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y4194
10,000+ Views

긴히지 꽃잠각

꽃잠자라
9 Comments
Suggested
Recent
바람빠진 풍선같아도 뒤에서 모든것을 해결해 주는 남자
그런적도없어보이고.
@ekslflfl 그런남자
@pinenine 문란=긴상
@pozx 백수지만 정의롭지!!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급구! 저랑 같이 드로잉 그룹 하실 빙글러 괌! (0/00)
안녕하세요 여러분! ! 이렇게 개인적인 카드는 처음 적어보네요 :) 평소 일러스트와 예술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사진예술이나 일러스트레이션에 작품과 작가님을 소개하는 글을 종종 쓰고는 해요 *_* 멋진 그림과 사진을 보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슥-슥- 혼자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요! (물론 재료도 지식도 딱히 없어서 간단한 라인 드로잉이지만요 . . ) 어제 그려본 드로잉입니다 +_+ 너무 허접해서 부끄럽네요 . . 그런데 혼자 그냥 그림을 그리려니까 뭔가 동기부여도 안되고 나태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ㅠ_ㅠ 그래서 그래서요.... 혹시 저와 드로잉 그룹을 함께 하실 빙글러를 구합니다 :) 뭔가 드로잉 그룹이라고 하니 멋져 보이는데 그냥 일주일에 3-4일 정도 서로 주제를 정해서 드로잉을 하고, 공유하는 그룹을 생각하고 있어요 *_* 서로 으쌰으쌰 응원도 하고, 다양한 스타일을 만날 수 있으니 동기부여도 되고! 꾸준히 드로잉을 하다보면 그림 실력도 UP UP! 이거 완전 일석이조 아닌가요오 ㅋㅋㅋㅋㅋㅋ 아무도 지원하지 않을까 걱정이 많이 되지만 . . ㅠㅠ 실력은 정말 중요하지 않은 점 알고 계시죠?! 이 세상에 똥손이란건 존재하지 않는다구욧 ㅎ_ㅎ 그림에 관심있는 빙글러 여러분들 저와 소소한 그림모임 어떠신가요? 제발 제발 제발 저와 함께 해주세요 ㅠㅠㅠㅠ 관심있으신 분들은 댓글을 달아주세요 :) ⬇️⬇️⬇️⬇️⬇️ 톡방에서 함께 얘기하며 어떻게 드로잉 그룹을 운영할지 함께 얘기 나눠봐도 좋을 것 같아요♥︎
원소 본초 (袁紹 本初) A.D.154? ~ 202
"역사는 승자의 편이다." 저 말을 저승에서 1,815년간 느끼며 이승을 내려다 봤을 인물.. 삼국지연의 속 무능하고 우유부단하다 망한 찌질이로 그려진, 그러나 실제는 전혀 절대 그러지 않았던 안타까운 거물, "원소"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오히려 수혜자를 꼽는 게 빠를만큼 피해자들이 범람하는데, 물론 작가인 나관중의 소설적 재미를 위한 각색도 적잖았지만 나관중이 수집한 여러 민담과 구전들 속에도 그런 사례들이 많다보니 꼭 나관중만의 가해라고는 볼 수 없으나... 아무튼 나관중이 저승으로 가자 멱살잡이 하고자 늘어선 줄의 앞열에 섰을 인물이 또 원소다. 그럼 왜 원소가 억울한지, 본래 역사속의 그는 어땠는지를 살펴보자. 참고로 오늘은 유독 지루하고 길지 모르며, 원소는 그의 역사적 자취 등에 비해 인기나 네임밸류가 현세에서 그닥이다보니 삽화도 그리 많지 않아서 첨부이미지를 많이 못 구했고, 그래서 글이 더 길다보니 오늘은 좀 더 평소보다 길게 느껴질 듯 싶어 양해를...T-T 전에 댓글보니 몇몇분들이 지루해도 좋으니 길게길게 써달라셨는데 이번 칼럼 재미없어도 내 탓 아니고 다 그분들 탓이당ㅎㅎ 삼국지연의 꽤 초반부터 등장하는 네임드군주이며, 삼국의 건국자 중 가장 그레이트한 조조의 생애에서 유비나 손권 등등들을 제치고 가장 위협적이던 라이벌이였다. 비록 조조가 자신일생 가장 큰 군세를 동원했고 또 날렸던 적벽대전이 있지만, 조조는 적벽의 패전으로 인한 데미지로 위의 기반이 흔들린 것은 아니였으나.. 원소와의 관도대전은 비록 승리했을지언정, 전쟁이 이어지는 하루하루를 패망의 기로에서 스트레스 받았고 모든 걸 던진 혼신의 사투 끝에 승리했다. 그만큼 굉장했던 원소는 "얼자(孼子)"였다. '얼자'가 뭐냐? 여러분들 '서자'는 들어봤지?(사극에서 하도 많이 나오니) 알기 쉽게, 여러분들의 거의 대부분은 여러분 아빠의 첫째(이자 유일한) 아내의 자식들일텐데 그럼 '적자'다. (그리고 여러분들 존재 자체가 부모님들께 적자) 아빠의 둘째(또는 그 이하 순) 아내, 즉 첩의 자식이 '서자'. (서자의 대표적 아이콘으로는 홍길동이 있지.) 그럼 얼자는 뭐냐면, 둘째나 셋째 아내가 아닌... "여자노비의 아들"놈새끼가 바로 얼자다. 여자노비, 다시 말해 여종의 아들이라는건데... 노비도 천한 마당에 노비아들인들 어떻겠나. .. 삼국지연의에서 원소를 표현할 때 "사대삼공의 가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이는 원소의 고조부부터 원소의 부친까지 4대가 모두 삼공에 속하는 "사도(司徒), 사마(司馬), 사공(司空)" 벼슬을 했다는 소리. 요즘에 비유하면 고조부부터 부친까지 4대가 국무총리, 국방부장관, 경제부장관 등을 역임했다는 말이다. 참고로 사도는 정치와 행정전반, 사마는 군사, 사공은 국가전체의 각종 토목건축 등을 맡는 자리였기에, 사공은 지금으로 치면 국토교통부지만 현세 헬조선의 국교부와 후한의 그것의 위신차는 넘사벽이였기에 사공은 지금으로치면 국토교통부 + 산업통상자원부 + 행정자치부를 합친 것 이상의 자리였다고 보면 될 듯 싶다. 아무튼 원가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못할 어마무시한 명문가였고, 저런 배경지식 없이 사대삼공이라면 의례, '그냥 좀 사는 집 아들인갑네~' 했을 원소는 금수저를 넘어 플래티늄과 다이아도 부족.. 거의 비브라늄수저로 표현된 것이였다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숟가락, 젓가락 이상 무거운 건 안들어봤고 한 번 입은 옷은 안입고, 맨날 파티나 여는 패리스 힐튼스러운 삶을 살았을 거 같지만.... 그건 위에서 언급한 적자~서자일 때고, 원소는 말 그대로 '얼자'여서 어릴 때는 그냥 결국 노비나 진배없는 개같은 어린시절 보냈다. 고향은 현 중국 허난성 뤄양시, 당시 후한의 수도인 "낙양". 집안이 집안이니만큼 응당 수도이자 최대도시태생인 차도남 원소는 출생이 154년이란 설이 지배적이지만, 명확친 않은데, 이유는 앞서 언급한대로 노비의 아들인지라... 