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lover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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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진 10장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진들이 있다길래
그 중에서 10장 가져와봤습니당 *0*
사진에 대한 자세한 이유 이런걸 적어드리고싶은데
사진들에 별다른 설명 없이 제목만 있었다는 점 참고 부탁드려용 ㅠㅠ
+@minbxminb 님께서 댓글에 설명을 추가해주셔서! 글에도 추가합니당 > <

불에 타는 스님 (1963년)

@minbxminb: 불에 타는 스님 베트남전쟁 때 남베트남 정권의 불교탄압과 독재에 항거하기 위해서 틱광둑 스님이 소신공양을 했는데 그 고통속에서 전혀 신음소리나 몸부림 조차 없이 버틴 모습의 사진입니다. 후에 시신에서는 손상되지 않은 스님의 심장이 나와서 현재 하노이 국립은행에 보관중이라고 합니다. 구글링 하시면 심장 사진도 찾아 볼 수 있어요. https://youtu.be/Mo_iV7kOGe4 <- 소신공양 때 영상입니다. 이 틱광둑 스님의 소신공양 모습은 Rage Against The Machine 의 1집 앨범에서 자켓 사진으로 사용되기도 했었습니다.

나치의 경례를 하지 않고 있는 유일한 한 사람 (1936년)

배우 소피아 로렌과 제인 맨스필드

잌ㅋㅋㅋㅋ
@minbxminb: 배우 소피아 로렌과 제인 맨스필드 1958년 미국 베벌리힐스에서 육체파배우 소피아 로렌이 거대한 가슴으로 유명세를 탄 제인 맨스필드를 만나자 곁눈질로 가슴부위을 보고있는 사진입니다. 정작 맨스필드는 가슴에 묻혀 연기력을 인정받지 못했다네요.

고등학교 농구부 시절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혼자 유일한 흑인인게 더 놀랍네용;
@minbxminb: 고등학교 농구부 시절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오마바 대통령은 고등학교 시절에 아버지가 하와이에 왔을때 선물한 농구공으로 매일 맹연습을 했고 푸나호우 농구부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농구는 농구선수급으로 잘 했고 팀의 에이스였지만 흑인이라서 주전은 될 수 없었다네요. 그 당시에는 몰랐다고해요 왜 자신이 주전이 될 수 없었는지.

백만개의 동물 해골 (1870)


우주인 Michael Collins가 찍은 사진 (1969년)

불이 난 건물에서 살기 위해 떨어지는 엄마와 딸 (1975년)

한명만 살아남았다고 하네용 ㅠㅠ

베트콩을 사살하는 사이공 경찰 (1968년)

@minbxminb: 베트콩을 사살하는 사이공 경찰 이 사진을 촬영한 것은 미국 기자 에디 아담스입니다. 1969년 2월 1일 실제로 총을 겨누는 사람은 경찰서장이고 사살당한 사람은 사이공 도처를 찌르고 다녀던 베트콩 일원이었고 현장에서 즉결처형으로 사살당했지만 우선 사진상으론 사복을 입고있는 남자가 공포에 질린 (엄청난 공포로 얼굴이 구겨질대로 구겨져 그의 아내가 얼굴을 못알아볼 정도였다고하네요) 민간인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이 야만스러워 엄청난 사건이 되어버린 사진입니다. 이 후 경찰서장은 미국의 압력에 의하여 직을 박탈당하고 미국으로 넘어가 피자집을 운영하다가 사람들에게 정체가 알려져 식당에 욕 낙서가 난무했다고 하네요. 기자 에디 아담스는 이 경찰서장에게 사과했다고 해요. 장군은 총으로 베트콩을 죽였고 자기는 사진으로 장군을 죽였다고..

우주에서 떨어진 우주인 Vladimir Komarov 의 잔해 (1967년)

인형극에서 악당을 밝힐 때의 아이들의 반응 (1944년)

ㅋㅋㅋㅋㅋ애들 너무 귀여워용 ㅠㅠ
재밌게 보셨나용?

댓글 달아주시면 2탄 올려드릴게용 > <!

