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gow
100,000+ Views

감동적인 사진

32 Comments
Suggested
Recent
설정된 사진이든 뭐가됐든간에 단 한장의사진으로 사람마음을 움직일수있다는게 참 대단한거같습이다. 멋진 사진들이네요
마지막 사진 저장각ㄱㄱ
다시 봐도 멋짐..
너무 멋있어요
우리 한국사람에게는 없는 마인드...ㅠㅠ 나부터 반성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여성의 몸을 모욕하는 쪽지에 대한 완벽한 대응
영국은 지난 주 하나의 사건으로 떠들썩 했습니다. 한 여성이 지하철에서 몸에 대한 모욕적인 메시지가 담긴 카드를 받은 것입니다. 카드를 전달한 남성은 그 여성과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뚱뚱한 사람을 혐오하는 사람들의 회사'라고 적힌 카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신의 비만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당신의 폭식 탓이다. 우리 단체는 비만인 사람을 혐오하고, 그들을 보면 분개한다. 우리는 지구의 절반이 굶주리는 상황에서 당신이 엄청난 음식을 소비하는 것에 반대한다. 거기에 당신처럼 이기적인 사람에게 건강보험예산이 쓰이는 것을 반대한다. 우리는 이해할 수가 없다. 당신이 적게 먹고 날씬해지면 살찐 사람을 사랑하는 변태가 아니라 정상적인 짝을 찾을 수 있을 것 아닌가.' 이 모욕적인 카드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돼지를 모욕적인 단어로 쓰는 것에 반대한다. 당신은 돼지가 아니다. 당신은 못생기고 뚱뚱한 인간이다.' 목격자에 따르면 이 여성은 카드를 읽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 카드를 트위터에 올렸는데, 놀랍게도 카드를 받은 여성은 그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여성이 자신도 이 카드를 받았다며, 자신은 전혀 뚱뚱한 사람이 아니지만, 카드를 받은 이후 섭식장애에 시달리고 있음을 고백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건에 대해 강한 분노를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진저리를 쳤죠. 사람들은 '이제 정말 지구를 떠야할 때인가?'라는 말을 쏟아 냈습니다. 그러나 이 때, 한 여성이 재밌는 아이디어를 냅니다. 이 여성은 '자신은 혐오에 가득찬 카드가 배포되는 것에 분노'한다면서 여기에 대항해 '당신 정말 멋져 보여요!(You look great!)' 카드를 배포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플러스 사이즈 여성복 회사에 다니는 그녀의 친구가 이 제안을 회사에 알린 것이지요. Navabi라는 이 회사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마케팅 최고 책임자가 직접 카드의 디자인에 참여할 정도였죠. 이들은 자사 브랜드가 새겨진 '당신 정말 멋져 보여요!' 카드 200장을 프린트합니다. 여기에 회사는 '뚱뚱한 여성 혐오' 카드를 받은 여성을 찾아 나섭니다. 이 카드와, 회사의 무료 옷 이용권을 전달 해주기 위해서죠. 현재 이 회사는 그 여성을 찾도록 도움을 준 사람에게 500파운드(약 87만원) 상당의 옷 이용권을 주겠다고 나섰습니다. 현재 Navabi가 프린트 한 카드들은 지하철에서 배포중입니다. 아이디어를 제공했던 여성은 '카드를 받은 사람들의 반응이 놀라울 정도로 긍정적'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사건에 관심을 표했고, 나의 대응 방식을 응원했다'고 증언합니다. '당신 정말 멋져요!' 카드가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 궁금하네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진 10장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진들이 있다길래 그 중에서 10장 가져와봤습니당 *0* 사진에 대한 자세한 이유 이런걸 적어드리고싶은데 사진들에 별다른 설명 없이 제목만 있었다는 점 참고 부탁드려용 ㅠㅠ (출처: http://coviral.com/author/corazon/) +@minbxminb 님께서 댓글에 설명을 추가해주셔서! 글에도 추가합니당 > < 불에 타는 스님 (1963년) @minbxminb: 불에 타는 스님 베트남전쟁 때 남베트남 정권의 불교탄압과 독재에 항거하기 위해서 틱광둑 스님이 소신공양을 했는데 그 고통속에서 전혀 신음소리나 몸부림 조차 없이 버틴 모습의 사진입니다. 후에 시신에서는 손상되지 않은 스님의 심장이 나와서 현재 하노이 국립은행에 보관중이라고 합니다. 구글링 하시면 심장 사진도 찾아 볼 수 있어요. https://youtu.be/Mo_iV7kOGe4 <- 소신공양 때 영상입니다. 이 틱광둑 스님의 소신공양 모습은 Rage Against The Machine 의 1집 앨범에서 자켓 사진으로 사용되기도 했었습니다. 나치의 경례를 하지 않고 있는 유일한 한 사람 (1936년) 배우 소피아 로렌과 제인 맨스필드 잌ㅋㅋㅋㅋ @minbxminb: 배우 소피아 로렌과 제인 맨스필드 1958년 미국 베벌리힐스에서 육체파배우 소피아 로렌이 거대한 가슴으로 유명세를 탄 제인 맨스필드를 만나자 곁눈질로 가슴부위을 보고있는 사진입니다. 정작 맨스필드는 가슴에 묻혀 연기력을 인정받지 못했다네요. 고등학교 농구부 시절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혼자 유일한 흑인인게 더 놀랍네용; @minbxminb: 고등학교 농구부 시절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오마바 대통령은 고등학교 시절에 아버지가 하와이에 왔을때 선물한 농구공으로 매일 맹연습을 했고 푸나호우 농구부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농구는 농구선수급으로 잘 했고 팀의 에이스였지만 흑인이라서 주전은 될 수 없었다네요. 그 당시에는 몰랐다고해요 왜 자신이 주전이 될 수 없었는지. 백만개의 동물 해골 (1870) 우주인 Michael Collins가 찍은 사진 (1969년) 불이 난 건물에서 살기 위해 떨어지는 엄마와 딸 (1975년) 한명만 살아남았다고 하네용 ㅠㅠ 베트콩을 사살하는 사이공 경찰 (1968년) @minbxminb: 베트콩을 사살하는 사이공 경찰 이 사진을 촬영한 것은 미국 기자 에디 아담스입니다. 1969년 2월 1일 실제로 총을 겨누는 사람은 경찰서장이고 사살당한 사람은 사이공 도처를 찌르고 다녀던 베트콩 일원이었고 현장에서 즉결처형으로 사살당했지만 우선 사진상으론 사복을 입고있는 남자가 공포에 질린 (엄청난 공포로 얼굴이 구겨질대로 구겨져 그의 아내가 얼굴을 못알아볼 정도였다고하네요) 민간인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이 야만스러워 엄청난 사건이 되어버린 사진입니다. 이 후 경찰서장은 미국의 압력에 의하여 직을 박탈당하고 미국으로 넘어가 피자집을 운영하다가 사람들에게 정체가 알려져 식당에 욕 낙서가 난무했다고 하네요. 기자 에디 아담스는 이 경찰서장에게 사과했다고 해요. 장군은 총으로 베트콩을 죽였고 자기는 사진으로 장군을 죽였다고.. 우주에서 떨어진 우주인 Vladimir Komarov 의 잔해 (1967년) 인형극에서 악당을 밝힐 때의 아이들의 반응 (1944년) ㅋㅋㅋㅋㅋ애들 너무 귀여워용 ㅠㅠ 재밌게 보셨나용? 댓글 달아주시면 2탄 올려드릴게용 > <! 댓글 많이 달아주셔서 https://www.vingle.net/posts/1254954 2탄도 올렸어용!
