다 필요한 수납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뒷좌석으로 탑승하기 위해 조수석 의자를 접을 때도 마찬가지다. 현대와 기아의 쿠페들은 조수석 시트의 어깨부분에 별도의 버튼을 달아두어 손쉽게 시트를 접을 수 있다.
그런데 86에는 그런 편리함이나 공간 활용은 없다. 선글라스를 넣을 공간도, 뒷좌석을 손쉽게 접어주는 기능도 없다. 하지만 시동을 걸고 달리기 시작하면, 그런 단점이 잊혀 진다. 손이 닿을만한 곳에 수납공간은 없지만 86에는 다른 게 있다.
운전자의 손이 닿을만한 곳에는 기어노브(Gear knob)가 있고, 사이드 브레이크가 있고, 스티어링 휠이 있다. 손을 뻗는 곳마다 86을 조련할 수 있는 모든 도구가 손에 잡힌다. 앞서 언급한 조작계통간의 거리를 줄자로 잰다면 아마 가장 가깝다고 호언장담할 수 있다.
86은 모든 설계가 운전자가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마치 WRC(월드랠리챔피언십)이나 D1GP(드리프트 경기)에 출전하는 경주용 차안에 타고 있는 것만 같다. 이런 차들은 레이서(Racer)의 빠른 조작을 위해 조작계통간의 거리를 좁혀두었다. 이런 거리를 좁히기 위해 익스텐션 바(Extension bar)를 장착하기도 한다. 가령 기어봉의 손잡이를 길게 만드는 식이다. 그런데 86은 그런 튜닝 없이도 조작을 위한 최상의 지오메트리(geometry)를 갖추고 있다. 86의 운전석에 앉으면 86이 운전자에게 말을 하는 듯하다. “이봐, 닥치고 운전이나 하시게”
86이 얼마나 달리기를 위한 차인지는 차량에 장착된 시트의 헤드레스트(Headrest)를 봐도 알 수 있다. 이 헤드레스트를 뽑아서 뒤집어서 꼽으면 곧바로 서킷용이된다. 서킷용이 된다는 의미는 헬멧을 쓰고도 머리를 기대기 좋은 각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헬멧 이외의 하네스(harness, 한스 hans 등)가 닿을만한 부분도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시트의 어깨부분도 여느 버킷시트처럼 밀림방지 천을 덧씌워 두었다.
▲86은 저중심 설계이다. 이는 포르쉐 카이맨이나 닛산 GTR(35)보다도 낮게 엔진을 배치했다.
3년이 지났는데, 왜 도요타 86은 여전히 200마력인가.
기자는 2016년형 86을 타면서 왜 도요타가 200마력을 고수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결론에 도달했다. 기자도 사실 2012년 처음 이 차를 탔을 때, 출력이 더 강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86은 ‘더 과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딱 그만큼까지’를 지향하는 차다. 그 적정선을 지킨다는 게 제작사에게 있어서도 고민거리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냥 터보하나 심어서 전 세계에 “자 보라구, 우리가 만든 차의 출력이 얼마나 강한지 봐”라고 자랑하고 싶었을 테니까. 도요타라고 소비자들의 “마력을 올려 달라”는 요구를 몰랐을까. 그럼에도 도요타는 끝까지 200마력만을 고수했다.
아마도 차를 내놓는 순간부터 도요타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마력이 약하다고 비판 할 것이라는 것을. 사실 고출력 차를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배기량을 높이고, 터보차저를 올리기만 하면 된다. 또 이미 도요타 86의 엔진에 사용된 스바루의 FA20 엔진 중에는 거의 300마력에 육박하는 북미형(USDM) WRX에 들어간 FA20F 엔진도 이미 양산차로 나와 있다. 즉 도요타가 정말 원했다면, 그냥 이 엔진을 가져다 집어넣었으면 간단하게 끝날 일이다. 그런데도 끝까지 200마력을 고수했다면 분명 이유가 있지 않겠나.
