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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구:헬조선⑤] 감정노동자, '화받이'가 된 사람들

백화점 직원들이 고객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항공 승무원은 라면이 맛있게 끓여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했다. 일정한 태도를 유지하며 사람을 대하는 직종을 '감정노동'이라고 일컫는다. '서비스 정신'이라는 명목 하에 많은 이들이 매일 비상식적인 일들을 감내하며 살아간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는 감정노동 종사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은행원인 올리비아 핫바(이하 가명), 내과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클레오빡돌아, 학원강사 지량이, 편의점 점장 삼각김밥. 고객, 환자, 학생과 학부모들의 '화받이'가 되곤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뉴스에이드: 다들 감정노동 하면 빠지지 않는 직종들인데, 하루에 나를 힘들게 하는 고객은 얼마나 만나?
올리비아 핫바: 많은 날은 여섯, 일곱명 정도?
클레오빡돌아: 꼭 나한테 오지 않더라도 총량이 있어. 항상.
올리비아 핫바: 내가 안걸리더라도 옆 창구에서 화내고 있고.
클레오빡돌아: 딱 보면 들어올 때부터 얼굴에 별이 보여. 아, 5성급이 오고 있구나.
삼각김밥: 정확하게 셀 수는 없는데 보통 전체 고객은 한 500명 정도 만나는 것 같아.
뉴스에이드: 기억에 남는 진상 손님 있어?
클레오빡돌아: 너무 많은데?
지량이: 그런 건 원래 빨리 잊어야해.
올리비아 핫바: 난 잘 안 잊혀지더라. 예전에는 주변 사람들한테 말하면서 풀었거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얘기하면 또 생각이 나고 또 짜증이 나니까 말 안하게 돼. 잊은 것 같다가도 그 손님이 오면 확 떠올라. 어제 난리를 치고도 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게 거래하는데, 난 다 기억이 나.
지량이: 아무래도 은행은 돈을 다루는 데니까 더 심할 것 같다.
올리비아 핫바: 일단 은행은 뭐가 안돼서 오는 사람들이 많잖아. 예전에는 입출금을 하러 왔는데 요즘은 인터넷 뱅킹이나 카드나 그런 문제로 오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이미 올때부터 화가 나서 오는거야. 자기는 비밀번호 맞게 눌렀는데 틀렸다고 나왔다고 우기고.
삼각김밥: 알바 중에도 편의점 알바는 최하층으로 보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 유통업 중에서도 뭔가 면세점> 백화점> 아울렛> 마트> 편의점 이 순서로 알게 모르게 등급을 매기는? 내가 하대해도 되는 공간이라는 생각들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일단 최고 많은 건 봉투값 때문에 시비 거는거. 물건 다 골라놓고 봉투값 때문에 더러워서 안산다고 욕하고 가기도 하고, 거스름 돈을 두손으로 안줬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고.
뉴스에이드: 학원은 어때? 아무래도 어린 학생들하고 학부모를 동시에 상대해야 할텐데.
지량이: 우리는 엄마들이 슈퍼갑이지. 진상보다는 말도 안 되는 요구가 많아. 학원을 집안일 때문에 빠졌는데 보충을 해달라는거야. 내 학생이니 그건 해줄 수 있어. 근데 다시 잡은 보충 날짜에도 안 와놓고 또 보충을 해달래. 수업 잘 못 따라오는 아이들 보충을 해주잖아? 그럼 개인 사정으로 빠져놓고 또 보충을 해달라는 경우도 있고. '보충의 보충'을 해달라는거야. 말이 돼?
올리비아 핫바: 애들도 알지? 엄마한테 말하면 선생님이 불리하다는 거.
지량이: 장난 아니야. 애들이 다 알아. 자기 아이 굉장히 감싸는 엄마들이 있잖아? 그럼 엄마 성향을 알고 아이들이 훨씬 과장되게 얘기를 해. 되게 약았어. 요즘 아이들. 엄마가 전화해서 뭐라고 해줄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 '갑질'에 남녀노소 없다