댓글 많이 달아주셔서 https://www.vingle.net/posts/1254954 2탄도 올렸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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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역사적으로 중요한지도 궁금하내요
라이프지에 올라온 사진들도 꽤있네요 베트콩을사살하는 경찰 사진은 실제 경찰서장인가 하는분은 맞는데 베트콩이 아니라 그지역 연쇄 강간범이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베트공을 사살하는 경찰.. 저 사진때문에 억울하게 총을 겨눈 경찰이 사회에서 거의 암매장 당했죠..
누가 설명좀요 ~ ㅎㅎ
궁금합니다 ㅎㅎ 사진속이야기와 2탄이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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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진 10장 (7탄!)
꺄ㅑㅑㅑ 여러분 반응 진짜 잘해주셔서 ㅠㅠ 감동 한아름들고 다시 돌아왔어용ㅋㅋㅋㅋ 오늘도 즐감해쥬세용 > < 1탄: https://www.vingle.net/posts/1253920 2탄: https://www.vingle.net/posts/1254954 3탄: https://www.vingle.net/posts/1260828 4탄: https://www.vingle.net/posts/1266369 5탄: https://www.vingle.net/posts/1272445 6탄: https://www.vingle.net/posts/1278638 (출처: http://coviral.com/historys-powerful-photos) 공원에서 여성들에게 근육을 자랑하는 아널드 슈워제네거 * 아널드 슈워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의 주지사 아널드 알로이스 슈워제네거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미국 배우, 보디빌더, 정치인이다. 배우가 되기 전 1960년대부터 70년대에 보디빌더로 활동했으며, 38대 캘리포니아 주지사이기도하다. 케네디 대통령의 조카인 마리아 슈라이버와 결혼하여, 4명의 아이를 두고 있다. 보디빌더로서는 전설적인 존재이며 그의 이름 자체가 근육질의 대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러시아 주부에게 배급량을 나눠주는 독일 군인, 1941 착한 마음씨를 갖고있네용 ㅠㅠ 디즈니 형제와 그들의 아내들, 스튜디오 오픈한 날, 1923 일본이 항복한다는 서류를 싸인하고 있는 더글라스 맥아더, 1945 *더글라스 맥아더 태평양전쟁 미군 최고사령관 독일 전투기 조종사,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와 그의 개, 1916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은 "붉은 남작"으로도 불리며, 1차 세계 대전중 독일 제국군 비행부대의 전투기 조종사였다. 그는 다른 어떤 전투기 조종사 보다도 많은, 80번의 항공전 승리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최고의 에이스"였다. 처음에는 그는 기병대원이었으나, 1915년 비행부대로 전근하였고, 1916년 독일제국 비행단(Jasta 2)의 첫 멤버중의 한명이 되었다. 이탈리아 파시스트 당, 베니토 무솔리니의 본부, 1934 *베니토 무솔리니 베니토 안드레아 아밀카레 무솔리니는 파시즘을 주도한 이탈리아의 정치인이다. 국가 파시스트당을 창당하였고 1922년 이후 이탈리아 왕국의 국무총리였다. 1925년부터 무솔리니는 최고통치자를 뜻하는 두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1936년 이후 무솔리니의 공식칭호는 "정부 수반이자 파시즘의 두체이며 제국의 설립자이신 불세출의 베니토 무솔리니" 였다. 히로시마 원폭 전과 후, 1945 타이타닉호의 마지막 모습, 1912 니콜라 테슬라 연구실에 있는 마크 트웨인, 1894 *니콜라 테슬라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출신 미국의 발명가, 물리학자, 기계공학자이자 전기공학자이다. 그는 상업 전기에 중요한 기여를 했으며,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전자기학의 혁명적인 발전을 가능케 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테슬라의 특허와 이론적 연구는 전기 배전의 다상시스템과 교류 모터를 포함한 현대적 교류 시스템의 기초를 형성하였다. 그의 이러한 연구는 2차 산업 혁명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새뮤얼 랭혼 클레먼스는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으로 더욱 유명한 미국의 소설가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미시시피 강 유역을 배경으로 개구쟁이 소년인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그린 동화 《톰소여의 모험》이 있다. 투탕카멘의 관을 여는 모습, 1924 반응 좋으면 8탄 갑니당!
