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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병뚜껑 뻘짓 튜토리얼!@

안녕하세요 고기쟁이입니다 많은(?!)분들의 성원으로 어찌어찌 소주병뚜껑 클로버만들기 튜토리얼을 만들게 되엇네요 ㅎㅎ 어머 나 이런거 처음이야(두근두근 수줍수줍) 사진도 개판이고 하지만 처음이니까 봐주세요.... ...사랑하니까요...☞☜
자 오늘 주된 준비물인 소주병뚜껑입니다 ㅎㅎ 처음이 둘과 이슬이 하나가 있네요 ㅎㅎ
또다른 준비물 볼펜심 입니다 뭐 볼펜심이 아니라 다른거라도 상관없지만 집에서 만드려니 사이즈맞는게 이거라 준비해봣네요...ㅎ 술자리나 고기집에서 바로 만들때는 "이쑤시개"(녹말이쑤시개 ㄴㄴ)나 여성분들은 가방에 많이 들고다니시리라 믿는 "면봉"정도가 딱 좋습니다. 하트나 별을만드시려면 "젓가락"(납작한 젓가락 ㄴㄴ해) 을 이용하시면 되겠습니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1.일단 병뚜껑 꼭지(..?!)를 살살 늘려줍니다 2.여기선 볼펜이지만 라이타 젓가락 기타등등 눌러줄수있을만한물건을 준비해주세요 그리고... 3.병뚜껑을잡고 쭉 밀어서 절반가량을 펴줍니다. 4.나머지 반을 펴주세요 5.누른채로 왔다갔다 골고루 눌러주시면.... 이렇게됩니다 ㅎㅎ 핀것과 안핀것 구분 잘 가시나요???이러면 준비과정 끝입니다...(아따길다...미안해요 여러분)
1~2.약 손톱의 절반길이정도 지점에 이쑤시개(면봉)를 지지시켜주시고 구부려주세요 3.그리고 하트모양을 만들기위해 골 을 만들어주세요 손톱으로 꼭눌러 구부려야 깔끔하게 구부려집니다 4.반대편도 마찬가지로 길이잡으셔서 1~2 와 동일하게 구부려줍니다 5. ♡가 요기잉네 뀨잉♥ 6.하트끝부분을 바깥으로 접어서 위 과정을 반복해줍니다. 7.아 씨 손아퍼.... 8.거의 다 됫네요...여기가 중요한데요 이미만들어진 부분과 접어야 할 부분이 간섭이 생겨서 저대로는 마감이안된단 말이죠... 9.여러분의 눈을 믿으세요......길이를 최대한 정확히 가늠하여 미리 접어줍니다 10.다시 마지막 부분에 이쑤시개(면봉)를 지지시켜 구부려주면...
끝.♧♧♧♧♧♧♧♧♧♧♧♧♧♧♧♧ 미안해요 여러분 이게 이렇게 어려운게아닌데 하나하나 해보려니 별거아닌게 무지 길어졋네요....(이건마치 엄마의 잔소리같아...짧다면서 끝이없지...) 그래도 해보니 재미지다!!!! 여기까지 긴글 봐주신분들 감사드려요ㅜㅜ ...그리고 저도 댓글!=_= @9cld
47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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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왜 뻘짓이죠? 재능이지
아.. 따뜻한덧글들...
저렇게 만드시는구낭 저도 도전!!!!
@thdusdk1231 몇개안올리고 소재고갈될까봐 고민이네요 ㅋㅋㅋㅋ
신박하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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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하여 알아보자
기본 흐름은 공식위키나 나무위키가 아닌 디시위키에서 포크해 왔습니다. 웬 디시위키냐고 하실수도 있지만, 디시위키의 몇 안되는 유명한 문서이고, 타 유명 위키는 보수, 진보 성향에 의하여 문서 훼손 및 수정 전쟁이 자주 일어나는 관계로, 오히려 작성 금지로 제한시킨 디시위키의 문서가 균형있게 잡혀있다고 정평이 나있습니다. (제 2단락) 제 2단락부터는 작성자가 문단 구분을 해놓은 관계로 가독성도 나쁜 편이 아니라서 읽다보면 술술 읽히는 편이고 집중하시게 될겁니다. 보수, 진보를 떠나서 가급적 객관적인 시선으로 읽어주시면 좋고, 그 후의 빙글러분들의 판단과 해석은 자유입니다:)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잘 모르셨거나 관심이 있던 분들은 이번 기회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 개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이자 4.19 혁명, 부마 민주항쟁등과 함께 오늘날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민주화 운동 중 하나. 대한민국의 독재 군부에 의해 저질러진 무고한 시민에 대한 학살범죄로, 시민과 계엄군 모두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나자 전두환을 중심으로 구성된 신군부에 의해 군부가 장악되었고 서울의 봄으로 민주화 열기가 거세어지자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일으킨다. 12.12 군사반란이 만들어낸 계엄령과 대학들의 겨울방학, 연말이라는 점이 맞물려 이에 대한 대처는 뒤늦게 나타났으며, 대학들이 개학을 맞이한 3월 이후 안개정국에 대한 사항이 알려졌고 1980년 4월부터 이를 규탄하기 위한 집회가 끊이지 않았으며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대한민국의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대규모의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사건 당시의 군부의 통제로 인해 언론매체는 '광주 사태'로 칭했으나 군부 정권이 끝난 이후 진상 조사가 이루어져, 광주사태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일부 민간인들을 중심으로 국민의 기본권과 민주주의가 군부에 의해 유린당했다는 것에서 따와 광주사태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미디어에 따라 광주민중항쟁, 광주학살, 광주사태 등으로 부르며 보통 일어난 날짜만을 줄여서 5.18로 부르기도 한다. 전두환의 군사독재에 대항해서 일어난 시위가 진압군과의 격한 대립 끝에 광주에 진입하려는 진압군과 광주 시민들의 총격전으로 발전, 결국 진압되지만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군사정권에 의한 인권탄압과 민간인 살해 사례로서 많이 알려진다. 이 정도로 설명하기에는 당시 상황과 이후 여파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이 일련의 사태는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의 일부로서,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시민들의 희생으로 의미가 재부상했다.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된 특전사 대원들에게도 당시 사건은 지우고 싶은 암울한 기억이다. 이들은 그 당시 시대사적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채, 상부로부터 빨갱이를 때려잡으러 간다는 대의명분을 갖고 이를 수행하였으며 진압당시 학생과 시민들을 진압하다 점점 폭력의 수위가 상승, 같은 나라 국민을 상대로 총구를 겨누는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을 다수 겪었다. 진압작전에 참가했던 계엄군들이 갖고 있던 "빨갱이로부터 나라를 지켰다는 긍지와 자부심"은 나중에 진실이 하나 둘 씩 밝혀지면서 "군사독재 정권의 앞잡이" 내지는 "잔인한 학살자"라는 불명예로 돌아왔다. 실제로 당시 계엄군의 상당수는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등 다양한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결국 계엄군과 시민 양측 모두에게 심각한 상처로 남게 되었다. 계엄군이 시민을 사살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책임을 그들에게만 지워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행동한 것이 아니며, 어떠한 진실도 알지 못했던 시대의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1차적인 책임은 계엄군이 아닌 최종 결정권자이자, 명령권자인 전두환과 군정에게 있다. 계엄군에게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시민 학살을 지시한 장본인의 중죄를 어물쩡 넘어가려는 행위가 절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당장 /학살 문서를 들어가 보면 나오지만, 수하도 없는 사살, 어린아이에게 총격 행위 등등 계엄군의 만행은 그야말로 단순 "명령대로 따랐다" 라는 수위를 한참 전에 넘어섰기에 말단 계엄군도 잘한 건 하나도 없다. 과장 좀 보태면 1980년 5월 광주의 계엄군은 그 때 광주 사람들 입장에선 가히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세르비아군 이나 벨라루스 초토화작전의 독일 국방군과 같은 막장 전쟁범죄자 집단이었다. 이러한 잔혹한 만행들은 계엄군의 피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일본군이나 나치와 동급이라고 보면서 그럴거면 저 두 집단의 말단 병사들도 피해자냐고 하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 또한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유혈진압한 군부의 행동을 묵인, 사실상 전두환 군사정권의 편에 섰다고 여겨진 미국에 실망한 운동권과 지식층 중 일부가 공개적으로 반미를 주장할 명분을 제공하였고, 과격파 운동권에 의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핑계로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으로 대표되는 폭력을 동반한 반미주의 운동이 200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발단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을 맞고 죽었다. 1979년 10월 27일 국무총리였던 최규하는 대통령 암살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만일의 변고를 대비하기 위하여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한다. 1972년 유신헌법이 제정된 이후 지속되었던 장기집권의 끝으로 정부에 끊임없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항하던 야권은 요동쳤다. 김대중과 김영삼 등 야권 인사들은 최규하, 신현확을 비롯한 인사들에게 내각의 총사퇴를 요구했다. '현 정부는 박정희의 꼭두각시인 유신잔당이며 그 우두머리가 죽었으니 사퇴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18년간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나라를 다시 일어설 수 있게끔 하고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우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리더가 급작스레 역사속의 뒤안길로 사라지자한국 사회는 큰 변혁을 겪게 된다. <박정희 사망 당시의 사회상> 1978년 이란에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호메이니를 주축으로 하는 혁명이 발생한다. 호메이니는 정권을 획득하였으나 혁명 직후의 이란 사회는 혼란 그 자체였다. 친미 정권인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반미로 돌아서자 미국과의 관계는 냉각되었고 그는 이란 사회의 혼란을 이유 삼아 팔레비 정권 당시 하루 6백만 배럴씩 생산하던 석유의 양을 하루 아침에 2백만 배럴로 줄여버림과 동시에 석유의 수출을 금지한다. 유신헌법 제정 후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초기 집권 당시 시행하였던 이른바 '수출 주도형 경제 체제'에서 '중화학 공업 체제'로 경제 체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었다. 1차 석유 위기 당시에는 위기에 굴복하지 않고 국내 기업들이 중동으로 진출하여 이 위기를 극복하였으나 다시 찾아온 석유 위기는 한국 사회와 경제에 크나큰 타격을 입히게 된다. 또한, 한국의 가발수출업체였던 YH무역이 폐업을 선언하며 YH무역에서 근로하던 여공들이 폐업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게 되는데, 당시 야당인 신민당 대표이자 박정희에게 대항하던 유력한 야권 정치인 김영삼이 YH무역 여공들에게 시위를 할 수 있게끔 신민당 당사에 자리를 마련해준다. 그러나 여공들의 시위는 경찰들에 의해 진압되는데, 불행히도 여공 중 한 명인 김경숙이 진압과정에서 신민당사에서 추락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1979년 9월 16일 YH무역 사건 이후 김영삼은 미국의 뉴욕타임스에 인터뷰를 받게 되는데 이 인터뷰에서 김영삼은 미국이 독재정권(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원을 끝내야하며 카터 행정부가 박정희 정권에 직접적인 압력을 행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1979년 10월 4일 위의 인터뷰 사건을 계기로 하여 김영삼은 국회에서 제명되었으며 가택연금 조치에 취해지게 된다. 