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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탄X채수빈 CF런칭 특별 이벤트(+화제의 CF영상 대공개)

차이나탄과 채수빈이 함께 떠나는 중국어 여행 CF영상 대공개!
입이 열리는 중국어 차이나탄을 만나보세요*_*
현재 차이나탄 홈페이지에서 진행하고 있는 특별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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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첨을 통해 정답을 맞춘 30명에게 스타벅스 커피를 쏜다!
Q. 채수빈과 함께 상하이 중국어 여행을 떠난 好朋友(좋은 친구)의 정체는 0000이다!
①남자친구 ②수빈엄마 ③차이나탄 ④바로당신
(힌트는 영상을 마지막 1초까지 모~두 시청하셔야 알 수있다는 사실!>.<)
차이나탄과 채수빈이 함께하는 중국어 여행!내 눈 앞에 펼쳐지는 중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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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풍 분위기 물씬, 상하이 명소 7곳
상하이 역사에 예술적 색채미 한 스푼 가미한 매력 만점의 복고풍 명소 상하이(상해)는 끝없이 솟은 화려한 마천루와 첨단 비지니스로 넘쳐나는 세계적인 미래 도시다. 19세기 작은 항구 도시에 불과했던 상하이는 강제 개항 이후, 어느새 아시아를 대표하는 도시가 되었다. 외국에서 들어온 사람들로 인해 국제 도시가 된 상하이의 거리는 당시 세계를 휩쓸던 모더니즘 경향과 뒤섞이면서 독특하고 활기 넘치는 도시로 변모했다. 그 결과, 반짝이는 상업 도시의 모습 아래 숨겨진 또다른 모습이 있다. 옛 상하이의 풍경에 현대적이고 예술적인 색채미를 더해 상하이만의 복고풍 매력으로 재탄생된 골목들이 시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역사와 애환이 묻어있는 골목들을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면, 새로운 상하이를 발견할 수 있다. 01 난징시루 (南京西路) 난징루의 중간 지점에서 서쪽으로 인민 공원을 포함하는 지역이 난징시루이며, 백화점, 고급 쇼핑몰 등이 모여 있는 상하이 최고의 쇼핑 거리다. 큼직하고 거대한 건물들 외관에는 우리가 잘 아는 브랜드의 간판들로 가득하다. 국제 도시의 명성 답게, 세계의 유명 브랜드들이 생활부터 패션까지 들어서 있다. 한편, 이곳도 난징동루처럼 길 일부를 보행자 전용으로 만들어놓았으며, 화려하게 꾸며진 번화가의 뒤쪽에는 근대식 가옥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아기자기한 분위기 속에서 산책하기 좋다. 02 난징동루 (南京東路) '서울의 명동'으로 불리는 패션의 거리, 난징동루는 와이탄에서 인민광장 부근까지 이어지는 큰 길로, 1840년대 아편전쟁 이후, 문호 개방과 동시에 영국의 조계지가 되었다가 미국과 영국의 공동 조계지가 되면서 상하이 제1의 상업 거리가 되었다. 이 거리에는 과거에 지어진 유럽 풍의 오래된 호텔들과 화려한 간판, 근현대식 건물들이 어우러져 있다. 또한, 약 700~800m에 걸쳐 보행자 전용 도로로 조성되어 있어, 상하이의 가장 대표적인 번화가로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휘황찬란하고, 특히 난징동루의 밤이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03 와이탄 (外灘) 상하이의 굴곡진 역사가 깃들어 있는, 와이탄은 아편전쟁에서 청군의 패배로 강제 개항을 시작한 상하이에 19세기부터 외국인들이 들어와 건물을 짓고 거주하기 시작한 장소다. 때문에 현재 황푸 강변을 따라 그 때 당시 지어진 근대식 고건물들이 남아있고, 강을 따라 걷다보면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으며, 와이탄에서 바라보는 푸둥 지역의 야경은 대표적인 상하이 야경 장소로도 손에 꼽힌다. 