남들과 비슷한 결혼식은 거부한다 #간지
며칠 아이슬란드 관련 카드들이 많이 올라왔길래 이 사람들이 생각이 났어요 이 뒷모습이 아름다운 두 사람은 결혼식 준비에 골머리를 앓다가 문득 말을 던집니다. "이런데 돈 쓰느니 그냥 아이슬란드 가서 결혼을 하는 게 어떨까?ㅋ" 식장을 정해야 하고, 손님은 얼마나 불러야 할지 정해야 하고, 식사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고, 드레스는 어떻게 하고... 우리도 하는 비슷한 고민들을 하던 둘은 이런 대책없는 생각을 바로 실행에 옮기고 아이슬란드로 무작정 떠나게 됩니다. 아이슬란드를 돌면서 딱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으면 거기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구요ㅎ 아 쫌 낭만적인듯...ㅋ 하이킹도 하고ㅋ 빙하도 보고 이끼로 뒤덮인 바위 위를 걷기도 하고ㅋ 무지개도 만나고+_+ 폭포도 보고 노천온천도 하고 이것도 폭폰가요 대따신기...ㅎ 바닷가도 걷고 바다를 보며 햇살도 맞아보고 근데 여자 하이힐ㅋ 또 하이킹도 하고 일몰도 보고 바위 틈도 걸어보고 빙하도 밟아보다가 이들은 퍼펙트한 장소를 찾게 되었습니다. 다 무너져 가는 교회를 발견한 것이죠. 화산폭발로 인해서 주변의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반쯤 무너진 교회만 남아 있었대요. 둘은 말을 꺼낼 것도 없이 거기가 둘이 찾고 있던 곳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서로 반지를 주고받고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고 합니다. 이 결혼식 어때요? 나도 이런 결혼 하고싶다... 여기저기 돈 들이느니 그 돈으로 아예 거하게 여행을 떠나서 이런 식의 결혼식을 만드는거 엄청 매력있지 않아요? 축의금회수못한다고 부모님이 싫어하시려나ㅋㅋ 그리고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으로 유명한 사람에게 dm을 보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 출처는 http://www.boredpanda.com/nontraditional-wedding-couple-traveling-troy-moth-iceland/ 이 곳 입니다. 후기도 무려 이 사진작가가 올림...ㅋ 연말이라 훈훈하게 결혼식 한번 따라가 봤는데 괜찮으셨쎄여?ㅎ 같이 여행 따라 다니는 여러분을 또 모셔 봅니다. 하객으로ㅋㅋㅋ @khg040921 @jaegil30 @bsj8198 @chaeyeon1215 @cottail @hasilnet19 @nisannmore @ninazzan @hanhearim @hongly @u9986 @sniper7850 @uruniverse @vladimir76 @jessie0905 @1249000 @hiyori1215 @flamingo38 @wj1815 @leelee94133 @hitman0426 @SeungHyunEun @galja36 @n0shelter @lms234562 @heterotopia @acroxs @sizen @kenken @zlddyd123 @young1213 @tmdwo3692 @beatsec @gy6555 @bluce77 @monotraveler @michell5 @ch2rishjenny @WinterDreams @maktub @lhssuk @jy54152451 @SamuelPark @k01029001418 @marridann @Christ1520 @gh4510 @rkddmswls0804 @imking6688 @blue77170 @were334 @kajami711 @likemanda1220 @christianos @helena05 @lhjeong52 @khchoi0101 @RamiKwon @zhzh120423 @rladbwls9550 @tyl1996 @cinecafe @fatalxx @Jeg19711984 @bbaddaronnie @KimChanHo4383 @tgb286 @hcy7025 @hami0929 @skendl88 @hamjl1979 @shihzhu @yoona7019 @earrrth @ClaraWoo6527 @yunkaung1 @ksjx100 @1004are @jangdeoggu @ovovgg @baeckma @lsumin0 @jeungsuShin @Redtiger72 @inhojeon5
이십년넘게 일해서 전재산 천만원 썰(+동기부여 +감동)
-선결론: 이십년전에 생긴 빛 3억 다 갚았다. 0. 서설  안녕 게이들아? 나이 마흔 다 되어가는 고추 안 서는 아재야. 읽을거리 판에 올리려고 했는데 다 써놓고 공지보니 썰은 올리면 안 되더라고; 그래서 여기다가 다시 써볼게. 사실 전재산 천만원이 된 것은 며칠 전일이야. 어디다가 자랑하고 싶은데 오프라인에서는 자랑할데가 없어서, 옛날 라면 엎을때부터 눈팅하던 개드립에다가 자랑한번 해보려고 가입했어. 여기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가입했는데 가입하자마자 글을 못 쓰더라고 ㅎㅎㅎ. 며칠 지나서 안 쓰려다가 오늘지나면은 쓸 수 없을 것 같아서 한번 써보려고.  1. 풍족했던 어린시절  우리 아버지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열심히 일했어. 어머니도 부모님을 일찍 여의시고, 이모를 먹여살리고 공부시키기 위해서 중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일을 시작하셨어. 아버지는 분식집에서 일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반해서 몇달간 쫓아다닌 끝에 아버지 23, 어머니 20살에 결혼하시고 나를 낳으셨어. 우리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서 정말 성실히 일하시는 분이셨고,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중소기업 사장님이 되셨어.  나는 할머니랑 부모님이랑 같이 살았는데 솔직히 부족한 것 없이 자랐어. 아니 오히려 남들보다 풍요롭게 자랐던것 같아. 사고 싶은것은 다 샀고, 갖고 싶은것은 다 가졌어. 먹고 싶은게 있다고 할머니에게 말하면 그날 저녁은 그걸 먹을 수 있었어.  내 꿈은 어릴때부터 판사였어. 부모님 모두 가족을 먹여살리느라 학업을 포기하신것을 엄청 안타까워하셨고, 나 공부하는데 지원을 아끼시지 않았어. 다행히 나는 다른것은 잘하는 것이 없었지만 공부는 잘했고, 부모님은 엄청 기뻐하셨어. 그 시절에 몇개 없던 영어 학원에도 다닐 수 있었고, 남들 몰래 과외도 받았던 기억이 나. 중학교 때 항상 전교 5등 안에 들었었고, 고등학교 반배치고사때 전교 1등으로 들어갈 정도로 공부 하나만은 자신있었어. 2. 사고  imf 시대가 되었어. 우리 아버지 회사도 당연히 휘청거렸지. 빚이 쌓이고 아버지는 일하시느라 집에 잘 못 들어오셨어. 아버지는 남들보다 열심히 일하면 극복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나봐. 집에서는 잠만 자고 거의 매일 일만하셨지. 빚이 쌓이고, 회사가 어려워서 직원을 늘릴수가 없어서 아버지도 직접 기계에 붙어서 일을 하셔야만 했어. 그리고 불이 났어.  기계가 과열되었다는지 어땠었다는지 불이 났고. 불은 아버지 공장 뿐만 아니라 옆 공장들까지 다 태웠고, 화학약품이 많던 공장들이라서 불은 걷잡을 수 없었어. 아버지를 포함해서 여덟명 정도 되는 직원들이 다치셔서 병원으로 실려가셨어. 아직도 밤에 엄마와 할머니와 울면서 택시잡으려고 도로를 뛰어다녔던 기억이 나. 택시가 안 잡히더라고. 셋이 도로에 주저 앉아서 울면서 택시오라고 손흔들었던 기억이 생생해.   아버지는 의식이 없으셨어. 우리 가족들, 직원들 가족들 모두 울면서 응급실에서 지키고 있었어. 두 분은 많이 다치셨지만, 회복될 수 있었지만. 우리아버지를 포함해서 여섯명은 혼수상태였어. 이틀째 되던 날 한 분이 돌아가셨어. 4일째 우리 아버지는 눈을 뜨셨어. 내가 펑펑 울고 있는걸 보면서 울지마라고 했던 기억이나. 아버지는 누구 다친 사람이 없는지 물으셨고. 미안하다고 하셨어. 그리고 그날 돌아가셨어. 여섯분 아무도 병상에서 일어나시지 않았어.  우리 가족은 펑펑 울면서 장례식을 치뤘어. 아버지 장례중에 어머니와 할머니가 쓰러지셨어. 그리고 일주일뒤에 할머니도 돌아가셨어.   줄초상...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에서는 너무 울어서 눈물도 안 나오드라. 어머니는 벽에 기대서 산 송장처럼 앉아만 계시고. 할머니 장례식까지 끝나고 어머님은 앓아 누우셔서 매일 울고만 계셨다. 나는 도시락 직접 도시락 싸서 학교 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3. 아버지가 남긴 것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차근차근 회사도 정리되고, 직원들 보상도 해주고. 불이 옮겨 붙은 공장들 물어주고. 수습하는건 세상을 모르는 어머니 뿐이었어. 한달쯤 지나서 어머니는 여기저기 불려다니고, 울고 불려다니고 울고. 물어줘야 할 것이 너무 많았어. 공장도 팔아야 했고. 아파트도 팔았어. 아버지차도 당연히 팔았고. 장농, 책상, 티비, 심지어 내 방에 있던 백과사전도 팔았어. 그렇게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고 남은 것, 빚 3억.   나중에 다 커서 들은 이야기지만. 어머니는 나하고 죽어버리려는 생각으로 농약을 사러 약국에 간적도 있었대. 