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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뉴스] 희대의 악녀 마리 앙투아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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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코폴라가 연출한 마리 앙투아네트가 정말 통찰력이 있음. 사실 마리야 아무 생각없는 다른 왕실 귀족들하고 똑같은 사람인데, 희대의 악녀가 되어버린 측면이 큼. 시스템이 악랄했지 사람이 악랄한 건 아니었는데..
사실 마리 앙투아네트만큼 왜곡과 와전이 심한 인물도 없죠... 전 마리의 전기를 읽어보았는데, 제가 듣던것과 너무 달라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네요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말 막하는 사람들 정말 싫음
희생양이긴 했지만 일부 사치생활도 심하긴했던것같다 그런데 그주변인들도 더했으면 더했다‥는게 함정‥ 그리고 한순간 모든걸 다 져버리고 숨어살다싶이 했는데...개인으로보면안타깝고 사회전체로 볼때 상징적이라 어쩔수없기도했던것같다 사실 더악랄한 귀족들이 당했어야할일인데‥
군주제가 잘못된 건 맞지만 마리가 악마냐 아니냐는 정말 다른 문제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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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으로 쩔은;; 눈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회복시켜드리고자 한 번 보면 절대로 잊지 못할, 아름다운 영상들이 가득한 영화들을 준비해보았어요. 영화 당 2개의 이미지로 준비 했으니 넘겨봐주는 센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 2014> 영화감독보다는 '완벽한 아티스트' 같으신, 언제나 믿고 보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이에요. 자로 잰듯한 좌우 대칭구조는 이 영화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구요. 깨알같이 아기자기한 소품들, 빈티지하면서도 세련된 의상, 절묘하면서도 환상적인 색감 등은 그가 왜 아티스트로 불리는가를 여실 없이 증명해 보인답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2006> 분명 주인공의 혐오스러운 삶과는 달리 배경의 밝고 선명한 색감과 분위기로 인해 영화의 주제가 더 가슴에 와 닿게 해주는 효과를 주었죠. 영화 중 거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이 장면 기억하시나요? (2번째 이미지) 별다른 설명 없이 이런 분위기만으로도 의도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게 비주얼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요ㅎ <라이프 오브 파이, 2012> 이미 아카데미 감독상, 촬영상 및 4개 부문을 수상한 최고의 영화이지요. 이보다 더 아름답게 바다와 생물들을 보여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판타스틱한 장면들이 가득하답니다. 소설을 영화화한다고 했을 때 과연 이 영화를 어떻게....라는 우려를 단번에 불식시켜준 이안 감독님의 센스와 내공에 감탄과 감동을! 3D로 보지 못한 게 오래도록 후회될 영화. <무드 인디고, 2013> 영상의 마술사, 손맛 나는 판타지로 유명한 미셸 공드리 감독의 작품이에요. 스토리가 전개되는 과정을 따라 영화의 색감도 함께 변화하는 방식을 취한 독특한 매력의 작품입니다. <싱글 맨, 2009> 킹스맨으로 유명한 콜린 퍼스가 주연을, 디자이너 톰 포드가 감독을 맡은 영화인데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남자의 처절한 하루를 그린 내용이지요. 전체적으로 남성적인 느낌의 클래식한 무드이면서도 섬세한 소품 배치로 아기자기한 느낌을 함께 주는 영화랍니다. 주인공의 시선에 따라 색채가 다양하게 변하는 것도 참 신선하더라구요. <그녀, 2013> 컴퓨터 OS와 사랑에 빠지는 설정의 영화로 (내 얘기 아님주의 ㅜㅜ) 스칼렛 요한슨의 매혹적인 목소리 연기가 큰 이슈가 되었었지요. 마치 인스타그램 필터를 입힌듯한 핑크 핑크하고 잔잔한 색감은 우울하고 차가운 현실과 대비되면서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겨줍니다. <미드나잇 인 파리, 2011> 파리의 주요 명소들을 보여주는 인트로와 그곳에서 숨 쉬었던 명사들을 다시금 만날 수 있게 해준 것만으로도 가치를 충분히 하는 영화이지요. 물론 OST도 꽤 좋았구요. 파리,라는 도시가 주는 매력을 가장 잘 담아낸 듯한 영화인지라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쯤이면 꼭 저곳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될거에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2013> 실어증을 앓는 피아니스트 주인공이 마담 프루스트가 제공하는 차와 마들렌을 먹으며 잊었던 기억들을 되찾아 가는 이야기입니다. 프랑스 영화 특유의 원색적인 색감과 분위기를 잘 표현했는데요. 특히 주인공이 프루스트 마담 집을 처음으로 찾아갔을 때의 그 몽환적인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네요. <제인 에어, 2011> 19세기의 고전적인 분위기를 영상에 제대로 담아낸 영화로 유명하지요. 유려한 색감이나 고고한 분위기가 마치 박물관에 걸려있는 한편의 유화 그림을 보는 것 같지 않나요? 다소 음침하고 우울한 원작의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 영화 내내 절제된 느낌의 차가운 색채로 영상을 뽑아내었답니다.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2013> 실제 유명한 사진 매거진인 '라이프'가 주인공의 직장인지라, 전 세계의 멋진 경관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눈이 호강하는 영화이지요. 여기 출몰하는 장소들만 따로 묶어서 포스팅하고 싶을 정도로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영화에요.물론 영화 주제도 최고이구요! 꼭 보시길! 영상미 쩌는 영화들을 좀 모아보려 시작했는데, 팝콘 언니가 본 영화들만 추슬러도 수십/수백편이 될 듯한데요. 그 만큼 아름다운 영상의 영화들이 세상에 가득하다는 의미겠지요. 빙글러 분들이 잊지 못할 아름다운 영상으로 남아있는 영화와 장면들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다른 분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배우 뺨치는 얼굴을 가진 감독, 자비에 돌란
자비에 돌란 (Xavier Dolan) 1989년 3월 20일생 스스로를 캐나다 사람, 프랑스 감독이라고 부르는 자비에 돌란 감독이에요. 캐나다의 몬트리올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불어를 구사하고 프랑스의 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아서 이렇게 표현하는 것 같은데, 사실 캐나다의 불어는 현재 프랑스에서 사용하는 불어랑은 많이 다르답니다. 프랑스인 말에 따르면 서울 사람이 조선시대 양반과 대화하는 느낌이라고 하더군요. 4살 때 제약회사의 TV광고를 통해 데뷔하여 지금은 배우와 감독을 겸업하며 종횡무진 하고 있어요. 자비에 돌란의 아버지 또한 연기자로써 캐나다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답니다. 감독만 하기엔 정말 많이 아까운 외모이지 않나요?>_< 자비에 돌란 처음으로 감독한 장편영화, 아이 킬드 마이 마더에요. 실제로 자신의 학창시절에 있었던 엄마와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하더군요. 영화를 보면 중2병에 빠진 자비에 돌란을 만날 수 있어요. 정말 한 대 콕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떽떽 거리면서 엄마한테 행동하는데, 그 와중에도 엄청난 꽃미모를 뽐내니 어떻게 혼낼 수가 있을까요? 자비에 돌란은 이 영화로 칸 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황금카메라상 외에도 예술영화상, 청년의눈상, 프랑스극작가협회상 이렇게 총 4개 부분의 상을 석권하며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어요. 그 때 나이가 무려 20살 때 였답니다. 나님이 20살 때 학교 앞에서 새벽까지 놀고 자빠져있을 때 말이에요. 우리엄마 눈 감아... 이런 남자랑 연애하면 무슨 기분 일까요? 약속 시간을 5시간 늦게 와도 웃고 넘어가 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나 너랑 사귀면 석가모니가 될 자신이 있다. 용서의 아이콘이 될 자신이 있다. 오..오빵 나를 만나서 인생의 오점 한 번 만들어보지 않을래? (사실 내가 누나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꾸러기 모자를 썼는데도 이렇게 멋집니다. 