사진꽝손의 '미친 음식사진'
평양냉면이 머리카락 촉수괴물로 변해 공격하는 꿈을 꾸었다. 기름에 오염된 아마존의 깊은 늪이 연상된다. '이모 볶음밥 두개요' 라는 말을 잊게 만들었다. 볶음밥이 미워졌다. 양념치킨이 싫어질 때가 온다. 이 사진을 본 이후다. 후라이드만이 대안이다. 카레의 밥알이 째려보는 느낌이다. 눈을 깔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토한 듯이 사진 찍는 내공은 어디서 오는가? 경험에서 우러난 메소드 테크닉인가? 곱창에 김치를 넣어 볶는데. 김치가 피를 흘린다. 가위질을 잘 못 해 혈관을 건드렸나 보다. 잘 불어가는 라면발이 내장으로 변했다. 곱창이 아니다. '내장'이다. 술많이 먹은 돈까스가 이불에 토한 모습이다. 견디셔. 돈까쓰. 부대찌개의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다. 스팸이라도 구해주고 싶지만 지옥도에 선뜻 손을 내밀 수 없다. 장어구이를 찍었는데. 장어 스너프 무비를 찍었다. 슬래셔 장르였으나 레알 느낌이 강해 스너프가 되었다. 장어가 너무 불쌍해 눈물이 난다. 멸치에 대한 진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담겼다. 멸치라는 어종의 제노사이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짐짓 모른척 넘겼던. 아픈 눈망울에 동감한다. 멸치는 슬픔이다. 이제나는 비건이 되겠다. 곱창이 비명을 지른다. 뜨거움에 타들어 간다. 입을 벌린다. 불어버린 죽은당면이 아니라. 잔치국수라는 식스센스급 반전이다. 기름을 부각시키는 조명이 예술적 감수성을 더한다. 예상댓글. 다이어트 원하시는 분 강추! 저녁을 못 먹기로 했습니다. 이 포스팅을 보고 비만이 다 나았습니다. 비건에 귀의하게 되었습니다. 음식의 비명을 들었습니다. 눈물이 흐릅니다.
한국의 미 (in 국립고궁박물관)
'안녕, 모란' 특별 전시만 소개하기엔 상설전시 또한 훌륭하여 따로 게시하게 되었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다방면으로 매력적인 곳이며, 역사를 좋아하거나 배우는 이들에겐 놀이터 그 자체일겁니다. 2층 : 조선 왕조의 상징물과 기록물 위주의 전시 조선의 국왕과 궁궐, 왕실의 생활에 대해 알 수 있는 전시입니다. 왕의 초상화부터 옥쇄, 대표 유물, 방의 내부 및 용포 등 다양하게 볼 수 있습니다. 왕의 글씨도 볼 수 있는데(어필각석), 힘 있고 정갈한 필체에 감탄하였습니다. 여러 왕의 글씨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격조 높은 왕실의 생활과 문화를 잘 보여주는 궁중 물품'이기에 화려하고 섬세하며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왕과 그 주변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1층 : 대한제국실과 어차 순종 황제와 황후가 타던 자동차(어차)입니다. 뒤 모니터를 통해 어차의 움직임을 볼 수 있으며, 이 공간에서는 황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대한제국 선포를 전후하여 전면에서 근대화를 위한 일련의 노력이 있었으며, 일본 미국 유럽을 통해 전기 철도 우편 등의 신기술과 문화가 유입되었고 이를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왕실 가족의 사진 및 영상, 각종 가구 및 설명에 대해 보고 들으며 그때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지하 1층 : 조선 왕실의 예술과 의례 그리고 과학 문화의 역사 마지막 상설 전시를 보러 지하로 내려가는데 보인 이 광경에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고종 중건 경복궁(좌)과 일제 강점기의 경복궁(우) 그리고 육조거리 모습을 재현한 모형입니다. 