그를 제명하기 위한 민주공화당과 유신정우회의 징계동의안에 내용을 옮기면 아래와 같다. 김영삼은 국회법 제26조에 의한 국회의원으로서의 신분을 일탈하여 "국헌을 위배하고 국가안위와 국리민복(國利民福)을 현저히 저해하는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등 반국가적 언동을 함으로써 스스로 주권을 모독하여 국회의 위신을 실추시키고" 국회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시켰으므로 국회법 제157조에 의해 징계를 요구한다. 김영삼의 국회 제명 소식이 알려지자 부산과 마산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게 되고 부산과 마산에서의 시위가 진행되는 도중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탄에 의해 사망하게 된다. <최규하의 등장> 박정희 대통령 서거 당시 국무총리는 최규하였다. 그는 독립 이후 미 군정에서 공무를 보기 시작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 정부에서 줄곧 근무하였던 착실한 공무원이었다. 김종필은 5.16군사정변 이전부터 박정희와 인연을 맺고 있었으며 5.16군사정변에 참여함은 물론이거니와 공화당의 창당을 주도하였고 박정희 정부 초기, 요직인 중앙정보부장을 맡는 등 정권의 2인자로 군림해왔다. 김종필은 박정희가 대통령 임기를 끝마친 후 다음 대통령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박정희가 삼선개헌은 물론, 유신헌법을 통해 장기 집권의 틀을 만들어내자 반발했다. 1971년 6월 4일 박정희는 유신헌법 제정 이후 대통령에 선출되자 김종필을 국무총리에 발탁했다. 김종필은 절대 권력의 대통령 휘하의 국무총리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으며 이는 끊임없이 그가 박정희와 반목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박정희는 1975년 12월 18일 부로 김종필을 국무총리직에서 경질한다. 1975년 12월 18일 박정희는 김종필의 후임으로 유능한 외교관이었던 최규하를 국무총리에 임명한다. 최규하는 김종필과 같은 '정치인'이 아닌 '외교관'이었다. 김종필과의 갈등으로 박정희는 자신을 견제하는 국무총리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YWCA위장결혼식 사건과 최규하의 대통령 취임> 이제 다시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의 내용을 전개해보자. 1979년 11월 3일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1979년 11월 10일 대통령 권한대행 최규하는 아래와 같은 내용의 담화를 발표한다.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세계적 경제불황과 석유를 포함한 자원문제는 우리 국내경제에도 무거운 짐이 되고 있습니다. …본인은 대통령권한대행으로서 헌법에 규정된 시일내에 국법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대통령선거를 실시하여 새로 선출되는 대통령에게 정부를 이양한다는 것을 정부방침으로 하였으며 그리고 이 기회를 빌어 헌법문제에 관한 한 본인의 의견을 개진한다면 새로 선출되는 대통령은 현행헌법에 규정된 잔여임기를 채우지 않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빠른 기간내에 각계각층의 의견을 광범하게 들어서 헌법을 개정하고 그 헌법에 따라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안정을 바라라는 국민의 염원에 부응하면서 헌정질서를 유지하는 이 나라 민주주의를 착실하게 발전시켜 나가는 슬기로운 길이며 또한 순리라고 믿습니다. ◇ 이 말을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1. 조속한 시일 내에 유신헌법에 의거하여 대통령 선거를 치루겠다. 2. 새로 선출된 대통령은 헌법을 개정하는 것을 정부 방침으로 한다. 3. 최대한 빨리 유신헌법을 철폐하고 민주주의를 가져오게 하겠다. 김대중과 김영삼을 비롯한 야권 인사들은 최규하의 담화에 반발했다. 이들이 최규하의 민주화 약속 담화에도 불구하고 반발한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유신헌법에 의거하여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에 반대한다. 2. 유신잔당이 헌법 개정을 하겠다는 것인가? 즉각 사퇴하라. 1979년 11월 24일 야권의 이같은 요구에 정부가 대응하지 않자 야권이 먼저 움직인다. 전 대통령 윤보선을 주축으로 하여 재야 인사 400여 명이 서울 YWCA회관에서 위장 결혼식 사건을 계획하고 이곳에 참석하였다. 그 후 그들은 결혼식을 올리는 척 하면서 일제히 정부를 규탄하고 유신헌법에 의한 대통령 선거 등을 반대하는 시위를 개최한다. 그러나 이 사건은 재야 인사들을 미행하던 경찰들에 의해 금세 진압되었다. 1979년 12월 6일 최규하가 담화에서 밝혔듯이 대통령 선거가 시행되었고 최규하가 단독으로 입후보하여 대한민국 제10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는 대통령에 피선되자 하루 뒤인 1979년 12월 7일, 1975년 2월 13일 부로 대한민국에 적용되고 있던 긴급조치 9호의 해제를 의결한다. 긴급조치 9호에는 개헌 논의에 대한 언급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최규하가 이 조치를 해제하여 개헌에 대한 논의가 합법이 되었으며 활발하게 진행되게 된다. <하나회 세력의 군권 장악>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을 주축으로 하는 하나회 세력에 의해 12.12사태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가 연행되고 국방부 장관이었던 노재현이 물러나게 된다. 이 사건으로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노태우, 정호용, 백운택, 조홍 등 12.12사태에 참여한 하나회 인사들은 하루 뒤인 12월 13일, 일제히 직책이 변경되어 요직을 맡게 된다. 김재규가 맡고 있던 중앙정보부장직 서리를 하던 이희성은 육군참모총장이 되었고 노재현이 물러난 국방부장관 직은 前 공군참모총장인 주영복이 맡았다. 이 두 사람은 군권의 책임자로 광주 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이 된 5.17비상계엄확대조치에 관여하여 훗날 광주 민주화 운동 청문회 등에 출석하여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하게 된다. ※12.12사태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이 글에 담으면 내용이 너무 장대하게 되어 요약함 <서울의 봄> 긴급조치 9호가 해제됨과 동시에 김대중과 김영삼에게 적용되던 가택연금 조치도 해제된다. 즉, 야권의 유력 정치인들에 의한 정치 활동이 해제된 것으로 야권 지지자들은 환호했다. 1979년 12월 21일 최규하가 제10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그는 취임사에서 아래와 같이 말하여 개헌 의지를 내보인다. "국가의 최고기본법을 제정함에 있어서 본인은 중대한 책임을 지고 있기 떄문에, 이미 천명한 바와 같이 정부로서도 앞으로 전국의 각계각층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들어가면서 적절한 시기에 구체적인 연구와 검토를 시작할 것입니다." 1980년 2월 29일 최규하는 사회안정의 바탕 위에서 착실한 정치발전을 추진한다는 이유를 들어 전 대통령 윤보선, 김대중 등 긴급조치위반자 687명에 대한 사면 조치를 시행했다. 김영삼은 김대중에게 자신이 당권을 잡고 있던 신민당에 입당하라고 하였으나 김대중은 차기 대통령 선거를 의식하여 김영삼의 요구를 거절하였고, 결국 야권은 김대중을 주축으로 하는 동교동계, 재야 인사들과 김영삼을 주축으로 하는 신민당계로 분열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국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쪽으로 흘러가게 된다. <학생들의 시국성토와 노사분규> 1980년 4월 박정희 정권이 붕괴하고 학생회가 부활된 각 대학에서는 4월에 들어서자 이른바 '학원민주화투쟁'이 전개되었다. 이때 주된 이슈는 병영집체훈련 거부 문제였는데, 당시는 대학교 2학년까지 군사교육(교련)을 받게 되어 있었다. 이 주제를 가지고 일부 학생들이 대학교의 학장실 점거, 기물 파괴, 화형식, 교수 폭행 등 처음 시위가 발생했을 때와는 분위기가 달리 과격화 조짐을 보이는 등 문제가 발생하였다. 1980년 4월 14일 최규하는 특별담화를 통하여 학원 소란 사태와 사회 일부의 국민 단합 저해 언동에 우려를 표하였고 모두가 협력하여 국가적 시련을 극복하자고 호소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에 보안사령관인 전두환을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임명했다. 이는 12.12사태 이후 군을 장악한 전두환에게 정부 내 요직에 겸직시킨 것이었다. 1980년 5월 1일 서울대 총학생회는 애초에 병영집체훈련의 거부로 발생한 시위를 철회하고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의 정치 개입이 민주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아래와 같은 조건을 걸며 본격적인 정치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정한다. 1. 계엄령 즉각 해제할 것 2. 유신잔당은 즉각 퇴진할 것 3. 전두환, 신현확 사퇴할 것 4. 정부 주도 개헌중단할 것 5. 노동3권 보장할 것 1980년 5월 7일 김대중을 주축으로 하는 국민연합 또한 정부에 아래와 같은 사항을 요구한다. 1. 계엄령 해제할 것 2. 정부주도 개헌 포기할 것 3. 전두환, 신현확 퇴진할 것 이와 동시에 그는 아래와 같이 선언했다. "유신잔당의 음모를 단호히 분쇄하는 민주화운동을 과감히 전개할 것" 1980년 4월 21일 노동계 또한 이때를 기점으로 하여 일제히 일어났다. 강원도 사북읍의 탄광 근로자 3500여 명이 사북 경찰서, 사북역 등을 점거한 사북사태가 발생하였고 이 사건 이후로 전국에 90여 건의 노사분규가 발생하였다. 결국 이때를 기점으로 하여 대학가의 시위가 확산되어 학생들이 경찰과 충돌하는 일까지 발생하였고, 노동계의 시위 또한 끊임없이 발생하여 한국 사회는 혼란으로 빠져 들었다. <서울역 회군> 1980년 5월 9일 김대중이 이틀 전 민주화 투쟁을 전개해나갔다는 선언을 하자 김영삼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김영삼 또한 계엄령의 해제, 정부의 개헌 작업 중지를 요구하였다. 이에 김종필을 주축으로 하는 공화당은 김영삼의 요구에 반응하였고 계엄 해제 문제를 거론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1980년 5월 10일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 최규하는 7박 8일 일정으로 중동 순방을 위해 출국한다. 석유파동의 여파로 경제 위기가 찾아오자 이를 타개할 방법을 찾기 위해 중동으로 간 것이었다. 최규하는 출국할 때에도 공공질서의 유지와 사회 안정을 위해 국민들이 노력해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시위 양상은 더욱 과격해지는 움직임을 보였다. 1980년 5월 14일 서울 지역 27개 대학의 7만여 명이 서울 중심가를 메우며 야간까지 가두 시위를 벌였다. 날이 갈수록 학생운동이 더욱 심해지자 내무부장관 김종환은 국무총리 신현확에게 말했다. 경찰력만으로는 학생시위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군의 투입이 필요합니다. 그만큼 학생 시위는 격렬하였으며 경찰력은 이를 통제할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었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앞에 대학생 10만여 명이 모여 시위를 개최한다. 같은 날, 부산, 대구, 광주, 인천 등 지방의 24개 대학 대학생들도 가두시위를 감행했다. 이 날의 시위 중 경찰 가스차 3대가 불에 탔으며 버스 1대가 시위진압 경찰 배치선으로 돌진하여 경찰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한다. 유래없는 유혈 사태에 신현확 국무총리는 특별담화를 발표한다. 1. 늦어도 연말까지 개헌안을 확정하겠다. 2. 정부는 정권 이양 약속을 지켜가고 있다. 3. 사회가 안정되면 계엄령 해제할 것이다. 이와 함께 학생들은 정부의 약속을 믿고 자숙,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와 같은 정부의 발표에 학생 시위대 대표들은 의견이 엇갈렸다. 서울대 학생회 회장 심재철은 신현확의 말을 믿고 해산할 것을 주장하였고 같은 학교 학생회 대의원회 의장 유시민은 정부의 발표를 믿을 수 없으니 계속 시위를 하자고 하였다. 심재철은 시위를 계속하게 된다면 결국 정부는 군을 투입시킬 것이며 이는 전두환을 필두로 하는 신군부에게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반대측을 설득하였고 결국 심재철의 주장이 채택되어 학생 시위는 해산되어 정부는 한 숨을 돌리게 된다. 