또한, `세계 건축 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곳의 석조 건물들은 다양한 건축 양식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에는 건물 내부를 개조해 명품 샵, 고급 레스토랑 등으로 사용하고 있기도 한다. 04 둬룬루 문화거리 (多伦路) 중국의 유명작가 루쉰(鲁迅)을 필두로 마오둔(茅盾), 궈모러(郭沫若) 등 1930년대의 수많은 유명 좌파 작가들이 본거지로 삼던 거리로, 중국 정부에서 `문화 명인 거리`로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현대 문학의 중심지로써 원래는 도우러안루(窦乐安路)라는 본명을 가지고 있었으나, 1943년 일어난 청일전쟁 때, 이름이 현재의 둬룬루(多伦路)로 바뀌었다. 또한, 상하이 개항 당시 일본의 조계지였던 곳으로, 20세기 초 일본 근대식 건물이 많이 남아 있으며, 상하기 건축물의 대표작으로써 박물관, 기념관, 성당 등의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어서 상하이 옛 거리를 체험하면서 이국적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매력적인 거리다. 한편, 홍커우 구역의 중심지인 루쉰공원의 일부이기도 하며, 남쪽에 상하이 3대 상업 거리인 스촨베이루(四川北路)가 있어 항상 많은 여행자들로 북적거린다. 05 타이캉루 예술 거리 (泰康路 | 타이캉루이수제) 차가 들어설 수 없는 420m의 좁은 골목 길 마다 중국과 베트남 상점, 화랑, 카페 등이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는 거리로, 과거의 폐공장 부근의 낡은 재래시장터를 정부가 사들여 예술인들에게 값싸게 임대하기 시작한 것이 이 거리의 시초다. 한동안 상하이를 대표하는 예술가 작업촌이었다가 현재는 예술적 분위기가 물씬 나는 카페 및 쇼핑 골목으로 변모했기 때문에, 편한 여행 복장으로 하염없이 산책하다가 인생 사진 나올만한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06 모간산루 50호 (莫干山路 M50 | 모간산루우스하오) 'M50 예술촌'이라 불리는 모간산루 50호는 1930년대에 지어진 공장들이 1999년 문을 닫으면서 폐공장이 된 공장들을 리모델링하여 예술가들의 작업실 및 전시 공간으로 변모시킨곳으로, 타이캉루와 쌍벽을 이루는 예술가 작업촌이었으나 최근 타이캉루의 번화로 인해 독보적인 곳이 되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예술가들의 터전으로 시작된 이 예술촌에는 백여 개의 스튜디오, 갤러리 및 각종 예술 관련 사무소들이 들어서있다. 하이룬루(海伦路)역 근처에 있는 `1933 라오창팡(老场坊)`은 1933년에 지어진 외국인 대상의 거대 도살장이었으나, 현재 상하이를 대표하는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옛 건축물의 골간을 유지한 채 세련된 조각 작품들을 배치하고 갤러리, 레스토랑, 상가들을 채워놓고 있다. 고즈넉함과 함께 예술적 분위기와 독특한 세련미가 느껴지는 곳이다. 07 둥핑루 (東平路) 상하이의 '가로수길'로 불리는 핫한 명소, 둥핑루는 지하철 창수루역(常熟路站)과 프랑스 조계의 시작점이자 고급 주택들이 들어선 헝산루역(衡山路站) 사이에 있는 500m 정도 되는 차분한 분위기의 유럽풍 골목으로, 상하이에서 유명한 카페, 맛집, 라이프스타일 소품샵, 도자기샵 등이 줄지어 있는 곳이다. 프랑스 조계지를 시작으로 프랑스 냄새가 풀풀 풍기는 이 길을 따라 산책하기 아주 좋아서, 저녁 무렵의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산책도 하고, 길가를 따라 늘어진 아기자기한 상점들을 구경하다보면 어느새 늦은 저녁이 될 것이다. 배가 고프면,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들어가 제대로 된 한끼 식사로 마무리 해도 좋다. 더 많은 여행 정보가 궁금하다면? '자유여행자의 그곳, THERE'에서 만나보세요! >> 네이버에 'THERE' 검색!