앞에 있는 망원경으로 여기 저기 둘러보는데, 섬세함에 놀라고 그때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궁중 서화실에서는 요지연도, 신선도를 비롯하여 연잎 모양 큰 벼루, 궁궐의 장식 그림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전시실에서 제일 좋았던 건, 사계절에 따라 변하는 궁의 풍경을 담은 영상이었습니다. 의자에 앉아 시원한 에어컨 아래 사계절을 눈에 담으니, 아 정말 좋더군요. 고궁박물관 만세입니다. 왕실 의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는데, 의례를 치를 때는 절차마다 연주되는 음악부터 기물, 음식, 복식에 이르기까지 각종 형식을 제도에 맞춰 행하기 위해 정성을 다하였다고 합니다. 이건 군영의 중앙을 나타내는 청룡기인데, 실제로보니 생각보다 더 커서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이렇게 조선의 군사 신호 체계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과학 문화 공간에서 앙부일부 시뮬레이션과 큰 돌에 새겨진 천문도도 놀라웠지만, 제일 감탄했던 것은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입니다. 파수호에서 흘러내린 물이 수수호로 들어가 살대가 떠오르면 부력이 지렛대와 쇠구슬에 전해지고, 쇠구슬이 떨어지면서 동판 한쪽을 치면 동력이 전해져 나무로 된 인형 3구가 종과 북 징을 쳐서 시보장치를 움직인다. 나무인형 둘레에는 12신을 배치하여 1시부터 12시의 시각을 알리도록 하였다. 진짜 원리 무엇입니까. 이것이야말로 국뽕에 취하는 거 아닙니까. 와! 저는 자격루를 보며 다시 한번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ps.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졌다는 지식백과 내용에 주먹을 꽉 쥡니다. 애국심이 사라진 지 오래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는 걸 느낄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던 에드워드 카의 말에 따르면, 오랜만에 진중한 대화를 나눈 셈입니다. (미래적인, 애국심, 역사...) 빛을 완전히 잃기 전에 한 번 가보시는 건 어떨까요? 문을 나설 때 무언가 달라져있음을 느끼실 겁니다. *국립고궁박물관(https://www.gogung.go.kr/) 홈페이지에서 VR을 통해 상설전시를 간접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산에 나무가 많은 이유.txtjpg
1. 한국은 온돌로 난방을 하는 국가 였음. 2. 온돌 난방은 마른 나무인 장작을 땔감으로 사용해서 나무 소비가 엄청난 난방방식 이었음. 3. 한반도 기후도 나무가 크는데 장애가 됨 4. 한반도는 가을부터 봄까지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어서, 수시로 일어나는 산불에 산이 홀라당 타버리는 일이 계속 생김 5. 한국의 난방 방식은 변함이 없어서 해방 이후에도 지리산과 개마고원같이 사람이 들어가기 힘든 지역을 제외하고는 한반도에 제대로된 숲이 사라져 갔음 6. 6.25전쟁이 터지자 그나마 남아있는 산림도 파괴되어버려 당시 유엔 보고서는 한국의 산림은 복구될 수 없다고 보고하였음 7. 당시 월드뱅크는 개발도상국들에게 나무를 심는 자금을 지원했었음. 8. 하지만, 개도국들은 나무를 심는 자금을 돈으로 주면 삥땅을 처먹어버리고, 돈 대신 묘목으로 주면 대충 심고 관리를 안해 나무가 죽지읺고 뿌리를 내리는 활착율이 10%도 안나오는 상황이었음. 9. 625전쟁으로 산림이 폐허가 된 한국에도 월드뱅크의 지원자금이 나옴. 10. 처음에 한국도 삥땅 의혹을 받았음. 11. 월드뱅크의 식목 지원자금으로 묘목을 사는게 아니라 석탄과 시멘트 탄광을 개발한 것임 12. 월드뱅크가 삥땅이라고 ㅈㄹ했지만, 한국의 설명을 듣고는 납득을 해버림. 13. 장작으로 난방을 하고 나무로 집을 짓는 한국에 나무를 심기만 해서는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땔감이나 기둥이 된다.나무대신 땔감과 건출자재를 대신할 수 있는 대안을 먼저 제공해 줘야 한다는 논리 였음. 14. 탄광들이 가동되기 시작하자 , 연탄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목재 가옥은 시멘트 양옥으로 대체되기 시작함. 15. 두번째 한 일은 화전민을 없애는 것이었음. 16. 그나마 나무들이 있는 깊은 숲속에는 화전민들이 일부러 불을 질러 나무를 태워 없애고, 그 자리에 농사를 지어 먹고살고 있었음. 17. 화전민들을 산 밑으로 이주시킴. 18. 화전민들에게도 있는 한국인들의 높은 교육열을 자극하고, 먹고 살 일거리를 마련해 줌. 19. 어린 자식들까지 교육도 안시키고 화전민으로 키울거냐는 말이 화전민들에게 먹힘. 20. 