이 사건은 훗날 '서울역 회군'으로 불리게 된다. <5.17비상계엄확대조치> 1980년 5월 16일 김대중과 김영삼은 아래의 사항을 정부에 요구한다. 1. 비상계엄 즉시 해제할 것 2. 정부주도 개헌 작업 포기할 것 더 나아가 김대중은 자신이 5월 7일 발표한 선언문에 정부가 답변하지 않을 시, 5월 22일 전국적으로 민주화촉진 국민대회를 개최하여 민주화 투쟁을 전개해나가겠다고 발표했다. 최규하는 한국의 급박한 정치 상황과 혼란을 타개하기 위하여 같은 날인 5월 16일, 중동 순방의 일정을 하루 앞당겨 귀국한다. 최규하는 귀국 직후 곧바로 청와대에서 국무총리 신현확, 내무부장관 김종환, 국방부장관 주영복, 계엄사령관 이희성, 전두환 등에게 자신이 중동 순방 중일 때 일어난 한국에서의 상황을 보고 받았다. 이 자리에서 국방부장관 주영복은 북괴 침공설 관련 첩보를 입수하였다고 최규하 대통령에게 보고하였으며, 다음날 전군 지휘관 회의를 개최하여 대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보고하였다. 다음 날 개최된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는 비상계엄령을 해제시키지 않고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시키는 것이 현 상황을 수습하는 길이라는 의견이 나왔고 그 자리에 참석해있던 하나회 소속 노태우, 박희도 등이 이에 동조하는 발언을 했다. 전두환,이희성,주영복 이 세 사람은 전군 지휘관 회의가 끝난 후 최규하 대통령에게 찾아가서 위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보고하였다. 전두환은 여기서 추가적으로 최규하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과 '국회를 대신할 비상기구의 설치'를 요청하지만, 최규하 대통령은 전두환의 요구는 거절하고 비상계엄령 확대에 동의하게 된다. 결국 야권과 학생들이 요구하던 계엄령 해제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10.26사태 이후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선포된 계엄령은 오히려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에 적용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김대중은 여태까지 진행되었던 학생 시위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되어 5.17비상계엄확대조치 선포 직후 체포되어 보안사령부로 연행되었으며 공화당 총재인 김종필 또한, 박정희 정권 당시 권력형 부정축재 혐의를 적용받아 5.17비상계엄확대조치 선포 직후 체포되어 보안사령부로 연행되었다. 신민당 총재인 김영삼은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자 연행자를 즉시 석방하고 계엄군을 철수 등을 요구하였으나 5월 20일부로 가택연금 조치에 처해지게 된다. ■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그리고 그 후 ◇ 1980년 5월 18일 정부의 계엄령 확대조치에 반발한 광주 시내에서 시위가 발생하게 되고 이것은 곧 우리가 알고 있는 5.18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5.17비상계엄확대조치> 1980년 5월 17일 5.17비상계엄확대조치로 야권 및 재야세력이 주장하던 계엄령 해제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10.26사태 이후 제주도에 적용되지 아니하던 계엄령이 제주도까지 확산되기에 이른다. 학생들을 조종하여 사회의 혼란을 야기하였다는 이유로 김대중을 비롯한 야권 인사들이 체포되어 연행됨과 함께 김종필을 비롯한 박정희 정권 인사들 또한 부정 축재 혐의로 체포되어 연행된다. 계엄령에 의해 전국 각지 대학교에 계엄군이 진주하였고 전남대학교의 계엄군은 학교에 남아 시위를 주동하던 8명을 체포한다. <5월 18일 - 최초 사망자의 발생과 유언비어> 계엄령 확대 조치와 함께 전국 주요 대학교에 진주한 계엄군은 학생들에 의한 소요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들의 등교를 제지했다. 그런데, 전남대 앞에서는 등교를 요구하는 학생들이 모여들었고 계엄군은 이를 제지하며 등교를 할 수 없으니 돌아가라고 발표한다. 이에 학생들은 계엄군을 향해 돌을 던지며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고 학생들의 투석 공격으로 분노한 공수부대원들은 진압봉을 들고 고함을 지르며 돌진 공격을 감행하여 학생들을 진압하기에 이른다. 전남대에서의 충돌로 공수부대원 7명과 학생 수십 명이 부상을 당했다. 전남대 등교를 거부당한 학생들은 계엄군을 피해 금남로로 일제히 모여들었고 여기서 "전두환은 물러가라, 김대중 석방하라"를 구호로 외치며 시위를 벌이게 된다. 경찰은 이들을 해산하는데 실패하였고, 윤흥정 전교사령관에게 "경찰 병력이 시위 진압을 실패했으니 군 병력을 투입시켜달라"고 요청한다. 공수부대는 시위대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진압봉을 이용하여 시위대를 가격하고 구타를 하였는데 이를 지켜보던 광주시민들이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윤흥정 전교사령관에게 지시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시위가 없는데 광주에서만 시위가 발생했으니 서둘러 진압할 것" 이때 광주에는 2개 대대의 600여 명의 병력이 계엄군으로 파견되어 있었는데, 이희성은 사태의 조기 진압을 위하여 광주로 1개 공수 여단의 증파할 것을 결정한다. 이 날, 광주시민 김경철(28세)이 사망하였다. 그는 광주 민주화 운동 최초 사망자이며 원인은 후두부 찰과상 및 열상이었다. 같은 날, 원인을 알 수 없는 유언비어가 유포되었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여학생을 발가벗긴 채 유방을 칼로 도려내어 죽였다. 2. 임산부를 대검으로 찔러 태아를 꺼내서 길바닥에 버렸다. 3.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들 씨를 말리러 왔다. <5월 19일 - 최초 사격과 과격해지는 시위 양상>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윤흥정 전교사령관에게 지시했다. 호남지역은 일반적으로 김대중을 우상시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계엄군은 시민을 자극하지 않도록 특별히 유념하고 광주 소요사태는 배후 조종세력이 지역 감정을 자극, 유발시키는 유언비어를 날조 및 유포하고 있으니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할 것 공수부대의 강경 진압에 분노한 시민들은 시위대에 하나 둘씩 참여하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공수부대에게 화염병과 돌을 투척하며 대항했고 공수부대는 시위대를 검거하고 진압봉으로 가격, 군화로 차는 등 시위와 진압 강도가 5월 18일보다 한층 더 과격해지고 있었다. 장형태 전남도지사를 비롯한 기관단체장들은 윤흥정 전교사령관에게 면담을 요청하였고 그들은 그 자리에서 "계엄군의 진압 행동이 과격하고 어느 나라 군대인지 모르겠으며 고교생들 또한 동용하기 시작했으니 연행자를 전원 석방하라"고 요구하였다. 이에 윤흥정 전교사령관은 계엄군이 시위대를 잔혹 진압하지 말 것을 지시하고 시위의 주동자를 제외한 모든 이는 석방하라고 지시했다. 한편, 일부 시위대는 기름통에 불을 붙여 경찰 저지선으로 굴려 보내 폭발시켰으며 광주 민주화 운동 발생을 방송하지 않는 MBC 건물에 돌을 던지고 취재 차량 1대를 불태웠다. ◇ 5월 19일에는 최초 사격도 발생했다. 익명의 제보자가 "사직공원에 공수부대원 시체가 있다"고 계엄분소에 허위 신고를 하였고 이에 공수부대가 사직공원을 수색하였으나 이는 거짓이었고, 그들은 복귀하기 시작했다. 그때 시위대가 기습적으로 그들을 공격하였고 불붙은 짚단을 장갑차 안으로 던져 넣으려 했다. 이에 장갑차 내부에 있던 장교가 M16소총으로 장갑차 뚜껑을 열던 시민에게 공포탄 사격을 했는데 이때의 사격으로 공포탄에 맞은 김영찬(19세)이 대퇴부에 부상을 입었다. 같은 날, 광주시민 김안부(36세)가 전두부 열상 등으로 사망했다. <5월 20일 - MBC 방송국 방화와 경찰관 사망 사건> 5월 20일이 되자 아래의 유언비어가 적힌 유인물이 나돌았다. 1. 죽은 인원이 수십명이다 2. 공산당도 이렇게 무자비하지 않았다 3. 계엄군이 경상도 출신이다 시위대는 MBC 방송사에 광주에서의 사태를 방송하라고 요구하였으나 이날 뉴스에서도 역시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기사가 방영되지 않자 분노하여 방송국에 화염병을 투척하여 방송사가 화염에 휩싸였다. 한편, 노동청 앞에서는 시위대와 경찰들이 대치하고 있었는데 고속버스 1대가 경찰 저지선으로 돌파할 목적으로 돌진하여 경찰관 4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때 버스를 몰았던 김갑진, 배용주는 군중들이 버스를 탈취, 몰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하여 버스를 몰았는데 운전 도중 연기 등으로 앞이 보이지 않아 버스를 멈췄더니 사고가 났다고 진술했다.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광주 소요 사태가 격화되자 20사단의 증파를 결정했다. <5월 21일 - 계엄군의 실탄 사격과 시위대의 광주 장악> 20사단의 광주 증파가 결정되자 20사단은 부대이동을 하여 광주에 도착하였는데 사단 지휘차량 인솔대가 광주공단 입구에서 시위대의 화염병 공격을 받게 된다. 여기서 그들은 시위대에게 사단장 지프차 등 지휘차량 14대를 탈취당한다. 그동안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함구하던 정부는 이 날 최초로 광주 민주화 운동 발생에 대해 발표한다. 지난 18일 오후부터 광주 일원에서 발생한 소요 사태가 아직 수습되지 않았다 20일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각종 유언비어가 유포되어 이에 격분한 시민들이 가세함으로써 사태가 악화되었다 21일 오전 7시 현재 군경 5명과 민간인 1명이 사망하였고 조속한 시일 내에 평온을 회복하도록 모든 대책을 강구하겠다 또한, 사태의 조기 진압에 실패한 책임을 들어 윤흥정 전교사령관이 해임되고 후임에 소준열 전교사령관이 임명되었다. 한편, 시위대는 사체 2구가 실린 수레를 앞세우고 공수부대의 만행을 규탄하며 계엄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사태 해결을 위해 장형태 전라남도 도지사와의 면담을 요구하였는데 장형태 도지사가 시위대 앞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마이크를 설치하는 도중 도지사가 광주시장인 구용상에게 "먼저 나가서 시위대를 진정시켜달라"고 하였다. 시위대는 도지사가 아닌 광주시장이 나타나자 "도지사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흥분하여 화염병과 각목을 던졌고 결국 전남도지사는 시위대 앞에 서 연설을 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대신 장형태 도지사는 헬기를 타고 직접 방송을 하기에 이른다. "계엄군이 철수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으니 시민 여러분은 해산하고 생업에 종사해달라" 이에 시위대는 오전 12시가 될 때까지 계엄군이 광주에서 떠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계엄군은 철수하지 않았고, 이에 시위대는 계엄군의 저지선을 돌파할 목적으로 버스를 몰아 계엄군 저지선으로 돌진을 감행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최초 실탄 사격이 발생한다. 사격 명령자는 없었으며 이들은 시위대의 버스 돌진 공격으로 자위권을 발동한 것이었다. 이 사격으로 버스 운전사가 사망하였고 시위대는 "계엄군이 총격을 가했다"고 주장하며 전남 도처에 위치한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 무장하였고 무기 사용 교육을 실시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시민군'이라 불리우는 무장시위대의 출범이었다. 시민군은 계엄군과 총격전을 시작하였으며 LMG기관총을 이용하여 전남도청과 해산을 종용하는 군 헬기 등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 시위대가 무장을 하고 계엄군과의 총격전까지 벌어지자 전교사는 계엄군을 전남도청에서 철수시켜 광주 외곽으로 이동시켰으며 시위대가 전남도청을 장악한다. 계엄군이 철수하는 도중 시위대가 총격과 차량 돌진 공격을 감행하여 군 차량 3대가 전복하였고 군인 2명이 사망, 6명이 부상을 당했다. 국무총리인 신현확은 사태의 책임을 지고 국무총리직에서 사임했다. <5월 22일 - 시민수습위원회의 출범과 시민군 내부의 갈등> 이날, 전남도청에서는 사태의 해결을 위하여 시민수습위원회가 출범하였다. 그들은 광주 시내에서 철수한 계엄군 본부에 찾아가 사태 해결을 위해 협상을 한다. 요구사항은 "군의 과잉 진압을 인정하고 사후 보복하지 않으면 무장 해제 하겠다"는 것이었다. 군은 "모든 문제는 무기를 반납한 후에 논의될 수 있다"고 하였고 연행하였던 848명을 석방했다. 수습위원회는 협상 결과를 전남도청의 시위대에게 보고하면서 "무기는 무조건 반납할 수 밖에 없다"고 하자, 시위대는 반발하며 이들의 협상 결과가 미온적이고 굴욕적이라며 야유를 보내며 무기 반납을 거부했다. 