뉴스에이드: 반말이나 욕설을 하는 사람도 많은 편이야?
올리비아 핫바: 어른들은 많이 반말 하시지. 나 처음에는 반말 되게 싫어했거든? 이제는 적응이 되서 반말은 괜찮아. 그런데 말투가 되게 기분 나쁜 반말을 하는 분들이 있어. 이름 써달라고 하면 "못 써. 네가 써" 이렇게 말하고.
클레오빡돌아: 남자들 중에는 50대 이상 어르신들이 제일 많은 듯. 자기가 말하면 다 된다고 생각해.
삼각김밥: 50대~60대 남성이 진짜 제일 심한 것 같아. 반말로 담배사는 사람의 대부분은 50대~60대야. 아, 전에 겨울에 온장고에 넣은지 얼마 안된 음료를 사서 마신 사람이 있는데, 미지근하니까 가격을 깎아달래. 그래서 뜯으셔서 어쩔 수 없다고 다음에 오시면 꼭 따뜻한 걸로 준비해 놓겠다고 했는데 그때부터 욕을 하면서 카운터 안으로 쳐들어오는데, 진짜 무서웠어. 웃긴건 뭔지 알아? FC(점포 관리자)가 100원주니까 그거 받고 나가더라? 그게 더 어이 없었어.
지량이: 최근에 우리 학원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과학 선생님이 새로 오셨는데 나이가 많은 분이셨어. 애들이 대놓고 무시를 하는 거야. 수업에 대놓고 늦게 들어오면서 "아, 과학 X나 싫어"하고 다 들리게 말하고. 결국 그 선생님 그만두셨어. 애들 성질에 못 버티셔서.
클레오빡돌아: 30대 여자들도 엄청나게 깐깐해.
지량이: 요새 젊은 엄마들은 아는 게 많아서 그런가?
클레오빡돌아: 문제는 그 정보들이 되게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알고 오는거야. 그게 아니라고 설명해도 안 들어. 얼마전에 나라에서 토요일 진료비를 올렸어. 딱 500원 올랐거든? 그런데 어떤 여자분이 왜 진료비 올랐는데 토요일로 예약을 잡아줬냐고 그러는 거야. 나라에서 정한거고 딱 500원 오른거라고 설명을 하니까 이제 다른 걸로 꼬투리를 잡더라.
올리비아 핫바: 젊은 사람들은 나이 많은 분들하고는 좀 달라. 조금만 기분 나쁘면 바로 인터넷에 올리거든. 보통 인터넷에 글이 올라오면 직원한테 전화가 와서 손님하고 통화해서 해결하라고 해. 콜센터로 불만 접수된 건 기록이 안남아서 잘 해결되면 그나마 괜찮은데 인터넷에 글이 올라온 건 고객이 글을 내려줄 때까지 계속 빌어야 하는거야. 결국 안 내려주면 팀 전체 고과가 깎이는 거지.
삼각김밥: 어딜가나 다 똑같구나. 50대 남성은 '인터넷? 그까이꺼 필요없고 내 하던대로만 하면 너네를 열받게 할수 있어!'의 느낌이라면 30대 여성은 '아...인터넷에서 보던거다' 이런 느낌이야. 유후라고 인기 캐릭터가 있어. 주말마다 어머니들이 많이 오는데 전부 주물럭거리는거야. 정말 비닐 포장이 거의 찢어질 정도로. 만지시면 안된다고 했다가 '똑같은 거 나오면 돈 대신 내줄거냐'하는 소리 듣고 포기 했어.