저런 초명문가에 노비가 한 둘이였겠으며, 그런 노비들의 출산까지 디테일하게 카운팅은 않다보니 사망일은 202년 6월 28일이란 정확한 기록이 있지만 출생일은 그렇지가 못 하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원소의 부친은 삼남이였는데 장,차남이 요절.. 원소의 부친도 적자는 커녕 서자도 없었던 모양인지 원소는 얼자인데도 청년기부터는 종손대접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저건 후한서 본문 내용이고 배송지의 주석에 의하면 원소의 부친이 차남이라 부친과 그 위 장남이 요절하여 종손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몰랑~ 하여간 야망큰 원소에게 자신의 출신은 크나큰 핸디캡이 아닐 수 없었고, 이걸 좀 타개해 보고자 원소는 부친의 정부인이 사망하자 "3년상"을 치른다... (친엄마가 아닌데도) 3년상이 무엇인고 하니, 논어(맞나?)에 의하면, 아기가 태어나 부모의 일방적 보살핌을 벗어나 스스로 걷고 먹고 말하고 하는데까지 3년이 걸리기에 부모가 돌아가시면 그걸 기려 부모의 묘를 3년간 지키며 술,고기를 입에 대지 않고 부모묘소에 삼시세끼 차려 올리고 절하며 상복을 입고 지내는건데.. 써놓고보니 뭔가 간단해 보이지만, 극도의 멘탈과 체력을 요하는 고행의 길이였다고 한다. 다 치우고 조선의 12대 왕 인종이 부친의 3년상을 치르다 거식증에 의한 영양실조와 과로 등으로 붕어하셨으니 3년상의 난이도가 짐작된다. 왕도 저럴진데, 하물며 일반백성들은 오죽할까... 3년상치르다 아들이 지쳐죽고 그 아들이 다시 3년상하다 또 지쳐죽어 대가 끊기는, 무엇을 위한 3년상인지 싶은 일이 없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튼 원소는 자기 부친의 정실인 적모의 3년상 후, 연이어 자기가 기억도 못할 어린시절 돌아가신 부친의 상을 너무 어릴 때라 제대로 못 치렀다며 다시 3년상을 치뤄, 총 "6년상"을 치른다.... (48년 살았으면서 인생의 8분의 1을 상 치르는데 씀;;;) 당시 저 6년상은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였다. 위에 기술했듯 워낙에 3년상이 고되다보니 실상 제대로 3년상을 하는 이가 손 꼽던 시절에, 하드코어 3년상을 FM대로만 해도 굉장한데, 어린시절 돌아가셔 못 챙긴 부친 3년상까지 굳이 치뤄 총 6년상을 지낸 울트라효자! 게다가 적자도 아닌 얼자에 심지어 엄마는 친모도 아닌데! 그것도 얼자일지언정 종손대우 받는 명가의 자제가! 역사가들의 추측으로는 저 6년상은 그냥 원소가 개효자라 그런게 아닌, 자신의 얼자컴플렉스를 벗기 위한 6년의 몸빵투자로 보며, 원소의 계산은 적중! 상 치르는 6년간 온갖 전국의 유력인사들은 3년상, 6년상 치르는 그 대단한 명가자제가 궁금하다며 묘역일대가 마비될만큼 모여들었다고 하며, 6년상을 치르며 원소의 인적네트워크와 명성은 만렙을 찍게 된다. 지긋지긋한 6년상 마친 후, 바로 낙양으로 달려간 그는 당시 조정실세인 십상시도 겁내지 않고 자기 목소리내며 세력을 모으다 대장군 하진의 라인을 타고 관직에 나갔고 십상시축출을 주장하며 당시 십상시무리와 함께 조정실권 양대산맥이던 하진세력의 명실상부 No.2가 된다. 원소주도로 이루어지던 십상시실각 프로젝트 와중에 위기 느낀 십상시는 하진을 암살하는 무리수를 두게 되고 이를 계기로 원소는 십상시 및 친십상시세력을 올킬하나 동탁에게 천자의 신변을 빼앗겨 정권장악에는 실패... 이후 당시 천자인 영제를 폐위 후, 외척이 없어 다루기 쉬울 진류왕(헌제)을 제위에 올리려는 동탁과의 마찰이 생기자 기주로 달아났고, 이때부터 우리가 아는 "기주의 원소"가 된 것이다. 일단 기주의 발해군으로 도망은 왔지만 낙양에서 나고 자란 네이티브 낙양지앵 원소는 기주에 아무런 연고도 없었고, 원소를 감시할 요량으로 동탁이 파견한 기주태수 한복은 매의 눈으로 원소를 살피며 겐세이의 연속이였다. 삼국지연의나 게임만 한 분들은 삼국지 시나리오 초기에 등장하는 약소군주 한복이 사실 원소의 상급자였다는거 잘 모르셨을 듯ㅎ 허나 동탁도 개의치않던 원소인지라 한복을 개량한복 취급해 버리며 그간 쌓은 명성을 이용해 인재와 군사를 모으는 한편, '개객끼 동탁을 다구리 놓자'며 전국으로 격문을 띄웠고 18로의 제후들이 모여 이것이 바로 "반동탁 연합군"이였는데, 면전에서 개기다 튀었어도 한 번 달래보려 오히려 벼슬도 줬건만, 그 벼슬을 지렛대로 오히려 자신에게 덤빌 세를 모으자 딥빡친 동탁은 낙양에 있는 원씨일족을 싹 다 올킬... 물론, 원소는 이를 예측 못 했을리 없음에도 반동탁연합을 주도한 것을 보면 자신의 목적과 야망을 위해서라면 거칠것없는 냉혈한임을 알 수 있고 앞서 언급한 6년상도 역시 목적이 아닌 수단이였음을 알 수 있다. 원소는 사대삼공의 명문가 공자 + 6년상 지낸 슈퍼효자 + 그간 쌓은 인적네트워크 + 슈퍼빌런 동탁에게 덤빈 용자 + 하진세력의 No.2 + 18로 제후의 응집자 등등의 온갖 버프덕에 만장일치로 반동탁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 추대되었으며 민심 또한 대의를 위하려다 일가친족을 모두 잃은 동정표까지 더해져 원소의 동탁 향한 원기옥에 힘을 실어줬고, 원소는 이런 위세를 등에 업고 반동탁을 넘어.. 정권교체를 시도했다. 당시 동탁이 영제를 폐위하고 즉위시킨 9살의 헌제는 동탁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며 한황실 또한 그런 동탁과 헌제의 명분없는 괴뢰정부라 정통성을 인정 못 하니 그 무렵 상당한 인망을 얻고 있던 황족인 "유우"를 천자로 추대하여 새로운 정권을 만들려는 것이 그것이였다. 물론, 원소라고 순수한 의도는 아니였고... 비록 덕망은 높으나 정치,군사적으로는 무능에 가까웠던 유우를 옹립해 프랜차이즈화하여 자신이 후한이라는 판을 자신 위주로 다시 짜려는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 이미 중국 전역에서도 동탁의 폭정은 뉴스와 인터넷이 없는 시절임에도 자자했고 그런 동탁이 멋대로 골라 앉힌 헌제와 그의 한황실도 정통성같은건 없다시피 했다. 