정부측에서는 사태의 해결을 위해 신현확의 사퇴로 국무총리 서리를 하게 된 박충훈이 광주에 방문하여 특별담화를 녹음한 후 상경했다. <5월 23일 - 계엄사의 진압 작전 논의와 총기 반납 논쟁>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진압 작전을 논의하면서 북괴 개입설을 제기했다. "광주 소요 사태에는 가발 사용자와 복면한 자 등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북괴의 침투를 의심케 하는 상태" 시민군은 시위 도중 사망한 시위대 사체 58구를 전남도청에 전시하였고 시민군 사이에서는 무기 반납 문제를 두고 논쟁이 오고 갔다. 온건파는 여태껏 회수한 총기 3,000여 정 중 200정을 우선적으로 계엄군 본부에 방문하여 반납하였으나 그 후에는 강경파의 제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5월 24일 - 계엄군 간의 오인사격과 간첩 이창용> 이 날, 광주 외곽에 배치된 계엄군들 간에 오인사격이 다수 발생하였다. 매복하고 있던 계엄군들이 아군을 시민군으로 오인하여 사격하고, 공격받은 계엄군은 이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교전이 발생한 것인데 아군 간의 오인사격으로 인해 군인 12명이 사망하였다. 오인사격으로 격분한 공수부대는 체포한 시민군 1명과 시민군으로 오인된 마을 청년 3명, 하수구에 숨어있던 50세 여성에게 총격을 감행하여 사망하게 하였다. 한편, 전남도청의 온건파는 계엄군 본부에 방문하여 협상을 벌였고 계엄군 시내 진입 금지, 과잉 진압 인정, 연행자 석방, 사태 후 처벌 금지 등을 약속받고 시민군에게 결과 보고를 하며 무기를 반납하라고 호소하였으나... 강경파는 온건파의 요구를 묵살하고 오히려 자유성토대회를 열어 전두환 화형식을 개최하고 가두행진을 하며 무기를 반납하지 않았다. 한편, 서울에서 북괴 간첩 이창용이 검거되었는데 경찰은 아래와 같이 발표했다. 간첩 이창용이 남해안에 침투, 광주에 들어가 선동 및 분란 행위를 하려 하였으나 계엄군의 검문 검색으로 포기하고 특급열차로 서울역에 도착하여 배회하다 검거되었다 ※훗날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이창용이 첩보 행위의 목적으로 침투한 북괴 간첩이 맞지만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선동 행위'라는 침투 목적은 신군부에 의해 조작되었다고 한다. <5월 25일 - 전남도청 독침사건과 최규하 대통령의 광주 방문> 전남도청의 시민군 중에 장계범과 정향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들은 시민군에 의해 북괴 간첩으로 오인받게 되었다. 이에 장계범은 "독침에 맞았다"고 주장하며 쓰러졌고 정향규는 장계범을 차량에 태워 전남도청을 빠져 나간다. 그들은 후일, 유언비어 날조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 2년형에 처해진다. 최규하 대통령은 사태의 수습을 위해 광주로 향했다. 광주에 도착한 최규하는 "내가 직접 전남도청으로 가 시민들을 만나보겠다"고 하였으나 소준열 전교사령관을 비롯한 관료들이 이를 극구 만류하여 호소문을 녹음 한 뒤 상경한다. 다 같은 국민 사이에 대화로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으며 최대한 관용을 베풀고 불문에 부칠 것이니 냉정과 이성을 되찾아 사태를 수습합시다. <5월 26일 - 전남도청 TNT 제거와 온건파의 도주> 이 날, 전교사 교관 4명이 전남도청에 잠입하여 TNT와 수류탄 496발의 뇌관을 제거했다. 사진에 나와있는 배승일 씨는 이 날의 공로로 훈장을 받게 되지만 훗날 박탈당했다. 그러나 소송을 통해 훈장을 되찾아 명예를 회복했다. 전남도청에서는 온건파가 아래와 같이 주장하며 무기를 반납하자고 주장했다. "진압작전시 대항하는 것은 엄청난 피해만을 야기할 뿐이므로 무기를 반납하고 의연히 처벌받자" 그러나 강경파인 윤상원과 박남선 등이 최후 항전을 주장하였고 무기 반납을 주장하는 온건파를 총으로 위협하였으며 온건파는 전남도청에서 빠져나와 도주한다. 시민군은 계엄군의 공격이 임박한 것을 알고 각지에 배치되었고 전남도청의 민주시민투쟁위원회 홍보부 소속 박영순, 이경희가 광주시내를 돌며 시민군에게 전남도청으로 와 시민군에 합류하는 방송을 하였다. <5월 27일 -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압> 계엄군은 새벽에 전남도청을 기습 공격하여 저항하는 시민군과의 교전을 벌였으나 쏜살같이 진압에 완료하고 전남도청을 점령함으로써 광주에서의 작전을 종료한다. 이 날, 진압작전으로 인해 시위대 17명이 사망하였고 시위대 295명이 체포되었으며 계엄군 3명이 사망하였다. <그 후> 광주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군인 23명, 경찰 4명, 민간인 166명 등 모두 193명이 사망했다. 훗날 최규하가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고 전두환이 대통령에 선출되는데 레이건의 당선으로 공산주의의 소멸을 주장하고 있던 미국은 한국에서의 혼란을 원치 않았기에 전두환 정부를 인정하고 협력관계를 결성한다. 5.17비상계엄확대조치로 인해 체포되어 연행된 김대중은 광주 민주화 운동의 배후 조종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요청으로 형 집행 정지 처분을 받았으며 1982년 12월, 석방 후 미국으로 망명한다. 박정희 정권의 2인자이자 박정희 사후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김종필은 부정 축재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6월민주항쟁으로 직선제 개헌이 될 때까지 그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았다. 김영삼은 신군부에 의해 정계 은퇴 선언을 강요받아 은퇴 선언을 하였으나 김대중이 체포되었다가 미국으로 망명하고, 정부의 일부 인사의 정치 활동 금지가 일부 완화되자 정계에 복귀하여 6월민주항쟁 발생 이전까지 야당 활동을 하였다. 일부 학생들은 1985년 5월 23일, 서울에 위치한 미국 문화원을 기습으로 점거하여 "광주 학살 책임지고 미국은 사과하라"며 농성을 벌였다가 26일 자진해산, 경찰에 검거되었다. 이들은 "5.18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정권을 미국이 인정한 것"을 이유로 들어 시위를 벌인 것이었다. 이 날의 농성 사건에는 현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청래도 참여했었다. 한국의 민주화를 주장하며 미국을 동반자로 생각했던 일부 학생들은 미국이 전두환 정부를 인정하자 반미(反美)성향을 띠게 되었고 한국의 민주화에 필요한 동반자를 '북한'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NL이라고 분류되는 주체사상파가 등장하게 된 것이었다. 6월민주항쟁의 결과로 직선제가 부활하고 노태우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곧 치루어진 총선에서 패배하여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되고, 결국 노태우는 야권의 압력에 굴복하여 5공청문회를 개최하게 되는데 전두환이 국회에 출석하였다가 초선 의원이었던 노무현이 명패를 던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노태우 대통령을 거쳐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군부 인사들의 정치가 끝나고 민주화 인사가 정권을 잡게 된다. 이에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에 체포되었던 정동년은 전두환, 노태우 등을 비롯한 신군부 인사들을 검찰에 고소하였는데 검찰은 12.12사태와 5.18광주 민주화 운동, 5공화국 인사들을 소환하여 조사한 결과 전두환, 노태우 등에게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려 처벌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의 바탕이 되는 수사보고서는 이 때 작성되었으며 계엄군의 최초 실탄 발포 당시 사격 명령자는 없었던 것으로 발표되었고 광주 민주화 운동 초기 유포된 유언비어의 출처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의 발표에 여론은 들끓어 올랐고 때마침 발생한 노태우의 비자금 사건이 화제가 되자 그 사건에 연루되어있던 김영삼은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전두환과 노태우를 구속 수감하여 처벌하기에 이른다. 전두환은 사형선고, 노태우는 징역 17년에 처해졌으나 제15대 대선에서 김대중이 당선되자 1997년 12월 22일, 김영삼이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한 특별사면을 시행하여 두 사람은 석방되었다. 최규하는 훗날 정부기관에서 12.12사태와 5.18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조사를 할 때 증인으로 출석받을 것을 요구받았으나 조사가 끝날 때까지 끝내 출석하지 않았으며 그는 사망할 때까지 위 사건들에 대한 증언을 하지 않았다.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주영복 국방부장관은 5.18 재판 당시 5.17비상계엄확대조치에 깊게 관여한 것이 인정되어 징역 7년형에 처해졌으나 역시 사면됐다.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의 31사단장이었던 정웅은 "광주 민주화 운동의 무력진압을 막으려 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고 주장하였으며 김대중의 평민당 소속 국회의원을 지냈다.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사망한 시민들은 광주 망월동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으며 계엄군 및 경찰들은 서울 동작동 국립 현충원 28묘역에 안장되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계엄군과 경찰, 시민들 모두에게 가슴 아픈 상처를 남겼다. 다시는 이러한 불미스러운 역사가 되풀이되지를 않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작성자 참고한 자료> 1. 1997년 서울지방검찰청, 군 검찰부 5.18 수사보고서 2.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5.18 수사보고서 이 글은 수사보고서의 원문을 근거로 하였으나 가독성을 위하여 계엄군의 배치도와 각 날짜마다의 사망자 명단을 요약하였음 "정치성향을 배제해 최대한 중립적으로 작성" 여기까지입니다. 다시 봐도 어떻게 표현이 안될 정도로.. 당시의 처참한 상황이 그저 막막하고 슬플 따름이네요.
'생리 혐오'에 맞서는 인도의 여성들
생리, 혹은 월경은 문화적으로 '나쁜 것'으로 치부되어 왔습니다. 월경은 숨겨야 할 것으로 간주되었고, 많은 종교에서는 이 기간동안 여성의 활동을 제한해 왔습니다. 일례로 힌두교는 생리중인 여성이 크게 말하거나, 다른 사람과 접촉하거나, 심지어 사원에 들어가는 것을 제한해 왔죠. 이 같은 관습은 최근 인도에서 흥미로운 운동을 촉발시켰습니다. 이 캠페인은 인도의 힌두교 수장인 고팔라크리샨의 발언에 대응하며 나타났습니다. 그는 생리가 가능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인도의 유명한 사원에 들어갈 수 없는 정책을 옹호했죠. 심지어 그는 여성이 사원에 들어오려면, 여성이 생리 중인지 검사하는 기계가 필요하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는 지속적으로 생리는 불순하고 더럽고, 숨겨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죠. 대학생인 니키타 아자드는 이에 맞선 캠페인을 조직합니다. 바로 '#HappyToBleed', '#피를 흘릴 수 있어서 행복하다' 캠페인입니다. 이 캠페인은 월경을 하고 피가 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금기시 되어야 할 일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힌두교 수장의 발언에 대한 대응만은 아닙니다. 아자드는 말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모든 종류의 가부장제를 규명하는 것이고, 우리가 헤쳐나갈 난관을 대비하는 것이다' 캠페인은 인도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생리를 불순하게 여기는 문화는, 한 사람의 몸을 혐오에 노출시킬 뿐만 아니라 건강상의 문제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66%에 이르는 학교들이 제대로 된 화장실을 갖추지 않고 있으며, 이 때문에 소녀들은 월경 기간동안 학교를 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한 월경 금기는 제대로 된 생리 용품의 보급을 막고, 이 때문에 종이, 심지어 나무 이파리를 생리대 대용으로 사용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아자드의 말을 마지막으로 전합니다. '이 운동의 목표는 월경은 그저 신체 현상이며, 커튼 뒤에 숨어야 할 어떤 것이 아님을 알리는 것이다.'