그런데 돈이 부족해서 농약을 못사서 돌아왔을 지경이었어.  우리는 잘 곳이 없어서, 이모집 현관에서 약 한달정도 살았던 것 같아. 이모도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거든. 그런데도 있는 돈 다 털어서 방이 달린 작은 떡볶이 집 여는 것을 도와줬어.   테이블 다섯개 있는 낡고 작은 떡볶이집. 거기에 딸린 방에서 우리는 살았어. 바람이 너무 많이 통했고 추웠어. 아침에 일어나면 물에 살얼음이 낄 정도라서 새벽이 되면 추워서 어쩔 수 없이 깰 정도였어. 한달 내내 하루도 못 쉬고 장사해서 번 돈은 겨우 이자나 갚는 정도였고. 남는돈이 없어서, 매일 떡볶이랑 김밥만 먹었지만, 그래도 우리 둘이 살 수 있는 집이 생겨서 안심되었어. 4. 고등학교 생활  우리 고등학교는 강제로 야간 자율 학습을 했어. 일학기는 사 놓은 책들이 있어서 공부할 수 있었는데. 이학기에는 참고서고 뭐고 책이 하나도 없는거야. 그래서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는 교과서만 보고 있었어. 공부도 안 되었고... 매달 모의고사를 봤는데 눈에띄게 성적이 떨어지는건 당연한 일이었어.  그래도 모의고사 반 일등으로 들어온 아이가 갈수록 성적이 떨어지니 걱정이 되었는지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부르셨어. 선생님께서는 줄초상이 났다는것만 알지 자세한 사정은 모르셨나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공부도 안하고 그러면 아버지가 얼마나 슬퍼하시겠냐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다독이셨는데. 눈물이 줄줄 흐르는거야. 한참을 창피한줄도 모르고 펑펑 울었어. 그리고 지금 우리집 상황이 어떤지. 지금 내가 학교에 앉아 있는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그래도 힘내라고 말 없이 다독이셨어.  다음날 선생님이 부르셨어. 그리고 책을 과목별로 하나씩 한뭉텅이 주시더라고. 선생님이 돌아다니면서 다른 선생님들한테 책 한권씩만 추천해 달라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얻고, 없는 것은 직접 사셨다면서. 대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시더라고. 고마워서 울보처럼 펑펑 울었다. 선생님은 자식이 공부하게 책 주었는데도 울고 있다고 쥐어박으시고 공부하라고 웃으시면서 보내시더라고. 이후로 학기마다 선생님이 책을 챙겨주셨어. 이분이 삼년간 내 담임이셨어. 우리학교는 선생이랑 학생이랑 같이 학년이 올라가는데 나중에 이야기 하시기로 선생님이 부탁부탁 해서 계속 자기반에 넣어달라고 했다고 하시더라고. 내 은사님이야.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에 가면 장사 마감하는 것을 돕고 바로 잠들었어. 새벽 네시가 되면 추워서 어쩔 수 없이 깨게 되더라고. 어머니는 장사준비를 하시고. 나는 떡볶이 먹는 테이블에 앉아서 공부를 했어. 책이 과목별로 한 권씩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책들만 반복해서 봤어. 밑줄 그으면은 책이 지저분해지니, 공책에다가 조그마한 글씨로 빽빽하게 옮겨적으면서 공부했어. 나중에 일년쯤 보게되는 책들은 안보고도 한챕터정도는 그대로 옮겨적을 수 있을정도로 책이 외워지더라고. 그리고 다시 전교 1등까지 올라갔어. 지역 등수도 한 손가락에 들었어. 나는 선생님께 감사했고, 선생님도 많이 기뻐하셨어. 5. 대학교 입학  그렇게 3년간 공부했고, 수능도 평소보다 잘봤어. 선생님이 추천한대로 해서 S대법대와 한군데 법대에 합격했어. 나는 고민했어. S대는 그냥 학생이었고, 다른데는 전액 장학금을 준다고 그랬거든. 우리집은 등록금은 커녕 책값도 없었거든. 나는 아쉽지만 이것도 고맙다고 생각하고 다른데 법대로 가려고 했어. 그렇게 결정했다고 하니, 교장선생님이 부르셔서 봉투를 주셨어. 그 봉투에는 등록금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있었어. 제 사정을 선생님이 교장선생님께 말씀하셨고. 교장선생님이 등록금을, 선생님들이 돈 조금씩 걷어서 책값하라고 모아주셨대. 눈물이 나더라고. (자꾸 우는 이야기만 쓰네. 부끄럽게). 교장선생님은 대신 사회에서 훌륭한 사람이 되서 등록금은 갚으러 오고, 나머지는 학교에 장학금으로 내라고 하시더라고.  정말 고마운 분들 덕분에 나는 S대 법대에 들어가게 되었어. 나는 합격하자 마자 과외를 다섯개씩 했어. 그러니까 숨통이 트이더라고. 어머니가 장사하는 돈은 빚 이자를 갚고. 과외한 돈은 생활비로 하고. 비록 빚을 줄이는 것은 못하지만 가끔 고기도 먹을 수 있고. 어머니 병원도 가끔 가실수 있다는게 행복하더라고. 그러면서도 공부는 정말 열심히 했다. 장학금을 받으면 등록금만큼 돈을 버는거니까 꼭 장학금을 받아야 했거든. 친구들이나 선배들하고 술 먹은적이 한번도 없었어. 수업 끝나면 바로 과외, 과외 끝나면 바로 도서관이었거든.  우리때도 그렇고 원래 법대 애들은 군대를 최대한 미뤘거든. 나는 방위가 되어서 1학기 끝나자마자 바로 방위로 갔다. 6시까지는 통지서 돌리고, 저녁에는 과외하고. 6. 전과  사실 내 꿈은 한번도 변함없이 판사였고 법대를 갔기 때문에 당연히 사법시험을 준비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대학 동기들은 이미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친구들, 선배들을 많이 만났다. 과외를 하면서 사시를 하는 것은 미련한 짓거리같았고. 그러면 얼마나 돈을 모아놔야 하는지 알아야했거든. 공부하고 있는 친구과 이미 시험에 붙은 선배들, 이십대 후반이 되도록 계속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선배들.   모두가 하나같이 하는 말은 신림동에 들어와서 학원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림동에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거기에 있어야만 시험에 붙을 수 있으니까. 지금은 정보가 예전보다 더 많이 돌겠지만. 그 때 당시에는 시험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공부해야하는지 무슨 책을 사야하는지. 뭐가 시험에 나오는지 다 신림동에 있었거든. 매년 출제경향이 바뀌기 때문에 책만 읽어서는 평생 공부만 한다는 소리였다. 90년대 후반이었는데 최소로 돈 쓰던 친구가 월 80만원이었다. 만나본 선배중에 가장 빨리 시험에 붙은 형이 각잡고 공부한지 4년만에 합격. 아직 못 붙은 형은 9년째.   내가 그 형보다 열심히 하고, 더 천재라서 3년만에 붙는다고 해도 대략 3천만원. 꿈과 같은 돈이었다. 지금부터 한달에 백만원을 모아도 3년은 모아야 시작이나마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3년만에 합격못하면 아무것도 남는것 없이 3천만원을 날리고 6년의 시간을 날리는 것이었다. 이 계산대로라면 도저히 도전할 수 없었다.  내가 줄일 수 있는 것은 학원비 뿐이었다. 집안이 가난해서 학원을 못다닌다는 말은 못하고, 학원다니는게 너무 싫으니 학교수업만으로 합격할 수 없냐고 선배들한테 물었더니 모두가 병신이라고 비웃었다. 그래도 일단 도전해볼 수 밖에 없었다.  복학하자마자 과외도 줄이고 학교수업을 정말 열심히 들었다. 1학년 2학기는 교양이 많아서 법학은 3개 밖에 없었지만. 3개 다 압도적으로 A+ 받았다. 그리고 바로 사법시험 기출문제를 사다가 내가 들었던 범위만큼 풀어봤다. 20%정도 맞았던것 같다. 시험은 동쪽에서 나오고, 학교 수업은 북쪽으로 가는 느낌이랄까? 아예 반대는 아니지만 시험에 나오는 이야기와는 다른 이야기였다.  쿨하게 포기했다. 경영대로 전과했다. 어머니에게는 돈이없어서 고시준비 못한다는 이야기는 못하고, 해보니 법학이 안 맞는것 같다. 경영학이 재밌는것 같아서 경영학과로 간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쉬워했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걱정만 하셨다. 쿨하게 포기했지만 가끔 울컥울컥 했다. 7. 취업  생각보다 경영학이 더 재밌었다. 법대교수는 다들 별로 수업에 의지가 없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사시에 도움이 안되었거든. 30분 늦게 들어와서 30분 일찍 끝내주는 교수도 있었고. 아예 책 낭송회를 하는 교수도 있었고.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그 전 학기에 120명 듣는 수업에 출석을 안 부른다고 하니 시험보는 날 빼고 8명만 수업들었다는 이야기는 레전드였다. 경영학과는 교수도 열성적이었고, 학생도 열심히였다. 교수는 경영대에서 사시준비하는 애들도 있는데, 너는 나이도 어린데 법대에서 경영학과로 오냐고 의아해 하는 교수도 있었다. 그럴때마다 경영학이 더 좋아서요라고 대답하고 공부했다. 성적도 잘 나왔다. 한번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  칼졸업하고 바로 대기업에 취직되었다. 8. 회사생활과 시작되는 빚 청산  본사근무였는데 전공이 회계라서 회계팀으로 지원했는데 인사팀으로 넣어줬다. 월급이 많이 좋았다. 즐거웠다. 