그러나 다들 별 대응책 못 찾던 터에 원소는 누구보다 먼저 대세를 뒤집어 볼 공격적 전략을 시도했던 터였는데, 원소 & 유우와는 상극이던 공손찬과 역시 자기 위주 아니면 다 싫고 같은 집안 얼자새끼가 나대는 것에 아니꼽던 원술, 아직 이때만 해도 한황실에 대한 충심이 남아있던 조조 등..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고, 다 떠나서 정작 당사자 유우가 적극 거부하여 끝내 무산. 유우는 진정 대인배답게 한황실에 대한 도리와 예를 져버릴 수 없다며 오히려 원소에게 황실에 대한 진심의 충성을 권유 하는 등...... 아무튼 원소의 플랜A는 이렇게 나가리. 그 후 동상이몽의 교과서와도 같던 18로 제후들의 반동탁 연합이 용두사미가 되어 근거지인 발해로 컴백한 원소는 거슬리던 한복의 기주를 따먹고 본격적인 하북강자의 포지션을 향해 나아갔으며, 원소의 모사진들 중 핵심인재인 전풍과 저수도 이 때 한복의 수하에서, 원소측으로 넘어오게 된다. 당시 하북의 초강자는 "공손찬"이였는데, 공손찬은 정말 여러분들이 단순 연의만 읽어 아는 그런 양반이 아닌 진짜 굉장한 강자로... 황건의 잔당, 오환, 흉노 할 거 없이 공손찬이 이끄는 기마군단이 지나가면 시체월드가 되었고 30여 만의 황건잔당들을 단 2만의 기병대로 지워버리는 일도 있을 정도였다. 이런 강려크한 공손찬을 끝내 꺾고 세력을 키워가는 와중... 원소에게 큰 호기가 있었는데 바로 "동탁의 사망". 당시 원소측 참모진에서는 동탁 사후 장안을 탈출, 낙양으로 돌아가던 헌제를 옹립하자는 의견이 강하게 나왔었다. 하지만 원소는 이미 헌제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다른 황족으로 천자를 갈아치우려던 이라 거부.... 이후, 헌제를 끼고 국정농단으로 엄청난 실익을 챙기는 조조를 보면 저 당시 원소의 판단이 이해가 안가지만 원소로서는 헌제를 옹립못할 조조와는 다른 사정이 있던게, 당시 조조의 측근들은 대개 조조의 어린시절부터 따르던 이들, 또는 조가와 하후가의 친족들이며 조조의 근거지는 조조가 나고 자란 곳이 가까워, 헌제를 옹립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원소는 달랐다. 일단 근거지인 기주는 원소의 아무 연고도 없던 곳이였고 동탁에 의해 원가 대부분이 멸살 당해 측근들 중 친족도 거의 없는데다 원소세력의 주요인사들은 아직 완전히 원소에게 녹아들지 않은 기주나 여타 지역 출신들이 많은터라... 괜히 헌제 데려왔더니 씨부랄 지는 원소가 아닌 한의 신하라느니, 한황실에 충성한다느니 이지랄들 해버리며 기주 내부에 원소파 VS 헌제파 이래 버리면 난감의 정점을 찍을 게 자명했기 때문. 심지어 원소가 그간 큰 명분 얻은 이유 역시 반동탁의 수장이였기 때문인데, 이제 와서 반동탁 오야가 그 동탁이 앉혀놓고 굴려 먹던 천자를 모신다면 그야말로 가오 날아가는 일인지라, 그간의 명분이 죄 박살나기 때문. 더구나.... 충격인 것은 원소는 애초에 플랜A로 유우의 천자추대가 나가리되자 플랜B로 여차하면 눈치봐서 자신이 제위에 오를 야심을 갖고 있던 자였기에 여러모로 헌제옹립은 원소로서는 택할래 택할 수 없는 길. 결국 헌제 옹립 이후부터 황실의 권위와 정통성 등에 업고 파죽지세로 세력 키우던 조조와 유, 병, 기, 청주를 토대로 하북의 기반을 확고히 한 원소는 피할 수 없는 결전을 벌이게 되는데, 원소는 천자를 등에 업은 조조를 상대하자니 이래저래 불리할 수 밖에 없었으나 오히려 이를 역이용! 조조를 도리여 천자를 억압하고 핍박하는 역적이란 타이틀을 붙이고 여기에 환관의 자제라는 조조의 핸디캡을 버무린 프로파간다로 조조를 맹비난 하는데, 이는 황실의 정통성을 짊어진 자를 그러지 못한 자가 오히려 역명분 갖고 공격하는 패러다임이 되었으며 원소 사후 유비도 이 스타일을 고스란히 이어 받아 써먹는다. 게다가 실제로 조조는 헌제 옹립 당시.... 이미 황실과 한에 대한 충심은 엿바꿔 먹은지 오래라 헌제를 '도구'로만 인식하여 단물을 빼먹던 터였기에 원소의 이 정치적 공세는 유효타를 냈다. 게다가 당시 원소의 하북 4주에서 징집된 11여 만의 대병력은 당시 전 중국 통틀어 최대병력이였고 이에 맞선 조조군 총병력은 4~5만 여에 그쳐 전력차는 명백! 참고로 그 당시 인구는 오히려 조조의 통치지역이 원소 통치지역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고 한다. 다만 조조의 지역은 동탁 → 이각 & 곽사로 이어지는 폭정과 숱한 전란으로 안정화가 안된 반면... 원소의 지역은 비교적 일찍 큰 내부적 전란없이 행정적 안정이 되어 조조의 배 이상 많은 병력을 뽑아낼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관도대전 앞서 원소군 최고의 행운은 "유비"의 합류였는데, 그때의 유비 자체는 이끄는 병력도 몇 없는 잡몹 수준이였으나... 헌제의 밀명에 동승의 주도로 조조를 제끼려다 실패한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유비의 합류는 천자가 없음에도 오히려 천자옹립의 조조보다 더 큰 명분을 가질 수 있게 해줬다. 확실히 병력과 물자, 명분면에서 크게 앞서던 원소였지만 전풍, 저수, 신평, 곽도, 심배, 봉기, 허유 등 원소의 참모진들은 개개인의 면모들은 화려하나 서로 자기가 공 잡으면 슛 쏠라 드는 올스타전 멤버같은 구성이였기에 전혀 융화가 없었고 조조와의 대결구도 또한 서로 자기 마음대로 굴려 드니 이미 이때부터 슬슬 망타의 조짐은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원소군의 주력 장수는 안량과 문추 그리고 순우경같은... 무력은 굉장해도 전략기재는 집에 놔두고 온 장수들이라 역시 좋지 못 했다고 본다. 결국 관도대전에서 조조에게 병력의 8할 가까이를 잃고 기주로 돌아와서는 강한 반전론자로서, 전쟁 전부터 재수없는 소리한다며 원소가 투옥시킨 기주 최고의 책사 전풍을 죽인다. 그런데 이건 그냥 빡침의 화풀이가 아니였고... 자신이 큰 전쟁에 패했고 이에 앞서 기주출신의 큰 호족이자 명망 있던 책사가 반전론을 펼쳤다면, 패전 후 그를 주축으로 한 기주파의 세력강화는 막을 길이 없어 세력 내부의 파벌형성 및 군주의 지위약화를 초래하기 때문이였다. 연의 속에서의 충분한 전후정황설명이 없는 경우도 많고 여러모로 조조 띄우기를 위한 폄하가 많아 그렇지, 원소는 삼국지 등장인물들 중 최고의 정치고수였고 상당히 정치공학적인 판단력이 뛰어난 군주였다. 워낙 코에이의 삼국지에 길들여지다보니 "정치"라는 부분의 정의가 왜곡될 수 있는데, 이를테면 게임내에서의 '정치'의 능력치는 엄밀히 말해 '행정능력'을 말한다. 