현재 홍콩을 바라본 한 대학생의 외침
길기는 하지만 너무 명문이라 생각되어서 모두 가져옵니다 마땅히 시간이 나지 않는 분들은 클립해서 나중에 봐도 좋을 듯 합니다 연대숲 #66147번째 외침: 콘스탄티노폴리스 1453, 광주 1980, 그리고 홍콩 2019. 인간은 현명하다. 그래서 가망이 있는 싸움인지 아닌지를 쉽게 안다. 인간은 어리석다. 그래서 가망이 없는 싸움임을 알면서도 죽으러 나간다. 인간은 고결하다. 그래서 가망이 없는 싸움에서 결국 승리한다.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한때 지중해를 빙 둘러쌌던 보편제국 로마의 마지막 조각, 그리스 끝자락의 ‘그리스도를 믿는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는 이제 십만 명이 넘는 투르크의 포위군과 거대한 대포에 둘러싸였다. 이에 맞선 방어군은 7000명 미만. 교황청과 베네치아가 보내 준 극소수의 병력과 한 줌의 의용군을 제외하면, 서유럽의 수많은 나라 중 단 하나도 도시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살고 싶으면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야 했다. 50여일의 처절한 공방전 후 다가온 투르크군의 총공격 전날 밤, 그리스 혈통의 마지막 로마인들은 살기 위해 성문을 열고 메카를 향해 절하는 대신 하기아 소피아의 그리스도 모자이크 아래에서 밤새 기도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음을 그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다음 날 도시는 함락되었고 시민들은 자신들의 자유와 동방 정교회 신앙을 위해 가망 없는 싸움에서 싸우다 죽었다. 그렇게 이천년의 로마가 끝났다. 1980년, 광주. 도시는 계엄군의 탱크와 장갑차에 둘러싸였다. 학생들과 평범한 아저씨 아줌마들로 구성되었던 시민군의 무장은 경찰서 무기고에서 얻은 소총 수준. 도시의 모든 통신시설은 차단되었고, 당시 평시작전권까지 가지고 있던 주한미군은 계엄군의 병력이동을 알면서도 저지하지 않았다. 그 어떤 서방 선진국들도 적극적으로 개도국 한국의 한 지방도시에 대한 군사작전에 개입하지 않았고, 도시 밖에는 빨갱이들과 북괴의 특수부대가 도시를 점령했다는 거짓 뉴스가 살포된다. 이런 사황에서 계엄군과 맞서면 죽을 것이란 것은 시민군 모두가 알고 있었다. 특히 군필자들은 더 확실히 다가오는 죽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탱크의 궤도 소리가 들려오던 전남도청의 마지막 밤, 시민군들은 도망치는 대신 애국가를 불렀다. 민간인들이 공수부대를 당해낼 수 있을 턱이 없었으므로, 광주시민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가망 없는 싸움에서 공화국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저항권을 행사하다 죽었다. 그렇게 1980년 서울의 봄은 광주의 피바다로 끝이 났다. 2019년, 홍콩. 손바닥만한 도시는 인민해방군 특수부대에게 둘러싸였다. 콘스탄티노폴리스와 광주와는 달리, 이번에는 도시 밖의 사람들도 스마트폰으로 도시의 소식을 듣는다. 한 남자 대학생이 건물에서 떨어져 죽었으며 열여섯 살 소녀가 경찰들에게 강간당했고 한 여자 중학생은 바다에서 알몸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2019년’에 들려온다. 시위대는 진압군에게 양궁으로 화살을 쏘고, 진압군은 시위대에게 총으로 실탄을 쏜다. 10대와 20대가 주축을 이루는 시위대는 이제 각 대학의 캠퍼스에 갇혔고, 마오쩌둥 꿈나무 시진핑은 전 세계에 강경진압도 불사하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영중공동선언과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정으로 보장되는 “주권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치권은 홍콩특별행정구가 각각 행사한다”는 일국양제의 약속은 시진핑의 말 한마디에 휴지조각이 되었다. 보아하니 지난 학기 국제법 교과서에 쓰인 문장은 실로 참되다. “국제법은 법이 아니다.” 이처럼 베이징의 결단은 명징하다. 홍콩에서 밀린다면, 타이완에서, 티베트에서, 신장위구르에서, 광시좡족 자치구에서 똑같이 밀릴 것이고 그 순간 중화인민공화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 것이다. 시진핑에게는 1989년 천안문을 소규모로 재현하는 한이 있더라도, 국제사회의 전방위적 제재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홍콩 시위를 진압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는 탱크를 구룡반도로 돌진시킬 정도로 멍청한 자가 아니므로, 유혈사태를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시위를 분쇄하려 하겠지만. 