화전민 정착촌을 근사한 양옥으로 지어주고, 그 곳에 학교를 만들어 줌. 21. 화전민 여자는 국가가 운영하는 묘목 키우는 농장에 일군으로 고용했고, 남자는 벌을 치는 양봉을 할 수 있게 지원했으며, 산에 있고 싶으면 산을 지키는 산지기로 채용해주고 임금을 줌. 22. 도시에 살고싶다는 화전민이 있으면, 환경미화원으로 고용해서 먹고 살 거리를 마련해주며 화전민을 줄여나감. 23. 당시 숲이 많은 강원도에만 3만명의 화전민이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을 이렇게 정리함. 24. 이렇게 사전정비를 한 후 나무를 심기 시작함. 25. 공무원들을 활용했음. 26. 당시에도 공무원들은 해당 지역 출신들이 읍사무소, 면사무소를 장악하고 있어 묘목을 주고 나무를 심으라고 하면 민관이 한통속이 되어 제대로 정부 지시가 작동이 안되었음. 27. 교차 검사가 신의 한수 였음. 28. 경상도 공무원은 전라도로, 전라도 공무원은 경상도로 보내는등 타 지역으로 보내서 교차 검사를 하게 함. 29. 여기에 공무원들간에 경쟁을 붙임. 30. 묘목이 심어서 죽지않고 제대로 자라나는 활착율이 높은 지역의 공무원들에게는 특진과 성과급을 줬고, 낮은 지역의 공무원들은 성과평가를 까버림. 30. 자기가 속한 지자체가 성과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는 타지역 점수를 까내려야 함. 어설프게 술한잔 접대받고 타지역 점수를 잘 주면 자기 조직 평가가 망가지기때문에 공무원들이 눈에 불을 킴. 31. 이렇게 깐깐하게 검사를 하다보니, 활착율 100%라는 숫자가 나옴. 32. 월드뱅크는 활착율 100%라는 숫자를 믿지 않았음. 개도국들 평균 활착율이 10%도 안나오는데, 묘목 하나도 안죽이고 100% 다 키운다는 활착율은 사기라고 평가함. 33. 그런데 활착율 100%는 사실이었음. 34. 묘목을 공급할때 이동 과정이나 심는 과정에서 묘목이 죽는것을 감안해서 110%를 보통 공급했음. 35. 곰무원들은 110%의 묘목을 받으면 100%를 일단 지정된 장소에 심고, 남은 10%를 다른 곳에 심어서 키움. 36. 타지역 공무원들이 활착율을 점검하러 오는 시기가 되면, 나무를 심은곳에 다시 가서 말라죽거나 비실비실하는 나무가 있으면 딴곳에 짱박아 심은 나무로 교체를 해버림. 37. 해픙과 돌산으로 나무가 자랄수 없는곳으로 간주받던 포항시까지 녹화사업이 완료될 정도였음. 38. 포항 영일구의 경우 흙도 없이 암반층만 노출된 상태로 풀도 자라기 힘든 지역임. 이 가파른 암반층에 허리에 줄을 묶고 인부들이 올라가서 도랑을 파고 물을 부어 퇴적암반이 풍화되게 한 뒤 거름을 섞어 나무를 심고 가물면 물을 길어다 주고 매년 비료를 주는 생고생 끝에 산림이 복원됨 39. 당시 아카시나무 같은 외래종을 심어서 욕을 먹었으나, 아까시나무는 수명이 짧은 나무라 산림환경이 조성된후 자연적으로 죽으며 떡갈나무등 활엽수로 대체되고 있는 중임 40. 당시 녹화사업은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 아니라 산림이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기 위한 과정의 성격으로 당시의 척박한 토질환경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음 41. 60년대에 메마른 토양에서 잘 자라는 큰 키나무는 리기다소나무, 사방오리, 아카시나무 정도밖에 없었고, 아카시나무의 경우 뿌리혹박테리아의 질소고정으로 척박한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나무였음 42. 외래종을 심어 생태계 교란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외래종들이 나이를 먹어가며 말라죽고 자생 활엽수림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자연스럽게 산림 복원이 이뤄지게 됨 43. 최초 계획도 1차는 아카시나무등 생명력이 강한 픔종, 2차는 소나무등 중형목, 3차는 경제성이 좋은 대형종으로 10년씩 3차로 미리 게획된 초장기 프로젝트 였음 44. 하지만 정치적인 일로 인해 2차까지만 진행되었음 45. 여튼 1982년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한국은 2차 세계대전이후 산림녹화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 라고 보고서를 발간함 한줄요약. 1970년대까지 한국 산에는 나무들이 거의 없었음. 100억 그루 이상 묘목을 심어 40년을 키워 울창한 한국 산이 됨. ㅊㅊ 더쿠 모야 대박신기함 ㅋㅋㅋ 교차검사 대박 머리 개 좋은듯 ㅇㅇ 역시 극한의 효율 민족 아니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