주어진 과제를 해결함에 있어 다양하고 확실한 방침을 정하고 그에 따른 기준과 시스템을 만들어 업무를 처리하는 그런 부분들을 삼국지 게임에서는 정치라고 표현 해놨다.. 하지만 진짜 정치란, 국회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것들... 상대를 이기고자, 상대를 설득하거나 상대와 타협하고자 몇 수 뒤를 가늠하고 내 이득을 취하거나 손해를 줄이고자 다양한 상황들과 대인관계를 교차계산하는 복잡한 함수를 푸는 과정이 바로 진짜 정치다. 원소는 이 부분에 있어 일말의 감정도 도덕도 양심도 없이 오로지 철저히 정치공학적인 판단을 우선하는 정치기계로, 그런 자신의 정치적 목적 달성 위한 요소들인 외모, 언변, 쇼맨쉽 등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예컨데 원소는 저 첨부삽화들처럼 전장이건 어디건 갑옷에 투구를 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차피 거대한 군세의 지도자인만큼 본인이 직접 화살 피하고 칼로 적을 벨 일은 없기도 했지만... 자신의 위엄을 뽐내고자 화려한 옷과 관으로 치장했다고 한다. 요샛말로 상당한 간지가 흐르는 멋진 외모였다고 하며, 말투나 눈빛의 카리스마가 대단했다고 한다. 원소의 패인들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바로 "후계자 문제"였는데... 원소는 사치와 허세가 심하고 난폭한 장남 원담보다 외모가 수려하고 실속있는 성격의 셋째 원상을 총애했다. 그래서 원담은 청주로 보내고 원상은 늘 자신의 곁에 두고 사실상의 후계자수업을 했는데... 이를 두고 저수는 원담을 청주로 보내는건 재앙의 시작이라 경고했을 정도였고, 결국 저수 말대로 되었다. 원담은 청주로 내려감과 동시에 사실상 독자세력이 되어 원소의 지시에 제대로 따르지 않았고 아끼는 원상은 당시 아직 미성년이라 많이 어설펐다. 원소 사후, 밉보였으나 장성한 장남인 원담 지지파와 아직 어리고 삼남이지만 원소가 후계로 정한 원상 지지파로 원소세력은 분열된다. 그 다음 패인은 "2인자의 부재"였다. 원소는 아들들과 병주를 맡긴 조카 고간을 제외하면 친족도 없었고 책사그룹내에서 가장 유력인사들인 전풍과 저수와는 노선도 많이 다른데다 기주외인이였던 본인과 달리 오래전부터 기주에서 터줏대감이던 둘을 굉장히 경계하여 그 둘을 견제코자 다른 책사들에게 무게를 배분하고자 했는데 이게 부작용나며 원소의 책사들은 삼국지를 통틀어 한 군주 휘하의 가장 단결 안되는 책사그룹이 되었다. 놀랍게도 위의 정치적 판단과 외모 및 쇼맨쉽 덕인지 관할영지 내에서의 백성들과 군사들의 원소를 향한 우러름은 대단했다. 원소가 죽자 기,청,유,병주의 수 많은 백성들이 눈물바다 이루고 원소의 장례를 손수 지내는 이들도 적잖았다고 한다. 그리고 원소의 사망 후에도 원소의 세력은 흩어지지 않고 원소의 아들들을 따라 조조에 끝까지 항거하다 세 아들이 죽고 나서야 온전히 조조에게 편입되었다. 참고로 원소는 관도대전 이후 크나큰 상실감을 앓다 죽었는데, 사망당시의 여러 정황들을 보아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 쇼크사로 보여진다. 장단점과 그의 일대기 등을 통틀어 볼 때 절대 우유부단한 이가 아니였고 리더쉽과 카리스마, 결단력이 대단했고 정치적 술수가 엄청났던 조조 이상의 간웅이며 야망가였다. 철저한 자신의 1인 독재체제 구축과 다양한 수단을 활용한 백성들과 타세력 대한 선전활동 등... 지금으로 치면 구소련의 스탈린이나 현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과 여러모로 스타일이 비슷했다.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2.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삼국지를 보다 쉽고 재미지게 접하는데 도움을 줄만한 팁들을 준비해 봤다. 삼국지를 아직 읽지 않았다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고 이미 읽어본 분들 역시 한결 넓게 바라볼 수 있게끔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2 Start!! 1. 무기. 삼국지연의 속 장수들은 저마다의 무기들을 쓰고 이 무기들은 곧 그 유져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분신의 역할을 하기도 하며, 정말 다양한 무기들이 등장한다. 관우의 청룡언월도, 장비의 장팔사모, 손견의 고정도, 전위의 쌍철극, 여포의 방천화극, 정보의 철등사모, 기령의 삼첨도, 서황의 개산대부, 황개의 철편, 유비의 자웅일대검 등등.. 열거하기 귀찮을만큼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숱한 무기들 중의 대다수는 당시에 실존하지 않았던 것들. 대표적인게 관우의 트레이드 마크인 "청룡언월도". 먼저, '도(刀)'는 한쪽만 날이 있는 칼, '검(劍)'은 양쪽 모두 날이 있는 칼을 뜻한다. '청룡도'는 너비가 넓은 도를 일컫는 말이며, '언월도'는 '월도'라고도 했는데 이는 긴 자루가 달린 도를 일컫는다. 고로, '청룡도 + 언월도 = 청룡언월도'라 함은 긴 자루 달린 청룡도를 말한다. 너비가 넓다보니 일정 수준 이상 부피가 있던 무기인 청룡언월도는 대체로 일반 도검들에 비해 중량이 좀 나가는 무기였고, 찌르기보다 베기용이긴 했다만.. 날카로움으로 벤다기 보다는 무게로 내리찍는 용도의 무기였다. 왜냐하면 당시의 제철수준으로 큰 월도를 날카롭게 제련하는 기술력의 한계가 있었고, 설령 내가 쓰는 질레트 마하3 면도기날처럼 어찌어찌 날카롭게 만들었다 한들... 몇 번만 쓰면 금새 날이 무뎌지기 마련. 게다가 날카로우려면 단면이 얇아야 하고 또 얇게 만들다보면 그만큼 가벼워지니 살상력이 떨어진다. 쉽게 말해, 청룡언월도에 맞으면 영화나 만화처럼 '뎅겅~'하고 썰리는게 아니라, 짓뭉개지며 박살이 나는건데, 심지어 연의에서의 묘사에 의하면 관우가 썼다는 청룡언월도의 무게는 무려 "82근"! 혹자는 한대의 한 근은 지금의 한 근보다 가벼워, 당시의 여든 두 근은 대략 18kg쯤이라고 하는데, 나관중이 명나라 사람이라 명대의 도량형으로 설명 했기에 청룡언월도의 무게는 48kg이 맞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무기 + 그 무기 휘두를 덩치 + 갑옷 + 안장 + 마갑 = 어림잡아도 230kg을 넘어가는데 그럼 말은 도대체 무슨 죄인가? 