중국 본토를 제외한 전 세계가 홍콩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지만, 나설 수 있는 그 누구도 감히 나서지 않는다. 워싱턴의 천자는 민주당의 탄핵 카드와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빨간불이 켜진 재선 상황에서 중국과 국력을 기울여야 할 정도의 극단적인 갈등을 빚을 여력이 없다. 중영공동선언에 의해 홍콩의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개입할 의무가 있는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외무장관 시절 보여주던 보리스의 현란한 막말실력은 감히 베이징을 향하지 않는다. 유럽과 이혼중인 이빨 빠진 사자 대영제국은 이제 자신의 손을 떠난 도시 하나 때문에 굴기하는 중국과 맞설 의지도 힘도 없다. 모스크바의 차르는 그의 신민들이 홍콩을 따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가 홍콩을 위해 힘을 써 줄 이유 같은 건 없다. 예배당과 성당에 경찰이 난입하여 시위대를 끌어내는 상황 속에서, 즉위 이래 평화를 위해 싸워온 로마의 프란치스코도 이번에는 중국을 소리높여 강하게 비난하지 못한다. 수십 년의 갈등 끝에 중국과 바티칸의 주교서임권 정교협약 물밑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라 있는 상황에서, 그 어떤 전임자들보다 미디어와 도덕성이라는 소프트파워를 잘 다뤄온 교황이 적극적으로 홍콩 편을 든다면, 안 그래도 그리스도교를 체제의 위험분자로 인식해 탄압하는 중국 정부에 의해 본토의 수천만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들은 지금보다 더한 극도의 박해에 직면할 테니까 말이다. 1980년 광주를 두 눈으로 지켜본 ‘인권변호사’ 출신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2016년 사드배치로 인한 경제보복의 기억이 생생한 상황에서, 한국에게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도시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거대한 중국과 맞서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자살행위일 테니까. 그를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홍콩에 대한 그의 침묵을 도덕적 이유가 아니라 현실정치적 이유로 욕하기는 어렵다. 여당도 제 1 야당도 제 2 야당도 이 지점에 있어서는 꿀 먹은 벙어리일 수밖에. 이렇게 전 세계가 보고 있지만, 홍콩의 시위대를 위해 중국과 맞서 줄 세력은 없다. 시진핑은 시위대를 탱크로 밀어버리지는 못하겠지만 이미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실탄사격 개시 명령을 내려놓았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슬프고 두렵고 안타깝지만 시위대는 아마 이 싸움에서 이기기 힘들 것이다. 며칠 안으로 홍콩 각 대학의 마지막 저항은 진압되고, 추가적인 사망자가 나올 것이며, 중국은 언제나 그랬듯이 적당히 유화적인 조치와 시위대 사면이라는 당근을 통해 세계에 변명하리라. 아마 홍콩에서 지금 시위하는 10대 소녀 소년들과 20대 남녀 대학생들도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거대한 괴물 중화인민공화국을, 자신들이 ‘지금’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민주주의를 공기처럼 누리는 우리도 그들만큼 잘 알고 있다. 홍콩의 우리 또래, 우리 동생 또래들이 왜 가망이 없는 싸움임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서고 캠퍼스에서 농성하는지를. 그렇다면, 홍콩의 시위는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일까? ‘고결한 희생’ 일 뿐일까? 결국 홍콩의 민주주의는 인민해방군의 군화발에 무너질까?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이스탄불로 바뀌어, 영원히 터키의 수중에 남았다. 하지만 함락으로부터 4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에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기억하는 그리스의 동방 정교회 신도들은 ‘자유가 아닌 죽음을!’을 외치며 가슴에 도시의 회복을 품고 독립운동을 벌여 투르크와 싸웠다. 이번에는 바이런을 필두로 유럽의 열강들이 달려왔고, 그리스인들은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되찾지 못했으나 자유는 되찾았다. 