아이 킬드 마이 마더 이후 하트비트, 로렌스 애니웨이, 탐 엣 더 팜, 마미까지 작품 내는 족족 칸의 초대를 받으며 천재 감독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마미가 예상 외로 흥행하며 자비에 돌란 감독의 국내 인지도도 많이 올라갔답니다. 하지만 돌란의 작품은 동성애 코드가 많이 드러나 있어서 취향이 극과극으로 갈리더군요. 주방에서 요리하고 있는데 싱크대 앞에서 이러고 있으면 녹아 죽어버릴 듯 해요ㅋㅋㅋㅋ 사실 작품 중 90%가 칸에 진출하고 칸 말고도 다른 영화제에서도 엄청난 호평을 받으면서 자비에 돌란이 자기 자신에 너무 심취하고 있는 거 아니냐, 오만방자해질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이 얼굴이면 오만방자하고 심취하는 거 백만 번 인정. 니가 뭔디요? 니가 뭔데 인정이고 나발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돌란 감독은 마미(Mommy)로 201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감독 인생의 정점을 찍게 되었어요. 마미는 2014년 개봉 영화 중 열 손가락안에 꼽힐 정도로 대단한 영화이니 꼭 보길 적극추천드려요. 돌란 감독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한국의 마미 포스터가 자기 영화 포스터 중에 최고라고 감탄 또 감탄을 했답니다. 돌란 감독 영화의 특징인 예쁘고 다채로운 색감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어서 저도 포토 티켓으로도 갖고 있고 포스터도 따로 구매를 했을 정도에요. 영화 마미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전 이 장면에서 정말 소름끼쳤답니다. 화면 구성이 변하면서 오아시스의 Wonderwall이 영화관 전체에 울려 퍼지는데 자비에 돌란 감독이 왜 천재라고 불리는지 알겠더군요. 돌란 감독 영화를 보다보면 그만의 색감, 화면 구도, 적재적소에 배치된 음악, 이 셋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게 느껴질거에요. 요번주 주말에 메가박스 아트나인에서 자비에돌란전이 있다고 하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얼른 예매 고고! (메가박스에서 돈 받고 하는 거 전혀 아니고 제발 돈이나 영화표를 공짜로 제공받아 보고싶은 나님이 스스로 올림) 이런 자비에 돌란에게도 단점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ㅋ...ㅋ...ㅣ.....가......ㅈ....... 제 입으로 말을 못.. 못하겠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 크업ㅠㅠㅠㅠㅠㅠㅠㅠ 제가 이렇게 사랑하고 난리 부르스를 춰도 우리는 이루어 질 수가 없어요. 왜냐면 그는.... 이것도 내 입으로 말 못 해!!!!!!!!!!!!!!!! 안 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한국인은 이해하기 힘든 인도와 영국의 관계.jpg
인도 캘커타에 있는 빅토리아 박물관 여기서 빅토리아란 이름은  '대영제국에 해질 날은 없다'  '패배의 가능성에 대해 관심없다. 영국에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유명한 말을 한 홍차 좋아하는 혐성국의 그 여왕을 뜻함 인도제국 시절에 이 건물이 건립될 땐  빅토리아 여왕을 기념하기 위해 빅토리아 기념관으로 지어졌지만 인도가 독립한 이후에는  공화정인 인도에서 빅토리아 여왕은 이제 자기들 여왕이 아니므로  빅토리아란 이름은 유지시키되 빅토리아 여왕을 기념하는 게 아니라  영국령 인도제국을 기념하는 빅토리아 박물관으로 용도가 살짝 변함  (그게 그거인거 같긴한데) 참고로 인도 정부가 운영중임 이걸 단순히 한일 관계에 대입하면 한국 정부가 인천? 대구? 급 대도시에  일제를 기념하는 히로히토 박물관을 운영하는 총꽁깽 상황이됨 여기서 인도와 영국의 관계를 단순히 한일관계에 매칭시키면 안된다는 걸 알 수 있음  쟤네들 둘은 그냥 존나 복잡한 애증의 관계라.. 한국사람들은 인도를 보통 한국 , 프랑스 , 이집트 이런 개념으로 생각하니까  영국과 인도 관계를 보고 머리가 띵해지는 데 인도는 한국 , 프랑스 , 이집트 같은 개념으로보면 안됨 인도를 동아시아 , 서유럽 , 중동 이런 개념봐야함 이렇게 보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인도과 영국 관계의 특수성이 어느정도 이해될거임 참고로 인도에서는 식민지 시기인 영국령 인도제국시기를 British Raj 라고 부름  직역하면 영국인 왕조 일제강점기(일본에 강제로 점령당한 시기)랑 뉘앙스부터가 확 다른 것도 인도영국 관계의 특수성을 어느정도 보여줌 사실 British Raj란 말도 무굴제국을 보면 딱히 틀린 표현이 아닌 것이 무굴제국이나 인도제국이나 외부에서온 이민족 이교도 왕조인건 같음 차이점은 무굴은 인도아대륙 통일 근처까지 갔지만  이슬람 강요로 통일의 문턱에서 좌절하고 유지에도 실패 이교도 학살이라는 무굴의 미친 짓으로 인해  저항세력(대표적으로 마라타국)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로 대응하면서 인도아대륙은 그 이후 종교로 인해 배틀로얄처럼 되버림 반면에 영국은 인도아대륙을 최초로 통일하고 유지함 영국이 인도를 통일할 수 있었던 이유로  보통 당시 영국이 존나 쌨던 것을 떠올리는 데 이것도 맞지만 인도아대륙 통일과 유지는 단순히 쌔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님  인도 아대륙이 워낙 넓고 또 인구가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인도 통일을 하더라도 이 통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바로 코르테스처럼 현지 지지세력이 필요함 현지 지지세력이 없다면 전투에서는 이길 수 있어도 전쟁에서는 결코 이길 수 없음 무굴제국이 종교 학살을 시작하고 이에 저항세력들이 각지에서 일어나 무굴은 전성기 몇십년도 유지못하고 이름만 남은 빈깡통이 됨 이렇게 무굴제국이 힘이 꺾인 이후  인도 아대륙은 종교 배틀로얄 상황이 수백년간 지속된 난세였고  이 난세에 영국이 개입하면서 내세운 양 날개가 있는 데 왼쪽 날개는 종교의 자유 보장이였음 그리고 그 종교의 자유 보장은 수백년의 배틀로얄로 인해 당시 인도 아대륙 세계에선 실현불가능한 꿈이 였고 이 꿈을 가능하게 하는 영국의 군사력이 오른쪽 날개였음 종교의 자유 보장과 군사력이라는 양 날개 덕분에 엄청난 현지 토작세력들이 영국 아래에 모이게 되고 이들의 지원이 있어서 영국은 인도아대륙을 통일할 수 있었음 (인도아대륙이 워낙 넓다보니 메이저인 이슬람 힌두교 모두 지역별로 세력이 따로 노는 ㄹㅇ난세) 전투민족인 인도 아대륙의 시크교도들은 영국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준다며 항복을 요구했을 때 종교의 자유 보장(?)은 말도안되는 소리고 당연히 이슬람이나 힌두교애들처럼 이교도인 영국이 자기들을 학살할꺼라 생각해서 3차에 걸쳐서 필사적인 전쟁을 벌였는 데 결국 패배하고 절망에 빠짐 근데 시크교도들의 필사적인 저항에 개고생한  영국이 오히려 얘네들 건드리면 안되겠다하면서 (영국이 시크전쟁때 동원한 영국군이 무려 8만명임 참고로 아편전쟁때 동원한 영국군은 1만 조금 넘음) 얘네들한테 자치권도 주고 영국 여왕에게 충성만하면 종교 자유보장 시크교 믿어도 되고 자기들이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저항해도  도저히 이길 수 없었던 그 강력한 영국군이 여왕에게 충성을 바치면 시크교를 보호해주니 시크교도들은 바로 엄청난 친영파가 되버림 캐나다의 국방장관 '사잔'  시크교도이다 영국군에 복무중인 시크교도들 영국 런던 경시청 소속 시크교도 수백년동안 시크교도란 이유 하나만으로 이슬람과 힌두교에게 학살만 당해왔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렇게 영국바라기가 된 게 이상하진않음 지금도 시크교도들은 영연방 곳곳에서 군경으로 복무하고 있음 세포이 항쟁도 원래 세포이 반란이라고 불렀다가 이러면 독립군도 반란? 이냐 해서 항쟁으로 명칭을 바꾼건데 이것도 좀 애매함 아니 이건 독립군에 대한 모욕임 당시 인도아대륙은 지역에 따라 힌두교 이슬람도 어떤동네에선 시크교도와 다를게 없을 정도인 배틀로얄 상태였고 이런 배틀로얄 상태를 영국이 그 아래에 모인 현지 세력들의 도움을 받아서 종교는 자유고 종교가지고 죽이고 학살하는 걸 힘으로 억지로 못하게 막아왔는 데 억지로 못하게 막아오다가 결국 터진게 세포이 항쟁이거든 세포이 항쟁을 진압한 것도  영국군이 아니라 사실상 현지 친영 세포이임 얘네들한테는 저게 좋은게 아니였으니까 세포이들은 영국에 고용된(정확히는 동인도회사) 용병들을 말하는 데 그 중 벵골 세포이들이 들고 일어난 게 바로 세포이 반란 혹은 세포이 폭동임 한국에서는 이걸 단지 영국에 저항해서 들고 일어났다는 이유로 반란이나 폭동이 아닌 항쟁으로 표현하면서 저 세포이 반란을 독립운동으로 치켜세움 근데 영국이 인도를 점령할 때 동원한 병력은 대부분 세포이들임 (3차 시크 전쟁말고는 영국은 인도에 대규모 '영국'병력을 투입한 적이 없음) 그런만큼 세포이들도 엄청 다양함 크게 벵골 세포이 , 콜카타 세포이 , 뭄바이 세포이 , 첸나이 세포이가 있고 이 중 벵골 세포이가 들고 일어난 게 세포이 반란임 그리고 이 세포이 반란은 영국이 아닌 콜카타 세포이를 중심으로 뭄바이 세포이 첸나이 세포이가 모두 개입해서 제압함 왜 콜카타 세포이랑 뭄바이 세포 그리고 첸나이 세포이가 세포이 반란을 진압했을 까? 