더구나 아무리 장사여도 저 중량의 무기를 휘두르기 위해 마상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데, 그 시대에는 말 타며 균형 잡고자 발을 거는 등자가 몹시 어설퍼, 제 기능 발현이 어렵던 시기였다. 일단 송나라 때에나 등장한 청룡언월도를 관우가 썼을 리 없고 정사기록에 "관우가 안량을 찌른 후 목을 베었다"라는 구절을 볼 때, 관우는 '삭'으로 불리는, 당시 기병의 보편적 주무장인 찌르기용 창을 썼다고 본다. 그리고 '여든 두 근'이란 표현도 실제 측량무게가 아닌 관우의 파워의 대단함을 묘사키 위한 나관중의 중국인 종특인 과장의 산물이다. 소설과 인물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부여된 일종의 아이템같은 개념이였던 것이다. 장비의 "장팔사모" 역시, 지금 추산 시 5m가량의 기나긴 창으로 묘사되지만 한대에는 그런 긴 창은 쓰지도 않았거니와 동서양 역사에서의 그런 길고 긴 창은 보병의 대기병전용 무장이였지, 말 위에서 휘두르기는 너무 불편한 무기였다. 당시의 백병전은 인정사정 없었고 사소한 실수, 작은 삑사리 하나로 장애인이 되거나 바로 요단강에 발을 담그는 리스크가 될 수 있기에... 여든 두 근 청룡도니, 한 장 여덟 척 장팔사모니 하는 후까시용 무기보다는 그저 실용적이고 쓰기 편한 무기가 답이였다. 여포의 방천화극 또한 그 "방천화극" 자체가 역시 청룡언월도와 마찬가지로 송나라 중엽에서야 등장하는 무기였기에 픽션이며 그냥 찌르기용 '극'을 쓴 것으로 보여진다. 삼국지 등장 장수의 거의 8할이 "찌르기용 창"을 실제로 썼는데, 이는 '베기'보다 '찌르기'가 더욱 적은 에너지와 운동각으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기에 체력소모와 한 번 움직임에서 다음 움직임 까지의 인터벌을 최소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베는 창을 쓸 경우, 창을 더욱 높이, 크게 휘둘러야 상대에게 치명상 입힐 수 있는 반면... 빗나갈 경우 오히려 상대에게 역관광을 당하기 제격이다. 그렇다고 적은 각도로 움직이면 운동에너지나 원심력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 상대에게 그만큼 데미지를 많이 주지 못 한다. 놀랍게도 "쌍철극"의 경우, 정사에 전위가 80근의 쌍철극을 휘둘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는 그 당시의 사료이므로 한대의 도량형에 따라 지금 기준 약 16~18kg가량의 무기가 맞다. 2. 일기토. 일본어의 "잇키우치(いっきうち, 一騎討ち)"에서 한자어인 '一騎討'만을 우리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기마무사간의 1vs1 대결을 의미한다. 사실 한, 중에서는 거의 안쓰는 한자어인데, 국내에서는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 탓에 1대1 결투의 일반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정말 숱하게 등장하는게 바로 저 일기토이지만... 놀랍게도 실제 역사기록에 의하면 삼국시대에 일기토 기록은 열 손 이내 밖에 없다. 192년 "여포 VS 곽사" (장안) 놀랍게도 곽사가 먼저 결투 신청. 그럼 그렇지, 여포의 창에 맞고 죽기 직전에 부하들이 곽사 구출. 196년 "손책 VS 태사자" (곡아) 말 타고 싸우던 중 손책이 태사자의 말을 찌르고 (나쁜새끼), 태사자의 창을 빼앗자, 태사자는 낙마하며 손책쪽으로 넘어지며 손책의 투구를 슈킹. 196년 "학맹 VS 조성" (하비) 여포에게 반기를 든 학맹과 조성이 싸우던 중 고순이 나타나 학맹을 죽임.(읭?) 196년 "마초 VS 염행" (서량) 그 천하의 마초가 염행의 창에 찔려 죽을 위기 맞음. 단, 당시의 마초는 만 19세로 아직은 경험미숙.. 200년 "관우 VS 안량" (백마) 추후 관우편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음. 202년 "방덕 VS 곽원" (평양) 방덕이 당시 난전 중에 적병을 그냥 막 죽이던 와중에 곽원도 섞여 죽음.(이건 좀...;;) 208년 "여몽 VS 진취" (강하) 유표군과 싸울 당시 선봉이던 여몽이 적 수비대장 진취와 맞서 싸움. 2011년 "김형수 팀장 VS 이민형 과장" (백림호프) 만취한 이과장이 김팀장에게 반말로 도발하자 이에 격한 김팀장이 숟가락 볼록면으로 이과장의 정수리를 갈겨 단 일 합에 이과장을 처단. 사실, 일기토 자체가 성사 쉽지 않을 수 밖에 없는게, 저건 보는 사람이나 재미있지... 당사자들로서는 자신 뒤의 수 많은 군세의 기세를 책임진 상태에서 사소한 실수 하나로 자기 목숨은 물론, 전술적 승패를 갈음 짓는 1대 1 대결은 실로 무모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기고 있거나 우세한 군세의 우두머리가 이겨도 본전에 지면 그야말로 대참극의 아비규환을 불러올지 모를 그딴 제안에 응할 리가 없다. 그럼 상대가 응하지 않는데 홀로 싸울 수도 없다. 그리고 어지간한 급의 장수들은 영화나 만화처럼 행군 중이나 군사들간 대치 상황에서 가장 맨 앞에 나와 보란듯이 있지 않았다. 그럴 경우, 상대방의 활에 의한 저격에 피격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 물론, 장수의 화려한 차림새나 그 주위의 대장기를 든 호위대 등으로 분명 눈에는 띄었을 것이나, 가장 선두에 다 보란듯이 나와 있진 않았다고 한다. 솔직히 이게 뭐라고 쓰는데 두 시간 걸린다는.... 쓰고 나면 지치지만 여러분들이 주시는 관심 가득한 피드백들이 그런 피로를 잊게 해줍니다ㅎ 연재가 더디긴 해도 심도깊은 내용으로 차차 다룰 소재들이 매우 많으니 인내를 갖고 기다려 주시길 양해 바라며 타인을 비방하거나 불쾌히 만들 댓글은 자제 부탁 드려요. 궁금하신 점 등은 댓글로 문의 주시면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답변 드리고 있습니다! 주관적 견해를 바탕으로 한 논쟁은 도돌이표인 경우가 많고 감정만 상하기 부지기수라 응하지 않습니다. 역사와 삼국지라는 다소 고루하며 남성적인 소제를 다룸에도 예상외로 적잖은 분들의 관심과 기대에 늘 고마움 갖고 정성껏 쓰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하후돈 원양 (夏侯惇 元讓) A.D.? ~ 220