정옥선할머니의 증언으로 재구성된 위안부 만화 "문신"을 보셨는지요??펌글
저는 보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늘 일을 보고 다시 보고 싶지 않던 만화 "문신"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올릴까 말까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왜나면 처음 이 만화를 보았을 땐 속이 너무 울렁거렸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기사들을 보면 속이 울렁거립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자가 한  "더이상 국민이 피해받지 않는 나라 만들 것" "최선의 노력으로 이뤄낸 결과…위안부 할머니들 정신적 고통 감해지길" "다시는 이런 일 되풀이 되지않는 전기돼야" "일본의 잘못된 역사적 과오에 대해서는 한일관계 개선과 대승적 견지에서 이번 (위안부 문제 해결) 합의에 대해 피해자 분들과 국민 여러분들께서도 이해를 해 주시기 바란다" 이런 말에 비하면 오늘 이 글들이 제 속을 그리고 여러분의 속을 울렁거리게 만들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언론 헤드를 장식한 '역사적 과오에 대해서는 한일관계 개선과 대승적 견지에서 피해자 분들과 국민 여러분들이 이해하라' ?? 어디다 대고 이해하라 마라인가요? 당사자인 피해자도, 그렇다고 그걸 지켜보는 국민도 아닌 것이 말입니다. 아래 만화에도 적혀 있듯이 심신이 약하신 분들은 읽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한번을 읽어도 두 번은 못 읽겠습니다.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sisa&no=640340#.VoOVarkvVWA.mailto 많은분들이 볼 수 있게 클립 꾸욱~~ 공유많이 해주세요. 감옥 갈 각오로 다이빙벨 무료 공개합니다 이상호기자 http://www.vingle.net/posts/1295714?shsrc=v
펫샵에서 '상품 가치가 없다'며 버린 강아지, 비누
*본 기사의 내용은 '샤론언니 님'의 제보/취재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2011년 5월, 개농장에서 태어난 강아지 비누는 인청 남동구의 한 펫샵에 소위 납품된 아이입니다. 비누는 펫샵에서 약 7개월을 보내며 몸집이 점점 자라났습니다. 귀여운 아기 강아지의 모습이 사라진 아이들에게 이는 사형선고와 같습니다. 펫샵에 있는 아이들의 운명이 그렇듯, 선택받지 못한 아이들은 어딘가로 사라지거나 그대로 유기됩니다. 비누 역시 펫샵에 의해 어딘가로 내쫓길 운명이었으나 안쓰럽게 여긴 펫샵 직원이 몰래 유기동물사랑나누기 보호소에 몰래 연락했고, 연락을 받은 소장님이 직접 출동해 녀석을 가까스로 구조했습니다. 운이 좋은 걸까요. 2012년 초, 녀석은 보호소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누군가에게 입양되었습니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그 행복은 1년도 가지 않았죠. 그해 겨울, 비누는 자신을 입양했던 여성의 손에 이끌려 다시 돌아왔습니다. 파양이었습니다. 게다가 다시 돌아온 녀석은 이전과 달라져 있었습니다. 다른 강아지들만 보면 심하게 짖거나 달려들며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죠. 사람을 무척 좋아하고 따랐지만, 다른 강아지에 대한 공격성은 쉽게 교정되지 않았습니다. 소장님과 직원들은 이런 비누의 상처를 이해하고 보다듬어줄 사람이 나타나길 기다렸지만, 어느새 7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랫동안 비누를 지켜봐 온 봉사자는 비누에게 다시 가족을 찾아주기 위해 입양홍보 활동을 꾸준히 해왔지만, 비누는 항상 '유기견에 대한 선입견'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닥치곤 했습니다. 바로 나이와 견종의 특성입니다. "나이가 아이들의 가치를 결정짓는 것처럼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물론 그렇게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은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의 나이가 입양의 결정적인 요소인 건 사실이거든요." 비글 특유의 활발함도 입양이 취소되는 데 한몫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활발함은 비누의 잘못이 아니라 견종의 특성이에요. 견종의 특성을 아이의 탓으로 돌리는 시선이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그러면서도 비누에 대한 단점을 감추진 않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사실, 비누가 다른 개들과 잘 지내지 못한 점이 가장 클 거예요. 제가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비누의 단점을 이해해주는 분들이 드물게 나타난다고 해도 나이와 성격 때문에 포기한다는 점이에요. 그게 아쉬운 마음이에요." 처음엔 비누가 다시는 파양하지 않을 완벽한 가정으로 입양 가길 바랐습니다. 1년이 지나자 따뜻한 밥이라도 먹여질 수 있는 집으로 입양 가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 그는 비누가 추운 겨울이라도 피할 수 있도록 임시보호라도 갔으면 한다고 밝혔습니다. "욕심을 많이 줄이는 것 같아 비누에게 참 미안해요. 하지만 비누가 단 몇 달이라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비누를 입양하실 분 혹은 겨울이 지날 때까지 실내에서 따뜻하게 임시보호해주실 분은 아래 담당자에게 연락처로 문의 바랍니다. 입양아 정보 이름: 비누 나이: 8살 성별: 남 특이사항: 사람을 무척 좋아하고 활발하나 다른 개를 싫어함. 입양조건 -다른 동물을 키우지 않는 가정에만 분양 가능 -입양신청서 작성 -책임비 15만원 -6개월간 한 달에 한 번씩 카페 '유기동물사랑나누기(유사랑)'에 입양후기 작성 *책임비는 다른 강아지들의 중성화수술 비용과 보호소 운영비로 사용 예정 입양문의 담당자: 유기동물사랑나누기(유사랑) 전화: 010-9155-3088 010-3398-2467 ⓒ 꼬리스토리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
호갱탈출! 당신에게만 알려드리는 다운점퍼 구매 팁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한 필수 아이템, 다운 점퍼를 구매하기 전 반드시 알아야 하는 꿀팁들을 준비했습니다 :) 가을이 왔었나? 싶을 정도로 날이 추워지니 저절로 손이 가는 옷이 있다. 투박한 ‘오리털 파카’로 여겨지던 다운점퍼다. 과거 미쉐린 타이어 마스코트 같은 근육-다운점퍼가 요즘은 가볍고 더 따뜻해졌을 뿐 아니라 스타일까지 놓치지 않는다. ▲이러려고 ‘근육잠바’샀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하지만 막상 다운점퍼나 재킷을 구입하려고 보니 대충 봐선 얼마나 따뜻한지 알 수 없다. ‘왜 다운점퍼인지?’, ‘필파워는 무슨 소리야?’, ‘왜 얇은데 더 비싸지?’ 이쯤 되면 차라리 다운점퍼를 입고 고산 정복하는 게 더 쉬울 것 같다. 디자인 예쁜 제품을 골라서 돈만 내면 끝날 것 같지만, 막상 사려고 보면 의외로 어려운 다운점퍼 고르기. 같은 이름의 다운점퍼나 재킷이라도 충전재와 함유량에 따라 가격과 품질은 천차만별 달라지니 더 헷갈린다. 덕분에 매번 살 때마다 우리 등골을 휘청이게 만드는 다운점퍼. ‘더 이상의 호갱은 사양이다!’ 를 외치는 그대에게 다운점퍼 구매할 때 꼭 알아야 하는 알짜 정보를 준비했다. 제대로 알아보고 알뜰하게 월동을 준비하자. 속을 보면 알 수 있다! ▲다운점퍼의 보온력을 좌우하는 것은 대부분 겉감 속에 있다.(이미지출처 : 컬럼비아스포츠웨어코리아)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대로 된 ‘다운’ 제품을 고르기 위해서는 충전재, 우모량, 필파워(Fill-Power), 겉감, 이 네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우선 다운 제품의 ‘다운’이 뭘 의미하는 걸까? 여기서 말하는 ‘다운(down)’의 사전적 의미는 새의 솜털. 그중에서도 특히 보온 역할을 하는 가슴 부위의 솜털을 주로 지칭한다. 거기서 의미가 확장된 것이 바로 ‘다운=솜털로 만든 겨울 점퍼나 재킷’이다. 그래서 오리털을 충전재로 사용하면 덕다운(Duck down), 거위 털을 충전재로 사용하면 구스다운(Goose down)으로 불린다. 한마디로 우리가 흔히 덕다운, 구스다운으로 부르던 것은 다운 제품들의 속을 메우고 있는 충전재의 종류를 일컫는 말이다. 최근에는 오리털보다 거위 털이 인기를 끌고 있다. 거위 털은 오리털보다 가격이 비싸지만, 솜털이 길고 숱이 풍성해 보온성이 우수하고 가볍다. 게다가 비틀거나 구겨져도 우수한 복원력을 자랑하기 때문. ▲ 충전재는 오리 솜털(덕다운)보다 거위 솜털(구스다운)을 더 상급으로 친다. 사진은 거위. ■ 솜털 90%? 깃털 10%? 다운 제품의 보온성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충전재의 중량(우모량)이다. 충전재가 많을수록 따뜻한데, 보통 300g 이상이면 ‘헤비다운’으로 분류된다. 300g 미만이면 ‘중량다운’, ‘경량다운’ 순으로 나뉜다. 우모량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충전재의 비율이다. 보통 충전재는 솜털(down)과 깃털(Feather)로 이뤄지며 최고급 충전재일수록 솜털의 비율이 높다. 만약 충전재의 다운 함량이 90%라면 솜털이 90%, 깃털이 10% 사용됐다는 뜻이다. 그런데, 솜털 함유량이 많을수록 보온력이 상승하지만 그렇다고 깃털 함유량이 없으면 안된다. 깃털은 솜털이 한 곳에 뭉치는 것을 막아주고 지탱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솜털 100% 제품이 없는 이유다. 솜털과 깃털의 비율은 대개 제품 택(Tag)의 섬유혼용률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택을 쳐다보지 않고 알아내는 방법은 제품을 만져봤을 때 깃대가 많이 만져진다면 깃털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제품이다. ■ 700? 800? 소매에 쓰여 있는 숫자의 정체는? 정확한 보온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충전재의 비율과 함께 필파워도 확인해야 한다. 요즘은 필파워 지수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추세여서 주로 눈에 잘 보이는 다운점퍼 소맷자락에 이 필파워 지수가 표시돼 있다. 필파워(Fill-Power)는 다운이 눌렸다 다시 살아나려는 복원력을 나타내며 주로 숫자로 표시된다. 일반적으로 필파워 600 이상을 고급 다운으로 치며 800 이상은 최고급 다운으로 분류한다. 최근 출시되는 구스다운은 1000까지 나오는 추세지만 600 이상만 돼도 충분히 높은 복원력을 자랑한다. 필파워가 높으면 그만큼 제품의 모양도 잘 유지되고 보온력도 좋지만, 헤비다운 제품의 경우 필파워가 높으면 팔이 안으로 잘 안 굽혀지는 등 일상적인 용도에선 불편할 때도 있으니 이를 감안해야 한다. 또 보온성능은 필파워보다는 우모량에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다운점퍼를 구매할 때 필파워는 구매에 결정적인 요인이라기보다는 부가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좋다. ▲ 필파워가 높으면 복원력이 우수하지만 그만큼 부피가 커진다.(이미지출처 : www.downandfeathercompany.com) 마지막으로 충전재를 감싸고 있는 겉감을 살피자. 보통 겉감의 원단은 실의 굵기를 표시하는 데니어(denier)를 표시한다. 데니어가 낮을수록 실이 가늘고 밀도가 높아 원단의 촉감이 부드럽고 다운이 밖으로 새는 것을 막아준다. 데니어를 확인하면서 원단의 소재를 함께 살피면 되는데 아웃도어용 고급 다운점퍼에는 주로 윈드스토퍼, 퍼텍스(Pertex)가 사용된다. 윈드스토퍼는 보온과 방풍 기능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도록 개발한 기능성 원단이다. 퍼텍스는 다른 직물에 비해 매우 조밀한 밀도와 초발수 가공능력을 갖고 있다. 여기에 다운프루프(Down-Proof)가공 등이 되어있어 봉제선 사이로 털이 새는 것을 방지해 보온력을 더욱 높이는 게 특징이다. 주로 헤비다운이나 고가의 다운점퍼에 이 소재들이 사용된다. ■ 다운점퍼 구매할 때 가장 중요한 스펙 : 우모량 ▲ 큰맘 먹고 다운점퍼를 지를 계획이라면 이 이미지를 인쇄해서 들고 가자. 위에서 살펴본 내용을 종합해 보면, 다운점퍼를 구매할 때 가장 중요한 스펙은 역시 보온력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우모량이다. 충전재(털)가 많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제품이 따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다음은 충전재의 종류. 덕다운과 구스다운 중 대체로 구스다운의 보온성능이 더 우수하다는 평가다. 