엄마가 버는 200만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을 생활비로 쓰고, 내 돈은 모두 빚청산을 시작했다. 빚이 생긴지 거의 10년만에 원금상환이 시작되었다. 처음 빚을 갚기 시작하니 뿌듯하드라. 언제 다 갚을지는 기약도 없었지만 이대로 갚아가면 금방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집도 살얼음 끼는 떡볶이 집에서 벗어나서 방이 두개 있는 월세방으로 옮겼다. 어머니가 너무 기뻐하셨다.  인사팀에서 2년정도 근무하고 있을 때 쯤? 자판기 앞에서 커피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감사팀 부장님이 오시더라. 그리고 서류를 좀 주시더니 읽어보라더니 여러가지 물어보시더라,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래서 이렇게 이렇게 생각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그냥 웃으면서 가시더라. 나는 저 양반이 일이 많아서 미쳤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주에 감사팀으로 옮기게 되었다. 부장님이 나를 맘에들어서 계속 옮겨달라고 했다고. 인사팀에 비해서 일이 훨씬 많았다. 그래도 월급이 150정도 올랐다. 일이 많은 것보다 월급 더 주는게 신나서 더 열심히 일했다. 부장님도 이뻐하시고. 9. 사랑  경영대 전과하고 알게된 여후배가 있었다. 내가 먼저 좋아했고, 여후배는 마음을 받아줘서 사귀게 되었다. 가난한데 사랑 하는게 겁났다. 그 후배는 마음이 넓은 친구였다. 소박하고, 돈도 아껴쓰고. 비싼거 먹는다면 손이 벌벌벌 떨린다고 하였다. 데이트 비용도 그 친구가 더 많이 낼 때도 많았다. 집에서 싸온 떡볶이와 순대만 먹어도 행복해 하는 친구였다.   나도 취업하고 그 친구도 취업하고. 나는 벌써 5년차. 그 친구는 1년차. 30대 초반. 당연히 우리는 결혼할 줄 알았다.  어느날 그 친구가 차 사는 이야기를 꺼냈다. 벌써 5년차인데 차 사는게 어떠냐고. 불편하지 않냐고. 집에 빚이 많아서 안 된다고 했다. 이 문제로 살짝 말다툼을 했다. 얼마나 빚이 많기에 중고차 하나 못사냐고 했다. 그 때 남은 빚이 1억 8천 정도. 나는 빚이 2억이나 있는데 무슨 차냐고 했다.  그 친구는 충격받은 듯 했다. 우리 집에 빚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 많은 지는 처음 들었나 보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친구는 헤어지자고 했다. 나를 너무 사랑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열심히 살면 우리는 결혼하고 행복할줄 알았다고 했다. 돈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도 사랑했다. 그런데 아직도 이렇게 빚이 많은지 몰랐다. 빨리 결혼하고 싶은데 빚을 갚고 집을 사서 결혼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이해했다. 그 친구는 정말 소박한 친구였다. 돈이 없다고 사랑을 못하냐고 하던 친구였다. 결혼하면 매일 붙어 있으면 좋으니 집이 좁아도 좋다고 했다. 우리 어머니도 혼자 살기 외로우니 방 두개짜리 조그만 집에 들어가서 한방은 어머니 한방은 우리가 살자고 했었다. 너무나 순진하고 소박한 친구에게 내가 얹어줄 짐은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한번 안아주고. 헤어졌다. 헤어짐을 입에서 꺼내는 순간부터 돌아서서 멀어지는 순간까지 그 친구는 길거리에서 창피하게도 너무나 울어댔지만. 이별을 번복하지는 않았다. 그 친구가 너무나 울어대는 통에 나는 눈물도 안 나왔다. 내가 그 친구를 차버리는 나쁜놈인 것 같았다. 아니 사실 내가 나쁜놈이었지.  헤어지고 매일 술을 마셨다. 일이 끝나고 집에오면 팔다남은 식은 떡볶이에 소주를 마셔댔다. 퇴근하고는 매일 떡볶이에 소주였다. 그리고 매일 울었다. 술에 취해 나도 모르게 전화도 많이 했다. 그 친구는 현명하게도 받지 않았다. 거의 한달 넘게 그랬던 것 같다.  그날도 퇴근하자마자 옷 벗고 술을 꺼냈다. 어머님이 방에 들어오셔서 앉았다. 같이 마시자고 했다. 혼자 마시고 싶다고 했는데 막무가내였다. 술을 한 두잔 먹고 어머니는 펑펑 울었다. 미안하다고. 아버지가 살아계시고 니가 돈 많아서 공부하고 판사했어도 그년이 그랬을 거냐고. 다 못난 애미애비 만나서 그렇다고. 어머니를 달래다보니 그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 다시 도전  판사했어도 그 애가 그랬을까. 하는 말에 솔직히 공감했다. 그 날로 여러가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빚은 있었지만 돈도 있었다. 대학생때 3년간 벌 돈 반년이면 벌었다. 빚은 일억 8천 통장에 5백만원.   그 때는 이미 다음해에 로스쿨이 개원하는 시기였다. 사법시험은 곧 없어지기로 결정되었다. 다시 알아보았다. 아직도 사시하던 동기들은 연락이 안되었고. 몇년전에 붙었다는 친구 다짜고짜 연락해서 술 마시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물가는 조금 올랐다. 한달 100만원 정도? 이제는 3년만에 붙을 자신은 없었다. 인원도 줄고 있었다. 기한은 5년으로 잡고 계산했다. 로스쿨은 아직 1기 받기 전. 등록금은 천만원정도라고 했다. 3년이면 6천만원잡고 비교했다.  어머니께 나 회사 그만두고 사시나 로스쿨 갈거라고 했다. 어머니는 그러라고 하셨다. 그리고 여기저기 알아보면서 사시 준비하려고 했다. 법대를 일찍 그만둬서 사시보려면 있어야 하는 학점이수도 안되어 있었다. 독학사를 알아보고 있었다.  부장님(이때는 이사)하고 둘이서 저녁먹으면서 술먹다가 슬쩍 이런 생각하고 있다. 일년만 더 일해서 돈 모은 다음에 독학사하려고 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런데 부장님이 의아하다는 듯이. 사시하면 5년은 잡고 하는거 아냐? 그리고 로스쿨은 육천만원 더 들여서 3년뒤에 변호사 되고? 그러면 2년 일찍 변호사 되서 돈 일찍 버는게 이득아닌가? 변호사 하면 일년에 3천 못버나? 이러는 거다.  그 순간 아차, 싶었다. 사실 5년도 장담할 수 없어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사시에 결국엔 붙는다고 해도, 5년 이상 걸리면 로스쿨이 이익이었다.  바로 독학사 때려치우고 LEET(로스쿨입학시험-대학교로치면 수능같은거)를 봤다. 성적은 별로 안 좋았다. S대랑 KY대에 지원했는데 떨어졌다. 부장님이 물어봐서 떨어졌다 그러니까 웃으시더라. 그럼 사시하러 가냐고. 혹했지만 일단 돈을 모아야 해서 회사 다니면서 다시 LEET 준비했다.   사실 준비랄것도 없는 것이 적성검사라서 기출문제 풀어보는 정도? 말고는 할 게 없었다. 그리고 다음해에 서성한 중에 한 군데랑 인서울 한군데에 지원해서. 서성한 중에 한 곳은 면접에서 떨어지고 인서울은 붙었다.  퇴직하는 날 부장님께 따로 인사드렸더니 나중에 자기 이혼소송할 때는 공짜로 해달라고 하면서 웃으면서 헤어졌다. 11. 로스쿨생활  로스쿨은 생긴지 일년밖에 안되어서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다. 통장에는 4천만원 좀 넘게 있었다. 빚은 여전히 1억 8천. 처음에는 그냥 내돈으로 등록금 내려고 했는데,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이 있어서 2%로 빌려서 냈다. 2%로면 지금 있는 빚보다 싸니까 천만원 빚갚고 학자금대출 받는게 훨씬 나으니까. 하나은행에서 로스쿨 붙은 학생들은 마이너스 통장 2천만원짜리도 만들어준다고 했다.  마이너스 통장까지 다해야 6천만원정도 였다. 3년 등록금밖에 안되었다. 들어가기 전에 학원원장하고 있는 법대친구에게 부탁해서 고등학교 논술 선생으로 계약했다. 로스쿨이 생긴지 일년밖에 안되어서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르고, 주변에 로스쿨 다니는 사람도 없어서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당연히 대학원이니까 일하면서 다녀도 되는건지 알았던 거지.  예상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학교가 빡셌고, 학원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들었다. 남들은 9시에 나와서 10시까지는 기본으로 하는 것 같은데 나는 7시에 학원에 출근하니. 수업시간에 초 집중하고. 교수님말 한마디한마디 다 받아썼다. 그리고 중간고사를 봤는데. 너무 어려웠다. 다들 어렵다고 하길레 역시 법학은 어렵구나 하고 말았는데. 기말 끝나고 성적표가 나왔는데 내 뒤에 3명밖에 없었다.   사실 엄청 충격이었다. 30대 초반까지 단 한번도 받아본적 없는 성적이었거든. 그제서야 이게 미친짓이었구나라는 것을 알았다. 등록금은 또 대출하면 되니 지금 있는 돈으로는 생활비만 하면 되니 학원은 여름방학까지만 하고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학원은 이미 특강일정이랑 나와서 학원 일하느라 바빠서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ㅠ.  