이 칼럼에서 앞서 다뤄진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나아가 삼국지연의에서 등장한 인물들이 대부분, 본래의 생애와 인물됨이 평가절하 내지는 너프를 잔뜩 받거나 또는 버프를 이빠시 받은데 비해... 버프or너프를 떠나 그 실제와 소설 속의 이미지 차이가 확연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오늘의 주인공인 "하후돈"이다. 오늘날 중국 안휘성 보저우시인 "패국 초현" 출신이며 조조와 동향이고 여기는 당시 서주의 소패 인근인데, 그때의 이 곳은 전한의 수도였던 장안과 후한의 수도인 낙양, 그리고 업과 허창과 함께 후한의 5대 도시 중의 하나인 꽤나 잘 나가는 동네였다. 도시남자 하후돈은 어려서부터 터프가이의 싹수를 뽐내며 자란 대개의 무장들과 다르게 어린시절부터 학문을 배우던 나름 곱상한 유년~청소년기를 보냈고 대체로 학당에 나가 공부하고 교육받던 당시의 학생들과 달리 집으로 스승을 모셔 배우는 '과외'를 받았다는 사실을 보면 은근 좀 사는 집 아들이였던거 같다. 하기사, 파탄에 가까운 후한 말의 배곯는게 일상인 여느 백성들에게 교육이 사치였던 시절, 공부를 했다는 자체가 중산층 이상은 되었다는 반증.(올~~) 그러던 돈이가 14세 때.... 어떤 이가 그의 스승을 하후돈 앞에서 모욕하자, 그 자리에서 패죽였다는 기록을 보건데 단순 중2병을 넘어 이미 그 나이 때부터 완력도, 의기도 남달랐던 슈퍼청소년이였던거 같다. 지금 만약 어떤 중학생이 누가 지네 담임 흉본다고 그 사람을 때려 죽이면 바로 소년원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하후돈이 강직하다며 사람들이 그의 의로움을 칭찬한걸 보면..... 진짜 후한 말 중국이 개판은 개판이였던 모양.ㅋ 어릴 때부터 조조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체구가 작고 근력도 그냥저냥이던 조조의 주먹 노릇을 했던 하후돈은 그 시절부터 죽는 순간까지도 조조가 거느렸던 숱한 인물들 중 가장 드높은 충성을 바친 맹목적인 조조빠였고 조조 역시 자기 휘하의 문무에서 날고 기던 무수한 쫄자들 중 하후돈을 가장 아꼈기에 그런 하후돈은 그래서인지 항상 본인의 능력 이상의 직위와 직책을 맡았었다. 연의에서는 물불 안가리고 무예와 용맹이 대단하여 조조세력의 초창기, 전투에 앞장서는 맹장으로 그려지나 사료에는 그의 군공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심지어 여포가 활개치던 시절에는 조조와 여포의 전투에서 여포군의 사항계에 속아 인질로 잡히는 수모까지 겪었는데, 하후돈을 득템하여 몸값을 요구하던 적들에게 당시 조조휘하의 '한호'라는 하후돈의 부장이 협상 그런거 없이 인질범들을 그대로 공격했고 하후돈은 그 혼란을 틈타 탈출하여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ㅋㅋㅋ 물론, 한호 입장에서는 인질극에 휘둘리다 군세가 꺾이고 군법이 문란해져서는 안된다는 판단에서 그랬고 후에 조조 또한 한호를 매우 치하하는 한편, 이를 계기로 앞으로 그 어떤 인질극에서도 절대 상대와 타협없이 인질의 생존과 구출여부 떠나 공격하라는 메뉴얼을 정했다는... (하후돈 지못미;;;) 하후돈은 이 당시 여포와의 전투에서 인질로 잡히는 것도 모자라, 화살에 왼쪽 눈을 다쳐 애꾸눈이 되며 "장애인"이 되는 오지게 재수 잡치는 일까지 당하고 만다는.... T-T 우리가 알고 있는 애꾸간지폭발의 하후돈은 바로 이 때부터라고 할 수 있고, 삼국지연의에서는 적장이 쏜 화살에 왼눈을 직격 당하자 화살을 뽑아, 딸려 나오는 안구를 씹어 먹으며 "이 눈은 아버지의 정(精)과 어머니의 피로 이루어진 것인데 어찌 함부로 다룰 수 있겠느냐" 라고 외치고는 그대로 말달려 자기 눈에 활을 쏜 고순의 부장인 조성을 한 창에 꿰어 죽이는 그야말로 개간지의 카리스마를 뿜는 장면이 나오지만.... . 이건 진정 개소리 of the 개소리가 아닐 수 없고 하후돈이 받은 역대 최고최강의 버프라 할 수 있다. 실제로는 전투 중 누가 어디에서 쏜지도 알 길 없는 난전이 어딘가에 맞고 원바운드 되어 눈으로 튀었거나 또는 아슬아슬히 눈가를 스쳤거나 해서 다쳐 그리 된 것. 실제로는 눈에 화살을 맞으면 거의 즉사하거나 쌔뻑좋게 살아도 어마무시한 통증과 출혈에 의한 쇼크로 그대로 의식을 잃는다.... 아무튼 저무튼간에, 하후돈은 이렇게 한쪽 눈의 시력을 잃고 요즘 기준으로 시각장애 6급에 해당하는 "단안실명 시각장애인"이 된다. 참고로 단안실명은 시각장애 중 유일하게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고...ㅋㅋ 애꾸관련 이야기를 더해 보자면, 일단 한 눈이 저리되면 당장 원근감과 남은 눈의 시력도 크게 떨어지며 일상에서 남은 눈의 피로도 쉽게 온다. 저 당시의 전투는 거의 대개 칼과 창이 맞붙는 백병전! 사지 멀쩡해도 사소한 삑사리 한 번에 죽거나 병신이 되기 십상인 와중에 시야각이 크게 제한되는 애꾸는 엄청난 핸디캡이 아닐 수 없다. 설령 하후돈이 진짜 혼자 무쌍난무를 찍는 무력깡패라 할지라도 저 시점부터는 전투력이 급감했을 것이며, 실제로 하후돈은 저 시점부터 전투의 전면에 나서는 지휘관보다 주로 후방지원이나 방어전에 투입되었다. 각종 미디어에서는 닉 퓨리처럼 검은 안대를 차고 나와 궁예간지를 자랑하지만, 역사기록에는 안대착용에 관련된 언급이 없기에 아마 그냥 드러내고 다녔을걸로 추측한다. 하후돈이 삼국지연의나 그 후의 여러 매체들에서 맹장으로 묘사되는 이유도 "외눈"에서 오는 어딘가 모를ㅎ 오히려 강하고 거칠어 보이는 이미지에서 착안된 것. 동서양 막론, 예나 지금이나 외눈 + 검은안대는 강력한 악당보스의 뉘앙스를 갖고 있어서 지금도 영화나 만화보면 외눈들은 약국이나 안과에서 주는 하얀안대가 아닌 어디서 샀는지 꼭 검은안대를 했고 그 대상들은 해적선장, 빌런, 주인공의 동료라도 나중에 배신 때리거나 또는 악당이였다 어떤 계기로 주인공 일행되는 놈들이 많다. (하긴, 같은 애꾸라도 하얀안대 끼면 바로 환자이미지) 애꾸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어쩔 수 없는 게..