터보차저를 올리면 출력이 올라간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소위말해 개나 소나 다 할 수 있는 짓이다. 도요타는 그런 개나 소나가 되기보단 ‘절제의 미학’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도요타는 메커니컬 퍼펙션(Mechanical Perfection, 기계적 완벽함)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최고급 요리를 위해 가장 신선한 재료를 공수해 푸짐하게 담아내는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고의 재료를 가장 알맞은 비율로 섞어서, 먹고 나서 배가 고픈 듯, 배가 부른 듯이 만드는 것은 진정 고수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맛있어도 먹고 남는 음식은 매력이 없는 법이다. 도요타 86이 바로 그런 것이다. 최상의 비율. 최고의 맛. 적절한 양. 기계적 완벽함. 궁극의 밸런스. 마치 컵의 물을 반만 채워, 운전자에게 나머지 반을 욕망으로 채우고 싶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이러한 도요타 86이 전하는 "86의 참맛을 깨달았다"는 말이 도요타 오너들 사이에서도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 도요타 86이 나왔던 2012년에는 몰랐지만, 3년간 오너들이 출력을 올려보고 난 뒤의 결과들 말이다.
해외 86포럼과 JALOPNIK 등에서는 “(86의) 마력을 300으로 올렸다. 직선에서 빨라졌지만, 랩타임이 별로 줄진 않았다.” “이 차는 터보가 필요없다.” 이런 평가들 중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터보를 넣으면 저중심 엔진설계를 망친다.”는 말이다. 일각에서는 “도요타 86은 순정으로 타야 한다.” “도요타 86에 필요한 유일한 튜닝은 휠과 타이어 뿐” 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일부는 10년전 출시했던 혼다 S2000의 예를 들며 "2000cc대 논터보 엔진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기념비적 예를 보여주지 않았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도요타 코리아, 일산 마두 대리점의 이창민 주임은, “국내 86오너들도 대부분이 86은 순정으로 타는 게 진리”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며 "국내 86오너들의 평가도 해외 오너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했다.
진정 출력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애당초 86을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는 고출력의 정의를 내려주는 차들은 무수히 많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AMG 라인업, 아우디의 RS 라인업, 스바루 WRX STi, 머스탱, 콜벳 등 300마력은 쉽게 넘기는 차들이 즐비해 있다. 심지어 국산 세단들도 요즘에는 300마력 언저리를 기웃거리고 있다.
그런데 완벽에 가까운 밸런스를 보여주는 차는 눈 씻고 찾아봐도 몇 대 없다. 아마도 혼다 S2000, 포르쉐 카이맨, 로터스 엘리스 정도 있을까. 이마저도 슬픈 것은 이 차들 중 대부분은 단종되거나, 후속버전은 점점 배기량이 커져가고 터보차저를 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도요타에서도 마력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수프라(Supra)의 후속을 야심차게 준비 중이다. 당신이 정말 마력을 원한다면 수프라를 사야 맞다. 86에게 마력을 요구하는 건, 햄버거 가게에 와서 공깃밥을 찾는 꼴이다.
▲도요타 86 /사진: 도요타
물 만난 고기처럼 코너를 헤엄치는 86
도요타 86은 코너에서 만들어졌다. 직선이 86이라는 생선에게 물 밖이라면, 코너는 86의 고향이자 물 속이다. 일단 86에 장착된 서스펜션만 봐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전륜에 맥퍼슨 스트럿을, 후륜에 더블위시본을 장착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고성능을 표방하는 스포츠 세단이라 할지라도 요즘 후륜에 토션빔(Torsion beam)을 장착한 경우가 태반이다. 그리고 멀티링크(multi-link)도 아니라 더블 위시본(Double wishbone)이라니. 그것도 후륜에. 최근 가격경쟁력을 위해 포르쉐의 하위그룹 차종도 더블위시본에서 맥퍼슨 스트럿으로 바꾸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엔트리급 후륜구동 차량에 더블 위시본을 사용했다는 것은 그만큼 86이 코너링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반증이다.
사실 코너라는 것은 바퀴를 단 자동차라는 짐승에게 편할 수만은 없는 곳이다. 꺾이지 않는 금속을 꺾여야하고 휘어야만 돌아 나가는 곳이 바로 코너가 아니던가. 그런데 86을 타는 동안 코너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분이 생소하게 다가왔다. 스티어링 휠을 이리저리 흔들면 이미 기자의 눈이 다음 코너를 찾고 있다. 그렇다고 86이 코너를 쉽게 상대한다는 것은 아니다.