아직도 그리스에서는 이스탄불을 콘스탄티노폴리라고 부르며, 동방 정교회의 세계총대주교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라고 불린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그렇게 이름 그대로 그리스인들에게 영원히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의 도시, 그들의 마음 속 도시로 남았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학살극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1980년을 잊지 않았다. 그 후 7년 동안, 수많은 대학생들은 독재정권과 지속적으로 가망 없어 보이는 싸움을 했다. 대공분실에서 코로 설렁탕을 마셔야 했고, 최루탄 연기를 마셔야 했으며, 고문으로 장애를 얻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1980년 광주에서의 싸움은 전남도청의 피바다로 끝난 것이 아니라 1987년 백양로의 이한열의 피로 끝났다. 그 피로써 공화국은 다시 민주주의와 자유를 얻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광주는 빛고을이라는 이름 그대로, 우리에게 자유의 빛을 다시 밝혀 주었다. 7. 나는 하느님을 믿는 만큼이나 기적을 믿는다. 그래서 홍콩 시위대가 승리하기를, 더 이상 홍콩의 누구도 피를 흘리지 않기를, 중화인민공화국이 무력진압 대신 타협과 협상을 선택하기를,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정말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2019년의 홍콩 시위가 진압당한다고 할지라도, 소녀들과 소년들, 남녀 대학생들이 인민해방군의 군화에 짓밟히고 체포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끝은 아닐 것이다. 콘스탄티노폴리스가 그랬고 광주가 그랬듯이, 그것이 홍콩의 끝은 아닐 것이다. 만약 중국이 홍콩을 짓밟는다면, 온 세상이 ‘중화인민공화국’이 빛나는 중화문명의 계승자도, 인민을 위한 나라도, 공동선을 추구하는 공화국도 아닌 시황제의 진나라의 21세기 복제판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고, 중국 대륙에서 중국 공산당에 의심을 품는 모두의 마음 속에 홍콩이 흘린 피와 눈물이 영원이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기억했고, 한국인들이 광주를 기억했듯. 그리고 그 기억이 결국 절망적인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음을 우리는 보았다. 그렇게 2019년의 홍콩에서 벌어지는 이 절망적인 싸움을 통해, 온 세상은 ‘빛나는 중화 문명’의 계승자들이 바다를 등지고 자유와 민주를 위해 싸울 때 얼마나 고결한 향기를 뿜는지를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진핑이 아니라 마오쩌둥이 살아돌아와도, 폭력과 살육의 악취로 그 향기를 가리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홍콩 사람들도 결국 가망 없는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다. 8. 홍콩은 향항, 향기로운 항구라는 뜻이다. ------------------------------------------------------------------------------ 中华人民共和国宪法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第三十三条  ....... 国家尊重和保障人权 제33조 ........국가는 인권을 존중시하고 보장한다. 第三十五条 中华人民共和国公民有言论、出版、集会、结社、游行、示威的自由。 제35조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은 언론, 출판, 집합, 결사, 행진, 시위의 자유를 가진다. 第三十七条 中华人民共和国公民的人身自由不受侵犯。任何公民,非经人民检察院批准或者决定或者人民法院决定,并由公安机关执行,不受逮捕。禁止非法拘禁和以其他方法非法剥夺或者限制公民的人身自由,禁止非法搜查公民的身体。 제37조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의 인신의 자유는 침해받지 아니한다. 어떠한 공민도 인민검찰원의 승인이나 결정 또는 인민법원의 결정을 거친 후 공안기관의 집행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되지 아니한다. 불법구금 및 기타 방법으로 공민의 인신자유를 불법으로 박탈 또는 제한하는 것을 금지하며 공민의 신체를 불법으로 수색하는 것을 금지한다. 第三十八条 中华人民共和国公民的人格尊严不受侵犯。禁止用任何方法对公民进行侮辱、诽谤和诬告陷害。 제38조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은 인격의 존엄성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공민에 대하여 모욕, 비방 및 무고, 모함하는 것을 금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