ㅋ "애꾸눈"이미지는 정사나 연의나 솔직히 별반 그리 눈에 띄는 업적이 없음에도 하후돈이 조조측의 빼놓을 수 없는 장수 중 하나로 각인되는데 크나큰 기여를 했기 때문이고.. 당시에야 빡치고 우울했을 하후돈 본인이겠지만 눈 하나를 내준 덕에 거의 2,000년 가까이 지난 현세에서도 하후돈을 조조측의 메이커 장수가 되게 해줬으니 너무 억울해 할 건 없지 않나 싶은ㅎㅎㅎ 훗날, 후한 최고의 아가리파이터이자, 모두까기 인형으로 유명한 "예형"이 하후돈을 "완체장군(完體將軍)"이라고 깠는데, 저 말 뜻 그대로는 완벽한 육체를 지녔다는.. 이는 애꾸인 하후돈을 비꼬아 놀리는 말이다. 혹자는 비쥬얼이 좋았던 하후돈을 허우대만 멀쩡하다며 놀리는 한편, 나름 외모는 인정한다는 말이였다고도 하는데, 사료의 원문과 예형의 스타일 및 당시 분위기를 고려 시... 그냥 비꼬고 놀린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위에서 살짝 언급되었지만, 당시 기준에 하후돈은 용모가 꽤 먹어주던 모양인지 외모의 훈훈함, 멋짐을 짧막하게나마 언급된 자료들이 있다. 성격도 대단히 좋은 양반이였던 걸로 전해진다. 조조따라 거병 후, 줄곧 조조진영에서 고위직을 맡았고 훗날 무관직의 정점인 대장군에 올랐음에도 생애동안 청렴하고 검소하여 물욕을 부리지 않았고 간혹 어쩌다 포상을 받아도 자신의 부장들과 병사들에게 배분 해줬으며, 애꾸가 된 다음 하후돈이 지나가면 종종 병사들이 "맹하후(盲夏侯/장님하후돈이란 뜻)"라며 수군대고 놀려도 앞에서는 모른체하고 막사에 들어가 혼자 분풀이를 했다고 한다. 부장들이나 간혹 병사들과도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고 웃으며 떠들기도 하여 병사들에게는 위엄 서린 어려운 지휘관이라기보다 친근한 형님 타입이였고 한중정벌 당시 소수의 병력만 이끌고 순찰 중 예상 못한 코스에서 장로의 병사들과 마주해 난전을 벌이던 생사위기에 처했을 때, 부장 하나가 "장군! 에워싼 적병의 수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라고 다급히 외치자, "다행히 내 눈에는 적병이 반만 보이니 괜찮네!"라며 위기상황에서도 농을 치는 헐리우드 액션 스타일 조크도 날릴 줄 아는 나이스가이였다. 장수들에게는 군법을 엄정히 적용했으나 일반 병사들에게는 비교적 널럴히 대하여 큰 중죄가 아니라면 되도록 너그럽게 봐주는 편이라 누가 조조에게 소원수리라도 긁었는지, 조조에게 불려가 군기강 해이유발 관련으로 지적을 받은 일도 있다. 군중에도 학자를 초빙해와 가르침을 받을만큼 학구열도 대단했고, 그래서인지.. 단지 야전임무뿐 아니라 다양한 군사관련 행정처리도 탁월했다고 한다. 토목에도 소질이 있는지, 진류태수 시절에는 가뭄이 들자 병사들 동원해 저수지를 만들었고 그때 본인도 같이 작업복을 입고 흙을 짊어 날랐다. 위에 나열된 사례들을 보면 알겠지만, 병사들과 가까움 + 후방보급임무 위주 + 군무행정탁월 + 공사에 능함 이런 특징들이 어우러져, 삼국지 좀 아시는 분들 사이에서 불려지는 하후돈의 별명 중 하나인 "행보관" 타이틀이 생겨난 것. 실제로 군사적 업적이 거의 없음에도 조조가 그를 여러 기라성같은 명장, 맹장들의 윗자리에 앉혔던 것도 조조 역시 충성심이 드높고 관리력이 준수하며 훌륭한 인품으로 후배장수와 병사들을 아우르는 큰 형님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이였다. 그리고 또 그게 다행히 하후돈의 적성에도 맞았다. 조조 휘하의 장수들은 출신을 떠나 거의 대부분 하후돈을 잘 따르는 편이였고 전형적 무장임에도 책사들과도 곧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편하게 지냈던 걸로 보여진다. 서황과 장료가 조조휘하로 들어왔을 때 다른 기존 장수들에게 그들을 인사시키며 빠른 적응을 도운 것도 그였고 장합과 고람이 원소측에서 투항했을 때도 관도대전 마친 후 환영한다며 잘 해보자는 서신을 보낸 것도 그였다. 대체적인 이미지처럼 맹장은 비록 아니였으나 무장임에도 뛰어난 보급과 행정능력 및 부하나 후배들을 잘 아우름과 동시에 변함없는 조조를 향한 충성과 겸손, 청렴을 갖춘 듬직한 하후돈을 조조는 매우 아껴, 무슨 일이 있건 좋은일의 포상에서는 항상 하후돈을 챙겼고 수시로 그에게 필요한건 없는지 살폈으며 하후돈이 눈을 다쳤을 때, 하루동안 잠도 안자고 하후돈 곁을 지켰으며 하루에 세 번씩 하후돈의 부상상태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 부득불 하후돈을 꾸짖은 후에도 몰래 하후돈에게 사람을 시켜 선물이나 술, 고기 등을 보내 하후돈을 뒤로 달랬고 공식석상에서는 직위로 부르며 군신의 예로 대했어도 사석에서는 조조가 이름을 부르며 격의없이 대한 몇 안되는 인물이였다. 그런 아낌을 받아서인지.... 조조의 죽음이 임박한 무렵 크게 상심하여 본인도 병을 얻어 앓기 시작하다, 끝내 조조가 사망하자 슬픔 속에 지내다 결국 병상에 누웠고 조조 사후 즉위한 조비가 그를 위로하고 그간의 공로를 기려 대장군에 봉했지만 이미 병이 깊어 골골대던 하후돈은 대장군 임명 후 몇 달 뒤 사망한다. 완력에서는 허저나 전위에 비할 바 아니였다. 무예가 뛰어나 장료나 하후연처럼 전술적 활용도가 뛰어난 것도 아니였다. 장합이나 서황같이 우수한 지휘관도 아니였다. 후방에서 서포트를 잘했다한들, 행정처리가 탁월했다한들, 무수한 조조 아래의 먼치킨 문관들에 비하면 부족했다. 뭐 하나 유별난 게 없이 이도저도 아니라 할 수도 있는 그였지만 주군에 대한 깊은 충정, 부장들은 물론, 당시로서는 소모품으로 여겨지던 병사들에 대한 너그러움과 관대함 그리고 고위직임에도 늘 청빈했던 참공직자의 자질이 충분했던 그였기에 자신보다 뛰어난 숱한 이들을 제치고 철저한 능력지상주의자였던 조조의 총애를 받은 그의 행보는 그 시대는 물론, 지금도 귀감이 된다. 장애를 딛고 오로지 성실함과 인성으로 대장군이 된 하후돈의 성공스토리가 부디 여러분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기를 바라며 지금껏 다음 칼럼까지 세월아~ 네월아~ 하며 연재하던 것을 이번은 무리해서 바짝 당겨 연재해봤다는.....ㅎㅎㅎ . 나라 망친 아줌마 투톱의 뿌리가 뽑힌 기념비적인 현시국의 첫 주말을 부디 다들 즐겁고 알차게 보내시길!