랜서 에볼루션 X처럼 각종 전자장비(AYC: Active Yaw Control 등)가 운전자의 부족함을 채워주지 않는다. 랜서 에볼루션 X는 이제 갓 면허를 딴 초보자라도 코너에서는 최고의 레이서로 만들어준다. 그만큼 쉽다. 그런데 86은 운전자와 코너. 그 둘뿐이다. 운전자의 실력이 고스란히 투영되는 자동차다. 그것이 바로 매니아들이 환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86은 달릴수록, 함께 할수록 맛이 느껴지는 오래된 청바지와 같다. 내 몸의 일부이자 피부처럼 느껴지는 그런 청바지 말이다.
즐거운(?) 소식 2개
즐거운(?) 소식 두 개가 있다. 먼저 하나는 스바루의 튜닝 디비젼인 STi (Subaru Technica International)가 BRZ STi를 제작 중이다. BRZ는 도요타 86의 형제차로 스바루에서는 약간 세팅을 달리해 BRZ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중이다. 외신에 따르면 이 차량에는 터보를 장착해 고성능으로 다듬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86의 후속버전이다. 86이 출시한지 3년이 넘어가는 내년쯤 86의 페이스리프트(Facelift) 버전을 출시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이 차량에 터보차저를 장착한 엔진을 탑재할 것이 유력하다고 한다. 앞서 기자가 언급했던 스바루의 WRX 터보 엔진을 올릴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 결정에 대해 도요타 내부적으로는 반기지 않는다. 특히 기술진은 터보를 올리는 순간 논터보 엔진 특유의 아름다운 엔진노트(engine note: 엔진소리)가 나빠질 점을 우려하고 있다. 또한 최고 RPM도 지금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있어 이런 결정은 소비자들의 마력을 높여달라는 끝없는 요청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마력을 갈망했던 사람들에겐 이 두 소식은 모두 희소식이지만 86의 논터보 밸런스를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별로 반갑지 않은 부분이다. 86후속에 터보가 올라간다는 것은 완전히 확정된 사실은 아니기 때문에 실제 출시에 앞서 도요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도 지켜볼 일이다.
이미 86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반사이익을 볼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과거 혼다 S2000의 후속(AP2)이 최고 RPM을 낮췄을 때 그리고 BMW M5가 10기통 자연흡기(N/A)에서 8기통 트윈터보(F10)로 바꾸었을 때와 유사한 반응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두 차량이 후속출시이후 일부 매니아들은 구형 중고매물을 찾아 헤맸다. 더 높은 값을 주고서라도 오리지널이 고수했던 고RPM의 논터보 밸런스를 원했기 때문이다.
장점:
기계적 요소만 보자면 최고다. 단 정말 기계적 요소(복서엔진, 더블위시본, LSD 차동제한장치, 공기저항계수 등) 만 봐야한다. 수입차라는 이름으로 국내에서 살 수 있는 몇 안되는 수동차량.
단점:
기계적 요소를 빼면 다른 차를 사는 게 나을 것이다. 4천만 원이면 예쁘고 섹시한 차들이 꽤 있다. 웬만한 수입차에 기본 장착된 네비게이션도 86에는 없다.
총평:
출력에 목마름을 느낀다면, 86은 그 갈증을 해소시켜줄 수 없다. 그러나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미소를 짓게 만들고, 코너에 들어서면 이빨을 보이고 웃고 있을 것이다. 도요타와 스바루의 합작.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의 표본. 두 제작사가 가진 최고의 기술적 노하우가 녹아들었다. 외관과 내관은 뻔하고 볼품없다.
실용성은 아마도 국산 투 도어 쿠페가 더 나을 것이다. 그리고 가격은 웬만한 독일산 엔트리급 차종보다 비싼 4천만원대이다. 심지어 오토는 4천600만원대. 한국 도요타에 따르면 다른 도요타 모델과 달리 가격 에누리도 없고, 3개월이나 기다려야 하는 주문제작 차량이다.
한마디로 운전에 미친 사람에게는 최고의 선물, 자동주차의 기쁨을 아는 이에게는 최악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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