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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정명학]마음 속 욕망의 거울을 깨뜨리자!

부모의 욕망에서 허덕이는 아이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라깡은 말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타인의 욕망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갓난아이가 부모를 향해 웃는 진짜 이유를 살기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라 해석을 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인문학적으로 ‘눈치’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부터 대한민국에 몰아친 ‘엄친아’열풍 덕에 우리 자녀들은 눈치가 100단이다.
부모는 세상에 아이를 처음 품에 안으며 “건강하게만 자라만 다오.”라고 다짐하지만 어느 순간 토익900점, 명문대 입학과 같은 욕망으로 가득 찬다. 부모가 좋은 성적을 원하면 혹은 어떤 올바른 모습을 원하면 우리는 그 욕망에 맞추어야했다. 그래야 갖고 싶은 것이나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거래가 성사되기 때문이다.
신조어가 탄생하면 생명이 짧지만 '엄친아'라는 단어는 명이 길다 못해 우리 주변 곳곳에 거론된다. 2000년도에 생겨났지만 그 사용빈도가 식을 줄 모른다. 우리문화를 잘 나타내는 아주 적절한 표현이기 때문일까? 부모들은 이제 대놓고 자신들의 욕망을 친구 자녀들을 들먹이며 분출한다.

욕망, 아이를 내몰고 있지는 않는가?


아이는 아직 26개월이지만 아내 역시 ‘엄친딸’이야기를 꺼낸다. “다른 아이들은 귀저기를 땠다는데...” 그러면서 변기통에 배변훈련을 강요한다. 할머니는 기저귀를 때지 못하면 엄마가 게으르다고 욕을 먹는다며 합심해서 변기통을 강요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는 숨어서 변을 본다. 아이에게 응가친구를 만나러 가자는 나의 노력도 허사가 돼버렸다는 허탈감에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퇴행을 긍정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아이가 퇴행적인 모습을 보인다며 상담을 종종 요청해 오는데 대부분 부모의 욕망에 아이가 뒤로 물러난 경우였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문구사에서 파는 장난감 젓 병에 우유를 담아 밤에 몰래 먹다 부모가 알게 됐는데 상담을 통해 학업스트레스와 인정스럽지 못한 부모의 성향, 학교부적응 등으로부터 이와 같은 퇴행이 나타난 것이었다. 이는 스스로가 처한 상황에서 살아남고자 과거의 성공적인 모습을 찾은 것이다. 분명한 것은 부모의 욕망은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다.

아빠만은 절대적으로

아이와 비교할 수 있는 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문선종​아내를 보며 다짐한 것은 아빠만은 비교 말고, 아이만을 바라봐주자는 것. 엄마들의 오염된 언어를 순화하고, 자아정화를 위해 나 만큼은 아이만을 바라보자고 다짐했다. 아빠는 아이의 내면을 보며 신비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라 말하고 싶다. 세상은 내 주변의 사람들을 밟으며 올라가는 적자생존의 수직적인 세상이 아니라 나 스스로 타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수평적인 존재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세상은 온통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과거를 가장 잘 아는 부모가 잘 모르는 타인의 아이의 단편을 놓고 비교하는 것만큼 썩은 언어는 없을 것이다. 아빠만이라도 아이가 스스로를 돌아 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요즘은 아이의 사진과 영상을 늘 기록으로 남겨둔다. 때때로 아이의 사진과 영상을 TV로 송출하면서 이야기한다. 기어 다니는 모습, 스스로 우유를 먹는 모습, 과일을 먹는 모습 등을 보며 말해준다. “서율아 저 때는 걷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뛰어다니고 있네. 네가 참 대견해.” 아이들의 속도는 제각각이다. 육아서에 나오는 것처럼 몇 개월에는 무엇을 한다는 것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 개별성을 인정하고, 다른 아이를 인식해서 조급해하지 않아야한다.

마음속의 거울을 깨뜨리자

EBS에서 한국 어머니와 미국 어머니 각각 11명을 대상으로 fMRI를 이용하여 뇌 변화를 연구하였다. 자녀와 카드게임을 하면서 자신의 손실과 이익을 비롯하여 상대방의 손실과 이익까지 동시에 알게 되었을 때의 각 그룹간의 뇌 변화를 살펴보았는데, 일반적으로 예상치 못한 이익이나 기쁜 일이 있으면 보상 뇌라고 알려져 있는 측핵(Nucleus Accumbens)이 활성화 된다. 미국 엄마들은 절대적 이익에만 반응을 보이는 반면 놀랍게도 한국인 엄마들은 오로지 상대방과 비교해서 이익일 때만 보상 뇌가 강한 반응을 보였다. 조선일보 사이언스 기사에도 한국인은 상대방과 비교하는 것이 미국인 보다 3.5배나 높다는 연구결과를 보도한 적이 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 여왕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요망한 거울은 우리들의 무의식 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심지어 우리는 우리 자신까지도 남들과 비교한다. 우리는 남들보다 더 나은 모습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 아이가 남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평가받길 원한다. 정말 행복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우리 마음속 거울을 깨뜨려보자.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공주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입사해 포항 구룡포 어촌마을에서「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마을 만들기」를 수행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이다. 외동아들인 탓일까?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활 4년 동안 비영리민간단체를 이끌며 아이들을 돌봤다. 그리고 유치원교사와 결혼해 딸 바보가 된 그는 “한 아이를 키우는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철학을 현장에서 녹여내는 사회사업가이기도 하다. 앞으로 아이와 함께 유쾌한 모험을 기대해 볼 만한 아빠유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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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문선종(moonsj8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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