다행히 우리집 수익이 적으니전액 장학금이 나와서 등록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2학기부터는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였다. 한학기가 통째로 뒤쳐져있으니 남들보다 두배로 해야했다. 매일 9시부터 11시까지 공부하고 집에갔다. 나이가 드니 몸이 못버티기 직전까지 공부했다. 워낙 공부하느라 몸이 망가져서 2학년 2학기 때는 스트레스로 인한 호르몬 분비가 망가져서 병원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호르몬 주사도 맞아야 했다. 다른 사람도 열심히 하니 쉽게 따라잡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정말 열심히 했더니 효과가 있어서. 1학년 2학기때는 하위 15%, 2학년 1학기는 중하위권, 2학년 2학기는 중위권, 3학년 때는 중상위권, 상위권으로 성적이 나왔다.   3학년 끝나고 변호사시험도 무난하게 통과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12. 취직  변호사가 되고 나서 취직을 해야했지. 기준은 무조건 돈이 었어. 돈 많이 주는 곳만 골라서 넣었어. 그런데 어영부영 하나 둘 씩 떨어지더니 모두 떨어졌어. 3학년때 상위권이었던것만 생각하고 1,2 학년때 성적이 낮았던 것은 간과한거지. 돈 많이주는 곳만 골라서 지원하다보니 어느새 돈 적게주는 곳까지 마감이 다 되었더라고. 낙동강 오리알이 된거지.  그 때 지방에서 변호사 급구한다는 로펌이 있어서 거기에 지원했다. 주로 기업관련 사무를 하는 곳이라서 회사 다닌 경력을 높게 쳐줬고 합격하게 되었어. 돈도 지방에다가 지방치고는 일이 많아서 월급도 높은 편이었어. 나는 가까스로 구제되었지. 13. 직장내 왕따  내가 입사한 회사는 대표3(실제로 일하는것은 2)명까지 포함해서 9명정도 변호사가 있는 회사야. 공단 근처에서 세 변호사가 갈라먹다가 합친지 조금 된 로펌이었지. 본래 회사자문과 회사에서 관련된 소송들이 주요 수익이었는데, 변호사들이 합치면서 다른 사건들도 많아지다 보니 급하게 변호사를 구한 것이었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들어가고 나서 왕따를 당했다. 대표님들은 딱히 그런것들 없었지만 나머지는 나만 로스쿨 출신이라고 무시했다. 사시 출신 두명과 함께 입사했는데. 다들 처음 일하는것이니 어리버리 타면 다른 친구들은 처음 일하니 그런것이라고 하고. 나는 로스쿨 출신이라서 그렇다는 식? 밥을 시켜야 되는데 깜박했다며 내 메뉴만 빼고 시킨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면전에서 무시하는 이야기도 많이 하였다. 그렇다고 일을 못한것도 아니었다. 대표님이 칭찬할 정도로 일도 열심히하고 잘했는데, 그걸로 비꼬면서 잡스런 사건만 주고, 주요한 사건은 주지도 않았다. 변호사는 도제식이라고 할 정도로 선배들에게 일을 배우는게 중요한데, 가르쳐주지 않는 것은 둘째치고, 제대로 된 소송은 손도 못 대도록 하니 서럽더라. 그러면서도 회계장부도 못보니 나에게 봐달라고 하는 것은 많고, 그러면서도 무시하고. 더럽고 치사해서 당장이라도 때려치고 싶었던 적이 몇번씩 들었다.  대표님도 그런 분위기를 눈치채고, 나를 자문업무로 돌렸다. 다른 변호사들 다 자를 수는 없으니, 차라리 나를 자르는게 나았겠지. 그때부터 제대로 된 소송은 손도 못대고 자문위주로 일했다. 자문업무는 주로 계약된 회사에서 전화오면 받아서 자문해주는 것과, 회사들 돌아다니면서 서류들 보면서 미리 법률적 문제 있을것 같은 부분들 찝어주는 걸로 나뉜다. 원래 계약은 전자이고, 후자는 서비스 같은 느낌? 대부분 귀찮고 시간이 오래걸려서 자문전화 받는 것도 싫어하고, 돌아다니는 것도 싫어하는데, 돌아다니는 것을 아예 서비스에서 정식만큼 비중을 늘리고 그걸 다 나한테 몰아버린거지.    그런데 나는 오히려 그게 더 좋았다. 어차피 회사 들어가봤자 무시만 당하니 자문다니는게 폼도 안나고 힘들기는 해도 더 보람찼거든. 어차피 로스쿨 나오면 6개월은 법적으로 개업도 못하니, 딱 일년만 버티자는 생각이었다. 14. 역전  차타고 돌아다니면서 회사 서류들 보는일이 폼은 안나지만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회사다니면서 감사팀에 있을 때 맨날 했던 일이거든. 남들보다 훨씬 빠르게 보면서도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 나도 처음에는 몰랐는데 찾아간 회사 직원이 변호사님은 서류를 엄청 빨리보시네요? 다른 변호사님은 삼십분넘게 보고도 대충 보시던데, 엄청 꼼꼼히 보시는데도 십분이면 다 보시네요. 이런 이야기 몇번 듣고서야 내가 잘하는 것을 알았지. 다른 변호사 보다 두배정도 빨리 보고도 꼼꼼하니 회사 방문하는 횟수도 다른 변호사들보다 두배는 많아져서 회사에서 많이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 계약 회사 중에서는 큰 편인 회사에 방문해서 서류를 보고 있는데 뭔가 이상한거다. 브로커가 세군데나 끼어있는 수출계약인데. 감사팀에서 근무할때 경험에 비추어볼때 이 회사가 이런 내용으로 계약을 할리가 없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거다. 거기 과장님에게 좀 이상한것 같다고 이야기했는데. 과장님이 설명해준거랑 미세하게 아다리가 안 맞는거다. 정말 선해한다면은 그렇게 읽을 수도 있는데, 찝찝하다고 할까? 그렇게 안 읽을 수도 있었거든. 거기다가 내용도 좀 이상한 것 같고. 과장님한테 관련된 서류들 다 달라고 그랬는데, 거의 한 박스인데 이미 이전에 다른 변호사님이 다 확인하고 가신거라고 궁시렁 대시더라. 그냥 확인하고 싶은게 있어서 본다고 그러고. 책상하나 빌려서 아예 앉았다. 그리고 첫 서류부터 일년이 넘는 서류를 다 읽어보는데 읽어가면 읽어갈수록 찜찜함은 가중되더라고. 과장님하고 이야기할수록 뭔가 계속 아다리가 안 맞더라고. 거의 네다섯시간을 앉아서 살피고, 여기저기 내가 아는 인맥들 전화해서 확인하고 했다. 우리 회사에서는 전화가 와서 난리가 났다. 너 뭐하냐고. 왜 이미 검토 다 한것을 다 뒤집어 엎어서 있냐고. 과장님이 너 때문에 몇시간째 일을 못한다고 항의한다고. 빨리 정리하고 사과하고 들어오라고. 내가 이상한게 있어서 그렇다, 이전에 변호사님들 검토 제대로 한거냐고 막 그랬더니. 문제 없으면 너 와서 당장 사표쓰라고. 사장님도 나와서 얘 뭐하냐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확실히 변호사가 와서 서류 다 내놓으라고 하고 다 뒤집어보고 여기저기 전화하고 있으면 불안하기도 하고 그 동안 일도 못하니 짜증도 나지)  결국 직원 한명 남고 다 퇴근하고 9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자세히 얘기하면 안되니까. 대충 이야기하자면 브로커 한군데가 사기꾼. 한군데가 계약서 조항을 꼬아서 물건 만 챙기고 돈은 지급 안해도 책임은 모두 이 회사가 뒤집어 쓸 수 있게 되어 있었고. 감사팀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한테 부탁해보고, 최종 계약자 회사에 통화해보고 한 결과는 실제로 그럴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직원하고 사장님 찾아가서 이러이러하다. 전화해서 확인해보시라. 그 업체 물건하고 돈만 챙겨서 날아가려고 하고 있다. 며칠만 늦게 발견했어도 매출 50억 원어치 물건값 못 받고, 50억 손해배상해서 총 100억 이상 날아갈 것을 막았다. 이 사실을 알고 대표님들은 노발대발, 그 동안 OK했던 다른 변호사들에게 죽이네 살리네, 망하네 어쩌네 했는데. 다행히 사장님이 다른 사장님들한테 소문을 잘 내주시고 해서 그 로펌에 누구 변호사가 일을 잘한다. 덕분에 100억이나 막았다. 돈 주고 자문하는게 아깝지 않다라는 식으로 소문이 났다. 덕분에 새로 계약하는 회사가 엄청 늘어났다. 그리고 모든 회사에서 콕 찝어서 나에게 전화를 바꿔달라고 한다던가, 내가 바빠서 못 나가면 그 변호사님이 왜 안오셨나고 하는 식으로 명성이 올라갔다.  덕분에 회사내 지위도 올라갔고, 일년 끝났을 때 나가는 대신에 연봉 천오백이나 더 올려서 재계약 했다. 15. 변호사2년차  재계약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자문업무가 아니라 소송업무로 재배정 되었어. 처음에는 드디어 나도 제대로 된 소송한다고 좋아했어. 그런데 가만보니 그게 아니라 일부러 자문을 못하게 하는거더라고. 일하다가도 자문전화오면 내가 받게 할수도 있는데, 바쁘지 않은데도 내가 바쁘다면서 일부러 다른 변호사에게 받게 하고, 회사 돌아다니는 것도 못 가게 하더라고.  알고보니 변호사는 보통 3~5년 정도 일하면 개업을 하는데. (우리 회사도 4년차 정도가 제일 오래 근무한 사람이야) 내가 그만두고 이 지역에서 개업하면 나를 찾던 고객들이 다 나를 찾아갈까봐 한거지. 그래서 일부러 회사들하고 접촉을 끊어서 고객들에게 인기가 떨어지게 하려는 거였어. 근데 어쩔 수 있나? 까라면 까야지.  내부사정은 모르고 회사들에서는 나를 찾는데 우리 회사가 연결을 안 해준다고 불만이 많이 쌓였다. 다른 회사는 나를 보내주면서 왜 우리 회사는 이상한 변호사 보내주나 하고 생각한거지. 그러던 어느날 사건이 터졌다.  한 사장님이 금융상품 문제로 직접 자문전화 했는데, 받은 변호사가 자꾸 이해를 못하고 딴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직접 찾아온거다. 