이유는 간단함 벵골 세포이 중 이슬람 교도들(대략 8할)은 자신들을 고용한 동인도회사가 하찮은 힌두교도들이랑 동일한 월급 동일한 대우를 한다고 빡쳐서 들고 일어남 벵골 세포이 중 힌두교도들도 비슷함 벵골 세포이 중 힌두교도들은 대부분 상위 카스트였는 데 이 들 역시 동인도회사가 자신들을 하찮은 하위 카스트들이랑 동일한 월급 동일한 대우를 한다고 들고 일어남 근데 주력 4대 세포이중 나머지 3개 세포이 콜카타 세포이 , 뭄바이 세포이 , 첸나이 세포이는 대부분 하위 카스트인 힌두교도들이였으니........ 당연히 나머지 3개 세포이들은 벵골 세포이랑 싸우게 되고  압도적인 숫자 차이에 벵골 세포이의 반란은 영국군이 투입되기도 전에 그냥 세포이선에서 진압되어버림 거기다 벵골 세포이의 대부분은 이슬람이고 이슬람 세포이는 대부분 돈 때문에 세포이가 된 반면에 힌두교 세포이 , 특히 하위 카스트 세포이들에게 영국은 천년 가까운 세월동안 지속된 가즈니 왕조, 델리술탄 왕조 그리고 무굴왕조에서 정점을 찍었던 이슬람의 힌두교인 학살을 더 이상 못하게 막아준 존재였거든 얘네들은 단순 돈 벌려고 세포이가 된 게 아님 시크교도 다음으로 영국에 진심으로 충성했던 애들임 단순 돈 벌려고 세포이가 된 소수의 벵골 세포이  vs 충성심으로 세포이가 된 다수의 나머지 3대 세포이 둘의 싸움은 당연히 후자가 압도적일 수 밖에 없었지 세포이 반란을 무슨 독립군의 독립운동 취급하는 건 진짜 독립군과 독립운동에 대한 모독임 (벵골 세포이가 명분을 위해 독립을 내세운 건 맞지만 않이 힌두교애들한테 저 독립 명분이 통하겠냐고 수백년 동안 이슬람이랑 배틀로얄을 경험한 애들한테... 또 영국이 카스트를 강화했다 뭐 이런 소리가 요즘 돌아다니던데 그건 그냥 헛소리임 카스트는 원래부터 그모양 그꼴이였음 인도아대륙에 유입되는 새로운 종교들이 공통적으로 '카스트가 없다' 라는 걸 내세운 게 괜히 그런게 아님 불교 이슬람교 시크교 전부 인도아대륙에 선교할 때 카스트가 없다는 점을 내세움) 물론  영국이 종교로 막 학살하는 걸 막은 이유가 착해서는 아님 영국의 이익을 위해서 영국은 종교로 인한 학살을 힘과 위압으로 막음 영국은 해군은 최강이고 돈은 많아서 육군 역시 매우 정예였음 (화약을 인공으로 만들기 전 까지 화약은 매우 비싸서  18~19세기 초까지만해도 총기 + 총알 300발 세트의 값이 현재로 치면 6 ~ 15억원일정도로 비쌌고 특히 총알이 비싸기 때문에 실탄 훈련은 돈이 많아야 할 수 있었음 영국 육군 '레드코드' 가 존나 쌨던 이유는 그냥 영국이 돈이 많아서 가장 많은 실탄 훈련을 할 수 있었기 때문 영국 해군이 존나 쌨던 이유도 마찬가지로 영국이 돈이 많아서 훈련 때 실제로 포를 많이 쏠 수 있어서임 문젠 영국의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거임 당장 나폴레옹 때 까지만해도 영국의 인구는 '숙적' 프랑스 인구의 3분의 1 수준이였음 (대신 정부 재정은 영국이 프랑스의 3~5배 , 나폴레옹 전쟁땐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으로 영국 정부의 재정 규모가 프랑스 정부의 재정의 7배까지 오름) 병력의 정예화로 전투는 영국이 쉽게 이길 수 있지만 인력빨인 '유지'는 인구가 적은 영국에게 큰 부담이였음 그래서 항상 영국은 현지 세력의 도움을 받아야했음 이야기가 좀 샛는 데 영국은 인도아대륙에서 종교의 자유 보장이라는 선전으로  인도 현지세력을 모았고 이 현지세력을 동원해서 인도아대륙을 통일함 영국이 필사적으로 종교의 무력충돌을 막은 이유눈 영국은 종교의 자유란 선전으로 인도아대륙을 통일한 만큼 만약 종교끼리 무력충돌이 발생한다면 무조건 개입해야하는 입장이였음 문젠 개입하면 돈이 존나 들어간다는 거 그래서 영국이 선택한 건 겁박임 강력한 영국군의 위력을 인도아대륙의 번왕국들에게 보여주고 종교로 인한 학살을 한다면 영국군이 출동해서 가해자를 응징하겠다는 경고를 존나 하는 거지 그리고 실제로 이 경고를 무시하고 이교도를 죽인 번국 본보기로 공격해서 박살내니 본보기들이 영국군에 박살난 이후로는 종교 학살이 많이 줄어들게 됨 신인도통치법 이후 신인도제국(1934~1947) 신인도통치법으로 형성된 신인도제국으로 인도제국은 사실상 자치령이 됨 근데 여기서 신인도통치법은 인도 독립 대신 나온 거임 1차대전때 영국은 인도제국의 협력을 받고 그 대가로 인도의 독립을 약속했음 그리고 인도제국의 협력은 (당연히) 1머전 영국에 큰 도움이 됨 어느정도로 도움이 됐냐면 프랑스 군사박물관 자료를 보면 1머전 영국군 병력이 890만으로 나옴 하지만 영국 자료를 보면 1머전 영국군 병력이 380~460만명으로 프랑스 자료와 많은 차이가 나는 데 이건 기준이 달라서 그럼 프랑스 자료의 영국군 수는 대영제국 기준이고 영국 자료의 영국군 수는 그레이트브리튼 기준 이 차이임 대영제국군은 자치령과 식민지군을 포함하니까 ㅇㅇ 1머전에 참전한 인도제국군은 대략 250만일정도로  영국에게 큰 도움이 됨 (인도제국의 인구가 많아서 인도군을 포함한 인도인 인력을 600만 가까이 동원할 수 있었던 것도 있지만 동원 비율조차도 다른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들에 비하면 많이 높았음 2.3%를 동원했으니 그냥 중앙집권이 약한 국가정도의 인력 동원율을 보여줌 저 2.3%도 친영 번국이 주로 제공한 인력이니 실제 동원율은 더 높다는 거 참고로 프랑스는 베트남에서 0.2% 만 동원할 수 있었음 인도-영국보다 베트남-프랑스의 문화적 차이가 더 심했긴 했지만  그래도 12배 가까운 인력 동원율 차이는 그만큼 식민지 정책에서 영국이 머리를 잘썼고 프랑스는 머리를 못썻다라는 걸 증명) 아무튼 전쟁은 끝났고  영국은 승전했지만 피해가 너무 커서 피로스의 승리가 되버리지 이제 약속대로 인도를 독립 시켜야되는 데 처칠의 유명한 말 있자너ㅋㅋ '인도없는 영국은 대영제국이 아니다!' 당연히 독립시키기 싫지 그래서 절충해서 한 게 사실상의 자치령화인 신인도통치법임 이 법안에 따른 신인도제국은 자치권을 가진 약 500개가 넘는 번국들이 연합한 제국이였음 500개의 최상위 번국 아래에 또 자치 번국이 여러개 있어서  실제로는 자치권을 지닌 수천개 번국의 연합  당시 인도제국 인구가 약 4억 이였는 데 신인도제국으로 싹 자치화되서 영국인 행정인력이 900명 이하로 줄어듬 (프랑스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투입한 행정인력이 7000명 약간 안됨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인구는 약 2000만) 근데 여기서 또 한가지 알아야할게 있음 1머전으로 영국은 엄청난 국력을 소비했고 또 대공황이 오면서 경제와 군대가 박살남 (2머전때 체코 팔아먹은것도 박살난 군대 재건할 시간 벌 용도 였음  예상보다 번 시간이 너무 적다는 게 문제였지) 근데 영국은 인도의 독립 약속을 어겼고 이럼  당연히 인도 현지의 엄청난 반발이 있겠지? 근데 경제랑 군대가 ㅂㅅ된 영국이 어떻게 이렇게 스무스하게  신인도통치법이란 자치령화로 때울 수 있었을 까? 왜냐면 독립 반대 지지가 더 컸거든 당장 인도아대륙이 배틀로얄 상태에서 벗어난지 1세기도 안지난 시점이여서 영국이 인도에서 손을 떼면 예전처럼 주위에 있는 거대 힌두교 . 이슬람 세력들에게 다시 예전처럼 학살당할거라고 생각한 많은 번국들이 인도제국의 독립을 절대반대하고 이런 독립 반대 번국들의 세력이 독립파 번국들의 수와 세력을 크게 앞서니 영국은 이들의 지지 덕택에  독립 대신에 신인도통치법으로 퉁치고 대영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음 물론 이것도 시간벌기에 불과 1머전으로 영국이 잃은 국력이 너무커서  대영제국 해체는 필연이였음 이미 1920년대 후반쯤에 영국내에서 대영제국 유지는 불가능하니 이제 제국 해체를 준비해야한다는 소리가 나왔고  그래서 만들어진게 '영연방' 임 2머전 직후에는 그 시간 벌기도 더이상 불가능해서 그 고집쟁이 처칠조차 제국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걸 받아들이게 됨 특히 2머전도 영국은 인도제국의 도움을 많이 받았음 (2머전 때 외상으로 인도제국한테 구입한 거 대금을 2000년대 와서야 다 갚음) 첨엔 간디 네루와 협의해서  인도제국을 통채로 독립시킬려했는데 인도제국을 독립시킨다는 거 자체가 대영제국이 늙었다는 사실의 방증이였고 이는 영국이 그동안 '대영제국'이라는 힘과 그 이름에서 오는 위압으로 눌러온 인도아대륙의 종교 분쟁을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됐단걸 의미해서  다시 유혈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하자 결국 영국은 파키스탄을 인도와 따로 독립시키고 인도 파키 분쟁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됨 영국이 혐성부려서 파키스탄과 인도를 분단시킨게 아님 영국은 원래 인도제국 통째로 독립시키는 걸 원했음 근데 그러다 하이데라바드 전쟁을 보고 분리안시키면  또 하이데라바드 전쟁 꼴 날테니까 분리 시킨 거 애초에 인도와 파키스탄한테 분단되었다는 표현이 맞는지 부터가 개인적으로 의문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단된 상태라면 문화적 , 역사적 동질성/의식을 따졌을 때 스페인과 포르투갈도 분단된 상태고  잉글랜드와 프랑스도 분단된 상태고 유럽은 나라가 수십개로 분단된 상태라고 말해야 맞게됨 (실제로 인도아대륙내 민족간 문화적 거리는 유럽연합 각 국보다도 더 멈) 앞서 말했듯이 인도를 한국과 같은 개념으로 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거임 인도는 유럽과 같은 지역 개념으로 봐야됨 영국의 죄는 인도와 파키스탄을 분단시킨게 아니라 서로 각자 다 다른 수십개의 나라를 인도라는 연방 형태로 통일 시켜버렸다는 거임 (보통 민주주의는 1인당 경제력이 어느정도 뒷받침 되어야 유지가 되는 데 인도는 특이하게 1인당 경제력이 매우 낮은 걸 감안하면 민주주의가 상대적으로 정말 잘 발달된 곳임 그 이유는 수십개 나라가 현재는 지방정부란 이름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권한이 클수가 없음 다른 의견들을 어느정도는 들어줘야 중앙정부가 유지됨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다 찍어누를려고한다면 원래 서로 싸우는 지방정부들이 위아더월드! 