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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 찔릴 것 같아" 불안장애 정형돈에게 필요한 건?

▲ photo 연합
글 | 유슬기 톱클래스 기자
지난 11월 12일까지 그는 TV에서 일주일에 적어도 여섯 번을 볼 수 있던 사람이었다. 이제는 과거 자료 화면으로만 볼 수 있게 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재생되는 영상이 3년 전 ‘힐링캠프’다. 정형돈은 2012년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자신이 앓고 있는 정서적 장애에 대해 짤막하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의 불안은 두 가지로 요약됐다. “이 성공이 계속되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하다”, 그리고 여기에서 파생된 “내 삶이 갑자기 끝나면 ‘우리 가족들은 어쩌지’라는 극도의 불안감을 느낀다”. 꼬리를 무는 불안이 그의 영혼을 잠식했다. 그는 자신 앞에서 웃으면서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사람이 언제든 돌변해 자신을 (칼로) 찌를 것 같다는 망상에도 시달렸다고 한다.
MC계의 ‘4대 천왕’이라 불리던 개그맨 겸 MC 정형돈이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는 “오래전부터 앓아왔던 불안장애가 최근 심각해지면서 방송을 진행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어왔고 결국 제작진과 소속사, 방송동료들과 상의 끝에 휴식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MBC의 ‘무한도전’, KBS ‘우리동네 예체능’과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 MBC 에브리원 ‘주간아이돌’, tvN의 ‘고교 10대 천왕’과 K star의 ‘돈 워리 뮤직’ 등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지금 검색창에 정형돈을 입력하면 가장 먼저 뜨는 말은 ‘4대 천왕’이 아닌 ‘불안장애’다.
▲ 2015년 ‘무한도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

칼에 찔릴 것 같은 공포는 어디에서 왔나

불안장애(anxiety disorder)란 비정상적인 불안과 병적인 공포로 인해 일상에 장애를 일으키는 정신질환을 말한다. 불안과 공포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위기관리 능력을 높여주는 정상적 정서다. 문제는 이 감정이 지속적으로 나타나 통제가 되지 않으면서 생활에 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정신의학 전문의 데이비드 번스는 ‘패닉에서 벗어나기’라는 책에서 ‘불안장애’는 “불안해 죽겠네. 불안하다니 위험한 것이 분명해. 위험하지 않다면 내가 이렇게 불안할 리가 없지”라는 순환논리가 삶을 지배하면서 오류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그럴지 모른다는 공포가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정형돈의 경우, ‘나를 찌를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매순간 촬영장을 향하는 그의 발목을 잡아왔고, 결국 ‘무한도전’ 456회 촬영이 있던 날 그는 현장에서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그의 공포를 단지 망상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무한도전’의 모태인 ‘무모한 도전’ 1회부터 함께했던 원년멤버 정형돈에게 지난 10년은 영욕의 세월이었다. 스탠딩 코미디인 ‘개그콘서트’에서 리얼 예능으로 넘어오는 적응기에 생긴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이라는 별칭은 하나의 캐릭터이기도 했지만, 그에게 다른 분야에서라도 ‘밥값’은 해야 한다고 분발하게 만든 채찍이기도 했다.
덕분에 그는 무한도전의 장기 프로젝트 ‘봅슬레이’(140회), ‘프로레슬링’(215회), ‘조정경기’(261회) 등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큰 경기를 앞두고 잇단 부상으로 ‘불운의 아이콘’이 되기도 했지만 그만큼 그가 몸을 던진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예능이라기보다는 인간승리의 휴먼다큐였던 이 방송에서 그는 묵묵하게 훈련에 임하고 경기 후 가장 진한 눈물을 흘리는 멤버였다. 정형돈이 ‘못 웃기는 개그맨’에서 ‘웃기는 것만 빼고 다 잘하는 개그맨’이 되어가는 시기였다.
이듬해인 2011년부터 그의 잠재력, 이른바 ‘포텐’이 터지기 시작했다. 당시 정형돈은 ‘케미요정’ ‘킹메이커’ 등으로 불렸다. 2011년 서해안고속도로 가요제의 정재형, 2013년 자유로 가요제의 지드래곤, 2015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의 혁오밴드 등은 그의 손에서 재탄생한 스타였다. “가요제만큼은 유재석보다 정형돈이 낫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일찍이 ‘형돈이와 대준이’라는 힙합듀오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데프콘 역시 “나도 얘 만나서 잘됐잖아”라는 말로 ‘정형돈 효과’를 입증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 ‘무한도전’의 변방에 머물렀던 정형돈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겉도는 이들을 프로그램 안으로 흡수시키는 데 재능을 보였다.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가 쿡방 열풍을 일으키며 방송가에 안착한 것도, MC인 정형돈이 비방송인인 셰프들의 특성을 이끌어내 자연스러운 케미(화학작용)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불안’에서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밥값을 하지 못했다’는 그의 초창기 불안은, 자신이 이끄는 식솔에 대한 불안으로 번졌다. 패널 혹은 보조 MC의 자리에서 한 프로그램의 성패를 책임지는 메인 MC가 되고, 고정 프로그램만 6개가 넘던 황금기는 정형돈의 불안장애가 최고치를 향해가던 순간이었다.
배우들이 불안장애를 호소하는 것은 ‘무명시절 알려지지 않을까에 대한 불안’보다, ‘주인공의 자리에 올라 잘해내지 못할 것에 대한 불안’일 때가 더 많다. 배우 이병헌, 김하늘, 김승우, 차태현 등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눈부신 작품을 마친 뒤 불안 혹은 공황장애에 빠졌다. 세계적 팝스타 아델은 “무대에 서면 곧 폭발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고, 축구스타 베컴 역시 “호텔에 가서도 쉬지 못한다”고 했다.
▲ 쿡방 열풍을 일으킨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욕을 크게 먹은 뒤 위축됐다

정상의 자리에 서면 남들에게 먼저 배려받고 귀중하게 여겨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많은 대중문화인이 ‘뜨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만큼 그 존엄을 잃고 존중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현재보다 낮은 단으로 떨어질 것 같다는 걱정도 동시에 늘어난다. 알랭 드 보통의 지적대로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의 자아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높은 지위를 얻기가 어렵고, 그것을 평생에 걸쳐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점이다. 정형돈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그는 비수 같은 악플을 수두룩하게 받아본 경험이 있었다. 정형돈은 ‘무한도전’의 새 멤버를 뽑는 프로젝트에서 후보들에게 “악플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는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욕을 크게 먹으면 아무래도 사람이 위축이 된다”고 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사람에게 무서움을 느껴야 하는 개그맨이라는 직업은 하지 않겠다는 말도 했다. 보이지 않는 칼에 대한 트라우마가 눈에 보이는 칼에 대한 공포로 나타난 셈이다. 안타까운 점은 활동을 중단한 이 시점에도 그를 향한 악플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성기라 쓰고 불안장애라 읽는다. 혹자는 ‘불안장애’를 연예인의 직업병이라고 한다. 이를 이기기 위해 ‘멘탈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한다. TV를 켜면 각종 프로그램에서 연예인의 뒷담화가 봇물을 이루는 시대, 해묵은 옛이야기까지 꺼내 구태여 이슈를 만드는 요즘, 유명인이라면 방검복보다 두꺼운 멘탈을 갖는 것이 생존의 필수요소가 됐다. 정형돈의 쾌유를 빈다.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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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요 정형돈씨🎈누가 뭐래도 당신은 영원한 4댜천왕이예요👍🏻💪🏻!!
ㅜㅜ 멘탈이 많이 힘들었었나봐요. 얼른 다시일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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