그 때 대표님들도 외출중이시고, 나는 한가해서 방에서 논문보고 있었거든. 그걸보고 사장님이 짜증이 나셨지. 바빠서 못 받는다고 하더니 사무실에 있구만 왜 안 받아서 돈만 날리게 하는지 (자문전화는 통화시간 만큼 돈이 드니까). 서류들 다 챙겨서 와서 나한테 자문해달라고 했는데. 나는 만나지 말라고 그랬으니 만날 수 있나. 아까 통화한 변호사가 나는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으니 자기가 해결해 드리겠다고 응접실로 데려가고, 나는 일하는척 하고 있었지. 그러고 한 30분 있었나.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려서 내다봤더니 응접실이 난리가 나 있는거다. 사장님이 바쁘다니까 참고 그 변호사랑 이야기하는데, 금융상품이 복잡하니 서류를 봐도 이해를 계속 못하고 엄한 이야기만 하니 사장님이 화가나서 응접실에 화분들을 발로 차서 다 깨버린거다. 사장님은 화가나서 내가 여기다가 일년에 얼마를 내는데 내가 물로보이냐고 지금 이게 얼마짜린데 이상한 놈이나 붙여서 시간만 떼우냐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나랑 직원들, 변호사들 다 패닉에 빠져서. 일단 내가 내방으로 모시고 좀 진정시키고, 자문해드렸다. 사실 내가 봐도 엄청 복잡해서 왜 이걸 회계사가 아니라 변호사한테 가져왔나 싶더라고 그래도 성심성의껏 자문해드리고, 확실하지 않은건 내가 회계사한테 전화해서 알아봐드리고. 사장님도 화가 좀 풀려서 미안하다고 하고 가셨다.   외출했다가 돌아오신 대표님들은 사태파악하시고 한숨쉬시더라고. 그리고 나는 다시 자문업무쪽에 집중하도록 배정 되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신거지. 그리고 고객만족도도 높아져서, 다시는 자문하지말고 소송집중하라는 이야기는 안 하시더라고.  2년차 채워갈 때, 다른 변호사가 개업하면서 나한테 같이 일하자고 하드라. 월급은 2천만원 더 올려준다. 혹했다. 솔직하게 대표님한테 말씀 드렸다. 고민하고 있다고. 우리 회사는 수익의 70%가 자문업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거든(자문비, 자문 계약한 회사 소송,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 소송,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개 받은 사람 소송). 대표님들은 며칠 고민하시더니 월급 3천만원 더 올려서 재계약했다. 16. 빚청산  지금 변호사생활한지 2년 반정도 되었어. 그 동안 나는 꾸준히 돈 갚아나갔어. 얼마전에 빚 갚는거 이체하면서, 거의 다 갚았는데 얼마나 남았나 봤더니 딱 4천만원 남았더라고.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현재 어머니가 사시는 집 보증금 3천, 내 보증금 2천. 합치니 내 재산이 5천만원 있더라고. 그래서 빚 다 갚아버려도 천만원 남는 다는 생각에 변호사 합격하고 만든 마이너스 통장에서 4천만원 보내버렸어. 물론 빚에서 빚으로 바뀐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20년전 -3억에서 시작해서 드디어 그동안 족쇄처럼 따라다니던 빚을 다 떨어내었다는것 때문에 후련하고, 스스로 뿌듯하고 자랑스러워(서 자랑하려고 가입했는데 가입하고 바로 글 못쓰길래 이제서야 자랑해) 17. 앞으로   이제 곧 나는 변호사로서 3년채워. 대표님들이 술한잔 하자고 해서 술 한잔 했더니. 곧 대표님중 한 분이 은퇴하시니 (나이가 많으시고, 건강이 안 좋으셔서 거의 이름만 걸어놓으신지 오래됐어) 3년차 채우면 지분 넣어서 파트너로 하자고 제안하시더라고. 나는 고민하다가 지난주에 수락했어. 어차피 대표들보다 더 받을 수는 없으니 월급 올라갈데도 없고, 사무실 개업하고 나서 직원이랑 아래 변호사들 고용해서 월급 주면 지금보다 월급보다 더 번다는 보장도 없어.  이번주에 예전에 교장선생님이랑 선생님 찾으려고 학교에 갔더니, 교장선생님은 돌아가신지 조금 오래 되셨고, 담임선생님은 은퇴하셨더라고. 교장선생님 아드님께 그 때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받았던 돈보다 더 많은 돈을 갚으려고 갔는데, 아드님께서 받으실 수 없다고 하셔서 식사만 대접하고.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꼭 어려운 학생 장학금으로 써달라고 전달했어.  담임 선생님은 지방에 계신다고 그래서 내일 만나뵈러가. 너무 설레서 열한시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벌써 새벽 네시네. 중간에 하도 울어서 오래걸렸나봐.  이제 마이너스 통장도 갚을 수 있을 것같고. 돈 다 갚으면 어머님 분식집도 그만두게 하시고, 어머님 모시고 둘이 행복하게 살려고. 그동안 우리 어머님 고생많이하셨는데 앞으로 호강시켜 드릴거야. 18. 마지막으로  이 내용은 가입한날 쓰려고 했던 내용과 거의 똑같은데 뜬금없이 사시이야기가 터져서 로스쿨 변호사라는거 밝히고 글 쓰는것까지 무서울 지경이야. 그래도 두서없는 넋두리 들어줘서 고마워. 이제 그만 자러가야겠다. 너무 늦었네.  나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 있는 친구들도 있을거야. 하지만 용기를 잃지 말기 바래. 난 운이 좋았고, 좋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어. 포기하지 않으면 모든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은 너무 잔인한 것 같아. 하지만 행운도, 기회도 포기한 사람에게는 찾아가지 않아. 꼭 포기하지 말고 어떻게든 악착같이 버티도록 해. 반드시 행운이 함께하기를 빌게. +추가 1. 아버지가 돌아가신게 나는 IMF 시대 들어오고라고 생각했었는데 IMF는 아버지 돌아가시고 한참 뒤에 들어왔더라고; 아버지 회사가 어려워진것은 imf랑 관계가 없어. 내 기억이 왜곡되었었나봐. 나는 계속 IMF때문에 회사가 어려워지고 아버지가 무리하시다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했었는데. 계속 착각하고 살았더라고. 2. 감사팀으로 옮기면서 월급 150이 올랐다고 했는데. 금방 승진했고 호봉 오르고 야근 매일하게 되고 주말근무도 매주 한 덕분에 월급이 100만원 훌쩍 넘게 더 들어오는 것을 그냥 짧게 쓰려다보니까 이렇게 썼어. 3. 월급하고 연봉하고 계속 혼동해서 썼는데.. 월급 3천을 올린게 아니라 세전 연봉 3천 올린거야^^. 나도 깜짝 놀랐어. 연봉 3억6천올라간줄 알고ㅋ 4. 쓰다보니까 웬지 섭섭했던 것들이 막 튀어나와서 다른 변호사들 능력없고, 나쁜놈처럼 썼더라고 ㅋㅋㅋㅋㅋ 그런데 다들 능력있는 분들이야. 단지 운좋게도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적절히 배치되었던 것 뿐이야. 소송 같은 것들은 나보다 훨씬 잘하시는 분들이 많아.  5. 변호사 하면서 생겼던 일들 자세하게 못 적고 대충대충 이야기 한것 같은데;;; 인터넷에 올리는 글에 자세히 설명하면 안 될것 같아서 그랬어. 미안^^; 이해해줘 6. 마이너스 통장에서 4천을 보냈다고 했는데 32백 보냈어ㅋㅋㅋ 합쳐서 마이너스 4천된건데 ㅋㅋㅋ 헷갈렸어. 7. 결혼은 안했어. 딱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어. 딱히 슬프지도 않아. 헤어진 친구랑도 연락안해. 그건 슬프니까 묻지마 ㅋㅋㅋ 8. 사법고시가 돈 많이 든다는 식으로 보였나본데. 로스쿨도 돈이 많이 들지. 내가 너무 가난해서 상대적으로 그랬던 것 뿐이야. 9. 상속포기, 파산, 개인회생. 왜 안했는지. 상속포기는 장례식장에서 들어서 알고 있었대. 그런데 어머니가 세상에 밝은 분이 아니라서 상속포기하면 내것도 해야한다는 것은 어머니께서 모르셨어. 빚이 어머니랑 나한테 상속되는데 어머니가 포기하니 다 내 빚으로 됐던거지. 어머니 상속포기도 앓다가 간신히 신청한건데, 그게 다 나한테 간다는 것 알았을 때는 이미 기간이 지나고 난 이후였어. 파산은 취업에도 불이익 받고, 할 수 있는 일도 제한된다고 해서 못하게 해서 못했어. (일단 파산하면 변호사도 할 수 없어) 개인회생은 내가 이미 취직한 이후에 제도가 생겼을껄? 한번 알아본적도 있었는데. 자격이 안 됐어. 10. 누가 퍼갈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는데. 많이는 안퍼졌으면 좋겠네. 많이 퍼지면 신상맞춰보는 분들도 있을텐데 100%걸릴것 같아서ㅜ 내가 가난했었다는 것 사람들한테 이야기한 적 없고. 자랑이라기보다 부끄러운 일 같고. 알리고 싶지도 않거든. 그냥 작은 커뮤니티 라든가 보고 용기를 얻을 사람이 필요한 곳이라면 퍼가도 좋을것 같아. (스랍은 싫어)  +근데 요 며칠 로스쿨 사시 싸움이 자꾸 뉴스에 나와서 이럴 때 이런글이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네...;; 혹시 같이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퍼가고 싶더라도 조금 나중에 싸움이 다 끝나고 퍼갔으면 좋겠어... 고마워! 다들 용기를 잃지마! 이 아재는 다시 눈팅족으로 돌아갈게~ (탈퇴하면 글 지워지는 지 알려줄라~) 나는 오늘 카톡을 받았다. 이거 너 맞지 않냐고. 오유에 올라온 글을 보여줬다. 솔직히 너무 배신감 느낀다. 나는 이거 퍼가려면 사시랑 로스쿨이랑 싸움이 끝난 다음에 퍼가달라고 부탁했는데ㅜ 오유 댓글도 가관이고. 공익을 방위라 썼다고 주작이다. 뜬금없이 내빚 이자율을 30프로 만들어놓고. 갚을수있어서 갚은건데 한정승인 안했다고 병신취급하고 ㅎㅎㅎㅎㅎ 거기다가 나는 솔직히 겪은일을 쓴건데 웬지 로스쿨 댓글부대가 되었다 ㅋㅋㅋ. 거기도 가입하고 바로 활동을 못하는것 같아서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마지막 희망을 걸고 여기다가 댓글을 남겨본다. 지워주라. 소심해서 못 버티겠다. 사시 로스쿨 관심없지만 왠지 이글이 로스쿨용 소설이 되어서 후배들에게 피해주는것도 싫다. 이 글이 사시비판용이 되는것도 로스쿨옹호론이 되는것도 싫다. 부탁한다