를 외치고 단합해서 중앙정부에 대항하기 때문에 최악의 악수가 되버림 사실상 현재 인도는 단일 국가보단 EU에 가까운 형태임 (인도 중앙정부가 EU고 인도 지방정부가 EU 회원국) 아무튼 뭐 결과적으로 프랑스를 보면 알겠지만  영국 입장에선 대영제국에서 영연방으로  익절 기가 막히게 함 지금도 인도에는 친영파와 반영파가 있는 데 힌두교도들이 주로 친영 일부 반영이고 이슬람교도들이 주로 반영 일부 친영이라 전반적으론 친영적인 국가임 (일반적으로 힌두교도들은 오히려 인도제국을 긍정하고 무굴제국을 존나 싫어하고 이슬람교도들은 당연히 무굴제국을 존나 좋아하고 힌두교를 못죽이게 막은 인도제국을 싫어함) 그 예전에 덩케르크 개봉당시  인도인이 '덩케르크에 왜 인도군은 안나와?'  라고 묻는 기사가 있었는 데 이런 인도인들이 보통 친영임 이들은 인도제국을 식민지가 아니라  그냥 단순히 영국과 물적 동군연합인 이민족 왕조로 보거든 반대로 인도 이슬람 교도들은 주로 반영인게 영국이 되도 않는 민주주의(?)를 억지로 주입시키면서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이슬람을 못살게 굴었다라고 봄  인도 인구가 14억이나 되다보니 그 상대적으로 소수인 반영이 절대적인 수로는 꽤 많음 일단 소수인 이슬람만 인도에서 2억이 넘음  인도는 세계에서 이슬람 교도가 2번째로 많은 국가임 인도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들이자 국부들인 간디는 영국을 좋은 친구라 했고 인도 초대 수상 네루는 자신을 인도를 통치하는 마지막 대영제국인이라 칭했는 데 이는 '인도' 라는 정체성이 '인도제국' 시절에 만들어져서 어쩔 수 가 없는 면이 있음 인도제국전까지 지금의 인도라는 개념은 없었고 영국이 만든 인도제국으로부터 지금의 인도라는 하나의 개념이 된 거니까 한국 역사가 진짜 매우 특이함 한국처럼 민족의식이 일찍 형성된 게 세계적으로 매우 드뭄 심지어 한국은 언어적 문화적으로 매우 가까운 친척민족도 없는 상태다보니 한국사람들이 세계사를 이해하기가 상대적으로 힘듬 더군다나 인도아대륙 역사나 루스 역사는 한국에서도 매우 비주류라서  한국 사람들한텐 제일 이해하기 힘든 세계사인 거 같음 아무튼 영국은 개새끼 맞ㅇㄷㅁ 다시 말하지만 영국은 개새끼 맞습니다 근데 영국 인도 관계를 단순히 우리들의 일반적인 눈으로 보면 안된다는 글을 쓰고 싶었음 출처
12월 1일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및 만평모음
= 22/12/01 류효상의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 1.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내년 2월 말 3월 초'로 가시화되는 가운데, 당 안팎에서 '한동훈 차출설'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친윤계' 박성중 의원은 한 장관의 차출 가능성에 대해 "이르지만 불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동훈에 강신업까지… 진짜 인물 없는 국민의힘. 진짜 쪽팔려서 어떡하나~ 2. 윤석열 대통령이 유튜브 채널 ‘시민언론 더탐사’가 최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집을 찾아가 물의를 일으킨 것을 두고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 보여줘야 하지 않느냐”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상스러운 욕지거리도 그렇고 도대체가 대통령의 언어가 이리 천박해서야… 3. 경찰이 유승민 전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고발 사건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유 전 의원을 고발했던 김건희 팬클럽의 전 회장 강신업 변호사는 “윤석열 대통령에 항명한 것”이라며 경찰을 고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검찰 경찰을 윤석열의 사조직으로 생각하니 ‘항명’이란 말이 나오겠지~ 4. 10.29 참사 희생자 유족 협의회 규모가 조금씩 커지고 있습다. 정부가 유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꺼리는 등 참사 이후 유족 지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유족들이 알아서 수소문해 결집하는 모양새입니다. 아무도 책임지는 인간은 없고 욕 봤다고 등이나 두드리는 인간들… 나쁜넘들~ 5. 검찰이 추미애 전 장관 아들의 '군 휴가 특혜' 의혹을 불기소 처분한 지 2년2개월 만에 다시 수사하기로 했습니다. 대검은 서울동부지검에 추 전 장관 아들 군 휴가 특혜 의혹 관련 수사를 다시 하라는 재기수사명령을 내렸습니다. 아에 형틀에 묶어 놓고 주리를 틀지 그러냐… 그러면 술슬 불지 않겠어? 강신업 "유승민·이준석은 내가 잡는다“ 당대표 출마 선언. ‘한동훈 독직폭행' 정진웅 무죄 확정 “고의 인정 안 돼". 박지현, 유시민 겨냥 "독재자 닮아가 586 퇴장해야". 윤 대통령 주문한 ‘1인 1총기’ 예산 25억 전액 삭감. 나는 나를 웃게 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솔직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웃는 것이다. 웃음은 수많은 질병들을 치료해준다. 웃음은 아마도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리라. - 오드리 햅번 -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웃음, 그리고 사랑을 전한 햅번이지만, 본인 역시 자신을 미소 짓게 하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햅번을 흉내낸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겠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웃음을 선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자신을 웃음짓게 하는 사람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한파로 시작되는 겨울입니다. 꼭 건강에 유의하세요. 저는 지금 너무 아파요. 그래서 오늘도 굵고 짧게 갑니다. 류효상 올림.
땡처리 항공권의 모든것 ‹(◕‿◕)›
비행기 항공권을 싸게 사는것에 관심있으신 분들만 보세요 ~ ‹(◕‿◕)› '특별할인' '땡처리'라는 이름으로​ 저가항공으로부터 구입하는 항공권을 ​땡처리 항공권이라고 하는데 비행기표, 항공권의 가격이시즌마다 또 여행사마다​ 오르락 내리락할때비행기표 가격비교를 통해 저렴한 비행기표를 찾는데정신없는 여행자들은 이럴때 종종 비행기표 '정가'는 무엇인지 의문을 갖기도 합니다 잘 알아보면 이해할수있는 항공권 가격. 잘 이용해서 누릴수있는 해택을 누립시다 ~ http://blog.naver.com/light_waters_love/220594712094 < ​땡처리항공권 사이트‎들 > ​땡처리닷컴​ http://www.072.com/ 땡처리항공닷컴 http://072air.com/ 땡처리에어텔닷컴 http://www.072airtel.com/​ 하나투어땡처리 http://072.hanatour.com/app/default.asp 모두투어땡처리 http://www.modetourro.com/ 등등 많은 유용한 저가 항공권 사이트들 모음 자세한 내용은 아래링크에, http://blog.naver.com/light_waters_love/220594691991 잘 활용하셔서 즐거운여행에 보탬이 되시길 ... (이유없이 빙글사회에서 다른사람을 모함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항공권을 싸게 사기 원하는 사람을 위해 제가 조사하고 정리해놓은 자료를 나누는데, 보기원하지 안으면 보지 안으면 되는 것이지 이유없이 모함을 하는 일이 빙글사회에서 없어지길 바랍니다. 이 많은 여행사와 항공사에서 일을 하는것도 광고비를 받고 광고를 하는것도 아닌데 그런행위가 없어지길 바랍니다. 여행사와 항공사의 맴버쉽해택, 팁들에 관심이 있으면 보시는 것이고 아니면 보시지 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해외에서 예술쪽에서 몇십년을 일하고 있고 여행을 다니다가 '땡처리'라는 것에 대해듣고, 일일이 검색하고 정리해놓은 자료입니다. 포스팅 어디에도 광고를 실고있거나 광고비를 받도록 연결이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 많은 여행사나 항공사에서 일한다고 생각하시는 건지??? 혹시 항공사나 여행사에서 일부러 자료공개 를 막고 싶어서 모함하는것이 아니라면 함부로 제 포스팅을 모함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 모든 언라인상에서 돈을 벌고 계시는 분들은 시간과 지식을 투자해서 정보를 제공하며 그만한 댓가를 정당히 벌고 계시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광고비를 받을정도의 전문성도 없기에 그런분들처럼 수입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비행기 항공권을 싸게 사는것에 관심있으신 분들만 보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하루하루 좋은 추억 만드시길 바랍니다 ~
왕실 : 내 이니셜에도 보석을 박아 넣으면 예쁘겠지?