# 화 많은 사람들

올리비아 핫바: 요즘은 진짜 사람들이 화가 많은 것 같아. 일단 인사부터 안 받아줘.
클레오빡돌아: 맞아. 인사 받아주는 경우 거의 없어.
올리비아 핫바: 나도 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다들 금방 화를 내. 실수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같아. 조금만 무시를 받는 것 같다고 느끼면 바로 돌변해. 근데 그 포인트를 모르겠어.
삼각김밥: 우리 같은 감정노동자들은 감정의 배설구가 되는 것 같아. 욕 먹은 사례들을 생각해보면 진짜 이유가 없어.
뉴스에이드: 왜 이렇게들 화가 많은 걸까? 생각해 본 적 있어?
삼각김밥: 이게 어디서 시작된건지 잘 모르겠는데 모든 사람들이 갑의 위치만 되면 있는 힘껏 갑질하려는 성향이 커진 것 같긴 해.
뉴스에이드: 경제적인 이유도 있을까?
삼각김밥: 글쎄. 단순히 돈을 못 번다기보다 소득에 비례하지 않는 노동강도? 이런 것에 화가 나는건가.
뉴스에이드: 다른 요인도 있어? 어느 상황에서 고객들이 더 심하게 군다던지.
클레오빡돌아: 12월까지 직원들이 검진을 안하면 회사가 불이익을 받아. 그럼 12월 31일에 난리가 나는거야. 근데 급하다면서 금식도 안하고 오는 사람들이 있어. 금식을 안하면 못해준다고 하면 막 따지지. 회사랑 자기한테 불이익이 가면 책임 질거냐고. 그걸 왜 우리가 책임을 져? 나라에서 정한거라 안된다고 해도 안 먹혀. 문진표를 던져서 내 얼굴에 맞은 적도 있어.
삼각김밥: 욕하는 사람들이 여름에는 진짜 많더라고. 확실히 계절을 타는 듯.
뉴스에이드: 아는 사람이 더 하다고 하잖아. 감정노동자들이 더 한 경우도 있나?
지량이: 미국에 있을 때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어. 어떤 손님이 난리를 치고 갔는데 나중에 보니까 다른 식당에서 서빙을 하고 있는거야. 그런 사람이 더 무섭더라. 대부분은 고충을 아니까 더 잘해주려고 하는데 알면서도 더 그러는 사람도 있어.
삼각김밥: 전에 어떤 사람이 아르바이트생 자르라고 컴플레인 글을 써서 본사에서 정말 자른 적이 있단 말이야. 사실 그 아르바이트생이 주변 점포 사람들이 친절하다고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었어. 그런 사람이 컴플레인 걸린다는 게 말이 안되잖아? 알고보니 같은 계열사 커피전문점 아르바이트 생이더라. 매장에서 진상 고객한테 털리고 여기 와서 진상 부린거지. 어떻게 하면 그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지 그 방법과 과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거야.
올리비아 핫바: 나 같은 경우는 어디 가서 직원이 실수를 해도 그냥 넘어가는 편이야. 내가 컴플레인을 건다고 해서 직원이 해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걸 아니까.

# 견디는 방법? 그냥 참는 거지

뉴스에이드: 직원들도 사람인지라 정말 못 참겠다 싶을 때가 있잖아. 그럴 때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 있어?
지량이: 그냥 흘려야지 뭐.
클레오빡돌아: 그냥 한 번 꿀꺽 삼키지.
올리비아 핫바: 주변에서 내 상태 보고 '물 한 잔 마시고 와'하고 챙겨주는 경우도 있고. 그냥 일상인거야. '또 왔네' 하면서.
삼각김밥: 특별한 방법은 없는 것 같아. 그냥 노동이라고 생각을 해. 내가 돈을 받는 이유가 이걸 참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감정 노동이구나, 하고.
올리비아 핫바: 일 한지 한 3개월 쯤 됐을 때 였나? 살면서 술을 제일 많이 마신 날이었어. 정말 기억이 하나도 안나는데 우리 언니가 내가 엄청 울면서 일하기 싫다고 했다고 하더라고. 돈 벌기 싫다고 했대. 남의 돈 버는 게 쉬운 게 아닌 것 같아. 정말.
뉴스에이드: 회사에서 뭔가 해결해주는 건 없어?
삼각김밥: 고객 응대 매뉴얼이 따로 없어. 그냥 각자 알아서 하는거지. 아르바이트생 뽑을 때 성희롱 교육도 하는데 거기에 보면 성희롱 하면 싫다고 단호하게 말하라고 나와있는데 솔직히 20대 초반 여자가 아저씨들이 와서 '예쁘다, 사귀자' 이런 얘기를 하는데 무서워서 거기에 대고 싫다고 단호하게 어떻게 말해.
올리비아 핫바: 우린 고객이 신고를 하면 맞고소를 하려고는 했었어. 영업방해보다는 무고죄로.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신고는 또 안해. 그냥 깽판만 치고 가는거야.
지량이: 법적으로 가면 자기들도 피곤하거든.