[LUViewing] 한번만 안아줄래? 내가 눈처럼 사라질 수 있도록
안녕 카이? 나야. 너를 이 곳으로 데려온. 그동안의 일을 네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러니까 까마득한, 아득한 기억. 많은 사람들이 내가 너를 이 곳으로 데려온 이유를 궁금해 하곤 해. 왜 이 추운 곳에 너를 가두었는지. 눈으로 만들어진 얼음 궁전에 너를 꽁꽁 묶어둔 채로, 내가 네게 하고 싶어 했던 말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해. 어쩌면 너조차 잊었을 이야기. 그래서 나만이 해줄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 너는 아름다웠지. 그 따듯한 눈동자 속에서 나는 오래오래 행복했어. 가끔 넌 이름 모를 꽃을 꺾어서 내 손에 조심스레 쥐어주곤 했는데, 이제 그 생각을 하면 나는 걷잡을 수 없이 쓸쓸해져. 그래서 보다시피 내 얼음 궁전에는 단 한 송이의 꽃도 들여놓지 않았지. 피어날 수 없도록. 아무것도.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엔 너의 장갑을 나눠 끼기도 했고, 내 로션을 나눠바르기도 했어. 너의 뺨에서 나의 향이 날 때면, 나는 왠지 안심이 되곤 했었다. 우리 이대로 영원할 것만 같아서. 따듯했던 너의 손. 너는 그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곤 했었는데... 아빠의 손길 보다 부드럽던. 엄마의 품 보다 더 따듯했던. 나의 계절. 나의 봄. 그렇게 너와 있을 때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어. 그래도, 흐르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가 않았어.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너는 차갑게 변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지. 사람들은 그게 악마의 탓이라고 수군거렸어. 한 악마가, 비추면 모든 것이 추해져버리는 거울을 들고 신에게 장난을 치러가다가 그 거울을 하늘에서 깨트려버렸대. 그리고 그 파편 중 하나가 네 눈에 들어가게 된 거라고. 그래서였을까? 그래서 너는 그토록 사랑했던 나를 미워하기 시작한 걸까? 나는 언제나 너를 사랑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는데... 그렇게 네 눈빛은 나를 찌르기 시작했지. 찌르고, 찔리면서 나는 홀로 많이 아팠어. 변해가는 네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몰랐지. 그래서 모든 걸 얼려버리려고 한 거야. 그렇게라도 우리의 시간을 멈추고 싶었어. 다시 한 번 따듯한 너의 눈동자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 만이라도, 시간을 벌고 싶었어. 나를 사랑하지 않는대도 괜찮았어. 그냥. 네 옆에 있고 싶었어. 하지만 변해버린 네 옆에서 나 또한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하더라. 의심하고, 집착하고, 날카로워져갔지. 그런 내 모습이 나 조차도 너무 싫었다면, 너는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있잖아, 카이. 이제 나는 변해버린 너보다 이렇게 꽁꽁 얼어버린 내가 더 미워. 카이. 이제 조금 기억이 나니? 아직도 너의 눈은 텅 비어있구나. 여전히 나를 바라봐주지 않아. 나는 정말 알고 싶어. 내가 무얼 잘못했는지. 그렇게 사랑했으면서, 왜 이제는 끝났다는 말로 이렇게 처참하게 나를 외면하는 지. 지금 이 곳으로 오고 있는 그녀 때문인 걸까? 있지, 나는 얼굴도 모를 그녀가 너무도 부러워. 너는 이제 곧 그녀의 손을 잡고 이 곳을 떠날 테지. 변해버린 너를 되찾을 수 없는 내게 허락된 건, 이제 순순히 너를 놓아주는 일 뿐이야. 그렇게 나는 다시 혼자가 될 거야. 아마 외롭겠지. 사무치도록. 그녀가 성 밖에 도착했어. 이제 정말 우리의 마지막이구나. 그래서 말인데, 한번만 안아줄래? 내가 눈 녹듯이 사라질 수 있도록. 그리고, 늘 너에게 꼭 전해주고 싶었던 ‘단어’가 있어. 여기에 두고 갈 테니 맞추어봐. 너와 함께 했던 시절에 내가 꿈꾸던 단어, 아니. '우리'가 꿈꾸던 단어. 안녕 카이. 내가 사랑했던 나의 카이. 이제 나를 똑바로 바라봐. 나는 눈의 여왕. 게르다, 그녀 이전의 게르다. 한 때 네가 사랑했던, 너의 연인. 어느 날 못된 악마가 거울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뭐든지 다 흉측하게 보이는 거울이었습니다. 악마는 거울을 하늘로 옮기다가 그만 떨어뜨려 깨뜨립니다. 산산조각 난 거울은 먼지처럼 떠다니다 사람들의 눈과 마음으로 파고듭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차갑고 잔인하게 변해 버렸습니다. 어느 작은 도시에 카이라는 남자아이와 게르다라는 여자아이가 살았습니다. 둘은 아주 친한 친구여서 마주보는 다락방 장미 정원에서 함께 놀며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카이의 눈과 마음에 악마의 거울 조각이 박히고 맙니다. 그 날부터 카이는 못된 아이로 변해 갔습니다. 그해 겨울, 카이가 눈밭에서 썰매를 타며 노는데, 눈의 여왕이 나타나 카이를 눈의 여왕의 성으로 데려가 버립니다. 봄이 되자 게르다는 카이를 찾아 길을 떠납니다. 요술쟁이 할머니 집에 잡혀 지내기도 하고, 카이를 닮은 왕자를 찾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다 그만 산적에게 잡혀 산적 소굴로 가게 됩니다. 게르다는 산적 소굴에 사는 비둘기로부터 카이가 눈의 여왕의 성에 있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게르다는 즉시 카이를 찾아 눈의 여왕의 성으로 떠납니다. 눈의 여왕의 성에 이르러, 게르다는 눈의 여왕의 호위병들과 한판 싸움을 벌입니다. 이 싸움에서 카이를 향한 게르다의 사랑의 힘이 천사로 변해 여왕의 호위병들을 무찌르고, 마침내 게르다는 카이를 만납니다. 게르다의 뜨거운 눈물에 카이 마음속에 박혔던 거울 조각마저 녹아 내립니다. 또 카이가 게르다를 보고 눈물을 흘리자 카이 눈 속에 박혔던 거울 조각도 빠져 나옵니다. 순간 '영원'이라는 얼음 글자도 맞추어집니다. 게르다와 카이는 손을 잡고 옛날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어느새 둘은 아이에서 숙녀와 청년으로 자라나 있습니다. 둘은 함께 기쁨의 노래를 부릅니다. 안데르센 / 눈의 여왕.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진 10장 (6탄!)
여러분! 또 왔어용! ㅋㅋㅋㅋ 5탄 반응 진짜 좋아서 ㅠㅠ 기쁜 마음으로 6탄도 가져왔습니당!!! 기다려주시는 분들 감사해용! 1탄: https://www.vingle.net/posts/1253920 2탄: https://www.vingle.net/posts/1254954 3탄: https://www.vingle.net/posts/1260828 4탄: https://www.vingle.net/posts/1266369 5탄: https://www.vingle.net/posts/1272445 (출처: http://coviral.com/historys-powerful-photos) 맥주 금지령 이후 버려지는 맥주 아름다운 자살 23살의 Evelyn McHale,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83가에서 리무진으로 떨어짐.1947년 스티븐 호킹과 그의 첫 아내 히틀러의 마지막 사진, 1945년 4월 30일 플로리다의 마지막 미국 남북전쟁 베테랑, Bill Lundy. 제트 전투기 앞에서, 1955 18살 프랑스 레지스탕스 Simone Segouin (가명 Nicole Minet) 그녀는 샤르트르에서 수도를 해방시키기 위해 참전했다. 8월 19일, 1944 *레지스탕스란 프랑스어로 ‘저항’이라는 뜻이다. 점령군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행위를 일컫는데, 보통 레지스탕스라 하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대한 프랑스 시민들의 저항운동을 의미한다. 한국전쟁 때 서로를 안고 있는 군인들 수영복 길이를 재는 중, 너무 짧으면 벌금 부과, 1920년대 자유의 여신상 머리 부분을 꺼내는 중, 1885 군대에 있는 엘비스 프레슬리, 1962 반응 좋으면 7탄!!! 럭키 7 갑니당!!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진 10장 (4탄!)