모노그램을 이용한 쥬얼리들이야💎💎💎 보통 이름의 이니셜을 따서 만드는데 아래사진은 스웨덴 왕실 가족들의 모노그램이야 첫째줄 맨 왼쪽부터 칼 구스타프왕-실비이왕비-커플 두번째줄 빅토리아왕세녀-다니엘왕자-커플 세번째줄 에스텔공주-칼필립왕자-마들렌공주 마지막은 릴리안왕자비까지 어떤식으로 만드는지 느낌이 오지? 금,다이아몬드,사파이어로 제작된 이 브로치는 독일의 빌헬름 2세의 첫번째 아내 아우구스테 빅토리아의 소유였음 이것 역시 금,다이아몬드,사파이어로 제작됬고 빌헬름 2세가 팬던트로 사용함 러시아 예카테리나 2세의 다이아몬드 브로치 러시아 니콜라이1세의 아내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의 다이아몬드 브로치 러시아 니콜라이 1세의 다이아몬드,에나멜 팔찌 영국 에드워드 7세의 다이아몬드,에나멜로 만든 옷핀 에드워드 7세의 루비,다이아몬드로 만든 브로치 이건 많이 봤을거 같아 ㅋㅋ 그 유명한 에드워드 8세가 윌리스 심슨부인한테 준 브로치로 W+E를 조합했대 다이아몬드,루비,에메랄드로 제작함 러시아 예카테리나 2세의 금,다이아몬드로 만든 반지 프랑스 나폴레옹의 다이아몬드 반지 여기 쓴 다이아가 총 10캐럿이 넘는대! 이건 나폴레옹이 선물용으로 만든 시계인데 디테일이 장난아냐 진주덕분에 완전 우아해보여 이탈리아의 엘레나왕비의 다이아몬드 브로치 러시아 폴 1세의 아내 마리아 표도로브나의 반지 러시아 니콜라이1세의 아들 콘스탄틴 대공의 코담배갑 이거를 스너프박스라고 하던데 처음에 몰라서 이건 뭔데 이렇게까지 장식했나 싶었음 영국 빅토리아 여왕 이거 진짜 다이아몬드가 몇캐럿이야 왕관 디테일봐ㅋㅋ 내 기준 코담배갑이 모노그램 쥬얼리중에 제일 화려한거 같음 오스트리아 프란츠 요셉1세 프랑스 나폴레옹1세 아내 유제니 마지막은 상관없지만 개구리로 끄읕 출처 나폴래옹 시계는 갖고싶다는 생각든다 ㅋㅋㅋㅋ
성공하는 글쓰기의 7가지 습관
많은 사람들이, 말은 멋지게 하면서도 글을 쓰려고 하면 콱 막히는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말하는 방식과 글쓰는 방식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그 표현방식이 똑같을 수는 없지만, 소통이라는 측면에서는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말의 전략과 글의 전략이 다를 수 있지만, 상당 부분은 같다는 점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하고싶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듣고싶은 말을 하여 귀를 붙잡는 전략 또한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평생 글을 쓰는 직업을 지닌 사람으로, 글쓰기에 대한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며 지금 또한 그러함을 고백합니다. 다만, 그런 고민 속에서 생긴 개인적인 미립들을 공유하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카드뉴스에서 밝힌 내용들은 주로 글쓰기의 '체력'을 갖추는 것들입니다. 이 밖에 글쓰기가 더 진전이 없고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판에 박힌 자신의 글 스타일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 글쓰기 역발상팁 1. 글쓰는 화자를 바꿔본다 - 주인공이나 당사자의 입장에서 말을 함으로써, 시점 전환이 가능해진다. 2. 문체를 바꿔본다 - 경어체나 사투리, 의문형 종지법, 누군가의 말투를 채택하여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3. 시제를 바꿔본다 - 가상현실을 만들어 미래나 과거의 시점에서 현재를 조명하거나 그 반대 형식을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4. 시나 소설, 시나리오 같은 문학적 표현형식을 도입해본다 - 감정의 노출이나 사건의 생동감 있는 전개, 혹은 대화 형식이 된다. 5. 인터뷰 형식을 도입해본다 - 글 속의 인물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생각의 공간을 확장해볼 수 있다. 6. 가정법을 활용해본다 - 가상의 현실상황을 도입해, 문제나 상황의 자연스런 노출이 가능케 한다. 글쓰기가 쉽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믿지 마십시오. 글쓰기는 문명이 만들어낸 인류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정수이며 학습과 수련이 필요한 일입니다. 글쓰기를 습관화하고 즐기는 사람을 당할 자는 없을 것입니다. 글이 이르는 곳에는 늘 독자가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맙시다. 소통 아닌 글쓰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인류의 역사를 바꾼 세 번의 제안.jpg
독일의 한 남작가에서 태어난 소년 베르너 폰 브라운 폰 브라운은 엘리트 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작곡가를 꿈꾸는 소년이었어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망원경을 주었고 그 후로 이 소년은 천문학에 빠져들게 되지 소년은 공상 과학 소설들을 읽으면서 우주 탐험에 매료됐어 우주에 완전 매료 된 소년은 여태껏 해오던 음악을 때려 치우고 우주를 개척하는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하게 돼ㅋㅋㅋㅋ 그 후로 폰 브라운은 수학과 과학을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어 근데 참 이게 하고 싶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닌데 놀랍게도 소년의 수학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 했어 결근한 선생님을 대신해 수학 수업을 진행한 적도 있을 정도라나 뭐라나ㅋㅋㅋㅋㅋㅋㅋ 소년은 학교 공부시간 외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잊고 달나라 여행을 꿈꿨어 완전 우주 처돌이가 된 소년 폰 브라운은 급기야 17살에는 “우주여행협회”라는 모임에 가입까지 해가며 우주여행의 꿈을 더더욱 키워나갔지 그렇게 작곡가를 꿈꾸던 음악 소년은 1930년 베를린의 로덴부르크 공과대학에 입학하면서 완전히 로켓 연구에 모든 열정을 쏟았어 그러던 1932년 어는 날 폰 브라운이 가입한 우주여행협회는 군 관계자들을 한데 모아 놓고 액체연료 로켓 발사 실험을 진행했어 우주여행협회&군 간부들 : (기대) 셋 둘 하나 쏘세요!! 실험의 결과는 모두의 바람과는 달리 아주 보기 좋게 실패로 끝났어 하지만 당시 독일군의 로켓 개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던 발터 도른베르거 대위는 폰 브라운을 매우 눈여겨 봤어 아직은 초보 단계이지만 성공만 한다면 로켓이 아주 유망하게 쓰일 수 있다는 걸 알았던 도른베르거 대위는 폰 브라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해 “대학원 과정을 지원 해줄테니 육군에 들어와서 로켓 개발 연구를 계속 해 보는 게 어떻겠나?” 도른베르거 대위의 말은 폰 브라운의 인생은 물론 앞으로의 인류의 역사를 바꾸게 될 첫 번째 제안이었어 폰 브라운의 대답은 당연히 예스였지 그렇게 폰 브라운은 1932년부터 본격적으로 로켓 연구에 들어갔어 그 후 같은 해 로덴부르크 공과대학을 무려 2년 만에 졸업하고, 곧바로 베를린 대학에 진학 했어 거기다 물리학을 전공한지 2년만인 1934년에 박사학위를 받음ㅋㅋㅋㅋㅋ 첫 대학에 진학한 후 4년 만에 박사학위까지 따냄ㄷㄷㄷ 그리고 같은 해 몇 번의 실패 끝에 결국 A-2 로켓을 만드는 데에도 성공 함 당시 브라운의 나이 고작 22세...! 도른베르거 대위의 원픽은 초대박이었음 ㅋㅋㅋㅋㅋㅋ A-2 로켓이 성공하자 독일 정부에서는 로켓 개발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어 독일은 1936~1937년 발트 해안에 있는 페네뮌데에 아예 로켓 연구소를 설립해벌임 그리고 폰 브라운이 연구소 팀장이 되어 로켓 개발을 주도했지 존나 20대에 연구소 팀장이라니;;;; 폰 브라운이 한창 로켓에 미쳐서 일 하던 어느날 폰 브라운에게 두 번째 제안이 들어왔어 아니 그건 사실 제안이 아니라 명령이었어 1937년 독일은 폰 브라운에게 나치에 입당하라는 명령을 내렸어 폰 브라운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폰 브라운은 나치당에 가입했어 게다가 나치의 친위대인 SS에도 가입했지 <맨 앞 왼쪽=발터 도른베르거 장군, 빨간 동그라미=베르너 폰 브라운, 1941년 3월, 페네뮌데 연구소> ! 