# 나를 웃게 하는 고객들

뉴스에이드: 매번 진상 고객들만 있는 건 아닐텐데, 좋은 손님들도 있었어?
클레오빡돌아: 단골 손님들 중에는 조금 기다리더라도 이해해주시는 분들도 많아. 그렇지 않은 몇 사람 때문에 훨씬 힘든거지. 직접 농사 지으신 감자도 가져다주시고, 직접 만두를 빚어서 가져다주시는 분들도 있고.
지량이: 맞아. '우리 아이 가르치기 힘드시죠? 저도 알아요'하는 학부모님들도 많거든.
삼각김밥: 인사 하면서 들어오는 손님들은 고마워. 진짜 인사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서로 기분이 좋은 것 같아. 내가 하는 인사말을 무시하지만 않아도 고맙지.
클레오빡돌아: 그런 분들이면 한 번 더 신경 써드리게 돼. 숨차하시면 '어머니, 숨차세요?'하고 물도 한 잔 떠다 드리고. 나에게 나쁘게 대하면 나도 딱 내 할일만 하게 되지.

# 고객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니다

뉴스에이드: 매일 고객들의 '화'를 상대하는 입장에서 회사에 바라는 건 없어?
올리비아 핫바: 사실 인터넷에 올라오는 민원들보면 어이없는 것들도 많아. 직원이 실수도 하지 않았고 불친절했던 것도 아닌데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냥 불친절로 올리는 거야. 명분이 없으니까. 회사에서 그런 민원에 대해서는 너무 고객 말만 듣지 말고 좀 융통성 있게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삼각김밥: 컴플레인 처리할 때 그냥 무조건 알아서 빌어라 하는데 보통 컴플레인을 보면 한쪽 입장만 있으니까 왜곡되어 있단 말이야? 전후사정 봐가면서 컴플레인 처리하면 좋겠어. 회사가 직원 보호를 너무 안하는 것 같아. 최소한 전후사정 알아본 후에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아까 얘기한 서비스 매뉴얼도 있으면 좋을 것 같고.
올리비아 핫바: 사람들이 점점 더 바라는 게 많아지는 건 회사에서 자꾸 다 해주기 때문이기도 하지 않아?
지량이: 그런 사례가 생기면 '누구는 그렇게 해줬다는데요?'하면서 똑같이 하지.
올리비아 핫바: 기억나? 예전에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무릎을 꿇고 주문 받는 거 처음에는 우리 다들 기겁했었잖아. 그런데 지금은 익숙해졌어. 그런 것처럼 당연한 것 처럼 여겨지는 서비스 탓도 있지 않나 싶어.

# 이것만 지켜줘도 숨통 트일 것 같아요

뉴스에이드: 고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클레오빡돌아: 한 번만 이해하려고 해줬으면 좋겠어. 내 말은 아예 들으려고도 안하니까. 얘기라도 한 번 들어보고 이해해보려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
올리비아 핫바: 원칙은 좀 지켜줬으면 싶어. 순서 기다리는 것, 신분증 확인하는 것 같은 건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이잖아. 자신들의 편의는 들어달라고 하면서 기본적인 것도 지켜주지 않는 건 말이 안되지.
지량이: 내가 할 수 없는 무리한 부탁은 진짜 난감해. 아이가 하지 않는 건데 그것까지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거잖아.
삼각김밥: 반말 안하는 거? 난 군대도 늦게 다녀오고 그래서 반말에 관대한 편인데 일하는 알바생들은 반말 들으면 많이 기분나빠 하더라고. 약자에게만 강하게 굴지 않는 세상이 오길.
사진=셔터스톡, 지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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