때문에 고가의 제품군은 주로 구스다운이 충전재로 들어가 있지만, 간혹 높은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충전재를 제대로 밝히지 않고 덕다운 등을 사용하는 제품이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다만 덕다운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보온력이 확연히 낮은 건 아니므로 무조건 덕다운 제품을 피하기보다는 가격, 기타 편의성, 디자인 등 다른 요소들과 함께 비교하는 것이 좋다. 필파워는 최근 다운점퍼 제조사들이 앞다퉈 마케팅에 활용하는 수치이지만, 헤비 다운의 경우 필파워 600~700 이상이면 보온력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다만 필파워가 높은 제품은 그만큼 우모량이 낮아도 보온성능이 보장되고 빵빵하기 때문에 제품이 가볍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가능하다. 헤비 다운을 구매할 때는 보온력보다는 고급 제품과 보급형 제품을 나누는 기준으로 보면 된다. 반면 충전재가 많이 들어가지 않는 경량~초경량 제품의 경우에는 필파워가 높으면 한정된 충전재로 더 많은 공기를 머금을 수 있는 제품이기 때문에 그만큼 보온력이 우수하다고 볼 수 있다. ■ 초경량? 헤비? ‘몸무게 몇이야?’(이미지출처 : 네파) 일반적으로 우리가 입는 다운점퍼는 크게 초경량 다운과 좀 더 두꺼운 중량, 헤비 다운으로 나눌 수 있다. 초경량 다운 제품은 가벼운 무게와 우수한 편의성에 힘입어 초겨울 야외 활동이나 나들이용으로 사랑 받는다. 대신 강추위에는 보온능력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으므로 레이어드해서 입으면 보온성을 높일 수 있다. (이미지출처 : 디스커버리) 헤비 다운점퍼는 가볍고 따뜻한 다운 충전재의 양을 대폭 늘려 보온성을 한층 강화한 제품이다. 방풍 및 방수성이 탁월한 윈드스토퍼 같은 소재를 적용해 겨울철 칼바람이나 폭설 가운데에서도 따뜻하게 착용할 수 있다. 초경량 다운재킷이 우모량 100g 선이라면 중량이나 헤비다운의 무게는 그 2배 이상에 달하는 300~500g 정도로 그 무게만큼 가격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 추운 겨울 다운점퍼나 재킷으로 시린 옆구리라도 데우자■ 고가의 다운점퍼 저렴하게 구입하는 법 다운점퍼는 주로 아웃도어 브랜드가 꽉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아웃도어 브랜드는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기능성은 기본으로 갖추 돼 다양한 패션 영역을 넘나들 수 있는 스타일로 탈바꿈하고 있다. 등산복 이미지를 벗고 회춘을 꾀하고 있는 셈. 한때 학생들 사이에서 ‘대장 잠바’로 명성을 날렸던 것처럼 이제 다운점퍼는 캐주얼은 물론 오피스룩까지 다양한 스타일로 소화할 수 있는 제품들이 사랑받고 있다. 이처럼 다운점퍼는 겨울철 교복처럼 매일 입을 수 있는 효자 아이템이지만 구매를 앞두고 보면 대개 가격대가 사악(?)하다. 특히 올해 출시된 신상 다운점퍼들은 수십만 원은 기본이어서, 이런 신제품의 가격대가 부담스럽다면 지난 시즌 사랑받았던 다운점퍼를 살펴보면 할인 폭이 크므로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기존 인기제품이 스테디셀러로 매년 업그레이드되는 수준으로 나오기도 하니 잘 고르면 신상 부럽지 않은 다운점퍼가 많다. 라푸마 헤링본 라쿤퍼 구스다운 아웃도어 브랜드 제품이지만 일반 남성 브랜드 다운재킷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 보카시 컬러의 배색으로 어떤 옷이든 캐주얼하게 매치할 수 있는 제품이다. 라푸마의 고밀도 경량 소재인 에어제닌을 사용해 따뜻하지만 가볍게 착용할 수 있다. 거위 솜털을 80% 함유하고 있으며 700필파워의 높은 복원력을 자랑한다. 밀레 엠리밋 플레인 다운 2015년 겨울 상품으로 사파리 형태의 구스다운이다. 오리 솜털 90%를 360g 충전재를 함유했다. 지퍼와 벨크로 처리해 이중 여밈 구조와 이중 소매로 보온성과 방풍성을 강화했다. 허리 부분에 스트링이 있어 핏 조절이 가능하며 탈착이 가능한 라쿤퍼 후드로 다양하게 스타일을 연출 할 수 있다. 머렐 블레이즈 사파리 구스다운 프리미엄 헝가리산 구스 다운을 사용해 거위 솜털 90% 충전량 340g을 함유했으며 800필파워로 높은 보온성을 자랑한다. 윈드스토퍼 다운 소재를 사용해 발수 및 방풍은 물론 투습기능까지 높였으며 배색 디자인으로 아웃도어 활동은 물론 일상에서도 스타일까지 한 몫 더할 수 있는 제품. K2 플레임 구스다운 몸의 실루엣을 부드럽게 살린 슬림한 디자인과 내추럴한 컬러의 여성용 다운점퍼. 허리벨트로 보다 날씬하게 입을 수 있다. 거위 솜털 90%, 200g 충전재를 함유했다. 탈부착 가능한 후드에 천연 여우털로 보다 따뜻하고 스타일리시하게 입을 수 있다. ■ 다운재킷 오래 오래 새것처럼 겨우내 다운재킷을 입고 나면 더러워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큰맘 먹고 장만한 다운재킷을 ‘대접’한다며 세탁소에 가서 드라이클리닝을 맡기는 것은 오히려 다운재킷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이다. 드라이클리닝에 사용되는 석유계 솔벤트는 다운 재킷 속 거위 털의 유지분까지 함께 세탁시켜 털을 수축시키고 꽉 뭉치게 하여 보온력을 잃는다. 다운재킷 세탁은 집에서 미지근한 물에 중성세제를 사용해 가볍게 손세탁한다. 강하게 비벼서 빠는 건 금물. 부득이하게 세탁기에 돌린다면 중성세제를 넣고 강도를 약하게 세탁한다. 이때 모자는 따로 분리하고 지퍼는 끝까지 채운 후 단독 세탁한다. 테니스공을 함께 넣고 빨면 다운이 한쪽으로 뭉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세탁한 다운재킷은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 뒤집은 후 완전히 말리는 것이 좋다. 완전히 건조되지 않으면 자칫 다운이 부패할 수 있으니 말리는 것도 꼼꼼히 할 것. 마른 다운재킷은 살살 두들겨주면 세탁 후 뭉친 털이 되살아나 처음 같은 형태와 풍성함을 느낄 수 있다. 다운재킷 보관은 옷걸이 걸어두게 되면 다운이 밑으로 처질 수 있으니 부직포 백이나 종이 백에 싸서 통풍이 잘되는 곳에 돌돌 말아 보관한다.
천사의 종류와 계급에 대해 알아보자
■ 천사의 종류 1. 미카엘 2. 가브리엘 3. 라파엘 4. 우리엘 5. 라구엘 6. 사리엘 7. 레미엘 8. 메타트론 9. 라지엘 보통 3대 천사라 하면 미카엘 ~ 라파엘 보통 4대 천사라 하면 미카엘 ~ 우리엘 보통 7대 천사라 하면 미카엘 ~ 레미엘 메타트론, 라지엘은 후보군일 때도 있고 독립적인 존재. 각 종교 교리와 전승 방식이 유독 달라서 대천사에 비해 독특하고 상이한 부분이 많으므로, 7대 천사와의 합집합과 교집합, 부분집합이 모두 공존하는 조금 독특한 존재들. ■ 천사의 계급 카톨릭 교리에서는 천사의 역할과 등급 명시. 개신교 교리에서는 천사의 역할과 등급 명시 없음. [카톨릭 교리에서의 천사 등급] □ 상급 3대 제 1계급: 치품 (熾品, 치천사, Seraphim, 세라핌) 제 2계급: 지품 (知品, 지천사, Cherubim, 케루빔) 제 3계급: 좌품 (座品, 좌천사, Thrones, 트론즈) □ 중급 3대 제 4계급: 주품 (主品, 주천사, Dominions, 도미니온즈) 제 5계급: 역품 (力品, 역천사, Virtues, 버추즈) 제 6계급: 능품 (能品, 능천사, Powers, 파워즈) □ 하급 3대 제 7계급: 권품 (權品, Principalities, 프린시펄러티즈) 제 8계급: 대천사 (大天使, Archangelus, 아크엔젤스) 제 9계급: 천사 (天使, Angelus, 엔젤스) 아래부터는 9대 천사와 계급 서술. 참고로 제 카드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한번 길면 상당히 깁니다ㅎ.ㅎ 그래도 지난번 김재규, 5.18보다는 짧고 무겁지 않으니 가볍게 읽어주세요:) ■ 대천사 미카엘 (Michael) 칭호: 신을 닮은 자 역할: 천사군단의 최고 지휘관 심벌: 칼집에서 뽑아든 검, 저울 □ 지력은 물론 용맹함까지 갖춘 천사계의 제 1인자 □ 죽은 자의 영혼을 저울에 달다 □ 위풍당당 신의 사자 □ 이스라엘의 수호천사 성서 이전과 이후를 불문하고 미카엘은 항상 천사들의 최고 자리에 군림해왔다. 그는 원래 기원전 7세기경 오리엔트 세계에서 권세를 떨친 칼데아인들의 신이었다고 한다. 유대교, 기독교를 통해 그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신의 한쪽 팔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고, '역천사(力天使) 버추즈)의 지도자', '대천사 아크엔젤의 지도자', '하느님 어전의 왕자', '자비의 천사', '정의의 천사', '성별의 천사' 등등 대단히 많은 칭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칭호들은 그의 재능을 뒷받침하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참고로 미카엘과 사탄은 쌍둥이 형제. 한국에서의 미카엘은 미셸, 미쉘, 마이클과 같이 혼용함. ■ 대천사 가브리엘 (Gabriel) 칭호: 하느님은 우리의 힘 역할: 옥좌 왼쪽의 자리에서 하느님을 섬김 심벌: 백합꽃 □ 대천사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며 처녀 수태를 알린 천사 □ 무하마드에게 코란을 기록하게 한 천사 □ 지혜와 격려의 천사 아기 천사의 모습 또는 아기 천사를 거느리는 묘사가 많다. 가브리엘은 미카엘처럼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천사다. 따라서 별명도 많아 '수태를 알린 천사', '자비의 천사', '복수의 천사', '죽음의 천사', '묵시의 천사', '진리의 천사', '에덴 동산의 통치자' 등 다양하게 불린다. 물론 4대 천사 중의 하나이다. 대단히 흥미롭게도 가브리엘은 대천사 가운데 유일하게 여성이라는 설이 있다. 일반적으로 유대교·기독교 개념에서 천사란 인간을 초월한 존재이기 때문에 남성이나 여성과 같은 성별 따위는 없다(non-sex)고 인식되었다. 중세 이후의 그림 등을 보면 하위 천사들이 여성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있는데 비해, 7대 천사는 모두 남성적인 특징을 갖추고 있다. 중성적으로 묘사되는 가브리엘을 빼고는 말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미카엘같은 경우에는 남성임을 확실히 판단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수태할 것을 알리기에 앞서, 예수에게 세례를 주게 되는 요한의 탄생을 예고했다. ■ 대천사 라파엘 (Raphael) 칭호: 신의 열 역할: 인간들을 치유 심벌: 불꽃 검 □ 인간들의 고통을 치유하는 상냥한 마음의 천사 □ 인간으로 변신해 악마를 퇴치 □ 죽은 자 나라의 안내인 □ 의학 지식에 해박 대천사 라파엘도 미카엘과 마찬가지로 칼데아인들의 신이었는데, 당시에는 라비엘(Labbiel)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라파엘이란 말의 어원은 '신의 열(熱)'을 의미한다. 그는 미카엘, 가브리엘과 나란히 가장 유명한 세 천사로 꼽힌다. '치유를 행하는 빛나는 자', '인간의 영혼을 지키는 자', '의사', '외과의', '에덴 동산에 있는 생명의 나무의 수호자' 등등으로 칭해지고 있다. 이러한 칭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라파엘은 인류의 보호자로서 특히 의학 지식에 관해 아주 해박하다고 한다. ■ 대천사 우리엘 (Uriel) 칭호: 신의 불꽃 역할: 태양의 운행과 인간 영혼의 수호자 심벌: 불의 검, 방패 □ 최후의 심판 때 지휘채를 휘두르는 '의로움의 천사' □ 변신한 사탄의 정체를 간파한 우리엘 □ 천계의 비밀을 인류에게 전수 □ 종말이 올 경우 제일 먼저 신호를 알리는 예언자 천사 하면 대개 친절하고 부드러우며 사람들을 지켜주는 존재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그들은 그렇게 친절하지는 않다. 그보다는 엄정한 신의 의향을 최후까지 반영하여 인간에게 엄격히 대응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대천사 우리엘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우리엘은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두려운 임무를 맡고 있는 셈이다. 우리엘을 비롯한 대천사들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인 '종말'에 관해 에서 발췌, 소개한다. 아울러 그때의 우리엘의 임무에 관해서도 살펴보자. 종말의 때가 온다는 신호는 신이 몸소 보여준다고 한다. 즉, 면류관과 비슷하게 생긴 별이 하늘에 출현해 며칠 동안 모든 것을 비추며 빛난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재앙이 시작된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백발이며, 기근, 전염병, 전쟁, 게다가 기상 이변까지 잇달아 발생한다. 그리고 가짜 예언자가 출현하는 등 악마가 불길한 사건들을 일으킨다. 혼란이 극에 달했을 때, 한낮에 태양과 달, 나아가 모든 천체의 별들이 하늘에 나타난다. 