폰 브라운은 나치 당원이 되어서도 로켓 연구를 계속 했어 몇 번의 실패 끝 세계2차대전을 1년 앞 둔 1938년 폰 브라은 A-5 로켓 발사에 성공 했어 그 후 폰 브라운은 A-5 로켓의 결과를 토대로 이 전에 발사에 실패했던 A-4 로켓을 다시 설계하기 시작했지 A-4는 세 번의 실패 후 1942년 제2차세계대전이 한창 무르익어 감과 동시에 발사에 성공했어 A-4 로켓의 성공은 독일에게 있어서 아주 큰 의미였어 초기 단계였던 로켓 개발 연구가 이젠 만드는 족족 발사에 성공할 정도로 기술력이 향상 된 건 물론이고, 지금까지 개발 된 로켓과 달리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거의 최초의 로켓이었거든 현대 로켓의 시조격인 셈이지 하지만 A-4 로켓이 바로 생산된 건 아니야 독일 군부의 내부 갈등 때문에 A-4 로켓에 대한 상부 보고가 미뤄졌거든 그래서 A-4 로켓 발사가 성공한지 1년이 지난 후에야 도른베르거 대위와 폰 브라운은 상부에 A-4 로켓에 대해 보고했어 도른베르거 대위와 폰 브라운이 보고 한 사람은 바로 히틀러였어 아까 A-4 로켓이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최초의 로켓이라고 했지? 보고를 받은 히틀러는 A-4 로켓을 곧장 ‘보복의 무기’로 사용하기로 했어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A-4 로켓은 독일에서 멀리 떨어진 대도시들을 무차별 폭격하는데 너무나 안성맞춤인 무기였던거야 독일은 바로 이걸 노리고 로켓 연구를 시작 한 거였어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패전국인 독일은 현재 일본처럼 군사력에 제한을 받고 있었어 독일군의 병력은 물론 비행기, 함정, 대포의 수까지 제한하는 베르사유 조약 체결(1919) 때문이었지 하지만 제한 대상에 "로켓"은 포함되지 않았어 다른 나라들이 독일을 제한 할 수 없는 부분을 찾아 낸 거야 독일은 이 맹점을 이용해 1930년부터 로켓 개발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그 연구를 이끌 사람으로 폰 브라운을 영입한 것,,!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A-4 로켓을 보복의 무기로 쓰겠다는 히틀러의 결정으로 이 때부터 A-4 로켓은 V-2 로켓으로 불리기 시작했는데, 로켓의 이름에 들어간 알파벳 A는 독일어 ‘Aggregat(복합기계)’에서 따 온 거고 V는 독일어 ‘Vergeltung(보복)’에서 따 온 거야 성능이 입증되자마자 이름부터 복수로 바꾸다니;; 독일이 처음부터 로켓을 무기로 이용하려고 개발 했다는 걸 아주 잘 알 수 있는 대목임 도칸새끼덜; 보복의 무기로 V-2 로켓이 제일 처음, 그리고 제일 많이 향한 곳은 영국 런던이었어 제2차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약 4,320발의 V-2 로켓이 발사됐는데, 특히 런던은 약 1,200발의 폭격을 받아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대 <V-2의 공격을 받고 파괴된 영국 런던 도심의 빌딩> 하지만 여기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건, V-2 로켓이 어마어마한 위력을 자랑하는 만큼 V-2 로켓 1대가 생산 되기까지의 과정도 어마어마했다는 점이야 V-2 로켓 한 발 쏘는 데 드는 비용 =전차 수천대 생산비용 V-2 로켓 1개 생산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넘사벽>>>>>>>>>>>>>>>>>>>>>>>>>>>>>>미국이 각종 무기를 무한대로 찍어내는데 걸리는 시간 미국ver._쇼_미_더_머니.jpg 단시간에 동일 사양의 무기를 존나 미친 듯이 찍어내던 미국에 비하면 V-2 로켓은 가성비가 매우 안 좋았다고 볼 수 있지 근데 V-2 로켓 생산 비용이 조금만 더 쌌더라면? V-2 로켓이 조금만 더 빨리 완성 됐다면? 히틀러에게 조금만 더 빨리 보고가 됐다면? 그래서 지금보다 더 많은 V-2 로켓이 더 많은 나라로 발사됐다면?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연합군 사령관 아이젠하워는 V-2 로켓을 두고 이렇게 말했어 만일 V-2가 6개월만 먼저 나왔어도 세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독일이 엄청난 무기를 개발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가성비가 너무 후달렸고, 1945년에 접어들면서 전쟁의 승기는 완전 연합군으로 기울었어 독일의 패전을 직감한 폰 브라운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지 폰 브라운은 1945년 5월 히틀러가 자살한 후 미국에 순순히 항복했어 미국은 폰 브라운을 어떻게 했을까? 항복했어도 나치니까 그 자리에서 죽였을까? 살려서 훗날 전범 재판에 세웠을까? 미국은 폰 브라운을 죽이지도, 전범 재판에 세우지도 않았어 당시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 때의 전범 기술자을 빼돌려서 자기네 나라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활용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 그래서 미국은 독일 과학자와 기술자에 대한 일명 “블랙리스트”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1순위가 폰 브라운이었다고 함ㅋㅋㅋㅋ (여기에 731 부대장이었던 이시이 시로도 있음ㅡㅡ) 말만 블랙리스트지 실상은 위시리스트 아니냐; 폰 브라운이 왜 1위였는지는 V-2 로켓만 봐도 이미 전쟁 때 그 파괴력이 입증 됐쥬? 그런 위시리스트 넘버원이 제 발로 굴러들어오다니 미국 입장에서는 존나리 땡큐베리머치 아니겠숴? 하지만 폰 브라운은 모다? 나치쟈냐ㅇㅇ 그래서 미국 정부 내에서는 폰 브라운 처분 문제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어 하지만 결국 1945년 6월 미국 국무장관은 폰 브라운과 다른 전문가들을 미국으로 이송하는 것을 승인했어 근데 또 막상 얘를 대놓고 미국으로 데려가자니 나치였던게 넘나 걸리는 거야(염병; 나치랑 찍은 사진도 많아서 나치 아니라고 구라 칠 수도 없었음ㅋㅋㅋㅋ 그래서 폰 브라운은 일명 ‘페이퍼클립 작전(Operation Paperclip)’을 통해 아주 $은.밀.ㅎr.ㄱㅔ-★$ 미국으로 보내졌어 그렇게 미국으로 건너 간 폰 브라운은 무려 15년 동안이나 미군과 함께 일하면서 로켓 개발 연구에 매진 했어 1953년 미국 최초의 대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레드스톤을 개발한 것도 폰 브라운임 우주 처돌이 폰 브라운은 로켓 개발 외에 미국의 우주개발 계획을 선전하는 모델로도 아주 왕성한 활동을 했어 수많은 대중 잡지에 우주개발의 미래에 대한 글을 기고했고, 그 중엔 우주정거장에 대한 개념을 제안 한 것도 있었어 게다가 우주여행에 관한 월트 디즈니 쇼에 정기적으로 출연하는가 하면 디즈니랜드의 기술자문을 맡기도 했대 <월트 디즈니와 전투기 모형을 들고 있는 폰 브라운, 1954년> 전쟁으로 돈도 두둑히 벌었겠다, 로켓 연구 1인자도 데리고 있겠다 미국의 어깨는 아주 하늘 높이 치솟았어 그러던 어느날 세계를 뒤흔든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지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해벌임ㅋㅋㅋㅋ 미국은 이 일로 존나 충격을 받았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시발 우리가 원자폭탄에서는 4년이나 앞섰고, 수소폭탄에서는 2년을 앞섰는데 인공위성에서는 뒤졌다고...? 우리가?ㅋㅋㅋㅋ렬루?ㅋㅋㅋㅋㅋ..ㅋ.ㅋ... 위대한!!!!!!!!!!! 우리 유에쎄이가!!!!!!!!!!!! 고작!!!!! 소련 놈팽이들한테 뒤쳐지다니!!!!!!!!!!!! 세계 최초가 유에쎄이가 아니라니!!!!!!!!!  으으으 분하다!!!! 