작화와 연출력의 끝을 보여준 애니메이션 작품들 part2
충동적으로 작성한 카드였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part2도 움짤 위주로 간단하게 만들어보았습니다. 진격의 거인(2013)-WIT STUDIO 기존 애니메이션과 차별화된 뛰어난 액션신 연출로 한때 진격거 신드롬까지 만들었던 작품이죠. 한국에서는 작가의 극우논란으로 인해 인기가 시들었지만 고퀄리티 작화와 연출만으로 일본 서브 컬쳐를 국내 대중들에게 알렸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2016)-본즈 액션연출의 최강자 본즈답게 안정적인 작화와 화려하고 역동적인 액션신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특히 작중 하이라이트였던 미도리야와 토도로키의 대결은 방영 직후 커뮤니티에서 수많은 움짤이 만들어질 정도로 높은 퀄리티를 보여줬습니다. 잔향의 테러(2014)-MAPPA 다소 딱딱한 스토리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상당한 고퀄리티 작화와 연출을 보여줬던 작품입니다. 1990년대 풍의 색감과 기법을 사용한 작화와 여름의 어지러우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잘 표현한 연출이 인상깊었습니다. 4월은 너의 거짓말(2014)- A1 Pictures 감동적인 스토리로 유명하지만 그에 뒤지지않게 작화와 연출도 뛰어났던 작품입니다. 작품 내내 엄청난 고퀄리티 작화를 유지했던것은 아니지만 콩쿠르 연주 등 작중 주요장면에선 확실한 퀄리티와 연출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바이올렛 에버가든(2018)-교토 애니메이션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고퀄리티 작화의 끝판왕. 원래부터 고퀄리티 작화로 유명했던 교토 애니메이션이지만 넷플릭스의 제작비 투자와 독점방영으로 힘을 넣었는지 TV 애니메이션에서는 보기힘든 역대급 퀄리티의 작화를 보여줬습니다. 스토리에 있어서는 혹평도 꽤나 있지만 이 작품의 작화 퀄리티와 연출력에 혹평을 주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목소리의 형태(2016)-교토 애니메이션 교토 애니메이션답게 수려한 작화와 뛰어난 연출력을 보여줬던 작품입니다. 작품에 특징이 없다고 평가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무거운 주제를 아름답고 잔잔하게 표현한것만으로도 큰 점수를 줄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너의 이름은(2016)-신카이 마코토 말이 필요없는 작품이죠. 스토리도 뛰어났지만 '초속 5cm', '언어의 정원' 등으로 완성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화와 연출력은 정말 압도적이었습니다. 언어의 정원(2013)-신카이 마코토 이 작품 역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대표작이자 고퀄리작화와 연출하면 빠지지 않는 작품이죠. 언어의 정원에서 보여준 높은 작화력과 세세한 묘사 퀄리티는 감탄을 넘어 경외로울 정도였습니다. (이미지 출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https://www.marumaru.in/?c=3/41/66&cat=%EC%9D%B4%EB%AF%B8%EC%A7%80&uid=266461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emora1541&logNo=221021366764&parentCategoryNo=&categoryNo=22&viewDate=&isShowPopularPosts=true&from=search 진격의 거인 http://www.instiz.net/bbs/list.php?id=pt&no=1300484 잔향의 테러 https://www.instiz.net/name?no=14561862&page=1&category=3 https://weheartit.com/entry/127228392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ookiez1&logNo=220840659252&categoryNo=173&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언어의 정원 https://www.instiz.net/pt/3714745) (내용참조: https://namu.wiki/w/%EC%9E%94%ED%96%A5%EC%9D%98%20%ED%85%8C%EB%9F%AC)
종이 위에서 일렁이는 물결 'Richard Thorn'
일렁이는 물결에 따라 부숴지는 햇볕의 조각들과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파도소리 ♥︎ 가끔 바다를 보러가면 이 모든걸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 하지만 저란 쪼렙은 도전조차 하지 못했죠 ㅎㅎ . . 오늘 소개할 Richard Thorn은 제가 그려내고픈 바다의 풍경을 정말 완벽하게 종이 위에 옮겨놓는 작가입니다 *_* 대범한 붓질과 화이트의 조화 ! 수채화 특유의 맑고 투명한 색감까지 ! 여러분 어디선가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나요? +_+ 제가 상상하고 그리고 싶어했던 그 장면들을 그대로 종이 위에 그려낸 Richard Thorn ! 또, 작가님은 바다뿐만 아니라 숲속의 모습도 자주 그리세요 *_* 살랑이는 바람과 나무과 흙냄새가 느껴지는 작품들 !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새소리를 듣고있는 기분이 들어요 ㅎ_ㅎ 그리고 물결장인 Richard Thorn 선생님은 계곡을 그려내셨는데.. 졸졸졸 흘러가는 물결을 어쩜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는지 ㅠ_ㅠ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특히 마지막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빛마저 . . Richard Thorn 선생님의 그림을 보고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아트테라피가 아닐까요 *_* 작가님의 작품을 더 만나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홈페이지에 방문해보세요 :)
100번째 만사삶! 기념 자축 케이크를 만들었다.jpg
만사삶 100화를 맞아 많은 분들이 자발적으로 축전을 보내주셨습니다! 절대 제가 아래 짤 같은 것을 만들어서 SNS 여기저기에 올리면서 축전을 구걸하지는 않았습니다. 너무나 소중하고 귀중한 축전들 하나씩 소개해드릴게요! (가나다순) ▼<건축학과 1학년>, <내 땅 한 조각> 등을 연재하신 '기므지우' 작가님의 생동감 넘치는 3D 움짤입니다!!! 눈이 한 바퀴 돌아가는 게 캐릭터랑 전혀 위화감이 없는 이유는 뭘까... ▼ <오우주>, <피지 않는 꽃>의 작가 '루하'님께서 고풍스런 축전을 그려주셨습니다. 고마워!!! ▼공군 전우님 '멸치찌개'님께서 필요한 것만 딱딱 모아 그려 축전을 그려주셨습니다! 섬세하게 박혀있는 특기 마크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정말 감사해요! ▼ 화제의 이모티콘 <이과티콘>과 <꼬마찌>시리즈 등 만화와 이모티콘을 다작하시는 '메밀'님의 축전입니다! 뜬금없는 공군 약복과 게리슨모의 디테일을 보니 과거의 악몽이 떠올라 소름이 절로 돋았습니다. 고맙다! ▼ 제 만화에 종종 등장하는 빨간 파충류 캐릭터인 '순대국'님이 친구들과 함께 있는 바삭바삭한 드로잉을 그려주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도 함께 넣어주었네요 고맙다! ▼ <피시인애소>와 초인기 이모티콘 <옴팡이>의 작가 '애소'님께서 크리스마스 쿠키(87화)의 충격을 잊지 못하시고 감상을 보내주셨네요! 저보다 제 캐릭터를 더 잘 그리시는 것 같아요 +박력분 기여어 ▼ <키몽툰>, <키몽의 호구로운 생활>의 인기 웹툰 작가 '키몽'님께서 음식으로 혼내주는 너무 귀여운 짤을 보내주셨습니다. 다음에 꼭 한 번 직접 맛봐주시길... ▼ <손발이 오글오글>, <한치매직> 작가이신 '한치'님께서 높은 해상도의 얼굴을 그려주셨스빈다. 물회를 만들게 되면 꼭 대접해주고 싶네요. ▼ 마지막으로 '허준환'님께서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제 모습을 그려주셨습니다. .....그림 열심히 더 그릴게요.... 감사합니다!!! 그 외에 축하의 말 주신 모두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앞으로는 쌉소리도 많이 하고, 초심을 잃지 않는(많이 망치는) 권권규가 되겠습니다. 계속 지켜봐주실거죠?! 다음 주에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