그후 검은 안개가 전 우주를 덮고, 모든 별은 바다에 떨어지며, 사람들은 전부 강물의 범람과 유황불로 인해 죽고 만다. 그리고 신이 지상에 출현한다. 신을 따르는 라미엘, 우리엘, 사미엘, 아자엘과 같은 천사들은 사람들이 생전에 행한 일들을 모두 파악하고 있다. 그들은 인간들을 '신이 심판하는 자리'에 끌어오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엘의 임무는 중요하다. ■ 대천사 라구엘 (Raguel) 칭호: 신의 친구 역할: 천사의 선행을 감시 □ 천사가 두려워하는 내무 감찰관 □ 한때는 타락천사라 분류되었던 억울한 천사 라구일(Raguil), 라수일(Rasuil), 루파엘(Rufael), 아크라지엘(Akrasiel) 등 많은 별명을 가진 라구엘은 지금까지 살펴본 대천사와는 좀 다른 존재다. 그에게 주어진 캐치프레이즈도 '신은 나의 빛', '지구의 천사' 따위와 함께 '빛의 세계에 복수한다'는 어쩐지 천사답지 않은 부분이 있다. 도대체 왜 그럴까? 빛의 세계란 이른바 천사들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복수'한다는 것은 '감시'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라구엘의 임무는 천사의 감시역, 동료의 행위를 체크하는 매우 어려운 일인 것이다. 사실, 천사라는 존재는 타락천사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유혹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성서에도 '천사의 3분의 1이 타락천사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니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천사들을 감시하는 직무는 매우 강한 의지력이 없고서는 감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 번은 이런 라구엘에게 청천벽력같은 일이 일어났다. 교황청의 성인력(聖人曆)에서 그의 이름이 제적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자신에게 '타락천사'의 낙인이 찍히리라고는 라구엘 스스로도 전혀 예상 못 했을 것이다. 이것은 745년 로마 교황청의 회의석상에서 주최자인 자카리아스(Zacharias) 교황에 의해 발표되었다. 이 자리에서 라구엘은 다른 많은 고위 천사들과 함께 타락천사로 분류되었던 것이다. 상세히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오리벨(Oribel)과 토비엘(Tobiel)이라는 타락천사의 꾐에 빠져 '성자 행세를 했다'는 이유였다. 이때 4대 천사 중의 한 명으로 꼽히는 우리엘조차도 오명을 뒤집어썼다. 게다가 이니아스(Inias), 아디무스(Adimus), 세미엘(Semiel), 타바엘(Tubael) 같은 천사들도 같은 죄에 연좌되었다. 몇 명인가의 사제가 그들을 존중하라고 사람들에게 호소했으나, 그들까지도 이단자로 교회에서 추방되고 말았다. 이는 필시 서민 사이에 '천사 신앙'이 과열되는 것을 두려워한 정치적 처분이었을 것이다. ■ 대천사 사리엘 (Sariel) 칭호: 신의 명령 역할: 인간의 영혼을 수호 심벌: 열쇠 □ '사안'과 관계가 깊은 천사 □ 인간이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감시 대천사의 하나로 주목받는 사리엘은 수리엘(Suriel), 사라키엘(Sarakiel), 제라키엘(Zerachiel)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의 역할은 '죄의 길로 유혹당하는 인간들의 영혼을 지키는 것이다.'(「에녹서」) 다시 말해, 인간이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감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녹서」에는 그가 달의 운행에 관한 지식을 인간에게 가르쳤던 '타락천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사리엘이 천사로서의 명예를 얻어야 할지, 아니면 타락천사로 규탄받아야 할지를 판단하기란 매우 어려운 문제다. 어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사안(邪眼)', 즉 이블 아이(Evil eye)였다고 한다. 사안은 일찍이 세계 각지, 특히 이탈리아 부근에서 사악한 힘의 하나로 여겨져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단적으로 설명하면, 사안은 흉포한 파괴력을 지닌 어떤 종류의 인간의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선에 노출된 자는 부상을 당하기도 하고 병에 걸리기도 하는 등 불행한 일을 당한다. 더욱 강력한 사안에 노출된 경우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복종하게 되거나 천재(天災)를 초래하는 일조차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안은 방랑자나 특수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면, 19세기 로마 교황이었던 비오 9세(1792~1878)는 심한 사안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가 행차를 하면 사람들이 두려움에 와들와들 떨며 앞다투듯 도망을 쳤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런데 사리엘의 이름을 기록한 부적을 가지고 있으면 사안의 힘에서 도망칠 수 있다는 미신적 신앙이 있었다. 그가 아주 신성한 힘을 가졌기 때문에 효력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사안 그 자체를 다스렸기 때문인지는 불명확하다. 또한 달과도 관계 깊은 천사이다. 달은 마술적인 힘을 일으킨다고 한다. 즉, 사리엘의 주변에는 마술의 힘이 늘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타락천사'라는 소문이 난 것도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 ■ 대천사 레미엘 (Remiel) 칭호: 신의 자비 역할: 부활을 기다리는 영혼들을 관리 심벌: 천둥 □ '환영'을 주관하는 것은 천사인가 악마인가 □ 죽은 자들의 영혼을 다스리는 자 □ 천둥을 다스리는 자 7대 천사의 후보자인 레미엘 또한 몇 가지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레미엘(Ramiel)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에녹서」에서는 레미엘을 다음과 같이 써놓았다. '레미엘, 거룩한 천사의 하나, 신이 부활시킨 자들을 주관하는 자.'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자. 기독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인간은 일단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며 그 영혼은 잠시 동안 수면 상태에 빠진다고 한다. 한편 세계에 악이 만연하고 전쟁, 기근, 전염병이 발생하며, 더욱이 아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백발이 되어 나오므로 여자들은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게 된다. 마침내 우주 전체가 혼란의 극에 달하는 종말이 오고 나면, 신에 의해서 '최후의 심판'이 행해진다. 즉, 그때가 찾아올 때까지 죽은 자는 땅 속에서 '부활'의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심판의 날, 생전에 악행을 일삼은 사람들은 영원히 지옥으로 떨어지지만 선행을 쌓은 사람은 빛나는 '신세계'의 주민으로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 이처럼 레미엘의 역할은 죽은 자들의 영혼을 관리하는 것이다. 라미엘은 또한 '뇌정(雷霆)', 즉 천둥을 다스리는 천사로도 알려졌다. ■ 대천사 메타트론 (Metatron) 칭호: 천사들의 왕 역할: 천계와 인간을 이어줌 □ 어쩌면 미카엘과 가브리엘을 앞서는 최강의 1인자 □ 유대교의 신비파가 인정하는 '천국의 재상' □ 거대한 신체의 소유자로서 다양한 '기적'을 연출 어쩌면 수많은 천사들 중에서 가장 거물일지도 모르는 것이 메타트론(Metatron)이다. 그는 기독교에서는 미스터리의 존재로 여겨지고 있지만, 유대교, 특히 신비사상을 가진『조하르』(광휘의 서)의 신봉자들 사이에서는 '신의 대리인'으로 생각될 만큼 대단히 중요시되었다. 당연하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미카엘이나 가브리엘을 능가"하는 천사로 대접받는다. 그는 메트라톤(Metratton), 미트론(Mittron), 메타라온(Metaraon) 등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유대교의 탈무드에 의하면 놀랍게도 72가지나 되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캐치프레이즈 또한 다양하다. '불세출의 위대한 자', '하늘의 서기(書記)', '신의 얼굴', '계약의 천사', '인류의 부양자', '천국의 재상', '불꽃 기둥', '소(小) YHWH', '어둠의 지배자' 등등. 메타트론의 어원은 메타트로니오스(Metathronius)로, 이는 '옥좌에 모시고 있는 자'라는 의미다. 이 '신의 대리인'은 인간과 신을 직접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시하며 기본적인 신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서 '계약'이라는 것이 있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타이틀에 사용되고 있는 '약(約)'이라는 단어도 실은 이 계약을 의미한다. 단적으로 말하면, 신과 인간 사이에 주고받은 약속, 즉 '상호 구속 관계'를 뜻한다. 또한, 구약성서에 한해 말하면, 모세가 백성을 대표해 시나이산에서 신과 계약을 맺음으로써 신은 이스라엘의 수호신이 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신의 백성인 관계가 성립되었다. 당연하지만 계약 위반을 범한 것은 인간이었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은 고난의 길을 걷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유대의 민간 전승에 의하면, 신은 자신이 만든 인간에 관해 대지(大地)와 대여 계약을 맺고 있다. 이 '계약서'를 바로 메타트론이 만들었다고 한다. 메타트론이 '계약의 천사'로 불리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 나온 것이다. ■ 대천사 라지엘 (Rasiel) 칭호: 신의 비밀 역할: 하늘의 비밀의 영역을 주관 심벌: 비밀의 책 □ 비밀의 책을 인간에게 전수 □ 메타트론처럼 비밀의 베일에 싸인 천사 에라치엘(Ratziel), 갈리줄(Gallizul), 사라쿠엘(Saraquel) 등등의 별명이 있으나, 다음에 소개할 라구엘의 별명인 아크라시엘(Akrasiel)도 실은 라지엘의 별명이란 설이 있다. 그렇다면 라구엘과 라지엘은 동일한 천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라지엘은 카발리스트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으며 캐릭터 또한 라구엘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카발리스트가 라지엘에게 부여한 명칭은 '비밀의 영역과 지고한 신비의 천사'라는 신비한 것이다. 대천사 라지엘은 천계와 지상의 모든 비밀을 다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것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이 책은 그의 이름을 따서 '세퍼 라지엘(Sefer Raziel)', 즉 '천사 라지엘의 책'이라 명명되었다. 1천 5백여 항목에 걸쳐 세계의 여러 수수께끼를 명확히 풀어놓았고, 나아가 기적과 마술 등을 가능하게 만드는 근사한 책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비밀의 문자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간, 혹은 천사조차도 판별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라지엘은 이 지식을 인간에게 전하고 싶어했는데, 그 결과 가장 먼저 낙원에서 추방되어 땅을 경작하는 몸이 된 인류의 조상 아담에게 전수했다고 한다. 다음으로 책은 천사의 손으로 넘어갔다가, 이윽고 질투로 인해 도둑맞아 바다에 버려지고 말았다. 어쩌면 다른 천사들이 질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 책의 지식을 얻기만 하면 여러 가지 기적이나 마술이 가능해지고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책이 바다에 버려진 사실을 알게 된 신은 '원시 바다의 왕자'라는 별명을 가진 타락천사 라합(Rahab)에게 해저로 내려가 찾아낼 것을 명했다. 