소련이 무섭게 성장하자 똥줄이 타기 시작한 미국은 각잡고 인공위성 연구를 시작했어  그리고 여기엔 아주 당연하게 폰 브라운이 참여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누구보다 우주 로켓 처돌이 +천재였던 폰 브라운은 자신이 개발한 탄도미사일 레드스톤을 개량해 주피터 로켓을 설계했어 그리고 이걸 더 개발해서 주노 1을 완성시켰고, 이듬해인 1958년, 무려 1년만에 주노1 로켓으로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익스플로러 1호를 발사하는 데 성공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익스플로러 1호 발사 모습> <우주에서의 익스플로러 1호> <위성이 궤도에 진입했음을 확인한 윌리엄 헤이워드 피커링, 제임스 밴 앨런, 베르너 폰 브라운이 워싱턴 DC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익스플로러 1호의 모델을 선보이고 있는 모습> 존나 이제 만들기만 하면 다 성공임ㅋㅋㅋㅋ 이 후로 이제 미국은 본격적으로 우주개발을 추진하기 시작했어 그래서 만들어진 게 바로 미국항공우주국, NASA야 NASA 설립 후 폰 브라운은 자신의 인생을 바꿀 세 번째 제안을 받게 돼 바로 나사에 취직하게 됨ㅋㅋㅋㅋㅋㅋ 1960년 폰 브라운은 NASA의 하부 조직인 마셜 우주비행센터의 소장이 되어 우주비행사를 운반할 수 있는 로켓을 개발하는 일을 맡게 됐어 <마셜 우주 비행 센터에서 촬영한 폰 브라운의 모습, 1964년 5월> 하 지 만 또 다시 미국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함ㅋㅋㅋㅋㅋㅋㅋ 1961년 4월 12일 소련이 이번엔 인류 최초로 우주로 사람을 보내는 데 성공해벌인 것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류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은 보스토크 1호를 타고 무려 1시간 48분 동안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성공했음ㅋㅋㅋㅋ <보스토크 1호에 탑승한 인류 최초 우주인 유리 가가린> <보스토크 1호의 모형> 최초 타이틀 뺏긴 미국 : 아 시발 소련이 또...!!!!(딥빡 당장 사람 태워서 우주로 날려버려!!!!!! 미국은 부랴부랴 우주비행사를 로켓에 탑승시켰어 하지만 대기 상층을 15분 동안 비행하는 데 그쳤고 우주 궤도에는 도달하지도 못했음ㅋㅋㅋㅋ 미국은 존나 분해서 참을 수 없었긔ㅋㅋㅋㅋㅋ 으으으 씨발!! 세계 최초, 인류 최초는 전부 우리 유에쎄이가 해야한다고오옭!!!! 소련 새끼들이 감히!!!!!!! 이 일로 미국은 렬루다가 자존심이 존나리 상했던지 당시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 대통령까지 나섰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이 나라가 10년 안에 사람을 달에 착륙시키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하도록 하는 목표를 완수할 것으로 믿습니다.” NASA 듣고있나? 딱 10년 준다. 잘 하자?ㅋ 대통령까지 저 난린데 어쩌겠어;;; 나사는 대통령의 뜻을 받아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어 프로젝트의 이름은 “아폴로 프로젝트 (Apollo Project)” 그리고 아폴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핵심 연구진, 폰 브라운 폰 브라운 팀은 110m 높이의 대형 로켓 새턴을 개발했어 그리고 대망의 1969년 7월 16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앞에서 로켓 새턴이 발사 됐지 바로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를 태우고 말이야 <1969년 7월 16일 아폴로 11호 발사 성공 이후 발사 통제 센터실에서 기뻐하는 폰 브라운의 모습>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으로 폰 브라운은 평생 염원하던 우주 탐험이라는 꿈을 이루게 된 거야 폰 브라운은 1972년 나사를 은퇴했어 이제 더 이상 미국 정부나 군대와 일 하지 않는 폰 브라운은 그 뒤로 어떻게 됐냐고? 이제라도 전범 재판을 받았을까? 아니 폰 브라운은 나치 전범 재판을 받기는 커녕 미국에서 기업가로 일 하다가 1977년 6월 16일 췌장암으로 사망했어 그리고 폰 브라운은 현재까지도 나치 전범이 아닌 로켓의 아버지로 남아있지 <폰 브라운의 공로를 기리는 명패를 공개하는 모습, 1970년, 미국 앨라배마주 헌츠빌> 인류가 최초로 달에 도달할 수 있게 된 데에는 한때 인류를 끔찍하게 학살했던 나치 당원이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 하지 않아? 역사에 만약이라는 건 없지만 만약에 독일이 로켓 개발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폰 브라운이 나치가 되어 V-2를 개발하지 않았더라면, 폰 브라운이 나사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인류의 역사는 달라졌을까? 만약 당신이 과거로 돌아 갈 수 있다면 폰 브라운을 살리시겠습니까, 죽이시겠습니까? 아니면 미국처럼 자국으로 데려와 자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쓰겠습니까? 문제시 크리스탈
우리나라 도깨비 제대로 알기! - 2. 진짜 도깨비, 가짜 도깨비
도깨비는 우리에게 친숙하면서도, 의외로 많은 면에서 오해를 받아.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성격이 달라진 것도 있지만, 이번엔 될 수 있는 한 민간설화에 따라 '기름기 쏙 빠진' 도깨비를 찾아보려고 해. (글 내용이 김종대 박사님의 연구를 많이 따랐다는 걸 먼저 밝힐게.) 그럼 우리 함께 도깨비의 개념을 바로잡아보자! 1. 도깨비의 정체 도깨비는 요괴야, 아님 귀신이야? 요즘 동화에선 도깨비가 막 무섭고 괴팍한 요물 정도로 많이 나와. 하지만 그런 부정적 이미지들은 후대에 도깨비의 위치가 낮아지면서 많이 생긴 거고, 옛 설화 속 도깨비는 요괴도 귀신도 아닌 무려 '신'이었어! 놀랍지 않아? 도깨비가 신이었대 언니들! 도깨비가 신이라니 어색할 수도 있지만, 그는 엄연히 제삿상도 받아먹는 신이었어. 귀신은 사람이 죽어서 생긴 거고, 요괴는 사람이 죽은 건 아니지만 성질이 사악해서 조화를 깨뜨려. 하지만 도깨비는 사람이 죽어서 생긴 것도 아닌데다, 오히려 인간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수호자' 격의 신이었지. 그래도 도깨비는 신 치고 왠지 위엄이 덜하지? 도깨비는 높은 상위 신이 아니라 그보다 좀 낮은 하위 신 정도라고 보면 돼. 보통 높고 전지전능한 신일수록 엄청 높은 하늘이나 엄청 깊은 바닷속처럼 사람이 닿기 힘든 곳에 살거든? 하지만 도깨비는 달라. 도깨비의 특징 중 하나가, 산에 살아도 결코 산 꼭대기에 살진 않는다는 거야. 개나 소나 다 넘는 고갯길에도 나타나고, 한밤중에 불쑥불쑥 마을에 내려오기도 하지. 다시 말하지만, 도깨비는 인간과 어울리고 싶어 해. 금 나와라와라 뚝딱, 은 나와라와라 뚝딱♬ 도깨비가 신이라면 과연 무엇을 관장하는 신이었을까? 바로 생산력을 가진 '재물신'으로서, 백성들이 궁핍할 때 '부족함이 언젠가 채워질' 희망을 주는 풍요의 아이콘이었대. 그래서 농촌에서는 도깨비터에 풍년이 든다고 믿고, 어촌에서는 도깨비터에 물고기가 많이 모인다고 믿고 그랬던 거지. 만화영화 <꼬비꼬비>에도 나오듯이 도깨비는 메밀묵을 좋아해. 도깨비 고삿상에도 메밀로 만든 묵이나 떡, 범벅 등이 올라가거든. 그런데 왜 하필 쌀도 아니고 메밀이게? 힌트를 주자면, 메밀은 쌀과 달리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서 기근이나 흉년이 들 때 많이 심었대. 마르고 배고픈 땅에서 키운 메밀로 도깨비에게 고사를 지내는 걸 상상해봐. 도깨비가 옛 농민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감이 좀 올 거야. 2. 도깨비의 설움 '가짜 도깨비'들을 찾아라 역사적인 이유로, 혹은 카더라 통신들 때문에 우리 인식 속에 슬쩍 자리 잡은 이른바 '가짜 도깨비'들이 꽤 있대. 그들의 정체를 파헤쳐보자! (1) 귀면와, 그리고 치우천왕 백제의 귀면와. 귀면와는 '귀신 얼굴 기와' 라는 뜻이야. '귀면와'는 삼국시대 때에도 발견되는 기와인데, '귀면와'의 귀신 귀(鬼)자 때문에 이 기와의 문양이 도깨비의 모습이라는 설이 있어. 하지만 일단 도깨비는 귀신이 아닐 뿐더러, 귀면와는 그 이름만으로도 이미 논란이 좀 있대. (귀면와를 용 문양의 '용면와'라 불러야 한다는 설도 있거든.) 중국의 도철문. 중국의 괴물 도철을 새긴 문양이래. 귀면와에 대한 설을 찾아보면, 일단 중국의 '도철문'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귀면 문양이 나왔다는 설이 있어. 