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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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잊혀질 것들로 세상은 소란스럽다.
내가 밟는 곳은 죄다 세상의 가장자리, 전화조차 울리지 않는 장소만을 징검다리 건너듯 골라 걸으며 나는 천국의 음악이 무음일 것이라고 상상했다. 고양이 한 마리 기지개를 펴며 멈춘 시간을 다시 감을 때 나는 J시 시립도서관 뒷편, 투구봉 연산홍 무리진 데서 몸을 붉히고 있었다. 꽃은 한 생애를 피우고 마침내 제 목숨을 저버리는데 나는 언제쯤 절정을 기리게 될까.
손님 없는 식당에서 국밥 한 그릇을 시켜놓고는 TV에 갇힌 생을 무심히 지켜보았다. 돌아갈 길이 멀었지만 책에서 나온 뿌리가 몸을 휘감고 있어 나는 번데기처럼 세월을 품고 안에서만 몽글었으면 했다. 덜컹이며 서울로 실려 간 고속도로, 표지판이 끝나는 데서 그만 밀려 떨어졌는데 기다리는 사람 없는 터미널 대합실에는 긴 플라스틱 벤치 위에 잠들어버린 남자가 있었다. 잠이 하도 순하고 깊어 그는 꼿꼿한 얼음 같았는데 벤치 옆 쓰레기통에 유효기간 지난 카네이션 한 송이가 꽂혀 동면은 또한 죽음같았다.
지금 들어오는 열차는 대화행 마지막 열차입니다. 충무로에서 갈아타고 보니 하루치의 운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길이 이미 끊겨 있다. 개찰구 밖은 이렇게나 환한데 세상은 이미 마감, 다 읽은 책이 몇 개의 문장을 쿨럭이며 토한다. 위로를 실은 버스가 정류장마다 멈춰서고 피곤을 밀어낼 적에 바야흐로 잦아드는 통증, 비누칠로 말끔히 닦아낸 다음 아우성치는 삶을 눌러 끈다.
잔돈 몇 푼을 쥔 채 나는 눈 감고 또 남은 길을 가야할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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