사실 라합의 입장이라면 책을 발견한 순간 찢어버린다 해도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신의 명령에 충실히 따랐다. 책을 찾아 순순히 아담에게 되돌려주었던 것이다. ■ 천사 계급 □ 상급 3대 제 1계급: 치품 (熾品, 치천사, Seraphim, 세라핌) 제 2계급: 지품 (知品, 지천사, Cherubim, 케루빔) 제 3계급: 좌품 (座品, 좌천사, Thrones, 트론즈) □ 중급 3대 제 4계급: 주품 (主品, 주천사, Dominions, 도미니온즈) 제 5계급: 역품 (力品, 역천사, Virtues, 버추즈) 제 6계급: 능품 (能品, 능천사, Powers, 파워즈) □ 하급 3대 제 7계급: 권품 (權品, Principalities, 프린시펄러티즈) 제 8계급: 대천사 (大天使, Archangelus, 아크엔젤스) 제 9계급: 천사 (天使, Angelus, 엔젤스) □ 상급 3대 / 상품 천사 계급이 높은 천사들로 실체가 거의 없는 한없이 영적이고 정신적인 존재들. 따라서 고어틱하고 기괴한 묘사가 많다. 주된 임무는 하느님의 가장 가까이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 대부분의 종교가 그러하듯 그리스도교에서 노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하느님의 말씀과 신성(神性)이 소리의 진동과 공명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치천사(熾天使) 세라핌, 지천사(智天使) 케루빔, 좌천사(座天使) 오파님의 세 부대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중심점인 신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천사들이다. 이들은 서로가 아주 유사한 존재인 듯하다. 「에녹서」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신이 에녹에게 천사에 관해 설명하는 부분이다. "나는 돌에서 커다란 불을 일으켜 그것으로 모든 형체 없는 군대와 별의 군대, 케루빔, 세라핌, 오파님을 만들었다. 이들은 모두 불로 만들어진 것이다." ● 치천사 - 세라핌(Seraphim) '불타다', '뱀'이라는 히브리어 어원을 가진 세라핌은 신과 가장 가까운 어사(御使)다. 고대에 이 존재는 천계를 비상하는 뱀으로 알려졌다. 유대교, 기독교에서는 그들이 신과 직접 만날 수 있는 계급이며, 순결한 빛과 사고(思考)의 존재로서 사랑의 불꽃과 공명한다고 여겨져왔다. 또한 '사랑과 상상력의 정령'으로 불리기도 하며, 위엄과 명예로 가득한 천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은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천사들이다. 기독교에서는 이들이 여섯 날개를 가졌다고 설명한다. 두 장의 날개는 얼굴을 덮고, 두 장은 발을 숨기고, 나머지 두 장은 비상용(飛翔用) 날개라고 한다. 그리고 손에는 상투스(Sanctus : 세 번의 '거룩하시다'로 시작되는 찬미가)의 가사를 새긴 '불꽃의 단검(플러벨럼Flabellum),' 혹은 깃발을 들고 있다. 치천사의 지휘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우리엘(Uriel), 메타트론(Metatron), 혹은 사탄(타락천사가 되기 전), 케무엘(Kemuel), 나타나엘(Natanael), 가브리엘(Gabriel) 등이라 여겨졌다. ● 지천사 - 케루빔(Cherubim) 불꽃의 검을 들고 에덴을 지킨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에 그들이 다시금 에덴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수호한 것도 지천사라고 여겨진다. 지식과 지혜를 관장하며 치천사와 마찬가지로 한없이 숭고한 존재. 중세부터는 케루빔을 "아기 천사"로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어원인 케룹(Cherub)은 히브리어로 '지식' 또는 '중재하는 자'라는 뜻이다. 매우 오래된 존재로, 아시리아에서는 사원이나 신전의 입구를 지키는 파수꾼을, 그리고 이집트에서는 밤하늘, 종교의 근행(勤行)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서에서는 에덴 동산 동쪽 문에서 '모든 방향을 향한 불꽃의 검=번개'를 무기로 지닌 채 호위 임무를 맡고 있다고 말한다. 케루빔의 모습도 당초에는 이상한 모습이었다. 날개도 넷이고 팔과 얼굴도 넷이나 되었다. 게다가 빛나는 발 밑에는 차바퀴가 있었다고 한다. 이 차바퀴는 태양의 운행과 관계 있으며, 신의 옥좌를 운반하거나 신의 전차를 달리게 하는 역할을 했으리라 여겨진다. 이 군단의 지휘관은 요피엘(Jophiel)이라 되어 있다. ● 좌천사 - 오파님(Ofanim) '신의 옥좌를 운반하는 존엄과 정의의 천사' 또는 '의지의 지배자(Lords of Will)'로 불린다. 또 트론즈(Thrones) 혹은 갈갈림(Galgalim : 바퀴, 눈동자)이라는 별명이 있다. 이 바퀴는 에메랄드 색으로 빛나며 마치 불꽃같은 수많은 눈을 가지고 있다. 물리적인 육체를 가진 천사 중에서 최고위. 옥좌 혹은 바퀴를 의미한다. 주로 불타는 바퀴로 묘사된다. 천사 중 거의 유일하게 인간형의 실체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 계급으로, 하느님의 옥좌를 추상화한 개념. 케루빔은 역할상 신의 옥좌를 운반하는 천사이며, 오파님은 전차 등 실전상의 역할을 하는 천사로 구별해 말한다. 좌천사 트론즈의 지휘관은 야피키엘(Japhkiel) 혹은 라파엘(Raphael)로 되어 있다. □ 중급 3대 / 중품 천사 상품 천사에 비해 훨씬 물리적전 존재로 인간에게도 가까운 느낌을 주는 존재인 도미니온즈, 버추즈, 파워즈로 구성된 중급 3대다. 그들의 사명은 '대립하는 것의 조화'다. 즉, 선과 악, 물질과 정신과 같이 대립 관계에 있는 것의 균형을 지키는 것이다. ● 주천사 - 도미니온즈(Dominions) 주천사(主天使) 도미니온즈는 통치·지배(Domination)를 의미하며, 주권(Loadship)이라는 별명으로도 부른다. 이들의 역할은 신에 의한 진실한 통치를 끊임없이 열망하는 것이다. 즉, 신의 뜻을 우주에 널리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다. 신의 위광을 나타내기 위해 홀(笏 : 절대권위와 통치권을 상징한 왕의 지팡이)을 심벌로 삼고 있다. 이 부대 지휘관의 별명은 '불을 내뿜는 천사'로 불리는 하시말(Hashmal) 혹은 자드키엘(Zadkiel)이다. 자드키엘(Zadkiel), 하쉬말(Hashmal), 야리엘(Yahriel), 무리엘(Muriel)이라는 네 천사가 이끌고 있다. ● 역천사 - 버추즈(Virtues) '고결'을 의미하는 역천사(力天使) 버추즈는 히브리에서는 말라킴(Malakim) 혹은 탈시시슴(Talshishism)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은총과 용기를 주기 위해 한결같이 '지상의 기적'을 주관하는 임무를 다하고 있다. 영웅에게 힘을 준다거나, 선을 행하는 자 앞에 출현하여 그 위력을 보인다고 한다. 그리스도 승천 때 출현하여 곁을 따랐던 것도 버추즈라고 하며, 카인의 탄생 때 산파의 역할을 맡기도 했다. 역천사 버추즈의 지휘관은 미카엘(Michael), 라파엘(Raphael), 바르비엘(Barbiel), 우지엘(Uzziel), 페리엘(Periel)로 되어 있다. ● 능천사 - 파워즈(Powers) 타락천사인 악마군단과 싸우는 역할을 맡은 천사들로 천사의 군대에 해당한다. 실질적으로 악마와 접촉하는 빈도가 가장 높은 천사들로, 그만큼 타락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천사에 해당한다. 신이 최초로 만들었다고 하는 능천사(能天使) 파워즈는 매우 힘든 임무를 맡고 있다. 그들은 지옥에 떨어진 천사, 즉 타락천사인 악마군단과 맞선 싸움에서 최전선에 배치되어 대항하는 역할이므로, 늘 전투 체제에 돌입해 있다. 다시 말해 악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계급의 천사들 중에서 타락천사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 능천사 중에서 최대의 배반자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사령관인 카마엘(Camael)도 타락천사라는 견해가 있다. 카마엘이라는 이름의 뜻은 '신을 보는 자'인데, 114만 4천 명의 부하를 거느리는 그는 '파괴의 천사', '징벌의 천사', '복수의 천사'와 같은 무서운 칭호를 가지고 있다. 그는 죽은 자의 영을 이끄는 역할도 겸비하고 있다. 능천사의 별명은 디나미스(Dynamis), 포텐타티스 (Potentates)다. 이 군단의 지휘자는 라파엘(Raphael). □ 하급 3대 / 하품 천사 흔히 사람들이 천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해당 천사이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위치" 에 있는 실질적인 실체의 존재들 이자 천사군단이다. 상급 3대가 빛이나 바이브레이션에 가까운 존재이며 중급 3대가 그보다 좀더 물질적인 존재임에 비해, 하급 3대의 경우는 인간과 접촉할 기회도 많으며 실질적인 신체를 가진 계급이다. 권천사(權天使) 프린시펄리티즈, 나아가 가장 유명한 존재인 대천사 아크엔젤스와 매우 친밀한 느낌의 천사 엔젤스, 이 세 부대로 구성되었다. ● 권천사 - 프린시펄리티즈(Principalities) 지상의 권세와 통치를 위임 받은 천사로, 각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의 수호자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원래 프린스담(Princedoms : 프린스가 지배하는 영지)이라는 의미를 가진 권천사(權天使)는 천사군단의 제7계급을 차지하는 천사군이다. 지상의 나라와 도시를 통치하고 지배하는 역할을 맡은 그들은 '신앙의 옹호자'로서의 성격을 점차 강화시켜왔다. 구체적으로는 '인간의 지도자를 감시하고 그들의 정의를 향한 결의를 고무시킨다'는 임무를 맡고 있다. 이 군단의 지휘관은 아나엘(Anael), 에녹을 하늘로 데려간 하미엘(Hamiel), 카마엘(Chamael) 등으로 알려져 있다. ● 대천사 - 아크엔젤스(Archangels) 품계는 팔품이지만 실제로는 천사들 중 가장 높고 위대한 천사들로 집단이나 민족, 국가를 이끄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천사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며, 최고의 권력과 능력을 과시하는 자들이 바로 아크엔젤스다. 여덟 번째 군단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참모 본부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들은 신의 빛나는 옥좌 앞에 서서 직접 명령을 받는 입장에 있다. 또한 "세계에 종말이 닥쳤을 때 일곱 나팔을 부는 임무"가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 양쪽 다 대천사가 일곱 명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 이름에 관해서는 각각 다른 설을 내세우고 있다. 다만 그 중에서 네 명의 이름만은 정해져 있다. 미카엘(Michael), 가브리엘(Gabriel), 라파엘(Raphael), 우리엘(Uriel)의 네 천사다. 물론 그들 일곱 명의 사령관 중에서 최고 지위와 실력을 가진 총사령관은 대천사 미카엘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모든 사람의 의견이 일치한다. ● 천사 - 엔젤스(Angels)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이미지인 일반적이며 대중적인 천사. 개인을 보호하고 인도한다. 천사군단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 바로 이들이다. 인간에게 가장 친밀감을 주는 모습의 천사들이며, 또 인간 생활의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정의의 이름 아래 감시하며 격려하고 고무시키는 역할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악으로 향하는 인간의 마음을 경계할 때도 있다. 그들은 신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고 어떤 때에는 대천사의 명령을 실행하기도 하는 등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 천사들의 수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청나게 많다. 예를 들어 유대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천사들은 매일 아침 신이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밤이슬'처럼 만들어진다고 한다. 또 탈무드에 의하면 한 명의 유대인이 탄생할 때마다 이를 수호하라는 분부(지시)를 받는 천사가 1만 1천 명이나 된다고 한다. 출처: 마노 다카야, 나무위키 외 다음에 시간되면 타락 천사와 악마도 올려볼게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