실제로 도철이라는 중국 괴물이 귀면 문양과 되게 비슷하게 생겼다네. 인간의 얼굴에 뿔, 털로 뒤덮인 몸, 호랑이 송곳니 등등... 게다가 귀면 문양은 불교적 성격이 있어서 중국과 일본에도 나타나고, 심지어 우리나라의 귀면와가 인도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까지 있어. 그러니까 귀면와는 그 자체도 정체가 불분명하고, 다른 종교의 영향으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 신앙 대상이었던 도깨비와는 연결 짓기 어렵다는 거야. 한 편, 치우천왕은 단군 조선 이전에 있었던 '배달국'의 14대 왕 '자오지 천왕'을 가리키는 말이야. 그의 이야기는 마치 트로이 전쟁처럼 역사이자 신화처럼 전해진대. 그런데 이 치우천왕이 도깨비의 왕 아니면 조상이라는 말이 있거든? 이건 아까 말한 귀면 문양이 치우천왕의 얼굴 문양이라는 또 다른 설 때문에 그래. 2002 월드컵 때 붉은악마의 공식 캐릭터였던 '치우천왕'이야. 이것 역시 귀면 문양을 닮았지? 그 설을 쉽게 정리하자면, 치우천왕이 중국 등지에서 수호신처럼 여겨지곤 했는데, 귀면와 역시 종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둘을 연관 지은 거야. 그런 식으로 치우천왕이 귀면와와 연결, 그리고 귀면와가 도깨비와 연결이 되면서 결과적으로 "치우천왕은 도깨비의 왕"이라는 인식이 피어나게 되지. 하지만 귀면와나 치우천왕이 '벽사', 즉 '사악한 귀신을 몰아내는' 기능을 가진 반면 도깨비는 재물 생산 능력이라면 모를까 벽사의 기능 같은 건 없어. 오히려 후대에 가서 역병을 몰아온답시고 벽사의 대상이 돼버린 게 도깨비란 말야 ㅠㅠ (2) 독각귀(獨脚鬼) + 이매,망량 등 웹툰 <도사랜드>에 나오는 도깨비왕의 엽전. 저 엽전에 새겨진 한자가 바로 '이매망량(魑魅魍魎)'이야. 디테일 돋네. '독각귀'는 중국의 요괴야.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독각귀나 이매, 망량을 도깨비의 옛 이름으로 알고 있더라고. 그래서 독각귀라는 이름 뜻(한 다리 귀신!) 그대로 도깨비의 다리가 하나 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있고. ...? 석보상절에 등장하는 '돗가비'. 여기서 돗가비를 한자로 풀이하지 않았다는 걸 주목해줘. 도깨비의 어원이 한자어가 아니라 순우리말이라는 증거야. 도깨비의 옛 이름은 한자어인 '독각귀'가 아니라 (가장 오래된 기록을 토대로 했을 때) 15세기 <석보상절>에 한글로 쓰여진 '돗가비'야. 역시 한자어인 '이매'와 '망량'도 도깨비와는 완전 별개지. 사실 이 셋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귀(鬼)', 즉 귀신들이고, 다리가 하나라거나 짐승의 머리를 가졌다는 등의 얘기들도 독각귀의 모습일 뿐이지 도깨비와는 아무 관련이 없대.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 -조선시대 문헌에서도 도깨비를 '독각귀', '이매', '망량'이라고 하던데? -백과사전에서도 독각귀나 이매, 망량이 도깨비의 옛 이름이라고 그러던데?  (네이버 백과사전도 그러더라고;;) 그것에 대해 설명하자면... 독각귀, 이매, 망량이 쓰여진 문헌은 당연하지만 한문 문헌이야. 단어 자체가 한자어인걸. 조선시대에 한자는 사대부들의 문자고, 한문 문헌들 역시 사대부들 손으로 쓰였는데, 한글도 없이 한자를 이용해서 순우리말인 '도깨비'를 표기하자니까, 마땅한 한자가 없더란 거야. 그래서 중국 '독각귀'의 이름을 빌려다 쓴 거고, '독각귀=도깨비'라는 오해가 빚어진 것도 이 때문이래. 백과사전들도 이러한 "우리말->한자" 표기상의 차용을 고려하지 않는 바람에 독각귀를 도깨비의 옛 이름으로 설명하는 것 같아. 분명한 건, 독각귀는 이름만 빌려줬을 뿐이지 도깨비와 별개인 중국 귀신이라는 거야. 이해하기 쉽도록 비유를 들어줄게. 여기 동양의 용(龍)과 서양의 드래곤(Dragon)이 있어. 둘은 비슷한 점이 많지만 엄연히 다르지. 출신부터가 다르니까. 그런데 우리는 둘 다 '용'이라고 부르고, 서양 애들은 둘 다 'Dragon'이라고 부른다? 즉, 각자가 사용하는 언어나 문자에 따라 적절한 '이름'을 붙일 뿐이지, 개념상으로는 아예 다르다는 뜻이야. (3) 오니 꼬비꼬비 너마저... 만화영화 <꼬비꼬비>에 나오는 도깨비들. 하지만 이 모습은 일본 요괴 '오니'에 더 가깝다는 사실 ㅠㅠ 이번엔 일본에서 온 '오니'를 살펴보자. 머리에 난 뿔, 튀어나온 이빨, 붉거나 푸른 피부, 원시인 복장, 못이 박힌 철퇴까지... 아마도 오니는 우리의 의식 속에 가장 강하게 자리 잡은 가짜 도깨비일 거야. ??? 오니 이야기를 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게 '혹부리 영감' 아니겠어?. '오니=도깨비'라는 오해를 만들어낸 일등공신이니까. 1941년 일제강점기 <초등국어독본>에 실린 '혹부리 영감' 삽화야. 일본식 옷차림의 노인 주변으로 뿔 난 오니들이 보이지? 사실 '혹부리 영감'은 일본 이야기야. 혹부리 영감처럼 노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일본 설화의 특징이래. 우리나라의 설화는 주인공이 대개 젊고, 충이나 효 같은 유교적 이념이 드러나는 게 특징이야. 하지만 혹부리 영감 이야기를 떠올려봐. 유교적 이념부터가 없잖아? 그러면 어쩌다가, 일본 설화에 등장하는 오니한테 도깨비의 자리를 빼앗긴 걸까? 1909년, 일본의 <심상소학독본>에 실린 혹부리 영감 삽화야. 바로 이것이! 1915년, 일제강점기 조선의 <보통학교조선어급한문독본> (초등학교 '읽기' 교과서)에서 이렇게 변신해. "괴슈 독갑이" ("괴수 도깨비") 사실 도깨비는 짐승이나 괴물의 개념이 아니라서 괴수라는 표현 자체가 어색해. 도깨비를 요괴인 오니와 동일시하려고 사용한 표현일 뿐이지. (솔직히 도깨비가 괴수면 막 돈 갖다주고 명당자리 알려주고 그러겠음??) '혹부리 영감' 속 오니는 일제에 의해, 국민 교육의 기반인 초등 교과서 속에서 도깨비라는 이름을 얻은 거야. 바로 여기에 일제의 무시무시한 의도가 숨어있어. "일본의 오니와 조선의 도깨비를 봐, 정말 비슷하지? 사실 둘은 뿌리가 같은 거야! 그러니 조선 문화와 일본 문화는 뿌리가 같아! 뿌리가 같으니 한일합방 또한 자연스러운 거야!" 이러한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조선 사람들 머리에 심으려 했다 이거지. 오니의 탈을 쓴 가짜 도깨비는 일제의 문화 말살 정책이 만들어낸 비밀 병기라는 거! 꼭 기억해 언니들! 그런데 한 가지 기가 막히는 게 뭔지 알아? 저런 메시지의 일부가 아직도 우리나라에 남아있다는 거야. 실제로 문화 연구과정에서 도깨비랑 오니, 독각귀를 똑같이 묶어서 보기도 하고, 심지어 도깨비가 중국에서 생겨나 우리나라와 일본에 전파되었다고 하는 경우도 있대. 쉽게 말해 '독각귀는 중국 도깨비', '오니는 일본 도깨비' 라고 여기는 애매한 생각이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도깨비를 근본 없는 놈으로 만들어 버린 거야 ㅠㅠ (그럼 슈렉은 '유럽 도깨비'게?) 용과 드래곤의 비유를 다시 떠올려보자. 오니를 우리의 언어에 맞춰 '일본식 도깨비'라 편하게 부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둘은 개념상 부정적인 '요괴'와 긍정적인 '신'이라는 근본적 차이가 있어. 쓱 보기에 비슷한 면이 몇 가지 있을 뿐 별개의 개념이라는 말이야. 예를 들면, 영화 <슈렉>에서 슈렉은 원래 오거(Ogre)라는 괴물인데 더빙판에선 '도깨비'라고 번역하거든? 그렇다고 슈렉이 정말 도깨비인 건 아니란 말이지. 표면적인 유사성만을 가지고 그 본질까지 함부로 묶어버리는 사고방식은 매우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 [참고자료] <저기 도깨비가 간다> - 김종대 네이버 캐스트 <백제인의 심성이 스며 있는 여덟 가지 무늬벽돌> 및 동아일보, 경향신문 기사 한배달 치우연구 제2호(2002.12) 네이버 백과사전, 다음 사전, 네이트 지식 등 강조하건대, 도깨비는 도깨비고, 독각귀는 독각귀고, 오니는 오니야. 도깨비는 중국에도, 일본에도 없는 우리나라의 고유 문화 아이콘이지. 만약 아직도 우리 주변에 도깨비가 살아있다면, 도깨비는 얼마나 서러울까? 한때는 함께 어우러져 살던 사람들인데, 이젠 자기 모습조차 제대로 알아주질 않으니 말야. 진짜 도깨비를 알아가는 건 일제가 구겨놓은 우리 문화를 되살리는 일이기도 해. 우리 도깨비한테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져주자! 아이들한테도 진짜 도깨비 이야기를 들려주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