1탄 2탄 3탄 댓글 반응이 좋아서 또 씁니당!!! ㅋㅋㅋㅋㅋㅋㅋㅋ (1탄: https://www.vingle.net/posts/1253920 2탄: https://www.vingle.net/posts/1254954 3탄: https://www.vingle.net/posts/1260828 ) (출처: http://coviral.com/historys-powerful-photos) 여러분의 반응은 제가 계속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당! 뮌헨의 공산주의자를 처형하는 독일 군인들, 1919 간디가 히틀러에게 쓴 편지, 1939 @eheocp: 간디가 히틀러에게 편지를 쓴 이유는 간디의 주위사람들이 히틀러가지금전쟁계획이 있는데 당신(간디)이 막을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주위에서 얘기해서 보낸거라하네여 그리고얼마안있어서 폴란드침공했다고 인터넷에서봤어요 @pk12man: 1939년 7월 23일 인도에서 친애하는 친구에게, 친구들이 내게 인류의 대의를 위해서 당신에게 편지하라고 재촉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편지가 무례함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어떤 친구들은 내가 계산적이되면 안된다고 충고했고, 나는 그것이 어떤 감정을 유발하든지간에 나의 호소를 전달해야만 합니다. 현재 당신만이 인류를 야만상태로 전락시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임이 매우 분명합니다. 당신은 당신에게 가치있는 것으로 보이기만 한다면 어떠한 대가라도 치러야만 직성이 풀리시 겠습니까? 아니면 큰 성공을 거둘 수 없는 전쟁이라는 수단을 신중하게 회피하자는 호소에 귀를 기울이시 겠습니까? 아무튼, 만약 내가 당신에게 편지쓰면서 실수한 것이 있다면,용서를 구하는 바 입니다. 나는 당신의 진정한 친구로 남겠습니다. 마하트마 간디 - 간디가 히틀러를 친구라 부른것은 예의적 표현일 수도 있지만, 나치 독일과 간디의 인도 민족주의는 대영제국의 약화 및 해체로부터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전간기 영국의 힘이 약화된 것은 인도와 같은 식민지에서 제국주의 지배와 수탈에 대한 저항운동 때문이기도 했다. 알카트라즈의 마지막 죄수들이 떠나는 모습, 1963 *알카트라즈: 예전에 교도소가 있었던, 샌프란시스코 연안의 작은 섬 런던의 마담 투소 밀랍인형박물관에 불이 나 녹고 상한 마네킹들, 1930 라스베가스에서 원자핵폭탄 시험을 지켜보고있는 모자. 75km 멀리서 지켜봤다고 하네용.. 1900년대에 묘지에서 찍힌 어린 여자 아이 사진.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사진에 이상한 점이 발견됬다고... 폭탄에 터진 집 앞에서 인형을 들고 있는 어린 아이, 1940 우주에 최초로 간 개, Laika, 1957 개가 돌아오는데에는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고 한다. (우주에서 죽음...) 캐넌 시티 카니발에서의 KKK단, 1925 * KKK단 : 백인우월주의를 내세우는 미국의 극우비밀결사. 익명의 베트남 군인, 1965 댓글 반응이 또 좋다면 5탄도 쓸게용!! 반응 좋아서 5탄도 썼습니당! : https://www.vingle.net/posts/1272445
패션쌍둥이 <요아힘형제>
안녕하세요 오늘은 프랑스의 패션블로거 <요아힘형제>입니다 ㅎㅎ 보시는 바와 같이 쌍둥이인데요. 형, 동생 할 것 없이 둘 다 너무나 옷을 잘입죠 옷 잘입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이 데일리룩에서 자신의 기본 아이템들을 잘 활용한다는 건데요. 그 부분에서 바로 자신만의 '스타일'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죠ㅎㅎ 보시는 것처럼 요아힘 형제는 클래식 캐주얼을 넘나들면서 스트릿패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화려한 색을 많이 사용하기보단 베이직한 색들로도 충분히 멋스럽게 입죠. 단색코디일 때도 그들의 센스는 빛이 납니다! 신발에 포인트를 주거나 썬글라스, 비니 등을 이용하여 자신만의 패션을 구축했죠. 그들의 특징은 굉장히 트렌디하게 입는다는 것인데요. 요새 흔히 이야기하는 '남친룩'의 정석에 가깝지 않나 싶네요. 과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놓치지 않는 점이 정말 배울만 하네요. 그들은 클래식한 옷차림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잘 소화해냅니다. 복숭아뼈까지 정확하게 내려오는 핏감으로 단정하면서도 트렌디함을 놓치지 않죠 ㅎㅎ 이정도면 데일리룩으로 참고해볼만 하지 않나요? 지금까지 프렌치시크룩의 요아힘 형제였습니다.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셨길 바라며 다음에는 더 좋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다음번엔 더 유명한 셀럽으로 찾아뵈야겠네요 ㅎㅎ -좋아요와 클립 한번씩만 클릭해주세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진 10장 (5탄!)
오늘은 일요일 이 시간 쯤 엠비씨에서 서프라이즈 방송하나용? 왠지 이 글 좋아하시는 분들 서프라이즈도 좋아하실거같아용ㅋㅋㅋㅋ 4탄도 반응 좋았어서 또 글 쓸게용ㅋㅋㅋㅋㅋ (1탄: https://www.vingle.net/posts/1253920 2탄: https://www.vingle.net/posts/1254954 3탄: https://www.vingle.net/posts/1260828 4탄: https://www.vingle.net/posts/1266369 ) (출처: http://coviral.com/historys-powerful-photos) 비니치에 마지막으로 남은 유대인, 1941 미국 금주법이 해제된 날, 1933년 12월 5일 방탄조끼 시험 중, 1923 Walter Yeo, 공식적으로 기록 된 최초의 성형수술한 사람, 1917 1차대전 당시 참전 군인으로 미사일 공격으로 인해 눈 주위 피부를 잃어버리는 큰 부상을 얻었다고해요. 괴로워하는 그를 위해 성형수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해롤드 길리스 박사에게 피부이식을 받은거라고... 8살의 전설의 체스 신동 Samuel Reshevsky, 프랑스에서 여러 체스 마스터들을 이기는 중, 1920 2800년 된 키스 사람을 끄는 서커스 하마, 1924 아파트에 사는 아이가 충분한 햇빛과 상쾌한 공기를 마실 수 있게 만든 베이비 케이지, 1937 집 앞 마당에 불에 탄 십자가를 치우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불경기에 4명의 아이들을 파는 문구를 세운 엄마, 부끄러워 얼굴을 숨기는 중 댓글을 달아주시면 6탄 갑니당! (많은 공유도 부탁드려용 > <, 불펌은 슬퍼용 ㅠㅠ 해석하느라 힘들었어요유ㅠㅠ) 6탄 링크입니당 :http://www.vingle.net/posts/1278638?isrc=v
남자들이 좋아서 환장한다는 여자들의 행동 8가지
1. 칭찬해줄 때 남자는 정말 칭찬받는 걸 좋아하는 생명체임. 소중한 가족, 존경하는 사람, 좋아하는 여자한테 특히 더 함. 칭찬에 목 마른 그 모습이 귀엽지 않음? 좀 잘 보이려고 자랑하면 얼씨구나 오구 귀엽네하고 인정해주고 호응해주면 됨 2. 귀여운 스킨십을 할 때 스킨십 싫어하는 남자는 없다지만 내 여자도 아닌데 막 들이대면 뭔가 싶고 부담스러움. 근데 은근하고 귀여운 애교가 섞인 스킨십이라면 말이 달라짐. 예를 들어서 사람들 많은 곳에 갔을 때 내 옷자락을 잡는다거나 하는거 있잖음? 묘한데 긴장되고 귀엽다는 마음이 몽글몽글 생겨남 (첨부 사진은 좀 과하니 따라하지 마시오. 옷 늘어남) 3. 눈 마주칠 때 아주 유명한 3초 스킬과 비슷한 것임. 같이 눈 마주칠때 웃어주면 됨. 아무 이유없이 웃는 것이 포인트임. 왜 웃냐고 하면 그냥이라고 하고 또 웃어주면 남자는 이제 남은 하루동안 계속 쟤가 왜 웃었나 불쑥 불쑥 생각하게 됨 4. 자신의 행동을 따라할 때 중요한 것은 상대가 민감해하거나 컴플렉스인걸 조롱하듯이 따라하면 안 됨. 그냥 자연스러운 것들? 골똘하게 생각하는 표정이라든가 코 찡긋하는 것이라든가 하는 남자의 행동을 따라하고 베시시 웃어주삼 5. 내 말에 집중할 때 다른 사람들은 호롤롤로 듣지 말고 그 남자가 말할 때만 집중하고 눈을 맞춰 자.연.스.럽.게 (방청객 아님) 리액션을 하면 됨. 의식의 흐름대로 내 얘기하지 말고 그 남자 얘기 들어주고 물어봐주고 신나서 얘기하는 거 또 들어주고. 그럼 남자들은 아 쟤는 나랑 넘나 잘 통한다고 내 인생여자라고 생각하게 됨 이 외에도 더 있다면 6. 멍~ 때리고 있는데 귀여울 때 7.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잡으려고 '폴짝' 뛰는데 귀여울 때 8. 아래에서 '나'를 쳐다보는데 귀여울 때 정도가 있을 수 있겠음 결론 : 그 사람 눈에 귀여운게 최고. 귀여운게 세상을 지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